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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캪튼's 코너

성탄별과 동방박사들의 정체



성탄별과 동방 박사(현인)들의 진실

-그것은 어떤 별, 그들은 누구였나?



김삼


[이 글은 전재, 또는 필자의 조건부 허락 없는 인용 등을 금합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서 2장 1-12절에서, 우리는 동방의 현인( 동방박사 )들과, 또 그들에게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예수가 계신 곳을 알린 큰 별을 만나게 된다. 이 현인들과 별의 정체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이 글은 성경에 최대한 충실하게, 그리고 상식적/논리적으로 쉽게, 현인들과 별의 정체를 풀이해 보려고 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성탄별이 혜성(comet)이었다느니 2개 이상의 별들이 동시에 겹쳐 나타났다느니, 또 현인들은 실상 점성가였다느니 하는 주장들을 내세우는데, 억측일 뿐 그럴 만한 근거가 없거나 희박하다.



사라졌다가 나타난 별


마태복음 2'1을 보면, 이 현인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땅의 "동쪽"에서 왔다고 했다. 2, 9절을 보면, 이 현인들은 (전에) 동쪽(동방)의 하늘에서 왕의 탄생을 알리는 그 별을 "봤(었)다"고 했다. 과거완료이지, 현재완료형으로 "봐 온" 게 아니다. 흔히들 이 현인들이 먼 동방에서부터 이 별을 따라온 것처럼 묘사되곤 하는데 상상에 불과하며, 성경에는 그들이 퍽 오래 전에 봤던 별을 장기간 못 보다가 예루샬렘 부근에서 비로소 다시 발견하고 베틀레헴까지 따라간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이 별은 동방에서 현인들에게 나타나 일단 성탄 소식을 알린 뒤, 그들이 (유다)  현지에 마침내 도착하여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야, 예루샬렘 부근에서 재차 나타나 그들을 인도하여 베틀레헴까지 안내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성경을 통해 밝히 알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   


우선, 이 밝은 별은 동방 하늘에 나타났다가 사라졌었다는 점이다. 


   1) 2'9에 '갑자기'(한글 성경 개정역의 '문득')라는 부사가 이를 시사해 준다. 현인들은 이곳 예루샬렘까지 긴 여행을 오는 상당기간 이 별을 못 보다가 예루샬렘-베틀레헴 구간 중 예루샬렘에 가까운 지점의 하늘에서 비로소 다시 보았음이 틀림없다. 

만약 일각의 추정처럼 그들이 동방에서 별을 처음 본 이래 낙타(?)인가를 타고 고국을 떠나 예루샬렘에 오기까지 이 별을 계속 줄곧 따라왔다면, "동방에서 본(또는 보던/봤던)"이라는 과거시제 문구나 '갑자기'라는 부사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별의 인도를 받아 정확하게 곧장 탄생지인 베틀레헴으로 향해 갈 것이지, 예루샬렘으로 헤로드 궁을 찾아갈 리가 없었을 터이다. 

그리고 그런 주장은 궁극적으로 별이 현인들을 베틀레헴으로 이끌기 전 먼저 예루샬렘의 헤로드 궁으로 데려갔다는 말이 돼 버린다. 별이 그들을 아기 왕께 데려가기 전에 먼저 현 통치자인 유다 분봉왕 헤로드를 알현하고 인사를 올리도록 주선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2) 현인들은 무척 오랜만에 별을 다시 만났기에 너무 너무 반가워서 크게 기뻐하였다고 했다(2'10)! 동방에서 계속 별을 보고 따라왔으면, 이렇게까지 반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3) 또 이들이 예루샬렘으로 헤로드를 찾아갔을 때, 왕은 별이 "나타났던" 때를 자세히 물었다. 현인들은 당연히 그에 응하여 대답을 했겠지만, 동방에서 출발할 때부터 지금껏 밤마다 나타나 여기까지 계속 이끌어 온 별을 이야기 한 게 아니다! 전에 동방 하늘에 나타났을 때의 그 별에 관해서만 설명했을 뿐이다.   



움직이는 별


크게 둘째로, 마태의 기록에 따르면 이 별은 하늘에 가만히 떠 있는 한 별이 아니라, 수시로 움직이는(!) 별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동방에 한 때 나타났던 이 별은 상당 기간 후 예루샬렘 부근 하늘에서 갑자기 현인들에게 다시 나타나 그들 앞서 길라잡이가 되어 이끌다가, 탄생 후 최다 약 2년간 베틀레헴에 머물러 계시던 아기 예수님의 집 위에 멈추어 섰다. 누구 말마따나 너무나 "별답지 않은" 별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그 어떤 별도 이런 별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별은 결코 길고 둥근 궤도를 따라 몇 십년 만에 나타난 혜성의 하나일 수도 없고, 장구한 기간동안 형성된다는 몇몇 '초신성'들이 때마다 겹쳐 나타난 것일 리도 없다. 



유일무이한 초자연적인 별


그보다도 이 별은 순전히, 하나님이 이 때만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내셨거나 특별히 쓰신, (우주의 자연적 별이기보다) 독특하고도 초자연적인 별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드님의 탄생을 위하여 충분히 그러실 능력과 자유가 있으시기 때문이다. 또 하나님은 태양이 멈춰 섰던 경우(예슈아=수 10'12,13, 왕들B=왕하 20'8-11)처럼 우주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실 수 있는 전능한 분이시다. 

  

이 별은 여기 나타났다가 저기 나타났다가 하는 '자체 운전력'을 지닌 듯한, 어떤 의미에서 '살아있는 별'이었다. 우주의 허공중에 가만히 떠 있기만 한, 죽은 별들 중 하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분명히 성령께서 권능으로 움직이게 하신, 그래서 천사들이 움직인 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역사 속에서 그런 별이 나타난 것은 이 때뿐이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그 어느 다른 별도 이런 별과 같은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별은 오로지 예수님의 성육신/탄생을 알리는 특수 사역을 하늘에서 부여 받아 사명을 감당한. 유일하고 독특한 별이었다. 창세 때부터 존재했다가 이 때 쓰임 받았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으나, 움직이기도 하고 그냥 떠 있기도 한 별이었다는 것은 틀림 없다. 

 

따라서, 이 별은 동방박사들에게 처음 나타난 이후 밤마다 그들을 비추며 인도한 게 아니라, 단 두 번-동방에서 한 번 그리고 유다에서 한 번-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는 다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니 참으로 귀한 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별 자체가 존귀한 게 아니라 이 별이 역사 속에 이때 출현하여 현인들에게 알려 준 예수님의 존재가 더 귀한 것임은 말할 나위 없겠다. 



박사들만 이끈 별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별은 오로지 이 현인들만을 위해 나타나 그들을 도왔다는 점이다. 적어도 성경에 따르면, 그밖에 그 누구도 이 별을 본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직 아기 예수와 현인들만을 위해 이런 각별하고도 놀라운 은총을 베푸셨음을 느낀다. 




현인들이 뵀을 당시의 아기 예수님


주인공은 큰 별이나 현인들이 아닌 아기 왕 예수님이셨다! 동방의 하늘에서 현인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준 때로부터 그들이 얼마나 오래 여행을 했는지 자세히는 알 수는 없으나 상당히 긴 기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는, 헤로드가 간교하게도 현인들에게 별이 나타났던 때를 물어 소급/산정한 뒤 베틀레헴의 두 살 이하 사내 아기들을 모조리 학살한 것으로 보아(2'16), 적어도 탄생 후 최다 2년이 경과한 시점이었으리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현인들이 뵈었던 아기 예수는 크리스마스카드의 그림이나 성탄 씬(Nativity Scene)에서 보는 것 같은 탄생 당시의 갓난아기가 아니라, (최다) 두 살 때쯤의 영아였다. 현인들이 그 집안에서 아기가 어머니와 함께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으니까(2'11), 이때쯤 아기 예수님은 여느 아기처럼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마리아와 요셒 앞에서 재롱을 떨며 깔깔 웃음도 선사하시고, 이젠 옹알이 시기를 벗어나 제법 또렷한 말도 하시곤 하던 그런 때였다. 



현인들은 과연 누구?


동방에서 온 현인들(마고이/magi)은 밤하늘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범상치 않은 별은 금방 식별해 내는 정도의 학자들이었다. 과연 그들은 역사 속의 누구였을까? 별과 연계하여 이 현인들의 정체도 함께 알아보련다. 


   점성가들?


이 동방의 현인들에 대한 가장 흔한 정의 한 가지는 그들이 고대의 점성가들(astrologers/astrologists)이었다는 주장이다[각주:1]. 하지만 터무니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점성술(astrology)과 천문학(astronomy)은 엄연히 서로 다르다. 거짓 과학인 점성술은 해/달/별 특히 별자리들을 이용하여 미래의 길흉/사건들을 예보하거나 개인의 운명/운세를 점친다고 시도하는 사술(邪)이다. 고대 바벨론 시대 이전부터 역사 속에 줄곧 그런 역술이 있어왔고, 중세 때도 활개를 쳤으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별자리, 12 천궁도(horoscope)/황도대(zodiac)를 이용하여 (중국에서 유래한 띠점처럼) 개인의 운명/운세 등을 점쳐주는 점술/역술 따위를 장려하는 뉴에이지 때문에 날이 갈수록 전성기를 이루어 간다. 


반면 천문학은 주로 태양을 비롯한 별들 자체를 우주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합법적인 학문이다. 물론 점성학과 천문학을 동시에 결부하여 연구하던 고대인/중세인들도 있었지만, 전자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허위과학이고 사특한 기교임을 잊어선 안된다. 인본주의/무신론자로 천문학자였던 칼 E. 세이건도 점성술은 쌍둥이의 경우 운세/운명을 점쳐 주지 못한다며 단죄한 바 있다. 만약 점성술의 논리가 옳다면, 쌍둥이들은 모두 같은 날 동시에 죽어야 한다!  


이렇게 장르뿐 아니라 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연구하는 사람들도 몇 부류가 있는데, 그 중 두 유형이 천문학자들과 점성가들이다. 그밖에 때때로 밤하늘의 뭇별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거나(시편 8'3) 또는 별들을 숭배하던 일반인들도 물론 있었다(예: 예레미야서 19'13, 제파니아서=습 1'5 ). 

현대뿐 아니라 과거에도 천문학자들이 있었다. 과거에 과학이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않았다고 해서 별을 보던 모든 사람들을 '점성가'로 매도하면, 당연히 부당하다. 그들은 별을 연구하되, 시와 때, 계절과 시기, 일기(日氣) 등을 결부시키키는 했으나 그것으로 길/흉 등 미래를 점치거나 개인의 운명을 따지거나 하지 않았다. 



고대 동방의 현인이었던 욥은 일종의 대언가/학자였고, 별에 관해서도 퍽 많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기록한 구약의 욥서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신 초자연적 계시로 관련 기록을 남겼을 테지만, 욥 자신과 친구 등 주변의 방대한 지식을 열거한 욥서 내용을 보면, 현대인들도 놀랄 만큼 고대 사람으로서 아는 것이 많았다. 일례로, 금/은/동/철/보석 등과 광맥과 갱도 등에 관한 욥의 지식은 매우 풍부하고 상세하며 아울러 과학적임을 느낄 수 있다(욥 28'1-19)! 

아무튼, 하나님의 계시였든 자신의 상식이었든, 욥은 별에 관하여도 당대의 상식(?) 내지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분은 아쉬(북두성?), 케실(삼성?)과 키마(일곱 별), 그리고 남쪽(하늘)의 밀실들(성운?)을 지으셨다네." (욥 9'9 사역. 이하 성구 사역)

 

다음은 하나님이 욥에게 물으시고 일러주신 천체에 관련된 계시적 비밀이다. 


   "너는 키마(일곱 별 또는 별떨기?)를 줄로 묶을 수 있고, 케실(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니? 

    네가 별자리들을 제 철에 이끌 수 있고, 아쉬(북두성)를 다른 별들에게로 옮겨 갈 수 있겠        니? 네가 하늘의 법도를 아느냐?.." (욥 38'31-33)



욥이 살던 우즈가 어떤 나라였는지, 그의 뿌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동방의 현인/의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가 이렇게 별들을 알 만한 현인이었는데도 점성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해와 달에 대한 숭상심도 철저히 경계한 것만 봐도(욥 31'26~28) 그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별을 자주 바라보고 묵상 또는 연구한다고 해서 모조리 싸잡아 점성가로 매도하는 것은 울바른 방향도 아니고, 진지하고 학문적인 태도도 아니다. 그런 주장은 자칫 진보적 비교종교학이나 안티 기독교 등 좋지 않은 목적과 성향으로 오인/오도될 소지도 있고, 그런 미끼를 던져 주는 셈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감화를 받아 문득 문득 밤하늘의 뭇 별을 바라보곤 하던 사람이었다(창 15'5). 장차 하늘의 뭇 별 같이, 바닷모래 같이 수많은 후손을 얻게 된다는 믿음 강화 차원에서였다. 물론 그가 멀리 바라본 미래의 후예 중 가장 밝은 '별'은 메시아,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의 현인들을 '점성가'로 매도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엄준한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것은, 과연 하나님이 별 점쟁이들을 그 분의 아드님께 경배하러 가도록 택하시고 보내셨겠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하나님의 거룩함과 순결, 공의에 엄연히 위배되니 명백한 자체모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점성술을 비롯한 온갖 점술/마술/복술/역술들을 매우 혐오하셨다. 구약시대엔 으레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다. 특히 점성술에 대한 다음의 두려운 경고 말씀들을 보라: 신명기 4'19, 17'3-7, 왕들B=왕하 17'16; 21'3,5; 23'5, 아모스 5'26. 그러므로 점성술은 배도/우상숭배/불신/무지와도 동격이었다(예샤야후=이사야 47'13-15, 예레미야서 10'2-5). 


그러하신 하나님이 하필이면 점성가들을 데려다 그 분의 소중한 아드님을 경배하게 하고 보물을 바치게 하실 이유가 뭐겠는가? 그런 보물은 아무리 값비싸고 귀해도 영적으로 더럽고 음란한 것이리라! 또한 만약 하나님이 이스라엘 국내의 점성가들은 다 사형감으로 여기시고, 국외의 점성가들은 치외법권처럼이나 달리 특대할 정도로 사람을 차별대우하시는 분이라면, 이 역시 늘 한결 같은 그분의 속성에 어긋난다. 


점성가는 또 진정한 현인이라 하기가 어렵다. 실상은 모든 별들과 '천궁도', 별자리 따위의 근거없는 초자연적 권능을 믿고 천체를 경배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그런 배후에서는 으레 악령들이 역사하기 마련이다. 가령 호사가 등 일부 사람들은 중세의 '예언가'였다는 노스트라다무스(미쉘 노스트르담)를 굉장한 현인으로 여기지만, 그는 술사에다 점성가였다. 구약시대로 말한다면, 노스트라다무스야 말로 정말 사형감에 해당하는 자였다! 




통칭 '마그(Mag)' 


이 동방의 현인들을 '점성가'로 혼동하는 이유 한 가지는 용어 탓이다. 마태복음 2장에서 쓰인 '마고이'(현인들. 단수: 마고스, 라틴어 magus)라는 그리스 용어의 어근인 '마그'(mag)는 본래 페르시아어에서 비롯했다. 아카드/아씨리아/바벨론/메대/페르시아 등 고대 제국에는 왕실과 가까운 현인/박사/박수/술사/점성가 등이 있었는데, 이들을 총칭하는 말이 마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인이라는 말의 어원은 오늘날 영어 낱말의 magi(현인들) 뿐 아니라, magic(매짘/요술), magian(점성가/마술사), magician(요술사) 등에도 쓰인다. 그러나 고대 현인들 가운데는 분명히 천문학자들도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바 없다. 




   과연 동방의 누구?


동방이라면, 이스라엘 동쪽의 모든 땅을 가리킨다. 광역적인 용어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 


   욥의 후손들일 가능성: 전술한 대로 욥은 동방의 의인이고 현인이었다. 그와 그의 친구나 친지들의 후손 가운데서 이 현인들이 나왔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쉐바의 여왕 및 쉐바 사람들의 후손들일 가능성: 이스라엘 전성기였던 슐로모(솔로몬) 시대에 내방한 쉐바의 여왕은 당대의 최고 현인인 슐로모 왕에게 온갖 난문을 퍼부을 정도로 지적 수준이 높았으며(왕들A서=왕상 10'1~10), 아울러 슐로모와 이스라엘에 관한 지식을 두루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여왕 통치시대의 드넓은 쉐바 땅의 일부는 아라비아만 남쪽이었으며, 역시 이스라엘에서는 동방이었다. 그녀와 귀족들, 또는 국민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


   다니엘 때 현인들의 후손들: 일각에서는 다니엘이 바벨론-메대 제국의 통치기인 수십 년간 살던 시기에 그와 예호봐(여호와/야웨)님을 존중하던 현인들의 후손일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바벨론-메대의 왕궁에는 다니엘 말고도 많은 '마그'들이 있었다. 다니엘을 알고 그를 위대한 신의 종으로 극진히 받들고 우대한 군주들도 상당수였고, 훗날 페르시아 통치기에 네헤미야 등 유대인들을 잘 알던 왕과 귀족들, 현인들도 있었다. 그들의 후손들 가운데서 이 현인들이 나왔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훗날 페트로(베드로)는 바벨론으로 가서 고대 유대계 후손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이 높다(페트로A서=벧전 5'13 참조). 


   동양인/동아시아인들일 가능성: 동방 현인들이 더욱 동쪽인 동아시아 쪽에서 왔을 가능성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더욱이 현인들이 장기간에 걸쳐 여행했던 것으로 보면, 위의 지역들보다 훨씬 더 먼 거리에서 왔을 수도 있다. 심지어 첨성대를 지키던 신라의 천문학자들이었지 않겠냐는 설도 있다. 

그러나 당대 중국인이나 신라 사람들이 임금에게 바치는 전형적인 예물이 동양 고유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동에 더 걸맞은 황금/유향/몰약을 택했겠느냐는 물음이 뜬다(Unlikely). 물론 그들이 동아시아에서 낙타를 타고 왔을 리도 없다고 생각된다. 동방 현인들이 낙타 아닌 말을 탔는지도 모르지만. 더욱이 이들이 과연 위에 열거한 나라 부류의 인사들만큼 일부나마 예호봐 하나님에 관한 선지식이 있었겠나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당대에 주로 불교가 흥했던 동아시아에서 왔을 확률은 그만큼 떨어진다. 



마태복음 2장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부분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이 현인들이 한꺼번에 함께 무리지어 왔다는 점이다. 이들은 동방의 어느 지점에서 함께 출발하여 여행해 온 것이 분명하다. 물론 동방 안에서도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오다가 중간에서 서로 만났을 잠재적 가능성도 있다. 

그들이 몇 명이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단지 세 가지 보물을 드렸다고 해서 꼭 세 사람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정 보물을 몇몇이서 합쳤거나 공동으로 했을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이들이 휴대했던 "보배합"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당대의 왕이나 왕가에 바치는 선물의  최고 상품 가치와 형식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이 불러 이끄신 사람들


예수님의 탄생 때 큰 별을 통하여 동방에서 이 현인들을 부르신 하나님은 그들의 행로과 귀향길을 끝까지 돌보시고 지켜 주셨다! 이것이 중요하다. 만약 그들이 점성가였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이끄시고 지켜 주셨겠는가? 아마 부르시지도 않을 뿐더러 자기네가 혹 알아서 왔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셨을지 모른다. 



   믿음의 사람들


이 현인들은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첫째로, 마태복음 2장 앞 부분의 분위기를 보면, 현인들은 일구월심-유대인들의 왕을 경배하려는 열성 때문에 멀리서 기나긴 여행을 해오면서도 초지일관, 마음의 흔들림이 없이 왔음을 알 수 있다. 확실히 그들에게 이 '바실레우스 톤 유다이온'(유대인들의 왕)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들은 아기 왕을 경배한 후 유다 땅을 떠나기까지 (그리고 필시 그 이후까지) 이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찾으시고, 기뻐하신다. 우리는 늘 그 분이 살아계심과 그분을 찾는 사람들의 미스타포도테스(믿음의 대가를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둘째로, 현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헤로드나 주변의 말을 듣고 믿기보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을 통한 계시의 말씀을 듣고 신뢰했다(2'12). 꿈 속의 신적 계시를 믿었다는 점에서 요셒/마리아, 들판의 목자들과도 같다! 이들이 나중에라도 왔던 길로 가다가 (왕궁의 관원에게라도 발견되어) 헤로드에게 되돌아가 헤로드의 말을 듣고 더 나아가 아기 예수와 가족에 관한 모종의 제보를 했다고 가정해 보라. 더 끔찍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혹여 그럴 가능성이 있기에, 하나님은 미리 꿈으로 그들을 경계하여 막으셨다.  


셋째로, 그들은 상황을 보거나 따지지 않았다. 예수님의 가정이 초라하고 가난했음은 율법에 따라 아기가 태어난 지 8일만에 하나님께 바친 예물-산비둘기 한 쌍 또는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로 봐서 알 수 있다. 

웬만한 현인들 같은 경우 "아니, 왕가가 이렇게 초라하고 가난하다니.. 정말 왕 맞아?" 했을지도 모른다. 악한 사람들은 둘째치고라도 나타나엘 같은 의인도 "나자렡에서 무슨 선한 것이라도..?" 했을 정도였으니까. 더욱이 성령의 영감이 뛰어났던 고대의 판관(사사)/대언가 슈무엘조차도 샤울의 대를 이을 차기 왕 후보감을 찾느라 이샤이의 아들들을 검증하면서, 용모가 좋고 허우대가 헌칠민틋한 사람을 왕감이라고 생각했다가 하나님께 대번에 지적받기도 했다. 


이 현인들은 아기 예수 가정의 가난하고 초라한 상황과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고 믿음으로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당대의 최고 값진 보물들을 기꺼이 바쳤다! 아마도 그들이 믿음 없는 사람이었다면, 화려한 헤로드 왕궁의 어느 적당한 어린 왕자에게 바쳐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응당 베틀레헴 초라한 민가의 아기 예수가 왕이라고 생각했고, 이 세 가지 보물들이 왕께 바쳐질 예물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 계시를 믿고 끝까지 따랐다. 도중에 의심으로 마음이 변하거나 약해지거나 태도가 바뀌지 않았다. 전술한 대로 그들은 당대 현지의 최고 권력자가 헤로드임을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했다. 

훗날 그들이 헤로드에 의한 베틀레헴 남아 학살 소식을 고국에서 듣고서 크게 충격받아 가슴을 쓸어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왕인 아기를 잘 보존하셨을 터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들은 또 이 아기가 만민의 메시아이심을 깨닫고 믿을 뿐더러 자기 후손에게도 그 믿음을 대물림했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현인들이 믿은 그대로, 하나님은 아기 예수님의 일가족과 그들이 지닌 보화/보물을 함께 지켜주셨다! 아기 예수는 물론 요셒/마리아 등 온 가족의 목숨을 보존하셨을 뿐더러 그들이 지닌 황금/유향/몰약 등 왕가의 보물창고 속에나 걸맞은 보물도 덩달아 함께 지켜주셨다는 말이다. 

당대에도 흔했던, 상투적으로 캐러밴(대상)들을 노리는 전문털이범들 같은 노상강도의 피해자가 되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천군 천사들을 통해 보호해 주셨다. 마치 앞서 현인들도 지켜 주셨듯, 베틀레헴 남아들 대학살 사건 때도 아기 예수와 가족을 헤로드의 마수로부터 지켜 주셨듯. 


그래서 장차 아기 예수가 자라 인류 대속의 과업을 완수하실 수 있기까지 밑받침이 될 이 가정을 지키고 이끄셨다! 오 영원히 할렐루야~! 



하나님의 종합적 계획


하나님은 왜 초자연적인 별과 천사들까지 동원해 가며 머나먼 동방에서 이 현인들을 이끌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게 하셨을까? 이 사건은 하나님의 놀라운 종합기획 작품이었다!


첫째로, 오가는 모든 세대에 아기 예수님이 유대인의 정당하고 의롭고 참된 군주이심을 역사 속에, 아니 온 우주에 알리신 사건이었다. 유다의 정통 왕손인 다뷛 왕가의 후손은 (이두매 즉 에돔 족 후예인) 헤로드가 아닌 예수 크리스토님이셨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현인들을 시켜 왕에게 어울리는 예물까지 바치도록 하셨다. 비록 유대인들은 초라한 민가의 아기를 왕으로 믿지도 예물을 바치지도 않았으나, 하나님은 대신 멀리서 이방인들을 부르셨다.


둘째로, 메시아, 임마누엘이 오시리라는 예언을 성취하셨고, 예언 그대로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이 역사 속에 놀랍게 이루어짐을 보이셨다. 


셋째로, 이방 사람들에게까지 아기 예수가 하나님이 택하신 유대인의 왕이심을 널리 알리셨다. 홍보 효과와 같은 것이었다. 이 현인들이 고국에 돌아가 자손 대대로 하나님이 택하신 유대인의 아기 왕에 관하여 가르쳤음은 물론일 것이다. 누가 알랴, 훗날 이들의 얘기를 듣고 예루샬렘으로 와서 예수를 믿게 된 유대인들도 있었을지? 


넷째로, 하나님은 그분의 아드님을 지극히 사랑하심을 입증하셨다. 탄생부터 공사역 때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그 가정을 끝까지 보호하고 이끄셨으며, 탄생 당시엔 현인들을 통하여 왕들이나 왕족에게 걸맞은 보물을 이 가난한 가정에 선사하심으로써 장차 예수님 사역의 기초적인 밑받침 내지 가족 생계의 터전이 될 요셒과 예수님 자신의 목수 일의 삶을 도우셨다. 

말만의 '청빈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아기 예수님 가정이 현인들에게 받은 왕실급 선물까지도 성전에 다 갖다 바치고(??) 마리아와 요셒 등 온 가족이 여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째지게" 빈곤하고 초라한 목수 가정으로 살았다고 굳게 믿기도 한다. 그래야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깃들 곳이 있되 머리 둘 곳 없다는 주님의 말씀과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정을 그런 빈가로 삼지 않으셨다. 마리아/요셒은 당연히 현인들이 갖다 바친 그 고가의 보물을 살림 밑천으로 삼았고, 요셒은 한 때 예물로 비둘기 밖에 바칠 수 없었던 밑바닥 살림에서 떨치고 일어나 당대 지역사회의 이름난 명장 목수로서 가업을 일으켰고, 그 가업을 대물림한 청년 예수님도 가정을 도와 (2명 이상의 여동생을 포함한) 최소 8명의 대식구가 거뜬히 살아갈 만큼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그 증거로,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제자들 보기에도 괜찮은 첫 '선교본부' 격인 처소를 보여 주실 수 있기도 하셨다(요한복음서 1'38,39). 우리가 믿든 않든.


필자가 이런 말을 하면, 앞뒤를 따져 보지도 않고 "차라리 소설을 써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야말로 이런 확실한 성경적 증거를 놔 두고 무슨 정반대의 소설을 쓰고 있을지, 마리아를 수녀 같은, 예수님을 걸인수사 같은 존재로, '평생 빈가의 빈민 예수' 따위의 수도원적 관상주의 소설을 쓰고 있을지 아연해진다. 



하나님 아버지께 온 영광을! 아멘. 




  1. 예컨대 일부 한글 성경의 난외주에 그런 '해설'이 곁들여 있다. 그런 주석을 단 사람이 과연 진짜 성경학자인지 의심스럽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