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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영적싸움 도우미

불필요한 싸움? (영적싸움도우미시리즈2)




시리즈 제2회가 너무 지체돼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이번 역시 본문으로 올려 공개합니다.
그러나 3회부터는 당초 예정대로 회원제로 실시됩니다. (비밀댓글/이메일 신청자에 한함.)



지난 회에서도 비쳤지만..요즘 영적 전쟁의 개념이나 특히 그 당위성에 관한 미묘한 혼동이 있습니다.
영적 싸움이 거의 또는 아예 필요 없는 듯이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지나치게 강조하는 나머지 과시적인 행동으로 몰고 가거나 강요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우리가 명확하게 잘 가려야 할 과제입니다. 마귀는 믿음의 군사로서의 우리를 되도록 조기 무장해제 시키려고 온갖 교묘하고 간특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영적 전쟁 불요론(不要論) 같은 것이 어디서 왜 나왔는지를 잘 간파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과연 영적 싸움이 일부 인사들 말처럼 불필요한지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자문해 봅니다.


신종 플루와 영적 싸움

최근 우리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 한 가지는 신종 플루('돼지 독감' swine flu)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번져가는 역병이지요. 잊혀질 만 하면 하나씩 핵탄처럼 터지곤 하는 역병 현상은 요한계시록을 비롯한 성경 여기저기에 예언된 바 있습니다.
만약 영적 싸움이 필요 없다면..가령 신종 플루의 경우 어찌 되는 걸까요? 플루는 그냥 자연현상, 육신의 질병이니까 영적으로 아무 대처도 하지 않고, 순전히 과학적/의학적으로만 해결하면 될까요? 아니면 이와 관련해 우리가 믿음의 싸움도 싸워야 할까요?
 
현대를 사는 우리는 과학과 의학에 크게 도움 받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인 지혜와 지성, 사고와 탐구열, 더 나아가 과학 정신과 실험 정신 등을 주신 하나님의 은덕의 결과이지요.

구약 성경 욥 서[각주:1] 같은 곳을 보면, 고대인들이 영적으로 통찰하고 내다 본 당대와 미래의 과학적 깊이에 놀라 마지 않게 되며[각주:2]..고대에도 '의원'(醫員=의사)들과 효과적인 민간처방과 요법 등이 있었음을 성경을 통해서 압니다[각주:3]. 그 유명한 "길레아드의 유향"처럼 통증을 유(柔)하게 하는 향재/기름/약초를 통해 상처를 빨리 고치는 기본적인 요법이 있었지요[각주:4]. 또 레빝서(레위기)에는 하나님이 당대 사제들에게 일종의 영적/의료적 검진 사역을 맡기셨던 사실도 발견합니다[각주:5]
성령충만하던 초기교회 당대에도 파울 같은 사람은 동역자인 루카가 의사임을 강조했고[각주:6], 티모테에겐 만성 위장병에 포도주를 쓰라며 민간요법을 권하기도 했습니다[각주:7].
즉 하나님은 과학과 의학의 존재 가치와 필요성을 부정하시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질병을 고치시는 신유의 하나님이시며[각주:8] 특히 역병/염병 등의 위기에 있어 믿음으로 대처하도록 가르치십니다. 시편 제 91 편은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그런데 오늘날은..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하여 우리 삶 구석구석 깊이 자리를 잡고, 거의 전능자의 위치에까지 오르다 보니, 신자인 우리조차도 예컨대 신종 플루에 대처할 경우 우선 과학적인 예방/검진 방법이나 '타미플루' 등"입증"됐다는 과학적/의학적 방도에만 신경을 쓰기 쉽지요.

물론 우리는 가족과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러한 방법을 알아 두고 되도록 최선을 다해 역병 예방에 힘써야 하고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과학과 의학에만 모든 것을 맡기고, 영적인 대처나 싸움은커녕 아예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내도 괜찮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아마도 독자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역병/질병의 영적 배후


지구와 우주의 모든 현상 뒤엔 영적인 배경과 원인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영계는 현상계/현실계보다 더 구체적, 실제적인 반면, 늘 변화/변질되다가 언젠가 사라져 없어져 버릴 물질계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는 영복 또는 영벌을 받으면서 사라지지 않고 영원합니다.

다양한 질병들 특히 신종 플루 같은 역병은 단순히 자연현상만은 아닙니다. 거의 모든 병에는 영적인 배후와 원인이 있습니다. 비록 모든 병과 증세가 다 직접 악령에 의한 것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간접적으로라도 영적인 원인과 배후가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모든 질병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악 탓에 온 율법의 저주의 일부이지요. 즉 질병은 복의 반대입니다. 이 사실은 그리짐(그리심) 산상에서 선포된 "복의 선언"과는 반대되는, 에발 산 '저주 선언'에 명시돼 있지요[각주:9].      
그런데..율법의 저주는 최고통치자이신 하나님의 허용 아래, 영적 세력들이 시행할 수 있는 잠정적/한시적 권한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면, 욥의 집안의 불행이나 그의 악성 피부병 발병 때도 그랬고..다빋 왕의 불신에 의한 인구조사 범죄 당시에도 마귀나 천사 등 영적 존재들이 역병 저주를 시행합니다.[각주:10]   

최근엔 일부 역병 바이러스가 사악한 무리의 어젠다에 의하여 극비리에 인공 제조됐다는 역병 '음모설'이 나돌기도 합니다. 쉽게 믿기도 어렵지만 근거가 없지도 않습니다. 설령 이 음모설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순전히 인공과학적인 조작 현상만이 아니라 그들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악한 영적 세력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즉 역병의 배후엔 싸탄과 그 앞잡이들, 졸개들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싸탄과 일부 천사들의 타락 후, 그들과 함께 장차 무저갱과 지옥에서 영벌을 받을 존재이기에 "우린 어차피 버린 몸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나 실컷 괴롭히자!"며 역병 바이러스를 퍼붓고 안겨 주어 인간이 고통 당하다 죽어 가는 모습을 구경하며 "아하하, 이히히!" 낄낄대고 있다는 것이지요.
인간들의 목숨을 갖고 노는 사악한 장난인 셈입니다. 그들의 웃음이란 즐겁고 화창한 것이 아니라 음흉하고 저주스런 웃음이지요.

성경을 통해 얼마든지 유추될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영적 존재들이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과학적/의학적 방법만 찾고 그냥/마냥 그들에게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영적으로도 대처해야 합니다! 아니, 바이러스는 최대한 예방하고 검역하되, 영적 존재는 그렇게 밖에 대처할 길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신'이고 '전능자'인 과학과 의학의 힘만 믿고 신종 플루에 대처하다 (과학과 의료의 힘이 유한하기에) 힘이 닿지 못하고 못 미쳐, 조기검진과 치료에 실패함으로써 최근처럼 거의 원인 모르게 죽어가도 그냥 그뿐이지만..
적어도 인간이 영적인 존재임을 아는 거듭난 우리는 그들과는 다른 차원이므로 다른 차원의 존재답게 좀 더 깊고 높고 넓은 안목으로 신종 플루에 대처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영적이고 성경적인 안목이지요. 우리가 표면상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해 이 병을 예방하고 대처하되..동시에 신종 플루 뒤에 숨은 영적인 사악한 존재들을 파악하고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인 우리의 신종 플루 대처 자세와 방식은 영적이며, 따라서 고차원적이고 입체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발병과 치유

그런데 지금 우리는 영적 싸움이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묻고 있으므로 본론에서 벗어나진 않겠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이 귀띔한 대로 한시적인 세상 신, 세상 왕인 마귀는 죄인들을 괴롭히고 죽일 역병을 비롯한 모든 병을 관장할 수 있도록 최고통치자 하나님께 암묵적인 허락을 받습니다. 이것은 의인 욥의 악성 피부 질환 발병을 미뤄봐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세상 질병에 괴롭힘 당하지 않을 권리와 슬기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께서는 메시아로서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신자들, 세상 사람들과 같은 세상에서 살기에 당연히 모든 재난과 역병을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똑같이 받아야 마땅하다면, 크리스토께서는 왜 환자들을 그냥 놔 두실 것이지, 유대인들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셨나요?
유대인들만의 특혜..? 그렇다면 왜 주님은 당시 믿음으로 나아온 로마 백부장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그리스계 혼혈민종인 쉬로-페니키아 여인의 간곡한 소원도 들어주셨나요?
왜 사도/선교사들은 사마리아 더 나아가 해외로 나가서 이방인들에게 이적을 행하고 그들의 질병을 고쳐 주며 전도했나요? 그 이적들, 신유가 당대로 끝났나요? 천만예요!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모든 이적들과 신유는 성령님의 권능에 의한 것이며 오늘날도 살아계시는 성령님의 권능으로 여전히 유효하며 효력적, 위력적입니다! 오, 할렐루야!
바로 그렇기에, 마귀는 이 사실을 성도가 모르길 바라죠. 성도도 부지불식 간에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역병에 피해를 입고 빨리빨리 세상을 떠서 되도록 하늘에서 받을 상급거리가 적어지기를 바라는 게 마귀와 그 세력이니까요.


두려움의 뿌리

그런 싸탄은..세상 사람들은 물론 성도들에게도 조직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구사하여 '속전속결'을 위해 다가옵니다. 그들이 써 먹는 상투적이고 우선적인 방법 한 가지가 곧 공포화/공황화, 쉽게 말하면 겁 주기 작전입니다. 온갖 두려움을 갖다주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해까지 덤으로 안겨 주는 작전이지요.

예컨대 '신종 플루'에도 가히 '플루 포비아'라고도 할 수 있을 만한 두려움이 따르고 있지 않나요? 곁에 있는 누군가가 환자는 아닐까, 혹시 옮지 않을까? 마음 졸이고 전전긍긍하며 어떻게 하면 사람과의 접촉을 피할까, 어떻게 하면 안 걸릴까? 늘 신경 쓰고 급급하기가 쉽습니다. 더욱이 이웃에서 누가 신종 플루에 감염되고 급기야 사망할 때..그 포비아는 더 확대되고 순식간에 확산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신경성이 되고 스트레스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신종 플루라는 존재 탓에 사람들을 두려워 경계하기도 하고 웃음과 사랑, 온정이 넘쳐야 할 교회에서마저도 "혹시 저 분, 보균자는 아닐까? 헑~ 이리로 다가 오시네! 하지만 악수는 피해야지."란 식으로 서로 경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뭐, 걸릴 때 혹 걸리더라도, 또 재수가 없어 죽게 되더라도 끝까지, 대범하게 사회생활은 즐기자며 짐짓 의연한 태도를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엔 이런 자세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 앞에서 두려움에 휩싸인 자세나 운명론 같은 방만한 태세를 엿보여선 안됩니다. 마귀가 그걸 노리기 때문입니다. "히히, 어때? 이젠 겁나지? 완전 겁 먹었지? 그래, 그럼 맛 좀 봐라~!"가 마귀의 상투적인 수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적 상황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하며..그것이 곧 영적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완전 면역이 될 순 없더라도 일찌감치 맘 속에서 물리쳐야 합니다. 두려움을 조기청소 해 버려야 합니다. 두려움에 대한 구체적인 대처도 시리즈 나중 회로 미루고..여기선 영적 싸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맺기로 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이런 '탴팈'(수법)과 어탴에 하릴 없이 당해선 안됩니다. 재난을 최대한 피하는 길은 재난을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사는 바닷가 마을을 쓰나미가 졸지에 덮쳐 올지 모른다는 가상실제적 시나리오를 갖고 '리앨리티 쇼'를 해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도 성경은 도처에서 이런 마귀의 상투적인 수법과 전략을 상세히 폭로해 놓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거기 조기대응하도록 예방책, 대처방법과 응전 전략 및 작전 방법까지 다 소개/안내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그런 수법과 전략을 알면서도 우리가 당한다면, 이건 우리의 게으름, 실책과 잘못이 크다고 할 것입니다. 
 

전술전은 필요..전략전은 불필요?

어떤 이들은 영적 싸움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 개념 가운데 일부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예를 든다면, 성경에 비교적 상세히 묘사된 신자의 맞싸움 내지 백병전에 해당하는 '전술전'은 분명히 존재하고 또 필요하지만, 하늘의 영들을 직접 상대하는 고차원적인 전략전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티엘 오즈본(T.L. Osborne)은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오즈본은 마이클 S.B. 리드를 통하여.."전략적 차원의 영적 전쟁"(strategic level spiritual warfare, SLSW)이 신화적/오컬트적이라는 전제 아래 전면 부정합니다.
물론 오즈본/리드의 말 대로 영적 전쟁 개념을 비밀집단과의 연계 속에서 고대 신화와 함께 신비술/영지주의/신지학과 연결시켜 악용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없지 않습니다. 특히 신사도개혁(NAR) 운동권 인사들에게서 그런 영향을 엿봅니다.

그러나 과연 영적 전략전이 전혀 불필요한 것일까요?
저는 논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곰곰히 살피고 따져 볼 때, 전면적인 전략전 무용론에 대해 자연스럽게 의문을 갖게 됩니다.

우선..상식적으로 봐도 전쟁엔 어디서나 전술전 뿐 아니라 전략전도 있음을 우리가 압니다. 전술전과 전략전의 구분은 전문가에 따라 서로 다른, 상당히 모호한 데가 있지만 성경 중심으로 말씀 드립니다.
 
고대는 현대 같은 장거리 전략무기나 전략체제 등이 없었지만, 그 대신 교란전이나 공성(攻城) 전략이 비교적 뛰어났습니다. 고대는 현대와 달리, 군대와 군대끼리의 백병전을 '전술전'으로 보고, 사전 봉쇄나 포위, 회유나 견제를 통한 분위기 조성과 공성술 등은 '전략전'으로 봐도 무난합니다. 또한 땅의 군대에 의한 지상전이 아닌, 천군천사와 하늘의 악령등 영적 존재 사이의 공중전은 인간인 우리로서는 전략전쟁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유다 왕국의 우찌야 왕은 당대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으로서는 신형 무기에 속하는 투석기와 화살발사기를 발명, 활용했습니다[각주:11]. 투석기는 아씨리아나 바빌로니아 등 고대의 대형 제국들이 이미 사용해 오던 것이었습니다. 투석기나 화살발사기로 공격 대상인 도시나 성 안에 돌을 쏘아 건축구조물 등을 파괴함으로써 성중 민심을 겁 주고 교란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었습니다. 적국의 성을 견제하려고 기존 성벽 곁에 토성 쌓기도 일종의 전략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빋 왕이 전술과 지략에 모두 뛰어났던 것은 자신의 경험도 경험이지만 승전의 신이신 전능한 하나님이 도우심과 영감 때문이었지요. 하나님은 신자를 전술전과 전략전 모두에 뛰어나게 하십니다!  
아하브 왕과 예호샤팥의 남북 연합군이 대 아람전에서 엘리야의 예언에 따라 갑자기 사막 한가운데서 흐른 강물에 비친 아침 햇빛을 아람군이 적군들끼리의 유혈전으로 착각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전략전이었습니다.  

이처럼 신정(神政/theocracy) 시대였던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자유자재로 활용하시던 전략전이 신약시대엔 과연 모두 무용화 됐느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알고 보면, 구약 시대의 전쟁은 그림자에 불과하며..신약 시대엔 실상 전술전이든 전략전이든 모두가 영적 전쟁으로 승화됐습니다!

그래서 이 개념을 신약적으로 이해해 봅시다.
영적 전쟁에 관한 주요 성구의 일부인 에페소서(엡) 6:12-17로 가 본다면..

     우리의 싸움은 몸과 피에 맞서지 않고, 통치권(_圈)에 맞서고 권세들에 맞서고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에게 맞서고 하늘의 악령들에게 맞서는 싸움이기 때문이지요. (엪 6:12 사역)


위 성구는 영적 전쟁의 본질과 핵심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이 단지 전술전으로만 가능할까요?
우리가 우리 가까이 침투/침입/공격해 온 악령들을 하나님의 완전무장(온몸갑옷)의 주요 무기로써 백병전으로 맞설 수 있다고 해도, 하늘의 악령들은 어떻게 상대할 건가요?
공중으로 우리나라를 향해 지금 날아오고 있는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을 맨 몸으로나 맨 주먹이나 호신술, 또는 칼이나 총, 활/화살로 막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죠.

싸탄의 군대사회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지구촌 인구의 궁극적인 구원 없는 말살 대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지상의 어떤 군대보다 더 고도로 정교하게 조직돼 있고..그 맨 윗끝은 싸탄의 왕좌 격인 둘째 하늘의 본부에 닿아 있습니다.
에페소의 이 부분이 시사하는 바가 그것입니다. 그것은 몸과 피의 인간사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에페소 기자인 사도 파울은 분명히 "우리의 싸움"이라고 하여, 우리도 하늘 악령들을 상대한다고 시사해 놓았습니다. 천사와 타락 천사들끼리의 싸움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미 전술전의 차원을 넘어선 것입니다. 전략전이지요! 오즈본이나 리드의 주장처럼 그것-SLSW-이 불필요한 전쟁이라면, 왜 사도 파울은 우리의 싸움에 포함시켰겠습니까?

그리고 그 전쟁이 불필요한 것이라면 왜 전략적 무기를 제시했을까요(엪 6:18. 다수 주석가나 설교가들은 이 부분을 하나님의 완전무장의 일부로서의 무기에 포함시키지 않지만 실은 앞의 6개가 모두 전술무기라면, 이 일곱 째 부분은 전략무기에 해당함. 따라서 하나님의 완전무장은 일부 주석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여섯(6) 가지가 아닌 일곱(7) 가지다!)?

과연 SLSW는 불필요한, 어불성설의 전쟁일까요?

필자는 외래어는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1. 욥기 [본문으로]
  2. 예: 욥 9:6-9, 28:1-11 [본문으로]
  3. 예: 연대기B=역대하 16:12, 욥 13:4, 마태복음서 9:12, 콜로새 4:14. [본문으로]
  4. 예레미야 8:22 [본문으로]
  5. 레 13,14장 참조 [본문으로]
  6. 콜로새(골) 4:14 [본문으로]
  7. 티모테A(딤전) 5:23 [본문으로]
  8. 미쯔라임출국(출) 15:26 [본문으로]
  9. 구약 신명기 27:11-28장 전체 참조 [본문으로]
  10. 구약 욥서=욥기 1,2장 참조. 연대기B=역대사 21:1, 15,16 참조 [본문으로]
  11. 연대기B(역대하) 26:1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