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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문학

위대한 시인의 불안한 구원관

미우오슈는 하늘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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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  

체스와프 미우오슈(Czeslaw Milosz, 1911-2004)는 198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계 미국 시인/평론가/번역가였다. 저명 문인들로부터 '금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서슴 없는 칭송을 받곤 했다. 러시아 시인 요시프 브롣스키는 그를 성경의 욥에 견주기도 했다.

미우오슈는 일찍이 '유럽문학대상'(1953년)도 받았다. 말년을 고국 폴란드에서 보내느라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그는 2004년 여름 죽고 나서야 비로소-그것도 한때-세간은 물론 교계 일각의 관심을 자아냈다. 그의 시신은 크라코프의 역사적 성당인 스카카 교회에 매장돼 있다.

미우오슈는 폴란드 출신답게 카톨맄이었다. 네오콘 계열 보수 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의 조셒 보텀은 그의 죽음을 "못 견딜 일"이라고 표현했다. 신학자/칼럼니스트 앨버트 몰러(남침례신학교 총장)도 그의 삶과 글을 극찬에 가깝게,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우오슈는 거의 한 세기를 살아 간 인물이다. 역사 상 가장 굴곡이 심하고 가장 많은 독재자들에 의해 가장 잔인한 학살이 자행됐던 20세기의 지루하고 지겨운 역사를 몸소 체험하고 섭렵한 것.

폴란드에서 지내면서 나치 만행과 공산주의로 사회가 악화되는 것을 보다 못해 프랑스로 망명해 살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 와(1960년)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대학의 슬라브문학 교수 생활을 하며 미국시민으로 20여 년을 살았다. 대단히 인기 높은 교수였다.
그러고 보니 폴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지내며 최상의 인기를 누린 또 다른 예술인으로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연상된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자 그는 다시 폴란드로 귀국(1989년), 주기적으로 바깥 출입을 하며 거주했다. 그는 이스라엘 야드 바쉠 대 학살 기념관에서 '열국의 의인들'의 한 명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미우오슈의 시집 외에 크게 주목 받은 작품은 폴란드 공산 정권과 결별하고 프랑스 파리로 망명 허가를 받은 직후에 쓴 '사로잡힌 마음'. 전후 4명의 폴란드 지식인들이 영향을 받은 스탈린주의의 지적 마력, 공산체제와의 협력 유혹에 관한 내용으로 당대 인텔리겐차의 타협적 처세에 대한 최상의 묘사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우오슈의 작품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형이상학적 역설, 카톨맄적 신심과의 '격투'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대 어느 시인들보다 많은 것들을 보고 겪고 맛보고 고통하며 살았기에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았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아흔 살 넘도록 왕성하고 정력적인 저작/번역/평론 활동을 펼쳤다. 외국 작품들의 폴란드어 번역은 가히 경지 차원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크라코프에서 여생을 보낸 그는 크라코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의 한 애독자와 교류한다. 다름 아닌 카톨맄 크라코프 대주교를 지냈고 그 자신이 일종의 시인으로서 유일한 폴란드 출신 교황이 된 카롤 유제프 보이티야(요한 파울로 2세)였다. 보이티야는 미우오슈의 신학 관련 논문과 악의 정당론을 읽고 의문을 표했다. "시 속에서 귀하는 두 발을 앞으로 내딛다가도 한 발은 뒤로 빼시는 군요." 미우오슈는 "교황님, 금세기에 그렇게 밖에 제가 할 수 있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답했다.
 
미우오슈가 세상을 뜬 얼마 후, 미국 기독교 문화평론가 티 엠 무어는 그의 '시예'란 글에서 이렇게 말머리를 꺼냈다.
"체슬라프 미우오슈는 갈 길을 다 마쳤다. 오가는 세기에 위대한 시적 목청의 하나가 영광의 샛길로 사라져 간 것이다. 미우오슈는 캄캄한 골짜기를 지나 영원한 빛의 영토에서 깨어날 때 놀랐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천국 복락을 얻을 것을 의심했었다:

만일 내가 낙원에 오를 수 없다면
분명 그 서클들이 내겐 너무 높다.
-(시 '만약'에서)"
 
무어의 언질 뒷 부분은 미우오슈가 천국에 갔다는 암시인 듯 하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정작 '만약'은 낙원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천국 입국의 관건은 확신의 이슈이지 '만약'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은 너무 늦다! 과연 미우오슈는 영원한 빛의 영토에서 깨어나리 만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났을까?

미우오슈의 시는 늘 분위기가 어둡다. 충분히 이해되는 사안이다. 전술한 삶의 암울한 배경 탓. 그러나 작품 다수는 아울러 세속적이고 센슈얼하고 의혹적, 절망적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만약", 정말, 행여라도 천국에 가 있다면 그야말로 더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의 은덕일 것이다!

미우오슈는 더구나 범신론적 경향이 짙었다. 다년간 그리스 신화에 심취한 결과였다. 2003년 미국 출신의 둘째 아내 캐럴이 죽었을 때도 아내와 자신을 신화 속 인물로 비유해 시를 썼다. 죽기 전까지 계속 아내의 청동 조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미우오슈는 본래, 소련 점령 당시의 폴란드어권에 속해 있던,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나라 리투아니아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다. 모국어는 물론, 영어/불어/독일어/러시아어/히브리어 등에 유창했으나 늘 폴란드어로 작품을 썼고, 영미의 중세/근대/현대 시 작품들과 함께 구약 시편 전권을 폴란드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위엄의 찬양자'(시 '기도')를 자처한 그는 하느님 아들의 수난을 통해 알게 된 하느님께 큰 소망을 갖고 있었다.
 
시 '수호천사'에서 미우오슈는 이렇게 읊조린다.

나는 천사들의 존재를 전혀 믿지 않았지만 내 꿈이 바뀌었다,
요 언젠가 보물이 가득한 지하 동굴 한 군데를 발견했는데,
우리 함께 그 (보물) 자루를 옮기면서 그에게 부탁하길
그 꿈을 다시 한 번만 꿀 수 없겠냐고 했다-내게 평화를 준 그 꿈.
 
무어는, 여기서 미우오슈가 죽음을 비극 또는 삶의 낭비로 보기보다 "아직 열지 않은 보물", "풀리지 않은 신비"로 봤다고 풀었다. 죽음은 삶 속의 모든 대상처럼 발굴을 기다리는 잠재적인 보물이라는 것. 죽음으로 근접해 가면서, "위엄으로 이끌어 주는" 죽음의 신비를 보다 더 진지하게 탐구하느라 흥분스러웠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죽음의 신비'? '잠재적 보물'? 자못 철학적이고 시적인 평가다. 하지만 비성서적이다. 신비랄 것도 없이 죽음은 알량하고 뻔한 존재다. 죽음 자체의 미화는 위험하다. 그러다 보면 자살욕, 안락사 합법화와도 연결된다.
성경은 죽음을 '신비'의 존재라기보다 죄와 저주의 끔찍한 결과로 규정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했다. 쉐익스피어 식 "오, 달콤한 죽음이여! 어서 내게로.." 란 찬사는 죽음의 정체를 모르는 무지에서 온다.
 
주님은 죽음의 사슬을 깨뜨리셨다. 죄와 저주의 결과인 죽음을 영영 박살 내 버리셨다. 우리도 주님을 믿음으로써 죽음의 법에서 해방됐다(롬8:2). 그러기에 파울은 외쳤다. "죽음아, 너의 승리는 어디 있나? 죽음아, 네 독침은 어디 있나?"(코전 15:55/사역). 둘째 죽음은 영원한 불못(지옥)이다. 죽음을 미화하고 찬양하고 신비화 하는 시인들은 성경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문제인사들이다.

시 '하느님이 안 계신다고'는 인간 생명에 대한 경이감과 감사가 서려 있다고 풀이된다. 설혹 신이 안 계신들 인간을 경시할 건덕지가 못 된다는 것.
 
하느님이 안 계신다고
모든 게 다 인간에게 허용되진 않는다
그는 여전히 자기 형제의 지킴이인 데다
하느님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 형제를 슬프게 하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미우오슈는 시인으로서 신적 소명 의식의 성취감을 추구한 듯 하다. 공포의 세기를 지나며 시를 쓰도록 "부르셨음"을 믿었다. 카톨맄 용어를 빌린다면 시적 사제로서의 '성소'를 받은 셈.

그의 시 '기도'를 보자.
 
 아흔 살에 다가가면서도 아직 희망을 갖습니다 / 그것을 알리고 말하고 불쑥 소리낼 수 있는 // 사람들 앞이 아니라도 최소한 님 앞 / 곧 나를 꿀과 쑥으로 기르시는 분 앞에서 / 난 부끄럽습니다, 마치 님을 위한 어떤 특별한 공로라도 있듯 / 님이 날 보호하실 줄 믿어야 하기에 // 나는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밤중 막사 속에서 / 그것을 향해 기도하던 수용소 사람들 같았습니다 // 난 소원을 아뢰었고 님은 황송하게도 응답하셨습니다  /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지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 그러나 연민 속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기적을 빌 때는 / 하늘과 땅은 늘 그렇듯 침묵했습니다 // 나는 어떤, 위엄의 숭배자입니까? / 내가 종교를 나 자신처럼 약한 이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 촘스키 신부님 학급에서도 가장 덜된 사람인 저는 / 이미 내 눈길을 한 운명의 휘도는 소용돌이에 고착시켜 놨습니다 // 이제 님께서 내 오관을 서서히 닫아 내리시니 / 난 어둠 속에 누워 있는 늙은이입니다 // 시를 쓰며 늘 앞으로 달려가도록 / 나를 억눌러 온 그것에 넘겨진 늙은이 // 리얼하고 상상된 죄책감으로부터 나를 풀어주소서 / 님의 영광을 위해 고난받았다는 확신을 주소서 // 죽음의 고민의 시각에 나를 주님의 수난으로 도우소서 / 세상을 고통으로부터는 구해내지 못한 그 수난으로.
 
이 시에서 적어도 소명에 걸맞은 구원의 확신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신의 존재가 늘 의혹시 됐던 수녀 테레사처럼, 단지 카톨릭에게서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애타는 탄원과 절규 뿐! 참된 신자라면 죽음의 고민의 시각에 도움받을 것은 영광과 부활에 대한 확신이다. 이것 없이 어렵다. 아무리 위대한 시인도 죽는 순간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삶의 끝이 초라해져 버리고 만다. 그것이 영적 법칙이다.

미우오슈는 죽기까지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맸다.

내가 죽을 때 세상의 내장을 볼 것이다 / 새와 산, 석양 너머 저 편 / 해독(解讀)되길 기다리는 참된 의미를. -시, '의미'(1991년)에서-  

그러면서 그는 거기에도 의미란 게 없다면 '낱말' 하나가 남아 있을 것이라며 그것은 "부르짖고 항거하고 소리 지르는 지칠 줄 모르는 메신저"라고 시사했다. 

위대한 시인을 단지 구원관만을 중심으로 조명한다는 건 너무 단편적인 시각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구원은 크리스천의 문학 내지 기독교 문학의 기본 바탕이 돼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