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는 길목에 서서 바삐 지나가는 가을의 뒷자락을 본다.
그래서인지 ‘가을 그 쓸쓸함에 대해’ 그리고 ‘누군들 쓸쓸하지 않으리’ 등등 가을의 쓸쓸함을 달래는 제목의 글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알록달록 색동옷을 갈아 입은 양 자태를 뽐내던 단풍 잎들이 이젠 서로 차례를 다투어 가며 줄이어 떨어진다.
그래서 이미 길과 잔디에 마구 뒹구는 마른 색색의 낙엽들과 아직 푸른 색이 남아 있는 잔디와의 대조는 이때만 보는 광경이다. 이른 서리나 추위를 못 견디는 나무는 어느 새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지 오래고, 아직 남아 있는 마지막 이파리는 바동거리며 자기 자리를 지키느라 안간 힘을 쓰는 듯 해 보인다.
쌀쌀한 날씨마저 사람들의 발길을 종종 걸음으로 재촉한다.
그렇게 어김 없이 찾아 온 '가을'이라는 이름의 독특한 계절. 어느 결에 왔다 어느 결에 지나가고 있다.
가을은 시작이기보다는 끝이 다가옴을, 남은 세월보다는 가 버린 세월을 자연히 생각하게 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계절이다.
가을이 가고 나면 긴 추운 겨울을 지나야 하는 자연의 순리를 통해, 사람도 태어날 때가 있으면 또 갈 수 밖에 없는 때가 기다리는 인생의 진리를 보기 때문일까. 수 없이 오고 간 가을마다 쌓이던 낙엽의 기억이 역시 우수수 낙엽 지듯 가 버린 나의 지난 날들로 연상되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끝마무리 하는 계절이라 그럴까.
많은 이들이 "가을을 탄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인생의 농한기에 접어 든 양 이 아름다운 계절을 쓸쓸하게 바라 본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이부자리인 양 본능적으로 몸을 던져 뒹굴며 노는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와는 다른 본능이 여러 연령층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래서 쓸쓸해 하는 이들, 낭만을 꿈꾸는 이들, 쓸쓸한 마음을 뭔가로 대신 채워 보려고 안하던 것을 배워 몰두하는 이들, 월동 준비에 분주한 이들, 사색에 빠져 드는 이들...
가을의 계절색이 통틀어 비슷한 듯 해도, 이파리마다 제 색깔이 있듯이 사람마다 가을을 대하는 자세 또한 제각각이게 마련인가 보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누가 가을을 어떻게 묘사하든, 가을이 수확의 계절임엔 틀림 없다.
사람의 애쓰고 수고한 대가인 결실과 수확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그 수고함이 결실을 이루도록 어김 없이 해가 내리쬐는 낮과 그리고 밤을, 또 때를 따라 비도 주시고 찬바람 더운 바람 고루고루 주신 창조주 하나님 손길을 보는 은혜의 계절이다.
아무리 후다닥 지나간 세월이 덧 없이 느껴져 아쉽고 쓸쓸하다 해도.
덧 없는 세월 안에서 우리가 알든 모르든 베푸신 하나님의 돌보심과 채워 주신 은혜를 이루 다 헤아리지는 못해도.
그리고 다만 보이지 않는 손길과 배려에 익숙해지다 보니 늘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잠시 잊을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보다는 ‘부족함’에 더 촉각을 세우고 살 때도 있다지만.
때로는 투덜대며 불평 불만 하는, 은혜를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나 역시 그런 사람이 가끔 되기도 하지만은.
나는 안다.
지금까지 누리고 산 그 많은 혜택을.
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복과 은혜를 주신 이가 누구인지를 나는 안다.
그래서 가을은 참 소중한 계절이다.
유난히 지난 세월의 추억과 기억이 더 선명하고, 자신을 더 돌아 보게 하는 이 시기는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임에 틀림이 없다.
수확이 있음에 감사한 시기일 뿐만 아니라, 풍성한 수확이 주는 기쁨과 풍요함 이상으로, 그간 영육 간에 선하심과 신실하심으로 우리를 가까이 하신 그 분의 은혜를 가슴 뜨겁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실로 다채로운 색깔만큼이나 아름답고 멋진 계절이다.
설사 가을이 지나면 엄동설한의 추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뜨거워진 가슴으로 나의 믿음을 지킨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봄을 기대하고 소망하게 된다. 그리고 또 연이어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이 그만의 풍성함을 안겨 주려 오기에 벌써 그 여름 냄새를 기다린다.
당연히 어느 가을 날의 쓸쓸함과 더불어 한 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추위가 곧 오지만, 이 또한 지나가게 마련이기에 나는 가을이 주는 쓸쓸함에 얽매이지 않으련다.
하늘을 찌르듯 서 있는 나무가 아무리 듬직해도 스스로 있다고 말하지 못하듯. 넘실대는 바다와 강의 물이 육지를 삼킬 듯 겁을 주며 막강한 힘을 자랑해도,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잠잠해지듯. 겹겹이 둘러 서 있는 산들의 그 웅장함도 홀로 되었노라고 말 못하듯.
나 역시 홀로 나만의 힘과 지혜로 오늘을 사노라고 말하지 못한다.
가을은 참으로 적나라하게 냉철한 계절이다. 한 여름 녹음이 짙고 잎이 무성한 때와는 달리 잎이 떨어지면서 크고 작은 가지를 포함한 나무의 벌거벗은 실체가 한 눈에 노출된다.
나는 이때만 되면 수시로 여름 내내 꼭꼭 숨겨져 안 보이던 새 둥지가 여기저기 걸려 있는 모습을 높이 쳐다보며 신기해 한다. 아직도 둥지에 남아 새끼들과 겨울을 나는지, 아니면 따뜻한 곳을 찾아 잠시 비워 둔 둥지인 지도 궁금해진다.
더는 무성한 나무이파리의 보호도, 무수하던 먹잇감 벌레도 없어 왠지 안쓰럽다. 마치 호시탐탐 노리는 적에게 노출된 듯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바람막이도 없어 겨울을 잘 견딜까도 염려스럽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새들은 아마도 매번 다가 오는 이 계절의 낌새를 알아 차리고 먼 여행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추운 겨울을 나는 법을 벌써 이미 깨우쳤는지도 모른다.
늦가을부터 겨울 동안은 수시로 보는 새 둥지가 한 동안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우리에게도 예상치 않은 어려움과 실패 그리고 고난이 찾아 와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세상의 냉혹함에 벌거숭이마냥 노출되던 시기와 경험이 없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계절이라는 자연 법칙 때문이라면 예측이라도 하련만. 우리에겐 그런 본능 의식조차도 없어 무방비 상태로 오는 거센 바람과 물결을 비켜 갈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런가 하면 문제와 갈등을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그 속에 빠져 헤매며 살기도 하지 않는가.
언제나 이 힘든 시기를 벗어나나 종종 거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 버리고 만다. 우리의 새 머리만 한 두뇌의 기능에 헛 웃음이 나올 때가 적지 않다.
그래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준비하는 이 시기는 우리의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그간의 하나님의 보살핌을 되돌아보는 이처럼 좋은 계절이 없어 보인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그 분의 신실하심이 날마다 함께 하신다고 하지 않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날마다 자라게 하시고, 너무도 큰 사랑은 흉내 내고 싶게 하신다. 아픔과 상처는 빨리 잊어 버리게도 하시고, 역지사지해 보는 여유와 너그러움도 주시고, 크고 작은 행복을 누리게 하시며, 마치 세상을 다 소유한 듯 풍요로운 마음에 이르기까지...어느 하나 주님께로 인한 것이 아닌 게 없다.
나의 삶을 이렇게 풍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는 것이 계절을 불문하고 그 어느 때고 자연스런 성도의 삶이지만, 특히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는 더 실감 있게 다가 온다.
발가벗은 듯 외부에 노출된 새 둥지의 안쓰러운 모습은 항상 내 마음이 감당하기에 두렵고 힘들고 자신 없던 시기와 순간을 생각나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무게가 있다고 하지 않나. 나만이 아는 나의 부족과 한계, 나만이 느끼는 무서움도 서러움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아무도 대신 채울 수도 감당해 줄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나만의 몫은 항상 남겨져 있게 마련이다.
초등학교 시절, 매일 신발주머니를 챙겨야 했던 옛 추억이 새롭다.
곧잘 잊어 버려 빠뜨리고 학교에 가던 날은 마치 사형선고 받은 죄수인 양 벌을 두려워 하곤 했다. 그런 날은 책상에 머리를 파 묻고 앉아 “하나님, 도와 주세요!”라고, 생사를 건 듯 애걸복걸하는 간구와 기도는 어린 내가 어려움에 부닥칠 때면 본능처럼 우러나는 행동이었다.
기도했다는 사실 때문에 여태껏 기억에 남아 회고하는 것은 아니다. 신발 주머니를 안 가져 오던 날은 영락 없이 초죽음이 되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던 나의 간절한 호소는 한 두 번으로 끝낸 것이 아닐 뿐더러, 어느 날 내 어린 마음에 문득 번개처럼 스쳐 가는 깨달음의 충격 때문이다.
돌아 보니, 내가 애걸복걸 기도하던 날은 한 번도 선생님이 신발주머니 검사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도 무서워 했던 벌을 받아 본 적 역시 한 번도 없다.
그것도 한 번이었으면 우연으로, 아니면 ‘운’이 좋았다고 간주했겠지만,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여러 번이라 분명한 패턴이 내 어린 마음에도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분명히 내 기도를 들어 주셨다는 확신과 깨달음은 저절로, 가슴 한 켠에 지우려야 지울 수 없이 깊이 박히고 말았다.
놀란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지금까지 어설프게 희미하기만 하던 하나님의 존재가 너무도 확실해지던 순간이라 내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이다.
물론 그 당시 내가 아는 하나님은 여기저기서 주워 들어서 알게 되고 성경은 무조건 창세기 첫 페이지부터 읽는 줄 알았던 시절 되풀이해서 읽고 읽은, 아주 단편적인 짧은 지식이 전부였다.
그러나 누가 말해 주었든지 어디서 읽었든지 간에, 나는 이미 천지를 지으시고 최초의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두려움에 처한 초등학생의 심정으로 도움을 요청하기에 충분한 전지전능하신, 내 하나님이셨다.
나 스스로 만들었든지 나와는 상관없이 닥친 어려움이든지 간에 상관 없이, 나를 어려움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 구원의 손길을 상기하고, 주님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선하심과 자비로우심을 또 기대하고 신뢰하기 위해 항상 되돌아 보는 내가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기억이다.
그 후로도 수시로 지금까지도 “하나님, 도와 주세요” 하는 나의 다급한 간구를 늘 들으시고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길이 없다.
어느 힘겨운 날도, 나의 기력을 다 소진한 날도, 혼란스러운 날도, 두려운 날도 수 없이 오고 갔지만, 그리고 잊혀 가지만, 나를 도우시고 보살피는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은 아직도 새롭다.
날마다 내 가슴과 영혼을 적시는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하다. 내게 필요한 은혜를 때를 따라 적절하게 주시는 하나님은 나의 모든 감사의 대상이며 은혜를 입은 자답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나의 실수와 불완전함, 그리고 과거의 죄를 기억하고 더 나아지고 더 완벽해지려는 노력의 허무함을 나는 잘 안다. 그리고 내게는 그렇게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있지 않음을 안 지는 이미 오래다.
다그치고 정해진 틀에 가두며 실수마다 짚고 넘어가며 훈육을 일삼는 부모의 자녀보다는 사랑과 인내로 큰 울타리 안에서만은 맘대로 뛰어 놀 수 있는 자유를 주는 부모의 자녀가 더 순종하는 아이가 됨은 잘 안다. 부모의 사랑을 신뢰하는 아이가 부모의 말도 신뢰하고 순종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높고 넓고 크신 은혜와 사랑은 나를 움직인다.
그리고 내가 누리고 덧입고 사는 크고 작은 많은 복의 출처와 내게 있는 모든 것의 공급자를 아는 사람은 이 기막힌 은혜와 은혜에 대한 감사가 말씀에는 순종으로, 삶에는 기쁨과 감사로 그리고 성품에는 아름답고 귀한 열매를 맺어 가는 수확의 기쁨이 완연하고 갈수록 늘어간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는 그래서 믿음도 자라게 마련이다.
내게 주신 은혜는 어마어마한 창조주 하나님이 진흙으로 빚으신 창조물인 나에게 베푸신 은혜라, 갚고 싶어도 갚을 수 없는 은혜다. 그렇지만, 은혜를 아는 사람의 본분을 지킴은 나의 몫이다.
하나님은 가끔은 영원한 나라와 진정한 가치에 비례해 세상에서 누리는 일시적인 삶의 가치와 집착을 희미하게 하시기도 하시는 은혜를 주신다. 그래서 더는 내가 소유하는 것 중심으로, 나 중심으로 사는 재미가 점점 줄어 들게도 하신다. 그리고 자연히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게 하신다.
사색한다는 이 계절에 나도 지금까지 나의 영혼이 주를 알아 가는 기쁨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돌아 본다.
나의 애타는 한 마디의 기도마저도 묵인하시지 않으신 하나님의 은혜가 나는 오늘도 고맙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늦가을을 쓸쓸해 하고 아쉬워 하지 않은 이유인지 모른다.
하나님의 은혜 렌즈를 통해 보지 않는 세상은 삭막하고 쓸쓸하며, 지나가는 세월을 통해 인생무상을 노래할 수 밖에 없지만, 이 은혜의 특수 렌즈로 보는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하다.
우리의 삶은 가치 있고, 나의 하는 일은 의미 있으며, 나는 소중하며, 하나님은 나의 진정한 기쁨이 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받은 은혜를 나누는 삶이 주는 기쁨은 그 어떤 회의와 실망도, 가을의 쓸쓸함마저도 충분히 잊게 한다.
그래서 지난 날을 돌아 보게 하는 이 가을은 언제나 멋진 하나님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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