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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캪튼's 코너

잠깐! 책 조심, 독서 조심

잠깐! 책 조심, 독서 조심

-크리스천이 한 권의 책을 읽기 전


김삼


모든 영들을, 또는 영(靈)마다 검증해 봐야 한다는 요한서신A(요일) 4'1의 교훈은 책 저자들에게도 적용된다. 모든 저자들, 저자마다 검증해야 한다! 예외 없이! 성경이 아니지만 성경 비슷한(?) 냄새가 나는 외경 등 옛 문서에도 적용돼야 한다. 심지어 성경 번역판들도 일단 검증해 봐야 한다. 갈수록 엉터리 번역판들이 많이 나오는 탓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전보다 좋은 번역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날로 왜곡된 번역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져간다. 학자/번역자들의 진보주의 등 비뚤어진 심성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활자에 약한 크리스천들이 매우 많다. 일단 뭐가 활자화되어 나오면 잣대를 대 보지도 않고 책 자체를 무슨 표준이나 정석으로 생각해 버리기 일쑤다. 더욱이 저자가 유명 인사나 베스트셀러인 경우, 독자는 급조된 선입견 갖고 확~ 빨려 들면서 스르르 무장해제되어 버린다. Vulnerable-위험하다! 매우 위험하다. 


아마도 "읽다 보면 부정적 요소보다는 긍정적 요소가 더 커지지 않겠나?" 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요즘 그런 책은 드물다. 아주 드물다! 특히 '영성'에 관한 책은 그렇다. 이런 영성, 저런 영성 등 온갖 잡된 영성들이 들끓는 요즘이다. 그래서 책 조심, 독서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것은 또 사람(저자) 조심, 몸조심이기도 하다. 


책의 정보는 우리의 감관 중 가장 예민한 눈을 통해 받아들여져 영/혼/몸의 3차원 가운데 혼의 세계에 전달된다. 혼에 이식된 정보는 그 강도와 생각의 반복 등을 통해 잠재의식 속에도 스며들고, 입과 귀에 의한 반복 입수를 통해 영의 세계에도 침투될 수 있다.  


누구 유명 인사가 권하는 추천 도서라고 해도, 그냥 믿고 받아들여선 안 된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믿던 도끼에 발등 찍힐 수 있다. 기껏 추천해 놓고 나중 문제가 발견될 때 '오리 발'을 내밀면, 물어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뒤늦게 어찌 해 볼 길이 없다. 읽은 사람만 손해 볼 뿐이다. 


"그럼, 읽을거리가 하나도 없어 위축되고 너무 부정적이 되어가잖냐?" 할지도 모른다. 하나 물어 보자. "영마다 검증하라" 또는 "모든 영들을 분별하라"는 교훈이 우리 영/혼/몸을 위축시키는가? 우리를 너무 부정적으로 만들어 버리는가? 물론 우리를 긴장시킬 수 있다. 아니 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가령 최전방인 휴전선 철책에서 적을 경계하고 감시하는 우리 군인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긴장된다고 해서, 위축되고 부정적이 되어가는가? 반대로 얘기해 보자. 휴전선 철책 경비가 느슨해져서 적이 마음대로 출입한다고 가정하면, 그 결과는 어찌 되겠는가? 그야말로 우리를 위축시키는 부정적 결말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말을 꼭 해야 하냐..고? 왜냐하면 성경이 경고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이 자기네 눈과 귀를 간질여 줄, 또는 간지러운 눈과 귀를 긁어줄 온갖 간사한 교훈을 찾아, 보따리 싸서 다니며 그런 '스승'들을 찾을 것이라고. 인터넽에서 포스트/동영상 '스승'으로만 흡족하지 않아서 급기야 직접 읽어 보겠노라고 활자화된 '스승'도 찾는다. 여러 시간 읽으며 배우기 위해서다. 



사도 파울이 고대 최고의 문명 도시, 아테네를 찾았을 때, 그곳 시민들은 새로운 것, 첨단 유행의 철학/문화가 아니면 아예 거들떠 보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어 있었다. 금욕주의적인 스토아 학파, 쾌락주의적인 에피쿠로스 학파 등 극과 극, 그 극들 사이의 온갖 철학이 발달해 있었다. 심지어 파울이 전하는 부활 진리의 '철학'에도 귀를 기울이며, 호기심을 보였다. 호.기.심.-이것은 단초이기도 하고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이 형편이 펴지고 살 만해지자 온갖 새로운 것을 찾다 보니, 교계 사람들은 온갖 새로운 영성을 찾아 나선지가 퍽 오래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급속히 발달한 인터넽/웹 문화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렵고 간지러운 데를 긁어주거나 맛이 새콤달콤한 새 영성들이 인터넽엔 많다. 걔중엔 뉴에이지, 오컬트 영성, 영지주의 등 세속 영성도 많지만, 성도를 현혹하는 소위 '기독교 영성'들도 많다. 

  

교인들의 눈 앞에서 손짓하는 알록달록, 아기자기, 아롱다롱한 현란한 영성들이 많다는 말이다. 온갖 잡다한 무지갯빛 영성들이 무수한 책을 통해 흩뿌려진다. 소위 '기독교' 서점에 가 보라. 책 표지 색깔만큼 다양한 영성들이 독자들, 따르미들을 기다리며 판 치고 있다. 거의 책마다 한 영성씩 "한다".  


책을 몇 장 뒤척여 보면 그럴 듯 하고 읽을 만하다 싶은데, 한참 읽다 보면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독자가 이 정도까지 느낀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표지와 저자 소개에서부터 마음이 혹하여 뺏기면, 다행이 아니라, 볼 장 다 본다. 

 

전엔 나날이 어려워지는 출판문화 현실을 생각해서 솔직히 이런 말을 하기 미안한 마음이 한 구석에 있곤 했다. 친척이나 친구가 경영하는 출판사도 있다. 그런데 "웬만한 것 갖곤 돈벌이가 안 된다"며 기라성 같은 저자, 기라성 같은 소재를 찾다 보니, 갈수록 새롭고도 위험한 것들이 아무렇게나 옮겨지고 활자화되는 작금의 현실을 볼 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저작권에 무관한 소위 고대/초중세..근대까지의 온갖 '고전 양서'로부터 값비싼 로열티가 붙는 현대 교계 명사들의 베스트셀러 번역물까지 돈 될 만한 것은 모조리 옮기고 보자는 게 기독교 서적계와 서점가의 현실이다 보니..자연히 일반 독자 성도는 유익 아닌 손해 볼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진다! 그나마 이에 대한 분별과 검증, 경고도 덩달아 늘자 뒤늦게 경계심이 일어, 집안 서가 어디엔가 처박혀 있거나 바깥 쓰레기로 버린 책들이 무수할 것이다.


언젠가 친척 집에 묵으면서 책장을 훑어 보다 절반 이상이 이상 영성으로 유혹하는 책들임을 보고 악연실색했다. 다 샀냐고 물어 보자, "에이~ 여기저기서 누가 준 건데, 읽지도 않아요" 하는 것이었다. 각별히 타이르고 경계해 주었다. 


남이야 읽든 말든 개인의 독서생활에 웬 참견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독자는 혹 서신서에 나타난 사도들의 심정을 이해해 본 적이 있는지? 교회와 기독교가 갓 생겨났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온갖 잡영성이 그득한 교계를 경계하며 사도마다 얼마나 성도들을 경고하고 타일렀던가!! 행전 20'17-38에 기록된 고별사에서, 파울은 당대의 에페소교회 장로들에게 특히 당대에 이내 교회를 잠식할 위험한 거짓 지도자/목자들의 잡영성(29,30)에 대하여 눈물로 마지막 경고를 한 바 있다. 그 경고가 당대의 에페소교회에만 해당한다고 보는 생각은 천만위험한 발상이다!!


파울이 심지어 티모테 같은 최측근 제자들에게까지 당부하고 엄히 경고한 내용 하나가 이상 영성에 대한 분별과 검증의 교훈이다. 교회사가 갓 시작된 시대에 하늘에 계신 예수님께서도 사도 요한을 통해 7교회로 대표되는 당대 교회를 향해 하신 예언 내용(요한계시록 2,3장)에서도 잡된 이상 영성에 대한 경고가 가장 많다(요계 2'2,6,9,13~15,20~22,24; 3'9,10). 그런 교훈들을 "남의 삶에 대한 참견"이라고 싸잡아 치부할 수 있겠는가?



자.. 이게 다 무슨 뜻인가? 지금 교계에 득실거리는 온갖 '새롭고' 잡된 영성들이 이미 과거에도 득실거렸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발하고 "쌈빡"해 뵈는 온갖 영성들은 사실상 알고 보면 과거의 것을 우려내고 양념만 다르게 한 낡은 것들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영성이란 것은 죄다 위험하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 '리더슆' 영성이라면, 아마 안 들어본 독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새들뱈(침례)교회의 맄 워런, 윌로크맄교회의 빌 하이블즈는 이 영성의 대표자 격인 인물이다. 둘은 항상 "건강한 교회"를 입버릇처럼 뇌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과연 둘의 영성이 건전하고 건강한가? 

워런에 관해 필자의 다양한 글들이 있지만, 그의 대표적인 문제점 둘만 얘기한다. 그는 뉴에이저 경제 구루, 피터 드러커를 20년간 1년에 한 번씩 사사했다. 워런의 '세 다리' 이론 등 다양한 교회운영론이 드러커에게서 나왔다. 이미 작고한 드러커는 성공회인으로, 한국 교계 일각에는 "독실한 크리스천"쯤으로 알려져 있지만 완전 낭설이며, 언론기자에게 자기 안방을 장식한 일본 춘화도를 보여줄 정도로 자유분방한 인물이었다.        


워런과 케이 워런 부부는 명 저술가이자 관상영성가/심리학자, 예수회 사제에다 평생 (비공개적) 동성애자였던 헨리 나웬, 그리고 죽기까지 하느님의 존재를 의혹시했던 테레사 수녀를 열렬히(!) 존중한다. 달콤한 필체의 나웬의 관상 도서는 한국 교계를 유린해온지 이미 오래다. 나웬의 영성 등 이상 영성 소개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해온 출판사들이 (신교 수사로 자임하는 관상가, 엄두섭 목사의) 은성출판사와 (고 하용조 목사의) '두란노서원' 등이다. 두란노는 좋은 책들도 많이 냈지만, 온갖 숱한 잡영성 도서들을 훨씬 더 많이 펴냈다. 고 하 목사는 선교를 유달리 강조한 사람이지만, 한편 그가 소개한 온갖 잡된 영성들의 내용은 선교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요소라는 엄청난 모순을 독자는 깨달아야 한다.     


이런데도 워런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모름지기 교계 명사, 지도자일 수 없다는 생각을 아마도 한국 교계 지도자들은 하고 있는 모양이다. 워런과 악수 한 번 하고 사진 한 번 찍어도 어깨가 으쓱해지는(?) 양 말이다. 명사이려는 생각 자체가 비성경적이고 실상 반 크리스토적임을 왜들 모를까? 

그밖에도 워런은 무수한 문제점들을 통해 명성과 함께 악명을 뿌려왔다. 


그런가 하면, 하이블즈의 무분별 한 가지만 말하자. 매년 그가 하는 리더슆 서밑에는 온갖 잡된 영성의 명강사들이 초청되는데, 한 예를 들면, 짐 콜린즈 강사는 힌두교의 쿤달리니 명상을 통해 '7 차크라"를 거쳐 마침내 정수리에서 번갯불이 번쩍이는 초절정의 경지와 쾌감을 맛봤단다. 알고 보면 이건 악령적 쾌감의 극치다! 그런데도 그는 버젓한 크리스천 강사로 행세하고 있다.     

힌두교 요가는 성희의 극치를 추구하는 '탄트라' 섹스 비술로도 유명하다. 탄트라 섹스를 추구하거나 탄트라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뱀처럼 혀를 날름대는 더러운 악령들이 탐할 것임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겠다. 

그런 강사가 리더슆 서밑을 오간다니 그런 강의를 좋다고 해마다 듣는 사람들이야 얼마나 탁월하고 훌륭한 지도자(?)들이겠는가. 그냥 한 번 보기만, 듣기만 하겠다고 찾는 사람들은..악령들 가운데 바람 잡고 무드 잡아 사람 잡는 '분위기령'도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물론 그런 '지도자'들의 책을 읽다가 속에 빠지는 독자도 대동소이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독서를 하려면, 그보다 앞서 성경을 잘 알아야 한다. 성경 지식에 능숙해야 한다. 어느 정도로 능해야 할까.. 어떤 영성도 분별하고 대처할 만큼 능해야 좋다. 만약 그럴 정도로 성경에 미처 능숙하지 못하다면, 분별자료 사이트 ' 청춘 '이나 본 티엘티 등에서 분별과 검증 도움을 받도록 하라.    


독서보다 먼저 성경에 능숙해야 하는 이유는 절대의 잣대를 다지고 다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몸소, 하나님의 말씀은 탄탄한 바위와 같아 그 위에 세운 집이 안전하지만, 나머지는 푸석푸석한 모래밭과 같아서 그런데 세운 집은, 비가 오고 홍수가 나면 끝장이라고 비유하셨다. 

성경의 길라잡이를 통한 독서에 관하여 필자의 글, '인사이더와 아웉사이더'를 참조하기 바란다. 


정말 문자 그대로 성경에 뿌리를 두지 않은 '영성'들, 모든 잡영성들은 모래밭이고 모래성이다! 그런 데다 세운 공력은 아무리 지금 겉보기에 허여멀건 빛난 상아탑 같아도, 마지막 심판에 홀라당 불  타 버릴 지푸라기에 불과하다. 


책. 소위 신앙 도서.. 표지와 내용 몇 쪽은 그럴 듯 해 봬도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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