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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바울서신

[빌 2:25-30] 에파프로디도를 위하여

필리포서(빌) 2'25-30 (이하 성구는 사역)

    하지만 에파프로디도(에바브로디도)님은 여러분에게 꼭 (돌려)보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는 나의 형제, 동역자, 전우인 데다 여러분의 심부름꾼/사도로 나의 필요를 위한 섬김이이기도 했지요.
그는 여러분 모두를 그리워해 왔고, 자신이 아팠다는 소식을 여러분이 들었다는 것에 대해 오히려 걱정했습니다.
사실 그는 아파서 거의 죽을 뻔 했지만,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도우셨습니다. 그만 아니라 내게도 그리하셨지요. 안 그랬으면, 내가 슬픔 위에 슬픔을 겪었을 터입니다.
그래서 더군다나 그를 서둘러 보냈으니, 여러분이 그와 재회하면 기쁠 것이고 저도 한결 걱정을 덜게 되지요.
그러니, 그를 주님 안에서 온통 기쁨으로 반겨 주세요! 그리고 그런 사람을 소중히 여겨 주세요.
그는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의 일 때문에 거의 사경에 이르기까지 자기 목숨도 돌아보지 않고, 여러분을 대신하여 모자란 것이 없게 나를 섬겼기 때문입니다.


 

필리포서는 사도 파울(바울)이 마케돈(마케도니아)의 필리포 교회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필리포[각주:1]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돈 왕 필리포스 2세가 주전 4세기에 정복한 '크리니데스'를 자기 이름으로 개명한 도시였습니다.

파울은 이 도시를 처음 방문하기 전, 자신의 출신 지역이고 여러 교회가 세워진 소아시아(현 터키)의 정든 교회들을 다시 둘러 볼 생각이었다가, 저 유명한 '마케돈 환상'을 본 다음 이 지역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그래서 들르게 된 마케돈의 첫 도시가 바로 필리포였습니다! (행전 16'6-12)  

그와 동역자들은 이 곳에서 안식일에 기도 장소를 찾다가, 필리포의 한 강변에 나온 아낙네들 가운데서 자주색 옷감 장사인 뤼디아(루디아/Lydia)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온 가족을 믿게 한 것이 필리포 교회의 효시였지요(16'13-15). 파울이 실바누스(실바)와 함께 갇혔던 필리포 감옥의 간수의 온 가족도 교인들이 됩니다(16'23-34). 세월이 지난 후, 이 교회는 성도들도 늘고, 감독/집사들까지 여럿 사역할 정도의 규모로 발전합니다(필리포 1'1).

필리포 교인들은 이방인들을 위한 대 사도인 파울을 사랑으로 정성껏 섬겼고, 파울이 마케돈 복음사역을 마치고 그곳을 떠날 때도 모든 지역 교회들 가운데 유일하게 파울에게 필요한 자원을 제공했습니다. 또 파울 일행이 테살로니카에 머물 때도 인편에 파울에게 필요한 물품을 보내곤 했지요(필 4'15,16).
 
그래도 그들은 혹시 파울의 사역에 꼭 필요한 뭔가가 없을까 하고, 교회 일꾼인 에파프로디도를 보내면서 푸짐한 선물도 딸려 보냈고, 아울러 파울 곁에 머물러 직접 섬기게 했습니다(18절). 파울은 그들이 늘 풍요롭기를 축복했고요.  
그래서 파울은 그들이 자신의 수난에 동참했다고 표현합니다(14절). 크리스토님을 위한 수난보다 더 큰 영예는 없는데, 필리포 교우들은 이런 간접적인 섬김 사역을 통해 그의 수난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파프로디도는 파울 일행을 섬기면서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 그만 자신이 병이 들어 버렸습니다. 어떤 병인지는 모르지만, 거의 죽을 뻔 했던 것으로 보아, 중병이어서 사경을 헤매기도 한 모양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물음이 뜰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아플 수도 있냐는 것입니다.
딴 일도 아닌 주님을 위한 일인데도, 왜 하나님이 병을 허락하시냐는 것이지요.
여느 사람도 아닌, 충성스러운 주님의 일꾼을 병들지 않게 하나님이 마땅히 미리 지켜 주셔야 하지 않냐는 말도 됩니다.

우리는 그런 의혹 속에서 섣부른 판단을 하기 전, 먼저 다양한 개연성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에파프로디도는 병이 날 만큼 과로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일상과 같은 평범한 상태가 아니라 옥중의 파울을 뒷바라지 하다 보니, 상황이 여러 모로 무리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무리를 무시해 가며 계속 일하니, 중증으로 악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성도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과로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과로나 그 결과로 오는 질병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님의 전이므로, 되도록 우리 자신이 잘 관리해야 합니다.
파울은, 우리의 영/혼과 아울러 몸도 크리스토의 날까지 잘 보존되기를 희구하고 있습니다(테살로니카A서=살전 5'23).


그 다음 우리 맘에 떠오를 수 있는 물음은..

거룩한 신자인 성도도 병이 들며, 더구나 죽을 병이 들 수 있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자동적으로 천국가기까지 강건하고 장수해야 하지 않냐는 것이지요.

병은 주로 죄값으로 오는 탓에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걸려야 하고 받아 들여야 하는 자연 또는 필연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해야 하듯, 병도 우리가 대적하고 물리쳐야 할 대상입니다(페트로A서=벧전 5'9; 야코보=약 4'7).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입술의 말로써, 병을 의인화하여 말씀으로 물리쳐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지요.
예수 이름과 우리의 입술, 하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받아 들이면, 받아 들이는 족족 병은 찾아오게 돼 있습니다.

관건은, 믿음과 거기 따르는 행동 여부이겠지요.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치유를 위한 성구 말씀들을 골라, 거기에다 환자의 이름을 대입해 가며, 믿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고백하고 선언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 성령의 권능이 작동합니다.
믿음과 말씀, 예수 이름에 의해, 3중 권세, 세 겹 효력이 작용한다는 뜻이지요.
치유만이 아닌 그 무엇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파울의 믿음의 아들 티모테도 위병을 앓았습니다(티모테A서=딤전 5'23). 증상이 자주 찾아왔기에, 파울은 포도주를 쓰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위병에 알콜 음료를 자주 마시면 좋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근(近) 전능성에 관해 자주 말씀하십니다.
주님과 사도들은 믿음으로 능치 못함이 없다고 강조합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믿음이냐가 관건이죠.

믿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겨자씨 만한 분량으로도 뽕나무더러 냉큼 뽑혀 바다에 심겨라고 명하면 그대로 된다고 하십니다(루카복음서=눅 17'6).
그런데 우리에게 그 겨자씨 만한 믿음도 없을 때가 더 잦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과연 이 세대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믿음이 있다면, 의심은 물러가게 돼 있습니다.


아무튼..성경을 보면, 수많은 이적을 행하고 죽은 사람도 살린 엘리샤도 자신은 죽을 병이 들어 죽습니다(왕들B서=열왕하 13'14). 놀랍게도 죽고 난 뒤 그의 뼈로도 사람을 살리는 이적이 벌어집니다(13'20,21)!

구약 시대 남 유다 왕국의 히즈키야 왕도 죽을 병이 들었지만, 주님 앞에서 애통할 때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 주시어, 15년이나 더 연장된 삶을 살았습니다(왕B 20'1-11 참조). 1년도 소중한데, 15년이면 대단하지 않나요!

역시 죽을 병이 든 에파프로디도도 바로 그런 케이스였지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던..

파울을 비롯한 그의 동역자들은 죽어가던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매달려 치유를 간구했습니다.
더욱이 파울은 다른 일로도 우려되고 아픈 일들이 많은데, 자신을 그렇게 헌신적으로 돕던 에파프로디도가 죽을 병이 들자 너무나 아프고 슬퍼, 바로 자신의 일처럼, 자신의 몸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파프로디도를 불쌍히 여겨 주심은 곧 파울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심이기도 했지요.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보기도' 곧 도고, 도움기도의 진수입니다!
남의 병을 내 병처럼,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남의 슬픔을 내 슬픔처럼 여기면서,
하나님의 긍휼(온정/자비), 도우심과 치유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심경으로 파울과 동역자들은 죽을 병이 든 에파프로디도의 치유를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파울과 동역자들의 그 간구를 들으셨고요.
그래서 에파프로디도가 죽을 병에서 살아난 것입니다.
이랬기에 파울과 동역자들의 기쁨은 컸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에파프로디도가 결국 죽었다면, 파울은 자기 말처럼 그야말로 "슬픔 위에 슬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생인 사도 야코보는 환자를 위해 교회의 장로들을 청해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부으며 기도하기를 권했습니다(야코보 5'14-18 참고).

그러면서 그는 의인들의 간구는 일을 이루는 힘이 크다고 말합니다.
일례로, 엘리야가 기도했더니 가뭄과 비가 발생한 사건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어야 좋습니다!
병 낫기를 위해 서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서로 마땅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환자를 고쳐 주십니다.
믿음으로 병이 물러갑니다!
주님의 권능의 말씀으로 병이 깨끗이 사라집니다. 
전능한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병마가 쫓겨 갑니다!
히즈키야의 경우처럼, 에파프로디도처럼 의인의 간구로 죽을 병도 치유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끝까지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증상이 도져도, 그것을 꾸짖어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할 것이면, 악령들도 대적해야 하듯,
마귀가 갖다 주는 온갖 질병도 대적해야 당연합니다.

마귀가 우리의 친구가 아니듯,
병도 우리의 친구는 아닙니다.
정다운 벗이 아니라, 우리의 끔찍한 원수들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의인화하여 꾸짖어 내 삶에서 내쫓아야 옳습니다.

병이 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함은,
여느 기도처럼 하나님께 보상 받고 상급 받을 만한 착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으며,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믿음의 대가를 주시는 미스타포도테스(보상자)이시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11'6).


티엘티 성도들은
믿음으로 병을 이기며,
병든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도움기도자들이기를~!

아멘

  1. 그리스어 '필로포이', 로마어 '필리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