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
어느 교회 집회에 참석했다가 모처럼 "부흥강사다운" 부흥강사를 봤다. 여기서 '..다운..'이란 말은 전형적인 한국식을 뜻한다.
옆 사진은 내용과 직접 관계는 없음
옛 약장수(?)를 연상시키는 굵직한 허스키보이스. 독특한 지방 사투리. 과히 듣기 싫지 않을(?) 정도의 걸쭉한 입담-욕지거리와 반말. 기관포처럼 연발해 배꼽 잡을 새 없이 웃기는 유머. 과장된 제스처와 표정. 성경본문의 풍유적(allegorical) 해석, 은혜보다 현세적 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성향. 뜬금없이, 밑도 끝도 없이 아무데서나 아멘을 강요하는 것 등등.
물론 이런 요소들 탓에 그들 나름의 영적 체험과 경건, 선의까지 무시하려는 건 아니다. 이민생활에 밤낮 찌들린 동포들의 묵은 스트레스를 씻겨내리다시피 확 뚫어주는 시원하고 탁월한 말 재간과 유머감각 등도 다 좋다. 또 20세기 한국교회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교회를 정신차리게 만들고 성도의 성령충만을 돕는 훌륭한 부흥강사들도 퍽 많았고 현재도 있다.
문제는 깊이다.
사람에 따라 신학을 깡그리 무시하는 듯한 성경해석이 엉터리고, 감칠 맛 나는(?) 유머와 말발은 좋은데..사도 바울의 말과 같이 "말이 아닌 능력에 있는" 영적 본질 즉 영성과 권능, 경건 등에서 약하다는 것이다. "말보다 능력"이어야 하는데, "능력보다는 말"이다.
한국 무슨 단체의 장이라는 최근의 그 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다짜고짜 "아브라함은 복을 전혀 못 받은 사람"으로 소개하는 게 아닌가! 마치 아브라함의 생애가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횡설수설 해 나가다가 "진짜 복 받은 사람은 야콥"이라며, 야콥이 장수와 물질, 후손의 복을 받았다고 풀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복을 못 받았다니?! 아브라함은 살렘의 왕이자 의의 군주, 지존자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키쩨뎈에게 직접 축복을 받은 것을 비롯해 야콥보다 더 오래 살았고, 많은 물질과 후손들을 얻는 복을 누렸다. 물론 진짜 씨앗인 이짜크만 곁에 남겨 뒀지만.
더욱이 아브라함이 장수한 나이를 보면, 손자 야콥과 상당기간 동시대를 살았다.
게다가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으로 하나님이 불러 주셨다. 아브라함 때문에 아들 이삭과 손자인 야콥도 복을 받았고 우리도 영적 믿음의 선조인 아브라함 때문에 크리스토의 복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복을 "못" 받았다니..도대체 어디서 그런 해석을 배웠는지 그저 혀를 찰 노릇이다. 그것도 성령의 영감인가? 행여 그 청중들이 정말 그렇게 믿을까 봐 사뭇 우려된다.
유명 신학대학원을 3개 나왔다는 그는 또 브엘세바(원명 베에르쉐바)란 장소 이름을 '귀신의 집'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왈..'브'는 없다는 뜻, '엘'은 하나님, '세바'는 귀신이라는 것이었다.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너무도 어이가 없다.
야콥이 브엘세바를 떠나 벧엘(하나님의 집)로 갔기에 복을 받았다며 그런 해석을 하는 것이었다. 아전인수 격이다. 필자 생각엔 그가 혹 '바알쩨붑'('파리떼의 두목' 곧 마귀)이나 바알쩨불과 혼동하지 않았나 싶다.
브엘세바는 특별한 원어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라, 셩경에 그 뜻이 이미 나와 있다! 브엘은 [브+엘]로 따로 뗄 수도 없거니와 정확한 발음은 '브엘'(Beel-)이 아닌 '베에르'(Beer-)다. '하나님'(엘)이란 뜻이 아니라 단순히 '우물'이란 뜻, '쉐바'(Sheba)는 숫자 '7'/완전/언약 또는 '쉐바 사람들의 지방'이란 정도의 뜻이다.
따라서 '베에르쉐바'는 '쉐바의 우물'이란 의미다. '쉐바'란 이 이름은 다름 아닌 이짜크가 붙인 것이다(창 26:33). 이삭이 자기 우물을 '귀신'이라고 불렀겠는가?
그 강사의 무지와 천연덕스러움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거기에다 회중에게 아멘까지 연신 강요해오니 통탄스럽기까지 하다. '아멘'이 뭐던가? "참으로 그렇습니다.", "진리입니다"가 아니던가. 더욱이 아멘은 예수 크리스토의 이름 자체다. 그런데 그런 해괴한 해석에다 아멘을 해 달라고 요구하고 청중은 밸도 없이 거기 응하다니 그 부흥강사에 그 청중이다. '평신도시대'란 말이 무색하다.
그는 또 신명기 33:24에서 모쉐가 아쉐르의 후손에 대하여 예언한 (한글개역성경의) '다자한 복'의 뜻을 모르는 듯 했다. 낱말 뜻풀이는 안(못?) 해 주고 '만사형통하단 뜻'으로 그럴 듯 하게 해석했다. 사실, '다자(多子)한 복'이란 한자어로 아들을 많이 낳는 복을 뜻한다. 히브리 원어 '미빠님'은 "(여러) 아들들의" 정도의 뜻이다. 과거 어느 여성 부흥강사는 '다자한'의 뜻을 몰라 '다사다난한, 아기자기한'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는 또 '초대교회'란 개념을 부인하면서 초대교회가 진짜 첫 교회도 아니고 구약 광야교회가 참 교회의 전형이란 식의 논술을 풀어 나가고 있었다. 역시 아전인수격의 해석이고 매우 시건방지기까지 하다.
차제에 곁들이고 싶은 한가지 제언이 있다.
'부흥사'란 용어를 쓰지 말자. 사람은 성령님의 부흥역사의 도구일 뿐 사람 자신이 교회를 부흥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부흥사'란, 말도 안 되는 용어다. 영어의 evangelist도 그냥 '전도자'란 뜻이다.
'부흥사'를 어떤 이들은 부웅 띄워 올렸다가 정작 떠나면 가라앉는 바람잡이로 묘사하기도 한다. '부흥사'가 아닌 전도자, 또는 부흥성회 강사로 불려야 바람직하다.
필자는 부흥성회나 부흥강사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그러나 한국 부흥강사들은 잘못된 성경해석을 고치고 성경 실력을 길러야 한다. 일반 신도들 앞에서까지 망신 당하지 않으려면.
[ 필자는, 외래어는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쓰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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