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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두 선택 (메시아계보대장정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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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택

바탕본문: 왕들A (왕상) 12:6-33

하나님은, 다윋과 함께 그의 아들 슐로모를 태어나기 전부터 젊을 적까지 무척 아끼고 사랑하셔서 슐로모 당대엔 이렇다 할 내우외환(內憂外患)이 없었지만 아들 레호보암 대에 와서야 모든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터집니다.

하나님이 다윋과 슐로모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여태까지 참으셨는지 절감하게 되지요.
그리고 비록 레호보암이 우상을 섬긴 악한 왕이었어도 장차 오실 메시아의 선대의 한 명으로 하나님의 보호의 눈길과 은총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김삼읽기힌트 : 김삼의 글은..성경 인명/지명/권명을 비롯한 모든 외래어를 그 나라 언어에 가깝게 발음하는 것을 원칙으로 추구합니다. 혹 한글식 표기법이 생경스럽더라도 이 점을 미리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왕국의 남/북 분열

슐로모의 범죄 탓에 성령님에 의해 예언됐던 남/북 왕국의 분열은 레호보암 왕 시대에 어김 없이 성취됩니다(왕들 11:11-13, 참고: 11:29-39).
왕국 분열 과정은 타당하고 논리적으로 전개됩니다. 야로브암과 이스라엘 지족들이 신왕 레호보암에게 슐로모 당시에 지워진 온갖 고역과 무거운 부담을 덜어 달라고 당연한 부탁을 했으나, 레호보암은 혹독한 표현으로 거절했기 때문입니다(12:13).

이 야비하고도 야박한 표현은 본디 레호보암 자신의 것도 아니고, 함께 자란 같은 또래들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10,11절). 바꿔 말하면 왕은 안타깝게도 좋은 친구들을 두지 못했다는 얘기가 되지요.

지난 회에서 본 대로, 레호보암은 야로브암과 10 지족들에게 사흘 뒤 답변을 주기로 하고서는, 먼저 선왕 슐로모 시대의 충복이었던 나이 많은 대신들을 불러 답변할 방안을 묻습니다. 지금은 조정(朝廷)의 정사와 실역(實役)에서 은퇴한 신하들이죠.
왕이 고참들에게 먼저 물은 이 순서는 옳았지만, 상대가 인생 선배들이어서 마지 못해 먼저 물어, 생색을 낸 데 불과했던 모양입니다.

늙은 충신들은 왕이 백성들의 '섬기미'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선한 말로 응대한다면 백성들이 군말 없이 충성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정말 옳은 말입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노대신들은 선왕 슐로모의 문제점이 뭔지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 수 십년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현왕이라는 슐로모가 백성을 섬기긴커녕 타고 올라 앉아 큰 짐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슐로모 후기의 학정 아래 지칠 대로 지쳐 원망에 가득 찬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길은 왕이 오히려 백성을 섬기려는 마음 자세라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이 늙은 충신들의 말을 진정 성취한 참된 섬기미 왕은 바로 오실 메시아임을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마태복음서 20:28). 하나님의 아들로서 섬기러 땅에 내려 오신 예수 크리스토님은 죽기까지 자기 백성을 철저히 섬기시고 선한 말씀으로 응대하고 가르치셨기 때문이지요. 

레호보암이 이 옛 충신들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마는 그는 콧방귀만 날립니다. "아니 왕이 백성들의 섬기미가 되라고? 허, 나 참..! 저 늙은이들이 제 정신이나 갖고 하는 말들인가?" 식입니다.

그리고는 새파란 나이의 팔팔한 현직 장관들을 부릅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같은 또래들이지요. 우리는 레호보암의 할아버지인 다윋 왕이 수많은 자녀들을 뒀기에 집안이 시끄럽고 친척들과의 갈등도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전술한 대로, 레호보암은 이상스럽게도 1천명이나 되는 계모들은 널려 있어도 형제 자매가 도무지 없기에(?) 같은 또래의 이 소년들과 주로 어울려 놀이나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슐로모가 아들 레호보암을 위해 쓴 잠언/전도사는 슬기 슬기 슬기..지혜를 얼마나 거듭거듭 강조했습니까!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 준 수 백 마디의 잠언과 교훈들은, 옛 어깨동무들의 단 한 마디 변태적인 조언만도 못하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습니까!
레호보암 자신의 문제도 문제이지만 결국 이렇게 된 데 대한 부왕의 책임도 큽니다. 레호보암이 아버지가 쓴 잠언의 다음 말씀 한 마디만 눈여겨 봤더라도 이렇게까지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겁니다.

     "슬기로운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 슬기로워 질 터.
     그러나 우인(愚人)들과 사귀면 해를 입는다."
(잠 13:20. 이하 성구 사역)

이 젊은이들은 인생의 깊은 굴곡을 채 거치지도 않고 체험과 깊은 맛도 모르므로 백성을 제대로 알 리가 없습니다. 아버지 슐로모는 분명히 못된 친구들을 조심하라고 번번히 일러 뒀건만, '스승' 자신의 이율배반적인 생활이 아들에게 이렇다 할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입니다.

이 젊은 대신들은 놀이꾼 출신 답게 전혀 앞뒤 판단이 없고 장난끼 넘친 답변으로 어깨동무 왕을 '자문'합니다. 왕은 이 자문을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판단, 사흘 후 다시 찾아 온 야로브암과 이스라엘 지족 대표단에게 곧이 곧대로 옮깁니다.
이 점에서 왕에겐 아무런 자각력/검증력/통찰력 등이 없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내 새끼손가락은 나의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오.
     내 아버지는 그대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우긴 하셨는데
     난 그대들의 멍에를 더 무겁게 할 테요.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그대들을 치셨지만
     나는 전갈로 치려오!"
(14절)

이게 과연 백성을 돌보는 왕으로서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어진 임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요. 레호보암이 늙은 옛 충신들의 자문을 구한 것 까지는 옳은 일이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철저히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통탄스럽고 안타까운 결과가 아닐 수 없지요.
그런데 우리 자신들도 이런 잘못된 선택을 할 때가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어리석은 청년 대신들은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껄였고 왕은 그대로 카피해 옮겼는데 그 파장이 큽니다.

유다 족을 제외한 모든 지족들이 다윋 왕실을 배신하고 제각기 자기 장막으로 떠나게 되지요(12:16). 생각 없는 말로써 치르게 된 것 치곤 참 엄청난 대가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뤄진 것입니다(12:15). 하나님의 의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호보암의 잘못된 선택이 하나님의 책임은 아님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레호보암의 이 결정이 결코 하나님의 '절대주권' 탓이 아님을 우리는 제대로 봐야 합니다. 절대주권주의자들은 흔히들 이런 경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잘못으로 몰아 가곤 하지요. 하나님은 다만 슐로모의 잘못에 대한 심판을 위해 이런 상황을 허용하십니다.]  

레호보암의 미련함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공사 총감독 아도니람(일명 '하도람'. 연대기B=역대하 10:18 참조)을 백성들에게 보냅니다. 즉 슐로모 당시부터 지속돼 온 온갖 공사 일을 계속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현대 식으로 말하면 노사분쟁 및 조정에 나섰다가 협상이 일방적으로 완전 좌절된 것 같은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어이, 이젠 일이나 해, 엉? 잔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나 하라고." 한 셈입니다. 레호보암의 학정의지(?) 발언에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민 온 이스라엘 백성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돌을 들어 아도니람을 쳐 죽이고 말지요.

겁에 질린 레호보암 왕은 부랴부랴 전마차를 몰아 쉐켐에서 수도 예루샬렘으로 가까스로 돌아 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쯔라임(에집트)에서 돌아 온 야로브암은 거의 자동적으로 북국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결국 하나님의 예언이 하나 하나 성취돼 간 것입니다. 
 

일어날 뻔한 남/북 전쟁

유다와 이스라엘 다수 지족들 사이의 갈등이 "갈 데 까지 가는" 판국이 되자 전쟁 조짐도 일어납니다. 레호보암이 자신의 영토에 유다/벤야민 지족 연합군 18만을 일으켜 남북 국경지대로 출전하려 듭니다. 야로브암 치하에 든 북쪽 왕국을 복속(復屬)시키기 위함이지요(21절. 본문 위 지도 참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다윋 왕국 초기부터 남쪽의 유다와 기타 지족들 사이에 갈등이 암암리에 있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샤울이 벤야민 지족 출신이었기에, 다윋의 출신 지족인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지족들이 다윋을 경원하는 분위기를 이뤘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윋은 하나님이 고르고 빼어내신 영걸(영걸)임을 느낀 이스라엘 지족들은 샤울 왕가가 절로 몰락한 나중에야 비로소 다윋에게 제대로 합류해 통일 강국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이 통일왕국의 역사는 짧습니다. 슐로모 때까지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통일왕국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샤울-다윋-슐로모 3대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다윋은 초기에 유다 지족 영토에서 7년반을 다스렸기에 이 기간은 진정한 통일왕국 시대도 아니었지요.
그러므로 통일왕국이란, 유다-이스라엘 전체 역사 길이 중 모두 약 110여년에 그쳤습니다.

아무튼..레호보암 왕은 북쪽 이스라엘 왕국을 되찾으려 했지만 대언자 제마야가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알리면서 싸움을 말립니다(왕들A 12:17). 즉 왕국 분열이 하나님의 슐로모 심판 계획으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전쟁을 해도 영토를 되찾을 수도 없고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군사들은 다 자진 귀가합니다.


왕들의 배역-야로브암

남국의 레호보암과 북국의 야로브암은 모두 하나님의 은총과 배려로 왕이 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은총에 감격하며 신실하게 나라를 다스리긴커녕 이내 둘 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각별히 생각하셔서 일찍이 대언자 아히야를 통해 왕국의 열 조각을 받기로 예언된 야로브암은 예언대로 모든 것이 이뤄져 자신이 북국을 다스리게 됐음을 여실히 깨달았을 텐데도 그는 불신적이고 회의적인 조바심을 치기 시작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경배하러 예루샬렘으로 내려 갈 것이라는 걱정입니다(13:25-27). 예루샬렘으로 가게 되면 자연히 그곳에 묶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레호보암 치하에 속하게 되고, 결국은 백성들이 자신을 죽이게 되리라는 철저히 부정적인 계산이었습니다.

사람은 만사에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돌이켜 보면, 야로브암의 이스라엘 통치는 본래 슐로모의 범죄에 대한 심판의 일부로서의 하나님의 아이디어로, 대언자를 통해 예고하셨고 야로브암을 통해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로브암은 당연히 성취하시는 야웨 하나님의 뜻과 권능을 의존해야만 마땅합니다.

야로브암은 분명히 긍정적이고 좋은 쪽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비록 백성들이 예루샬렘으로 내려 가더라도, 그리고 더 나아가 레호보암 수하에 빠져 드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만은 북 이스라엘과 야로브암의 위치를 지켜 주시리라고 믿었어야만 합니다. 까닭은 기왕에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다음 약속이지요.

     "네가 만일 내 종 다윋이 했듯이 내가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귀 담아 듣고 나의 길로 내 앞에 올곧게 걸어서 내 모든 법령과 계명을 지키기만 하면,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내가 다윋을 위해 세운 것 같은 견고한 집을 세워 줄 테다. 또 내가 이스라엘을 네게 주마."(11:38)

얼마나 든든하고 확실한 주님의 약속입니까!

그런데 야로브암은 걱정 탓에 하나님의 이 굳은 약속을 불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상황과 환경을 더 중시한 셈입니다. 긍정보다 부정 쪽을 더 믿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야로브암은 맨 처음 대언자 아히야로부터 하나님의 이 예언을 받았을 당시에도 슐로모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11:40). 그러나 그는 잘 피했고 지금껏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앞날도 하나님이 넉넉히 지켜 주시지 않겠습니까.

야로브암은 게다가 혹시나 백성이 배신하고 자신을 레호보암에게 넘겨주지 않을까 지레 걱정하고 전정긍긍하는 마음인 나머지 최악의 방도를 생각해 냅니다. 백성들을 우상으로 호려 예루살렘에 경배하러 내려 가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이 나쁜 쪽을 택한 그는 직접 두 마리의 황금 송아지 상을 만들어 하나는 북국 남단의 벹엘(Bethel)에다, 하나는 북쪽 맨 끝의 단(Dan)에다 세웠습니다. 즉 아래 위 국경 지역에다 '대안 신', '대안 성전'을 만들어 절기 때 백성들의 예루샬렘 경배 나들이를 막으려고 한 것입니다.
벹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조상 야콥이 하나님께 단을 쌓은 곳이지요. 그곳에다 우상을 세우다니 야로브암은 참 어리석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야말로 싸탄을 상징하는 수염소 신상도 만들고 여러 곳에 산당도 짓습니다(연대B=역대하 11:15).

게다가 예루샬렘 성전을 섬기는 타지 거주 사제 족인 레비 지족을 직위 해제 시켜 버리고, 대신 사제족도 아닌 보통 사람을 '사제'들로 골라 세웁니다.
또 모쉐 당시 하나님이 지정해 놓으신 절기와 엇비슷한 8월 15일을 임의로 '절기'로 정해 놓고 왕이 직접 벧엘의 금송아지 제단에 올라가 스스로 향제(香祭)를 드렸습니다.
이 바람에 북국의 자기 향리에 머물던 레위 사제들과 성전사역자들은 모두 예루샬렘으로 남하해 버리고 맙니다(연대B 11:13-17). [사제족인 레위 지족은 12 지족들 중 본 기업이 없는 대신 각 지족들이 제공한 거처와 거기 딸린 주변 땅을 거주지로 삼아 옴]
자신에게 북 왕국을 주신 바로 그 하나님이신 주/야웨님께 경배 드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 발로 차 버리다니 실로 야로브암은 멸망을 자초하는 셈이지요.

야로브암은 더군다나 이 금송아지 우상을 "이 분이 여러분을 미쯔라임에서 이끌어 내어 올린 여러분의 신이오!"라고 눈 가리고 아웅 식인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갈 일이 두 번 다시 없다"고 백성에게 선언합니다(왕들A 12:28).   

우리는 여기서, 야로브암의 이 오도(誤導)가 고대 광야의 아론 대사제의 전철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느낍니다. 미쯔라임 출국 후 광야생활 당시 모쉐가 하나님께 율법 판을 받으러 시나이 산으로 올라가 오랫동안 내려오질 않자, 안달이 난 백성이 지도자 모쉐가 죽었나 보다 하자, 아론은 백성들을 위해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고는 지금 이 야로브암과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출 32:4,8).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더니 야로브암은 지금 하필 고대 광야시대의 아론의 나쁜 짓을 본받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계에서 이런 금송아지를 주조하여 만드는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관상영성', '떠오름영성'이라는 금송아지들.
관상기도를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그럴 듯한 우상으로 사람들을 호리고 꾀는 것입니다. 성령님 아닌 '목적'이 삶을 이끌어 준다고 호도하는 '목적'론 영성도 별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전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방법으로 엉뚱한 대상에게 경배하는 것입니다. 

결국 야로브암은 의심과 두려움, 잘못된 선택 탓에 엄청난 악을 자행하는 셈이 됐습니다. 믿음보다는 불신을, 긍정보다는 부정을, 하나님보다는 마귀를 선택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이처럼 우리에게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레호보암은 현인들 아닌 우인들의 자문을,
야로브암은 긍정 아닌 부정 쪽을 택했습니다.

선택은 정말 중요합니다! 


 [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