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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리뷰

재조명해 보는 링컨의 삶과 신앙(2)






이번 글은 흥미로운, 전기 자료 중심이다.

우리는, 십대의 링컨의 애환에 대한 원/근 투시를 통해 그를 단죄하기보다 그의 내면 세계의 진면목을 측정해 볼 수 있다.

십대의 링컨의 생활 배경에 대해 동정을 금할 길이 없지만, 아직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한계성 속에서, 주변 환경과 사회에 대하여 주로 부정적이었던 그의 반응에서는 철학적 윤리성은 몰라도 어떤 기독교성은 느끼기 힘들다. 물론 독자에 따라 보는 견해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옆그림: 울타리 나무를 쪼개는 십대의 링컨. 훗날 선거 캠페인 당시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울타리나무 쪼개는 링컨'(Lincoln, Rail Splitter)으로 부각시켰다.


십대의 링컨도 기독교인이라기보다 세속적 타인과 크게 별 다름 없는 젊은 개척자의 한 명으로 비쳐진다. 그에게 기독교가 상대적 영향은 몰라도, 절대적 영향은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독서열이 대단했던 그에게, 어쩌면 성경도, 훗날 성경에 대한 그의 상찬과는 달리 하나의 '애독서' 이상의 의미나 가치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십대의 링컨 역시, 희노애락 속에서 고뇌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고, 당대 상황 속의 제도적 기독교에 대한 반항아적 감정과 성경에 대한 존중이 충돌 내지 대비되는 모순이 엿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십대의 링컨도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다고 느껴진다.

독자들의 슬기로운 통찰과 판단을 기대한다.

 

십대의 문 앞에서


앞서와 일부 중복되지만..1816년 토머스 링컨은 켄터키를 포기하고 인디애나로 이주했다. 한 가지 원인은 노예제가 싫어서였다.

에이브 링컨은 어릴 적부터 얼굴과 생각이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많이 닮았다. 그래선지 에이브는 표정부터가 쉽사리 우울해 지곤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토머스가 더 많은 자녀를 원치 않았는지(?), 갖기가 불가능(?)했는지, 아무튼 당시로서는 가족 수가 너무 적어서 다른 집 아이들보다 훨씬 일을 많이 해야 하는 데다 대화나 질문, 공부 때문에 매 맞기가 일쑤였다.

특히 개척자 생활이었기에 엄마 낸시는 아들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엄마와 누나 새러는 요리에다 우유 짜기/젓기, 복잡다단한 빨래, 옥수수 밭갈이, 콩 말리기, 야간조명용 양초수지 마련, 흙 램프 만들기 등에 바빴다. 여가마저도 가족 의복, 담요/침대보의 봉제 등 끝 없는 노동으로 점철됐다.

따라서 꼬마 링컨이 할 일도 그만큼 많았다. 개척자들의 필수인 온갖 도끼일은 물론, 약 1마일 밖에서 큰 양동이로 물 기르기 등 자기보다 훨씬 웃 또래 아이들에게나 걸맞은 일들도 그에게 맡겨졌다.


죽음의 위기와 엄마

에이브는 어릴 때 두 번 죽다 살았다. 이 두 사건은 엄마 낸시와 간접적인 연관이 있다.

한 번은 동네 친구 어스틴 골래어와 들꿩 사냥을 나섰다가 좁은 통나무다리를 건너던 중 그만 미끌어져 깊은 물에 빠졌다. 둘 다 수영을 못하는지라, 물 밖의 골래어가 부랴부랴 긴 막대기를 찾아 내밀었고, 필사적으로 물 위에 떠 있던 링컨은 간신히 막대기 끝을 잡고 물가로 나왔지만 엎어졌다.
골래어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당시 링컨이 거의 죽은 줄만 알고 겁먹은 채 링컨을 이리저리 뒹굴리며 두들기고, 두 팔을 잡고 흔들어 물을 토하게 했다. 옷이 잔뜩 젖은 두 소년은 각각 엄마를 두려워 하며 걱정했다. 엄마가 자주 매질을 했기 때문이다. 골래어는 아빠보다 엄마를 더 무서워 하는 링컨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둘은 부랴부랴 햇볕 아래다 옷을 말렸다.

1818년 가을. 에이브가 곡식을 빻으러 방앗간에 심부름을 갔을 때였다. 늙은 암말이 제분기를 돌려 속도가 느렸다. 날이 어둑해져 안달이 난 링컨은 말이 한 바퀴 돌 때마다 채찍으로 후려 갈기며, "빨리 해라, 이 늙은 말괄량이.."라고 소리쳤다. 신경질이 바짝 난 암말은 급기야 링컨의 이마빡을 냅다 걷어차 버렸다.

에이브는 그 자리에 나동그라져 의식을 잃었고, 이마엔 선혈이 낭자했다. 제분소 주인은 급히 사람을 보내어 링컨의 아빠 토머스를 불렀고, 토머스는 이미 숨진 것으로 뵈는 아이를 마차에 태워 돌아왔다. 에이브는 밤새 의식이 없었다가 이튿날 동틀 무렵에야 깨어나 중얼거린 첫 마디는, 어제 방앗간에서 미처 못 끝낸, "이 늙은 말괄량이 년아!"였다. 

엄마 낸시는 이때 링컨의 부상에 크게 개의치 않은 듯 하다. 그녀로서는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낸시는 아들이 천만다행으로 죽지 않은 것을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이며, 에이브를 위한 신적 섭리(divine Providence)의 또 다른 계획 때문이라고 풀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교계 일각에서 크게 유행하던 이른 바 '숙명론'의 영향이다. 
   "아무 것도 섭리의 계획과 실행을 막을 수 없단다. 될 일이면 되는 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라고 낸시는 아들에게 설명했다.

링컨의 전기 '링컨의 숙녀들-제16대 대통령 삶 속의 여성들'의 저자 다널드 윙클러는 다음과 같이 타인의 말을 인용했다:
    "낸시 링컨의 이 덤덤한 반응은 놀라운 신앙의 표현인가, 아니면 아들에 대한 관심의 결핍인가?"

물론 숙명론이 참된 형태의 신앙이라면 전자일 수도 있겠으나, (후자의) 관심보다는 사랑 표현이 부족한 게 아닐까? 본 필자 자신의 어릴 적 경험으로 미뤄 볼 때 그렇게 생각된다.


개척 사회의 미신

낸시 행ㅋ스 링컨이 자녀들에게 전해 준 신앙은 바른 형태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개척시대의 다양한 미신을 성경 말씀으로 극복하지 못한 채 사로잡혀(haunted) 있었던 것으로도 드러난다. 

링컨에겐 평생 꿈과 미신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이 따라다녔다. 아홉 살 때까지 끼친 엄마의 영향이 아들의 일생을 좌우한 흔적이다.

창문 속을 날아다니는 새, 아이 머리 위에 내뿜은 말의 숨결, 사냥꾼의 앞길을 가로지르는 개 등은 모두 낸시 링컨과 그녀의 개척자 이웃에겐 '불길한 조짐'이었다.
특히 하늘의 달은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울타리용 나무를 쪼갤 때는 반드시 달빛 아래서 해야 했고, 감자는 달빛이 가려질 때 심었다. 지면에다 열매를 내는 나무와 식물 심기는 만월 때만 했다. 비누는 꼭 달빛 아래 제작됐고, 반드시 정해진 한 사람이 한 방향으로 저어야 했다.
어떤 일을 금요일에 시작하는 것은 "끝 없는 재앙의 연속"을 의미했기에, 금요 착수는 절대 금물이었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들은 침대 아래 도끼 한 자루를, 베개 아래는 칼 하나를 두면 진통이 덜하다고 믿었다.

어린 맘에 엄마로부터 이런 얘기들을 놀라움 속에 전해 들은 링컨은 꿈/미신/비전/조짐의 의미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그는 한평생 꿈 탓에 당혹하고 혼미스러워 했고, 자신의 제어력을 초월한 어떤 세력의 통제를 받아 이끌려 다닌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낸시는 아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기도 했다. 링컨의 어릴 적 가장 정든 추억거리의 하나는 엄마가 겨울에 벽난로 주변에서 식구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읽어 주던 때였다. 훗날 링컨의 주장으로는 자신의 개인 가치관이 성경에서 나왔다고 한다. 
    "4복음서에 기록된 근본 진리들..내 어머니의 입술로부터 내가 처음 들은 그것들은 나에게 도덕개념으로 자리 매김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근본 진리들은 생애 후반까지 가치관/철학적인 영향이라면 모를까, 그의 성경적 믿음으로는 연결되지 못했다.


조용한 서러움과 눈물

학자/전기작가들에 따르면, 낸시는 남편이 어린 에이브에게 가하는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막지 않았거나 막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시리즈 전회에서 비쳤듯, 토머스가 모종의 동기로 필시 아내의 정절을 의심했고, 따라서 에이브가 친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을 품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아울러 당시 이웃에 나돌던 루머에 따르면, 토머스 자신, 후기에 성불능자가 됐을 가능성이 추론되기도 한다. 그는 나중 재혼 후 젊은 후처(샐리 즉 새러 조운즈)와의 사이에 자녀가 생겼을 만도 하건만, 전혀 없었다.

토머스는 이웃에 대한 아들의 아이다운 궁금증과 질문에 답하긴커녕 심한 매질을 가해, 때로는 땅바닥에 쓰러뜨리기도 했다. 사촌 데니스 행ㅋ스에 따르면, 이 때 에이브는 소리 내어 울지 않고 다만 "조용한 눈물을 흘려 감정 표현을" 했다. 데니스는 1817년 링컨의 이웃에 이사를 온 당시 18세의 "말 많고 호감이 가는 외사촌형"이었다. 


최악의 슬픔은 1818년 가을, 엄마 낸시의 죽음으로써 찾아 왔다. 먼저 외숙 탐과 엘리저벹 부부가 죽고, 그들을 마지막까지 간호하던 엄마도 뒤를 따랐다. 에이브와 새러는 엄마를 간호하며 성경을 읽어 주기도 했다. 엄마는 링컨의 머리 위에 가냘픈 손을 얹고 아버지를 잘 대해 드릴 것, 하나님을 경배할 것 등을 유언으로 남긴 그날 저녁 숨졌다.

아홉 살 소년이 끝까지 지켜 본 엄마의 임종 모습은, 훗날 차례로 이어지는 여러 측근의 죽음들과 함께 평생 차마 감당키 어려운 트로마(trauma)를 안겨 줬다. 더욱이 여태 엄마와 함께 먹고 자고 지내던 방안에서 아빠/외사촌 형과 함께 셋이서 엄마의 관을 짜야 했던 상황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데니스 행ㅋ스는 훗날 회고했다:

    "..에이브는 엄마가 죽어간 비참한 모습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다."

자신도 부모를 다 잃어 갈 곳 없던 데니스는 이때부터 한 집안 식구로 링컨의 형이 되어 함께 살아갔다.

그 해 겨울은 링컨네 아이들에겐 유난히 혹독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에겐 용기를 위한 위로와 격려, 따스한 온정이 절대 필요했건만, 토머스는 그럴 맘도 능력도 없었다. 당시 11세인 새러가 이때부터 엄마 대신 주부 노릇을 했지만, 식구들이 일터로 나가고 나면 혼자 외로웠다. 데니스와 에이브는 누이를 위로하느라 새끼 너구리(라쿤)와 거북이 등을 갖다 줬고, 어린 사슴도 한 마리 잡아 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필자가 추가로 발견한 사실은, 죽은 엄마 낸시를 위한 추모 의식을 뒤늦게나마 치른 것은 9세였던 어린 에이브의 편지 때문이었다는 것. 그는 고향 켄터키 시절 옛 교회의 담임목사 데이빋 엘킨스에게 편지를 보내어 추모식 집전을 부탁했고, 엘킨스는 이듬해인 1819년 봄, 약 100마일 길을 말을 타고 와, 낸시의 무덤가에서 몇 달 늦게나마 의식을 치렀다. 맑은 주일날 아침 치러진 이 장례식엔 놀랍게도 약 200명의 조객들이 참석했다. 목사가 마무리 기도를 할 때, 참석자 전원은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어린 에이브의 소원은 성취됐다.


'심리전기'를 활용, 링컨의 태도와 감정을 분석한 역사가 마이클 벌링에임은 어머니 낸시와의 관계로 볼 때, 링컨은 엄마에게 "버림 받았다"는 느낌 탓에 "여성들은 신뢰하거나 의존할 수 없는 대상으로 확신했을지 모른다"고 주장했으나 지나친 상상적 비약일 듯 싶다. 아무튼 링컨은 앞으로도 젊은 시절에 연이어 여성의 죽음을 대하게 된다.


그 해 여름, 에이브와 새러는 아빠 토머스가 켄터키로 새 아내를 찾아 떠날 때, 다시 한 번 버려진 느낌을 맛 봤을 수 있다. 더욱이 자녀를 도무지 다독일 줄 모르는 토머스였기에,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토머스가 무려 6개월이나 출타해 있자, 결국 아이들은 아빠마저 잃은 줄로 생각하기에 이른다. 실로 그들은 배고프고, 지치고, 지저분하고, 남루한 차림으로 내버려져 있었다. 에이브는 자기네가 곧 죽을 줄로 생각하고 두려워 하기도 했다.


계모에게 첫 인간 대우를 받다

이윽고, 아버지 토머스는 켄터키 엘리저벹타운에서 당시 31세인 새 엄마-새러(애칭 '샐리'. 이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샐리'로 통칭) 부쉬 잔스턴-과 세 식구를 데리고 돌아왔다. 전 남편 잔스턴과의 사이에 낳은 마틸다, 잔, 새러 엘리저벹 등이었다. 샐리는 우선 그동안 가히 거지 꼴이었던 링컨네 아이들을 비누칠을 하고 부벼 주고 해서 깨끗하고 말끔히 씻겨 줬다. 옷도 바느질로 수선을 해서 "다시 인간답게 보이도록" 해 줬다.

샐리는 가히 집안에 혁명을 일으켰다. 집안 전체를 깨끗이 정돈하고 새 남편에게 바닥에 새 마루를 깔게 했고, 새 문과 창문을 달게 했다. 에이브로서 더 바랄 수 없는 좋은 엄마였다. 상인인 잔 B. 헤엄은 "그(샐리)는 의심할 나위 없이 그(에이브)를 인간답게 대우해 준 첫번째 사람이었다."라고 전했다.  

새 엄마는 또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에이브의 옥수수껍질 침대를 부드러운 새털 매트리스로 바꿔줌으로써, 링컨의 마음을 단번에 확 사로잡았다. 샐리는 에이브에게 자주 미소 짓고, 껴안아 주고, 다정한 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아빠로부터는 들어보지도, 받아보지도 못한 그 무엇이었다.

샐리는 훗날 자신의 회고에서, "나는 그(에이브)에게 섭섭한 말 한 마디 한 일이 없었고, 그는 내 앞에서든 내가 아는 다른 사람 앞에서든 거짓말을 하거나 다투거나 욕하거나 불경스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링컨은 이 시절을 "즐겁고 행복한 소년시절"로 묘사했다. 링컨은 어머니로서의 부드러움을 보여 준 계모를 '마마'라고 불렀다.

샐리의 장려로, 링컨 부부는 아이들을 모두 당시 갓 개교한 동네 학교에 보냈다. 교실이 하나 뿐인 이 학교는 거칠고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은 아이들에게 반복교육을 주로 시켰다. 
에이브는 과거 켄터키 시절 짧은 두 학기를, 그나마 누나를 위한 동행에 가깝게 학교에 다녔다. 이제 그에겐 학업의 길이 좀 더 넓게 열렸으나, 아버지 토머스는 여전히, 그를 집에 되도록 머물러 두어 밭일과 가축 돌보기를 시키고 싶어 했다.
일 년 뒤 더 가까운 곳에 학교가 개교되자, 샐리의 적극적인 권유로 에이브는 6개월을 다녔다. 당시 에이브는 열 다섯 살이 됐다. 링컨은 훗날, 자신이 학교를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다녀서, 학교교육을 다 합해 봐야 고작 1년이 못됐다고 회고했다.

링컨은 주로 (아마도) 계모의 영향으로 창의적이고 민감한 사고력을 갖추게 됐다. 특히 개척사회에 공통된 악습과 불공정을 눈여겨 봤다. 동네 남자아이들이 살아 있는 식용거북의 잔등에다 뜨거운 숯불을 얹는 것도 못마땅히 여겨 꾸짖고, 거기 관해 글을 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링컨의 독서열과 독학

샐리는 링컨이 최대한 독학과 자수성가를 하길 바라, 글 읽기와 공부를 격려했다. 반면 토머스는 교육을 계속 경시했다. "사내아이란 일을 열심히 하고 튼튼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샐리는 켄터키에서 올 당시 가져온 여러 권의 책을 에이브에게 읽으라고 권했다. 존 버니언의 '순례자의 여정'(=천로역정), 대니얼 포우의 '로빈손 크루소', '벤저민 프랭클린의 삶', 메이슨 윔즈의 '워싱턴의 생애' 등이었다. 특히 자신과 비슷한 배경에서 자라 성공한 벤 프랭클린 전기는 링컨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전에도 링컨은 '이솦 이야기' 등을 읽었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특히 애독서였다. 링컨은 벽난로 곁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아라비안 나이트'를 형제자매들에게 큰 소리로 낭송하곤 해 주위를 웃겼다. 같은 책을 10여 회 읽어, 아이들이 내용을 줄줄 외우게 될 정도였다. 에이브는 자신의 다락 통나무 틈에 책을 한 권씩 끼어두었다가 아침이면 읽곤 했다.
밭일을 할 때도 한 고랑씩 끝내고 나면 말을 잠시 쉬게 하고 자신은 울타리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구절은 널빤지에 써서, 종이를 구해 써 둘 때까지 보관했다. 그런 구절은 다시 쓰고 다시 보기를 반복하면서 스크랲붘에 메모하는 습관을 유지했다.

데니스는, "나는 에이브의 열 두 살 이후 손이나 주머니에 한 권의 책을 갖고 있지 않는 때를 본 적이 없다"면서 "사내아이가 그렇게 읽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링컨은 "나의 최고 친구는 내가 읽은 적이 없는 책을 내게 건네는 사람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샐리는 실로, 어린 링컨의 상상력과 독학열, 비평적 사고를 일깨워 결국 나라 지도자가 되게끔 길을 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에 눈 뜨다

다른 사춘기 소년들처럼 링컨도 십대로 접어들면서 이성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구약의 연가인 '노래들의노래'(아가) 등 성경에 나타난 성적 행위에 관해 생각을 나누곤 했다. 이성에 대한 그의 호기심은 집안에 있는 세 소녀들의 존재 때문에 더욱 강화돼 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네 소녀들은 비쩍 마르고 훌쭉하고 수수해 뵈는 그에게 이렇다 할 매력을 못 느꼈다. 십대의 링컨은 '폴리'(리처슨)라는 소녀를 교회와 철자경연(스펠링 비)에 데려가기도 하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폴리는 훗날 십대의 링컨에 대한 회상에서 그를 "촌스럽고 인기 없는" 소년으로 묘사했다. 소녀들은 심지어 링컨 면전에다 대 놓고 조소했다. 그의 녹비(사슴가죽) 바지는 늘 짧아 다리뼈 아래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저런 동네 소녀들을 데리고 데이트를 시도했지만, 매번 '쫑크'를 먹었다. 너무 키 크고 볼 품 없어서였다.

훗날 링컨의 고용주였던 동네 최고부자 젠트리 가문의 예쁘고 상냥한 해너 젠트리는 "그(링컨)가 양파를 너무나 좋아하기에 역겨워" 사귀길 거부했다. 또 한 소녀는 링컨이 "조용하고 어색하고 검소해서 소녀들이 그에게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새러 러킨스는 말했다. "에이브는 날 한 번 교회에서 집으로 바래다 줬고, 내가 원했다면 그의 아내가 될 수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너무 별스러웠다"고.

링컨은 또, 집에서 약 1마일 반 북쪽에 떨어진 '우드 농장'의 예쁜 아가씨, 엘리저벹 우드를 사귈 기회가 있었다. 아버지 토머스가 우드네에서 사온 황소 '버크'가 줄을 풀고 본집으로 도망친 사건 때문이었다. 우드 씨가 소몰이용 밧줄을 내밀자 링컨은 엘리저벹을 의식하여 짐짓 "아녜요. 괜찮습니다. 녀석에게 본때를 보이러 집까지 타고 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우드 부녀가 지켜 볼 동안 링컨이 소 잔등 위에 훌쩍 올라타 양옆을 발로 툭툭 차 대자, 버크가 후다닥 질주하는 통에 오로지 떨어지지 않으려고 진땀을 흘리며 집으로 향하는 링컨의 비쩍 마른 뒷모습이 우스꽝스러웠는지 우드 부녀는 뒤에서, 배꼽을 잡았다.
링컨은 용케도 안 떨어지고 집에 도착해, "제가 녀석을 길들였어요, 아빠" 했지만, 그의 이 용감한 도전은 엘리저벹에게 이렇다 할 인상을 심지 못했다. 엘리저벹은 훗날 "그가 나랑 가까이 지내고 싶어 했던 걸 알아요. 하지만 전 관심이 없었지요. 너무 촌스러운 데다 발도 너무나 컸어요."라고 회고했다.

엘리저벹 털리는 처음으로 링컨과 몇 달간 사귀며 제대로 가까워진 사이였으나, 하도 친구들이 주위에서 "무자비하게" 링컨 흉을 보는 통에 그녀가 포기해 버렸다.
줄리아 에번스도 매력적인 소녀였다. 어느 날 링컨이 소모기(梳毛機)로 털의 보풀을 세우려고 인디애나 프린스턴을 방문했던 길에 초면인데도 공손히 인사하는 그녀를 본 순간 한 눈에 반해, 가슴을 두근대며 오매불망하면서 거기에 영주하고 싶을 정도였으나, 재회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누나 새러는 함께 놀고 있는 소녀들을 에이브가 성가시게 군다고 분개한 적이 있다. 
    "너, 부끄러워 해야 돼, 에이브. 넌 도대체 이 담에 뭐가 되려고 그러냐?"
링컨이 잽싸게 대꾸했다. "나, 미 합중국의 대통령이 될래."

때때로 이성에 관한 관심은 링컨의 독서욕과 맞물리기도 했다. 학교 교장이 15세의 매력적인 애너 로비 양에게 'defied'란 낱말의 철자를 묻자, 로비는 'd-e-f'까지는 댔지만, 그 뒤에 'i'가 오는지 'y'가 오는지 헷갈려 망서렸다. 그러나 링컨이 넌지시 집게손가락을 눈 앞에 대며 미소 짓는 모습을 힐끗 곁눈질 하고, 'i-e-d'라고 마저 대답했다.

애나는 "그는 배움이 덜 떨어진 우리들 가운데 유식한 소년이었다"고 추억했다.
그러나 링컨의 낭만점수가 당시로서는 빵점이었다. 어느 저녁, 애나와 함께 나란히 둑에 앉아 강물 속에 발을 담근 채 대화를 나누던 중 달이 서서히 떠올랐다. 링컨은 이 낭만스런 기회를 무시한 채, 우주천체에 관한 일대 강의를 시작했다.
애나는 세상을 영 모르는 에이브가 그런 천문학 지식에 넘친 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달이 지는 게 전혀 아니라 그렇게 보일 뿐이며, 지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회전한다고 해설을 이어갔다. 
   "지는 쪽은 달이 아니라 우리야. 달이 지는 것은 단지 환각일 뿐이지."

애나는 지식욕구가 충족됐지만, 분위기도 파악하지 않은 채 남의 기분을 영 무시하는 링컨에게 참다 못해 소리질렀다. 
    "넌 밥통이야, 에이브!"
둘의 관계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링컨은 나이가 더 들면서 여자 애들을 경원하기 시작했고 자연히 데이트 상대도 찾지 않게 됐다. 공부에 바쁘기도 했지만, 소녀들에게 자꾸 홀대와 모욕을 당하다 보니 그들에게 불편을 느꼈다고 계모도 추억했다.

대신, 그의 현란한 유머와 '농장 헛간 스토리'는 동네 농장 소년들에겐 인기 '짱'이었다. 더욱이 고기잡이, 씨름, 달리기는 물론 경마, 여우쫓기, 설탕끓이기, 양털깎기 등에서 선두를 내 준 적이 없어 실로 추종을 불허하는 1인자였다.

남자 성인들과 소년들이 두 팀으로 나눠서 하는 옥수수 껍질 벗기기 대회에서도 단연코 1위였다. 그러나 대회 끝에 하는 밤샘 댄스에서 링컨은 으레 파트너가 없었다.
속 붉은 옥수수 껍질을 벗긴 사람은 자기가 선호하는 소녀와 키스할 특권이 주어졌다. 동네 친구, 그린 테일러와 겨루다 이긴 링컨은 알아서 잘 헤아리기보다는 너무 솔직한 나머지 테일러의 여자친구에게 키스를 해 버렸다. 격분한 테일러가 주먹을 휘두르자, 둘이 얽혀 치고 받다 테일러가 옥수수자루로 링컨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낸 뒤에야 끝이 났다.
딴 소년들의 여자친구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체득한 사건이었다.

집안의 '연정'

링컨은 심지어 자기 이복누이 틸다(마틸다의 애칭)와 서로 연애 감정을 나누기도 했다. 에이브가 숲속에서 벌목 일을 할 때 틸다의 잔심부름 하나가 링컨의 점심도시락 날라 주기였다. 그러나 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가십이 동네에 나돌자, 계모 샐리는 에이브가 일터로 가기 전 틸다에게 점심준비를 시켰다.
하지만 틸다는 어느 날 몰래 에이브의 뒤를 따라가, "긴 얘기를 나누며 와일드한 뜀박질"을 즐겼다. 그녀가 짐짓 도망하는 에이브를 바짝 따라 붙어 그의 등에 정면으로 돌진하면서 둘 다 나동그라졌다. 순간 그녀의 발이 에이브의 날카로운 도낏날에 닿아 피가 콸콸 솟구쳤다. 공포에 휩싸인 에이브는 부랴부랴 자신의 속옷을 찢어 그녀의 상처를 둘둘 감아 싸맸다.

    "틸다, 엄마한테 뭐라고 말하지?"
    "내가 실수로 베였다고 말할게. 사실 아냐?"
    "맞긴 맞아. 하지만 그게 이실직고는 아니잖아, 틸다? 자초지종을 다 말씀드려. 그 나머지는 네 좋은 엄마께 맡기고."

엄마 샐리는 이실직고한 틸다를 힐책한 뒤 두 번 다시는 에이브를 따라가지 말도록 경고했고, 딸은 복종해야 했다.

한편, 에이브의 외사촌형 데니스 행ㅋ스는 링컨의 또 다른 이복누이 새러 엘리저벹에게 열정적인 관심을 갖던 끝에 그녀 나이 15세 때 둘이 결혼, 링컨 농장에서 약 반 마일 떨어진 곳에다 농장이 딸린 거처를 마련했다.


악화되는 부자지간

그 결과 일손이 줄어 들자, 당시 시력이 약해진 토머스는 의붓아들 잔을 에이브보다 더 아끼고, 에이브에겐 주로 경작과 괭이질, 울타리 세우기, 식육 마련 등 농장일과 벌목을 맡겼다. 토머스는 또, 이웃 농장에다 하루 25센트 씩 품삯을 받고 에이브를 그의 도끼와 함께 '대여'하기도 했다.
당시 법으로는, 자식이 21세가 되기까지 모든 품삯을 가장이 챙길 수 있었기에, 토머스가 그렇게 했지만, 링컨은 훗날 법률가가 된 뒤, 그런 제도를 "조직적인 강도질"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한 사람이 뙤약볕 아래 종일 나가 강제로 일할 동안 한 명은 모든 이득을 챙긴다는 개념에 여생 동안 분노를 금치 못했다. 아버지에 대하여 쌓여 간 링컨의 이 원망과 적개감은 사라질 줄 몰랐다.

둘 사이는 나날이 악화돼 갔다. 에이브도, 토머스 링컨이 과연 친아버지일까 라는 의혹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에이브는 아버지 토머스가 어떤 사고나 우연한 계기로 성불능자가 됐다는 루머를 동네서 어렴풋이 들었다. 토머스는 밭에서 일 대신 독서를 하는 에이브를 매질한 적도 있었다. 적어도 토머스의 사전에는, 적어도 에이브만큼에겐, '휴식시간'이란 글자가 없었다.   
 
토머스는 링컨의 책을 자주 감추거나 멀리 던져 버려 아내와 아들을 황당하게 만들곤 했다. 링컨의 사촌형제 A.H. 채프먼은 "토머스는 소년으로서의 에이브러햄을 배려해 준 적이 거의 없었다"고 전한다. 부자 간의 성미와 가치관, 능력과 동기, 야망은 모두 정반대였고, 상호신뢰감이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부자지간의 갈등은 교회출석 문제로 비화됐다. 아버지/어머니가 다니는 리틀 피전 크맄('작은 비둘기 골짝'이라는 뜻) 침례교회 출석을 에이브가 거부하자, 부자 간의 날카로운 대립 상황이 불거진 것.
계모 샐리는 말한다: "에이브에겐 특정 종교란 게 없었다."

에이브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예방하는 차원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사찰(관리인)의 한 명으로서 마루를 쓸고 촛불을 켜고 했지만, 결코 교인이 되진 않았다.


링컨의 황당한 복수극

1826년, 친누나 새러, 이복누이 틸다가 각각 결혼하자, 링컨의 외로움은 한층 배가됐다. 누나 새러는 명석한 데다 명랑하고 매력적인 여성이어서 더구나 아쉬웠다. 1828년 1월 20일 한 겨울에, 새러가 초산의 모진 진통을 겪지만, 둔한 남편(애런 그릭스비)은 처음에 통 종잡지를 못했다. 뒤늦게야 부랴부랴 눈길로 아버지 집으로 달려가 황소 두 마리가 끄는 썰매에다 사슴가죽으로 싸맨 새러를 태워, 장인 토머스의 집으로 향했다. 의사를 불러서 도착했지만, 만취 상태였다. 산파를 불렀지만, 너무 늦게 왔다. 결국 새러는 난산 끝에 숨지고 아기는 사산했다. 그녀 나이 불과 20세였다.

매형인 애런 그릭스비가 당시 훈제소 문간에 서 있던 에이브에게 다가갔다. 뭔가 불안을 느껴 무슨 일이냐고 묻는 처남에게 "누나가 방금 죽었어.."라고 전하자, 링컨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누나 새러는 팔에 아기를 껴안은 채 교회 묘원에 묻혔다. 누나의 조산 돕기에 매형이 소홀했던 자초지종을 알고 나자 링컨의 깊은 침울은 분노로 바뀌어, 매형에게 복수하려고 친구들과 음모를 꾸민다.

매형의 두 아우인 그릭스비 형제들-촬즈와 루벤-이 합동결혼식을 올렸을 때였다. 두 쌍의 신랑신부가 본가로 돌아오자, 형제의 아버지는 댄스파티가 곁들여진 화려한 개척시대형 피로연을 베풀었다. 파티의 그랜드 피날레는 신랑신부들을 직접 침실로 "들여 넣는" 것.

파티가 끝나 두 쌍의 신랑신부가 각각 자기네 침실로 끌려 갔고, 사방의 촛불들이 꺼지자 자기 아내를 침대로 끌어 들이기 전, 링컨은 미리 친구를 통해 둘의 방을 바꿔치기 해 버렸다. 아슬아슬한 순간, 진상을 발견한 형제의 어머니가 위층으로 서둘러 올라가 소리쳤다. 
    "맙소사, 루벤! 넌 지금 찰즈의 아내랑 침실에 들었어!"

형제는 깜짝 놀라 잠옷바람으로 방 밖으로 튀어 나왔고, 파티 끝은 엉망이 돼 버렸다.

정작 음모의 장본인인 링컨은 두 형제를 무지막지하게 조롱한 내용의 '루벤 일대기'라는 풍자시를 써서 동네에 돌렸다. 사건은 당일 '파티'로 끝나지 않고, 그릭스비 4형제의 막내인 빌리가 링컨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링컨은 자신이 상대보다 너무 커 불공평하니까 거절한다고 대답했다.

에이브의 이복동생 잔 잔스턴이 신청에 응해 치열한 격투를 벌인 끝에 잔이 수세에 몰려 크게 부상 당해 피를 흘리자, 링컨이 협공에 나서서 빌리를 번쩍 들어 저만큼 내던져 버렸다. 눈이 뒤집힌 양측 사람들이 가세해 일대 난투극을 연출했다. 개척시대에 흔한 와일드 상황이었다. 


 상류층 소녀와 교제하다

이성에 대한 집착을 아직 버리지 않은 링컨에게 이번엔 재색을 겸비한 17세의 요조숙녀가 근접해 왔다. 켄터키 행캌 카운티의 '일라이 트래셔' 농장에서 열리는 옥수수 껍질 벗기기 경연대회까지 동행해 달라고 요청해 온 것. 링컨은 황홀경에 잠겨 들었다. 대회 장소는 바로 오하이오 강 건너 편에 있었다.
고동색 곱슬머리에다 당대 숙녀의 면모를 고루 갖춘 소녀의 이름은 '캐럴라인 미커'였다. 미커는 강 언덕 위의 고급 저택에서 숙부인 치안판사 새뮤얼 페이트 네와 함께 살고 있었다.  

캐럴라인이 링컨을 알게 된 것은 흥미롭게도, 링컨이 잔 딜즈의 페리(나룻배) 사업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페이트 판사 사저로 소환돼 심문을 받을 때였다. 당시 해당 지역에서 나룻배 운영권을 독점하고 있던 딜즈는, 링컨이 인디애나 쪽에서 강 한 가운데 있는 기선으로 한 고객을 나룻배에 태워 날랐다는 소문이 매우 불쾌했다.

켄터키 주정부가 당시 해당 지역을 자체 영역으로 지정해 놓고 있었기에, 링컨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당시 20세였던 링컨은, 자신이 한 일은 도움이 필요한 승객을 지나가던 기선으로 태워 준 것 뿐이라고 항변했다. 딜즈가 단지 그 자리에서 없다는 이유로 기선을 놓쳐야만 하는 승객의 안타까움을 앉아서 바라보기만 하는 건 불공정하다는 게 링컨의 자기 변론이었다. 훗날의 법률가 자질이 여기서 이미 나타난 셈이랄까.   

페이트는 "자네가 옳아!" 하고는 소송을 기각해 버렸다. 링컨의 답변을 곁에서 듣고 있던 캐럴라인이 강까지 링컨을 바래다 주면서 그 다음 주의 옥수수 껍질 벗기기 대회를 언급하면서 "참가할 수 있으세요?"라고 미소로 묻자, 링컨은 긴장한 나머지 혀가 절반 굳어 버린 '예스'로 답했다. 
이윽고 대회에 출전한 링컨은 캐럴라인과 키스할 기회를 노리면서, 오로지 붉은 옥수수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끝내 하나도 찾지 못하자, 대신 캐럴라인이 부랴부랴 하나를 찾아 몰래 건넸다. 링컨은 모두에게 이것 보란 듯 옥수수를 높이 쳐 들어 보이고, 캐럴라인에게 있는 점잔을 다 빼며 키스했다.

둘의 교제는 1829-30년 겨울까지 이어졌다.


다시 일리노이로

그러나 겨울이 지나자, 토머스 링컨은 죽은 아내 낸시의 사돈 댁으로부터 일리노이주의 풍부한 토지를 쉬운 조건에 구입할 수 있다는 소문에 다시 이사를 가기로 결심한다. 토머스는 결혼 이후 4번 이사를 다녔지만 아직도 작황은 여의치 못했다. 

에이브가 작별 인사 차 연인을 방문했을 때, 캐럴라인 미크가 "날 데리러 돌아와요"라고 하소연했지만, 링컨은 아무 약속도 하지 않는다. 이 지체 높고 잘 나가는 상류층 가문의 아가씨가, 내 놓을 것 하나 없는 자신에겐 걸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830년 3월. 토머스는 현 토지와 가축, 옥수수 등을 팔고 두 필 씩의 황소가 끄는 두 대의 왜건(우마차)에 총13명의 식구를 태우고 얼마 안 되는 남은 가산을 싣고는, 일리노이까지 200마일 길을 떠났다. 물론 에이브는 한 대의 왜건을 몰고 갔다.

이윽고 목적지인 생어먼 강의 북쪽 강변에 도착했다. 모두들 일손을 모아 새 정착지 일구기에 바빴으나 기후가 좋지 못했다. 그 해 성탄절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해 12피트나 쌓였고, 영하 10-20도의 매서운 날씨가 9주나 지속됐다. 미처 겨울 준비를 못한 링컨네는 겨우내 캐빈 안에 꼼짝 없이 갇혀 지내면서 단지 옥수수죽과 빻은 밀가루 음식으로 연명했다.

봄이 되자 이번엔 눈 녹은 홍수가 온 땅에 범람했다. 링컨은 일리노이에 도착한지 일 년만에, 앞이 내다 보이지 않는 거칠고 암담한 농장 일에서 이젠 손을 털고 독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22세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