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의 아름다운 해변과 지진 후 포르토프랭스
아이티 지진은 자초한 저주?
- 교계 오욕의 진원인 라버슨의 입
"그들(아이티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의 발 아래 놓였습니다. 아시죠..나폴레옹 3센가 뭔가의. 그래서 그들(아이티인들)은 다 함께 마귀와 계약을 맺고 말았습니다."
평범한 크리스천도 아닌 기독교계 명사라는 한 사람이..지금 약 300만 명이 고통을 당하고 10만이 죽은 아이티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아이티 사람들은 받을 저주를 제대로 받았다"는 식의..
아이티 대지진참사에 관한 퍁 라버슨(Pat Robertson)의 망언 이후 그에 대한 비난이 온 세계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습니다. '망언'이라고 단정하는 이유는..혹시나 그의 말이 맞는다고 해도, 태도가 전혀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리고..퍁 라버슨이 누굽니까?
남침례교인이지만 오순절계 인사로, 본명 '매리언 고든 라버슨'인 그는 미 기독교방송(CBN) 창업주이자 그 방송의 '700클럽' 대표, '오퍼레이션 블레싱 국제 구호/개발재단'의 총재이며, 리전트대학교 설립자 겸 전총장이기도 하지요.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얼마 전에 죽은 제리 포웰이나 제임즈 케네디, 최근 '은퇴'했다는 제임즈 답슨 등과 함께 보수계의 '지도자'라는 그는, 문선명을 비롯해 종교혼합주의적 보수적 망상과 광증에 갇힌 CNP 계열의 사람이지요. [ 저는 진보계는 아닙니다만. ] 또 자신의 '700클럽' 시청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슬며시(?) 보여 준 그의 '싸탄 싸인'은 웹 동영상으로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ytweafxnyvE ).
라버슨의 신은 과연 예수 크리스토인가요, 루키페르(루시퍼)인가요? 그의 행동거지를 보면, 솔직히 헷갈리지요. 그런데도 아무 분별/검증 없이 라버슨을 참 하나님의 사람인 양 끼고 도는 사람들, 특히 한국계 기독교인들을 보면, "한심무인지경"이라는 선친의 명언(?)이 떠오르곤 합니다.
라버슨은 자기 딴엔 검증을 한답시고 한 말인지는 모르나..좀 유치합니다. 그의 말인 즉, 나폴레옹 당시에 아이티 사람들이 마귀더러 "우리를 프랑스에서 해방시켜 주면 당신을 섬기리다" 했고, 마귀는 "오케이, 딜(deal)이다" 했다는 겁니다. 라버슨은 "그 뒤로, 그들은 거듭거듭 저주를 받아왔다"면서 같은 에스파뇰라(아이티가 속한 히스파뇰라) 섬에서도 "복을 많이 받은" 옆 나라 도미니카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자, 우선 라버슨이 왜 이런 망언을 하게 됐는지 배경을 좀 알아 보죠.
1492년 12월 5일, 이탈리아 제노아 출신의 구교도인 "크리스토파 쿠룽부"(라틴어: 크리스토포루스 콜룸부스)란 사나이가 '산타 마리아'호를 타고 신대륙에 첫 발을 디딘 곳은 바로 아이티가 있는 카리브 연안의 키스케야 섬이었습니다. 당시 키스케야엔 남미 원주민 아라와크 족의 먼 친척인 타이노 족의 다섯 대추장들이 다스리는 5개 부족 내지 소왕국들이 있었습니다. 타이노들은 이 섬의 서쪽을 '산지'라는 뜻의 '아이티'(Ayiti)라고 불렀지요.
그런데 난데없이 불쑥 나타난 콜롬부스가 키스케야를 "스페인 영토"로 선언, '라 에스파뇰라'(작은 스페인이라는 뜻. 라틴어: 히스파니올라)라고 제멋대로 개명해 버렸습니다. 황당하지요..안 그렇습니까? 누군가 난데없이 불거져, 대한민국 영토를 '일본 꺼' 또는 '미국 것'이라고 우기면서 '소일본국', 'Asian America'라고 명명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중세에 이런 짓거리를 한 대다수 식민 탐험가들이 천주교/예수회의 조종을 받는 사람들이었지요. 겁도 없이 일본이나, 일본을 통해 한국을 먹으러 침투한 유렆 천주교인들을 비롯하여. 식민(植民) 정책인지, 식민(食民) 정책인지? 이래서 역사는 다시 써져야 합니다.
아무튼 이 섬을 멋대로 차지한 스페인 사람들은 이 땅에서 그것도 섬 주민들을 시켜 금광을 캐내면서, 거부하는 주민들은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었지요. What Catholic love! 그런데 카리브에 천주교 유렆인들이 퍼뜨린 새 전염병이 타이노 족을 이내 거의 멸종시켜 버리자, 남은 타이노 일부는 험한 산지로 피신을 가서 따로 근근히 연명하고 있었지요.
'부르고스 법령'(1512-1513년)에 따라 주민학대 중단, 천주교 개종 등을 시도해 보지만 제대로 지켜질 리가 만무합ㄴ다. 원주민들이 나날이 사라져 가자, 스페인령 총독들은 중/서부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삼아 식민지로 끌어 들이기 시작합니다. 1517년 카톨맄 신성로마황제 카를로스(=샤를/카알/찰스) 5세는 노예제를 공식 허용합니다.
카리브해의 대문 격인 히스파뇰라는 그 후 해적들의 낙원이 됩니다. 섬의 서쪽은 프랑스계 해적들인 '부카니에'(영어 '버캐니어')가 자리잡습니다. 1630년께 얼마의 프랑스인들이 히스파뇰라에서 쫓겨나 북서 해안인 아이티의 토르투가 섬에 상륙합니다. 본 섬의 스페인인들이 그들을 쫓아내려 했지만, 수많은 네덜란드인/영국인들도 부카니에에 합세해 스페인 선단을 습격하는 해적단이 됩니다. 나중에 이들 다수는 해적 생활을 접고 정착민이 됩니다. 그들의 대표가 베르트랑 도르제롱이었습니다.
1697년 스페인과 프랑스+연합국 측 양측 간에 '리스윜' 조약이 체결돼, 프랑스계는 서쪽 3분의1을 차지해 '생 도맹'("거룩한 주님"이란 뜻! 똑 같은 뜻인 '산토 도밍고'는 동쪽 도미니카에 있음)이라고 명명합니다. 이 사람들, 참.. 남의 땅 따먹기, 남의 땅 갈라먹기를 하면서 웬 "거룩한 주님"을 찾는지요. 아무튼 천주교 사랑 정신이 이렇습니다, 그려.
그 후 1713-1787년 사이에 약 3만명의 프랑스 식민단이 도착해 이곳을 개발하여 한껏 울궈 먹었지요. 당시 프랑스인들의 서부는 스페인인들의 동부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얼마 안 가 이곳은 설탕/커피/인디고(물감) 생산으로 프랑스 식민지 중 가장 부유한 곳이 됐지요. 이것은 바로 아프리칸 노예들의 수고와 헌신, (인디고) 생산 지식과 기술로 가능했습니다!
그런데도 잘 보세요..프랑스의 장-바티스트 콜베르 재무장관과 '태양왕' 루이 14세는 소위 '코드 누와르'(흑인법령)란 것을 만들어 노예들을 되도록 가혹하게 다루게 했습니다! 콜베르는 너무나 비정하고 냉혹한 인물이어서 당대인인 마담 드 세비네는 그를 '르 노르'(북쪽)라고 칭하기도 했답니다. [ 장-바티스트란 이름은 '침례(세례) 요한'이란 뜻이지요. 이 사람들, 성경을 욕 뵈는 이 따위 '영세명'은 다 떼 버려야 마땅합니다! ] 그 결과 생 도맹은 세계에서 가장 잔혹하고 '효율적'인 노예식민지가 되고, 갓 들여온 아프리칸 노예들의 3분의1은 수년만에 죽어갔습니다! What Catholic charity!
아프리칸 노예들과 원주민들은 식민종주국들의 이 횡포를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당대의 프랑스혁명에 자극을 받은 이들은 곳곳에서 자유와 해방을 위한 혁명운동에 착수했고, 특히 생 도맹 노예들은 1791년 아프리칸들이 다수인 북부 평원에서 과감히 봉기했지요.
그러자 프랑스 정부는 이를 평정하려고 1792년 3명의 사령관들과 군대를 보냈습니다. 1793년 영국은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고, 영국군이 생 도맹을 침공했습니다. 곧 이어 루이 16세가 처형됐습니다. 그러자 유색인-노예들과의 연합을 노린 프랑스 사령관들은 노예제를 철폐했습니다. 6개월 후 자코뱅 당의 전국당대회가 노예철폐를 지지해 모든 프랑스 령 국가에도 확대 적용됩니다.
생 도맹에서는 노예지도자 프랑수와-도미닠 투생 루베르튀르가 흑인 노예군을 이끌고 프랑스 식민군을 패배시켜 식민지 정착촌을 모두 장악하면서, 사실상의 총독으로서 프랑스/스페인인들과 영국 군대를 모두 내쫓은 뒤 산토 도밍고를 침공, 그곳 노예들도 모두 해방시킵니다. 그는 또 미국/영국과 무역을 재개합니다. 이 와중에 미국은 야비하게도 노예군과 프랑스군 양쪽 모두를 지원했습니다!
당시 유렆에서는 프랑스 혁명 후 공화정으로 바뀌고, 아이티의 투생은 분리 헌법을 제정하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투생을 축출하고 노예제를 회복시키려고 2만 군대를 자기 사위 샤를 르클레르크 장군에게 맡겨 보냅니다. 프랑스군은 몇 번 승리하다가 몇 달 안에 황열병으로 대다수가 죽습니다. 그러자 르클레르크는 투생을 조용히 초대한 뒤 납치해서 프랑스로 보내자, 투생이 병으로 죽고 맙니다.
프랑스는 18명의 장군들을 비롯, 총5만명의 군대를 생 도맹에 파견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생 도맹의 노예들, 자유 유색인들(=장뒤콜뢰르), 연합군 등은 투생의 피랍 뒤에도 계속 독립을 위해 싸웠지요. 투생의 부관들 중 한 명인 장-자크 드살린(훗날 초대 대통령)은 베르티에르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대패시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던 1804년 1월 1일, 생 도맹 연합군은 독립/해방을 선언하면서 나라 이름을 향수 어린 옛 섬지방 이름인 '아이티'(Haiti)로 도로 바꿉니다.
아이티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노예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이티 국내의 혼란으로 200년 역사에 32번의 쿠데타를 치르는 등 계속해서 어려운 정국을 겪습니다. 1825년엔 샤를 10세 치하의 프랑스가 섬을 재정복하려고 대규모 군단을 보내자, 장-피에르 보이에 당시 아이티 대통령이 프랑스로부터의 공식 독립을 보장받는 대가로 9천만 프랑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 혼란한 틈새를 노린 유렆과 미국 등의 열강 세력들은 1회 이상 아이티 국립은행의 돈을 빼내 가고 이런저런 핑계로 여러 번 군대를 보냅니다. 미국은 1915-34년의 약20년간 아이티를 지배합니다. 당시 미국 해병대가 3250명의 아이티 주민들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후 아이티는 주로 미국에 간헐적으로 도움 받는 독재정권 시대로 들어가고요.
그럼 여기서..과연 라버슨이 말하는 마귀와의 '계약'은 뭘까요?
그것은 1791년 8월 14일에 맺어졌다는 '부와 카이만'(Bois Caïman) 의식입니다. [ 이하에 'BC 제(祭)'로 약칭합니다.] 그날 부두(voodoo)교 남성주술사('웅간'이라고 부름)인, 거인 "뒤티(일명 '잠바') 부크만"이 북부 산맥지대의 노예대표들에게 초치되어, 그곳 "부와 카이만"이라는 데서 부두 의식을 치렀지요. 그날 BC제 참석자는 부크만과 그가 데리고 온 물라토 계 맘보 1인 세실 파티만, 노예 지도자인 조르주 비아수, 잔노 불레, 장 프랑수와 파피용 등이었다는군요. 2
아이티 사람도 아닌 외부인이 기록한 아이티 혁명사에 따르면, 그 추정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그 날 폭풍과 소나기 속에 노예들은 자신들의 억울함과 앙심을 토로했다. 그러자 루와(loi, 부두 신)의 하나인 에질리 단토르가 내려 지핀 맘보, 세실 파티만이 춤추기 시작했다. 파티만은 손에 든 칼로 희생제물인 흑돼지(크레올돼지)의 멱을 따 흐르는 피를 참석자 전원에게 나눠 주며 섬에 있는 모든 백인들을 죽이기로 맹세하게 했다.
1791년 8월 22일, 북쪽 흑인노예들은 반란에 착수해 만나는 백인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정착촌을 불지른다. 소위 '부크만 반란'이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재빨리 지도자 부크만을 잡아 참수하자 혁명은 금방 진압된다.
하지만 다른 반란이 연이어지고 독립혁명으로 발전합니다. 그래선지 그후 아이티에선 부두가 흔해졌습니다.
이 BC제에 관한 기록은 1814년 프랑스 의사 앙트와느 달마스가 '생 도맹 혁명사'에서 처음 소개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미 1793년에 인쇄본이 있었다는군요.
BC제에 관해선, 두 가지 견해-그런 일이 있었다와 없었다-로 엇갈립니다. '있었다'는 쪽은 프랑스 학자들이 주도하고 나중엔 아이티 자체 사람들도 조인합니다. '없었다' 쪽은 주로 학자들과 일부 복음주의자들입니다. 퍁 라버슨은 물론 전자 쪽입니다.
프랑스 학자 레옹-프랑수와 오프만 박사는 1991년 아이티에서 개최된 '부와 카이만' 200주년 행사에 초대 받아 이 '신화'에 대한 반론을 폈습니다. 자신의 책 '낭만적 흑인'에서 18-19세기 이 의식에 관한 프랑스 문학서적들의 상투적 편견을 뒤집었지요. 그의 연설은 아이티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오프만에 따르면, "사악한" 프랑스인인 앙트와느 달마스가 BC제 전설을 조작해 냈건만, 아이티 역사가들은 너무 "게을러"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일종의 건국신화로 만들어 버렸다는 겁니다. 오프만은 또 달마스가 흑인 노예들을 중상모략/비하할 목적으로 이 글을 썼다고 주장합니다.
그 후 학자들은 아이티 노예들의 본향 부근인 서아프리카의 다호메이(현 베닌)에서 유래된 피의 제전, 맹세, 비밀단체 등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영국 출신의 노예사 전문학자인 데이빋 제거스 박사(현 플로리다대 교수)는 1791년 8월에 사실상 두 번의 노예정상회의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첫 모임은 그해 8월 14일 일요일에 노르망 드 메지 정착촌에서 약 200명이 모인 것으로, 몇몇 죄수들이 고문 끝에 "밝힌" 것이랍니다. 다소 종교적인 둘째 모임은 1주 후 은밀한 카이만 숲속에서 열렸다는 것이고요.
19세기의 아이티 사가(史家), 셀리니 아르두엥은 1840년경 투생 루베르튀르의 한 친구를 만나 메지 정착촌 회의의 주도자는 투생이었다는 사실, 그러나 자신의 부관들인 장-프랑수와 파피용, 조르주 비아수, 부크만 뒤티 등을 첫 반란 주도자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답니다. 제거스 박사에 따르면, BC제 주최자는 부크만 자신이었다는 군요.
에티엔 샤를리에의 '아이티 국가 형성사 개요'(Apercu sur la formation historique de la nation haitienne, 1954년)에 따르면, BC제 때의 맘보였던 세실 파티만은 바로 훗날 루이 미쉘 피에로(일명 장-루이 피에로) 대통령(제7대, 1845-1846년 통치)의 부인이었습니다!
또 BC제가 실제로는 '슈와쇨'이라는 제2장소에서 열렸다는 설도 있고 '낭 캉페슈 이아쿠'라는 장소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학자에 따라서는 'BC제'제가 역사적 사실대로라는 설도 강합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라버슨과 그를 지지하는 일부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프랑스나 또는 일부 아이티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아이티가 "마귀의 산당"인 '부와 카이만'에 의해 저주를 받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탓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하나님이 지난 18세기에 일어난 BC제에 대한 심판을 지금 계속하고 계시고, 그 일환으로 이번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설령 BC제가 역사적 사실이더라도 단지 그것 때문에 이번 대지진이 닥쳤을까요? 그렇다면 로스앤젤레스에서 자주 일어나는 지진들은 어떤 저주와 어떤 부두제 때문인가요? 지진의 나라 일본은 어떤가요? 일본은 수백만 귀신들의 나라로 악명이 높은데, 왜 아이티처럼 가난의 '저주'를 받지 않는 부강국가이고, 왜 요즘은 갈수록 더 복음화 돼 가는 겁니까!? 일본이야 말로 라버슨의 주장을 반박하는 표본이 아닌가요?
그 BC제에서 여사제로 활약한 훗날의 대통령 부인 세실 파티만이 아이티에 저주를 불러 왔다면, 미국도 저주의 나라입니다! 초기 조지 워싱턴 대통령부터가 프리메이슨이었고, 수도 워싱턴DC를 프리메이슨 이상을 반영하는 도시계획을 한 흔적이 있으니까요. 미국의 달러 지폐 뒷면엔 메이슨들의 '신세계질서' 이상을 반영하는 상징들이 널려 있고, 뉴욬 항만에 서 있는 '자유상' 역시 서구 메이슨들의 이상을 상징화한 것입니다.
그 뿐인가요? 메리 타드 링컨, 낸시 레이건, 힐러리 클린턴 등 여러 대통령 부인들이 교령사(강신술사)나 점성술사 등을 불러 모종의 심령술적인 '도움'을 청한 전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저주의 나라여야 하지 않을까요? 라버슨의 말대로라면, 미국이 강대국이면서도 최악의 채무국가인 것도 저주 탓이지 않을까요? 아이티가 부두제(voodoo祭) 탓에 저주 받았다면, 미국에도 뉴올리언즈나 루이지애나 등에 부두 수행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실 전국에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미국은 말고 아이티만 저주 받은 나라인가요?
라버슨은 그리고 왜 하필 이런 때에 옆의 도미니카랑 비교/대조를 합니까? 부모들의 최악의 습관이..자식이 잘못할 때 남의 잘 하는 자식과 비교한다는 것이라는데..라버슨 역시 이런 저급한 '비교난타'식 교육법을 벗어나지 못했군요.
라버슨의 어이없는 단죄에 대해 백악관은 "철저히 어리석은(utterly stupid) 발언"이라고 논박을 했습니다. 그밖에도 언론인 등 사회 각계 각층 사람들이 라버슨을 질타합니다. 레이몽 조셒 주미 아이티 대사도 하 기막히고 분노스러웠는지, 바로 아이티 노예혁명의 결과로 미국이 루이지애나 주를 1에이커당 3센트 밖에 안 되는 싼 값에 얻을 수 있었던 점을 지적합니다. 또 중남미 국가 대부분이 바로 아이티 혁명 때문에 해방과 자유의 동기부여를 얻게 된 점도 상기시킵니다.
그럼 아이티가 자체는 가난해도 남에게 복을 베푼 격이 되지 않나요?
알고 보면, 라버슨은 사실 '망언의 대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는 1982년 10월 또는 11월에 세계종말이 온다고, 앞서 지난 1976년말 '예언'했던 시한부 종말론자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 5월엔 "1982년 연말 세계심판이 있을 것을 제가 보장합니다."라고 번복했습니다만..물론 불발됐지요.
그는 또, 2005년 펜실베이니아주 도버 타운이 진화론보다 '지적설계론'을 가르치길 선호하는 교육위원들을 주민투표로 쫓아냈기에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의 창조론이 아닌 지적설계론(ID)을 선호하셨던가요? ID야 프리메이슨들도 열렬히 지지하지요! 그들도 '우주의 대건축가'(GAOTU)라는 루키페르 '신'의 창조설을 믿으니까. 그러니 도대체 이게 무슨 대 망발입니까!
라버슨은 또 같은 2005년에 허리케인 '카트리나' 호가 낙태 합법화에 대한 징벌로 왔다고 주장했지요. 낙태 합법화는 1960년대에 이뤄진 건데.. 하나님이 뒤늦게 21세기에 와서 카트리나호로 그걸 징벌하신다..? 이해가 가려다가도 마네요.
지난 2006년 5월 8일엔 그해 연초 하나님께 받은 '계시'라며 2006년 그해 언젠가 폭풍과 함께 (2004년 당시 인도양의 대 쓰나미 같은 규모의) 쓰나미가 미국 연안을 강타한다고 4번이나 700클럽에서 주장했지만..별 일 없었습니다.
2007년 1월 2일엔 '700클럽'을 통해 그해에 '테러집단학살'이 이뤄진다고 했지만 역시 아무 일 없었습니다. 그러자 이듬해 1월에 "성도의 기도로 무사했던 것 같다"고 얼버무렸습니다.
이처럼 라버슨은, 매 연말에 휴가차 기도에 들어갔다가 나와 매 연초에 너절한 '예언'인가를 늘어 놓는데, 올해 초에도 영락 없이 "미국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고 선언했지요. 계시는 아무나 받나..?
라버슨은 참 신앙의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를 빌려 자기식 세계관을 갖고 발언하며, 그야 말로 극단적이고 폐쇄적인 잘못된 보수파 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라버슨은 (회개하지 않을 바에야) "이젠 더 떠들지 말고, 뒤안길로 스스로 (은퇴하여) 사라져 줘야" 마땅한 인물입니다. 라버슨이 제 딴엔 기독교에 유리한 말을 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건 자기 탓에 전체 기독교와 미국 복음주의가 욕 먹을 짓을 하는 셈입니다.
라버슨 자신의 구호단체라는 '오퍼레이션 블레싱(=축복)'이 '오퍼레이션 커싱(저주)'으로 들리지 않는다면 다행이 아닐까요? OB의 웹사이트를 보면 거기도 아이티 현장을 커다랗게 찍어 놨는데, 라버슨의 것임을 안다면 과연 현지 주민들이 좋아할까요? "병 주고 약 주네" 하겠지요. 저주 받아 마땅하다면 돕긴 왜 돕습니까..?
그리고 지금 아이티는 가장 어려운 고난의 수렁에 빠져 있는데, 어떤 도움 되는 위로의 말은커녕 이런 저주 같은 말을 퍼부으면, 이게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아로새긴 은쟁반 위의 금사과 같은, "경우에 걸맞은(=합당한)" 말인가요..? 오히려 이건 그야말로, 남의 쑤시는 상처에다 소금을 들이붓는 격이 아닐까요?
성경 잠언 말씀이 바로 라버슨의 경우에 걸맞은 말을 해 주고 있네요.
"상한 심령에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추운 날에 겉옷을 벗기거나 소다에 식초를 붓는 사람과 같다네." (잠 25:20 사역)
실제로 고대에 라버슨 같은 망언을 한 사람도 있었지요. 다빋이 아들 아브샬롬에게 쫓겨 피난살이를 할 때 그를 따라가며 티끌을 날리고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붓던 쉬메이였습니다(슈무엘B서=삼하 16:5-13). 쉬메이가 뒤늦게 다빋에게 사과하고 용서받은 것처럼(슘B19:16-23), 라버슨이 뒤늦게라도 아이티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게 될까요?
망언을 한 쉬메이가 다시 딴 짓 하다가 끝내는 슐로모(솔로몬)에게 숙청된 것처럼(왕들A서=왕상 2:39-46), 혹시 라버슨도 훗날 자신의 얄미운 요런 언행으로 인해 상급 대신 무서운 단죄와 심판을 받게 되진 않을까요?
I hope not..hopefu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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