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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선지서

[사 58:8-11] 참된 금식 (3)-그 대가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사야 58:8-11)



그동안 우리가 묵상해 왔듯..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영적 멍에와 멍엣줄, 압박으로부터 형제자매들을 해방시켜 주고 또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의 형제자매들을 보살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금식을 할 때 어떤 결과가 옵니까?

하나님은 매우 다양한 것들을 약속하십니다.
먼저 우리의 빛이 새벽처럼 터져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 쓰인 (히브리 원어) 동사 '바카'는 쪼개다, 뚫다, 터뜨리다, 터져 나오다, 깨고 열다 등 강세를 띤 낱말입니다. 우리의 빛이 밤의 어둠을 뚫고 찬란하게 비취는 강력한 아침 햇살처럼 될 것이라는 약속이지요.

이 말씀은 10절에서 더욱 강화되고 보충됩니다.    

    "네 빛이 흑암 가운데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단 여기엔 멍에와 손가락질, 허망한 말들을 버려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군요. 우리의 잘못된 언어 생활은 우리의 복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혀와 입술엔 강력한 힘이 있어서 경우에 따라 복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하지요.  

자, 그런데..밤새 망을 보는 파수꾼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아침해입니다.
그처럼 죄의 어둠 속에서 꿈틀대던 인생들이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과 그 자녀들의 영적인 빛입니다(이사야 60:2,3)
 
빛은 대언자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에서 자주 테마로 사용되는 낱말의 하나이죠.
주님은 이사야를 통해 "일어나 빛을 내어라!"고 명령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이사야 60:1)

캄캄한 죄와 악의 어둠 속을 사는 인생들을 향하여..주님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요구하시는 것 하나가 곧 빛내기--빛 발산 내지 발광(發光)의 사명이죠(참조: 이사야 9:2).

창조주 하나님 당신께서 맨 처음 하신 일도 바로 그것--빛 내기입니다.
"빛이 있어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창세기 1:3-5).
바로 예수 크리스토님이 그 빛이시죠(요한복음 1:4-9)!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깨닫는 역설적인 진실은..
 
본래 하나님은 '헬렐'(라틴어 '루키페르', 영어 '루시퍼')이라는 대천사(천사장)를 지으셨습니다. 헬렐은 아침의 아들, 여명, 샛별, 빛나르미(light bearer)라는 찬란한 이름의 종합입니다. 그만큼 영광스럽고 아름답고 신비한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우주의 모든 (창조된) 존재들보다 더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영광과 이름은 한낱 과거지사에 불과합니다. 이제 그는 오히려 거꾸로.. 우주에서 가장 추악하고 사악한 어둠의 존재가 됐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도전하여 배신하고 천사들 일부와 음모를 꾸며 쿠데타를 시도하다 셋째 하늘에서 쫓겨난 싸탄(도전자, 반역자란 뜻)..바로 그였습니다. [ 그런데도 프리메이슨/기사단 등은 그를 여전히 '빛나르미'로 부르며 신으로 섬깁니다. 그래서 아침 동녁, 횃불 등이 그들의 주된 상징물의 하나이지요. ]
그러나 싸탄과 그 졸개들, 그들을 추종하는 인간들은 모두 빛나르미는커녕 캄캄한 암흑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젠 무효화 돼 버린 거짓 이름을 끼고 도는, 영원히 버림 받고 저주 받은 어둠의 자식들입니다(회개하지 않는 한 그들의 동조자 인간들도 마찬가지구요).

대신 하나님은 참 빛이신 성자님 곧 예수 크리스토를 지상에 보내셨고, 그 성자님은 '밝은 새벽별'(광명한 아침별)로 불려지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빛들이고요.
그래서 우리 자신이 빛의 열매를 맺고, 죄악의 어둠을 비추는 구실을 다하길 주님은 요구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엪 5:8-14)


우리들의 빛은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 금식을 할 때 더욱 밝아집니다. 그래서 그만큼 더 어둠이 맥을 잃고 빛 앞에 자리를 내놓게 됩니다. 어둠이 빛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거기가 바로 싸탄에게 묶였던 사람들이 자유와 해방을 얻는 순간이지요!

참된 금식의 보상은..또한 우리의 치료가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여기 '빨라진다'는 원문 역시 강세를 띤 단어 '짜맠'(튀어나다/돌출하다/치솟다/자라게하다/북돋우다 등)이 쓰였습니다.

환자에겐 빠른 치료만큼 반갑고 좋은 것도 없지요. 장기/중환자와 그들을 간호해 본 사람들이 더욱 절감하는 것입니다. 영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거나 더디 낫거나 할 때, 몸과 맘이 지치고 약해져 불안해지고 자칫 절망감도 찾아 오게 됩니다. 반면 환자가 빨리 낫고 건강을 회복해 갈 때 자신 뿐 아니라 걱정하던 주변 사람들이 큰 기쁨과 보람을 맛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자와 가족에게 "쾌차하시길" 하고 복을 빌지요.

평소 건강한 편이지만 저도 가끔 꽤 오래 앓아 본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원인 모를 토사곽란으로 두 주 이상을 앓아 봤고, 한 번은 '대상포진'이라는 세균/신경성 피부질환으로 보름 이상 앓았습니다. 치병기간이 그렇게도 지겹고 답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 하나님이 도우셔서 치료가 급속해진 계기가 있었지요. 그래서 이 구절이 더구나 실감이 갑니다.

질병의 치료는 물론/늘 속전속결일수록 좋습니다.
그 비결 가운데 하나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또 한 구절은 바로 말라키의 대언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 4:2)

이 성구를 원문에 충실하게 옮겨 보면:

"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겐 의의 해가 날개 아래 치유를 지니고 떠오르리.
그래서 너희가 나아가 외양간에서 풀려난 송아지처럼 뛰놀리!
" 
 

할렐루야!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경외하는) 사람들은 올바른 금식을 할 수 밖에 없고..그래서 바로 의의 태양(the Sun of Righteousness, 쉐메쉬 찌다카)이시자 치료하는 주님이신 예수 크리스토의 신유의 혜택을 받고 송아지처럼 건강을 즐기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한 것입니다.

신실한 주/야웨님께서 그 다음으로 다짐하신 것은.. 의가 내 앞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내 뒤를 가려주는 등 지키미(rear guard)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영예입니까!

의라는 것은 늘/우선 우리 앞에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완전무장(온몸갑옷)의 제2 무기인 '의의 호심경(가슴판)'도 우리 앞을 방어하는 데 필요하지요(에페소 6:14, 참고: 이사야 59:17). 고대 병사들의 갑옷 중 가슴판(breastplate)이 사람의 심장을 비롯한 온갖 장기(腸器)가 든 몸통을 보호하듯, 우리의 의는 우리의 심령과 전인적 존재를 보호합니다.    

우리 신자들이 가슴을 펴듯 떳떳하고 어엿하고 담대함은 바로 예수 크리스토님으로부터 얻는 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즉 우리의 의는 나 자신이 아닌 제3자 곧 예수 크리스토님으로부터만 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서 "너의 의"(쩨데카)라는 말은 '너의 의로운 분'이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 앞서 가시는 의로운 분,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분 -- 예, 바로 예수 크리스토님이시죠!

이 진리를 꿈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힘과 내 행위, 내 공로로 의를 얻으려 할 때 실패하고 타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할 때 주님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어 우리 앞에 앞장서 간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뿐만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우리 뒤를 든든히 떠받쳐 주는 보호 판막이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위험한 곳에서의 안전은 앞/뒤 사방으로 보장돼야 합니다. 특히 앞/뒤는 중요하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늘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끌거나 앞/뒤를 보호했습니다. 더욱이 미쯔라임(에집트) 군대가 추격해 올 때 불기둥이 사이에서 막아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지켰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처럼 주님은 그분의 영광으로 우리들의 뒤를 돌보시고 지키시고 받쳐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시인 다윋은 시23편에서 목자이신 주님의 선과 사랑이 평생 그를 따르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주님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며 같은 고백을 믿음으로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선과 사랑이 내 평생 나를 따르리!
    주님의 영광, 늘 나의 등 지키미이길!  


자, 그 다음 혜택은 뭡니까..기도 응답의 약속입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9a절)

기도를 해도 응답을 못 느껴 답답한 사람들은 이처럼 주님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면 잘 된다고 성경은 약속해 줍니다. (결코 '관상기도'가 아닙니다. 그런 이질적 기도를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응답해 주시길 기뻐하시고 스스로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지요. 다만 히브리서 11:6에 명시된 대로, 그분에게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이 살아계신다는 믿음, 꼭 내 믿음의 대가를 챙겨 주시는 보상자(Rewarder)시라는 믿음을 지니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우리를 항상 이끄시고 메마른 광야 같은 세상에서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시고 우리의 뼈를 견고하게 하셔서 우리를 물 댄 동산, 솟는 샘처럼 풍요롭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 온갖 좋은 것이 가득합니다!

    삶 속에서 주님의 이끄심,
    영혼의 만족,
    몸과 뼈의 건강-삶의 심지가 알찬 보람-을 주시고
    물 댄 동산처럼, 흐르는 샘처럼 윤택함과 풍요로움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것들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고 믿는 사람들에게 보장된 것입니다.


사실 이사야 당대나 후대의 이스라엘 왕국인들은 이런 금식을 (제대로 거의)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따라서 혜택을 제대로 못 받았지요.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자들에게 오히려 더 큰 혜택이 돌아온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 말씀들이 구약인들에게만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신약인들에겐 아무 소용 없다는 뜻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사도 파울은 분명히 예수 크리스토 안에서 아브라함의 모든 복이 우리의 것이라고 계시를 통해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지금이 율법시대가 아닌 복음/은혜시대라고 하여 구약인들에게 약속됐던 온갖 좋은 것들이 우리에겐 해당 사항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불균형적인,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함으로써..
믿음으로 그 보상의 약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우리 주님 예수 크리스토의 은총과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친교와 이끄심과 복 주심이
티엘티 독자들에게 늘 있기를..

주 예수님의 전능한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