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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요아쉬 왕의 위업-성전보수(메시야계보대장정 46)



요아쉬 왕대의 성전 보수 공사에 관한 고대 석판 문서. 쪼르[각주:1]어 문구도 섞여 있어 당대의 레바논/쪼르 기술자들도 대상에 포함됐음을 시사한다. 쪼르 사람들은 다빋-슐로모 당시 때부터 이미 이스라엘과 친교를 맺고 건축 일을 도왔다.


바탕본문: 왕들B서[각주:2] 12:2-16, 연대기B[각주:3] 24:1-27


요아쉬는 유다 왕국을 40년간 다스립니다. 웬만한 왕들에 비해 월등히 긴 통치기를 누린 셈이지요. 요아쉬 왕정의 출범은 유다의 몇몇 선왕(善王)들처럼 착하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역대 군주도 의롭고 선한 도우미가 필요한 법. 요아쉬는 자신의 멘토이자 고문, 고모부인 대사제 예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은 그 영향 아래서 선정을 베풉니다. 그래서 그동안 주/야웨님 보시기에 올곧았지요. 

부모가 생존하지 않은 천애 고아로서 요아쉬는 늙은 예호야다를 아버지처럼 섬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칫 다빋 왕대가 끊기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고모 예호쉐바가, 유모와 함께 구출해 낸 유일한 왕자였던 그를 6년간 성전에서 기르고 왕위에 즉위시킨 다음에도 그가 성숙하고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 앞과 백성 앞에서 선정을 베풀기까지 수십 년간, 예호야다의 자상한 돌봄은 마치 진귀하고 연약한 식물을 지키고 길러낸 온상과 같은 것이랄까요.

그런 예호야다는, 당시 놀랍게도 거의 100세였으나, 130세까지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은퇴 없이(?) 왕을 보좌하고 성전사역에 바친 것으로 보아 퍽 정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아닐 수 없지요! 예호야다의 건강과 장수는 자신의 경건과 충성의 대가로서 하나님이 내리신 복이기도 했거니와, 어린 요아쉬 왕이 공명 정대한 군주로 서기까지 충분한 기간을 확보하시려는 주/야웨님의 특별한 배려였다고 할 만 합니다.


왕의 결혼
 
갓난 아기 왕자를 친아들처럼 몸소 길러 온 예호야다는 어느 덧 혼기가 찬 고아 출신 청년 요아쉬에게 이젠 따뜻하고 독립된 가정도 가정이지만 무엇보다 다음 왕대를 잇게 하려고 앞장서서 결혼을 주선합니다.

예호야다 자신의 아들도 최소한 둘이었음을 생각할 때[각주:4], 왕에 대한 그의 이런 배려는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심정과도 같을 뿐더러 불과 몇 년 전 심대한 위기를 거친 나라와 택한 백성의 미래를 위한 주/야웨님의 각별한 심정을 대리한 것으로도 여겨집니다.

왕비감으로는 필시, 신앙 중심으로 후보에 오른 뭇 처녀들 중 고르고 골라 심사/선정하여, 가장 정숙하고도 아름다운 여성을 간택했을 터입니다. 가능했다면, 아마도 레무엘 왕의 어머니가 제시한 "현숙한 여인"의 표준(잠언 31:10-31)에 맞췄을 법 합니다.
 
과거 폭정과 악정의 주인공인 군주들이 대부분 좋지 못한 어머니나 왕후 등 여성의 우상숭배와 왕실 '치맛바람'의 영향을 받아 왕의 신앙과 품성, 통치성향 등이 좌우되곤 했습니다. 특히 예호람-아탈리아로 이어진 암울하고 잔혹한 기복의 시대는 그러했지요. 따라서 유다의 타락에 의한 궁극적인 다빋 왕조 쇠망의 시대로 점차 향진해 가는 마당에, 왕후 간택은 나날이 더 중시되는 프로젴트였을 법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요아쉬는 두 아내를 정실로 맞아 들입니다. 그 하나는 예루샬렘에 사는 요조숙녀인 예호아딴[각주:5]. 훗날 왕세자 아마찌야의 어머니가 되지요. 타국 여성 또는 먼 고장 사람이 아니라 성전과 왕궁이 있는 수도권 출신의 여성을 고른 것도 안전제일의 원칙처럼 느껴집니다.

왕비가 둘이라면, 역대 왕들 다수가 '폭혼'하다시피 한 과거에 비해 매우 조촐한 셈입니다. 경건하다는 사제와 경건하다는 왕이 어떻게 일부일처가 아니고 두 왕후를 간택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모반과 하극상, 암살이 잦던 당대에 자칫 목숨이 위태로운 군주의 위치와 왕가를 생각해 보면..두 아내는 왕대를 잇기 위한 매우 기본적인 최소한의 대비책이면서 온 백성을 대표하는 군주로서 이만큼 허용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건한 사제 예호야다가 왕에게 두 아내를 배려했다고 해서 일부다처제를 장려하려 함은 아닌 것입니다. 

젊은 요아쉬 왕은 지난 수 십 년 간 자신과는 세대차가 엄청 많은 흡사 증조부 같은 고모부 밑에서만 자라다가 이제 두 아내를 맞아 모름지기 독립된 가정을 이루게 되니 당연히 감회가 클 것입니다. 어릴 적 유모의 젖가슴 아래서 지내던 추억만 아련한데, 이젠 아내의 포근한 품에 기댈 수 있게 되고 자녀도 얻게 되니 점차 더 성숙한 자아상을 구축할 수 있게 될 터입니다.

그러나 이 두 아내들이 과연 왕실 안방과 배후에서 요아쉬에게 예호야다가 기대했던 경건하고 선한 영향을 끼쳤을 지는 자못 의문스럽습니다. 예호야다 대사제의 죽음 후 왕이 표변(豹變)하여 유다 역사 상 가장 무지막지스럽고 잔인한 폭군의 한 명으로서, 철저한 배은망덕의 길을 걷기 때문이지요. 아울러 요아쉬-예호아딴 부부 사이의 아들 아마찌야 왕도 초기엔 선했으나 후반이 악한 아버지의 전철을 밟습니다.


성전 수축을 하다

요아쉬 왕의 두드러진 치적이자 우선 과업은 성전 보수 공사.
슐로모 왕대에 세워진 이 장려한 성전(흔히 '제1성전'으로 불림)은 아탈리아의 통치 전후에 그녀의 아들들이 전을 마구 까부수고 전 안에 있던 모든 거룩한 도구들과 물품들을 우상신 바알에게 바친 탓에 황폐화 돼 있었지요.

다행히도 새 왕의 등극 후 백성들의 마음은 바알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와 있었기에 깨끗하고 온전한 성전에서 경배하고픈 마음이 간절했을 터입니다. 그래서 젊은 요아쉬는 영특하게도 하나님과 백성들이 가장 절실히 바라는 이 마땅한 사업에 눈길을 돌린 것이지요.

왕은 우선, 사제들과 레비 지족을 모아 놓고 성전수축을 위한 수금령을 내립니다. 국내 여러 도시를 돌면서 백성으로부터 해마다 보수비를 거둬 들이되 조기시행 하라고 촉구한 것이지요.

왕들B서 12장을 보면, 이 명령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즉 성전에 성별하여 바치는 모든 돈 곧 당대의 통화(은화)로서 성전세(의무헌금), 서원제(약조예물), 낙헌제(자원예물)로 바친 헌금 등을 백성들로부터 받은 사제들은 자기 눈에 목격되는 족족, 성전의 훼손 부위를 책임지고 보수하라는 영이었지요. 

하지만 어쩐 영문인지 레비 사람들은 왕명을 소홀히 하고 좀처럼 움직여 주질 않습니다. 요아쉬 왕 즉위 후 23년이 되도록 아무 성과가 없습니다. 아마도 과거 오랜 세월 국민이 바알을 섬기면서 주/야웨님 경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성전이 거의 내팽개쳐진 상태로 지내왔기 때문이겠지요.

그보다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오랜 옛날부터 대대로 악습이었던 산당 예배가 잔존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들B 12:3이 이를 암시해 줍니다. 요아쉬는 이를 철폐하지 않았기에 백성이 여전히 산당에서 제사를 하고 향을 피웠습니다. 수도권에 들어오지 않고도 인근에서 제사를 할 수 있고 부담도 적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성전 이용도가 낮아지고 헌금도 줄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전을 지키고 돌보면서 제사를 담당한 성전사역자들이 성전 벽 등의 허물어진 곳을 돌아보는 여타 업무엔 게을러질 수 밖에 없지요.

이것은 백성들의 악습과 함께 사역자/지도자들의 몸과 맘에 밴 타성과 습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엿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아울러 성전 경배를 사실상 막는 장해 요인인 산당 제사가 결코 하나님께 합당치 않음을 시사합니다.

한편으로는 당초 왕령의 내용이 효율적이지 못한 점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사제 지족인 레비인들이 전국으로 순행하며  홍보를 해야 하는 것이나 사제 개인이 알아서 동료에게 돈을 받아 수리하라니 막연한 느낌이 듭니다. 

아무튼 이를 지켜 보던 왕이 조급하고 답답하던 나머지 대표자 격인 예호야다와 여타 사제들을 불러 문책합니다. 그즈음 예호야다는 사제로부터 대사제로 승격된 모양입니다. 대사제는 사제들의 대표로서 매일 제사를 관할하기도 하지만, 일년에 한 번씩 이스라엘 백성을 대리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속죄제를 드려 속죄 받는 역할을 감당했지요. 예수 크리스토는 오늘날 우리를 대리하는 하늘 대사제이십니다. 할렐루야!

     "그대들이 어찌하여 레비 사람들을 시켜 주/야웨님의 종 모쉐와 이스라엘 회중이 법막을 위해 정한 세금을 유다와 예루샬렘에서 걷게 하지를 않소? 왜 성전의 훼손 부분들을 고치지 않소? 아무래도 안되겠소. 이제부터는 이렇게 하오: 동료 사역자들에게서 돈을 받지 말고 국민들이 파손 수리를 위해 직접 돈을 내게 하시오."

여기서 우리는 왕이, 주/야웨님의 성전 수축 기금 조성에 있어 동작이 느리고 둔한 레비 지족의 책임을 추궁하려고 옛 전통을 되돌아 보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즉 과거 미쯔라임 출국(출애굽) 후 광야시대에 회막[각주:6]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수금했던 율법 조항이었지요.

왕은 허름해진 채 내버려진 주님의 성전을 날마다 송구스럽게, 씁쓸하게 바라보며 이 중차대한 과제 선결을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해 직접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섭니다.

예호야다는 왕명을 받들어 큼직한 궤 위에다 구멍을 뚫고 성전 문 앞 오른쪽 번제단 곁에 설치했습니다. 그리고는 레비 직원들을 통해 전국과 수도권에 특별조서를 내렸지요.

     "하나님의 종 모쉐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 바치라고 정한 세금을 바치도록 하오."

이 선포문을 듣자 모든 백성과 지도자들이 기꺼이 돈을 갖다가 성전 궤 속에 넣거나 성전 문지기 사제들이 대신 궤 안에 넣었습니다.

궤가 거의 차면, 레비 직원들이 궤를 메고 왕궁 직원들에게 보였고, 왕궁 서기관과 대 사제와 및 수하 직원들이 와서 은화를 쏟아 셈하고 봉인하여 갖다가 저울에 일정량을 달아서 성전 보수공사 감독관들에게 갖다 주고, 그 돈으로 목공/건축공/미장이/석공/철공/놋쇠공들을 고용해 지급했고, 보수용 재목과 다듬은 돌, 기타 모든 수리용품을 구입하는 데 썼습니다.

이렇게 바쳐진 은은 오로지 성전수리에만 집중 사용됐지, 성전 기물 제작엔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속건제/속죄제 예물로 바쳐진 은화는 사제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감독관들은 일심으로 성전수축에 열성을 기울였기에 일꾼 품삯 지급 상황을 점검하려고 따로 회계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성전수리를 정성껏 계속하자 마침내 이전 모습을 되찾게 됩니다. 성전 보수가 끝나자 남은 은화를 왕과 대사제 예호야다 앞에 가져왔고 그것으로 그동안 제작을 미뤄왔던 성전기물들을 만듭니다. 즉 제사에 쓰이는 각종 용기들이지요.

그러니, 예호람 이후 바알 숭배 암흑기에 주/야웨님의 성전이 얼마나 경시되고 심지어 천대 받았는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예호야다가 살아 있는 날 동안 매일 성전에서 번제를 드리는 불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기껏 그때 뿐, 예호야다가 세상을 뜨자마자 성전은 다시 버림 받게 됩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조석지변이고 간사한지요! 


필자는 외래어는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1. 튀로. 한글성경 표기 '두로', 훗날의 푀니키아. [본문으로]
  2. 열왕기하 [본문으로]
  3. 역대하 [본문으로]
  4. 연대B(역대하) 24:25 [본문으로]
  5. 연대B 25:1. 경우에 따라 '예호아띤'으로도 발음 [본문으로]
  6. 모임 천막. 성막 곧 주/야웨님의 법궤를 모신 간이 이동식 임시 경배/제사 처소였던 천막. 성전의 전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