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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비밀집단

로스차일드 가(家)에 관하여

은행가 라이오널 드 로스차일드(Lionel de Rothschild)가 영국 서민원에 소개받고 있다. 

로스차일드 가(家)에 관하여 

스티븐 박


로스차일드 패밀리(Rothschild Family)를 논하기 전, 먼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지난 250여년간 세계 경제·정치·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제되어야겠다. 

로스차일드는 한 국가의 금융업을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크게는 수에즈 운하 건설(1859-1869)에 결정적인 경비를 제공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예민한 중동지역의 금융시장과 석유산업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이런 경제력은 그 지역에 무시 못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기반을 제공한다. 로스차일드는 영국이나 미국, 또는 프랑스가 중동지역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데 배후 세력으로서, 자기 금융·정치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결정에 따라 지역 왕족들과의 정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다.

로스차일드 가의 몇 가지 강점첫째로 철저한 가족 중심의 경영철학에 있다.  로스차일드 가의 첫 선조였던 암쉘 모제스 로트쉴트(Amschel Moses Rothschild, 1710-1765)는 유대인의 기업전통을 이어받아 내부 결속이 용이하고, 기밀 유지가 가능하며, 전문 경영인으로 인한 배신, 횡령, 부정적 루머의 양산 같은 기업 경영상의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경영철학을 구축했다. 

둘째로, 모든 기업의 명운(命運)이 그렇듯, 로스차일드도 시대적 호기(好機)를 타고 났다. 18세기 유럽은 크고 작은 전쟁으로 유럽 대륙이 잠시도 평온한 날이 없었을 정도로 내전과 국제전, 장·단기전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전쟁에는 당연히 막대한 비용이 든다. 전쟁을 앞두고 급전(急錢)이 필요했던 각 나라 영주들, 국왕들은 무기 구입, 용병 고용 등에 필요한 전비를 확보하기 위해 로스차일드가의 금융 시스템을 외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로마의 바티칸 교황청도 전쟁에 개입할 때는 로스차일드 은행으로부터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을 받았다. 당대에, 교황청은 스위스 용병들을 고용하여 전쟁을 치렀는데, 막대한 전비가 필요했다. 물론, 대출 계약서에는 이자와 함께 채무 불이행시 따르는 엄격한 조건이 명시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프랑스 정부가 발행한 국채나 대출금을 지정한 기간내에 상환하지 못하면, 프랑스 국유기업이나 토지, 철도 운영권 같은, 대출금의 2-3배 가치가 있는 국가 기간 산업을 로스차일드 은행으로 넘기는 조건이 붙었다. 

셋째로, 모든 기업 행위를 그림자처럼 물밑에서 다루어, 공적 여론 앞 노출의 최소화를 원칙으로 했다. 현재 스위스와 네델란드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매우 건실한 투자은행들은 이름만 달리했을 뿐, 로스차일드 계열의 은행들이 많다. 여론상 노출을 최소화했기에, 통상적으로 일반인들의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 그런 투자은행들은 외관도 왜소하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끌 만한 특이 사항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거래 통화량은 상상을 초월한다. 

넷째, 로스차일드가는 문화의 위력을 처음부터 갈파했다. 로스차일드 선조들은, 돈은 유형자산이지만 문화는 무형자산으로 때로는 문화가 돈의 위력을 압도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지금부터 200여년전부터 파악하고, 보석과 고미술품, 기독교 고문서, 유럽 왕실의 고가의 장식품 등을 수집해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포도주 (Winery)산업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세계적 대 재벌이 웬 포도주 산업(?)?' 하고 물을지 모르지만, 유럽에서 포도주가 주요 투자 대상이 된 것은 이미 오랜 전통이다. 일례로, 로스차일드의 1935년산 적포도주 Cabernet Sauvignon (까브네 소비뇽) 한 병은 세계 포도주 시장에서 15만 달러(약1억6천만원)를 호가한다! 로스차일드는 그밖에도 예술단체나 이름난 공연을 딴 이름으로 후원하기도 하고, 세계적 문화행사에 산하기관 이름으로 거액을 후원하고 있다. 
이상의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제부터 로스차일드 가의 경제적 발전상을 상술하기로 한다. 

                                                                  로스차일드 가의 주요 인물들        
본론: 
제1대, 로트쉴트: Amschel Moses Rothschild (1710-1755)

암쉘 모제스(=히브리어 '모쉐') 롯쉴트(=로스차일드)는 당대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게토Ghetto(유대인 집단 거주지인 유덴가세라는 빈곤지역)에 살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당시 신성 로마제국의 주요 도시의 하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자유도시였으므로 상공업 활동이 다른 도시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웠다. 

사실 롯쉴트라는 이름의 유래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차크 엘카난 바하라흐 춤 한(Isaak Elchanan Bacharach, zum Hahn)이 이 가문 최초의 선조로 알려진다. 그의 이름은 로텐 쉴트(zum rothen Schild '붉은 방패를 가진'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는데, 1577년경 그 집이 대대로 살던 집의 상징물이 붉은 방패였기 때문이다. 당시는 집마다 번호 대신에 특유의 상징 또는 색깔로 표시했다. 원래는 Rothschild가 이디쉬어(Yiddish: 고지 독일어에 히브리어슬라브어 따위가 섞여서  아슈케나지 유대인들의 언어)로, 가문의 문장으로서의 '붉은 코트'를 뜻했다. 그런데 그의 손자들과 후손들이 이 이름을 가문의 이름으로 채택하여 사용했고, 1664년 유덴가세(Judengasse)로 이사할 때도 이 성씨를 유지했다.   

당시 독일 정부는 유대인들을 경멸하여, 호적등록을 할 때 그들의 고유한 히브리어 이름 대신 독일식 이름으로 강제화했다. 그 이름들이 하나 같이 우스꽝스러워 평생 독일 사람들의 조롱의 대상이었을 뿐더러,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속일 수 없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Einstein: 한 개의 돌 => '돌대가리'), 골트벌크(Goldberg: gold rock 금덩어리 => 돈만 아는 사람), 로젠블룸(Rosenblum: 만개한 장미꽃 => 계집애 같은 놈), 슈필벌크(Spielberg: Play Mountain=>놀이동산), 슈마허 (Schumacher=>구두수선공) 같은 식이었다. 
그에 반해, 독일인들은 Schmidt(슈미트=대장쟁이), Müller(뮐러=방앗간 주인), 기타 Schneider(슈나이더), Wagner(바그너), Weber(베버), Schultz(슐츠), Hoffmann(호프만), Wolf(볼프) 등 좀 더 괜찮은 직업을 시사하는 성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 사람의 성만 봐도 유대인인지, 독일인인지 구분이 가능하다.

이런 배경 가운데, 제1대 암쉘 모제스의 집앞에는 이름에 걸맞게 붉은 방패 깃발을 꽂아놓도록 프랑크푸르트 시 당국이 명령을 내렸다. 당시 프랑크푸르트의 게토는 다른 도시의 게토에 비해 상황이 다소 양호하긴 했지만, 인간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만 갖추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해가 지면 게토를 벗어날 수 없었고,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게토에만 머물러야 했는데, 유대인들은 본래 이방인이나 기독교인들과의 접촉을 되도록 금기시한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도 정통 유대교인들은 이방인이나 크리스천들을 경계한다. 

유대인들은 죽지 않을 만큼 최소량의 흑빵, 약간의 밀가루, 소금 및 천 조각들을 배급받아 짐승의 우릿간 같은 열악한 곳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독일인들에게서 받은 인간적 모멸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상황은 다른 대다수 유럽 지역에서도 대동소이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제스는 주화 수집에 흥미를 가졌다. 당시 독일만 해도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아니었고, 영주나 소왕국의 군주들로 분할된 통치권이 행사되던 나라였다. 따라서 독일 안에서 통용되던 금화나 은화, 동화는 다양했고, 이웃나라인 프랑스나 네델란드, 스위스,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보니 모제스는 자연스럽게 환전(Money Exchange) 사업에도 관심을 가져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훗날 금융업계로 진입하게 된다. 

은행 업무의 주 고객은 귀족들이었고, 평민들은 은행거래가 거의 없었다. 어린 로스차일드의 고객 중 가장 유명한 인사는 왕세자 빌헬름Wilhelm of Hesse (헤세-카셀 주의 왕위 계승자)이었다. 이런 환경 덕분에 금융가들은 이웃나라 귀족들과도 연계성을 가질 수 있었다. 빌헬름은 성실한 13세의 모제스를 하노버Hanover 금융가에 견습생으로 보내 은행 업무 실무를 익히게 했다.

견습을 끝내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온 19세의 모세는 본격적인 은행업무(환전, 융자, 투자)를 소규모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사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모제스는 결혼해서 7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아들 다섯이 모두 금융업에 종사해 가족 기업(family business)을 이루었다. 이들 다섯 중 가장 크게 사업적 두각을 보인 아들이 마이어 암쉘(Mayer Armschel Rothschild, 1744-1812)로, 그는 로스차일드 금융왕국의 선구자였다. 마이어는 결혼해서 5남 5녀를 두었는데, 3남 Nathan나탄이 국제금융업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독일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에 산재한 유대인 공동체에 거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 유덴가세의 로트쉴트(=로스차일드) 하우스 

그즈음 나폴레옹 전쟁(1802-1815)이 발발해 유럽의 각 참전국들-영국·프랑스·프러시아·스페인·스위스·스웨덴-등이 엄청난 거액의 전비가 필요한 때였다. 당연히 이 전쟁을 계기로 로스차일드 은행은 급성장하면서 마이어의 다섯 아들을 보내어 비엔나·파리·런던·프랑크푸르트·나폴리에 지점을 각자 독립적으로 개설하게 하면서 동시에 5개국을 연계하는 국제 금융네트워크를 형성하게 했다. 그런 로스차일드 은행에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큰 날개를 달아줬음은 물론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로스차일드 은행들은 해당 국가, 혹은 이웃나라 군주들에게 전쟁에 필요한 전비를 대출해주고, 그 댓가로 막대한 금융 독점권을 갖게 되었다. 조부 모제스는 후손들에게 근친결혼(주로 사촌이나 팔촌)을 통한 가족 경영방식을 유언으로 남겼고, 이 전통은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고 지켜지고 있다.

나탄(영어 네이선)은 영국으로 건너가 2만 파운드(현재 가치 2백만 파운드)를 투자해 시작한 직조 산업(textile business)이 성공해, 2015년 현재 500억 파운드(650억 달러)의 거대 기업으로 성공시켰다. 그는 당시 영국 정부에 다양한 루트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주어, 벤저민 디즈랠리(Benjamin Disraeli) 총리와 각별한 친분을 쌓기도 했다. 자신이 투자하여 건설한 수에즈 운하의 운영권을 영국이 갖도록 이집트 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네이선은 영국에서 백작의 작위를 받았다.

미국 정부도 로스차일드 계열의 은행으로부터 거액을 빌려 국가 기간 산업에 투자했다. 1930년대 미국의 경제공황은 미국 전체를 주저앉힐 만큼 위협적인 경제 위기였다. 이때 유럽 쪽 유대인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민 오면서 그들의 자산을 미국 정부에 투자했고, 미국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사회기간산업 - 도로·항만·공항·공공건물 등을 건설함으로서 경제공황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국은 유대인들에게 큰 빚을 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여기에 로스차일드 가의 거금이 유입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밖에도 영국에서는 보험업, 스페인에서는 광산업(로스차일드는 수은광산을 독점했다. 수은은 금광석, 은광석을 제련하여 순금과 순은을 추출하는 데 필요한 물질이다. 영국 왕립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괴와 은화는 네이선의 수은 광산에서 생산되는 수은을 이용해 주조됐다)으로 부를 축적해 나아갔다.

브레이크 없이 치닫던 로스차일드가의 사업은 2차 세계대전을 맞아 치명타를 입게 된다. 평소 유대인에게 적대감을 가졌던 히틀러는 다양한 방법으로 로스차일드 재산을 국유화했고, 전쟁 중 오스트리아 정부는 자국내 로스차일드가 보유하고 있던 엄청난 양의 고미술품등을 압수했다가 1998년에야 되돌려주었다. 나치에게 협력했던 프랑스의 비시Vichy정권도 프랑스내 로스차일드 재산 압류에 가담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국가 창설에 로스차일드 가가 깊이 관여했음은 물론이다.

로스차일드 가가 현재는 미국과 유럽, 호주와 극동지방(주로 일본)에서 금융업·부동산·광산업(희귀 광물질)·에너지·자선 사업 등에 집중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회사명에서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언론이나 대중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사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항간에 로스차일드가의 총재산이 500trillion dollar (50경 달러: 1trillion은 1billion, <10억>의 천배)로, 전세계 총자산의 80%라는 설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루머에 불과하다. 이런 엄청난 돈의 위력은 한 나라의 전쟁, 지역 분쟁, 정권의 몰락 등에 깊이 관여할 수 있게 한다. 
로스차일드가는 오래 전부터 일루미나티Illumnati,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NWO),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처럼, 그림자 정부에 깊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끝으로, 로스차일드가의 선대인 암쉘 모제스로부터 다음과 같은 좌우명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Harmony, Integrity, Industry(조화, 성실, 근면)

 

필자: 그레이스 신대원(GTS) 교수(국제문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