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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영화&드라마

영화평: '일라이의 서(書)'




장르: 종말 과학공상 영화


9.11 테러 참사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종말론 영화가 많이 쏟아져 나왔다. 대표적인 예는 '2012년', '더 로드'..등.
안 그래도 기독교 과학공상소설 '뒤에 남다'(Left Behind) 시리즈를 비롯한 종말 관련 도서들도 있어 더구나 무드를 잡아왔댔다. 할리우드는 근래 기독교 영화 제작 시도에도 참여해 왔다. 과거 90년대말의 '오메가코드' 시리즈, 최근의 '크리스토의 수난', '거인 맞닥뜨리기' 등이다. 
    
'일라이의 서'(the Book of Eli)는 대중의 입맛에 맞출 목적으로 그런 종말 취향과 기독교적 요소, 서부 활극, 사무라이 무술 영화 등을 '짬뽕'한 인상이 짙다. 끝 없는 사막 같고 유령 도시 같은 다크하고 황량한 배경에다 나머지는 주로 무술과 결투, 폭력으로 다 메웠다.


때는 지상종말을 고하는 '섬광' 곧 대 핵전쟁이 있은 지 30년. 옛 미국 문명 도시의 폐허를 가로질러가는 나그네가 있다. 검은 선글래스를 끼고 군용 캔버스 레인코트에다 뭔 손잡이 같은 게(그의 검!) 빠끔히 내다뵈는 등가방을 메고 가는 이 사내는 실은 30년간 이렇게 오직 한 곳 -서쪽 끝을 찾아 방랑해 왔다. 

첫 장면에서, 핵 피해자 시신 사이를 뒤지는 털 없는 들코양이를, 방독면 뒤에 숨소리를 감춘 채 활을 쏘아 잡는다. 한 폐가 안에서 불을 피워, 괭이고기를 저녁거리로 구워서 쥐와 나눠 먹는다. 그의 유일한 엔터테인먼트는 책 읽기와 MP3 플레이어. 옛 복음송 가수 자니 캐쉬 등의 노래를 듣는다.
장면이 계속 진행되면서 그는 현대의 검객인 양 뛰어난 무술로 '방어'를 명목 삼아 순식간에 여러 명의 생존자 악한들의 몸을 절단하여 잠재운다. 문명도시는 날강도/강간자/식인족들이 날뛰는 소굴이 돼 있다.

단독 여행을 계속하던 그는 폐허더미 위에 적당히 건설된 한 도시에 도착해 필요한 물물교환을 하고, 필수적인 식수를 얻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방어와 간접 응징을 겸한 연쇄 살인을 자행한다. 그의 남다른 행동과 자세, 일당백의 무예를 눈여겨 본 그 도시의 시장격인 독재자 '카네기'(게리 올드맨)는 이 도시에 머물러 달라며 그에게 하룻밤의 환대를 베푼다. 꽤 풍성한 음식과 여자(자기 의붓딸 '솔라라')를 제공한 것.

사실 독재와 영역 확장에 미쳐 문맹인들을 지배할 지식 습득을 위해 부하들을 시켜 책이란 책은 모조리 빼앗아 오게 한다. 자신은 무쏠리니 전기 등을 읽는 독서 수집광인 카네기는 반평생을 지내면서도 전혀 발견되지 않는 책 한 권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 일라이(덴절 워싱턴)는 날마다 조용한 시간이면 혼자 독서하는 사람이어서, 솔라라(밀라 커니스)의 몸을 부벼 오려는 접근을 피하고, 단지 음식을 나눠 먹는데 먼저 서로 손잡고 감사기도를 한다. 귀가한 솔라라는 일라이에게 배운 대로 엄마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다, 뭔가를 눈치 챈 카네기에게 일라이 관련 심문을 당한 끝에, '책'에 대한 일부 정보를 흘린다.
결국 카네기는 일라이가 크리스천이자 "세계 유일의 성경책" 소지자임을 낌새로 알아차린다. 그 이후는, '사명'을 갖고 계속 서쪽으로 걸어가는 일라이와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의 동행자가 된 솔라라, 무장차량으로 둘의 뒤를 쫓는 카네기 일당의 추격전/총격전 등으로 진행된다. 


이 영화는 플로트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다소 복잡한 몇 가지 이즘들이 개재돼 있다.

올해 전반기에 이 영화를 보면서, 대뜸 제임즈왕역 성경(KJV) 절대/완전/최종/유일/우월주의가 생각났다. KJV가 "하나님이 보존하신 유일하고 완전한 성경"이라는 발상이 거의 그런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대본작가(게리 휘터)가 혹시 그런 사상의 신봉자는 아닌지 모르겠다. 설령 그렇더라도 거듭난 사람-참 신자는 아닐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KJV 유일주의자 또는 근본주의자들이 선호하고 호평할 영화임은 거의 자명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 뒷 부분에서 실망할 것이다. 일라이의 책은 그들이 기대하는 KJV이기보다는 NKJV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작품의 트맄인 피날레 반전 요소들의 하나다. 1611년판 KJV는 물론 아니다. 바로 이 점에서도 KJV는 그들이 주장하는 완전 유일한 성경일 수가 없다!  


둘째로, 이 영화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호신과 방어를 위해선 총기 휴대/사용도 가능하다는 일부 근본주의적인 총기보유 지지자들을 만족시킬 것 같다. 그런 생각은 연전에 사망한 (영화 '십계'의 주인공 모쉐/모세로 출연한 명우) 찰즈 헤스턴도 강력히 부르짖던 사상이다. 헤스턴은 연설장에 총기를 들고 나와 시위도 했다. 
더욱이 근래 교회 안 총격사고가 잦아지자 그런 교인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미국 교회 상당수는 무장괴한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무기와 경호원 등으로 고도로 무장돼 가고 있다. 총기 사용 경험이 있는 교인들 상당수는 교회측 요청에 의해 주일예배 때 몰래 권총을 휴대하고 출석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더 없는 만족감과 합리의식을 줄 거 같다. 

일라이는 사실 마구 휘두르는 칼(벌목용 마쉐티 또는 사냥용 '보위 나이프') 뿐 아니라 샽건 등 총기들, 활과 화살도 소지하고 있다. 숨어 있는 카네기의 저격수들을 정확하게 쏘아 죽인다. (심지어 성경도 일종의 '무기'다. 물론 혼적/영적 전쟁에서는 옳은 얘기지만).
왜 그럴까? 우선적으로는, 관객에게 '방어'의 이름으로 선용(?)하는 무기폭력과 응징의 짜릿한 사디즘적 쾌감(?) 내지 보는 재미를 주고, 폭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한편으로, 무력 응징을 합리화한 이 영화는 사뭇 구약적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검을 쓰는 사람은 검으로 패망할 것이라고 하셨다. 국방/경호/경찰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고, 일반인을 위한 무기 사용은 합리화될 수 없다. 성경적으로는 더구나 그렇다. 과거 한국 주재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 절도범 등을 경계해 총기를 함부로 사용하다 지탄 받은 일도 있다. 그러려면 왜 '범죄자의 땅'에 애당초 선교를 하러 왔는가? 

핵 전쟁 이후 얘기라면 남은 인류의 인구는 얼마 되지도 않는다. 하물며 식인족과 폭력으로 맨날 마구 죽어 가는 상황이랴. 희소 가치가 있다. 그러나 자신과 '책' 보호에만 급급하는 일라이에겐 희소 인구에 대한 배려나 영혼애 같은 게 뵈지 않는다. 그냥 치열한 생존 싸움일 뿐.

일라이의 무술과 방어를 위한 위해(危害)/살인행위들은 모두 "어떤 방해 요인으로부터도 보호 받고 막히지 않게 될 것"이라는 그의 '하나님'의 예언 때문에 저질러진다. 즉 일라이의 모든 폭력/살인이 '성경책 보존'의 명목 아래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그리고, 표면 상으로는 신실한 크리스천처럼 보이는 일라이가 실상 우선적으로 하나님보다 더 믿는 것은 자신의 호신술과 무기다!


일라이는 이름(구약 판관=사사 겸 사제였던 '엘리'와 동명. 뜻은 '위로 오름')도 그렇거니와 주인공은 무슨 예언자 냄새가 풍기며, 심지어 메시아 이미지 같은 것을 구현하려는 거 같다. 이것은 대선 캠페인 당시 종말 메시아 이미지를 홍보에 이용하던 버랔 오바마와 통하는 점이다. 우연인지, 둘 다 아프리칸 계이고, 둘 다 키도 크다. 


일라이는 솔라라와의 대화에서 애당초 자신 속에서 우러나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밝힌다. 그 목소리가 폐허 속의 한 장소로 이끌어 책을 발견했고, 책을 갖고 서부로 가라고 했단다. 어떻게 사막 같은 데서 방향을 제대로 잡고 30년간이나 걸어 왔냐고 물으니 "보여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걸어간다"고 성경을 빗대어 말한다. 과연 일라이의 이런 믿음이 성경의 그 믿음일까..? 
 

피날레 가까운 부분에서, 둘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금문교가 끊긴 자리에서 쪽배를 타고 바닷물을 건너 알카트라즈 섬에 도착한다. 동에서 서로 가다가 맨 나중 나룻배를 타고 물을 건너가는 나그네..이것은 '사자(死者)의 서(書)' 등 고대 에짚트 신화나 오컬트와 연루된 죽음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사람이 죽은 뒤 '요르단(요단)강'을 건너간다는 몇몇 찬송가나 복음송 '해 지는 저 편' 따위에 암시된 일설도 성경적 근거가 없다.

폐허 더미의 한 장소에서 '책'을 발견했다는 얘기는 모르나이 '천사'에 의해 조셒 스밑 2세가 "발견"했다는 '황금판'(몰몬경의 원조) 비화를 연상시킨다. 몰몬 교도들이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한 점도 일치한다. 물론 개척시대에 개척자들이 서부로 이동한 건 사실이지만. '골드 러쉬'도 그렇게 해서 발생했고. 


일라이의 말로는, 성경이 "전쟁의 우선적인 요인"이기도 했단다. 황당한 주장이다. 성경이 전쟁의 원인이 아니라, 성경을 오해했거나 악용한 사람들에 의해 전쟁들이 잘못 치러졌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 신/구교간 전쟁 따위가 그것이다. 구약 전쟁은, 물론 신정 시대의 일이다.


이 영화엔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엿뵌다. 안 그래도 미국엔 사회주의 의식이 급증하고 있고, 특히 클린턴이나 오바마 같은 인사들이 그렇다.
카네기는 자기 방식으로 다스린다. 식량과 물 등 주된 자원을 보유하고 그것으로 시민들을 인형처럼 조종하는 줄을 거머쥐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주의가 규탄하는 봉건 영주, 부르주아 같은 존재다. 그러나 지배욕에 골몰하는 독재자 카네기에게선 책을 읽고 아는 사람들이 지배한다는 극히 평범한 철학적 마인드 아래, 결정적인 책을 갖고 문맹자들을 지배하겠다는 생각 밖엔 이렇다 할 독재 방식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성경을 통한 종교정치를 꿈꾸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를 애국과 정치에 이용해 먹는 관행을 은근히 풍자/비판한 것이다. 카네기는 종교정치인들의 전형으로 부각돼 있다. 다음 세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성경을 보존하려는 일라이와 성경을 이용해 지배 야욕을 채우려는 카네기와의 대비가 이 작품의 주된 정-반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정작 성경적으로는 정/반이 모두 잘못이다. 성경은 단지 보존만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식을 갖고 영화를 보는 사람은 주인공이 왜 그다지도 철저히, 성경 말씀보다는 성경책 '호신'에 급급하는지 이해를 못한다. 아무리 단 한 권이라도 그렇다. 
일라이는, 성경책에 대한 솔라라의 질문에 좀체 응답하지 않으며, 잠 잘 시각에 솔라라가 자기 배낭으로 접근해 책을 건드리려고 하자, 화들짝 놀라게 하면서 "누구도 못 만진다!"고 가로막는다. 심지어 위협적으로 총까지 장진한다. 어차피 책을 읽을 줄 모르지 않냐고 하니, 솔라라는 그러니까 "가르쳐 달라"고 한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성경책은 결국 카네기에게 뺏기고 만다. 그 뒤부터야 비로소 솔라라는 '맛뵈기' 식으로 성경 사상들을 이식받기 시작한다. 그는 솔라라가 읽어 달라고 하자, 시 23 편을 외워 들려 주지만 복음적 해설이 없어, 그냥 듣기에 "아름다운" 시로 끝난다.
일라이는 자신이 성경을 보관하는 데만 신경 썼지, '황금율' 대로 못 살았다는 고백도 한다. 그러나 고작 그것 뿐, 솔라라는 불행히도 일라이에게서 예수 크리스토를 통한 구원과 소망의 복음을 거의 전혀 듣지 못한다. 그냥 심경의 작은 변화만 엿보일 뿐이다.
일라이가 솔라라의 손을 잡고 한 식기도도 예수님의 이름은 완전히 생략돼 버린다. 이 영화는, 그럴 듯한 줄거리와는 사뭇 달리, 예수님의 이름을 완전히 부끄러워 한 작품이다!

맨 끝에는 솔라라가 그의 무기를 갖고 귀가 길에 오른다. 뭔가 할 일이 있다며 결의에 차서.
결국 일라이가 기른 제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을 닮은 또 다른 '크리스천 사무라이'인 셈이다. 


이 작품은 뒷 부분에서 몇 가지 트맄에 의한 반전법을 구사했다.
혹 영화를 보려는 독자에겐 미안하지만 밝혀 보면, 우선 일라이/솔라라는 어떤 식인(!) 노부부 집에 잠시 머물었다가 추적하던 카네기 일당에게 잡혀 일라이가 총을 한 방 맞고 분명히 쓰러지는데, 나중엔 솔라라의 차창 앞에 감쪽 같이 멀쩡하게 걸어가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그 다음은, 일라이가 시각 장애인이고 성경책은 점자성경이라는 사실이다. 일라이는 소리와 냄새로 사물과 장소의 위치도 정확히 분별한다. 마지막엔 서부의 박물도서관장/출판업자에게 성경을 모두 외워 들려 주어 일일이 받아 적게 한다. 말하자면, 일라이는 초인적 기능을 갖춘 슈퍼맨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반전은, 앞서도 비쳤지만, 제임즈왕역 성경인 줄 알았는데, 내용상 NKJV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종합적인 반전이라면, 뒷 부분에서 갑자기 종교성 내지 기독교성이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탄탄한 기독교성은 아니다.  

일라이는 성경 필사를 끝내고 죽어 가면서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으니 이제 남은 것은.."이라고 사도 파울처럼 고백한다. 그러나 어떤 길이었나? 복음전도의 길이 아니라, 성경책과 자신을 사수하느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길이었다. 그런데 "용서해 달라"는 말 한 마디가 전부이다.


결국 주인공의 캐맄터를 비롯한 이 전체 구도가 하나님께 욕 돌리는 내용이다. '일라이 서'의 스토리는 전혀 타당한 성경적 근거가 없는 현대 신화 같은 얘기다. 필자가 보기에, 이 영화는 결코 기독교 영화가 아니다. 그냥 할리우드의 생리와 대중심리를 이용한 또 하나의 얄팍한 상술 '만땅'의 볼거리일 뿐이다. 세상이 기독교를 이용한 작품이다. 그래도 인기도는 높아 모름지기 블랔버스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