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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모세오경

[창 26] 이짜크의 삶의 도전과 번영 (1)



바탕본문: 창세기 제 26장


사람은 살아 가면서 누구나 도전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고 새 삶을 산다는 것..비록 은총과 평화, 온갖 좋은 것이 약속되고 또 주어지는 삶이지만, 언제나 조건에 구애 받지 않고 늘 평화가 지속되는 건 아닙니다. 
거듭나면 내 속사람 곧 나의 영은 항구적인 평화를 누리지만, 몸과 맘은 늘 세상 환경 속에서 수시로 부대끼고 도전을 받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우리 누구나 잘 아는 믿음의 사람-아브라함의 아들, 이짜크(이삭)이죠.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계시로 약속된 아들로 태어났고, 미래에 약속된 후손의 선조로 살아가던 사람입니다.

이름 '이쯔하크'는 '웃음'이란 뜻입니다. 본래는, 하나님께서 늙은 사라가 아기를 낳게 해 주신다니 사라가 기가 차서 나온 웃음이었지만, 정작 아기를 얻고 나서는 기쁨과 행복, 만족의 웃음이었지요.

그러나 이짜크에겐 늘 웃을 일만 따른 것은 아닙니다.
그의 삶의 구석 여기저기에 숨은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짜크의 삶을 보면, 그는 이름처럼 온유한 사람이었지요.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용맹스러운 전사 스타일도 아닌 듯 하고..늘 묵묵히 참고 견디며 나아가는 스타일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그를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려고 침울하게, 말 없이 데려갈 때도, 아들 이짜크는 조용히 따라가면서 "번제용 땔감은 있는데 바칠 제물은 왜 없나요?"라고 한 마디 물었을 뿐,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하고 칼끝으로 죽이려 하기까지 아무 항거도 말도 없이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묵묵히 끝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어린양 예수 크리스토를 상기시키는 대목입니다.

곧, 이짜크는 하나님도, 믿음의 아버지도 묵묵히 신뢰하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우리도 이짜크처럼 묵묵하고 바위 같은 믿음의 사람이길 원합니다!

이런 사람을..하나님이 안 지켜 주시고 누굴 더 지켜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정녕 지켜 주실 터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사람이 늘 평안하고 안락하고 도전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영혼과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니, 아무 염려나 걱정 없이 마냥 편하기만 할 거 같은데..그렇지 않지요.
사람이 편하기만 하면, 고인 물이 썩듯 부패하기 쉽습니다.
 

이짜크에게도 중요한 도전이 닥칩니다.
이럴 때 신앙인은 믿음에 단련(연단)을 받게 됩니다.

본 장에 나타난 바, 이짜크가 받는 도전으로는 우선 가뭄이 있습니다.
당시는 이짜크의 두 아들-에사후(에서)와 야콥(야곱)-이 퍽 자랐을 때라, 그의 나이 70세 이상이던 때였지요.

옛날 아버지 아브라함 당시에도 큰 가뭄과 흉년이 있었는데, 또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가뭄..흉년..믿는 사람에게도 큰 도전이지요.

왜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에게도 이런 재난이 찾아들까요?
하나님이 가뭄과 흉년을 좀 막아 주시면 안될까요?
흉년 뿐 아니라 세상의 온갖 자연재해와 재앙이..신자들에게만은 좀 안 들이닥치도록, 하나님이 좀 미리미리 막아 주시면 안될까요? 
 
성경을 보면, 그렇게는 안 되는 거 같습니다.
가뭄은 아브라함 때도, 이짜크 때도, 야콥 때도 계속 들이닥치곤 했거든요.

먼 훗날, 아브라함의 직계 후손의 하나인 엘리멜렠-나오미 가정에도 가뭄은 닥칩니다(구약 뤁 서=룻기 참조). 그 결과 이웃나라 모아브로 피신했다가 거기서도 모질고 어려운 환난 끝에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고 다만 '뤁'이라는 신실한 이방인 며느리를 얻어 귀향합니다. '나오미'란 이름은 기쁨이란 뜻이지요. 그런데 나오미는 이름 같은 삶이 아닌 거 같아 귀국하면서 '마라'(고초/쓰디씀)로 자처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신실한 사람들에게도 고난과 모진 고초와 도전이 따릅니다.
그것이 세상이기 떄문이지요.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그런 시련을 허용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겐, 도전 많고 험난한 이 세상은 하나의 훈련장입니다.

엊그제 뉴스를 보니, 사관학교 신입생도가 장교가 되기까지 엄청난 훈련을 겪더군요. 깊은 단잠에 들 시각에 예고 없이 마구 깨워 집합시키는 수면 이기기 훈련, 가파른 산 정상을 몇 시간에 걸쳐 구보로 오르내려야 하는 훈련, 겨울에 찬물에 입수하여 한동안 견뎌야 하는 등 인내력의 한계를 테스트 하는 온갖 극한/극기 훈련을 실시한답니다.
자칫 한 눈 팔거나 한가롭게 지내다간 낙오하기 쉬울 터입니다!

믿는 우리에게도 그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정병(精兵: 우수하고 강한 군사)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잘 아는, 고대의 의인 욥도 재산을 거의 다 잃고, 자녀가 몽땅 죽고, 자신까지 중한 피부병을 앓는 등 정말 엄청난 시련을 연거푸 겪습니다(구약 욥서=욥기 1-2장 참조). 그러나 그 시련을 통해, 용광로를 거친 금광처럼 믿음이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전보다 더 좋은 것으로 배가시켜 주십니다. 행위가 따르는 믿음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급입니다.
그렇습니다! 입증되고 탄탄한 믿음엔 상급과 보상이 기다립니다. 


이짜크는 가뭄을 만나자 옛날 첫 가뭄을 만났던 아버지 아브라함 때를 추억해 봅니다.
당시 이짜크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이지만, 부모로부터 얘기를 들어 익히 알고 있었을 터입니다. 첫 흉년 당시 아브라함 일가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채 남쪽 미쯔라임(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위경에 처하게 됩니다.

이짜크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가뭄을 견디다 못해 우선 가뭄의 피해가 가장 적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바닷가 케라르(그랄) 왕국으로 가서 그곳 아비멜렠 왕에게 임시 거주 허락을 받습니다. 케라르는 펠레쉩(불레셋) 족의 나라였지요.

그러자 하나님은 직접 이짜크에게 나타나 그를 경고하십니다. 
아브라함-사라가 미쯔라임에서 만난 사태의 악순환을 미리 막기 위해섭니다.

지금은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갖고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성경이 없었기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몸소 스스로 당신을 보여 주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질 않지요. 구약 성도들에게 이따금 나타나시곤 하신 하나님은 바로 성삼위일체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이신 성자님이이셨습니다. 훗날의 예수 크리스토님-바로 그 분이죠! 아담/하와도 그 분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짜크에게 미쯔라임(에짚트)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미쯔라임은 당대의 대국이고 풍요한 나라이지만, 거기 눌러 앉아 안락하게 살다 보면, 세상에 젖어 살기 쉽고 그러다 보면 믿음을 잃기가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예호봐(=야웨)님 대신 미쯔라임의 제신들을 섬길 우려마저 없지 않습니다.
더구나 부모인 아브라함-사라가 미쯔라임 하향(下向) 위기를 한 번 겪은 다음이니 오죽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짜크에게 우선 언약을 상기시키십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면서 그에게 하셨던 약속, 장차 이스라엘이라는 큰 나라를 이룰 뿐더러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해 마침내 천하 만민이 복 받게 되리라는 그 약속을 되풀이 하십니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거듭거듭거듭.. 입력(input)하셨던 말씀이지요.

언약!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약속-구약과 신약의 모든 것입니다.
이 약속들을 믿고 이 약속이 마음 속에 머물면, 우리는 그 성취를 보장 받게 됩니다.
실제로 메시아-예수 크리스토를 믿고 모시면, 우리는 성경의 모든 약속을 고루 성취받게 됩니다.

이 약속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기에 결코 흔들림 없이 든든한 바위 같은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바위, 예수 크리스토는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그러므로 약속하신 그 분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십니다.
약속한 저 쪽은 항시, 영원히, 완전히, 절대 약속대로 지킴이 보장되는 쪽입니다.

그렇다면, 관건은 이 쪽에 있는 나-신자가 그 약속을 믿고 따르냐, 안 따르냐..이것입니다. 사람은 늘 흔들리지요. "나는 흔들리지 않으리..시냇가 나무처럼" 하는 노래가 있지만, 늘 흔들리는 게 사람입니다. 세상 환경 속에 이리저리 부대끼다 보니 흔들리기 쉽습니다.

이짜크도 비록 바위처럼 묵묵한 믿음과 인내의 사람이지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인지라 하나님은 직접 나타나 경고하고 약속을 상기시키시며 정답게 타이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해야 바른 신자입니다.
약속을 붙들라시면, 붙들어야 합니다. 이룰 때까지 붙들고 "늘어져야" 합니다.
흔들리지 말라시면,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달콤한 유혹이 손짓하는 남쪽 나라 미쯔라임으로 내려가지 말라시면,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엔..신자를 녹이고 압도해 제 것으로 만들려는 싸탄의 온갖 간교한 술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쪽의 미쯔라임-그곳은 우리를 손짓하고 유혹하는 세상적 '풍요'와 환락을 상징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어기고 남쪽으로-미쯔라임으로 내려가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막으시다가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아브라함은 미쯔라임 사람들이 예쁜 아내 사라를 보고 탐을 내어서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움에 휩싸여,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가 하마트면 아내를 파라오 왕궁에 영영 뺏길 뻔 했습니다. 사라는 실제로 파라오의 침실에 끌려가 왕비가 거의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 하나님이 친히 구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도전, 삶의 흉년을 만날 때 잘 처신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것을 잘 견디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는 온갖 고통과 어려운 환경을 갖다 주고는, 빠듯하게, 한 귀퉁이에 빠져 나갈 만한 인본적인 유혹의 출구를 보여주면서 그리로 빠져 나가도록 우리를 몰아 세웁니다.
흉년이라는 긴 '터널'을 피할 미쯔라임이라는 '출구'가 빤히 내다보이는데, 그곳은 마귀의 손길이 기다린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장 손쉽고 편해 뵈는 '출구'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미쯔라임으로 내려가지 않고 내 약속을 충실히 붙잡는다면, 약속 성취라는 큰 복을 주신다고!
우리가, 우릴 향해 미소 지으며 손짓하는 유혹의 땅 미쯔라임으로 가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의 약속만 붙들 때,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머물 때, 마침내 그 약속이 성취된다고!


여기, 여러 모로 상호역학적 관계가 성립됩니다.

우리가 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방법-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속 성취를 받는 길-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방법-그것은 유혹에 빠지지 않고 말씀을 떠나지 않고 그 속에 계속 머무는 것입니다. 주님 교훈 그대로, 우리가 늘 말씀 속에 거하고, 우리 속에 말씀이 머물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세상의 온갖 도전을 극복하는 길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든든한 바위이십니다!
예수 크리스토는 우리 영혼의 단단한 닻이십니다.

예샤야후(이사야)는 노래합니다:
 
    님께서는 마음이 한결 같은 사람을 완전한 평화로 지키실 테니, 그가 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예샤야후=이사야 26:3 사역)


세상 유혹에 이리저리 부대끼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그 분의 말씀을 붙들고 그 분만 의지할 때 우리는 승리하며 그 말씀에 보장된 온갖 약속들의 성취를 맛볼 수 있습니다.


티엘티 독자들은 모두
믿음의 사람 이짜크처럼
꿋꿋이 주님 말씀을 붙들고 머물어
말씀 속의 약속 성취를 누리기를~

주 예수 크리스토의 이름으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