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윋 왕은 샤울보다는 훨씬 많은 아내들을 두었습니다(슈무엘B/삼하 3:2~5, 5:13~16).
다윋은 성경이 용모를 여러 번 강조할 정도로 미남인데다 영웅호걸 스타일이어선지 '여복'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대다수를 하나님이 그에게 안겨 주셨다고 성경이 명시했으므로 왕에게 베푸는 일종의 특혜로 허용하셨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슘B 12:8).
다윋이 후계자와 동시에 자신 같은 메시아의 선대를 얻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그의 맏아들 암논 왕자는 후계자가 아니었지요.
다윋의 아내들은 결혼 시기로 보아 1. 다윋의 청년기와 도피 시절 2. 헤브론 유다 왕국 시절 3. 예루샬렘 이스라엘 왕국 시절 등 세 시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샤울 왕궁에 머물던 청년 초기에 얻었던 샤울의 둘째 딸 미칼 공주는 상당기간 헤어져 있었고..
광야 도피 시절에 얻은 두 아내 아비가일과 아히노암이 있고..
이 두 사람과 헤브론에서 유다 왕으로 즉위한 뒤 얻은 아내를 합하면 모두 여섯 명의 아내로부터 최소한 6명의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훗날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한 뒤 얻은 아내들로부터 슐로모를 비롯한 최소 11명의 왕자들, 그리고 기타 공주들도 낳습니다. 아무튼 비빈이 모두 수 십 명인 듯 합니다.
다윋 왕에겐 로맨틱 스토리가 없지 않습니다만 다윋의 생애가 부분적으로 험난했던지라 걸맞게 우여곡절도 잦습니다.
미칼 왕비
시리즈 앞 부분에서 비쳤습니다만..맨 먼저 다윗을 짝사랑하기 시작한 여인이 샤울 왕의 둘째 딸 미칼 공주였지요(슘 18:20). 미칼은 그러니까 다윋의 젊은 시절 첫 연인이자 첫 아내였습니다.
소문을 들은 아버지 샤울 왕은 다윋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위를 삼으려고 자기 딸을 미끼로 던지자 다윋은 왕의 사위가 되기도 하고 적을 죽인다는 애국적 충정으로 왕의 주문에 응합니다. 그래서 적군 펠레쉩 군사들을 200 명 죽이고 그중 100명의 남성 포피를 잘라 온 대가로 미칼을 얻습니다(18:22~27).
요샛말로는 정략 결혼 내지 전략적 결혼인 셈이지만, 미칼은 다윋이 부하들과 함께 목숨 내 걸고 용맹을 떨친 결과로 얻은 소중한 전리품인 셈이지요.
사실 샤울은 미칼에 앞서 맏딸 메랍도 비슷한 미끼로 내던졌지만 당시는 다윋이 샤울 왕의 단창을 갓 피한 때로 불신과 의혹 속에서 미끼를 물지 않았습니다(18:17~19).
미칼은 다윋의 첫 사랑이고 전체 기간으로 따진다면 모든 아내들 중 다윋과 가장 오래 함께 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왕후들 중 가장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다윋이 샤울에게서 도피했던 피난 시절 한때 남의 아내가 되기도 한 데다 평생 자식이 없었습니다.
미칼은 어느 왕후들보다 다윋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버지 샤울이 다윋을 미워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다윋과 절친한 오빠 요나탄처럼 그녀도 젊은 다윋의 목숨을 살려 주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다윋을 숨겨 집밖으로 탈출시켜 주고 샤울의 군대를 따 돌린 것. 그리곤 다윋이 침대에서 자고 있는 것처럼 우상을 갖다 꾸미는 등 기지로 위장술까지 발휘했습니다. 아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다윋은 체포되기 쉬운, 정말 다급한 상황이었지요(슘 19:11~17). 집안에 우상이 있었다는 사실이 좀 걸리는 대목이지만.
그런데 바로 그 날이 사랑하는 남편과의 기막힌 잠정 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버지의 맹추격전이 계속되면서 다윋은 장기간 광야와 펠레쉩 등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시피 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미칼 공주는 사악한 아버지에게 여러 모로 이용 당하고 철저히 희생 당한 것이지요. 그 장기간 동안 생과부로 지내기도 서럽거든, 다윋이 둘째/셋째 아내를 얻었다는 소식이 멀리서 들립니다. 처량하게 지내는 꼴이 안쓰러웠던지 샤울은 팔티엘(일명 '팔티')이라는 딴 남자에게 딸을 시집 보내 버립니다(25:44).
그러나 다윋은 아직 미칼을 차 버린 것도 아니고, 첫 사랑을 오래 간직하면서 여전히 그리워 하고 있었습니다. 원수 샤울이 죽고 나서 다윋이 헤브론에서 유다 왕이 된 수 년 후. 아버지 샤울을 이어 왕위에 오른 이쉬보쉩을 배신하고 다윋에게 나머지 이스라엘 10 지족을 대표해 투항할 뜻을 밝힌 대장군 아브넬에게 다윋은 조건을 내 겁니다(슘B 3:13)..
"내 아내 미칼을 데려고 오시오. 안 그러면 못 받아 들이겠소."
목숨 걸고 펠레쉩 군대와 싸운 대가로 얻은 첫 아내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아쉬워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더 나아가, 사신을 보내어 이쉬보쉩에게 "나의 아내 미칼을 돌려 주오. 내가 전에 펠레쉩 군사들의 전투에서 ('전리품'으로) 정혼한 여인이오"라고 공식 요청합니다(14절).
다윋 왕의 당연하고 당당한 요구에 기가 질린 이쉬보쉩 왕은 아브넬을 시켜 그때까지 팔티엘의 아내였던 미칼을 억지로 남편에게서 떼어 다윋에게 돌려 보냅니다. 팔티엘이 울면서 미칼 뒤를 따라 왔지만 소용이 없었지요. 물론 미칼로서야 아버지가 강제로 떠 넘긴 억지남편 팔티엘보다는 첫 사랑이자 현 유다 왕인 다윋 쪽이 훨씬 더 나을 터입니다(15,16절).
그러나 미칼이 헤브론 왕실에 들어 와 보니..다윋은 듣던 대로 예쁜 아내들을 도합 여섯이나 거느리고 있고 이 아내들이 죄다 적어도 왕자 하나씩을 낳았습니다. 왕자들만 최소 6명. 공주도 물론 있었죠.
미칼은 눈이 뒤집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머나, 그동안 왕비를 많이도 얻었네! 다들 이쁘네. 떡두꺼비 같은 왕자들도 낳고. 난 어떡허나?" 하는 마음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도 자식을 얻어 보려고 무던히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수심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얼마 후 미칼의 남동생인 이쉬보쉩 왕이 암살되고, 다윋이 남은 이스라엘 11 지족들의 추대를 받아 모름지기 전국 왕으로 즉위하고 나자, 예루살렘에서 비빈/후궁들을 더 취하여 왕자와 공주를 줄줄이 낳습니다. 앞서 헤브론 출생 왕자들까지 합하면 왕자 17명에다 공주도 물론 많았을 것입니다.
미칼 왕후는 버젓한 자식 하나 없이, 훗날 다윋의 배려로 다윋 왕가에서 끼니 때마다 식사를 함께 한 (오빠 요나탄의 아들인) 장애인 조카 메피보쉩(9:1~13)만 빼고는 혈혈단신 격이 됩니다. 과거 다윋을 그렇게도 박해하던 샤울 왕가 출신이어선지 아마도 은근히 다른 왕후/후궁들의 따돌림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마도 다윋은 첫 사랑 미칼에게서도 왕자나 공주를 얻어 보려고 나름대로 많이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칼은 그런 와중에 자격지심과 투기 때문인지 마음이 살짝 비뚤어졌습니다.
다윋 생애 최대의 경사라고 할 수 있는 날. 야웨 하나님의 법궤를 다윋 성 찌온의 성막으로 들여 오던 그날 미칼은 못 볼(?) 광경을 보고 말았습니다(6:16).
다윋이 베 에폳(사제복)을 입고 하나님의 궤 앞에서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데 속옷이 흘러 내리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추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주변에는 다윋 신하들의 여종들도 왕의 춤추는 광경을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6:12~15 참조).
이 모습을 왕궁 창 밖으로 내다 보던 미칼 왕후가 또 다시 눈이 뒤집히면서 속으로 왕을 비웃습니다. "저런, 저런! 아니 일국의 제왕이 저 모양이라니..쯔쯔쯔! 도무지 부끄럽지도 않으신가."
그러나 다윋은 이런 '사태'를 전혀 개의치 않고 단지 하나님의 법궤를 집 가까이 성막에 모신다는 것만으로 더 없이 기쁘고 만족하여 온 백성을 축복하고 이젠 왕실을 축복하기 위해 궁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6:17~20). 이때 첫사랑 왕비 미칼이 다윋 왕을 맞으러 나오면서, 속에 품었던 칼 끝처럼 날카롭고 뾰죽한 한 마디를 대뜸 날립니다:
"오늘 이스라엘 임금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웠는지요! 당신의 신하들의 여종들이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시다니..마치 함부로 몸을 드러내는 건달처럼!"
비아냥입니다. 문제는 나랏님의 아내가 나랏님을 비웃는 태도였습니다. 그것도 왕이 하나님을 정성껏 섬긴 그날! 선의와 권위에 대한 도전이지요.
왕이 대답합니다:
"주님(야웨) 앞에서 한 것이라오! 그 분은 그대의 아버지와 그 온 집안 보다는 나를 빼 내셔서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으셨소. 그래서 나는 주님 앞에서 기뻐 춤 출 거요! 앞으로도 이보다 더 낮아져 나 보기에도 천해 보일 테지만 그대가 말한 여종들한테는 내가 존경 받게 될 거요."(21,22절)
미칼은 지금까지도 자식이 없었지만 이 일 후로는 더구나 자식이 없었습니다(23절).
과거 야콥의 여러 아내들도 자식 이슈로 미묘한 갈등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주로 그들의 말(대화/기도)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창세기 29:31~30:24 참조). 우리의 언행심사, 특히 말이 중요합니다(야코보 3장 참조).
본 성경 기자의 표현을 보건대..미칼은 그 기쁜 날, 말 한 마디를 조심했더라도 자식을 낳을 수 있었을 터입니다.
슬기로운 여인 아비가일
다윋의 둘째 아내는 그가 광야 도피 시절에 얻은 아비가일입니다.
매우 슬기롭고도 용모가 빼어난 여인이지요. 슈무엘A 25:2~42을 보면, 이 여인의 야웨 신앙과 슬기는 참으로 탄복할 만합니다. 첫 남편 나발의 목숨을 일차 살리고 다윋의 권위를 높여 준 여성이지요. 성경은 그에 관해 퍽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길이 역사에 남는 로맨스 스토리이기도 하지요.
당시는 다윋이 샤울에게 쫓기며 거칠고 드넓은 파란광야 남쪽 마온에서 약 600명의 부하들과 함께 지낼 때였습니다. 부근에서 '나발'의 목자들이 수많은 양떼를 먹이고 있었는데 다윋과 부하들이 곁에서 극진히 친절하게 지켜주고 돌봐 주어 그 많은 양을 단 한 마리도 잃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목자들이 나발의 본거지인 카르멜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대신 지켜 주었습니다(25:7,8, 15,16).
카르멜 족 출신인 나발은 목축업 거부였는데 미련하고 고집불통인 데다 욕심 사나워 하는 만사가 추악했습니다. 그는 양이 3000 마리, 염소 1000 마리니까 당대의 대 목장주요 오늘날로 말하면 백만장자였습니다(25:2,3).
다윋과 부하들은 떠돌이 생활이 길어지면서 끼니를 이을 양식이 모자라 이 거부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마침 일제히 양털을 깎는 기분 좋은 대삿날, 자신의 번듯한 젊은 부하 10명을 대표로 카르멜에 파견합니다. 가서 그동안 나발의 목자들과 양떼를 지키고 잘 돌봐 준 것을 설명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시킨 것입니다(4~9절). 깍듯이 예의를 지킨 것이지요.
아마 웬만한 부자 같으면 고마운 마음에서라도 도와줬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결과는 다윋의 기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나발의 반응은 지극히 퉁명스럽고 타산적이었습니다. 고마워하긴 커녕.."이거 어디서 굴러 먹다 온 개뼉다귀 같은 놈들한데 내 아까운 식료품을 제공한단 말이냐?"는 식입니다.
마치 홍길동이나 임꺽정 무리를 대하듯 한 것입니다. 냉대 정도가 아니라 철저한 모욕이죠(10~12절). 가히 엽기적입니다! 워낙 물욕에 빠져 있다 보니 자신 밖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이름조차 '나발'(미련퉁이)이겠습니까(25절)!
이런 나발의 목불인견적 태도는 전형적인 졸부들을 대표한다고 하겠습니다. 나발의 처세를 한 번 보십시오. 다윋의 부하들을 아주 무안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그렇게 차디차게 냉대/모욕해 돌려 보내 놓고는, 자신은 양털깎기를 한 뒤 왕처럼 큰 잔치상을 펼치고 밤새 마음껏 즐기며 거나하게 만취하여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속의 미련한 부자와 똑 같지요(루카 16:19~31).
보고를 들은 다윋은 분노가 치솟습니다. 이런 배은망덕한 자는 마땅히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모욕까지 당했기 때문입니다. "여태 이 자의 재산을 정성껏 지켜 준 우리의 수고가 말짱 헛일이었어! 이다지도 선을 악으로 갚다니. 내일 아침까지 그 집에 사내 하나도 안 남기고 모조리 쳐 죽여 버릴 테다. 이건 하나님도 용서 못하실 일이야!"(13, 21,22절 참조).
그래서 200명은 물건과 짐을 지키게 하고 칼을 찬 나머지 400명을 데리고 카르멜로 쳐들어 갑니다. 분통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신비한 방법으로 다윋의 직접 응징을 막습니다.
사실 다윋과 부하들의 친절한 배려와 보호는 그 누구보다 나발의 목자들이 더 잘 알고 있었지요. "그분들은 밤낮 우리의 울타리가 돼 주었습니다"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16절). 그런데 주인 나발이 열 명이나 되는 다윋 대표단을 완전 냉대한 모습을 어이없이 지켜 본 나발의 목동 하나가 몰래 마나님 아비가일에게 이 사실을 귀띔합니다. 나발에겐 도저히 알릴 수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이지요.
아비가일은 안 그래도 평소 남편의 행벽(行癖)은 잘 알지만,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여느 사람도 아닌 장군 다윋의 그런 친절을 쓰레기 내동댕이 치듯 대했다는 보고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남편 몰래 서둘러 최상의 식품들을 다량 마련해서 나귀 여러 마리에다 바리바리 싣고 목동을 앞세워 자신도 나귀를 타고 다윋 일행이 올 만한 쪽으로 떠납니다(18,19절).
때마침 서슬이 시퍼렇게 다가오는 수 백 명의 다윋 군사들과 마주친 순간 아비가일은 가슴이 멎는 듯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합니다.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에게 다가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빌기 시작합니다.
고래로, 이때 아비가일이 한 말처럼 현숙한 중재 언변도 드뭅니다. 분명히 이 여인에겐 믿음과 슬기가 넘쳤으며 성령님의 영감이 아니고는 이런 말을 하기가 어렵지요(23~31절). 아비가일의 호소 내용은 제법 길지만, 요점은 다윋의 직접적인 보복을 막고 일행의 분노를 다독거려 진정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영예를 드러냅니다. 상대방의 자존심도 지켜 주고 남편 나발에게 당면해 온 위험도 막는 내용입니다.
다윋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이 여인을 보내신 것을 직감합니다. 이 아름다운 여인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슬기롭고 감동어린 호소를 하고 또 나귀에 가득 실은 식품들을 보자 살기가 등등했던 다윋과 부하들의 마음은 눈 녹듯 가라 앉습니다. "어떻게 남편과는 정반대일까!" 하고 놀랐을 겁니다.
그래서 아비가일이 제공해 준 식품만 건네 받고 오던 길로 되돌아갑니다(32~35절). 다윋처럼 분노에 가득 찼던 부하들도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식품을 얻게 된 것을 그지없이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아비가일이 제공한 음식을 나누며 즐겁게 웃었을 것입니다.
후에 알게 되지만..하나님은 다윋을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지목하셨어도, 피를 많이 흘린 그의 손을 꺼리셔서 성전건축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연대기A/대상 22:8). 만약 다윋이 이때 나발 집안을 전멸시켰다면 다윋의 일생에 작지 않은 흠집이 될 수도 있었지요(슘A 25:31). 정당한 보복이라고 해도 무차별 집단살인이 결코 훌륭한 업적은 못 될 터입니다.
하물며 다윋의 선행을 기억하는 착한 목자들과 슬기로운 아비가일의 억울한 죽음이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이 다윋의 응징을 막으신 것입니다(25:33~34). 대신 하나님이 손수 나발을 손 보십니다. 이튿날 다윋 군사가 쳐 들어 오던 길이었다는 말을 아내에게 전해 듣자 나발은 충격과 두려움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열흘 후 죽었습니다(36~38절).
소식을 들은 다윋은 아비가일을 아내감으로 초청했고 아비가일은 흔쾌히 응합니다(39~42절).
몇 년 후 헤브론 왕궁에서 왕후가 된 아비가일은 둘째 왕자 킬레압(또는 킬랍)을 낳습니다(슘B 3:3). 킬레압이란 이름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또는 "아버지 덕에 온전한 아들"이란 뜻에 가깝습니다. 이런 이름을 지은 어떤 의도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아들은 궁중에서 아무 탈 없이 무던하게 자랍니다.
왕후 아히노암과 맏왕자 암논
다윋은 미칼과 아비가일 말고도 도피 시절인 초기에 이즈르엘 출신인 또 다른 아내 아히노암을 얻어 첫 왕자 암논을 낳습니다(25:43, 슘B 3:2). 암논은 이복누이 타마르 공주를 짝사랑하여 속임수로 겁탈한 뒤 훗날 타마르의 친오빠인 압샬롬의 보복으로 살해 당하지요(슘B 13:전장 참조).
왕자로서 더구나 맏아들로서 첫 추문이고 평화기에 왕가의 첫 죽음이었습니다. 압샬롬 반역의 전조였던 이 사건은 다윋이 밭쉐바와 일대 스캔들을 일으킨 얼마 후 발생했습니다. 다윋 집안의 일대 오점의 하나였지요.
마아카 왕비와 반역아 압샬롬
맏형 암논을 죽인 다윋의 셋째 아들 압샬롬(아브샬롬/아비샬롬, '평화의 아버지'란 뜻)은 다윋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장발/미남 왕자였습니다. 게슈르 왕 탈마이의 공주 출신인 마아카 왕비에게서 낳은 아들이지요(3:3b, 14:25~27). 외모로 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혀 흠이 없어 요즘 시쳇말로 '완소남'이었습니다.
마아카란 이름은 '압박'이란 뜻입니다. 그 이름답게 다윋은 압샬롬에게 압박을 받고 한때 예루살렘 성을 함락 당해 피신했다가 다시 탈환합니다(슘B 15~19장 참조).
다윋이 가장 사랑하던 아들에게서 반역을 당한 뒤 더구나 요압 장군의 손에 그 아들의 목숨까지 뺏겨야 했던 것은 큰 비극이지만 모든 것은 다윋의 범죄 탓이었습니다.
밭쉐바 왕후와 슐로모(솔로몬)
하나님은 주님/야웨의 법궤가 다윋성 찌온에 놓인 얼마 후 평화 기간에 다윋의 후기 삶과 왕국의 미래에 관하여 대언자 나탄을 통해 중요한 예언을 하십니다(슘B 7:8~16). 이 예언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예언에 잇댄, 이스라엘 역사상 굵은 선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윋에게 하신 예언은 언뜻 보면 왕자(슐로모)에게만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윋 왕손으로 오실 메시아에 관한 것이지요. 그 분을 통해 인류 구속의 대업을 이루시게 되니까요.
다윋의 일생 일대의 오점이었던 밭쉐바와의 간음 사건으로 태어난 아들이 죽고 난 뒤, 다시 태어난 슐로모는 하나님께 택함 받은 왕세자가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윋의 수많은 왕자들 중 열째 아들인 이 슐로모가 하나님께 선정돼 메시아의 선대가 됩니다. 밭쉐바와 슐로모에 대해선 추후에 다시 다루렵니다. 밭쉐바도 미칼, 아비가일처럼 남의 아내였다가 다윋의 왕비가 된 여인이지요.
그밖에도 다윋은 40년 반 통치 기간 동안 많은 비빈을 두었습니다.
나이 70대에 들어선 늘그막엔 왕실 측근의 배려로 전국에서 가장 예쁜 슈넴 처녀 아비샥을 얻어 침실에서 수종 받지만 동침하진 않습니다(왕들A/왕상 1:1~4). 그러나 자신의 계모라고도 할 수 있는 아비샥을 탐낸 학깉 왕후의 아들인 넷째왕자 아도니야가 슐로모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반역을 일으켜 또 다시 평지 풍파가 일지만 슐로모에 의해 척결됩니다(1:5~53, 2:13~25).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윋의 가정에서도 싸탄은 여러 번 사악한 공작을 꾸몄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승리하십니다.
[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
'성경묵상연구 > 메시아계보 대 장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윋과 밭쉐바 (메시아계보대장정19 ) (0) | 2008.02.16 |
---|---|
오 예루샬렘! (메시아계보대장정18) (1) | 2008.02.12 |
왕도(王都) 헤브론 (메시아계보대장정16) (6) | 2008.02.02 |
다윋 즉위의 들러리 요나탄 (메시아계보대장정15) (1) | 2008.01.31 |
하나님 마음에 맞는 사람 (메시아계보대장정14) (0) | 2008.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