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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저런 글

대형교회는 쪼개져야 교회가 선다




기라성 같은 책,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이계선 목사 지음)가 단기간에 재판에 들어갔다니 당초 예상대로 대박을 히트한 모양이다.
비록 독자가 기대한 제목 대로의 토픽을 다룬 부분은 한 장 밖에 되지 않는다지만, 워낙 재담들이 많아 인기를 누릴 것 같다. 센세이셔널한 제목에 호기심을 갖고 펼치게 되고 저자의 글에 빠져 들어 가면서 읽히게 된다고 본다.

이 글의 제목도 뭔가 센세이셔널리즘에 편승하는 듯 보일 테지만, 실은 모종의 의식 교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돼 쓴다.

일각에서 이미 지적한 대로, "xx교회가 망해야.." 라는 문구는 떨떠름하다. 대형교회라고 해서 "망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쉽게 망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예수님 오시기까지 상당수의 대형교회는 살아 남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형교회에 일대 변화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얼마 만큼의 사이즈가 대형교회에 해당하는지도 감안돼야 할 사안이다.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다"는 일견 '안티'적인 발언에 대하여 자체 방어가 필요한 수많은 대형교회가 강조하듯, 교계의 발전에 굵직굵직한 역할을 해 온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대형교회의 존재의 타당성을 완전 입증해 주는 빌미나 빙거는 못 된다.


1.

어쩌면 여러 대형교회나 그 지도자들의 온갖 부패상에도 불구하고 일부가 살아 남을 수 있는 까닭은 소수의 진실한 교인들 특히 거듭난 교우들의 기도 때문일지 모른다. 쌍둥이 도시 소돔/고모라는 단 10명의 의인들만 있어도 살아 남을 도시였다. 대형교회인 자기 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의인들이 10명도 안 되겠는가. 없으면 곤란할 테지만.

아니..만약 제도교회가 세상에 치우쳐 세상 시스템과 손잡고 세상 메이츠릭스(matrix)에 깊이 개입된다면, 대형교회가 심판 때까지 살아 남든 사라지든 주님이 관여하시지 않는다고 볼 수도 없지 않다. 한국 대형교회는 일단 두고라도, 미국 대형교회들의 경우, 배후에서 세상의 문제 집단들과 손잡고 세상에 깊이 뿌리박은 교회들이 하고 많다. 믿거나 말거나.

예컨대, 미국의 대형교회일수록 프리메이슨(메이슨들에 관해서는 웹에 널린 다양한 비평자료들을 참조하기 바란다)들이나 다양한 문제성 집단에 소속돼 있을 확률이 그만큼 높다. 대형 교단들이 으레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니, 거기 소속된 대형교회인들 예외이겠는가.

대형교회일수록 세속 사회와의 선을 넘나들면서 교분을 나누기가 쉽다.
구체적인 예를 들겠다.

빌 하이블즈 목사의 윌로크맄커뮤니티교회는 해마다 '리더쉽 서밑'이란 것을 개최한다. 이 모임의 명성과는 달리 강사들 중엔 문제성 연사들이 퍽 많다. 올해 강사들 중엔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있다!

블레어가 누구던가? 그는 정계에서 물러나면서 성공회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이다. 그런 직후 뉴욕으로 건너 와 오피스를 내고 근래 미국에 머물면서 모종의 사업을 하고 있다. 유엔과도 관련 있는 일종의 다원종교사업이다. 찰스 왕세자가 열망해온 사안이었다.

그런 블레어를 하이블즈가 리더쉽 서밑 강사로 초청했다면, 이 대형교회는 뭔가 수상쩍은 것이다. 참 교회가 아니다. 예수 크리스토의 참되고 순결한 교회는 그럴 리가 없다. 교인들과 세상을 희석시켜 놓겠다는 것인가? 아울러 하이블즈는 세속 사업가에 가깝지, 참 목자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사실 그동안 리더쉽 서밑에 초청된 강사진을 훑어 보면, 뉴에이저들을 비롯해 별의별 인사들이 다 많다. 그 가운데 다수는 결코 거듭난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구태여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하이블즈와 그의 윌로크맄어소시에션이 세상과 짝하며 모종의 어젠다를 갖고 있다는 암시다. 수많은 미국 대형교회가 그런 길로 나아갔든가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참 신자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냄새 맡을 수 있어야만 한다. 분별하는 신자만이 참 신자로 남게 된다. 분별을 거부하면 참 신자로 살지 않겠다는 말이 된다.


'목적'론 영성의 선구자 맄 워런의 새들뱈교회를 보자. 워런은 초기에 혹 순수한 맘으로 개척을 시작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그는 뉴에이지적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에게 20년간 멘토링을 받고는 나날이 변질돼 왔다.

유엔과 손을 잡고 국제적인 구호사업을 하겠다고 외치는가 하면, 정치 노선에까지 들락거리고 있다. 조지 W. 부쉬와도 꽤 친근한 사이였는 데다 이제 오바마와 더욱 가깝다. 시리아 대통령 등 국제 정치가들을 만나는가 하면, 두 대선후보를 주일날 교회로 초청해 정치토론을 벌이게 만들기도 했다. 마치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채플린"이었다는 빌리 그래엄처럼. 그래서 심지어 일각에선 워런을 '신교 교황'으로 부르기도 한다.

목회자가 정치인들과 친분을 갖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나, 이 정도로 교회가 세상과 가깝다면 주목해 봐야 할 사안이다. 알고 보면 워런은 CFR, 애스펜 재단, 잔 마크 템플턴 재단, 라커펠러 재단 등 굵직굵직한 세속 단체들과 의문성 연계를 맺고 있다. 

과연 워런은 순수한 크리스천일까? 요한1서 2:15,16을 실천하는 사람일까? I doubt it..positively.

이런 모습이 대형교회나 그 지도자가 받는 세상의 온갖 유혹들과 무관하지 않다. 아마도 대형교회가 쪼개지면, 유혹이 좀 덜 할 지도 모른다.


2.

한국 대형교회들이 미국의 대형교회들, 또는 패러처치들과 이모저모로 제휴하거나 손잡아 간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한국 대형교회들은, 근래 한국 교계가 전반적인 성장 답보 상태에 이르면서 번역도서 등을 통해 미국 교회들의 '성장'전략들을 알고, 처음엔 한 수 배우기 위해 손을 내밀다가 미국 교회의 이상(異常) 영성까지 몰수히 받아 들이고 있다.

이것은 비단 대형교회 뿐 아니라, 대형교회로의 발돋움을 꿈꾸며 미국의 것을 무조건 숭상하며 받아 들이고 있는 일부 중형교회도 마찬가지겠다. 한국 교회의 주체 못할 향(向) 미국성 사대주의는 정말 못 말릴 정도다.

현재 한국 교계는 마치 배고픈 갓난아기가 엄마 젖을 빨듯, 미국의 영성이라면 거의 무조건 마구잡이로 다 수입하며..그 결과 관상기도 중심의 관상영성(觀想靈性, contemplative spirituality), 미국 30-40대의 젊은 교회인 소위 '떠오름'(Emerging, Emergent)교회의 떠오름영성(emergent spirituality), 신 사도/대언자를 통해 교계를 개혁한다는 신사도개혁주의(New Apostolic Reformation)의 신사도영성 등이 모두 한국에 무사히 상륙했다.

심지어 관상/떠오름 영성 수행의 하나이면서도 가장 세속적, 이질적이고 카톨릭, 이교적인 '미로명상'(labyrinth)까지도 교계의 별 저항을 받지 않고 한국에 수입돼 폭넓게 보급돼 가고 있다. 교계의 이런 이상기류는 한국의 대형교회가 미국 대형교회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결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


3.
대형교회는 본래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야 좋든 싫든 간에 교회의 대형화는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성경은 명언해 준다. 교회가 대형화 돼 갈 징후가 보인다면, 오히려 잘게 쪼개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릴 없는 필자의 주장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쳐 주는 그대로다. 교회는 대형화 되어선 안 되게 돼 있다!

단적으로 예루샬렘 교회를 보자. 한때 예루샬렘 교회는 교인수 1만 이상의, 당대로서는 초대형교회로까지 증강됐다. 물론 교회당은 없었고 가정 사역 중심이었다. 단지 몸집만 큰 게 아니라 매우 열심이었다. 날마다 모여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떡을 떼며 친교했다. 부담 없이 가진 것을 나누며 동고동락했다. 

그런데 점점 비대해지니까 사도들 12명이 모두 말씀 사역에 치중하고 구호 분야는 7집사들을 따로 선택하여 그들에게 맡긴다. 물론 7 집사는 그 이상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교회가 비대한 상태로 장기간 있노라면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12사도들은 예수님의 종말 예언을 기억하면서도 예루샬렘의 경우 그 종말이 우선 주후 70년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적어도 예수님의 최후 대명을 따라 예루샬렘과 유대, 그리고 그 영역을 더 벗어나 사마리아와 그 너머로까지 복음이 확산돼야 함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절감하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교를 통한 흩어짐(디아스포라) 상황을 허락하셨다. 비록 죽음과 수난 자체는 슬프고 불행 같아 보여도 복음 전파를 위해 거대교회가 효과적으로 쪼개진 계기였다. 예루샬렘 교회의 비성경적인 대형화는 여기서 무산되고 무너졌다. 그후 우리는 그 어떤 성경기록에서도 대형교회가 존재했다는 기록을 읽을 수가 없다.

예루샬렘 교회에 속해 있던 다수의 무리가 사도들만 남아 교회를 지키고, 뿔뿔이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가는 곳곳에서 전도자/선교사 역할을 한 것이다. 필맆 집사의 사마리아 전도와 외국인(쿠쉬 칸다케의 재무장관) 전도의 사례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분명히 교회의 대형화 내지 중앙집권 체제가 불필요하며 다만 흩어져 복음 전파 역군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길 바라셨다는 증거다.


4.

교회가 날로 더 대형화를 추구하고 힘과 부의 축적을 지향해 나간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여기가 좋사오니" 식 바벨탑이 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같은 대형교회이더라도 예루샬렘교회와 현대 교회는 여러 모로 차이가 있다.

예루샬렘교회는 사도들이 모두 공동목회를 하는 형태였다. 교회의 머리는 어디까지나 예수 크리스토였고, 다만 페트로(베드로)나 주님의 동생 야코보 처럼 영적/상징적인 대변자가 있었을 뿐이다. 페트로나 야코보는 '담임목사'로 행세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교회는 어떤가? 교회의 5대 직능의 하나일 뿐인 목회자가 하나의 CEO가 되어 거의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의식을 지닌 목회자가 허다하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마땅히 지녀야 한다고 명했던 종 다운 섬김의 정신은 목회자들의 의식 세계로부터 나날이 멀리 사라져 가고 있다. 도리어 "이 교회는 내가 성장시켰다"며 섬김을 받겠다는 쪽이 더 많다. 교인들로부터 온갖 향응을 받고 거드름을 피우며 명령 대로 곱게 곱게 이행해 주길 바라는 쪽이 실은 더 많다.

대형교회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성전/지교회, (구역중심)가정교회로도 분화시켜 간다. 소위 '셀 그룹'이 교회성장에 효과적인지는 모르되 동시에 해당교회의 초(超) 대형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모든 셀 그룹과 가정교회, 지교회, 개척교회는 대형교회에 예속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속 기업체로 말한다면 일종의 지국/지점화 현상이다.

중형교회든 소형교회든 해외교회든 교계 안에서 뭐든지 해서 "빠삭"하게 잘 된다고 소문난 건 대형교회가 다 차지해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만큼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대형교회 목회자는 심지어 주변의 소형 교회들까지도 자기네에 흡수 통합되길 은근히 내심 기대하는지 모른다. 아니면 큰 우산의 그늘 아래 들어 오든가.

이것은 현재 exactly 윌로크맄/새들뱈 등에서 현재 진행 중인 교회의 거대 네트워크 화와도 같다. 교단과 같다고 하겠지만 교단보다 더 중앙집권적 성향이 강하고, 전체를 아울러 세속과 손잡게 하고 있다는 것은 중대한 위험 요소이다.  
 
대형교회가 지교회를 거느리면서 네트워크화 돼 가는 이런 중앙집권 체제는 이른 바 '피라믿' 형이고, 님로드가 제왕 역할을 하던 고대 바빌론 제국과 흡사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티칸 중앙집권 통치를 해 온 구교일 것이다. 

대형교회는 셀그룹 내지 지점화로 나날이 비대해져 갈 게 아니라 명실공히 세포분열을 해야 한다. 쪼개져야만 한다. 중형화에서 소형화로 거꾸로 발전해야 옳다.
부교역자들에게도 교회를 나눠 할당해 주고 힘이 약한 작은 교회가 자립하도록 도와야 마땅하다. 독립시켜야 하고, 예속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이상 비대증을 예방하고 거대화/바벨탑 화를 막는 길이다.

대형교회가 쌓은 자원들은 당연히 서로 나누는 데 쓰여야 하고, 대형교회의 거대 설비도 그러하다. 만약 진정 참된 교회를 희구한다면, 교회는 개교회주의를 탈피해야 하며 모든 자산은 공동자산이어야 옳다.

이단이 아닌 이상 크리스토의 몸된 교회 안에서 "내 교회", "네 교회"가 어디 따로 있다는 말인가? "우리 헌금", "늬네 헌금"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우리 시설", "늬네 시설"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비록 내정 간섭을 할 순 없더라도. 
 
한국교회나 미국교회나 교회가 살아 남을 길은 그 길 뿐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유럽 교회의 사양길 운명을 한국 교회가 피해 간다는 보장이 없다.


5.

몇 가지 덧붙여서..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 되도록 겸허하게 충고하고픈 일이 있다.

외래 영성을 수용하여 '영성' 생활을 하는 것은 목회자나 지도자의 개인 취향으로 그쳐야 한다.
그런 영성훈련을 거(擧)교회 화 하고 범교회화 할수록 교인들까지 덩달아 이상 영성에 물들고, 장차 그런 영성체제가 한꺼번에 붕괴될 때, 전체 교회와 교계가 나동그라질 위험 요인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영성을 온 교우들에게 보급할 수 있는 케이스는 성경에 비춰 보아 절대 무사하다고 검증된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성경의 검증에 무사통과되는 경우는 전혀 또는 거의 없다. 대다수가 큰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

지금의 관상영성, '목적' 영성, 떠오름 영성, 신사도 영성 등은 과거 어떤 영성/부흥보다 더 뉴에이지에 접근해 있다! 안전요소보다는 성경과는 거리가 먼 비진리성과 위험요소가 더 크다는 말이다. 뉴에이지적, 종교다원적인 수많은 문제인사들, 명사들이 그런 영성 운동 배후에 진 치고 있고, 더 나아가 CFR(대외관계위원회)/CNP(국가정책협의회) 등 비성경적인 의문성 집단들과 연계를 맺고 있다. 참 신앙인이라면 그런 단체와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도 아랑곳 않고 발을 끼어 넣고들 있다.

또..그들 대부분은 국제 명사로 자임하고 활약한다. 미국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듯, 대형교회 목회자일수록 쉽사리 교계 명사가 되며, 또 본인도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그러길 바라는 성향이다. 물론 한국 대형교회 목회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유명 인사들끼리 친교하면 서로서로가 '얻는 것', 또는 이득이 많기 때문이다. 명사가 될수록 얼굴도 잘 팔리고 책도 잘 팔려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래서 은퇴하고도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탄탄한 생활 기반을 굳힌다.

결국 이게 누구 덕인가? 자기 목회발, 말발, 마당발 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은덕과 예수님의 이름과 성경을 이용하여 팔고, 무수한 교인들의 섬김의 발판 위에서 자기 영예와 이익, 소득을 추구하는 행위가 된다. 두려운 일이다.

사도 파울의 교훈을 보면, 목회자든 누구든 교계나 세상의 명사가 돼선 안 된다! 부동의 진리다. 대형교회 목회자가 명사가 되는 유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교회는 예루샬렘 교회처럼 대형화 이전에 쪼개지고 세포분열 돼야 한다.
 
언필칭 '복음주의'를 내세우고 부르짖으면서 이상한 영성을 퍼뜨리고 은근히 다원주의와 비진리화로 몰아가는 미국의 교계 명사들의 행실을 유의깊게 살펴 보고 경계해야 마땅하다.

지금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현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선 안 된다. 마지막 날 누가, 어느 길이 주님께 칭찬을 받겠는가? 명사들의 대로(大路)인가? 아니면 오직 많은 무리를 옳은 길로 이끄는 좁은 길이겠는가?

제대로 목회를 해 보지도 않은 필자의 이런 지론은 독자에겐 '이상론'으로 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경적인 노선에서 지적하려고 애를 썼다.
지적한 개선 희망 사항을 부분적인 노력조차 해 보지도 않고 단지 한 필객의 잡론으로만 치부하지 말아 달라. 양심에 찔리는 바가 있더라도 그냥 덮어 두지 마라.

그리고..가장 초기교회의 일부였던 만큼 순수했어야 할 (계시록의) 7 교회도 칭찬과 책망을 받았고..오래 전 모두 지상에서 사라졌음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