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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바울서신

[고전 15] 날마다 묵상해야 할 부활


바탕 본문 : 코린토A서(고전) 15장



매년 이맘 때면, 교계는 물론 일반 사회까지도 '부활절' 기분으로 '흥청'거립니다.
서구는 물론, 이젠 다른 나라에서조차 '부활절 휴가철'이 늘고 있습니다. 카르나발 이후 육식을 삼가다가, 사순절이 끝나는 부활절에 다시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도 합니다. 

연 1회, 부활절을 지키고 부활을 논하고 부활을 기념하는 성향도 짙어갑니다. 부활의 꽃(?)인 흰 백합으로 교회당 안팎을 장식하고, 주일학생 등 어린이들에게 계란찾기, 계란굴리기 게임을 시키거나 캔디 바구니를 선물하기도 합니다. 
백합과 계란, 캔디가 과연 부활과 무슨 상관입니까만.

한국교회/한인교회들조차 성경이 아닌, 서구 교회 전통에서 온 이런 희한한 풍습에 물들어 있습니다. 성경과 전통을 구분할 능력이 없어선지?
부활절 전통을 지키는 세속인들과 교인들 다수는 사실 자신들이나 개인이 예수 크리스토님의 부활을 정말 믿든 안 믿든, 개의치도 상관치도 않습니다. 단지 계절과 명절로서 기분을 낼 뿐입니다. 그런 '부활절'을 지키는 데는 꼭 기독교 신자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정작 우리의 성경엔..연례 부활절을 지킨 사례도, 그런 명절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도 없으며, 단지 초기 교인들이 매 주일을 주님의 날로 부활을 기념한 것으로 보입니다. 초기 교인들은 또 성만찬으로써 주님의 수난과 아울러 부활도 기념했다고 봐야 합니다. 생명의 양식인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만찬과 보혈을 상징하는 물에 잠기는 침례(세례)로써, 부활하신 주님과 하나됨의 의식(意識)을 갖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초기 교인들이 주1회-주일날만 부활을 기리고 기념한 건 아닙니다. 그들은 날마다 주님의 부활의 생명 속에 살아갔습니다. 부활이 그만큼 중요하기에. 

이렇게 통찰해 볼 때, 연례 행사처럼 연1회 명절을 계기로 부활을 기념하고 강조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잘못된 전통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날마다 묵상해야 할 무엇입니다!


연1회 '부활절'을 유달리 강조하는 사람들 다수는 연중 내내 수난을 강조하는 성향이 짙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난' 개념엔 대속관이 희박하거나 결핍되는 성향 또한 짙습니다. 
크리스토의 수난이 나의 존재와 내 삶에 어떤 직접적 의미와 영향을 끼쳐 주느냐보다도..'사제'들에게 얇은 떡과자 하나만 받아 먹고 포도주 한 모금만 들이키면, 오늘 내 죄는 면제 또는 무마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제에게 조용히 찾아가 "살짜꿍" 고백만 하면, 양심의 가책과 부담, 억눌림에서 해방된다(?)는 사실 상의 '면죄부' 발행이 아직도 횡행합니다. 그리고 걸핏하면 십자성호를 연신 긋습니다. 마치 부적이라도 되는 양.


참된 수난 묵상은 그런 게 아니지요.크리스토께서 내 대신 십자가를 지셔서 내 죄값을 담당하고 구속하심으로써 내 죄악과 그로 인한 율법의 저주를 영원히 면케 해 주셨다는 것, 그래서 기쁨과 감사로써 내 십자가를 지고 그 분 뒤를 따르겠다는 게 참된 수난 묵상입니다. 

또, 성경대로 그 분이 죽으시고 성경대로 되살아나셔서 그 분과 함께 연합한 성도가 영원히 죄악 세상을 이겨 승리했고, 날마다 성령의 힘으로 승리하며, 언젠가 우리의 몸도 부활하여 영혼과 하나 된다는 의식이 곧 참된 부활 묵상입니다!

율법시대 구약인들처럼 여전히 '사제'들의 도움을 받아야 죄가 속해진다고 생각함은 참된 해방이 아니라 사제 제도에 예속된, 또 다른 노예생활을 암시합니다. 
사도 파울의 말대로, 해와 달과 날을 삼가 준수함도, 여전히 율법시대에 살고 있음을 뜻합니다 . 

주님의 부활을 기리고 감사함은 물론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매년 하루 천주교가 지정하는 '부활절'을 진정 예수 크리스토의 부활의 날로 간주해, "오늘 되살아나셨네!"라고 선언하는 것은 만우절 같은 얘기입니다. 또 다른 전설의 명절-'성탄절' 관행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교회 지도자들은 "아니 평소에도 부활을 잘 괘념치 못해 일년에 단 한 번이라도 잘 되새기자는 뜻에서 하루 지키자는 건데, 웬 잔소리고 타박이냐?"고 물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식 자체가 오히려 부활 믿음을 약화시키는 건 아닌지요? 과연 부활절을 매년 지킨다고 해서 매년 교계와 신도들의 부활 신앙이 점점 향상돼 왔습니까? 천만예요! 지금 교계엔 반대로 점점 성경적인 부활 신앙이 약화돼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야합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이 진정 우리의 죄값을 치르고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셨음도 좀체/제대로 안 믿는데, 그 분의 신체 부활인들 어디 쉽게 믿겠나요? 

그러니, 소위 '부활절은 정녕 부활을 믿기보다는 연 1회 전통을 지키는 날, 기분 내는 날이기가 더 쉽다는 말이지요.


예수 크리스토님의 부활을 참되게 기리고 기념하는 것은 바로 잠자는 자들 가운데서 되살아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 분의 몸의 부활을 믿고, 나 자신의 몸도 그렇게 부활할 것을 정녕, 날마다 믿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구원과 거듭남의 조건이기도 합니다(로마서 10'9,10). 그 분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기도 거듭나기도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죽음에서 되살아남-크리스토의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기독교일 수가 없습니다. 허무맹랑한 신화이거나 철학일 뿐이고, 세상 종교와 대동소이할 터입니다. 크리스토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희대의 '사기꾼'에게 속아 넘어 믿어 준 불쌍한 피해자들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우리 역시 부활 없이 죄 가운데 살다 저주 받아 영멸될, 가련한 영혼들에 불과할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가 타 종교에 비해 나을 게 뭡니까? 그래서 역설적으로, 타 종교와 형제로 동화되고, 일심동체/혼연일체가 되어 주느라 부활 신앙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가령 잔 스팡 (성공회)신부 같은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런 건..얄팍한 세상 슬기이고 꾀일 뿐, 하늘의 지혜는 아닙니다.

"아니, 몸의 부활이라니? 믿을 만한 걸 말해야 믿어 주지.."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신자들 가운데도.
그런데..정녕 믿기 어려운 것,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것을 믿는 게 참 믿음 아닌가요? 이성으로서 이해가 되는 것만 골라 믿는 건 참 믿음일 수가 없지요. 성경은 그런 걸 갖고 믿음이라고 하질 않습니다.  


    고대에 부활관을 지닌 유대 정통 종교정당인 파리세(Pharisees 한글성경 표기 '바리새인') 당이 있었습니다. 예! 그들도 부활을 믿고 있었지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케 파(Saducees)와는 경쟁파요, 정적이었습니다. 또 산헤드린 공회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양파에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양쪽 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적인 종교인들이라는 것 외에도..그들 대다수는 메시아-예수 크리스토님의 부활을 결코 믿지 않았다는 거지요!

부활은 믿으면서 예수님의 부활은 안 믿는다니, 정말 우습지 않습니까?
그래서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겁니다.

오늘날 다수의 교인들이 이와 비슷합니다. 
'부활절'은 지키고 부활절 휴가철을 즐기고 심지어 부활을 논해도..
예수 크리스토의 부활은 믿을 필요도 가치도 없다는 사람들..입니다. 


    영화 '타이태닠'으로도 유명한 타이태닠 호 침몰사건은 1912년 4월 15일 발발했습니다. 그 해 부활절(4월7일)로부터 1주일 후인 주일 다음 날 월요일 새벽이었지요. 실제의 사건 당일처럼, 영화에서도 승객들이 침몰을 예상하면서 찬송가를 연주하고, 죽음을 앞두고 부활 신앙이나 영생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화를 만든 제임즈 캐머런 감독은 예수의 부활을 정면 부정하는 기록영화 '예수의 무덤'도 만들었습니다! 바로 뉴에이지성 최신작 '아바타'의 감독이기도 하지요. 아이러니요, 넌센스입니다.    


파리세들 가운데는 드물지만, 선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니코데모는 한밤에 주님께 거듭남의 도리를 배운 뒤 다른 파리세 앞에서 주님을 변호했고, 십자가 처형 후, 값비싼 향품과 유향을 사들고 주님의 시신 수습에 나섰던, 산헤드린 공회원이었습니다. 주님의 부활 후 그도 물론 당연히 그 분의 부활을 믿었을 터입니다.

사도 파울도 본래 정통 파리세였습니다. 율법에 대한 그의 충성과 열성은 견줄 데가 드물 정도로.
그러나 그가 '예수 도당'을 근절하려 작심하고, 다메쉨(다마스쿠스)으로 향해 가던 어느 날. 대낮에 햇빛보다 더 밝은 하늘 빛을 본 순간, 쓰러져 한동안 소경이 된 그 때.. 그가 뵈었던 분과 음성이 바로..부활/승천하신 예수 크리스토님이었습니다!

훗날 바로 그 주님께 그가 받은 부활의 계시(코린토A=고전 15장)는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의 하나입니다. 
이 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보통 사람들처럼 에페소(콜로세움)에서 맹수들과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면, '어차피 내일 죽을 테니 오늘 먹고 마시자' 하겠지요. 속지 마시오.." (15'32,33a)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티엘티 사람들은..
날마다 순간마다 예수 크리스토의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고
자신의 미래 부활을 믿는 성도이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