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지상의 찬송가 같은 형식의 노래가 불릴까?
찬송가가 곧 천국음악?
김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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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은 천사, 찬송가 부를 때에
영광스런 면류관을 받아 쓰겠네
교회음악 작곡가 (고) 김두완의 옛 성가, '본향을 향하네'의 가사 일부이다. 1
천사들과 하늘 성도들도 천국에서 찬송가를 부를까?
또, 18세기의 찬송시인이었던 로벑 로빈슨의 시 '복의 근원'(새찬송가 28장)은 다음과 같이 의역됐다.
천사들의 '찬송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이 그것을 바라실까?
과연 천사들이 지상의 찬송가 유의 그런 노래를 부를까?
많은 이들이 지상 작가가 쓴 찬송가나 성가들이 천국에서도 사용될 만큼 영적인 수준과 권위가 있는 것으로들 생각하곤 한다. 소위 천국 지옥 방문/관광 간증담에서 그런 얘기를 듣는다. 예컨대 오래 전 중국 문화혁명 당시에 겪은 모진 박해의 체험을 해외에 간증하고 다닌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 '마마 퀑'은 천국에서 '거룩 거룩 거룩'(새찬송가 2장) 찬송가가 불리는 환상(꿈?)을 봤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밖에도 비슷한 간증들이 있다. 3
천국은 지상 찬송가를 반영하는 음악이 흐르는 그런 곳일까? 그렇다면, 그 위대하다는 교회음악의 찬란한 꽃인, 바흐의 코랄로 된 칸타타나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합창곡들은 또 어떨까? 그런 음악도 천국에서 불려질까? 앨프릳 테니슨이 쓴 시에다 장중한 곡이 붙여진 '모래톱을 건너' 4나 '잃어버린 화음' 5은 어떨까? 궁극적으로 천국을 노래한 듯한 '거룩한 성'은 또 어떨까? (필자의 딴 글 6> 참조)
사람들의 상상이야 어떻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된다. 찬송가나 성가 등의 형식은 유한한 인간이 만들어낸 유형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은혜롭다고 부르고 있는 수많은 찬송가들이 세속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단적으로, 천국 가는 길을 노래한 '하늘 가는 밝은 길'은 어떤가? 이광수의 소설 한 대목에도 나왔던 이 유명한 찬송가가 지금도 한국 교회에서 널리 불리고 있다. 이 찬송가의 원 곡조명은 완전히 세속 노래인 '애니 로리'(Annie Laurie)다. 가사의 원제는 '갈릴리 사람'인데, 원작자인 미국 시인, 좐 H. 로지어(John Hogarth Lozier, 1832-1907)는 본디 남북전쟁 당시 군목이었던 미국의 감리교 찬송작가로, 수많은 남북전쟁 참전자처럼 그 역시 프리메이슨이었다! 7 [ 별도로, '하늘 가는 밝은 길'에 대한 비평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글로 올리련다.] 8
우리는 먼저 천국이 어떤 곳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천국은 우리 유한한 인간이 갖는 모든 상상을 전혀 초월한 곳이다. 그 곳의 음악은 한 마디로 무한하고 영원하다. 파울의 (거의 무언의!) 간증 그대로 인간의 필설로는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다. 그 곳의 모든 환경과 요소들이 그렇듯, 그 곳의 음악도 우리가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음악이다. 그런 천국이 뭐가 아쉽고 모자라서 지상에서 흘러간 유한하고 한없이 부족한 음악을 재생하여 쓰겠는가? 땅의 흘러간 추억의 옛 노래를 상기시키려고? 지상의 찬송가는 세상에서 쓰던 찬송가이지, 천국에서의 재탕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천국에서 지상의 찬송가가 다시 불린다면, 천국엔 땅에서 역사상 작곡된 모든 찬송가를 저장한 방대한(?) (옛)지구촌 찬송가 도서관도 있을 법하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런데 찬송가 작가들 중에는 문제 인사들도 많았으니, 그런 시와 곡들은 다 솎아내지 않겠는가? 그 거창한 작업을 누가 해 낼까? 천사들이?
과연 천국은 지상의 추억 어린 흘러간 옛 찬송가를 지상의 노래방/가라오케처럼 되새겨 주고,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곳일까? 우리는 천국에 올라가 옛날에 부르던 찬송가를 밤낮 그리워 하며 지낼까? 천국의 영원한 음악이 지겨워서 "그 때 부르던 찬송가가 더 좋았는데.." 하면서 한숨을 짓게 될까? 아니면 땅의 교회에서 연주하던 찬란하고 방대한 교회음악들을 천국 CD로 맨날 들으며 지낼까? 천국에도 텔레비전이나 유튜브가 있어, 동영상처럼 리플레이하며 맨날 보게 될까? 물론 이것도 어리석은 공상에 불과할 테지만.
하늘 음악도 아닌 세상 음악이 영원할까?
어릴 적에 '이 세상 모든 것 사라져도/음악은 영원히 음악은 살리라/음악은 영원히 죽지 않네'라는 노래를 배워 부르곤 했다. 최근에도 가사 일부를 '영원히 있으리', '영원히 남으리라'고 바꾸어 일부 어린이들이 부르는 것을 보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그 가사가 본의 아닌 거짓말임을 깨닫게 됐다. 음악을 포함한 지상의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구적이다'라고 말을 고친다면 그나마 말이 좀 된다. 그런데 '영.구.적.'이라는 낱말이 노래 가사로 적당하겠는가? 좀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아무튼 세상에 있던 존재들중 영원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성경대로 예수 크리스토님을 믿어 거듭난 사람들의 영 뿐이다. 나머지는 영멸한다. 나머지가 영존한다면 지옥 속에서 영존할 뿐이다.
성경은 분명히 옛 하늘과 옛 땅의 모든 것은 불로 태워지고, 새 하늘 새 땅만 남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음악도 마찬가지다. 옛 땅과 옛 하늘이 지나가면서 땅의 모든 음악도 지나가 버린다.
반면 천국의 음악은 영원하다. 그 음악은 새 하늘 새 땅에서도 영존한다. 옛 하늘, 옛 땅이 모두 지나가 버린다는 것은 곧, 그 곳에 있는 모든 음악도 함께 다 지나가버린다는 뜻이다. 지상의 음악만 영원히 남겨두고 나머지만 다 처리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국의 노래, 천국의 음악은 과연 어떤 것일까?
천국엔 천사들이 연주하는 음악과 부르는 노래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곳 고유의 음악이지, 지상의 음악 '재탕'이나 재생 곡은 아니다.
거기엔 성도들이 부를 새 노래도 예비돼 있다고 한다(요한계시록 5'9; 14'3). 새 노래라면, 우선 과거에 부르지 않던 노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접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유형의 음악이라는 의미도 있을 터. 흥미롭게도 구약성경에서부터 '새 노래'라는 말이 자주 나타난다. 무슨 의미일까? 새 노래라는 것은 분명 과거에 없던 노래들을 가리킨다. 그런 노래를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자주 주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더군다나 천국엔 헌 노래가 필요 없다! 과거의 찬송가들은 아무리 훌륭한 것들도 거기선 전혀 필요 없다. 더구나 천국에 왜 지상의 노래가 필요하겠는가? 그 곳은 영원하고 무한한 노래들 뿐이다.
지상의 음악이 유한한 것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지상의 음악은 모두 리듬과 박자가 있고, 악구(프레이즈)와 길이가 있고, 호흡의 장단과, 음표와 쉼표가 있어 노래하다 쉬거나 끊기도 한다. 더구나 성악은 인체의 호흡을 바탕으로 하기에 숨을 쉬지 않고는 노래를 지속할 수가 없고, 그치지 않고 영구적으로 계속 부를 순 없다. 유명 성악가의 노래도 그가 죽으면 끝이고, 녹음만 남게 된다.
결국 지상의 음악은 수학이고, '시한 게임'인 셈이다.
지상의 음악은 공기 속에 진동하는 소리로 엮어지므로, 대기가 없으면 아예 들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말이며 그래서 유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기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반면 우리는 그 나라에서 유한한 이 지구촌의 공기로 숨을 쉬지 않아도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사라지는 우리의 음악은 과연 지구촌에서 어떤 의미의 것이었나?
온 인류가 매일 만들거나 듣거나 부르며 즐겨온 무수한 음악이 존재해 왔다. 성경에 따르면, 최초의 음악가는 유발이었다(창세기 4'21). 그는 목축업자인 형 야발이 치는 양떼 중에서 큼직한 양뿔로 만든 관악기와, 나무 울림 통에다 양의 창자 심줄(catgut)을 꼬아 만든 줄을 몇 가닥 걸친 하프 형태의 현악기를 퉁기며 즐긴 것 같다. 이처럼 첫 음악인은 목축업자와 직결돼 있었다. 묘한 사실은, 유발은 살인자 카인의 직계 후손이었다는 점이다.
성경에 따르면, 태초에 소리가 있었고 울림이 있었으며, 음악이 있었다. 물론 창조주가 내셨다.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말씀도 소리가 곁들여지면, 하늘은 물론 땅까지 온 우주에 울려 퍼지곤 했다. 성경은 별들도 노래한다고 했다.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서다.
인간이 듣기엔, 소리라고 해서 다 음악인 것은 아니고, 사람이 귀로 들을 수 있게 진동수와 배음 관계가 맞아야 한다. 인간의 청각을 초월한 음악은 영적으로는 어떨지 모르나, 청각을 지닌 우리 몸엔 있으나 마나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음악은 더더욱 유한한 것이다.
창세기의 태초 이전에 하나님은 천사 중 하나에게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연주하면서 음악을 관장(管掌)하도록 시켰다. 존귀하고 영예스럽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천사는 맨날 하나님만 찬양하다 싫증 났는지, 스스로 높아져 어느 날부터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위하기로 맘 먹었다. 피조물이 창조주께 반역하고 나선 것이다.
이 악한 천사는 하늘에서 쫓겨났고, 그 후로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악의 영감을 주어서, 하나님 아닌 사람들 자신 더 나아가 타락천사를 위해 음악 연주를 하도록 유혹해 왔다.
목축업자의 아우인 유발이 최초의 세속 음악인이라면,
목동 출신의 왕 다뷔드는 최초의 본격적인 찬양 음악인이었다.
반면, 카인이 아닌 쉠 계열인 '하나님의 아들들'은 음악을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을 계시로 알게 됐다. 음악의 역사는 길고 오래지만, 성경에서 처음으로 두드러진 찬양 음악인은 목동 출신의 왕, 다뷔드였다. 어릴 적에 그는 평소 양을 치다가 스스로 만든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를 읊곤 했다.
다뷔드의 평생에 성령의 영감으로 노래한 수많은 시와 노래가 시편 안에 들어 있다. 시편을 히브리어로 테힐림(תְּהִלִּים/Tehilim 단수 테힐라)이라고 한다. 테힐림은 본디 '찬양시모음'이라는 뜻으로 빛남/자랑/영광을 뜻하는 헬렐과 절기 때 부르는 특정 찬양시인 '할렐' 9, "찬양하라"는 뜻의 '할렐루', "예호봐(여호와, '야웨')님을 찬양하라"는 의미인 '할렐루야'와 모두 같은 어원(동사 '할랄')을 갖고 있다. 그런데 시편 속의 각 시를 '미즈모르'(מִזְמוֹר/mizmor 복수: 미즈모림)라고도 부른다. 미즈모르는 가락이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시편의 각 시는 시이자 노래였던 것이다. 10
기원전 2~3세기에 세계 최대의 도시였던 북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약성경을 70여 유대인 학자들이 그리스어로 옮긴 70인경(Septugint 약자: LXX)은 시편을 프살모이(Ψαλμοί, Psalmoi)라고 옮겼다. 시편이라는 영어 낱말 Psalms가 바로 여기서 왔다. 그런데 프살모이는 동사 '프살레인'에서 왔는데, 현악기의 줄을 뜯다는 뜻이다. 즉 시편이 본래 음악을 곁들인 계시문학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시편은 유대인들의 구약성경에서 케투빔 곧 성문서(聖文書) 군에 속한다.
이렇게 볼 때 한 마디로 테힐림은 히브리 족, 유다인들의 찬양노래였던 것이다!
이 찬양시편의 찬양노래들이 천국에서 불릴까? 파울은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 화답하라고 권했다. 그 모두가 천국에서도 불릴까?
그럼, 찬송가 가사는 어떨까? 음악과는 달리 영속될까?
나는 찬송가 시가 찬송가 곡 곧 음악과 거의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적인 내용이더라도 그렇다.
나는 계시록에 말한 미래의 새 노래는 이 모두를 초월한다고 믿는다. 새 노래이기 때문이다.
새 노래를 부르는 천국에선 헌 노래들이 불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구약은 모두 예수 크리스토님 안에서 다 성취된 내용들이다. 따라서 시편들도 미래적 관점에선 옛 노래요 헌 노래인 것이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새 하늘 새 땅, 그 나라에서 영원한 새 노래를 부르게 된다.
또 천사들이 연주하는 영원히 아름다운 하늘 음악을 듣게 된다.
끊이지 않고 흐르며 영원히 계속되어도 하나 지루하지 않는 그 음악을 말이다.
그것은 하늘의 새 테힐림이다.
- 가사는 작곡가의 칸타타 '순교자'의 작시자였던 김희보 시인이 쓴 것으로 알려진다. [본문으로]
- 원문의 직역은 "하늘 불의 혀들이 노래하는 가락 붙은 소네트를 가르치소서". 여기서 시인은 오순절 성령 임재 때 불의 혀 같은 형상이 나타남을 원용했다. 이것은 기발한 착상인지는 모르나 잘못된 상상이다. 불의 혀 형상은 오순절날 밖엔 나타난 적이 없으며, 천국에 있는지 여부도 알 수 없다. 천사들의 혀가 불꽃인지는 더구나 알 수 없다. 이것을 무턱대고 '찬송가'로 옮긴 것도 우스꽝스런 넌센스다. 우리도 알지만 땅의 찬송가 형식은 매우 유한하고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 마마 퀑 이야기는 사랑하는교회(옛 큰믿음교회) 변승우 목사측에서 흔히 울궈 먹곤 한다. [본문으로]
- 그는 영국의 계관시인이자 프리메이슨이었다. [본문으로]
- '황혼의 저녁별, 날 오라 부르네.."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본문으로]
- 작시자는 물론, 작곡자인 아터 설리번도 다 유명 프리메이슨이었다. [본문으로]
- 한 때 이 찬송가는 한국 선교사로 온 윌리엄 스왤런 선교사(한국명 소안론)의 작시로 잘못 알려졌다가, 교계 작곡가/연구가인 오소운 목사에 의하여 원작의 정확한 내력이 밝혀졌다. [본문으로]
- 그는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신비의 매듭' 라지의 단원이었으며, 대학 시절 학내 비밀그뤂(fraternities)을 위한 초기 헌장과도 같은 문서를 써서 지금껏 그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본문으로]
- 라틴어로는 루키페르, 루치페르. 영어로는 루시퍼로 번역된 부분이다. [본문으로]
-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지막 만찬' 후 동산 시내를 건느며 부른 시편도 할렐의 일부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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