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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다윋 즉위의 들러리 요나탄 (메시아계보대장정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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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윋 즉위의 들러리 역 요나탄

바탕 본문: 슈무엘A 18:1~4

성경에서 흔히 잊혀지거나 뒤안길에서 홀대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왕세자 요나탄이죠. 어떻게 다윋이 요나탄 대신 차기 왕이 됐을까요?
 
아버지 샤울 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지없이 훌륭한 요나탄 왕자가 차기 왕이 되지 못한 비극은 여러 모로 볼 때 참으로 아쉽고 애석한 일입니다! 필자의 부족한 생각으로는..요나탄이 아버지의 왕좌를 조기에 물려 받아 이스라엘 제2대 왕이 됐어도 다윋 못지 않게 훌륭한 나라를 충분히 이룰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요나탄의 이른 죽음은 결국 샤울의 사악함과 죄 탓입니다. 하나님은 요나탄의 선하고 올곧은 마음씨를 모르셨을 리 없지요. 그는 친구 다윋을 참된 형제우애와 무조건적 사랑, 곧 필레오/아가페로써 끝까지 사랑할 뿐더러 다윋 못지 않게 야웨 신앙이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14:전장 참조). 
그는 아버지의 창끝을 피해 가며 다윋을 변호하고 중재하고 위로할 뿐더러 여러 번 목숨을 구해 줍니다. 훗날 다윋이 굳건한 나라를 이루는 데 필요한 많은 정신적 후원을 해 줬던 인물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19:1~7, 20:전장, 23:15~18).

다윋을 반 평생 대적하며 죽이려 했던 샤울 왕에게서 요나탄 같은 걸출한 아들이 태어난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신비/경이로운 뜻입니다. 어떤 점에서 요나탄은 다윋이 역사의 무대에서 주인공 노릇을 하고 특히 메시아의 선대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기막힌 들러리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지요.

요나탄을 통한 하나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다윋은 샤울의 왕좌를 차지하긴커녕 목숨조차 무사하지 못했을 터. 또 둘 사이에 굳은 의리의 언약이 없었다면 요즘 으레 혈맹-배약-파기-관계단절 등의 수순으로 쉽사리 귀결되는 상투적 행습처럼 서로 갈렸을 겁니다. 원수는 돌에, 신의는 물에 새기는 현금의 세태에 피보다 더 진한 두 젊은이의 혈약은 충격적인 감동과 경종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요나탄은 보기에 따라 어쩌면 자신의 최대 경쟁자일 수 있고, 부친의 최악의 원수였던 다윋을 자기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주님/야웨의 이름으로! 주님/야웨께서 나와 너 사이에, 내 자손과 네 자손들 사이에 길이길이 계시길!"(20:42)

그 뒤에도 둘 사이엔 여러 가지 언약이 되풀이 됩니다. 언약을 곱씹고 되새김질 하듯 서로 거듭 거듭 다짐합니다. 

둘이 갓 처음 만났던 무렵. 굳디 굳은 우정의 언약을 맺고 나자, 요나탄은 왕자의 겉옷을 벗어 다윋에게 주고 자신의 군복과 칼, 활과 혁대도 그렇게 했습니다(18:4).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우정을 위해서는 왕세자 자리도 아깝지 않다는 상징적인 뜻일 수 있지요. 여차 하면 친구에게 기꺼이 왕좌를 물려줄 수 있다는 표시인지도 모릅니다. 둘 사이는 그 정도였습니다.

요나탄은 언제나 "다윋 먼저, 난 그 다음"-주의였습니다(23:17b). 둘은 많은 얘기도 나눴지만 많은 눈물을 함께 흘렸습니다. 다윋은 요나탄의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더 진한 사랑이었다고 훗날 요나탄의 죽음을 다윋이 애통하며 불렀던 저 유명한 애가-'활노래'에서 고백합니다(슘B 1:18~27. 특히 26절 참조).

왜 '활노래'일까요? 활은 다윋과 요나탄에게 사랑의 징표 내지 엇갈리는 운명의 분수령 같은 구실을 합니다. 둘은, 샤울 왕이 다윋을 체포/살해하기로 굳게 결심한 모습을 요나탄이 확인하면 다윋에게 샤울 왕궁을 아주 떠나도록 활을 쏘아 신호를 보내겠다는 밀약을 합니다(슘A 20:20). 하지만 아직 괜찮다면-궁실에서의 다윋의 안전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 활을 쏘지 않으려고 했지요.

그러나 아버지의 살기가 등등하다 못해 심지어 다윋을 옹호한다고 왕세자인 자신에게까지 단창을 내던져 꽂아 죽이려는 싸탄의 모습을 간파한 요나탄은 절망과 슬픔 가운데 뛰쳐 나와 들판에 숨어 있던 다윋을 향해 신호탄 화살을 날립니다(20:35~38).

"자네가 왕실에 머무는 한 이젠 더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니 빨리 피하게" 라는 뜻입니다.
아이를 시켜 화살을 주어 궁으로 돌아 가게 한 뒤 요나탄은 몰래 에젤 바위 뒤에 숨었던 다윋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눕니다. 땅에 엎드려 친구에게 세 번 절을 한 다윋은 그와 부둥켜 안고 입을 맞춘 뒤 서로 흐느낍니다. 샤울 왕궁을 영 떠나게 된 서러움이 아니라 바로 둘도 없는 벗 요나탄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이 복받쳐 이윽고는 엉엉 구슬피 웁니다.

요나탄은 다윋을 위로하고 마지막으로 '샬롬'을 빌며 둘 사이의 언약을 재차 확인합니다.

    "주님/야웨의 이름으로! 주님/야웨께서 나와 너 사이에, 내 자손과 네 자손들 사이에 길이길이 계시길!"

이후에 샤울왕의 본격적인 다윋 추격수색전이 펼쳐지고 다윋의 피신/도주가 계속되면서 요나탄이 펠레쉩에서 아버지와 함께 전사하기까지 요나탄-다윋이 단 한 번 밖에는 서로 다시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합니다(23:16~18).

알고 보면 샤울 왕은 참으로 그지없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용두사미란 말처럼 그의 시작은 좋았지만 후반은 오욕으로 점철됐지요. 한 나라의 통치자라는 사람이 생애 말기에 한 '경쟁자' 때려 잡기에 세월을 허송합니다. 심지어 다윋과 부하들을 한 때 도와줬다고 해서 성막 사제(제사장)들을 85명 죽이고 사제 친척/후손/성민/가축들까지 몽땅 싹쓸이하다시피 철저히 보복합니다(21:1~9, 비교: 22:9~23).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선 정말 그릇이 작은 위인이었습니다. 이 어처구니 없고 한심한 왕의 소치에 대해 다윋은 뭐라고 견책합니까?

  "..이스라엘의 임금님이 도대체 누굴 따라 나서서 누구를 뒤쫓으십니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으시는 거 아닌가요?..메추라기 한 마리를 잡으려고 온 산을 뒤지는 사냥꾼처럼 벼룩 한 마리를 수색하시는 모습과 다름 없습니다."(24:14, 26:20)

샤울은 아들 같은 젊은 후배 다윋에게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고 신앙심과 애국심, 슬기와 용기가 있음을 발견하자 자신의 왕 자리를 조기에 뺏기는 것이 그렇게도 두려워 다윋을 철저히 박해합니다.

만약 샤울 왕이 지혜롭게 행하고 다윋을 차기 주권자로 인정했다면, 하나님은 잠시라도 요나탄을 이스라엘 차기 왕으로 고려하셨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요나탄이 그처럼 일찍 죽지 않았어도 왕좌에 오를 기회는 충분히 있었지요.

그런데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요?

샤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은 탓입니다! 불순종-이것이 모든 슬픔과 비극의 원인입니다. 그리고 샤울은 끝끝내 다윋이 반역할까 봐 초조해 하며 제 힘으로 조기 '왕권 찬탈'을 막아 보려고 발버둥질 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고도 계속 하나님을 철저히 배역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지요.

심지어 그는 하나님이 그렇게 혐오하시는 점술가 무당을 찾아 영매 노릇을 시키기도 합니다(28:6~25 참조). 자신이 한 때 모두 내쫓았던 대상이 무당 그룹이었던 사실로 미뤄 보건대(28:3b) 참으로 이율배반적이 아닐 수 없지요.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짓거리를 골고루 골라서 한 사람입니다.

결국 왕권 찬탈을 막으려던 노릇이 아들에게도 왕좌를 물려 주지 못할 뿐더러 자신의 왕권도 빨리 망하는 비극을 자초한 그는 그답게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31:1~6). 요나탄을 비롯한 왕자 셋도 모두 전사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박해하면서 마귀에게 철저히 이용 당하고 제 목숨을 끊은 샤울의 모습은 이스카리옷 유다를 연상시킵니다.

다윋은 평화를 되찾은 훗날, 바로 요나탄 때문에, 요나탄의 아들 메피보쉩을 비롯한, 샤울 왕가 사람들에게 온갖 친절을 베풉니다(슘B 2:5~7, 3:31~39, 4:9~12, 9:1~13). 메피보쉩은 다윋 왕궁의 식사 자리에 늘 함께 했습니다. 요나탄의 사후에도 끝까지 그의 우정에 보답하려는 뜻으로 다윋이 베푼 친절이었지요.

그보다 먼 후대. 벤야민의 후손, 샤울 왕가 후예들 가운데서 똑 같이 '샤울'이란 이름을 딴 한 걸출한 인물이 나타납니다.
학식이 깊고 유대교 신앙이 철저한 그도 처음에는 싸탄에게 이용 당해 교회와 교인들을 철저히 박해하고 마치 다윋을 핍박한 샤울처럼 믿음의 사람인 스테판을 간접 살해합니다.
그러나 후에는 싸탄의 노예로부터 크리스토의 '노예'로 바뀌어 예수 크리스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됩니다. 그가 바로 샤울과 요나탄의 먼 왕손이랄 수 있는 사도 파울입니다(롬 11:1, 필리 3:5)!


[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