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이없게도, 미국서는 너도나도 하는 운전이 내게는 너무 어렵고 두려웠다.
설상가상으로 subway system 이 잘 되어 있는 대 도시에 사는 나는 운전을 뭐 꼭 해야 하나 하고 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채 한동안 살았다. 그러다가 그래도 남들은 다 하는데...하면서 필기시험을 치고 운전학교에 가서 실기를 배우고, 여차저차 해서 면허는 따게 되었다.
그런데 면허증만 있으면 자동으로 운전하게 된다고 누가 그러던가?
도저히 자신이 없다. 좀 배워 보려고 하면 더 안 된다. Caravan 대신 좀 작은 sedan 이면 좋을 텐데.
그리고 잘 한다고 칭찬해 주면 더 잘 할 수 있는데, 연습만 하면 점점 오그라드는 내 모습. 아, 나도 몰라! 그냥 자포자기 하고 싶어진다.
항상 내 편인 줄 알았던 남편도 운전만은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
"…driving is like my second nature."
남편이 하는 말이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인 즉,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 하고 어려워 하는지를 이해조차 못 한다는 것임을 나는 잘 안다. 이미 오래 전에 구겨진 자존심, 이젠 더 구겨질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나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 줄 사람은 이 하늘 아래 없기 때문에. 그런데 될 수 있으면 운전은 안 한다. 그리고 피한다.
겨우 동네에서 살살 차를 몰고 다니던 나는 평생 처음 운전 때문에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남편 직장 때문에 독일에 가서 한동안 살게 된 것.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보았다. Autobahn(독일 고속도로)에서 120 마일 이상의 무서운 스피드로 달리는 차들을. 빨리 못 가면 쏜살 같이 달려 오면서 헤드라이트로 자기 선에서 비키라고 위협하던 머세이디스 벤즈(메르체데스 벤츠)들을.
그리고 들었다. 머리칼이 곤두설 정도로 고속 질주하는 차들이 내는 그 무서운 괴성을.
하긴 나만 겁내려나? 대부분의 미국 아줌마들도 autobahn 에서 운전하는 것을 대부분 어려워했다. 그렇지만 윗집 아기엄마는 자기는 미국서는 어디든지 운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의 두려움은 뭐 당연한 듯 했다. 그렇게 또 스스로 위로해 본다.
Autobahn 은 주로 차가 많이 몰리는 도시나 타운을 지나면 속도제한이 없다. 신기하게 사고가 많이 나질 않지만 한 번 났다 하면 치명적인 곳이었다.
이럭저럭 가까운 곳에 장 보러 여전히 살살 운전하며 다니던 중 아이가 수영팀에 조인하게 되었다. 그런데 누가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나? 아니 나 밖에 없지 않나?
그뿐인가. 직업상 집에 붙어 있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인 남편은 주말에도 도움이 안 되었다.
그것도 autobahn을 안 타고는 갈 수 없는 곳. 적어도 30분이나 되는 거리를 내가 운전을 해야 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정작 수영 연습 첫 날이 다가 오자 나는 다른 부모에게 라이드를 부탁했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는 생각이 투철한 내겐 너무도 힘든 부탁이었다.
그 누가 내 심정을 알랴 싶지만 당장 아이를 데려다 주고 데려 와야 하는 상황에서 나의 이런 삶의 원리 원칙은 이미 창문 밖으로 던진 지 오래고 이미 얼굴은 두꺼워져 있었다.
그렇다고 매번 남에게 부탁할 수는 없는 법이지 않나? 얼굴에 철판 깔았다고 일 주일에 세 번 씩이나 남의 신세를 질 수는 더더욱 없었다. 결국 autobarn을 타야 하는 도전이 내겐 더는 옵션이 아니었다.
이렇게 나는 그후부터 몸이 마비가 된 듯한 공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온 몸이 천 근 만 근 무겁게 느껴지고 내 몸이 의자에 철석 같이 붙어 있어 떨어지지 않는 듯한 기분. 아니 떼어 내려야 떼 낼 수 없게 의자와 내가 하나된 기분.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의 모습이었다.
기도했나...?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으려는 심정으로 그것도 오래 오래한 기도도 나를 이 두려움에서 건져 내지 못한다. 아이 픽업 시간은 점점 다가 오고 겨우 무거운 다리를 옮겨 집을 나서는 나는 몸도 마음도 정서도 온전치 못하다.
이럴 때 내가 믿는 하나님은 왜 그리 멀리 계시나? 왜 나의 공포를 가져가 주시지 않으시나? 자신감을 왜 안 주시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 나도 믿고 내 입술로 고백하는데.
이렇게 나는 나의 두려움에 대한 기도 응답을 못 받고 할 수 없이 차에 오른다.
차를 빼 내어 parking lot 을 빠져 나가 주위를 살피느라 그냥 무감각해진 마음으로 나는 차를 몬다. Autobahn에 들어 서기에 앞서 사거리의 빨간 불에 서자, 두려움은 다시 잠시나마 맛보던 마음의 여유를 틈 타듯 거세게 몰려 오면서 운전대를 꼭 잡은 양손은 떨고 있다.
마음을 모질게 먹어 본다. 기도도 할 만큼 했다. 그래도 또 "하나님 도와 주세요!"가 저절로 나온다. 그 순간처럼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그리 멀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그런데 신호등이 빨리 안 바뀌는 것이 조금은 위로가 될 무렵...
나는 느끼기 시작한다.
난데 없이 가슴 속을 후려치듯 물 밀 듯 쏟아져 들어 오는 그 무엇을.
사랑이다! 주님의 나를 향하신 사랑이 두려움 대신 나를 사로잡는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나를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하셨던 주님의 사랑이 이번에는 나를 다른 두려움에서 건지시려고 나에게 임하신 것이다.
너무도 강렬하게 내 가슴이 차고 넘치도록 느끼게 하나님의 사랑을 내게 표현하셨다. "사랑하는 딸아, 두려워 하지 마라" 하는 말씀과 함께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가슴을 적시고 또 적신다.
분명히 내 마음 속에 들리듯 느껴지는 말씀. 너무 무섭다 보니 스스로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거나 하리만큼 하나님은 운전대를 잡은 지 5분도 안 되어 내게 찾아오신 거다.
나를 마비시키던 두려움보단 놀라운 은혜 가운데 나는 남들처럼 초스피드를 내진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편안한 속도로 autobahn 을 달린다. 차도 별로 없다. 레인 바꿀 이유도 생기지 않는다. 그 무서운 벤즈들도 안 보이고 아무도 헤드라이트를 깜박이며 비키라고 하는 차도 없다.
과연 우연일까?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절대로 우연일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를 너무나 완벽하게 도와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일 수 밖에 없음을.
그러나 무척 긴장되어 입 안이 바짝 마른 상태에서 나는 목적지에 도달했다. 건물 안에 들어 가자 부모들이 기다리고 있다. 태연하게 인사하고 웃지만 아무도 모른다. 아직 진정되지 않은 나의 심장은 열심히 콩닥거리며 뛰고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왜 하나님은 사랑으로 기도의 응답을 주셨을까 하고. 하늘로부터 뚝 떨어지는 ready-made된 기가 막힌 자신감 대신 왜 사랑이 나를 도와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이었나?
그렇지. 주님의 완전한 사랑 외엔 그 어느 것도 두려움을 내어 쫓을 만한 그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날 깨달은 것이 있다.
아무리 두렵고 아무리 힘 들어도 방안에 앉아 도움을 요청하던 나의 기도는 효력을 발휘 못하고 일방적인 나의 기도로 끝날 수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내가 운전대를 잡을 때 나를 도우신다는 것을.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내가 운전대를 붙잡지 않는 이상 도와 주실 수는 없었다는 것을.
하나님이 대신 운전하실 것은 아니니까.
아무리 자신이 없고 믿음이 연약해도 기도할 만큼의 믿음이 있다면 부딪쳐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어떤 두려움 이든 간에.
그리고 하나님은 현장에서 도와 주시고 길을 여신다는 것을.
그 후로도 항상 자신 없는 운전.
그래서 나는 차에 오르자마자 기도를 한다. 그리고 수시로 기도한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갖고 싶은 자신감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법칙이 있으니 난들 그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겠나. Practice makes it perfect. 어쩜 너무나 당연한 상식인데도 내가 해야 할 나의 몫은 안 하고 기도가 만사를 해결한다고 착각 아닌 착각을 가끔 하려는 유혹이 올 때 나는 오래 전 그 때 그 일을 항상 떠올린다.
부족해도 기도하고 믿음으로 나가 행할 때 나와 같이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피부로 느끼고 체험한다는 것을.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 할 때 나의 이해력을 초월하는 평안함을 주시고 나에게 가장 합당하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1-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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