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에게나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나 크리스토의 냄새입니다.
멸망하는 사람에겐 죽음에 이르는 죽음의 냄새, 구원받는 사람들에겐 생명에 이르는 생명의 냄새입니다. 누가 이런 일을 맡기에 넉넉할까요?
왜냐하면 우리는 숱한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섞음질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순수함으로,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람답게 하나님 바로 앞에서, 크리스토 안에서 말합니다. (코린토B 2:14-17)
위 본문에서 '우리'라는 주체는 곧 사도 파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가리킵니다.
지금 파울은 여러 가지로 문제점이 많은 코린토교회를 향해 우려를 표명하는 가운데서도 담대함과 크리스토의 사역자로서의 떳떳한 믿음의 긍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코린토교회는 현대교회들처럼 많은 문제점들이 있어 파울에게 지적받았지만 여기 코린토에 보내는 두번째 편지의 앞부분에서는 우선 교회 안에서 파울을 걱정시키는 사람을 지적하면서 그러나 차라리 그를 용서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가 과연 누군지는 확실히 알 길이 없지요.
당시 파울 일행은 여러 모로 안팎으로 편치 못했습니다. 또 예정과는 달리 코린토교회를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믿을 사람이 못 된다"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생겨났지요. 그러나 파울이 일부러 코린토에 가지 않은 것은 첫 여행 당시 너무도 책망거리가 많아 갈등을 겪었기에 코린토 교우들을 아끼는 마음에서였습니다(코린토A 16:5-7, B 1:23). 또다시 일일이 참견하여 괴롭히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지요. 이런 파울의 심경을 알아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파울 일행은 트로아스에 이르러 전도의 문이 열렸지만, 잠시 코린토교회를 돌보고 떠난 동역자 티투스를 거기서 만나지 못해 민감한 마음에 이내 작별하고 마케도니아로 떠났으나, 거기서도 역시 몸과 맘과 환경이 불편한 어려움을 겪다가 티투스와 재회한 뒤에야 비로소 큰 평화와 기쁨을 회복한 것입니다(2:12, 7:5 이하). 즉 파울은 코린토교회 방문 보고를 들고 올 티투스를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렸던 것입니다.
파울이 코린토 교우들을 사랑하는 증거가 아니고 뭘까요!
아무튼..
파울은 위 본문에서 먼저, 자신들을 승리한 개선군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기 전승 행진 또는 개선 행열(동사 '트리암뷰오', 라틴어 명사: 트리암푸스, 영어 triumph)이라는 말은 로마군들이 전쟁에 승리한 뒤 행진하면서 돌아오는 장쾌한 모습을 연상한 것이라고들 학자들이 추정합니다.
로마군들은 승전 때나 국가 경축일에나 그랬지만..
파울 일행에게는 매일 언제나 승전, 승전 또 승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 까닭을 본문 뒷 부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전하는 복음이 사람들의 영혼의 승패를 가름하는 갈림길이 되기 때문이지요!
파울은 여기서 이 갈림길을 만들고 조성하는 복음과 사역자를 '냄새'로 표현합니다.
크리스토를 아는 지식의 냄새-그것이 사람들의 영혼을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 놓습니다.
고대의 치열한 싸움터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가 납니다. 무더위 속에선 금방 시체가 부패해 썩는 악취가 풍깁니다. 패배한 사람들 역시 정신은 죽어 있습니다.
그러나 승리한 군인에게는 환희와 미소의 월계관, 향기가 가득한 꽃다발과 꽃가루와 열매가 던져지고 뿌려집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는 맨날 삶과 죽음이 결정됩니다.
크리스토를 아는 지식 즉 복음을 받아 들이고 안 받아 들이고에 따라 사람의 승패와 운명이 좌우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생명과 승리의 향기가 되고, 복음을 거부하고 크리스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죽음과 썩음, 그리고 영멸 뿐입니다.
삶과 죽음! 승리와 패배! 생명과 썩음!
이 얼마나 엄청난 대조이며 대립각입니까? 이런 대조와 대립각을 이루는 현장이 곧 복음 전파 현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생사의 가름길을 내리긋는 사람들이 곧 복음 전파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역자들을 세상이 능히 감당하지 못합니다. 혹 박대하거나 죽일 순 있어도 그들 자신이 지닌 영원한 생명, 그들이 뿌리는 영원한 생명, 그리고 뿌려놓은 그 생명의 씨앗을 끊어 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작 문제는 바깥 보다 교회 안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섞음질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섞음질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 원어 '카펠류오'의 파생 명사형 '카펠로스'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여인숙 주인
포도주 상인
장사치, 행상인, 잡상
돈이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
팔 물건을 섞음질하는 사람
따라서 여기서 파울이 지적하는 문제인사들은..
삯꾼 목자들
돈을 받고 복음을 팔아 먹는 사람
개인의 이익과 목적에다 복음을 이용하거나
복음 진리를 혼탁하게 만드는 사람 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사도 파울 당시에 퍽 많았던 모양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 교계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지요.
복음으로 주로 자기 물욕과 영예욕을 채우는 사람들,
복음을 뒤틀어 가며 성경 이상의 억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팔아먹는 사람들
비진리를 진리인 양 포장하여 교인들을 호리는 사람들 등입니다.
그 결과..
교인들만 비뚤고 굽은 비진리의 길로 접어 들어 맹인처럼 이리저리 헤매거나
혼탁한 영성의 올무와 구덩이에 빠져 피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세상 사람도, 비신자가 아닌, 교인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계속 그런 길로만 가다가는 생명과 죽음 앞에서 비신자들처럼 죽음을 택하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미혹에 빠져 가는 사람들을 몇 번 경고하시다가 말을 듣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 두시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위험합니다!
반면 파울과 그 일행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그대로
언제나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종들로서
순수하고 진실하게
바로 하나님 앞에서
크리스토 안에서
그렇게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의 '카테난티' 또는 '카테나테오'는 모종의 장소에서, 또는 은유적으로 증인들 또는 심판관 앞에서란 뜻이 내포된 특수한 부사입니다. 즉 검증자 또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면전에 서 있듯 그렇게 언행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흔히 쓰이는 '코람 데오'(하나님 앞에)라는 라틴어와도 통하는 말이지요
반면 요즘 수많은 교계 명사들과 그 추종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말과 글로는 언필칭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는 척, 하는 체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크리스토를 무시하는 예가 다반사입니다.
'사도', '대언자' 이름을 붙이고 행세를 해가며, 성령님의 권능을 빙자하여 사람의 인기와 주의를 끌고 하나님의 이름을 이런저런 영들에다 빙자하는 등 망령되이 일컫고, 성령님의 권능을 무슨 마력(魔力)인 양 '뱀'(Bam! 쿵!), '쉬카붐바' 따위로 부르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복음을 팔아 자신들의 물욕과 정욕을 채우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비밀집단과 손을 잡고 모종의 인위적 어젠다와 목표를 갖고 교인들을 몰아가면서도 마치 혼자서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하고 있는 양 행세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세상은 현재 엄연히 공중 권세를 쥔 마귀가 지배하며 휘두르고 있는 일종의 집합적 시스템 메이트릭스인데도..크리스토가 오시기 전 지상에다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해 놓고 크리스토(?)를 맞이하겠다는 발상의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과연 그들이 기다리는 크리스토가 성경의 크리스토일까요, 아니면 마귀가 드러낼 적 크리스토일까요?
우리도 사도들과 그 동역자들처럼 생명과 죽음을 갈라 놓는 성경 그대로의 냄새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진리를 비진리와 마구 뒤섞어 놓는 장사치가 돼선 안됩니다.
이익을 노리고 물건을 마구잡이로 뒤섞는 잡상인들처럼 하나님의 진리를 혼탁하게 해선 안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과 죽음 둘 중 하나를 선명하고 극명하게 선택하게 만드는 이정표여야 합니다.
이왕이면 그들이 생명길을 택하도록 이끌어줘야 하지만..
비진리인데도 진리인 양,
넓고도 뒤틀린 길인데도 바르고 곧은 길인 양,
죽음길인데도 생명길인 양,
썩는 길인데도 향기로운 길인 양 포장해 속여선 안됩니다.
그런 명사들이 많기에 하는 말입니다.
항상 승리하며
크리스토 지식의 냄새를 풍겨
생명과 승리의 향기로 이끄는
여러분이길
복되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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