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비평/문학

황순원은 기독교작가였나?





황순원은 기독교 작가였나?

-기독교문학 및 기독교문화론




올해가 그 유명한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의 탄생 100돌을 맞는 해란다. 지난 3월 26일이 그가 태어난 날이었다. 거기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가 며칠 전 아침 열어 본 한글 '구글'의 두들(doodle)을 들여다 보다가, 빗속에 마주 앉은 두 어린 남녀의 그림이 좀 색다르다는 느낌에 호기심이 생겨 관련 링크 속에 얽히고 설킨 내용들을 뒤져보고서야 알았다(>). 하지만 이 글은 황순원 평이 아니다. 황순원의 탄생 주기를 계기로 기독교 문학론을 말해 보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세속문화에 배치되는 기독교문화론도 논급하련다. 



황순원은 평안남도 출신이다. 당대에 평안도 출신은 거의 기독교 배경을 지니고들 있다. 이광수가 그 다른 예일 것이다. 한국 땅을 찾은 예수교의 복음이 본디 북한의 대동강을 타고 흘러든 데다, 평북은 1907년의 대회개부흥으로 명성이 높은 평양 장댓재(장대현)교회를 비롯한 여러 대표적인 초기 교회들, 초기 목회자들을 배출한 평양신학교, 다양한 한국 지도자들을 배출한 평양의 숭실학교와 정주의 오산학교 등 많은 기독교적 기관들이 있었다. 


황순원 역시 이런 배경에서 자랐기에 기독교적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적어도 표면상 기독교인이었고, 그가 다닌 학교도 숭덕학교, 오산중학교, 숭실중학교 등 기독교계 학교였다. '카인의 후예' 등 그의 작품들도 이런 영향을 반영하여 어느 정도 기독교적 세계관을 포함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어떤 작품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그렸다고 해서 작가 자신이 기독교 세계관을 지녔다고 하기는 어렵다. 참 신자라고 하기는 더더욱 그렇다. (작가가 끝내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광수의 작품 일부는 기독교 세계관을 그렸고 더구나 작가 자신이 한 때나마 그런 세계관을 지녔었으나, 그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일종의 종교다원주의자였다. 심지어 "피와 살과 뼈까지 일본인이길" 바랐던 지독한 친일파였으니, 내심 일본의 태양신교 등 다종교적 요소를 동경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황순원 역시 참 기독교 작가였나를 묻기 전, 그의 삶과 작품에서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이 묻어날 정도로 리얼한 크리스천 냄새가 나냐를 캐야 할 터이다. 그러기 전엔 기독교 작가라고 하기가 힘들다. 인간의 죄성을 여지없이 고발한 '카인의 후예'라는 작품의 이름이 성경에서 왔다고 해도 기독교성을 말한다고 할 수 없다. 


문학을 말하는 사람은 흔히 "치밀한 작가정신"이란 것, 또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치열한 인식을 논한다. 그러나 기독교 작가는 치열한 기독교 정신부터 있어야 올바른 순서라고 나는 생각한다.[각주:1] (>)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냐 하면, 오래 전 문학께나 즐긴다는 신자/교인들로 이루어진 문학 동호회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 상당수는 당시 대화 속에서 소위 "껍데기만의 신자"들이었던 것으로 추회되고 분석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을 단죄하거나 그들의 문학성을 부정하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그랬던 이유를 알며, 또 나 자신 왜 이러는지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단지 그들을 '기독교 문학인'이라고 하기엔 한도가 뚜렷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20세기 전반기의 신학자 리처드 니버는 자신의 강의와 책, '크리스토(그리스도)와 문화'에서 기독교가 세상의 문화와 어떻게 상호반응 하는 지에 따라 5가지 유형을 구분하여 정의하고 각 유형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나열한 바 있다. 내 주변의 기독교 문화인들을 이 5 유형의 일부로 구분하려면, 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모름지기 크리스천의 향기가 강렬하게 또는 거부할 수 없이 스며나야 한다! 크리스토님의 냄새를 풍겨야 한다! 문학에 기독교를 빌리거나 기독교에 문학을 빌리는 정도를 갖고는 기독교문학 또는 기독교작가라고 할 수 없다. 기독교문학은 명실공히 거듭난 작가가 써야 이름다우며, 거듭난 신자로서 성경적인 세계관이 담긴 글을 써야 기독교작가의 명칭답다. 그 밖엔 다 말짱 '꽝'이라고 과언이 아니다. 


존 밀턴, T. S. 엘리어트, C.S. 루이스 등등등 수많은 소위 위대한 '기독교 작가'들로 불리는 사람들이 역사의 강변에 즐비하지만, 이들은 믿거나 말거나 진정한 기독교 작가가 아니었다. 성경적 표준에서 말이다. 그렇다. 표준은 성경이다! 그 밖에 그 어떤 것도 기독교 작가의 표준이 될 수가 없다. 성경은 기독교의 바탕이며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사람은 사실 기독교를 논할 자격도 없다.  


물론 '기독교적 작품', '기독교 작품'이라는 용어도 서로 구분해야 옳다. 비기독교 작가도 얼마든지 기독교적 작품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느 시점에 거듭난 신자가 되었는데, 그 이전에 쓴 것을 기독교적이라고 해서 기독교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또 언젠가는 기독교인이었던 것 같은데, 그 후 기독교를 떠난 사람을 기독교 작가라고 할 수 있냐도 문제 된다. 이런 것을 적당히 무시해 가며 참 기독교 작품론을 펼 수는 없다. 


황순원을 기독교 작가라고, 그의 작품들을 기독교 작품이라고 일컫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으레 기독교계 사람들인데, 대개는 그의 기독교적 배경을 갖고 그러하며, 또 아내가 모 교회 권사라느니 하는 최근 배경도 그런 수식의 바탕이 되곤 한다. 그런 논란은 일부 여타 기독교 작가들, 예컨대 박목월 등에 대해서도 펼쳐지곤 한다. 



애연가가 기독교작가일 수 있는가?


일각에서는 황순원이 1970년대에 이미 기독교적 작품을 썼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70년대의 황순원은 담배를 잘 피는 사람이었다(>). 기독교 배경을 지녔다는 황순원이 왜 끽연가였을까? 집안 배경을 보면 자명해진다. 아들 황동규 교수(영문학자)의 회고록을 보면, 그 할아버지가 담배를 태우면서 자식들에게도 허용했기 때문에 결국 손자까지도 담배와 술을 즐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더욱이 자신은 조상제사를 드리면서 자식들에게는 제사를 하지 말라고 한 것도 모순된다. 이런 복합적인 배경이 황순원의 후년이야 어떻든 간에 기독교 작가라고 보기는 어렵게 만든다.


엘리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거기 보인 반응들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거듭나 여생을 철저히 기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심리적 또는 사회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기독교 진리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 나머지, 표면상 기독교적이거나 또는 반대이지만, 내면은 판이하거나 좀 다른 이율배반성을 보이기도 한다. 주초 문제가 그 한 예일 것이다. 


나는 술과 담배를 즐기는 '주초인'(酒草人)들을 단죄하지 않는다. 다 같은 인간이고, 다 같은 영혼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초인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을 경우, 주초가 신앙생활에 도움되기보다 방해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중독 수준인 경우 몸과 건강, 주변과 미래에 전혀 도움되지 않으며 여러 모로 심각하다. 성경은 사람의 몸을, 하나님과 크리스토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머물어 계시는 성전이라고 말한다. 그 성전에 주초를 마구 퍼 넣는 행동은 물론 옳지 않다. 하지만 교인들 곧 기성신자들이 주초인들을 멀리하고 단죄해 버린다면, 교회는 죄인들을 돕고 구출할 장소가 되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주초 문제에서 '자유'란, 상반된 두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주초를 위한 자유와 주초로부터의 자유. 교회는 주초의 자유를 '억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경배 장소인 교회 구내에서의 주초는 삼가게 한다. 경배 때 성찬(예수 크리스토님이 제정한 그 분의 살과 피의 기념)을 제외한 음식을 먹지 않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교회는 더 나아가 위와 같은 이유로 주초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게 하며 결국 그 자유를 쟁취하게 돕는다. 

그러나 사제들까지도 주초에 몰입해 있곤 하는 천주교는 이런 자유를 베풀지 않으며 관심도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천주교를 참 기독교로 보지 않는다. 


담배는 콜롬부스가 신대륙 원주민들에게서 발견하고 서구로 도입했다고들 한다. 문화보다 자연과 가깝다 보니 다양한 야생식물들을 연구하고 활용한 원주민들은 담배 말고도 여러가지 환각초들도 피우고 있었다. 중독성에 있어 담배는 다른 환각초들과 크게 차이지지 않는다. 하물며 연소하면서 수많은 유해성 화학물질을 내는데야 말할 나위 없겠다.  


사람의 몸은 유해성/독성 화학물질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예수 크리스토님은 진리로써 자유롭게 하는 분이시며, 그 자체가 진리이시다. 진리는 우리를 주초 문제로부터도 자유롭게 한다. 신자인 우리가 돈을 다스릴지언정 돈에 얽매이거나 맘몬 신의 종이 될 수 없듯, 주초에도 얽매일 수 없다. 결국 주초는 신자가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여기서 얼핏 유명 기독교 작가의 하나로 꼽히는 C. S. 루이스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골초로도 유명했다.(>) 성공회인이었던 그는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 '순수 기독교'라는 책을 내기도 한 그는 죽기 전 끝내 천주교 종부성사를 받았다. 나는 그래서 루이스를 참 기독교 작가로 보지 않는다. 

 

기독교문학 얘기가 나와야지 웬 엉뚱한 주초 얘기를 하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세인들이 말하듯 문학은 삶이고 삶이 문학이어야 한다면, 삶의 모든 요소가 문학과 연계될 것이다. 역시 탄생 100돌을 넘긴 기독교적인 시인, 김현승을 말할 때, '다형'(茶兄)이라는 그의 호가 말해 주듯 커피를 빼고는 그의 삶과 문학을 제대로 말하기 어려움과도 같다.  



성경과 기독교문학


이렇게 말하면, 필시 필자의 기독교 문학관이 매우 협소하다고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가 하나님의 절대 계시와 삶의 절대 잣대로 믿는 성경은 기독교 문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말하고 있지 않다. 문학이란 것은 보통 개인의 삶뿐 아니라 주관적인 상상이나 팬터지, 핔션이 들어가야 그 가치를 일러 주는데, 진실과 진리만을 말한 성경엔 그런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혹 형의 살해 마수를 피했던 구약 판관((判官=사사) 기데온(기드온)의 아들 요탐(요담)의 가시나무 비유(판관기=삿 9'1~21)나 예수님의 비유들처럼 부분적인 가상은 있을지 몰라도. 


요브서(욥기)나 '노래중노래'(아가)를 문학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탁월한 문예성이 있는 글들이고 내용이다. 그런데 요브서는 메시아를 정점으로 삼은 분명한 계시일망정 핔션 문학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노래는 모두 구약적인 내용으로 일관되어 있고, 연가요 애가이며, 유대교 라삐들이 극찬한 성(聖)문학이기도 하다. 

필자 개인의 관찰과 견해로는, 우선 이 노래가 신약에서 전혀 인용된 바 없고, 라삐들과 초기 '교부' 저작가들이 풍유적으로 해석했을 뿐, 메시아에 관한 구체적인 예언 등 묵시적인 내용도 그다지 없어 뵈기에 딱히 '기독교 문학'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대부분 어디까지나 슐로모(솔로몬)의 순수 연가처럼 보인다. 라삐와 교부들이 뭐라고 풀이하든지, 성령께서 남녀의 "섹시한" 특정 신체 부위에다 하나 하나 비유를 얹어 가며 관능적이고도 동시에 거룩한 교훈을 읊게 하신 것 같지는 않다. '노래'의 참된 메시아성과 기독교성 여부는 아마도 하늘나라에 가서야 비로소 알 수 있게(?) 될지 모른다. 


신사도운동권 일각에서는 특히 이 '노래'에 기초하여, 하나님/크리스토님과 우리의 친밀성(intimacy)을 강조하면서 마치 신자 하나 하나가 크리스토님의 '신부'(新婦) 내지 신부(神婦?)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사도 파울은 어디까지나 크리스토님과 전체 보편 교회와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 사이로 그렇게 비유한 것 뿐이다. 


이 노래가 교부들의 주장처럼 하나님 및 크리스토님과 교회 사이의 관계에 그다지도 중요하다면, 주님이나 사도들이 한 두 번쯤 인용했을 터이다. 그러나 주님은 슐로모에 관하여 딱 두 번, 그의 모든 호화로운 궁중 의상보다 한 포기 들꽃이 더 아름답다(!)고, 그리고 남방의 쉐바 여왕이 슐로모의 지혜를 직접 확인했으나 슐로모보다 더 큰 분이 메시아이심을 자임하시면서 언급하셨던 경우 뿐이다. 구약 성경을 자유자재로 인용하셨던 주님은 "슐로모의 '노래중 노래'는 나와 그대들의 친밀 관계를 뜻하는 것이라오" 하며 인용하신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것만 갖고 '노래'의 위대한(?) 기독교 문학성을 논하기란 어렵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기독교작가라는 명칭


이렇게 말하면, 일부인들은 성경을 그대로 카피해야 기독교문학이냐...꼭 이런 식으로 대 드는 사람들이 있다[각주:2]. 바로 말한다면, 그런 것은 더더구나 기독교문학이 아니다! 나의 본의가 그런 것인 줄 몰아가거나 착각하는 사람들은 미안하지만 이 담론의 상대가 될 수조차 없다. 


기독교 작가이자 장로인 현길언 교수의 황순원 촌평을 읽어 보니, "작가는 열렬한 크리스천은 아니었을 것이다"라며 다만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인간에 대한 정직하고 치열한 태도, 모든 것을 통전적으로 인식하는 사랑의 세계관 등이 "하나님적"이고, 시대와 상황에 영합하지 않으면서 상황과 시대를 치열하게 바라보고 사랑해서 작품화한 것 등을 기독교적 요소로 꼽고 있다. 그러면서 "진정 하나님의 정신을 작품화하려고 애쓴 작가였다"고 논평했다. 현 교수는 그 한 글에서 '치열'이란 용어를 6회나 써 가며 황순원 예찬론을 폈지만, 정작 알맹이라 할 수 있는 치열한 기독교정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부 크리스천들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인들인 윤동주, 박목월, 김현승, 정지용 등의 '공통점'이 기독교 신앙인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런지 잘 모르겠다. 더구나 정지용은 천주교도였다. 그러면서 한국 기독교문학은 음악 등 다른 예술분야만큼 꽃을 피우지 못했다든가, 불교문화 배경의 문학은 잘 수용되는데, 기독교 정신의 문학 작품은 그렇지 못하다는 등의 아쉬움을 토로하곤 한다. 



기독교와 문화: 성경은 세상문화의 변혁을 지지하지 않는다


왜 이런 현실이고 현상일까? 

여기서 필자는 다시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해 보려고 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리처드 니버는 기독교와 문화와의 관계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전개하면서 크리스토가 문화를 변혁시키는(to transform) 패러다임을 궁극 목표로 삼고 있다. 문화에는 예술도 문학도 다 포함된다. 


그러나 니버가 여기서 한 가지 모른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것은 성경을 알고 보면, 니버 등이 추구하는 세상 문화의 변혁을 궁극적으로 성경이 지지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변혁'이라면 어떤 변혁 말인가? 세상 문화의 변혁 실험은 신정(神政)왕국을 최대한 구현한 구약 시대에 이미 끝났다. 음악을 포함한 문화와 예술의 모든 실험말이다. 그 결과는 실패인 것이다. 

뭣이라..신정 문화가 실패라고? 그렇다면 하나님이 실패하셨다는 말인가? 물론 하나님께는 실패가 있을 리 없다. 실패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몫인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 신정문화가 성공했다면, 광야 시대의 이스라엘 1세대는 생존했어야 하고, 하다 못해 판관시대나 왕국시대의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나라는 망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개혁이다. 


그렇다면 신정 실험 또는 신정 문화의 실험이 어떻게 실패했는가? 광야시대와 카나안 정복시대인 판관시대, 왕국시대를 두루 거치면서 모든 신정 문화는 결국 우상숭배로 인한 자체 패배 내지 자멸로 끝나고 말며, 그 종국은 포로기와 계시가 없는 중간기였다. 물론 판관시대나 왕국시대, 포로시대 이후에 훌륭한 개혁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결국 또 다시 타락하거나 쇠퇴하는 등 거의 언제나 제한적이었다. 


다만 그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은 훗날 첫 교회를 이루는 극소수의 "남은 무리(the Remnant)"와 메시아였다. 그렇다면, 역대 제국의 신상을 깨어부순 다니엘 환상 속의 '뜬 돌'은 무엇인가? 그것은 메시아 곧 크리스토님을 통한 문화정복이 아니라, 세상에 편만하여 결국 장차 세상을 심판하게 될 복음을 상징하는 것이지, 복음을 통한 세상문화의 개혁이 아니다. 


하나님은 과거 구약시대에 여러 지도자들을 통해 세상을 개혁해 보려고 하셨다. 모쉐나 예슈아(여호수아)가 그러하며, 여러 판관들이 그러했다. 왕국시대에도 대언가(선견자/선지자/예언자)들과 또한 유다의 선한 왕들을 통해 부단한 개혁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종국은 마귀의 유혹으로 인한 지독하게 끈질긴 우상숭배로 인한 나라의 멸망과 포로생활이라는 심판이었다. 포로기 이후에도 신실한 총독을 통한 개혁이 시도되었지만 끝내 계시가 사라져버리는 암흑의 중간기를 맞는다. 이처럼 구약 신정 문화는 사뭇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결론을 말하고 있다. 끝을 간추리면 우상문화가 개혁문화를 이긴 듯한 형국이고 상황이다. 하나님의 희망은 오직 '그루터기'와 뿌리로 비유되는 남은 무리였다.  


이윽고 중간기 끝에 찬란한 메시아 시대가 도래하는데, 메시아 문화는 사회나 세상 문화의 개혁이 아니라, 인간영혼의 개혁이었다. 이 점을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과 제자들, 사도들과 첫 교회인들은 세상 문화의 개혁에 나서지 않았다. 단지 장차 임할 하나님 왕국의 복음을 통해 인간영혼의 변혁을 단행했을 뿐이다. 

만약 예수께서 세상이나 문화의 개혁에 나설 뜻이었다면, 헤로드나 종교지도자들에게 항거하거나 당장 나라를 새롭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 "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고 선언하셨다. 바로 이 점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바로 알지 못해 혼동하고 있다. 


주님의 이 말씀은 훗날 사도들의 말과도 일치한다. 사도 요한은 성령을 통해 이렇게 교훈한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시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의 속에 있지 않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육체의 탐욕과 눈의 탐욕과 삶의 허영-이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세상은 지나가 버립니다. 또한 그것의 탐욕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살아남습니다!" (요한A서=요일 2:15~17. 사역).


보는가? 사도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육체의 탐욕과 눈의 탐욕과 삶의 허영이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해 준다. 여기엔 세상 문화도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개혁할 필요나 있는가?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도움(중재)기도를 했던 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개혁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 영혼들이 불쌍해서 생존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스라엘-유다 문화에서 성전예술을 빼 놓고는 시각예술이 거의 배제되다시피 했던 것은 거의 모든 문화가 우상숭배와 연계되는 탓이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은 철저히 우상을 혐오하고 배제하셨다. 그래서 성경말씀의 보존을 위한 언어문화가 주로 발달했던 것이다. 헤로드 성전을 끝으로 성전음악조차도 살아남지를 않았다. 당대의 성전음악이 어땠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초기 교회에도 문화라고 할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과 공동체 경배문화 뿐이었다. 일부 제자들의 직업문화라고 할 어업도 나중 사라졌고, 고작해야 사도 파울과 그의 벗/제자 아퀼라의 생업이었던 천막 깁기 문화와 그들의 목회사역 문화, 그의 비서이자 의사였던 루카의 의약업 문화, 여성제자였던 뤼디아의 염색 문화가 눈에 띈다. 그리고는 사도들 대다수가 성경을 남긴 글 문화가 전부인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의 소위 '교회사'와 문화사를 장식한 천주교 시대를 우리는 찬란한 기독교문화와 예술이 꽃핀 시기였던처럼 말하곤 한다. 그래서 유렆 대성당 등의 호화로운 천장화와 벽화, 미사 음악 등에 찬탄하곤 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뭔가? 여전히 구약 때 경고된 시각문화를 통한 우상숭배요 성경 진리의 매장과 중세의 암흑시대가 아니던가? 그게 개혁인가?


또 중세 암흑에서 벗어난 루터 개혁의 결과로 신교계 작곡가인 바흐나 핸델 등이 나타나 바로크 음악을 발전시키고 이후로도 멘델스존 같은 신교 음악인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음악예술 또는 문화가 개혁됐는가? 그 후 고전음악은 종교의 틀을 벗어나 오히려 더욱 세속화 일로를 걷지 않았는가? 

천주교 미술이 지배적이던 미술계에서는 고작해야 네덜란드의 신교도 출신인 빈센트 고흐가 있었지만, 그의 미술이 개혁적이었는가? 일부 신교도들도 제작에 동참한 '성화'라는 것이 세상 문화의 개혁을 가져왔는가?    


출판/인쇄 문화를 말한다면, 고대 사본 복사 문화의 집성체하고 할 만한 성경전서가 완성되고, 이후 구텐베르크와 제임즈1세 등을 통해 성경 번역/출판 문화가 발달했지만, 그것이 세속 문화의 개혁을 이루었는가? 생각과는 달리 오로지 참 복음과 성령을 통하여 영혼 구속이 지속돼온 것일 뿐이다. 


교육문화는 어떤가? 중세 대학과 신학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학들이 현재는 거의 전세계에 분포돼 있지만, 이들이 세계 문화 변혁에 기여하고 있는가? 하버드나 프린스턴, 예일대학교 등이 거룩한 사학인가? 오히려 대다수가 타락한 세속 사학이 되지 않았는가? 제대로 된 사람들은 그런 교육을 바탕으로 선교와 전도만 할 뿐이다. 


칼뱅의 정신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세상을 개혁한다며 지상신정왕국주의와 주권주의를 부르짖지만, 고대의 니네베(니느웨)를 비롯해 세상 시스템 속에 신정을 이루려는 시도가 끝까지 성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메시아 자신도 그런 것을 시도하시지 않았다. 

딴 사례는 둘째 치고 역사상 신정문화의 최고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찬란한 문화의 슐로모(솔로몬) 시대도 결국 슐로모 자신의 그지없는 타락과 왕국 분열이라는 비참한 결말을 낳았다. 



뭘 말하는가? 마귀가 한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실상 참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 세상을 굳이 개혁해 보려는 사람들은 세상 영혼들보다는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며, 세상에 속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셨다고 선언한 요한은 동시에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다만 주님 말씀대로 세상에서 구별되어 다만 빛과 소금 역할을 다하며 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만이 자신과 주변을 개혁하며 미래에 한꺼번에 이뤄질 주님의 완전개혁까지 기다리며 그 날을 사모할 뿐이다. 


세상문화를 신자가 나서서 개혁해 보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신자가 세상 문화를 활용하며 살되 그 세속성에서 벗어나(=성별되어) 있는 것이다. 신자의 '땅 밟기' 식 세상 정복 시도가 무위에 그치는 이유가 그것이다. 


따라서 다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그치는 문화예술만이 세상 끝날까지 존속할 뿐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문화인이나 예술인 개인의 하늘 상급으로 연결 될지 어떨 지는 성경의 잣대에 달려 있겠지만.


아브라함 및 롵과 소돔/고모라, 요나와 니네베, 유다의 예루샬렘, 로마의 바티칸, 칼뱅의 제네바, 카이퍼의 암스테르담 치정(治政) 등의 사례에서 보듯 기독교문화가 세상문화를 지배하고 개혁하고 정복하여 성공한 '성시화'의 케이스는 없다. 


다만 동성애의 경우처럼 험한 물결 같은 세속문화의 도전적인 번성 흐름을 종국이 이르기까지 되도록 막아내는 성도의 중재적 선과 복음, 그리고 그 배후에 버티고 섰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 성령의 권능, 그리고 천군천사의 힘만이 존속할 뿐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기독교문화, 기독교예술은 치열한 작가 정신 이전에 성경에 기초한 치열한 기독교 정신 내지 치열한 복음 정신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1. 여기에 관해 필자의 글 '메시지와 이미지'를 읽어 보기 바란다. [본문으로]
  2.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황효식·김상재 목사와 필자와의 웹 논쟁을 구글링하여 참조하기 바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