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하고 고소한 팥죽 한 그릇으로 시장끼 어린 형의 뱃속을 녹여 장자권을 가로챈 데 이어 어머니의 도움으로 형이 받을 축복까지 무난히 탈취하는 데 성공한 야콥은 형의 무서운 보복을 피해 멀리 파딴아람으로 피신합니다(창 27:41~46).
그 곳은 어머니 리브카의 친정. 아브라함의 형제 가문인 친척 집안이기도 하지요. 히브리족 초기였기에 종족의 순수성 보존 차원에서 친척끼리 짝을 이뤘습니다. 물론 야콥 자신의 아내도 여기서 얻게 됩니다.
리브카는 여전히 용의주도하게 둘째를 피신시킵니다. 쌍둥이 잉태 당시 하나님의 예언대로 장자권/축복 이양 드라마를 둘째 아들과 합작/성공시킨 뒤 이제 위태로운 아들의 목숨까지 보존시키려고 남편 이짜크의 합법적인 송별 축사를 요청합니다.
과연 아버지 이짜크는 둘째인 야콥을 사실 상의 후계자로 인증하는 공식 축사 겸 송별사와 함께 선대로부터 대물림해 온 하나님의 언약을 재차 상기시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듬직한 털보 마초맨인 맏아들 에사후가 응당 축복을 받아 챙길 줄 기대했던 아버지였건만 일이 일사천리로 이쯤 되고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로 알고 에사후는 포기하는 대신 야콥에게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즉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둘째 아들에게 인수/인계한 셈이죠(28:1~4). 어머니 리브카는 사랑하는 야콥이 어서 속히 되돌아오기만 바라는 맘으로 떠나있을 기간을 기껏 '몇 날'로 추산했지만, 십 수년에 달하는 기나긴, 눈 빠질 기다림의 세월이 될 줄은 미처..(27:44).
아무튼 야콥이 피신/결혼을 위해 외갓댁이 있는 하란을 향해 떠난 출발지점은 이미 말씀 드린 언약의 샘 곁 베에르쉐바. 즉 여태까지 온 집안이 아버지 이짜크가 늙도록 베에르쉐바에 계속 머물고 있었던 것입니다(28:10).
베에르쉐바에서 하란까지는 약500마일(800km) 거리. 북향길이었지요.
하란 사람들은 본래 오래 전 아브람과 함께 칼데아 우르에서 떠나온 친척들입니다. 당초 카나안 향발을 의도했던 아브람의 아버지 테라는 아브람 부부와 테라의 선친 나홀과 같은 이름의 둘째 아들, 일찌감치 먼저 죽은 막내아들 하란의 소생인 손자 롵 등과 함께 카나안으로 오던 도중 하란에 주저 앉고 맙니다. 하란은 아깝게 죽은 막내 아들을 기념하러 붙인 이름이지요(창11:27~32).
하나님은 바로 이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카나안으로 초청하십니다(창 12:11). 야콥의 어머니 리브카와 외삼촌 즉 리브카의 오빠 라반은 나홀의 손자/손녀였죠.
길을 떠난 그 날 저녁. 들판의 한 기름한 돌을 발견, 베개 삼아 베고 누워 자는데 희한한 꿈을 꾸었습니다. 아, 까마득히 하늘 위에서 사다리가 길게 땅까지 뻗쳐 내려 있고, 그 위로 황홀하고 아름다운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그 윗쪽엔 하나님이 서 계셔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야콥 개인으로서는 처음 대하는 이적이었습니다. 성령의 계시로 보는 꿈은 이적입니다(행 2:17, 창27: 5~11. 기타).
하나님의 말씀은 기왕에 아브라함/이짜크에게 늘 되뇌어 오신 언약의 상기 차원이었습니다(28:13~15). 여기엔 물론 야콥의 직계 후손에서 장차 메시아가 태어나실 것이란 암시가 포함돼 있지요. 이 꿈을 꾸고 너무도 놀라 벌떡 깨어난 야콥은 두려움에 벌렁이는 가슴을 가다듬으며 아침 일찍 자던 돌베개를 기둥 삼아 세우고 거기 정성껏 기름을 붓고 그곳을 기념하여 '벹엘'(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 짓습니다.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향후 늘 함께 하시고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고 집으로 무사귀환하게 해 주신다면 계속 유일신으로 모시고 벹엘을 성전으로 삼을 것이며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야콥이 아브라함 때부터 집안 전통인 십일조를 하겠다고 한 것은 성령의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벹엘을 떠나 북동부 하란 부근의 우물에 도착했을 무렵. 그 동네 목자들의 안내로 그리웠던 외삼촌 가족에서도 가장 예쁜 라헬을 만나게 됩니다. 야콥에겐 외사촌 누이인 셈이지요. 야콥은 첫눈에 홀딱 그녀에게 반하는데- 이게 좀 문제가 되지요.
외삼촌 라반은 야콥과 혈통이 같아선지는 모르나 조카 뺨치게 두뇌 회전이 빠르고 간교한 사람이었습니다. 야콥이 외갓댁에 기거하면서 7년간 일하는 조건으로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하자 라반은 바로 7년 되는 그날 속임수를 써서 예쁜 라헬 대신 언니 레아를 먼저 슬쩍 아내감으로 안깁니다. 야콥의 불타는 속과 딸 라헬의 외모를 십분 활용한 라반 다운 술책이죠.
밤새 레아를 라헬인 줄만 알았다가 날이 밝자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한 야콥이 외삼촌의 '신부감 바꿔치기 작전'을 강력 항의하자, 7일 후에야 야콥이 7년간 연애하며 애를 태워 온 첫사랑 애인 라헬도 주면서 곱빼기로 7년간 더 봉사하라고 강요합니다.
두 아내와의 결혼 대가가 총14년의 노동이었다는 말이지요. 요즘 말로 톡톡한 대가요 합법적인 노동착취이지요. 아마도 라반은, 시력이 안 좋아 동네에서 인기가 덜한(?) 맏딸을 이런 식으로 손쉽게 처분하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아내를 둘 씩이나 얻고 훗날 덤으로 아내 당 하나씩 두 여종까지 덤으로 처첩을 거느리게 된 야콥은 13명(아들 12, 딸 1)의 자녀를 줄줄이 얻게 됩니다.
창세기 29:32~30:24장은 메시아 계보 사상 매우 중요한 장입니다. 메시아는 야콥의 넷째 아들 유다의 후손으로 오지만, 아무튼 메시아의 선대를 얻기 위해 야콥의 아내들이 열심히 출산 경쟁을 하는 모습입니다.
야콥의 아내들은 야콥이 아브라함-이짜크의 복의 세로줄을 이어갈 사실 상의 직계라는 사실과 따라서 야콥의 후손에서 메시아가 날 것을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었을 터입니다. 야콥의 아들 중 누가 그 직계를 이을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사실입니다.
남자는 이제나 저제나 '얼짱'들을 주로 찾나 봅니다. 야콥의 얼짱은 첫눈에 찍어놓은 라헬이었죠. 아마도 할머니 사라, 어머니 리브카가 모두 절세의 미인이었기에 야콥의 눈이 워낙 그렇게 길들여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선지 하나님은 외모에 치우친 야콥을 별로 곱게 보시지 않은 듯(?) 합니다. 그래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언니 레아에게 먼저 줄이어 네 아들을 낳게 하시는 등 훨씬 더 많은 자식을 주시고, 장남 레우벤, 메시아의 직계 선조인 4남 유다도 모두 레아에게서 태어납니다. [유다의 이름의 뜻은 '찬양'. 똑 같은 이름을 가진 훗날의 한 히브리족 후손은 메시아의 대적 즉 적 크리스토 노릇을 하게 됩니다.]
레아/라헬은 남편을 놓고 서로 치열한 이권 쟁탈전을 벌입니다. 동생보다 인물이 떨어지는 레아는 자식이라도 더 낳으며 애써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려 했고 라헬은 남편의 총애는 독차지하다시피 확보해 놨겠다..밤이나 낮이나 자식 낳기가 소원이었습니다.
라헬은 좀처럼 자식을 못 낳자 먼저 여종 빌하를 야콥에게 첩으로 제공해 아들을 얻습니다. 그러자 레아도 질세라 재빨리 자기 여종 찔파를 내 놓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아의 아들인 장남 레우벤이 들에서 두오다임(합환채)을 발견, 어머니께 갖다 드립니다. 이보다 더 효성스런 노릇(?)이 또 어디 있으랴! 이에 눈이 회까닥 뒤집힌 라헬은 언니한데서 그것을 얻는 대가로 하룻밤 야콥을 제공하는 웃지 못할 광경을 봅니다.
우리는 이런 광경을 단순한 투기나 집안싸움으로만 볼 게 아니라 대를 이어감으로써 결국 메시아의 선대를 이어 내려가 보겠다는 여인들의 강력한 의지와 열망, 믿음을 엿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튼 라헬도 결국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귀한 아들 요셒과 그 동생 베냐민을 낳습니다. 그 후 야콥 일가는 부모가 사는 카나안 본가로 귀환합니다.
야콥이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던 아들은 사랑하던 아내 라헬의 아들인 요셒. 하나님도 요셒을 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열 두 아들들 중 가장 믿음도 좋고 한때 형들에 의해 미쯔라임(애굽)에 종으로 팔려 수십 년 고생했지만 하나님을 끝내 의지한 끝에 결국 장하게도 미쯔라임 국무총리로 출세해 온 가족을 초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요셒조차도 메시아의 직계 조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참 기묘한 일입니다. 정작 메시아 직계 선조인 유다는 비록 형제들 중 출중한 인물이로되, 그 집안 사정이 그다지 별로 선해 보이진 않은 인물임을 우리는 발견하게 되지요. 우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카나안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다의 아들들은 모두 메시아 계보를 잇지 못합니다.
창세기 38장은 메시아 계보에 있어 또 다른 중요한 장. 온 장을 유다 집안에 할애한 것만으로도 그런 분위기를 시사합니다. 바로 야콥의 아들들 중 메시아의 직계 선조가 될 유다의 후손에 관한 얘기입니다.
레아의 아들로, 야콥의 전체 열 두 아들 중 넷째인 유다는 결혼부터가 깨끗하지 않습니다. 즉 형제들에게서 잠시 벗어나 거기서 남쪽으로 떨어진 아둘람 사람인 친구 히라와 교제하다가 그곳 카나안 사람 슈아의 딸과 만나 무턱대고 결혼하여 아들을 셋 낳았지만, 집안 교육이 엉망이었는지 맏형 에르와 손아래 동생 오난이 모두 악했습니다.
에르는 타마르라는 착한 여인을 아내로 얻었지만, 단지 악하기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일찌감치 쳐서 죽게 하셨습니다. 일부 유대 학자들은 문맥 상 에르가 젊은 나이에 자식 얻기가 싫어 고의적으로 피임했다고 추정하기도 하지요.
그 다음. 당시 관습(Levirate Law: 라틴어 '라비르'에서 온 말로 '제계혼' 즉 형의 유고시 동생이 대신 후대를 이어주는 전통법)상 형 대신 씨를 제공해야 할 동생 오난 역시 고의적으로 형수의 임신을 거부하는 등 악하기만 했기에 역시 저주 받아 죽었습니다.
그 다음, 막내 아들 쉘라도 있지요. 그런데 유다가 며느리 타마르에게 한 귀띔의 첫 인상은..마치 쉘라가 아직 어려 타마르의 동침 대상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짐짓 막내가 자라기까지 "친정에 돌아가 수절하며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문맥으로 볼 때, 유다의 말은 순전히 핑계입니다. 쉘라는 이때 형수에게 최소한 충분히 자기 씨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유다가 선뜻 며느리한데 막내를 내어 주지 않았던 이유는 쉘라가 어려서라기보다 하나 밖에 안 남은 아들이 형들-에르/오난-처럼 또 다시 하나님께 저주 받아 횡사할까 봐 겁이 났던 탓입니다. 이 점은 38:11, 26에서 확인됩니다.
그러던 중 설상가상 격으로 유다의 아내까지 죽었습니다(창 38:12a). 그래서 이래저래 잠시 여인을 멀리 하게 된 유다의 이 금욕기간(?)이 부지 중 며느리와 동침하는 계기가 될 줄 그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우리는 창세기 38장에서 역시 후대의 계보를 잇겠다는 타마르의 열정을 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의지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타마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유다에 이르는 집안의 내력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 집안의 그 누군가를 통해 메시아 계보를 이어 갈 것임을 미뤄 짐작했을 터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성령님이 그녀의 속에 감동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마르의 대 잇기 비책은 참으로 기발하고 비상합니다! 꿈에도 소원인 자식 낳기 궁리를 하다하다 급기야 성매매 여성으로 분장, 시아버지를 유혹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째 이런 일이~?! 합법적 수단으로는 도저히 씨를 얻을 방법이 없다는 확실한 결론이 나자, 아예 계보가 좀 더 확실한 시아버지를 통해 대를 잇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입니다.
만약 유다가 이 '음모'를 사전에 알고 피했거나 타마르가 이 방법을 쓰지 않았다면, 결국 이 집안으로는 메시아 계보를 잇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내를 잃고 난 한 때의 정욕을 몰래 성매매 여성에게서나마 풀어 보고자 했던 노릇이 며느리 타마르로서는 후손을 잇겠다는 열망과 만나, 후손을 잇게 된 것입니다.
아마도 타마르는 시아버지의 사람됨이 범상치 않음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유다는 어느 모로든 그 형제들 중에서도 달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창49:9, 연대기A 5:2). 아무튼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속여 가며 이런 불륜까지 연출하는 믿음의 노력 끝에 쌍둥이 아들(페레츠/제라)을 낳게 됐지요.
그나마도 먼저 태어나려던 아기가 뱃속에서 순서가 바뀌어 본래 동생 될 뻔 했던 페레츠가 맏형이 됩니다(창 38:30). 에사후-야콥 쌍둥이 형제를 연상시키지만 성격이 또 다른 케이스입니다.
그러니까 유다의 아들은 모두 다섯인 셈인데, 그 가운데 며느리와의 불륜 끝에 낳은 이 페레츠에게서 메시아의 선대가 이어집니다.
왜 하필 이런 집안에서 이런 과정을 통하여 메시아의 대가 이어지게 됐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신비이겠지요.
[ 필자는 외래어는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려는 생각입니다. 이 점 이해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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