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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교회력과 교회명절

산타와 성탄절 - 몇 가지 입장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산타에 관한 마크 드리스콜 목사의 글이 실려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http://onfaith.washingtonpost.com/onfaith/panelists/mark_driscoll/2010/12/what_we_tell_our_kids_about_santa.html?hpid=talkbox1

드리스콜은 소위 '떠오름영성'(Emerging Spirituality)의 지도자이고, 관상가입니다. "가장 두드러진 젊은 크리스천 보이스의 하나"로 알려진 그는 "누군가(Somebody)에 관하여 모든 사람(everybody)에게 말하려고 힘쓰는, 아무 것도 아닌 사람(nobody)"으로 자처합니다. 떠오름영성의 '지도자'로 자임하는 그의 이런 말은 말장난 같습니다. 


드리스콜은 산타에 대한 크리스천의 태도를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거부/수용/구제.
여기서 그는 산타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태도를 따로 구분하여 다루진 않습니다. 미국인들을 대부분 크리스천으로 여기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이 세 가지 입장을 묘사한 위 산타 그림을 보면, 다소 거부감이 납니다.
'Reject'에 해당하는 산타는 머리 위에 빨강 뿔이 나 있으며, 눈은 증오의 불똥이나 쌍도끼 같고, 손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습니다. 산타를 거부/반대하면 산타가 이런 반응을 나타낸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산타를 반대하는 사람은 마귀와 같다는 암시일까요? 드리스콜은 (신자의 대표로 자임하는? 듯한) 자기 가족이 산타를 demonize 하지 "않는다"는데, 이 삽화가는 거부 당한 그림 속 산타나 산타를 거부하는 신자를 demonize 하고 있으니 자체모순입니다.

세 가지 그림 중에서 하나를 개인에게 억지매김하고 선택을 압박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드리스콜이 꼭 'R'자를 갖고 선택 장난을 치려 했다면, Renounce를 추가했더라면 더 나을 뻔 했습니다. Renounce는 언뜻 Reject와 비슷한 거 같아도 상당히 다른 개념이거든요.

renounce: (자진) 포기하다, 버리다, 단념하다


드리스콜과 아내(그레이스)는 자신의 다섯 자녀들을 위해 위 셋째 입장인 산타 구제(redeem)를 해 왔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그(산타)가 오래 전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말해 준답니다. 
그런데 원조 격인 니콜라스와 그가 변질된 현재의 산타는 거의 다른 존재와도 같으며, 실존했던 인물과 실존하는 인물은 엄연히 다른 얘기입니다. 또 기독교는 누군가 실존했다고 해서 그를 두고두고 기념하고 기리면서 받들지 않습니다. 구태여 기념한다면, 그가 가르친 진리일 터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기념을 해야 합니다. 주님은 성례를 통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지, "나의 탄생을 매년 기념하라", "나의 부활을 해마다 기념하라" 하시진 않았지요.

드리스콜은 아이들에게 산타의 설화에 실제와 거짓이 섞여 있다고 가르쳐 준다면서도, 또 거짓을 경계하면서도, 아니면서 ~인 체 하는 가장(假裝)이 "재미 있다"고, 원한다면, 텔레비전의 크리스마스 쇼 시청, '산타' 무릎 위에 앉아 촬영하기 등을 자유롭게 시킨답니다. 또 산타클로스의 '진짜' 이야기를 말한 '베지테일 무비 산타 니콜라스'를 부모들에게 추천하기도 합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는 친절하게도(?) '산타 클로스의 진실'이라는 자료까지 첨부했습니다. 우리가 많이 들어왔고 흔히 아는 얘기들을 이것저것 짜깁기한 내용인데,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문서나 증거로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서기 325년 니콜라스가 니케아 회의에 참석하여 예수 크리스토의 신성 옹호에 힘썼다는 얘기도 사실 문서로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드리스콜은 특히, 니콜라스 '성인' 추대, 니콜라스의 사망일이라는 12월 6일을 기념일로 정한 얘기 등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글을 간추리면서, 그는 "세인트 니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긴 훌륭한 사람이었다며 기꺼이 크리스마스 전통에 포함시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경건의 삶이 어떤 것인지 상기시켜 주므로 아이들이 본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드리스콜이 설화와 신화로 가득찬 크리스마스 전통이나, 그 전통 속에서 거의 크리스토님을 대신하다시피 해온 이콘으로서의 산타를 전혀 경계하지 않는 입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떠오름영성 속에서 관상영성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드리스콜에게 산타는 충분히 관심의 대상입니다. 카톨맄교의 명사인 고대의 주교이고, 따라서 사제였고 천주교회가 받들어 온 '성인'(聖人)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주교가 지정한 어떤 고인이 아니라, 거듭나서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을 모두 성인이라고 불러 줍니다. 또 관상영성은 정교회의 '성화상(이콘=아이콘) 기도'에서 엿보듯 성인 숭상과 밀접한 연계가 있지요.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산타 신화가 분명 카톨맄교에서 왔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둘째로, 산타는, 성탄절이 세속 명절의 하나가 된 것과 마찬가지 맥락으로 세속 풍속과 상업적 상징물의 일부라는 현실입니다.

   셋째로, 세상이야 산타를 어떻게 보든 간에, 산타 존중이나 산타 숭배, 산타 애호 사상은 성경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성 니콜라스가 실제로 존재했더라도 카톨맄의 '성인'이요 명사이지, 우리 전체가 두고두고 받들 성인/명사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도들조차도 자신들이 명사 되길 삼가고 두려워 했습니다.
 
   다섯째로, 산타 주변엔 늘 의문의 전설과 거짓 신화가 떠돈다는 것입니다. 사슴 떼가 끄는 비행하는 썰매, 북극의 산타 마을, [ 당초 주교였다는 산타가 북극에 오래 숨겨 놓은 와이프(?) 또는 늙은 수녀(?)인 ] '산타 할머니'와 난쟁이들, 빨강 외투, 굴뚝과 벽난로 위의 양말 등이 그런 것입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와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며 나쁜 짓을 했거나 우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따위의..

그래서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어린 자녀에게 이런 거짓말을 해 주곤 하지요. 그러나 실제로 나쁜 짓을 했거나 우는 자기 아이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 야박한 부모는 없으니까, 이건 모두 거짓말이라고 봐야 합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자라면서 산타 전설과 신화의 홍역을 치를 만큼 치렀으니, 이젠 "졸업"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런 전설과 신화 상기/재생의 주역을 한다면 곤란하죠. 왜 거짓인 줄 뻔히 아는 산타 레전드를 아이들에게 다시 심어 주는 겁니까? 그러기 위해선 어른 자신들이 산타 레전드를 신앙 대상처럼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젠 더 어린이들에게 거짓 환상을 심거나 거짓 신앙 대상을 심어 주어선 안됩니다. 속고 속아 주는 상상의 숨바꼭질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흰 수염을 달고 흰 테두리를 한 빨강 외투를 입고 나타나는 통통한 사나이와 구세군의 빨강 자선 남비가 우리들의 눈에 익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생일축하라는 또 다른 환상의 주변을 오래 나돌아 왔습니다.

주변을 둘러 보세요.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서구권에선 퍽 오래 전부터 성탄절 전통에 대한 거부감, 반대를 해 왔습니다. 노골적으로 크리스마스 상징물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런 한편, 돈 벌기를 위해 이 시즌을 자기네 것으로 만들어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 크리스토님의 성육신이라는 알맹이는 슬쩍 뽑아내고, 눈 앞에 찬란하고 요란하게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껍데기만 갖고 노닥거립니다.
이것은 교회권과 상업권 사이에 의도되지 않은 일종의 야합 같은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력에 따라 대강절부터 이어지는 성탄절을 꼬박꼬박 준수하고, 사회가 이 시즌에 맞춰 휴가철을 지키고, 상업계가 크리스마스 추리와 방울, 축하 카드 등 엄청난 장식물과 다양한 선물 등 관련 상품들과 기분을 유지해 주는 한, 서로의 야합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산타는 이 시즌에 으레 예수님을 대신하는 많은 것들-번쩍이는 온갖 장식과 설경과 선물-과 별 다름 없이, 교회에서는 전설화 되고, 사회에서는 상업화 된 존재입니다. 아무리 선의의 것이라도, 진리와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성탄이 진정 성경대로의 주님의 성육신 진리보다는..연례 생일축하, 축하 장식과 분위기, 축하 음악회와 축하헌금, 축하 만찬과 카드/선물 등이 주가 된다면, 그건 참 교회의 진리일 수 없습니다. 하물며 산타이겠습니까?

산타를 '기독교 명사'로 높여 받드는 것은 빌리 그래엄을 그렇게 하는 것이랑 별 다름 없습니다. 산타도 그래엄도 세상이 사랑해 주는 존재들이니까요.
그러나 주님 말씀에 따르면, 참 크리스천들은 세상에서 사랑을 받는 대신 미움을 받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노랫가락처럼 막연히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실제로 "세상에서 미움 받도록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진리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말씀 속에 머물어야 합니다.
성경이 성경되게 하는 것은..(초기 교회 시절엔 아무 관심사도 되지 않았던) 언제인지도 모를 예수님의 생일 축하를 해마다 꼬박꼬박하는 율법적/의식적/관습적인 절기 준수 정신을 버리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육신하여 성경대로 오셨다는 진리만 붙들고 간직하고, 그 진리만 전파하는 것입니다.


산타 설화에 대하여 드리스콜과는 전혀 대조적인 태도를 하나 살펴 봅니다.
이것은 잔 매카터(한국식 발음 "존 맥아더")의 견해입니다.

http://www.gty.org/Resources/Sermons/2003_The-Incarnation-of-the-Triune-God
 

매카터는 크리스마스의 상업화를 통탄하면서 "크리스마스의 위대한 실제"를 논하려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카터는 절대 대다수의 교계 명사들처럼 크리스마스 절기 준수를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진리 확인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소위 12월 25일 성탄절이 결코 크리스토님의 참 탄생일이 아니라는 진리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날짜야 아무렴 어떠냐, 성탄절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 -그것이 교계 인사 대다수를 비롯한 그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매카터는 크리스마스가 상업화되면서 산타 클로스가 예수와 혼동되는 등, 주역을 맡아 가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베니슨'이라는 성공회 신부의 혼동을 비평합니다.

베니슨의 산타 찬미는 놀랍다 못해 가히 겁날 정도입니다. 그는 산타클로스가 교회 안에서 "최고의 영예"를 받을 만한 대상이라며 "수염 달린 태곳적/신적/성스런 존재"(참고: 이런 묘사는 프리메이슨리에서 흔함)로서 '하느님'으로 불리는 바로 그 분으로 보좌에 앉혀져야 하며 그가 곧 성삼위 하나님이다고 단언합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매카터의 글에서 베니슨의 말을 일부 재인용해 봅니다.

   "산타클로스는 성자 하나님이시다..까닭을 밝히면, 단순히 성자님을 가리키며, 집 굴뚝 속으로 몰래 내려오듯, 마을로 와서 쉽게 마음 속으로 몰래 들어오기 떄문이다."
독자는 이 말이 이해가 갑니까?
 
더 읽어 볼 가치조차 없지만, 베니슨은 계속 이어 나가길 산타클로스는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성경적인 근거라곤 추호도 없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베니슨은 흰 수염을 기르고 뚱뚱한 빨강옷을 입은 그 산타가 "바로 성삼위 하나님이시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정도면, 산타에게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죠! 산타교, 산타 컬트의 제대로 된 열렬한 추종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잔 매카터는 이어서 "사도 파울(바울)에게 계시하신 성령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진짜 크리스마스 스토리"를 함께 보기를 원한다고 주장합니다. 매카터 자신의 웃기는 아이러니를 독자는 봅니까? 
매카터는 본인이야 알든 모르든, 은연 중에 (12월 25일을) 성탄절/크리스마스라고 하는 이 카톨맄 전통을 성령께서 파울에게 보여 주신 계시로 논리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과연 성령께서 이 '크리스마스' 스토리를 파울에게 계시하셨나요?

그러면서 매카터는 성육신 진리를 논하고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성육신 진리가 어떻게 카톨맄 전통인 '크리스마스'(Christ + missa)의 참 스토리입니까? 이건 개념와 언어의 혼동입니다.
매카터가 개혁교인이라면, 개혁가들이 애당초 '성탄절'이라는 걸 지키고 믿었는지, 매카터가 청교도적이라면 청교도들이 과연 애당초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지켰는지 묻고 싶네요. 자가당착 아닌가요?

장 칼뱅, 존 녹스나 수많은 장로교인들은 크리스마스 준수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루터교인들, 유렆의 대륙 개혁가들, 여타 신교도들은 성탄절을 지켰지요. 그러나 칼뱅은 마리아의 신성과 특별한 초자연적 위치를 믿었기에 또 다른 모순을 보이고는 있습니다.
미국에 갓 도착한 청교도의 일파로서 분리파인 '필그림'들도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았지요.

매카터는 이런 자가당착 외에도 주권주의(dominionism)를 신봉한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점을 드러내 왔습니다. 그는 또 은사나 영언(방언), 예언, 신유 등 성령의 초자연적 권능의 역사가 계시로써 이미 완성되고 종결/종식됐다는 소위 중단론자(cesssationist)이기도 합니다.


독자가 하나 알아야 할 사실은 매년 성탄절을 준수하다 보면, 차이만 있을 뿐 성탄절에 얽힌 전통/전설/신화 등이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부라도 어떻게든 믿게 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거짓 설화가 바로, 눈 오는 추운 겨울인 12월 25일에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믿음이죠.  

그 믿음은 역사적/논리적으로..

   - 성탄절은 태양신의 축제일과 같고..
   - 로마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모든 로마 종주국 사람들에게 추운 한 겨울날 호적을 하라고 명령했다는 얘기가 되며..
   - 이에 따라 마리아/요셉이 추위에 온 몸을 떨며 베틀레헴으로 호적하러 올라갔고, 추위 속에 아기를 낳아 간신히 강보에 싸서 찬 구유 안에 뉘었다는 말이 되며..
   - 베틀레헴 들판의 양지기들이 추운 겨울에 양떼를 데리고 나가 들에서 밤을 새며 양을 돌봤다는 얘기가 되며..
   - 그리고..서른 살(생일)이 되던 무렵, 추운 겨울철에 예수님이 침례(세례)요한에게 나타나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다는 믿음이 돼 버립니다. 
   - 또, 찬송가에 있는 모든 성탄절 노래/캐럴들의 가사가 (오히려 분명히 반증하고 있는) 성경보다 더 진리가 돼 버립니다. 온 교우들이 그 가사대로 믿어 버리니까요.

이 비성경적 오류의 심각성을 독자는 깨닫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