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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리뷰

7명 가족의 지진 탈출기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아이티 지진 실화의 르포 기사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옮겨 봅니다.



1월 12일 새벽 5시 30분. 
윌리암 생틸레르(46)는 메릴랜드 주의  실버스프링에 있는 아파트먼트의 작은 지하실에서 일어났다. 2시까지 베테스다의 한 회사를 위해 물뿌리개 기계를 설치해 주고 잠시 눈을 붙이러 온 것. 
                                                                     (사진: 윌리엄 생틸레르  Source: Washington Post)

얼마 후 그는 4시 45분 약속을 위해 먼가머리 카운티 커뮤니티 칼리지로 갔다. 영어 과목을 들으려고 교직원과 상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상담  도중 셀폰의 진동신호음이 울렸지만 그냥 놔뒀다.                                                   

복도로 나와서야 비로소 셀폰을 꺼냈다. "아이티에 지진이 났어요! 포르토프랭스에!"라는 어느 여교우의 목소리였다. 허겁지겁 차에 올라 곧장 아델피의 교회로 달렸다. 자신이 부교역자로 있는 에글리스 바티스트 뒤 칼바레(갈보리침례교회)에 도착하자마자 오피스로 향했다. 오피스 안 텔레비전 화면에는 지진으로 파괴된 현장에서 죽은 사람들과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보였다. 생틸레르 주변의 교인들은 슬금슬금 주변에서 떠나는 듯 싶더니, 얼마 후 오싹한 정적만이 남았다.

아내와 여섯 자녀들은 현재 포르토프랭스 시내 페티옹빌의 작은 집에 살고 있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진도 7.0의 강진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뭔가 직감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내 가족은 다 죽었어. 이젠 더 없어."   

아내 리사와 아들딸들: 빌리(16), 벨라(15), 벨로(14), 베네딕트(13) 등 연년생들과 천방지축인 8살 짜리 쌍둥이 딸 벨린과 벨린다- 모두 가 버린 것이다. 마치 벽의 액자 속 사진에서 도려낸 듯. "저기선 살아 남을 수가 없어."

온몸을 전율이 훑고 지나가는 듯 했고 눈 앞이 허얬다. 영혼이 빠져 나가고 몸만 축 늘어진 듯 몸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땅에 있는지 공중에 떠 있는지 분간이 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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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암 생틸레르는 1987년 아이티의 한 교회에서 리사 자켙을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고교 수학교사였고, 영어도 좀 가르쳤다. 5년 후 둘은 결혼을 했다. 리사는 윌리암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좋아 했다. 생틸레르는 교회 사역도 일부 겸하고 있었다. 

둘은 페티옹빌의 페르드리에다 집을 마련했다. 침실이 둘인 2층집이었다. 리사가 호텔 메이드였기에 둘이서 수 년 간 버는 돈으로 집을 확장했다.

2001년.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아이티 대통령이 미국 정부의 도움으로 복권했다. 그러나 그의 부정행위와 잔혹성 탓에 인권단체의 반대와 비난을 받아 집정기가 얼룩졌다. 윌리엄은 수업시간에 아리스타드 정부를 비난했다. 비판을 그만 두라는 학교측 경고도 받았고, 당국에서는 그를 두 번 이상 소환해 심문을 했다.

이듬 해 한 동료교사가 역시 비판 발언을 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남편의 정치적 입장을 우려해온 리사는 2003년 초, 마침내 남편에게 아이티를 떠나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장차 아이들이 크는 것도 못볼지 모른다고 재촉했다. 공항에서 아이들은 하늘로 사라져가는 '파피'(아빠)를 향해 울부짖었다.

그는 뉴욬 브루클린에 우선 자리잡았다가, 아이티 망명 단체를 만나 실버스프링으로 안내를 받았다. 취직이 되자마자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기 시작했고, 이틀이 멀다 하고 집에다 전화를 걸었다. 정다운 가족들의 목소리가 그를 기쁨으로 채워 주곤 했다.
지난 해 그는 이민변호사와 함께 가족을 위한 입국비자 신청 수속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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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오피스 안에서 한참 후에야 평정을 되찾은 생틸레르는 아내의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하기 시작했으나, 마치 공동묘지 바닥처럼 무응답이었다. 아이티의 셀폰 통신탑은 모두 무너졌다. 그러나 속 한 구석에서 희미한 뭔가가 치솟기 시작해 견딜 수 없어 계속 통화를 시도했다.

플로리다 마이애미와 올랜도 등에 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들은 뭔가 들었을지도 모른다. 지진 전에 가족을 마지막으로 본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얘기를 전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교회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지나가던 누군가가 결정적이고 운명적인 뉴스를 전해 주기라도 할 듯이. 복도와 오피스를 오가며 거닐었으나,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공기도 쐴 겸 바깥에 나가 전화카드를 더 사기도 했다.

그 날 밤 아파트로 돌아오자, 다시 가족 사진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겼다. 맏아들 빌리가 피아노를 치고, 벨라가 컴퓨터 속 지도를 들여다 보고, 베네딕트가 드럼을 치는 광경을 보고 듣는다. 쌍둥이가 매 주일 교회에서 복음성가를 부르며 좌우로 몸을 흔드는 모습을 기억한다.

그러던 새벽 3시에야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꿈결에 온 가족이 무너진 건물 아래 깔린 모습을 봤다.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정말 죽었다면 난 어떡해야 하나?"라는 생각에서.

평소 같으면 직장으로 향해야 했지만, 도저히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사장에게 양해를 구해 허락 받고, 대신 교회 오피스로 왔다. 텔레비전 화면의 사망자수 누계가 급증하고 있는데, 그의 눈엔 그 수가 '7'자로만 보였다. 가족만을 생각하는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라고 느껴졌다. 다른 아이티계 교우들이 교회에 들어와 상담을 바라고 있었다. 역시 잃은 가족이 있는 교우였다. "비서를 만나세요"라고만 계속 대답해 줬다.

그는 복도로 나와 걸으며 셀폰을 다시 꺼내 들고 아내의 번호를 눌렀다. 혹시 아이들 중 하나라도 어디론가 나와 있다가 전화를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반응이었다. 큰 아이들-빌리, 벨라, 벨로-가 생존했다면 어린 것들을 돌볼 테지. "그래, 그들이 생존한다면 가족이 살 수 있어!"라고 자문자답했다. 

    "그런데 난 어떻게 아이티로 돌아가지?"

13일 밤. 그는 다시 아이들의 사진을 바라봤다. 이제는 눈이 너무나 피곤했다. 

    "왜 나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도 들을 수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더욱 더 가족의 죽음을 확신케 했다.

이튿날인 14일 아침. 마이애미에서 누군가 소식을 전해 왔다. 아이티의 생틸레르 집 주변의 모든 집들이 죄다 무너졌단다. 그러나 도대체 뭘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루머가 나돌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그는 사람들이 내 가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뻔히 알면서도 두려워 알려 주길 꺼린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족이 이미 죽은 줄을 내가 알고서 말 꺼내길 원치 않는다고 잘못 알고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사실은 아무 것도 모르는데."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그 무엇을 내 가족도 견디지 못하고 죽어 갔다는 느낌이 싫었다. 그 와중에 어떻게 서로 연결돼 있겠는가? 그러나 동시에 소망을 느꼈다. 맏아들 빌리는 자기 목숨을 걸고라도 동생들을 살려낼 거야.

그 무렵에야 비로소 교우들이 그에게 손을 얹으며 위로의 제스처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잠자코 앉아 5분간 눈을 감고 있다가 돌연 깨어났다. 한 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었다. 그러나 상상이었다.


/////////////////


금요일 오후 올랜도의 친척으로부터 뉴스를 들었다. 누군가 길에서 그의 쌍둥이 하나를 봤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쌍둥이가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다며 머리 속에서 떨쳐 버렸다.

    "헛소문에 불과해."

토요일(16일) 아침. 리빙룸에 있을 때 올랜도의 조카딸 넾탈리가 전화를 걸어 왔다.

    "삼촌! 제가요, 포르토프랭스에서 삼촌 가족을 본 사람 얘기를 들었어요. 모두 살아 있대요!"
    "아냐. 난 루머 따윈 못 믿겠어? 넌 어떻게 믿냐, 그 얘길?"

약 한 시간 후, 플로리다의 친구 로즈메리 메시도르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의 가족이 모두 생존해 있다는 내용이었다.

    "네가 어떻게 알아?"

그러자 리사를 아는 동네 사람을 통화로 찾아내 추적했다며 직접 연결해 주겠노라고 했다.
윌리암은 일어선 채로 전화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벨이 울렸다. 로즈메리였다.

    "기다려, 윌리암. 잠깐만 기다리라고!" 그녀가 소리쳤다. 

    "여보, 윌리암!"

잠시 후 셀폰에 뜬 목소리는 1992년 한 작은 교회에서 그와 결혼한 후 줄줄이 여섯 아이를 낳아 준 바로 그녀였다.

    "나랑 아이들이 다 살아 있어요."
    "감사합니다, 하나님!"

그는 갑자기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면서 아내한테 계속 말을 걸었다. 그러다 보니 아내 얘기를 충분히 듣지 못해 유감스러웠다. 아내 말로는 먹거리와 물이 없단다. 집은 몽땅 무너졌고 돈도 없단다.

    "여보, 사랑해요."
    "나도, 여보! 사랑해."

그 후 며칠동안 윌리암 생틸레르는 온 가족이 그 강진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데 대한 감사와, 하지만 이젠 굶어 죽지 않겠냐는 두려움 사이를 오갔다. 전화 라인이 끊기기 전 마지막으로 리사가 남긴 말은 아이들이 점점 약해진다는 것이었다.

여덟 살 난 벨린은 말했다. "아빠, 땅이 끝없이 계속 흔들릴 거야."

아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난 직후 그는 딸 벨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파피, 어떻게 지내세요?"

아빠는 놀라마지 않았다. 먹거리도 물도 없고 주변엔 세탁물처럼 시신들이 널리고 쌓여 얼마나 공포스러울 텐데도 딸은 의젓이 아빠 걱정을 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안도와 고마움의 울음을 삼켰다.


                       무서운 지진에서 살아남은 생틸레르 가족 (Source: Washington Post)



******** (아이티에서는)


저녁시간이 다가와 리사 생틸레르는 아이들과 이웃집 식구인 두 손님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리를 끝낸 리사는 벨라와 함께 이층에 있고, 다른 아이들은 지하실에서 악기를 다루고 있었다.

갑자기 땅이 움직였다. 우르르 쿵쾅 하는 소리도 들렸다. 마치 땅 아래 거대한 불도저가 다가 온 듯한 느낌이었다.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엄마!"

곁에서, 여섯 쌍의 눈동자가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다. 책장과 선반에서 책과 음식들이 굴러 내렸다. 그림 액자와 도자기 장식품, 촛대 등이 떨어져 마루 위에 나뒹굴고 창문이 깨져 나갔다. 그 어떤 공포 영화도 능가하는 소음들이었다.

모두들 옥상으로 올라가자, 주변의 건물들이 붕괴되는 모습과 벽돌장 더미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래 층으로 도로 달려 내려왔다. 안방에서 모두들 얼어붙은 듯 서로 엉겨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굉음은 더 크게 들려 왔고,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듯 했다. 초대 손님 한 명은 "예수의 피! 예수의 피!" 하고 외쳐댔다.

리사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했다. 

    "엄마! 엄마!"

창문으로 바람이 세차게 들어와 물건들을 마구 불어대자 아이들은 마치 아기양들처럼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집 건물이 몽땅 땅속으로 가라앉는 듯 했다. 모두들 부랴부랴 신발과 성경, 출생증명서, 여권 등을 초록색 베갯닛 속에 쓸어 넣은 뒤 밖으로 달려나가 다들 손깍지를 끼고 골목길로 빠져 나갔다.
옆으로는 벽이 맥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땅의 진동은 그친 듯 했으나 머리 위의 것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정처 없이 딴 길로 서둘러 나갔다.     

    "엄마!"

벨린과 벨린다, 벨로 등이 차례로 기절할 듯 소리를 질렀다. 길에 나서 보니, 주변이 온통 모두 시체들이고, 죽어가며 부르짖는 신음소리 뿐이었다. 어린아이의 손과 팔 다리와 발 등이 바르르 떨거나 인형아기처럼 굳어져 있었다. 건물에서 팔다리가 튀어나와 있거나 진흙 속 벌레들처럼 뒤틀려 있었다.

이 끔찍한 광경에 아이들이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건물더미에서 나는 먼지가 삽시간에 눈과 입을 막았다. 그 속에서는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격이었다. 벨라가 베네딕트를, 베네딕트가 빌리를 연신 둘러 봤다. 리사는 아이들이 다 무사한지 여섯을 하나씩 세어 보았다. 결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쌍둥이까지 모두 무사했다. 온통 시체가 널브러진 길 위에서 그녀가 발견한 진실은..그들이 아직 산 자들의 땅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 날 밤, 리사와 아이들은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길가의 어떤 사람들은 마치 눈에 안 보이는 교회 안에 있는 양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도 했다. 어디에나 내려 앉은 벽돌더미 투성이다.

밤의 장막이 내려오자, 마치 짙은 담요를 드리운 듯 주변이 캄캄했다. 쌍둥이는 이미 지쳤다. 리사는 아이들을 껴안았다. 험상궂게 생긴 청소년들이 허물어진 집을 기웃거리다 들어가 뭔가를 훔쳐 낸다. 그것은 러시안 룰렡처럼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리사는 누구에겐가 담요 한 장을 부탁했다. 일곱 식구를 위한 낱장의 담요. 그러나 주변에서 구르는 돌 소리에 잠을 설쳤다.

이튿날 아침. 이미 부패해 가는 사체에서 나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리사는 시신들을 피해 빙 둘러서 무너진 집으로 되돌아갔다. 안에 들어가 보니 은행통장이 있고 한 계좌에 20달러 가량이 있었다. 당장 그 돈을 찾고 싶었다.

목요일. 리사는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작은 난민촌도 발견했다. 집에서 버키츠와 자루에 담아 가져온 것은 옷가지 등 약간의 일용품들 뿐이었다. 갈 집도 없고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아빠가 우릴 찾진 않냐고 묻기 시작했다. 리사는 무엇보다 비가 내리거나 흙사태나 벽돌이 아이들 위에 떨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주위에서는 왕파리떼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 붕붕거렸다. 그것들은 사체마다 핏자국마다 두루 거치고 다니더니 이윽고 생틸레르 아이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쌍둥이는 몸을 움츠렸다. 리사는 부채질을 해서 파리떼를 쫓았다.
곁에서는 한 여인이 수탉 한 마리를 들고 있었고, 딴 여인은 그걸 칼로 찔러 죽였다.

힘이 다 빠지고, 온 몸과 옷이 더러워진 생틸레르 가족은 집에서 약 3마일 떨어진 곳에 있다는 난민촌의 푸른 천막을 그리워 하면서 그리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엄마가 아파서 못 갈 거 같다고 하자, 아이들은 아까 엄마가 더러운 물을 마셔서 그런게 아닐까 걱정했다. 그러던 차, 한 기도그룹을 만나 동참한 뒤, 음식을 구걸했으나 얻어낸 건 얼마 없었다.

토요일 아침. 안 방에 네 사람이 보이는 집 곁을 지났다. 그런데 지붕이 무너지기 시작해 리사가 아이들의 눈을 가리려 했다. 그 붕괴는 치명적이었다. 쌍둥이가 놀라 울기 시작하자, 가족은 발걸음을 재촉해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리사는 아이들이 싸구려 샌들을 신고 가는 모습에 맘이 상했다.

일동이 어느 작은 밭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졸음을 못 견뎌 저마가 고개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죽음은 어디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허옇게 먼지가 뒤덮인 시신들이 땅바닥에 널려 있었다. 어떤 시신은 마네킹처럼 뒤틀려 있었다. 사람들은 맨발로 벽돌을 나르면서 여기서도 시신의 얼굴, 저기서도 시신의 얼굴을 보자 소름 끼쳐 허겁지겁 했고, 죽음의 똑딱 소리가 발소리보다 더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리사가 잠든 아이들을 지키는 동안, 하늘이 우유빛으로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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