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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시편

[시 118:22,23] 퇴짜놓은 돌-3월30일 티엘티경배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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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이름을 기립니다
드높이 칭송합니다
할렐루야, 송축합니다

나의 바위,
나의 두 발을 든든히 서 있게 하시는
탄탄한 반석이신 주님을
의지합니다
오직 그 바위 그늘에서
나는 편히 쉬렵니다
위급할 때
오직 거기 숨으렵니다

오, 영원한 바위
만세반석!
에벤에제르-도움의 바위시여!
찬양합니다
경배합니다

성전 주춧돌이신 주님
예수 크리스토를 바라봅니다
의존합니다

이스라엘은 참 메시아를 버렸으나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는
주님을 환영합니다
메시아, 크리스토, 구주로 영접합니다
반겨 맞아 들입니다
기쁘게 모셔 들입니다

주님 역시
우리를 받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들을
일찍이 택하시고
부르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들로 삼아 주시니
오 감사합니다
우리의 맏형
예수 크리스토님을 기리며 바라봅니다

우리의 영원한 바위
만세반석이신
그분을 붙듭니다
경배합니다
노래합니다

우리의 도움이신 주님
생명수를 폭포수 같이
흘려 마시게 하는
영원한 생명의 바윗돌

그 주님을 우리는 송축합니다
할렐루야

옛 이스라엘은 버리고
거부했지만
아버지께서 택하신 돌
귀한 모퉁잇돌을
믿습니다

그분을
날마다
날마다
날마다
의지하렵니다
붙들겠습니다

(539장 찬송입니다)

오 나의 소망 둘 곳은 주 예수 피와 의로움
나 굳게 의지할 것도 주 예수 이름 뿐이다
주 나의 강한 바위니 딴 곳은 모두 모래 땅
딴 곳은 모두 모래 땅

저 어둠 주님 가려도 늘 변치 않는 주 사랑
큰 폭풍 불어 닥쳐도 주님께 닻을 내리리
주 나의 강한 바위니 딴 곳은 모두 모래 땅
딴 곳은 모두 모래 땅

주님의 언약 그의 피 날 항상 굳게 붙드네
온 세상 나를 버려도 주님은 나의 참 소망
주 나의 강한 바위니 딴 곳은 모두 모래 땅
딴 곳은 모두 모래 땅

큰 나팔 소리 울리고 주 예수 다시 오실 때
주님의 의를 입은 채 그 보좌 앞에 나서리
주 나의 강한 바위니 딴 곳은 모두 모래 땅
딴 곳은 모두 모래 땅

오늘의 메시지

퇴짜놓은 돌

    건축자들이 퇴짜놓은 그 돌,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
    이 일은 주/야웨님의 행적, 우리 눈에 놀라워라!
(시 118:22,23 사역)

바로 요 얼마 전, 이스라엘 예루살렘 근교에서 헤롣 시대 성전 건립용 석재를 뜬 자리가 발굴됐습니다.
20여 톤이나 되는 거대한 사각형 석회암들을 원석 바닥에서 켜서 들어 냈던 채석장이지요.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 채석장은 주전 19년 경 로마 제국의 꼭두각시였던 유다 분봉왕 헤로드가 기존 제룹바벨 성전을 허물고 확장한 성전지대를 구축하는 데 쓰인 것이 거의 틀림 없답니다.
채석장 주변에서 발견된 당대의 동전과 토기 등이 이것을 입증해 준다네요. 이 거대한 석재를 뜨고 옮기는 데는 수 백 내지 수 천 인부들 특히 노예들이 동원됐을 겁니다.
사상 최초로 이런 채석장이 발굴된 까닭은, 고고학팀의 한 요원이 현지에서 땅을 파다가 뭔가 발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살펴 보니 그것은 바위에 박혀 있는 철 쐐기였습니다. 즉 새로 돌을 뜨기 위해 화강암을 쪼개려다가 쐐기를 잘못 박아 그냥 내버려 둔 것입니다.

사실 고대에 첫 성전을 지은 슐로모 왕과 성전 건립작업을 준비한 다윋 왕은 성전과 당대의 궁전을 짓기 위해 이웃나라 쪼르(튀로, 한글성경 '두로', 푀니키아) 왕국의 석재와 기술을 빌렸지요. 그런데 후대의 헤롣 왕이 나라 자체의 채석장을 개발해 썼다는 것은 역사가 지나면서 그만큼 건축술이 발달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택한 성구들은 첫 성전 건립 당시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건물의 건축 때 생긴 일인지 또는 단순한 비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히 뭔가 실제로 일어났던 일로 기정 사실화 하고 있습니다.

즉 건물을 짓는 데 쓰려고 채석장에서 떠 온 큰 돌을 건축자들이 '불합격품'이라고 퇴짜를 놓았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어느 새 그 돌이 모퉁잇돌 곧 주춧돌이 됐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잘못 뜨인 돌이라고 생각하고 버렸던 것이 가장 귀하고 소중한 돌이 됐다는 겁니다. 

이거 참, 놀라운 일 아닌가요?
그렇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이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여기 이 원문에서 한글성경은 모두 하나 같이 '버린 돌'이라고 옮겼는데 그리 정확한 뜻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아무 데나 그냥 버린 돌이 아니라 건축에 쓰려고 채석장에서 무겁게 힘들게 옮겨 온 돌인데, 정작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우리, 이거 못 써!" 하고 거부하고 제쳐 놓은 돌이라는 뜻입니다.

채석장에서 제대로 선택하고 골라서 떠서..
그 무거운 돌을 아주 힘들고 어렵게 끙끙거리며
건축대지까지 운반해 왔는데
그만..

물렸다는 것입니다.
거부 당했다는 것입니다.
퇴짜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이 퇴짜놓은 돌에 관한 성구 자체도 거의 '퇴짜' 맞다시피 설교자들에게 별로 주목 받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성구를 매우 중시하셨습니다. 관주 성경을 보면 이 성구는 대부분의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인용됐습니다. 따라서 매우 중요한 성구입니다.
자..이 간단한 성구를 주님과 사도들이 왜 그렇게 중시했을까요?

마치 건축자들이 거부하고 퇴짜를 놓고 제쳐 놓은 그 돌처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바로 참 메시아이신 예수 크리스토를 퇴짜놨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시편 기자는 성령님을 통하여 수 백 년 전에 예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그 돌이 다시 가장 귀한 돌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사실 불합격품으로 퇴짜 맞은 돌이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 된다는 식의 이런 일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와 같은 일이 바로 이스라엘에서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구에겐가 거절을 당할 때..기분이 어떨까요? 누구한테 퇴짜 맞았을 때, 그 기분은 과연 어떻던가요?

가령 여러분이 취직자리를 찾는데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더니..아, 어느 회사에서 오라고, 와서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너무 기뻐서 기대와 흥분에 넘치는 가슴을 달래며 헐레벌떡 달려가 몇 십 분간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심사위원이 큰 미소를 지으며 며칠 후 연락을 주겠다고 잘 될 거라는 답변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더 신이 나서 방방 뛰다시피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라더니 웬 걸..기다리고 기다려 봐도 아무 연락도 없는 겁니다. 답답해서 전화를 해 봤습니다. 그랬더니.."아. xx님이군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딴 데를 알아 보셔야겠네요"..
맥 빠지죠. 자주 겪는 일입니다. 기분이 영 안 좋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퇴짜를 맞으면서 그럭저럭 살아 갑니다.

그런데 흔한 사람도 아닌 분,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크리스토님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도 아닌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그런 퇴짜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황당하지 않습니까? 기가 찰 노릇이지요. 요즘 말로 정말 생뚱맞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건축자들이 설계도에 맞추어 이런저런 건립 계획에 따라 이런저런 자재들, 석재들을 신청하고 주문해서 가져 온 돌인데 다~ 옮겨 놨더니, 막판에 퇴짜를 놓은 것처럼..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야웨 이레로 예비하시고 택하신 거룩하신 그 아드님을 구세주로 메시아로 세상에 보내셨는데,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인 아브라함/야콥의 후손 이스라엘에 보내셨는데..이스라엘이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그냥 손사래를 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노~! 하고 물렸다는 것입니다. 

자..실제로 그런가 안 그런가 살펴 볼까요?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자주 세상의 배척을 받았습니다.
여관도 아닌 구유 안에 탄생하셨을 때 땅에서 반겨 맞아 주는 무리라곤 한밤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몇몇 목자들뿐이었고..한참 후 멀리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었지요.

그나마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앞에서 언급한 헤롣 왕이 죽이려고 베틀레헴 아기학살 사건을 저지르는 통에 멀리 아이귑트(에집트)로 일가족이 피신해야 했습니다. 돌아와서도 나자렡 동네에서 숨어 지내다시피 했습니다.  

열 두 살 때는 사랑하는 (법적인) 아빠 요셒과 엄마 마리아가 자기네끼리 다정한 얘기를 하느라고 아들을 깜빡 잊어 버렸기에 혼자 성전에 남아 당대의 학자들과 담론을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또 공사역에 나서신 예수님은 본인이 30년간이나 자라 목수로 일하셨던 자기 고향 나자렡에서부터 거부를 당했습니다.
"이게 누구야..저기 우리 동네 그 목수 요셒네 첫 아들 아냐? 아니 제 까짓 게 뭐라고 우리한테 설교를 다 해? 딴 데 가 알아 보라고 해."

요즘 보니까, 인터넷 댓글 광장에서 '흥 핏 쳇' 하는 감탄사 꾸러미가 유행하더군요.
마치 그것처럼..동네사람들이 흥! 핏! 쳇! 하고 예수님을 비웃고 제쳐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주님을 낭떠러지로 몰고 가서-코너링 해서 절벽 아래 떠밀어 버리려 했습니다. 실제로 추락사 시키려고 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주님은 권능으로 그 사이를 빠져 나가셨습니다. 

사실상 살해 기도였지요. 어찌 보면 나자렡 마을 사람들이 다들 간접 살인범이었던 셈이지요. 글쎄..고향 사람들이라는 작자들이 그 모양이었습니다.
주님 맘이 어땠을까요..상상이나 갑니까, 여러분? 기가 막히지요!  그래서 주님은 "대언자가 자기 고향에서 대접 받는 사례가 없다는 옛말이 진리다"고 탄식하셨지요. 

그뿐인가요?
주님이 가시는 곳곳, 주요 도시마다 그분을 거절했습니다. 도무지 믿어주질 않습니다. 더구나 주님이 가장 권능을 많이 행하시고 착한 일을 많이 하신 지역들이 겸손히 회개하지 않고 도도히 굴었지요.
오죽하면 주님께서 책망하다 못해 저주까지 하셨겠습니까?  

    화가 있으리 코라찐!
    화 있으리 벹세타!
    카페르나움, 너는 땅 속까지 낮아지리! (마태 11:20~24 참고)

- 이렇게 말이지요.

그래서 주님은 하는 수 없이, 세상에선 천대 받지만 그 분을 반겨 주는 가난한 사람들, 천민들, 갈릴리 어부들, 숫자로 쳐 주지도 않는 여성들과 어린이들, 세무사들, 환자들과 행려병자들, 장애인들, 나그네들, 성매매여성 등 소외된 사람들을 주로 만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든 사람들, 다 내게로 나오시오. 내가 그대들을 편히 쉬게 해 줄 테니..라고 무한한 은총의 오퍼를 넣습니다. 율법과 종교 계율에 얽매어 시달리는 당대인들에게 "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까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시오. 그러면 그대들의 마음이 쉼을 얻을 테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오" 라고 약속하십니다.
 
또 진리를 알라, 진리가 그대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오 라고 단언하십니다.
진리가 곧 예수님이라는 거죠!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배고파 허기진 5천명 내지 만 수 만 명의 보통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한꺼번에 빵과 물고기를 먹이시고는 하늘 생명의 빵, 하늘의 만나인 주님을 믿고 받아 들이라고 일러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지요.

그런가 하면..
왕과 왕족들, 귀족들과 고관들, 사회지도자들, 군대의 장군/장교들, '인텔리'로 불리는 지식층, 부유층, 그리고 대 사제들과 사제들, 성전에서 일하는 레비인들, 하나님을 가장 잘 믿는다고 뽐내며 거들먹거리는 양대 종교정당-파리세 파와 사두케 파 사람들, 종교국회인 산헤드린 공의회의 의원들,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법률가들, 종교 지도자들..이런 VIP들과 엘리트들, "높은 지체"님들은 거의 모두가, 한결 같이 예수님을 거절했습니다. 비웃고 천대하고 멸시했습니다.
가장 높은 하늘에서 가장 낮은 곳에 내려오신 존귀한 그분이 어딜 가나 따돌림 받는 존재였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치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사실상 거의 한 명도 없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루스나 로마군대 백부장 정도였지요. 고관이라고는 단지 예수님을 한 번 만났다가 훗날 예수님의 무덤에 따라 온 니코데무스라는 공의회 의원님-딱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나마 남들의 눈이 두렵고 부끄러워서 밤에 몰래-극비리에 찾아 와 만났지요.

예수님을 믿고 따른 부자들도 얼마 안 되지요. 기껏 해야 예리코의 세무사 자캐우스, 예수님께 자기 새 무덤을 제공하고 그 속에다 주님의 시신을 모신 아리마테 요셉 정도였습니다.  또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다락방을 제공한 마르쿠스 요한의 어머니도 상당한 부자였다고 추정됩니다. [이 다락방은 훗날 성령이 내리시고 첫 교회를 세운 바로 그 장소가 됐지만요.] 

예수님이 갈릴리 호반 지역을 주 사역지로 택하신 이유도 도시지역에서는 도무지 환영을 못 받으시니까, 당대에 그리스인들이 많이 살던 10개 주요도시-데카폴뤼스 등이 있어서 이방인들이 우굴거리고 유대인들이 꺼리는 소외 지역이었기에 택하신 것입니다. 거기서도 호수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아 하루하루 살림살이와 끼니를 이어가는 어부들을 제자들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들도 처음에 그리 만만치는 않았지요. 4복음서를 살펴 보면 페트로는 주님이 여러 번 찾아가신 후에야 제대로 헌신했습니다. '바르톨로메'란 이름을 가진 제자 나타나엘은 필맆이 예수님을 소개하려고 하자 "나자렡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나?" 라고 아주 하찮게 여기며 묻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곳곳에서 거부/거절을 당하시고 극소수의 소외된 사람들에게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나마도 마지막엔 자기네 뜻대로 왕 자리에 올라 나라를 개혁해 주지 않는다고 대다수가 그분을 거절하는 대신 강도 바라바스를 택했기에, 그만..주님은 사형수가 되고 맙니다. 철저히 버림받은 것이지요.

그뿐인가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까지 온 식구가 한때나마 주님을 의심하고 배척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미치광이로 생각했지요. 동생들은 비웃으며 "형님, 아니 그래 기왕 사역하시려면 예루살렘에 가서 하시지 왜 시골 구석이나 다니시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십니까? 큰 물고기답게 좀 큰 물로 올라 가세요!"라고 내쫓다시피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겥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그 밤에 주님이 체포되시자, 조금 전까지도 유월절 식탁에서 주님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사랑하시던 12제자들 대다수가 주님을 버리고 도망 가 버립니다. 그 가운데는 처음부터 마귀와 타협하고 계약하여 스승을 팔아 먹은 제자 아닌 배신자도 있었지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랐던 페트로는 심지어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여러분. 그뿐일까요?
주님은..가장 사랑하시던 아버지 하나님께도 한때나마 버림 받으셨습니다.
마지막 숨이 끊어져 가는 고통의 시각, 그 처참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사랑하는 외아드님-독생자 그분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왜 버리셨나요? 여러분과 제가 아다시피 세상의 모든 죄악-과거와 현재, 미래의 죄-를 한꺼번에 한 몸에 몽땅 짊어지신 그 모습이 공의의 하나님께는 엄청난 불결이고 부정이기에 외면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린양은 홀로 죽어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덤 속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분을 다시 살려내십니다. 부활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그분을 하늘에 올리시고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가장 높은 영광을 그분에게 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짐승의 피로도 갚을 길이 없던 인류의 죄악을 그분의 몸을 단번에 바쳐 완전히 구속해 주시고 하늘 성전의 위대한 대사제, 모퉁잇돌이 되셨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오 영광, 할렐루야!

바로 이 모퉁잇돌이 우리의 바위, 반석이신 예수 크리스토이십니다.

그분을 퇴짜놓은 그 백성 가운데 다시 위로자/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셔서, 택함 받아 그분을 참 진리-참 바위-로 받아 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구원과 성령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자기 백성은 거부하고 거절했던 그 돌, 그 바위를 이방인들은 멀리서 환영하고 받아 들였고 지금도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그제나 이제나 구원과 성령의 선물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역시 이방인들인 현대의 한국인들, 우리들까지도 그분의 은총과 사랑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됐습니다.
 
자..이제 장차 그분이 철장 권세로 마귀의 통치권을 부수어 무너뜨리고 우주의 온전한 영광을 모두 회복하시는 그날, 왕들의 왕, 주들의 주님으로 군림하실 때, 그분은 모름지기 온 우주의 완전한, 가장 높은 통치자가 되십니다.  

그 옛날 바빌론의 폭군 독재자 네부칻네자르 왕은 어느날 밤 괴상한 꿈을 꾸고 고민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포로 출신으로 당대의 현인이자 총리가 된 다니엘이 그 꿈을 일러주고 해석까지 해 주지요.
즉 머리부터 발까지 차례로 순금/은/놋/쇠와 및 철/진흙으로 된 거대한 신상이 섰는데 갑자기 산에서 뜨인 큰 돌이 날아 와 "쾅~!" 하고 부딪치니까 그 신상이 산산조각나서 흙먼지로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고, 다만 그 바위가 태산을 이루어 온 세상에 가득한 꿈이었습니다(다니엘 2:31~35 참조).

이 돌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바로 예수님이지요!
바로 이 환상이 오늘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님이 오시고 교회가 세워진 이래 이천년 역사 대대로..세계 곳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무수히 생겨났고 이방인 나라인 우리 한국을 비롯한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주님의 백성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계속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고요.

이 역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퇴짜맞고 거부 당했다가 성전 모퉁잇돌이 되신 우리의 참 바위이신 예수 크리스토. 그분만을 길과 진리와 생명, 참 메시아로 모시고 전하다가 주님을 뵈어야겠습니다.

영원한 바위 예수 크리스토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늘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