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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원어로 묵상하기

겉옷? 계명? -계22:14 문제

김삼

요한계시록 22장 14절 앞 부분 즉 상반절은 말썽 많은(?)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상당한 논란거리가 돼 왔다. 먼저 한글성경의 본 절을 살펴보자.
[이하, 별도 표기되지 않은 성구는 사역]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역개정판/대한성서공회)

역시 성서공회가 발행한 한글개역/공동번역('성서')/표준새번역 등도 비슷한 분위기로 번역돼 있다. 대부분의 현대 영역판들도 그렇게 돼있다.

그런데 제임스왕 역(KJV)을 보는 사람은 퍽 당황할 것이다. 똑같은 구절인데 전반절이 확 다르기 때문.

Blessed are they that do his commandments, that they may have
right to the tree of life, and may enter in through the gates into
the city.
그 분(주님)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되니..[하략]. (사역)

한 쪽에선 "두루마기(겉옷)를 빠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고, 딴 쪽에선 "그 분의 계명을 행하는 자들"이 복되다고 하니 헷갈린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한글과 KJV, 어느 쪽이 맞는가. 누가 여기서 정말 복된가?

두루마기는 우선 한복 겉옷을 가리킨다. 영어로는 'robe'(예복/겉옷)이다. 목회자가 강단에서 걸친 엄숙한 '성의'(聖衣), 찬양대/성가대의 가운도 'robe'다. 찬양대/성가대 대원들의 가운이 괴죄죄하게 때가 찌든 모습을 보노라면 "자기 가운을 직접 빠는 찬양대원/성가대원은 복 있나니!" 하고 싶다. 여담이고..

두 가지 원문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이 뭘까? 번역판 말고, 사도 요한이 쓴 최초의 원문은 무엇이었냐는 것이겠다. 계시록 뿐 아니라 모든 성경의 원본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단지 여러 사본들만 남아있을 뿐. 그래서 우리의 헷갈림을 해소할 길이 단순하지도 만만치도 않다.

위 전자/후자의 앞부분만 원문(그리스어)을 비교해 본다.

A.마카리오이 호이 플뤼논테스 타스 스톨라스 아우톤..
(복되다, 자기 겉옷(들)을 빠는 이들!..)

B.마카리오이 호이 포이운테스 타스 엔톨라스 아우투..
(복되다, 그 분의 계명을 행하는 이들!..)

뜻은 양쪽이 퍽 차이지는데 원문의 생김새는 서로 아주 흡사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음모(?)로 요한의 글을 삐딱하게 잘못 베껴 썼단 말인가? 가령 필사자(scribe)가 원본을 베낄 때, 1) 낱말이 비슷하니 실수로 그랬을 수 있고, 2) 얼핏 보기에 뜻이 잘 안 통하는 듯 하여 제 딴에 더 그럴 듯 하게 바꿔 썼을 수 있다.

B/'계명'의 주요 지지자
한국에서 위의 'B'를 지지하는 가장 흥미로운 대표자는 두말 할 것 없이, 제임스왕역 절대 신봉자인 '말씀보존학회' 대표 이송오 목사(성경침례교회). 이미 한국교계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황당한 사람이다. 1994년엔가 뉴욕에도 와서 교역자회(목사회 전신) 주최로 특강이란 걸 하고 갔는데 실로 안하무인, 천상천하유아독존 격의 시건방진 사람이었다! 왜 그를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는지는 http://www.litania.net/column/malbo.htm 을 참조하면 대강 감이 잡힐 게다.

이송오/(피터)러크먼/구영재 등은 영어성경인 제임스왕 역을 "절대정확/완전유일 판, 묻지 마, 끝!" 식으로 믿는데, 그렇다면 성령께서 처음부터 영문판인 제임스왕역을 내시고 말지, 뭣 땜에 히브리/그리스어 원문은 내셨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이송오 씨에게, KJV가 그렇게도 소중하다면 평생 영문으로만 읽고 섬기지 왜 구태여 한글 번역판(한글킹제임스성경)을 펴냈는지 묻고 싶다. 13년 걸려서 했다는데, 자기가 무슨 '제임스 20세'라도 되는지 판권 없는 영문판을 갖고 한글번역 판권을 가졌으니 제임스왕역의 본래 취지에도 어긋(?)나지 않나 싶다.

제임스왕의 신세를 져 돈께나 번 셈인데 KJV 종주국인 영국에서 잠자코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나중에 저 세계에서 제임스2세가 이송오를 만나 "어이, 자네! 내가 만든 성경으로 한글 판권을 갖고 돈 많이 벌었다며?" 하고 호되게 따질 지도 모를 일이다. 하기야 제임스2세도 학자들을 시킨 것이지 자기가 직접 한 건 아니다.
한국에선 그후 8년에 걸쳐 번역한 '성경전서 흠정(KJ)역'이 나왔는데 이송오 것보다 훨씬 더 낫다는 정평이다['흠정'(欽定)이란, '킹제임스'의 한자식 표기가 아니라 군주가 몸소 명령으로 제정했다(authorized)는 뜻. 그래서 KJV는 'AV'(Authorized Version)이라고도 불린다].

[필자도 지금 계22:14을 놓고 왈가왈부하지만, 이송오도 이 구절에 관해 그의 상투적 어구인 "변개된 성경" 어쩌고 하면서 변론을 펴고 있다(http://kjv1611.or.kr/bbs/board.php?bo_table=cullum&wr_id=60 ).
그는 왈, 자신이 번역한 '한글킹제임스성경' 이외의 성경으로 설교하는 자들은 [모조리] '거짓 설교'를 하고 있단다(휴~!). 자기 교인들만을 위한 글인지 학문성은 거의 없고 처음부터 막가기 식 논리인데, 단, 본절에 대한 개역한글판 번역의 일부 문제점에 관한 지적만은 옳다.

A/B 양측의 대치 양상

그러나 단지 이단자 이송오나 러크먼 등이 절대 지지한다는 부정적인 이유 때문에 KJV 원문인 위의 'B'를 간단히 제쳐놓을 순 없는 법. 'B'를 지지하는 역사적이고도 강력한 학계 팀이 진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A' 지지측도 그렇다. 이를테면 A대B가 용호상박(龍虎相搏) 형세다. '박빙' 차로 승부(?)를 가려야 한다. 그래야 A든 B든 어느 한 쪽을 골라 쓸 것 아닌가.

자, A와 B 응원팀을 나눠 보면..

A 지지 팀: "우린 누가 뭐래도 '두루마기' 편!"

사본: 알렉산드리아 사본, 시나이 사본, 제롬의 불가타(Vulgate/라틴어),
아미아티누스 사본(피렌체, 541 A.D.), 풀덴시스 사본(6세기).
지지 인사들: 아타나시우스(알렉산드리아 감독 373년),
풀겐티우스(아프리카 감독 533년). 아프린기우스(551년),
프리마시우스(552년), Ps. 암브로스(6c), 하이모(9c).
클레멘트(교황 식스투스 5세 1590년, 클레멘트 8세, 1592년)의
불가타는 계7:14에 근거, "어린 양의 피에(두루마기를 빤 자들)"까지
포함시켰는데 그런 원문 사본은 없다!
로마교회 역본들(영문 두웨이 역 포함)은 클레멘트/트리덴트의
불가타에 기초했다. 로마 교회가 바티칸 사본이 'B'쪽인데도 A를
지지한 것은 흥미롭다.
기타 라흐만, 티센도르프, 트레겔, 웨스트캇/홀트,
연합성서공회(UBS/편집대표: 브루스 메츠거) 등의 그리스어 역본들.

B 지원그룹: "헛소리 마라, 단연코 '계명' 쪽이 맞다!"

초기교부: 테르툴리아누스(220 A.D.), 퀴프리안(카르타고 감독.
258년), 튀코니우스(380년).
사본: 바티칸 사본(B), 하르켈리안/필로크세니안 시리아어 사본
(6/7세기), 페쉬타 역본. 콥틱사본(보하이리/3~4세기), 아르메니안 역
(5세기), 10세기 그리스(대문자역 046), 주요 12개 필기체 사본 및
기타 150여 필사본.
RT(에라스무스 역/레쳅투스 텍스투스: 제임스왕역의 기초).
후기 개인들: 안드레아스(614년), 아에르타스(914년). 하이모(841년).

전체 그리스어 사본 수로 따진다면, 'B' 쪽이 많다. 사본의 고증의 역사성을 따지자면 A가 더 오래다. A팀 사본은 최고(最古) 4~5세기, B팀은 8세기다. 그러나 B팀은 사본은 아니더라도 2~3세기 초기 교부들의 막강한 입김을 받고 있다. A팀의 가장 오랜 교부는 기껏해야 4세기 사람 아타나시우스다.
그래서 '교부님'들 때문에 B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들 그쪽 응원팀이 떠들어댄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상식적으로, 교부들이 얼마나 옛 사람이냐보다 정작 그들이 해당 지역에서 해당 시기에 인용한 원문이 어느 사본이며 객관적으로 얼마나 오래됐고 어디서 왔느냐가 더 중시되기 때문.

다른 언어권은 일단 제쳐놓고 영어 번역판들만 놓고 보면, 주요 현대역을 비롯한 압도적인 번역판들이 A쪽이다. B팀은 제임스왕역 계열 일부를 제외하곤 옛 번역들이 많다.

A팀 손을 들어준 영어번역판의 예:

Amplified Bible(AMP), ANT(the Authentic New Testament), ASV(American Standard Version), CEV(Contemporary English Version), BBE(Bible in Basic English), CLNT(Concordant Literal New Testament), Darby역(J.N.Darby Translation/1890년), Douay-Rheims Bible(RHE),
ESV(English Standard Version), GW(God's Word to the Nations), GNT(Good News Translation[옛 TEV(Today's English Version)/GNB(Good News Bible)], HBME(The Holy Bible in Modern English), HCSB(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가장 최근에 나온 성경), LB(The Living Bible), MNT(Moffatt New Translation), MSG(The Message: 릭 워렌의 '목적'론에서 크게 의존한 유진 피터슨의 '성경'. 조심! 아무튼 'A'쪽이다), MSNT (The Modern Speech New Testament), NASB(New American Standard Bible), NCV(New Century Version), NET(New English Translation), NIV(New International Version), NLT(New Living Translation), NLV(New Life Version), NRS(New Revised Standard Version), NSNT(Norlie's Simplified New Testament), Rotherham, RSV(Revised Standard Version), WNT(Weymouth New Testament), WENT(Worldwide English 신약), 위클리프 역(WYC). 기타 다수

B팀 편을 든 영역본들의 예:

IB(Interlinear Bible), IV(Inspired Version), KJV, 21st Century King James Version(KJ21), LBP(Lamsa Bible), MKJV(Modern KJV/ Green 역), NKJV, NNT(Noli New Testament), SSBE(The Sacred Scriptures, Bethel Edition), TDB(The Dartmouth Bible), TMB(Third Millennium Bible/New Authorized Version), 웹스터 역(Noah Webster Version/1833년), WMF(The Word Made Fresh), YLR(Robert Young's Literal Translation, Revised Edition) World English Bible: Messianic Edition(WEB:ME HBV=Hebrew Names Version 포함 ). 기타 다수.

영역본들은 B팀보다 A팀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B측은 자기네측 역본들이 훨씬 더 많다고 우긴다! B팀의 그리스어 사본 쪽이 훨씬 더 많은데, 왜 영어 번역들은 A팀 쪽이 훨씬 더 많을까? 이것을 두고 B팀 측은 A팀의 '음모'가 아닐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쎄다.
위에서도 내비쳤듯 필자는 'A'팀 쪽에 더 마음이 간다. 까닭은..

▪ 첫째로, 앞서 이미 비쳤듯 'A'측 사본의 고증이 훨씬 오래다. 'B'측은 교부들의 연대가 오래지만, 그들이 사용한 사본이 반드시 훨씬 오랜 사본이라고 단정짓긴 어렵다.

▪ 둘째, 'A'측은 다음 구절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에 자기 겉옷을 빨아 희게 하였다네(계7:14d).

▪ 셋째, 'B'에서 사용된 동사의 문제. 여기 쓰인 (계명을) "행하다"(또는 '지키다')란 그리스어 원형은 '포이에오'다. 그러나 이 동사를 사도 요한이 썼을 가능성이 좀 적다. 계명 준수를 언급한 비슷한 내용의 계12:17, 14:12에서 "행하다/지키다/순종하다"란 동사 원형은 '테레오'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여태 '테레오'를 써온 사도 요한이 여기서 기분을 전환, 뉘앙스가 다른 '포이에오'를 쓸 까닭이 별로 없지 않냐는 얘기다. 따라서 'B'의 신빙성이 줄어든다. 요한 서신서도 계명과 연계된 동사는 주로 '테레오'다(요한서신a 2:3,4, 3:22,24). 하지만 예외적으로 '포이에오'가 쓰이긴 쓰였다(요서a 5:2). 그래도 계시록과 합할 때 압도적으로 '테레오'가 많다. 그래서 'A'가 맞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아무러나 '포이에오'가 계22:14에서 쓰였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순 없다.

교리/교의적 문제
그 다음으로 자연히 주시되는 것은 전반절/후반절의 문맥 관계다. 여기서 교리 내지 교의신학적 문제도 어느 정도 야기된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위 한글 개역개정판(개역 포함) 번역 일부는 원문의 뜻과는 좀 다르다. '오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서공회가 개역 개정판을 내면서 구체적으로 재번역을 했어야 했다.

A/B 양측을 원문 중심으로 대조해보자.

A:
"복되어라, 자기 옷을 빠는 이들, 그래서 생명나무로 갈 권리를 얻고
성문들을 통하여 그 도성으로 들어가려는 이들!"

[마카리오이 호이 플뤼논테스 타스 스톨라스 아우톤, 히나 에스타이
헤 엑수시아 아우톤 에피 토 크쉴론 테스 조에스 카이 토이스 퓔로신
에이셀토신 에이스 텐 폴린. (UBS판: 편집대표 브루스 메츠거)]

B:
"복되어라, 그 분의 계명을 지키는(행하는) 이들, 그래서 생명나무로
갈 권리를 얻고 성문들을 통하여 그 도성으로 들어가려는 이들!"

[마카리오이 호이 포이운테스 타스 엔톨라스 아우투 히나 에스타이
헤..(이하 A와 동일. RT: 에라스무스).]

위 문맥에서 한글개역/개정이 왜 오역인지 어렴풋이 느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위에서 A와 B, 어느 쪽이 더 문맥상 타당해 보이는가?

제기되는 주요 문제는 생명나무에 이를 권리, 성문들을 통하여 도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A. [예수의 피에] 겉옷을 빠는 자들이기가 쉬운가, 아니면 B.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기가 쉬운가 라는 것이다.

생명나무는 과연 뭘 뜻할까(창2:9, 3:22, 계2:2, 22:2)? 간단히 말해서 영생의 상징이 아닐까. ▪ 생명나무 근접 권리와 ▪ '천성 진입 자격'이 한 묶음/패키지인 사실은 뭘 말해 주나? 계22:19도 14절과 같은 한 패키지다. 그런 권리/자격 패키지가 1) 계명을 지키는 우리의 행위로 주어지는가, 2) 아니면 늘 [회개하여] 크리스토의 피와 의로 씻음받는 이들일까(계7:14 참조).
필자는 2)에 더 가깝다고 본다. 주님이 주신 으뜸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인데 그 사랑이 영생과 천국 입국의 권리/자격을 제공하는가? 아니면 크리스토의 피에 적셔 순결함이 그 권리/자격을 제공하는가?

크리스토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얻는 결과는 어떤 권리/자격보다는 보상과 상급이기가 더 쉽다고 필자는 생각된다(코a9:24, 엪6:8, 히11:26, 계11:18). 몇 절 앞의 22:12은 더더구나 이를 뒷받침해 준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

문맥 관계도 A를 뒷받침
아울러 바로 뒷절인 계22:15은 14절에 상반되는 불순/불의한 무리들을 통틀어 나열했기에, 더더욱 14절이 순결(겉옷 빨래)과 관련됨을 반증한다. 15절의 내용은 14절과는 퍽 상반적/대구적이다. 즉 순결한 이들은 성 안에, 불순한 무리는 성 밖에 있을 것이라는 극적인 대조다.

이상을 모두 종합해 볼 때, A가 B 보다는 훨씬 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제임스왕 역과 그 계열들이 지지하는 B를 "무조건 잘못"이라거나 '거짓'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성경이 그런 해석도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단지 위와 같은 이유로 여기서는 문맥상 A가 더 걸맞아 보인다고 얘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