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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멍에를 벗겨 주오 (메시아계보대장정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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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여인들을 1000명이나 두었던 슐로모의 독자(?) 레호보암 왕도 
        메시아 선조의 한 사람이었다.


성경 권명 약칭

슘A: 슈무엘A 서(삼상)
왕A: 왕들A (열왕상)
연B: 연대기B (역대하) 


바탕 본문: 왕들A 12:3-5

아내와 여인들을 1000명이나 두었던 슐로모의 독자(?)였던 레호보암 왕은 메시아 선조의 한 사람입니다(마태복음서 1:7).  

그러나 역사상 가장 슬기로운 사람이었다가 후반에 어리석은 삶을 산 아버지처럼 레호보암도 어리석은 왕으로 살아 갑니다. 실상 그는 후기의 슐로모 다음으로 메시아 선대들 중 구체적으로 미련하고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마냥 미련했던 것만은 아니고 때때로 슬기롭게 정책 구사를 한 흔적도 없진 않습니다. 예: 연대기B 11:11-17,23 ]
그나마 아버지의 슬기를 조금이라도 배운 것이 다행이었으며..한편 하나님의 크신 은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강성해지자 이내 야웨님을 배신합니다(연B 12:1). 일시 회개하기도 합니다만(연B 12:6,12).

그의 아버지 슐로모는 구약 성경 가운데 잠언/전도서, 두 지혜서를 썼습니다. [물론 노래들의노래(아가)도 그의 작품입니다만]. 내용을 읽어 보면 그답게 슬기롭고 참으로 유익한 교훈들이 많지요. 그런데 이 교훈들의 주 대상이 아들입니다. 주로 왕세자 레호보암에게 주려던 교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이 점에서도 슐로모는 외아들만 두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아마도 레호보암은 즉위하기 전 불확실한 어느 기간 중에 아버지의 교훈을 받고 어느 정도 궁중 교육에 응했을 법도 합니다. '불확실'하다는 말은 슐로모가 여인들에게 홀려 온갖 우상을 섬기던 때에 과연 전도서/잠언 속의 교훈을 주었을까 의혹스럽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아버지로서 커다란 위선입니다.


레호보암의 출생/성장 배경

레호보암의 즉위는 나이 41세 때였지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4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부왕에게 또는 왕실에서 이런저런 양육과 지도를 받을 수 있었을 터입니다. 비록 슐로모의 후반기가 나빴다곤 하나 상당기간 교육지도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레호보암은 아마도 외아들이었기에 왕실에서 온통 애지중지 귀여움을 독차지했을 것입니다. 또 여기저기 후궁 사방에 1천명이나 되는 아버지의 수많은 처첩들을 바라보고 비록 그들이 자신의 계모 뻘일지라도 그 엄청난 숫자와 물결에 멍하니 넋을 잃고 바라 봤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 후궁의 정경이 그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을 리가 만무합니다.

더구나 레호보암은 암몬족 공주 나아마의 아들이었습니다. 암몬족은 모압족처럼 고대 아브라함의 조카 롵과 그 딸 사이에 태어난 후손으로 훗날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숙적의 하나가 되지요. 슐로모가 암몬 왕녀와 결혼한 것은 순전히 외교적인 어젠다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암몬 족은 이스라엘에겐 엄연히, 하나님이 고대부터 경고해 오신 이방 사람입니다. 이런 이방 여인에게서 다시 메시아의 선대가 났다는 것은 역시 아이러니지요.

하나님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사람들과 연혼(連婚) 관계를 맺지 말라고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왕들A 11:2). 그러나 슐로모는 처음부터 이방인 미쯔라임(에집트) 파라오의 공주와 정략 결혼을 합니다. 게다가 생시에 암몬 족의 우상 밀콤, 몰롴 등을 섬기고 산당까지 지어 주었습니다. 그의 아내인, 레호보암의 어머니 나아마 역시 암몬 출신인 것은 우상숭배와 무관하지 않을 터입니다.   
  
아무튼 분명한 것은 슐로모는 말과 행실이 다른 이중적 생활로 아들에게 이렇다 할 선한 영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즉 잠언/전도서의 온갖 슬기롭고 선하고 아름다운 말로 입이 닳도록 애써 아들을 훈계한 것이 아버지의 행동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니까 무위에 그쳤다는 말입니다.
[그랬던 그 잠언/전도서가 후대의 유대인들은 물론, 수 천 년 뒤 우리 이방인 신자들에게 커다란 교훈과 은혜와 감동, 영감을 준다는 것도 실로 역설적입니다!] 

이처럼 수많은 '엄마 뻘' 여인들이 주변에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레호보암이 마음을 둔 대상은 그의 어릴 적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는 그 누구의 말 보다 어릴 적 궁중 주변에서 함께 놀던 또래들이 더 정겹고 따라서 그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지 못하는 어른들보다 서로 함께 놀아 주는 친구들의 말이 그에겐 훨씬 더 잘 먹혀 들었습니다(왕들A 12:6-11).
이것은 레호보암만 탓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결국 성인이 된 뒤 행동의 책임은 본인이 져야 했지요.

아무튼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미리 내다 보셨습니다.


멍에를 가볍게

야로브암과 이스라엘 지족들이 갓 즉위한 이스라엘 왕 레호보암에게 건, 장래 선정(善政)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는 달리, 레호보암은 왕으로서 참 어리석은 판단을 내립니다.

야로브암이 온 이스라엘 백성의 대변인 격으로 레호보암에게 호소한 내역은 대강 이렇습니다.

"선왕께서는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우셨댔습니다. 하지만 왕께서는 이제 왕의 아버지가 시키신 중노동과 우리에게 지우셨던 무거운 멍에를 덜어 주소서. 그러면 저희가 왕을 섬기렵니다."

우리가 야로브암의 이 말에서 느끼는 것은 슐로모가 자신의 명성과 강국의 위신에 걸맞게 지난 수십년간 국내 도처에 벌여 놓은 온갖 건축 작업과 공역, 중과세를 통해 백성에게 커다란 짐을 지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공역은 슐로모 사후까지도 잔존해 있어 백성을 괴롭혔습니다.
슐로모는 통치 후기로 갈수록 현왕이라는 간판, 번드레한 겉치레와는 달리 내적으로 백성을 크게 괴롭히는, 실로 암적인 존재였다는 뜻이지요. 거대한 소비 중심 공동체인 왕실 자체가 백성에겐 커다란 짐덩어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왕가로부터 떠난 뒤로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백성은 왕의 후비들을 위해 우상을 모신 산당까지 지어야 했습니다. 아직 주/야웨님께 충성스런 백성은 몸과 맘으로 겪어야 했던, 참으로 큰 고역이었을 겁니다.  

슐로모와 그 왕가가 40년이란 통치기간 동안 누린 화려하고 사치한 삶이 요구하는 엄청난 재정과 물자와 노역은 몽땅 백성들의 몫이었습니다.


시작부터 문제였던 왕정제

백성의 이런 고달픈 삶은 하나님과 판관 대신 버젓한 왕을 통치자로 요구했던 선조가 자초한 일입니다. 이미 오래 전 이스라엘 초대 임금 샤울 왕대에 판관/대언자 슈무엘이 성령님을 통하여 경고했던 사항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왕정제도를 요구한 것은 사실 본래부터 선이 아니라 큰 악이었고 범죄였습니다(슈무엘A 12:12,17-19). 다만 인자하신 하나님이 마지 못해 허락하신 사안입니다(슘A 8:9,22, 12:13,20).

백성이 군주 제도를 요구할 때 하나님은 미쯔라임 출국 및 광야 시대 때부터 계속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해 온 것의 연장으로 보셨습니다(슘A 8:7-9). 즉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계속 머무시기를 원하셨어도 백성은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원했다는 것이지요(슘A 10:17-19).

아울러 하나님이 택하여 쓰신 모든 역대 판관들 중에 왕국 시대까지 생존한 최후 판관 슈무엘처럼 충성스럽고 모범적인 지도자도 드물었습니다. 슈무엘은 훗날의 지도자들인 왕들과는 달리 청렴결백한 삶을 살아 온 사실을 온 백성이 100% 인정했습니다. 그는 백성에게서 아무런 뇌물을 받은 적도 그래서 그릇된 판결을 한 일도 없었지요(슘A 12:3-5). 그런데도 그들은 판관 슈무엘을 통해 통치해 오신 하나님을 목전에서 거부한 것입니다.

아무튼 야웨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왕제를 무척 꺼리고 싫어한 슈무엘은 백성에게 장차 왕들이 백성을 압제할 엄정한 현실을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슘A 8:10-18).

왕은..
 
    백성의 아들들을 데려다 전마차(병거)와 말을 다루게 할 것이다.
    백성의 아들들을 천부장, 오십부장으로 삼을 것이다.
    왕실의 밭을 갈아 왕가의 음식을 대야 한다.
    국가의 모든 전마차와 그 부속도구를 만들어 대야 한다.
    백성의 딸들을 데려다 왕실의 향품 제조, 요리를 시킨다.
    백성의 밭, 포도밭, 올리브 과수원 산물의 최상품은 왕가의 것이다.
    곡식과 포도밭 소산의 10분의1을 관리/신하들을 위해 바쳐야 한다. 
    백성의 좋은 노예들과 가장 잘난 청년들과 나귀들을 자기 일에 시킬 것이다.
    백성의 양떼의 10분1은 왕가의 몫이다. 


슈무엘이, 이같은 왕정의 제도와 규정을 말한 뒤 덧붙인 말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왕의 노예들이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한 왕 때문에 여러분이 아무리 하소연하고 부르짖어도 주 야웨님이 그때 여러분에게 응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슘A 8:17b,18)


이것은 과거 판관 시대와 다른 중요한 점입니다. 판관 시대엔 백성이 부르짖는 대로 거의 매번 하나님이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적절하게 행동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왕국 시대에 백성의 부르짖음에 그다지 괘념치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백성이 스스로 부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슈무엘의 경고가 이런데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부득부득 고집을 부리며 왕제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슈무엘은 부득불 첫 왕 샤울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왕정제도를 자초한 이스라엘 백성은 훗날까지도 계속 그런 왕/메시아(기름부음 받은 사람)를 기대합니다. 즉 스스로 왕의 노예들이 되기를 자처해 온 것입니다. 앞으로 올 가짜 메시아인 적 크리스토도 이스라엘이 원하는 대로 그들을 철저히 영적인 노예로 삼을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참 메시아 예수님은 백성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자기 백성을 섬기심으로써 자유를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왕들의 왕(King of kings)과 세상 왕들의 다른 점입니다! 하지만 놀랍고 슬프게도 이스라엘은 참 메시아를 계속 거부해 왔습니다.

섬기러 오신 왕, 참 메시아의 초청을 보십시오.

    "자, 내게로 와요. 수고로워 지치고 짐을 진 그대들 모두!
    내가 그대들에게 안식을 줄 테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대들은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요.
    그러면 그대들의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소." (마태복음서 11:28-30)


 [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