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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가 새 천지일 수 없는 이유
(2015년)3월 현재 한국 CBS TV가 신천지 피해자의 실상을 보도한 특집 다큐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 시리즈를 내 놓기 시작하자 비상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천지에서는 "나 떨고 있니?"라고 자문해 가며 실제로 떨고 있다(>).
안 그래도 한국 교계가 사상최악의 문제종교집단으로 꼽는 신천지에 관한 수많은 비평 자료들이 있기 때문에 [심지어 엽기적(?) 풍자성 추임새가 딸린 '엔하위키'의 심층비평 자료도 있다(>) ]-필자가 또 한 쪽을 써서 덧붙여 봤자 거의 공해 수준(?)이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서는 좀 더 원천적으로 단지, '신천지'라는 이름 자체가 진짜일 수 없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 보기로 본다.
신천지라는 명칭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새 하늘과 새 땅"(요한계시록 21'8)에서 땄다고들 한다. 그러나 '신천지'라는 한자어는 이전부터 여러 미디어에서 이미 쓰여 왔다. 이 점에서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이 한자 용어부터가 별로 "그닥"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용어가 아니다. 1
또 신천지에서는 경기도 과천이 '에덴 동산'이라고 주장하면서, 144,000명이 구원받아 거기서 향후 신천지를 이루고 살아갈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계시록이 말하는 새 하늘 새 땅이 이만희의 신천지일 수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가 있다.
첫째로,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전도서 1'9b~10).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의 하나이다. 세상은 모든 것이 워낙 낡아가다 보니, 뭐든 새 것을 좋아하나 보다. 신대륙, 신세계, 뉴에이지(New Age), 뉴월드, 신세계질서(NWO), 신개념, 신사고(新思考), 신사도개혁운동(NAR), 뉴라이트, 뉴하트..등등 새 것인 양 포장된 것들이 차고도 넘친다. 그러나 이 모두는 새 것이길 바라는 용트림이나 희망사항들이지, 정작 성경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실제로 근본적으로 새로워진 무엇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기 때문이다!
'신대륙'이란 용어부터 보자. 신대륙이 정말 새 대륙인가? 거대한 지각변동으로 새로 생긴 땅인가? 그렇지 않다. 태곳적부터 있어온 지구촌의 일부이고 원주민들이 차지하고 있던 낡은 땅인데, 항해술이 발달하자 식민지 개척에 나선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갓 발견하다 보니 첫눈에 새롭게 보일 뿐이었다.
현대의 대표적 이데올로기의 하나인 뉴에이지를 들어 말해 보자. 뉴에이지가 새롭다고 주장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 과거 있어온 것들이다. 예컨대, 뉴에이지에서 특히 발전하고 강조해온 대체의학은 이미 있던 것들로 재구성되다시피 한 것들이다. '새로운 발견'이라고 해 봤자, 이미 있던 대상과 재료들을 좀 다른 시각에서 본 것들이다. 뉴에이지의 종교관은 이전부터 있어온 케케묵은 세계 종교들의 이합집산 같은 것이다. 또 역술/복술/점술/비술 등으로 통칭되는 뉴에이지의 온갖 행태는 고대의 아이귚트(이집트), 바벨론, 인디아 등 고대의 제국에도 이미 있던 것들이다. 전에 있던 것들을 다시 써 먹는 재생되는 관행들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럴진대, 무엇이 뉴에이지 곧 새 시대라는 것인가? 낡은 것을 '새 것'이라고 아무리 고집해 봤자, 스스로 속고 지내는 셈이다.
신세계질서(NWO)라는 말을 보자. 낡은 것을 뒤엎고 세계를 새 질서 아래 평정한다는 말 같은데도, '뚜껑'을 열고 보면 이미 있던 것을 갖고 전과는 다르게 '교통정리' 같은 것을 하는 정도를 말한다. NWO가 강조하는 것 하나가 환경보존운동인데, 새 환경이 아니라 이미 있던 기존 환경, 낡은 환경을 새삼 좀 더 가까이 하고 돌보고 보호하려는 의식의 고취 같은 것이다. 발상의 전환 정도를 갖고 진정한 신개념이라고 할 수 없다.
이처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있을 수 없는데도, 이만희의 신천지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과천에 새 것을 세운다고 떠들고 있다. 거기는 해 아래가 아니던가? 대한민국은커녕 지구촌 전체, 아니 온 우주의 그 어느 곳도 다 낡은 곳이지, 새로운 곳이 없다. 행여라도 이만희씨가 태양계의 화성에 착륙해 거기 신천지를 차린다 한들, 그 곳도 해 아래이며 이미 낡은 땅이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땅에서도 한 구석인 과천이 어떻게 새 하늘 새 땅일 수 있겠는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신천지를 세운다는 이만희씨 자신이 현저히 늙어 가고 있다. 그 자신이 이젠 과시 별로 새로울 데가 없는 인간이 돼 간다는 말이다. 심지어 증거장막성전이라는 개념도 이미 이전에 있던 것이다. 그러니 신천지 집단의 개념 자체가 별 새로울 것 없이 이미 낡은 개념이다. 2
그 다음으로 살펴 볼 일은, 성경이 말하는 새 하늘 새 땅은 언젠가는 꺼져버릴 지금의 저 태양이 아닌, 영원한 빛 아래 존재할 곳이다(요계 21'23). 해나 달이 쓸모 없는 곳이다. 하나님이 몸소 그 분의 빛으로 비추실 곳이다(22'5). 새 하늘 새 땅이 있으려면 먼저 지금까지의 모든 우주가 완전히 사라져 버려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페트로B서=벧후 3'10). 땅은 죄다 불 타 버리고 하늘도 역시 종잇장처럼 말려 가 버린다(펱B 3'12b, 요계 6'14; 20'11)!
그런데 이만희 씨 밑에서 과연 그런 우주천지의 개벽이 일어나겠는가?? 내 말이 아닌 성경에 따르면, 새 하늘 새 땅이 있게 되기 전에 현재 신천지가 존재하는 경기도 과천 땅도 다 불타고 사라져 버릴 날이 온다. 신대륙도, 신세계도, 새 땅도 아닌 낡고 오랜 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과천 한 구석 땅 뙈기에 새 하늘 새 땅이 이루어지겠는가?
정직히 말한다면, 이만희와 그의 신천지의 위쪽 하늘과 아래의 그 땅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옛) 하늘과 땅을 세우신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살라지기 위해 불경건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잠시 보존되고 있을 뿐이다(펱B 3'7). 소위 '추수꾼'들이 남의 교회를 해체시키다시피 하고 통째로 삼키다시피 하는 '산 옮기기' 수법은 경건한 것일 수가 없다. 남의 교회를 넘어뜨리려 넘보고 몰래 잠입하고 이간질을 하는 것이 어떻게 경건할 손가? 그렇다면 결론은 자멸인 것이다.
맨 정신으로라면, 경기도 과천 땅에 새 하늘 새 땅이 이루어지길 바라보고 기다릴 일이 아니다. 그 대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모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질 테지만, 우리는 주님의 약속대로 의롭고 참된 새 하늘 새 땅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펱B 3'12,13).
자칭 신천지인들이여. 이만희를 따르는 무리여.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으려면 먼저 처음 하늘과 처음 땅, 처음 바다가 없어져야 한다(요계 21'1)! 우리 머리 위의 저 하늘과 우리가 발로 밟고 사는 이 땅이 먼저 사라져야 새 하늘 새 땅이 온다는 것이다.
신천지 교도들은 이만희를 '신천지 약속의 목자'로 불러주고 모시고 따른다. 그런데 땅에 사는 이만희가 약속하는 신천지가 과연 위의 전자이겠는가, 후자-처음 하늘, 처음 땅, 처음 바다 처음 해-이겠는가? 과천이 처음 하늘 아래 처음 땅이 아닌 새 하늘, 새 땅일 수 있는가??
이만희 씨 자신에게 문자대로의 신천지답게 새로울 것이 있는가? 그가 낀 안경도 땅의 것이고, 그의 헤어스타일과 양복도 땅의 것이다. 더구나 '영생'을 한다는 그는 80대 노인이다. 솔직히 노인이 뭐가 그리 새로운가? 나이로 보아 그의 머리는 필시 백발일 텐데 물감을 들였다. 염색..? 이미 있어온 관행이다. 한껏 젊은 티를 내느라 꾸미지만 늙어가는 게 확실하다. 뭐가 새로운 건가? 그의 직함도 '총회장'이다. 조직교회가 이미 오래 사용해온 케케묵은 용어이다.
해 아래 어디 새로울 게 있는가? 그런데 그가 새 하늘 새 땅을 약속할 수 있는가?
새 하늘 새 땅을 약속하신 분은 오직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하늘로 올라가신 그 분일 뿐이다(요복 14'2,3)! 그 분이 바로 약속의 목자이시지 이만희가 아니다.
성경은 이만희가 아닌(!)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손수 창조하신다고 약속해 준다(예샤야후=이사야 65'17). 그 때엔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생각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우리는 주님의 그 창조물을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된다. 하나님이 지으시는 새 예루샬렘은 즐거운 성이 되도록 지으시기에, 그 백성 자체가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65'18b,19a). 흐느낌과 울부짖음이 전혀 없는 그런 곳이다.
새 하늘 새 땅에서는 백성의 수명이 천년수(千年樹) 같아 오래오래 살아가게 되며, 미리 죽는 어린이나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없고, 백 세에 죽는 사람은 젊은이, 백 세가 못 되어 죽는 사람은 저주 받은 자가 된다(65'20). 그런데..유감되게도 이만희 씨는 얼굴로 보나 몸으로 보나 80여세 노인이다. 그가 백 세도 못 채우고 죽는다면 저주 받은 결과가 된다. 과연 100세도 못 채울 저주 받은 자칭 '보혜사'를 따르겠는가? 내 말이 아닌 성경의 말로 말이다.
(이만희 아닌) 하나님이야말로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다(예샤 42'9; 43'19; 48'6). 사람은 다 거짓되다. 이만희도 예외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 참되실 뿐이다(로마서 3'4)!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전심으로 따르는 이가 그 분의 참되심을 닮아 참되어질 것이다. 말씀을 자기 욕심대로 마구 뒤틀어 제멋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참될 수가 없다.
끝으로..해 아래는 정녕 새 것이 없으나, 이만희가 아닌 크리스토(그리스도)님 안에 있을 때, 누구나 새 것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크리스토님 안에 있으면 새 창조물입니다. 옛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왔습니다."(코린토B서=고후 5'17)
오직 크리스토 님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곧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 흔들림 없이 성경 진리 안에 언제나 머무르는 사람들만이 (과천 땅이 아닌) 미래의 새 하늘 새 땅에도 거주할 수 있게 된다. 누구든지 (이만희 아닌) 크리스토님 안에 있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포도나무 가지이신 예수 크리스토님께 딱 들러붙어 있어 내가 그 분 안에, 그 분이 내 안에 있어야만 바른 열매를 맺을 수 있다(요복 15'2~5). 그 분을 떠나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이 (이만희가 아닌) 그 분 안에 거하지 않으면, 나뭇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 버리며, 결국 불에 던져 살라지게 된다(15'6).
오직 진리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요복 8'32). 그 밖에 아무도, 그 누구도 진리로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사람은 다 거짓되기 때문이다.
예수님만이 나의 든든한 바위이고 내 상급의 집을 지을 자리이다(마태복음서 7'24). 그 바깥은 모두 퍽석퍽석한 모래 땅일 뿐이다(7'26). 간단한 텐트를 세울 것이라면 모를까, 내 집을 영구히, 든든히 세울 자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과천 땅이 든든한 바위일까, 아니면 모래 땅일까? 잘 판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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