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별과 검증/현대영성비평

속지 맙시다



(왜냐면) 그런 거짓 사도들, 속임수의 일꾼들, 곧 스스로 크리스토의 사도들로 변장하는 사람들 탓입니다.
그렇다고 놀랄 일도 아니지요. 싸탄 자신도 빛의 천사로 변장하니까요!
그러므로 싸탄의 일꾼들이 의의 사역자들로 변장한들 대단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끝은 그들의 행위 그대로일 터입니다. 
(코린토B/고후 11:13-15 사역)


오늘날 우리는 교계에서 놀라운 일들을 보곤 합니다. 수많은 높고 낮은 명사들이 저마다 의의 사역자들로 행세하는데, 성경적으로 볼 때는 그 행동거지들이 이상하다는 거지요. 겉모습들은 그럴싸 한데도 그 알맹이와 열매는..뭔가 "아니올시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욱 놀랄 만한 일은..이미 약 2000년전 사도 파울이 이런 사례를 지적하면서 그다지 놀라워 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니다"고 말해 놓았다는 사실이지요!

파울은 위의 구절에서 우리가 정말 눈여겨 볼 충격 낱말과 문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거짓 사도들과 속임수의 일꾼들이 '크리스토의 사도들'로 변장하고 다닌다.
싸탄도 '빛의 천사'로 변장한다.
싸탄의 일꾼들도 '의의 사역자'들로 변장하고 다닌다.


이것을 도표로 늘어 놓아 보면[각주:1]..
              

         겉(모습)                                                      속(실체)

 크리스토의 사도들  거짓 사도들
 의의 사역자들  싸탄의 일꾼, 속임수의 일꾼들
 빛의 천사  싸탄


그러니까 이들은 적어도 겉모습은 크리스토의 사도들, 빛의 천사, 의의 사역자들로 보이게끔 나타나 두루 설치고 다닌다는 뜻입니다. 뭐라고 딱 부러지게 이거다 저거다 갈라 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종잡기보다 헷갈리기가 더 쉽다는 말입니다.
 
[ 여기서 파울은 "변장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낱말로 '메타-스ㅋ헤마티조'(μετασχηματίζω)를 썼습니다. "모습을 바꾸다", "변형되다" 등의 뜻이지요. 로마서 12:2에선 "(다 함께) 변화 받다"는, 좋은 뜻으로 쓰였습니다[각주:2]. 그러나 위 구절에서 2회 쓰인 것은 성령님의 권능으로가 아니라 스스로 꾸며 바꾼, 거짓 모습을 가리키지요. ]


이래서 교인/성도들은 헷갈려 합니다. 분명히 실체가 가짜이고 싸탄의 일꾼들인데..진짜 크리스토의 사도들, 의의 사역자들로 믿어 버리기가 일쑤입니다! 속은 이리떼인데도 겉으로는 양떼처럼 보이니 정말 순수하고 깨끗하게 봐 준다는 말이지요. 안타깝지만..이천년 전이나 현재나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파울의 말에 따르면, 교인들이 그들에게 잘도 속아 주고, 홀딱홀딱 넘어 가는 현상이 놀라워 하거나 대단해 할 것도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런데 그보다 정말 놀랄 만한 일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천년 전과 똑 같은 현실이 바로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교인/성도들은 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거나 "저 분이? 에이, 그럴 리가..!"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속고 있는데도 그럴 가능성, 또는 속을 수도 있다는 개연성/잠재성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거 정말 속 터질 일, 아닌가요!

바브라 에이호는 그녀의 검증 글에서 말합니다.
"속임수의 얼개를 크리스천들이 이해한다면, 속이는 자들을 좀 더 민감하게 알아 챌 것이다"고. 정말 그렇습니다[각주:3]!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할 일이 있습니다.
거짓 사도들, 속임수의 일꾼들, 싸탄의 일꾼들은 그렇게 변장함에 있어 성도들 앞에 그럴 듯 하고 심지어 황홀해 뵈는 온갖 속임수와 거짓 이적을 동원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흐아, 굉장하다!"라고 절로 감탄하고 혀가 채이게 만듭니다.

오늘날 소위 '신사도개혁'권에 흔해 빠진 '입신' 내용을 보면 그렇게 깜박 속아 넘어가는 사례들이 흔하지요. 또 '권능자'에게 안수 받고 나면 온몸을 부르르 떨며 나자빠져 마구 진동하거나 주변을 두루 헤집고 다니는 엨스터시 현상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초자연적인 굉장한 힘이 작동했다는 인상을 받고 참된 것인 양 믿습니다. 

그런가 하면 관상영성권에서는..깊이 들어가는 침잠/침전의 세계에서 도의 경지에 도달한 듯한 신비를 맛본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곳엔 참 하나님 아닌 가짜 '빛의 천사'가 어둠 속에서 검은 미소를 띤 채 두 팔을 펴고 기다리고 있기가 일쑤입니다.

이런 재미와 묘미 탓에 그들은 그 명사들을 진짜로 믿어 주며 더욱 더 거기 빨려 들어가게 되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성경에 그 근거가 없습니다. 그들이 성구를 갖고 뭐라고 풀이한들.

아무튼 표면 상으로는 적어도 그들이 의의 일꾼들, 크리스토의 사도들로 보인다는 것쯤은 우리가 명심하고 있어야 합니다.

온 교계는 물론 세상도 우러르는 드높은 명성..
교계 명문 사학들을 줄줄이 구슬꿰미 꿴 듯한 빛나는 학력..
손끝만 까딱 해도 '안수'가 되고 능력현상이 나타나는 굉장한 이적..
술술술술 절로 넘어가는 기막힌 말발..
늘 지긋하고 푸근한 미소..
깊고 오묘한 혜안과 눈빛..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듯 빈틈 없는 멋진 차림..
또는 허술해 뵈고 소박해 뵈도 멋있는 반사 효과..
의젓하고 고상한, 인격적인 태도와 매너..
탁월한 지성과 통찰..
혀를 채이게 하는 번득이는 예지와 알찬 논리..
막강한 독서 경력과 정보수집력..
풍부한 해학/유머.. 
마술이나 방술을 베풀 듯 한 번씩 손을 펼 때 마다 베스트셀러를 수시로 양산하는 글 솜씨..

이런 것들로 완전무장하고 무대 위에 나서 자신을 크리스토의 사도들, 의의 일꾼으로 프레즌트 합니다. 자연히 대중에게 환영 받고 인기점수가 높아 가고 온갖 미디어/언론의 화려한 조명발도 받습니다. 거의 절대부동의 위치에서 흔들리지 않는 명사로 떠오릅니다.
    
자, 그런데..성경에 비춰 보면 이들의 열매는 이상합니다.

첫째로 이들은 자신들의 이름과 얼굴을 자랑합니다. 일단 널리 알려지면 힘과 수입도 늘고 좋아지니까 더욱 유명해지려고들 애씁니다. 또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celebrity-명사임을 내세웁니다. 교계와 사회를 '리드'합니다. 어디를 나서나 지도자형으로 받들어 주니까 더욱 더 정상을 향해 갑니다. 명사는 명사들끼리 통합니다. 서로를 확실히 밀어 주고 추켜 줍니다.


한데, 명사라는 말 자체가 성경적으로 문제가 있지요. 왜냐면 고대의 진짜 사도들은 명사이길 거부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사도 파울을 봅시다. 파울은 여기저기 선교를 다니고 많은 서신서들을 썼으니까 비록 결과적으로 교회역사 상 명사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명사 개념에 치를 떤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왜냐..당대 겉모습만 크리스토의 사도들, 의의 일꾼들로 보이는 실상 거짓 사도들, 속임수의 일꾼들, 싸탄의 일꾼들이 이름 드러내고 파워 자랑하는 데도 교인들이 그냥 막 믿어 주고 확실히 밀어 주는 데 질려 버린(?) 정도였으니까요. 온갖 수난과 고초를 겪은 참 사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알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교인들에게. 

파울은 마치 최영 장군이 황금을 보길 돌 같이 했듯, 당대의 모교회요 대형교회인 예루샬렘의 명사/지도자들인 열 둘을 대범하게 대했습니다[각주:4]. 그는 당대의 유명 인사들을 명사로 본 게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한 형제들로만 봤습니다. 
교회 안에서 명사 별 파벌이 있음을 알고 더욱 철저히 경계합니다[각주:5].
오직 크리스토만 자랑하고 하나님 아버지께만 영광 돌리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현대 교계 명사들은 말로는 크리스토를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는 하나..자신들의 특이한 행동과 색다른 열매로써 더욱 더 명사가 되고 더욱 더 파워와 인기를 누리고 자랑하려는 현저한 특징이 있지요. 그래야 강사비라도 더 벌고 아류와 따르미들을 더 늘릴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비성경적인 것들을 가르치는 책임은 남에게 돌리고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자신을 위해 계속 명성과 인기를 추구해 나아가는 교계의 명사들은 비성경적인 모습의 표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분명히 "아니올시다"인데도 "-이올시다!"라고 자임한다는 겁니다. 

가수 신신애는 "세상은 요지경 속"이라면서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 친다!"고 노래했죠만..오늘날 이런 명사들이 누릴 것을 다 누리며 활개 치는 교계야 말로 요지경 속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명사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론과 대중심리 조종에 퍽, 또는 매우 밝다는 것이지요. 교계 대중과 미디어의 입맛과 주문에 따라 구색을 잘 맞춰 준다는 것입니다. 이들 대다수는 심리학에 '빠삭' 합니다. 그래서 청중의 행복 점수를 팍팍 높이고 올립니다. 그러나 보고 들을 때는 좋았는데 듣고 나니 정말 성경적/진리적으로는 남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그윽한 향내(?) 저너머 구린 냄새가 나지요. 왜 그럴까요..?

그들은 자기네가 가진, 진리의 알맹이가 없는 허울 좋고 때깔 좋은 영성으로 포장한 것을 갖고 온갖 탴팈으로 잘 써 먹기 때문입니다. 뉴에이지 영성, 관상영성, '떠오름'(Emergent)영성, '목적' 영성, 메이슨 영성, 오컬트 영성..이런 것들을 "성경적"인 것으로 내비치게끔, 대중이 진리로 받아들이게끔 심리조종-'마인드컨츠럴'을 합니다.
그런 주입과 침투가 깊어지고 익어지면, 자연히 본격적인 마인드셑으로 자리 매김하게 됩니다. 그 다음엔 돌이키기가 어렵거나 아예 방법이 없게 됩니다. 

오늘날 교계에 팽배한 온갖 해외 영성, 수입 영성들을 따져 보면, 에큐메니즘적/종교다원적/신비적/범신론적/보편구원론적/우주론적/영지주의적/심리학적/철학적/신지학적/메이슨적/카발라적/심령술적/점술적/마법적 등등의 요소들을 일부 또는 다량 바탕에 깔고 있거나 도처에 숨기고 있습니다.

어떤 명사들은 깊이 있고 의미 있는 한 두 마디를 멋스럽고 맛깔스럽게 툭~ 던져 놓고는 청중으로 하여금 음미하게 합니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그 한 두 마디 속에 무섭고 치명적인 독이 다량 함유돼 있지요!  그러나 교인/청중은 그런 말장난의 묘미에 환호합니다.

의의 사역자처럼 스스로 분장하고 과대포장한 싸탄의 일꾼들, 거짓 사도들은 그런 독극물과 위험 요인들을 색깔도 다채롭고 찬연하게 위장해 교인들을 속여 먹습니다. 가장 해롭고 더럽고 간교한 것들이 가장 순수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양 꾸밉니다. 

싸탄은 자기의 명사들을 그렇게, "매끄르르" 하게 잘 꾸며주고 최고의 무기들로 무장시켜 주는 데 매우 익숙하며, 그 솜씨가 기막히지요. 그래서 성경 말씀으로 중무장 하지 않은 웬만한 사람들은 너무 좋아 숨이 넘어갈 만큼, "꺼벅 죽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명사들과 따르미들의 종말은 파울의 말대로입니다. 자기 열매를 자기가 먹게 됩니다. 명성을 추구한 만큼, 명사이길 바란 만큼 마지막에 호된 보응을 받게 됩니다.

오늘날 사도 파울의 예언 그대로 '짜가'가 명사들이 되어 유난히 판 치는 이런 교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무장(온몸갑옷, 에페소서 6:10-18)을 갖춰야 합니다!
성경 진리에 밝아야 합니다!
탄탄한 말씀과 믿음의 바위 위에 오뚜기처럼 꼿꼿이 서야 합니다! 
 
날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음미하고 고백/선포하고 더 나아가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영적 분별력과 통찰력을 길러야 합니다. 자신의 몫이라면 영 분별의 은사도 받는 것이 좋겠지요.

또 성경 말씀에 비춰 보는 분별과 검증의 수위를 높여야 합니다.
더 나아가 거짓 사도들, 거짓 의의 일꾼들, 빛나는 '짜가'들의 해부적 얼개와 탴팈을 잘 파악하고 알아둬야 합니다. 잘 꾸미지만 열매와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채야 합니다.
그 잘 난 해외 영성, 수입 영성을 갖고 입맛을 끌고 자랑하지만, 냄새가 구리고 이상하다는 것을 느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진리만을 인사이더의 안목으로, 나머지 모두를 아웉사이더의 안목으로 보는 거룩한 색안경을 끼고 봐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다 못해 대세를 타는 온갖 허울 좋은 해외 영성, 수입 영성, 베스트셀러 저서와 강연에 속지 마십시오. "빛 좋은 개살구"이기가 더 쉽습니다. 교계 명사들이라고 해서 철딱서니 없이, 아무 검증 없이 마구잡이로 흠모하고 따르지 마세요.
사도 파울이 그처럼 경계한 명사들의 따르미가 되어 더욱 명사로 만들지 마세요.
누구든 뭐든, 보고 듣는 것들은 모조리/반드시 분별하세요! 검증하십시오!

그것이 성경의 명령이며 주님과 사도들이 강조한 것입니다. 

우리는 바위이신 예수님, 영혼의 닻줄, 하나 뿐인 소망이신 예수님께 더욱 다가가 그 분께 바짝(!) 붙어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그 분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내 속에 머물게 해야 합니다.
집을 짓되, 허술한 모래 위에다 언젠가는 무너질 모래성 같은 집을 지어선 안 됩니다. 주 예수님의 진리 밖에는 모두 모래밭일 뿐.

말씀 바위 위에다, 불에 타도 공력이 사라지지 않고 남을 만한 탄탄한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주님 안에, 주님 말씀이 내 속에 늘 머물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진짜 대적인 싸탄과 악령들을 효과적으로 적대해야 합니다.
그들의 종졸들인 거짓 사도/대언자들, 속임수의 일꾼들, 싸탄의 일꾼들에게 이젠 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에게 나의 자리를 비켜 주거나 속을 내어 주어선 안 됩니다.
그들의 그럴 듯한 겉모습에 결코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세의 지말(至末)에
하늘나라에 앉혀진 의인과 성도의 신분을 놓치지 않고
사도 파울처럼 끝까지 달려 갈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주 예수님의 전능한 이름으로,
분별 있는 독자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1. 여기서 도표 형식은 성경라이브러리 주석가 프랭크 머테러의 아이디어를 참조했음. [본문으로]
  2. 그밖에도 코린토A(고전) 4:6, 필리포 3:21 등에 긍정적인 뜻으로 쓰였다. [본문으로]
  3. 코린토B/고후 2:11 참조 [본문으로]
  4. 갈라티아 2:6-9 참조 [본문으로]
  5. 코린토A고전 1:11-17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