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집 마당 한 모퉁이에서 기를 쓰며 버티기라도 하는 듯 혼자 피어나는 노란 찔레꽃을 꺾어 푸른 색 피처(pitcher)에 담으니, 색의 조화가 그럴 듯 하다. 다 깨지고 하나 남은, 내가 좋아 하는 엷은 보라색 트랜스퍼웨어(transferware: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개발된 문양공법-transfer printing-으로 무늬를 박아넣어 만든 도기) 접시에다 역시 자그마한 촛대를 올려 놓고 오랜만에 촛불을 켜 본다. 바스러지지 않고 어찌어찌해 여기까지 따라온 말린 장미꽃 이파리와 더불어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며 혼자 흐뭇해 한다.
아직도 정리정돈이 안돼 어수선한 집안에 걸맞지 않은 나의 장난이지만, 억지로라도 부리려는 여유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동안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적인 행동인지도 모른다.
남편의 새 임지에서 새로운 임무는 일주일간 이어지는 당직으로 시작되었다. 대부분 상담과 도움이 필요한 경우이지만, 군인이 전사한 경우 가족에게 전사 소식을 전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평화 시에야 사고로 인한 죽음에 그쳤지만, 지금 같은 전시에는 미디어에서 모르는 수없는 죽음이 이들의 현실이다,
아직 동이 트기 전 새벽에 울리는 전화를 받자마자 급히 달려나가는 남편이 던지는 한 마디는 ‘death notification’ 이다. 엉겁결에 나도 일어나지만, 누군지 모르는 그 군인의 아내와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
다들 잠든 새벽에, 정적을 깨고 벨을 누르는 정장을 한 두 군인의 모습은 죽음의 사자는 아닐지언정 죽음의 소식을 갖다 주는 메신저다. 겨우 일어나 문을 여는 젊은 아내는 서 있는 이들의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미국 땅 어딘가 군인의 부모가 사는 집에도 다른 죽음의 메신저들은 같은 소식을 전하려 이들의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May I come in?” 하는 이들의 물음에 기쁨으로 여유 있게 손님을 맞아들이기 보다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마지 못한 동작으로 이들을 맞이했을 그녀를 나는 상상해 본다.
한 살짜리 아이를 둔 젊은 아내의 통곡 소리에 아직 겨우 뿌옇게 동이 트기 시작하는 이 새벽녘에 이웃들이 나와 수런거린다. 전사한 군인이 속한 부대의 후방 팀원들이 몰려와 각자 맡은 바 의무를 수행한다. 곧 이어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후처리와 보상문제 등 공무가 진행된다. 군인의 아내가 곧 정신을 가다듬고 처리해야 할 일에 잘 임했다고 한다. 그녀가 신자여서 기도해 주고 올 수 있었다고 남편이 전해 준다.
마침 토요일이라 우리는 짐 풀기를 마저 했다. 이른 새벽부터 일과가 시작된 남편은 저녁이 되자 피곤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만 쉬자고 말을 나눈 지 얼마 안 되어 울리는 전화를 받자마자 남편의 “Another one?” 하는 대답에 나는 아연실색한다. “또?” 하며 묻는 나 이상으로 남편도 어이 없고 안타까운 표정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이번에는 다섯 살 짜리와 한 살 짜리를 둔 군인의 전사다. 아빠가 집에 오면 자기 아빠를 학교에 데리고 와서 “Show & Tell”을 하겠다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말해 놓은 유치원생의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듣는다.
비교적 차분하게 남편의 전사 소식을 전해 들은 부인은 통곡하거나 몸을 못 가누고 힘들어 하지는 않아도 충격을 받아서인지 남편의 전사한 경위를 재차 묻는다. 이 아내는 공무를 담당하는 군인 외에는 아무도 방문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렇게 이어지는 노동절 연휴를 남편과 나는 중상을 당한 다른 세 명의 군인들의 상황을 대기하며 지냈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지만, 남편과 아빠를 잃은 이들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7월에 아버지를 잃은 나는 슬퍼할 겨를이 없이 이사 준비로 바쁘게 지내다 이사 와서도 계속 바쁘게 지냈다. 8월에는 처음으로 아버지가 안 계신 아버지 생신이 돌아왔다. 장례식 이후 온전히 슬퍼할 기회와 여유를 나 자신에게 줄 수 없었던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은 안 하려고 애쓰지만 그동안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이 내 맘속을 오고 갔다.
죽음은 보편적이다. 누구나 한 번 태어나 때가 되면 죽게 마련인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정한 삶의 이치다. 사람은 인생의 종착역을 죽음으로 마감한다.
악인이든 의인이든. 험난한 삶이든 고귀한 삶이든. 짧든 길든. 타살이든 자살이든 자연사든. 이유를 불문하고, 누구의 죽음이든 간에 죽음은 여지없이 끝을 의미함과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길이다.
알게 모르게 수시로 우리는 죽음의 소식을 접한다. 나 역시도 주변에서 수시로 죽음을 목격한다.
그럼에도 죽음은 매번 참 생소하다. 아마도 우린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인가 보다. 죽음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마치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으로.
아버지께서 건강이 날로 악화하셔도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나의 어리석음이 말해주고도 남는다. 내 부모는 영원히 그 자리에 계셔야 하고 영원히 사실 것 같은 착각을 믿고 싶은 마음, 이 억지스런 마음을 나의 어리석음 외에는 어찌 달리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가 있어?”
항상 앉으시던 의자가 비어 있는 상황이 적응이 안 돼 내가 혼자 되뇌는 말이다.
그것도 인생의 언덕 내리막길에 서 있는 딸자식이 할 만한 말은 아니지 싶지만 나는 이 순간만은 나의 감정과 이성마저도 철저히 주관적이다. 그 누구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위로와 설득이 위안이 안 된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이야기.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 남편의 새로운 일에 얽힌 이야기. 새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들아이의 새로운 도전. 나는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항상 들어주시던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사실이 너무 생소하다. 아버지 특유의 온유하고 젠틀하신 성품. 이해하기 어려운 자녀의 다른 삶의 이야기도 항상 관심 있게 들어주시던 아버지. 그 누구도 아버지의 빈 자리를 메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고는 하나 죽음은 저마다 각기 다 다르다. 그리고 극히 개인적이다. 너무나 잘 아는 죽음의 의미지만, 죽음이 남기는 많은 이야기는 사람 하나하나가 다르 듯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죽음이 미치는 영향도 각기 다 다르다. 죽음이 남기는 이야기에는 항상 아쉬움이 서려 있게 마련이다.
남편을 먼저 보낸 어머니는 더 잘 해 드리지 못한 아쉬움으로 마음 아파 하신다.
어머니는 한국 전쟁 후 부모를 잃은 아버지와 결혼하셨다. 일하며 대학 공부하는 아버지를 내조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두 분의 삶은 고달팠다. 왜, 아버지의 기억은 그 때를 벗어나지 못했을까. 돌아가시기 직전 어머니에게 고생을 많이 시킨 것이 미안하다고 말씀하시고 우셨다고 하신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남동생은 아버지의 점차 차가워지는 손을 마지막으로 만져 본 후, 왜 그리 자주 부모님을 뵈러오면서도 아버지 생전에 손 한 번 잡아 보지 않았는지 후회스럽다면서 한참을 아쉬워 한다.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라 병원 출입이 별로 없으시던 아버지가 진작에 건강진단을 안 받으신 데 대한 후회와 함께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별로 없었다고 아쉬워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관에 누워 계시는 시신을 잠시지만 보고 있노라니 흐르는 눈물을 제치고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덮었다. 인생의 무력함과 한계가 여실하다. 육신의 겉옷을 벗는 순간 우리에게 이 땅에서 주어진 모든 기회는 끝이 난다. 더는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인색하셨어도 가족을 위해서는 철저히 희생하고 베푸시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도 이미 장성한 자녀들에게 더 해 주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이제는 더는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순간이 와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이라 내게는 더 절실하겠지만, 관에 누워 계신 아버지는 이젠 더 내 아버지가 아니셨다. 영혼이 떠난 숨 쉬지 않는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나의 아버지 모습은 아니다.
참으로 짧고도 빠른 세월이 피부로 느껴지던 순간이다. 시편 기자의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는 고백이 실감이 난다.
나는 관 속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마지막 겉 모습을 보던 날은 ‘오늘’이 그 어느 때보다도 무척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오늘 못 하면 이미 늦을 수도 있기에. 내게 기회가 주어진 오늘 내가 최선을 다하여 사는 것이 훗날 얼마나 많은 아쉬움을 줄일 수 있는지 알기에. ‘오늘’의 소중함을 다시 확인하고 조용히 다짐해 본다. 신속히 가는 날들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매일매일 오늘에 충실한 것이 바로 나의 행복이고 나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감사 표현이다.
오늘 사랑하지 못하면 내일도 못하는 법. 오늘 너그럽지 못하면 내일도 마찬가지 일 수 밖에 없고. 오늘 용서할 수 없다면 내일이나 모레, 한 달 후, 아니면 내년에는 가능해질까? 오늘 아니면 여전히 할 수 없는 용서다. 다툼과 성냄도 미움도 오늘 스톱 안 하면 내일도 모레도 여전히 못 하는 법이다.
‘오늘’이 귀함은 ‘내일 일’을 몰라라 하는 자세이기보다는 인생의 마침표가 누구에게나 곧 오기에 삶을 종결하는 관점에서 볼 때는 오늘이 기회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깨닫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더는 관용도 용서도 이해도 사랑도 베풀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순간이 와서 그 아쉬움을 가슴에 묻고 간다면 산 자의 의미가 어디 있겠나?
그래서 더욱 오늘이 귀하다. 아직 산 자의 땅에 있을 때 내 가족에게 들려 줄 수 있는 사랑의 언어를 맘껏 구사할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좋은가? 살아 있는 자체는 내게 주어진 기회이다.
세월이 가면서 사람의 죽음은 잊히게 마련이다. 개인의 죽음은 당연히 잊혀야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 자체의 이치마저 잊어서는 안 된다. 죽음의 아이로니컬한 양면성은 끝과 동시에 시작이다.
성경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을 ‘자는 자’들로 표현을 한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생이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죽어도 살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살아 있으나 믿음 안에 있지 아니한 자들을 ‘이미 죽은 자들’로 표현한다. 사람의 죽고 사는 일이 사람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은 이리도 다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 라고 성경은 말한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짧은 날을 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보아도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을 땐 부지런히 움직이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해 내는 것을 보면 주어진 시간의 한계가 분명할 때 일의 능률이 오르는 것을 본다.
비슷한 이치로,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날들이 한정된 것을 알면 미루기보단 오히려 준비하고 우리의 짧은 날을 지혜롭게 살며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귀한 삶이 될 수 있다.
성경은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한다.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한다.
창조물인 인생. 그 날이 풀과 같은 인생.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은 인생. 이것이 인생의 정체다. 수도 없이 많은 죽음이 이를 말해 주고도 남는다.
옛 어른들은 사람의 근본을 잘 따진다. 부모를 보고 집안을 본다. 진정한 목적은 자식에게 미치는 부모와 집안의 영향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은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인생의 행로는 잊고 산다. 우리가 누리고 사는 하늘과 땅과 물의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잊고 산다.
아니 성경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한다.
죽음이 모든 슬픔과 괴로운 인생의 끝인 양 자신의 삶을 스스로 중단하는 이들도 있지만 죽음은 단순히 인생의 끝이 아니다. 죽음은 또 다른 삶, 영원한 삶이 시작되는 정점이다.
살아있는 동안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고 사는 구원 받은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의 죽음 뒤의 시작은 판이하다. 하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생의 삶이요 다른 하나는 영원히 멸망하는 삶이다.
우리가 아직 살아 산 자의 땅에 있는 자체는 무한한 사랑으로 무한하게 참으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기회다. 성경은 아무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변명할 자가 없다고 한다. 인생의 끝이 있는 줄은 알아도 또 다른 시작이 시작되는 것은 믿지 않는 우매한 인생들에게 영생을 주시고 영원한 멸망을 피할 길을 예비하시고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귀담아 듣고 영생의 선물을 받을 유일한 기회가 산자에게는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영생을 약속받는 기회뿐이랴. 완전하지 못하고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한 인생살이일 망정 하나님이 자녀에게 베푸시는 많은 복과 은혜를 받고 사는 기회다. 눈에 보이는 것만 위해서 사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지혜로운 삶의 기회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삶의 기회를 하나님은 산자에게 주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 앞에서 우리의 슬픔이 감당 못할 슬픔이 아니다.
그런 인생의 수고와 슬픔 가운데서도 지난 삶을 돌이켜 보면 섬세하고도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구원 손길, 이런저런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과 관여와 역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7살에 인민군에게 끌려 갔다가 산 속을 헤매며 탈출한 이야기. 또 다시 국군에 징병되어 수 없이 죽음의 선을 넘을 뻔한 이야기. 종국엔 속한 부대가 모두 폭사하고 전멸 당해도 혼자 살아 남으신 이야기. 그 후로 부모와 많은 형제를 잃으시고 전쟁의 상흔을 가슴에 안고 사신 우리 아버지의 슬픈 삶이지만, 그 슬픔 안에도 생명을 연장해 주신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삶의 수고 속에서 동행하심이 역력했다.
이렇게 죽음은 아쉬움도 남기지만, 하나님의 인생을 향한 귀한 은혜도 보게 한다.
죽음과 무관하게 살 때는, 지난 세월을 돌아볼 새도 없이 앞만 바라보고 가다 보면 그동안 같이 하신 하나님의 귀한 은혜의 손길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반드시 죽음이 아닐지라도 앞으로 남은 생애가 살아온 생애보다 짧다고 생각되면, 가끔은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보며 굽이굽이 내 인생 길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아무도 출가하기 전, 식탁에서 온 식구가 깔깔거리던 모습이 내 눈에 선하다.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가장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여동생 덕에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웃던 시절도 우리 가족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리라.
이젠 아버지의 죽음은 지나갔지만 내 앞에 있는 세월을 감사하고 충실하게 사는 일이 아직 내게 남아 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이 날마다 같이 한 날들 때문에 가슴이 뛰고 기쁜 이 은혜가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충분히 덮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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