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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시편

[시 71:14] 늘 품어야 할 소망 (경배도우미)


   
나는 언제나 소망을 품고 더욱 더 님의 이름을 기리렵니다.       
(시 71:14. 사역)


그동안 믿음과 사랑에 관한 담론을 주로 해 왔습니다만, 이번엔 소망에 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사도 파울에 따르면 이 세 가지는 우리 신자에게 늘 있는 것들이며, 있어야 할 것들입니다(코린토A서 13:13).

소망은 덕목의 하나 정도가 아닌, 삶의 원동력과도 같지요.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잃으면 삶의 의욕도 잃고 좌절하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절망의 단계이지요.

희망과도 같은 소망은 뜻과 목적을 갖고 바라본다는 정도의 뜻입니다.
'바랄 망(望)'이란 글자가 들어 가는 낱말들이 퍽 많습니다. 소망, 희망 외에도 가망, 대망(待望), 대망(大望), 덕망, 명망, 물망, 신망, 앙망, 야망, 여망, 열망, 인망, 전망..등등. 이 모든 말들이 어떤 바람의 정도나 내용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망' 자를 써도 실망, 낙망, 원망, 절망 등의 부정적인 말도 있지요.

동물의 세계를 살펴 보면, 오직 본능에 의해 살아갈 뿐 소망이란 것이 없습니다. 다만 피조물 전체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남을 기다리면서 허무한 데 굴복하고 있는 것입니다(롬 8:18)
그러나 인간이 자신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기에 하나님을 닮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살아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인간에 대한 소망을 갖고 계시기에 인간을 끝까지 버리시지 않고 자기 독생자를 통해 택한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구약 시인들은 늘 하나님을 바라며 그분께 소망을 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우리와 같은 새 언약의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앞으로 오실 대망의 메시아를 바라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늘 메시아에 대한 소망과 직결돼 있었지요.

사람은 앞날을 알 수가 없고 때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존재이지만, 신자는 미래와 내일을 향한 참된 소망을 갖기에 날마다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위와 같이 든든한 주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저마다 나름의 희망을 갖고 살아 갑니다. 또는 존재하니까 하루하루 그냥 살아 나아가기도 합니다. 얄팍한 희망이든, 거창한 야망이든, 지녔다가 그것을 잃고는, 눈동자의 초점까지 사라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죽지 못해 산다"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높은 희망을 갖고 대단한 야망을 가져도 크리스토를 모시지 않은 사람들은 기껏 바라봐야 이 세상에만 속한 제한된 바람 뿐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영원한 멸망의 내세-캄캄한 어둠과 적막과 고통의 미래-만이 기다리기에 그들의 소망이란, 궁극적으로 비극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길, 진리, 생명인 예수 크리스토만이 참 소망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든든하고 견고하여.."라고 힘 줘 말합니다(히 6:19). 참 희망 예수 크리스토는 세상의 폭풍우와 거센 파도, 온갖 흔들림으로부터 우리 영을 지켜 주는 굳건한 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는 것은 그 약속이 이룰 줄을 바라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들의 실증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소망은 늘 믿음과 직결됩니다.

사도 파울은 로마 교회 교우들에게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바라고" 믿었다고 말합니다(롬 4:18). 아브람은 자신의 나이 100세가 되고 아내 사라의 자궁이 죽은 것과 진 배 없는 가운데서도, 후손을 넘치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예들은 예수 크리스토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어, 세상 어려움 중에서도 즐거워 하게 된 것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단련을, 단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며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롬 5:1,3-4).

파울은 계속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닙니다. 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롬 8:24/사역)

그렇습니다. 소망은 미래를 향한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 곧 희망의 대상이 모두 현재 눈에 보이는 것들뿐이라면, 이렇다 할 희망의 의미나 가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기에 더욱 안타깝게 열망하고 학수고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연히, 소망은 우리에게 참음, 인내를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파울은 로마 교우들에게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라고 권고합니다. 참 소망을 가진 사람은 궂은 일에도 내적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고 이겨 나갑니다. 언젠가는 이뤄질 일, 언젠가는 받을 좋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농부가 땀 흘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것은 열매 곧 수확을 바라기 때문입니다(야코보 5:7 이하).

소망의 궁극적인 목표 내지 절정은 물론 성취입니다. 우리의 최대의 희망은 예수 크리스토의 재림이지요! 거듭난 모든 성도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는 그 순간입니다. 바로 휴거라고 불리는 때이지요.
그때 우리 모두는, 썩을 몸이 변화하여 썩지 않을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을 입기 때문에 우리의 희망은 죽을 소망이 아닌 "산 소망"인 것입니다(페트로A서 1:3,4).

파울은 콜로사이 교인들을 향해서도 소망을 강조합니다.
즉 그들을 위해 하늘에 쌓아 둔 소망 때문에 감사한다며 그들이 전에 복음 진리(=참)의 씀을 들은 뒤 그들이 열매를 맺으며 자라는 것을 기뻐합니다(콜 1:5-).

아울러 그는, 만약 우리가 믿음에 머물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들은 바 복음의 소망 안에서 흔들리지 않으면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거리 없는 사람들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역설해 줍니다(콜 1:23. 22절 참조).

파울은 하나님의 한 '비밀' 때문에 교회의 일꾼이 됐습니다. 만대에 대대로 감추어져 온 이 비밀은 이제 말세인 신약시대에 비로소 성도들에게 밝히 나타나 그 영광이 이방인들 가운데까지 얼마나 풍성한 것을 사도들을 통해 성도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 비밀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 속에 계신 크리스토, 곧 영광의 소망(Christ, the Hope of Glory)이십니다(콜 1:27, 이상 참조)! 하나님의 비밀인 크리스토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물이 넘치게 감춰져 있습니다. 

이 비밀, 이 영광, 이 소망을 세상이 자기 힘으로 알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마음을 열고 크리스토를 받아 들이는 자 그 사람만 이 소망을 받아 들여 품을 수 있고 이 영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참된 소망 없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의 비밀을 알려줘야 합니다. 

참된 소망을 지닌 우리는, 세상의 온갖 화려한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 향락적인 것에 마음을 뺏기지 않고 인내로써 우리의 경주를 다할 수 있습니다. 만약 참된 미래의 것, 내세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을 사랑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마침내는 온 세상 사람들이 가는 내리막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교계엔 거짓 소망을 도매금으로 파는 무리가 있습니다. 
비성경적인 온갖 영성을 보급하며 명성을 얻어 누리는 교계 명사들입니다.
그들은 크리스토가 오시기 전, 이미 세상이 하나님의 왕국으로 구축돼 가고 있기에 바로 이 땅이 곧 소망의 터전인 양 입을 맞추고 모읍니다. 그들은 세상을 소위 '7 권역'별로 나눠 세계의 모든 영역 속에서 '정복'을 실천해 가고 있다고 자임합니다.

이른 바 '주권운동'이라는 것이지요. 이 주권운동엔 '신사도운동', (조직화된) '중보기도운동', '성시화운동'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비성경적인 영성운동이 발을 맞춰 주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른 바 '킹덤 마인드'를 갖고 유엔 등 온 세상 사람이 한데 아우러지는 '킹덤 브리지'를 건설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말대로 그럴까요?
과연 예수 크리스토가 오시기 전에도 이 세상 시스템 속에 하나님의 왕국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노, 노, 천만예요!

성경은 세상에 대해 뭐라고 말해 줍니까?
이 세상의 왕과 신은 마귀/싸탄 그 자입니다. 그가 지배하는 이 세상 시스템은 어둠과 죄악의 메이트맄스이며 거기 선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그런지 안 그런지, 사도 요한의 말로 확인해 볼까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몸의 욕정과 눈길의 욕정과 삶의 자랑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 세상도 그 욕정도 지나갈 테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만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요서A 1:16/사역)

어떻습니까? 이 세상과 세상 시스템에 산 소망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따라서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속하고 세상 시스템에 영합하는 신자들은 참 소망을 잃을 우려가 큽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오로지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만 이뤄지고 있을 뿐입니다. 세상 시스템은 아닙니다.

이것은 싸구려 염세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기까지는 세상에서 건전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속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 아닌 하늘에 속하려면 누구나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는 꺼지는 모래땅처럼, 나부끼는 갈대처럼 부질 없고 부칠 곳 없는 세상에 정을 두거나 맘을 기댈 게 아니라 오로지 우리 영혼의 닻이신 예수 크리스토님만을 참 소망으로 삼고 거기 모든 소망과 기대를 걸어야만 합니다.


언제나 참 소망 안에 닻을 주는
티엘티 성도들이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