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이슈/영언(방언)론

주님의 사랑과 방언 (수넴)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감히 간증을 한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많이 미숙한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성도는 어린양의 보혈과 간증(증언)으로 승리합니다!" 라는 말씀을 보며 용기를 내서 저의 체험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 본문 중에서

그동안 우리 모두 기다리던 수넴님의 간증을 드디어 입수하여 여기 올리게 됨을 기뻐 마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무한한 존영을 바칩니다! 수넴님 간증을 보니, 정말 하나님이 그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돌보시나..또 우리가 영적으로 깨기를 얼마나 바라시나를 느끼게 됩니다. 또 이 마지막 때에 티엘티를 놀랍게 크게 들어 쓰심을 절감하게 됩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계 12:11)

감히 간증을 한다는 것이 여러 가지로 많이 미숙한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성도는 어린양의 보혈과 간증(증언)으로 승리합니다!" 라는 말씀을 보며 용기를 내서 저의 체험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특히, 아멘넷의 댓글들을 읽으며.. 이전의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을 보며, 그 분들 보다 더 답답하고 막힌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니 현재도 더 없이 부족하고 미숙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한 걸음씩 인도하시는 주님만을 의지하며 이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저는 모태 적부터 교인으로, 돌아 가신 외조부님은 목사님이시며 친조부모님도 기독교인이십니다. 어려서부터 주중에 학교에 가듯 주일에는 으레 당연히 교회에 갔고, 예수님께서 항상 동행해 주신다고 생각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주 경건한(?) 사람은 아니고, 원래 비판의식이 결여된 좀 둔한 편입니다(^^).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는 보수적인 장로교회였으며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방언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하였고, 은사에 대해서는 잘못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되는 것이며 우리에게 필요하면 주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시사 프로그램 방송을 통하여 은사집회의 모습을 본 이후 방언이나 은사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신앙생활은 하면서도 방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였던 저에게 방언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20여년전, 남편의 미국 대학교 유학생 시절 때에 있었습니다.

다들 어렵고 바쁘며 힘든 기간이었으나 믿음 생활 하는 유학생 부부들이 매주 금요일 저녁에 돌아 가며 각자 집에 모여 구역예배를 드렸습니다. 각 가정의 자녀들도 같이 와서 부모들이 예배를 드리는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시간을 보냈습니다. 좁은 공간에 아이들 노는 소리와 부모들 예배 드리는 소리가 어우러져 지금 생각해 보면 정신이 없었을 것 같은데.. 그 때는 은혜로운 시간이었다고 기억됩니다(^^).

그날 주제가 은사와 방언이었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방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한 듯 부정적인 생각들을 나누었습니다.

구역예배를 마칠 무렵 한 부인이 자신의 체험과 방언의 유익함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하며.. 마무리 기도를 본인이 하기 원한다고 한 후.. 방언으로 한 문장 기도를 하고 그것을 통역하고.. 다시 방언으로 기도하고 통역하고.. 그렇게 한 문장씩 방언과 통역을 번갈아 가며 마무리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방언기도였습니다. 성경에서만 보던, 이전까지 부정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 방언기도가 실제로 제 앞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그 곳에 모인 학생 부부들과 그 자녀들을 축복하는 기도였습니다. 방언기도가 그렇게 은혜롭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결혼 후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남편도 처음 접해 본 방언기도에 무척 놀랐나 봅니다. 그 기도는 이전에 은사집회방송에서 보았던 기도가 아니고 따뜻하게 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기도였습니다. 그 부인을 통하여 그곳에 모인 주님의 자녀들에게 은사와 방언에 대한 편견을 없애 주시기 위한 주님의 배려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없어졌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분들을 보면 부러워 가끔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소원하는 기도는 하였으나, 특별히 더 사모하지는 않았습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에게 필요하다면 주시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지내오다가.. 작년 4월 큰 아이(딸, 현재 대4)가 힘든 과정을 겪으며 기도하던 중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말로는 자신의 어려운 문제에 대한 기도를 하기 전, 아빠의 믿음을 위하여 애통하며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에게 큰 아이는 동기나 친구 같이 모든 문제를 서로 나누며 같이 기도하는 사랑스러운 주님의 자녀입니다. 엄마도 방언으로 기도해 보라며.. 방언을 사모해 보라며 권하는데.. 열심히 기도하지도 않았지만~ 방언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아마 나는 방언을 못하나 보다'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즈음부터 혀에 이상한 느낌이 있어 이것이 무엇인지 좀 의아했었습니다.

올 1월에 우연히 TLT를 알게 되어 아멘넷과 TLT의 글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글들을 접하며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논리정연하게 성경구절을 풀이한 설명과 그 유익함을 읽으며 방언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니 사랑하는 큰 아이가 권하는 유익한 방언을 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사님께서 설명해 주신대로..

"예수님, 저는 지금 예수님을 저의 구주님, 저의 주님으로 시인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되살리신 것을 제 마음으로 믿습니다. (롬 10:9)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롬 10:10)는 성경 말씀을 믿고 의지합니다. 이 말씀대로 저를 구원하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지옥 불못에서 건져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제는 그 대신 저 천국을 소망 삼게 되니 하나님 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 예수님. 제가 이제 주님이 부어주신 성령침례를 따라 예수님의 이름으로(맑 16:17a) 믿음으로 방언을 합니다. 도와 주소서."

하고 기도를 한 후 방언으로 기도하려고 하였으나 처음에는 잘 안 되었습니다.

이튿날 다시 기도 후 조용히 방언을 시도하는데.. 이전부터 있었던 혀의 이상한 느낌이 다시 느껴지며.. 혀가 스스로 움직이는 듯하여.. 혀를 저의 의지가 아닌 혀의 의지(?)로 움직이도록 가만히 맡겼습니다. 그러자 잠시 후 혀가 움직이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나! 이럴 수가? 이것이 과연 방언이란 말인가???
놀랍고도 어리둥절하였는데.. 의심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떠 올리며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부족한 저도 주님께 방언으로 기도를 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눈물이 흐르며..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지금도 벅찬 가슴으로.. 눈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직은 어눌한 발음의 방언이나 방언기도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유창한 발음과 다른 은사도 사모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시 32:8)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빌 3:15)

저의 성품과 저의 모든 것을 저보다 더 잘 아시는 저의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장 합당한 방법으로 한 걸음씩 주님께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갈 길을 가르쳐 주시고 지켜 보며 인도하여 주시는 주님.. 주님의 사랑과 임재하심을 깨달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완전하신 주님,
  의의 길로 저를 인도하시고
  주님만이 저를 다스리시며
  주님 홀로 높임 받으시옵소서.
  주님을 경배하고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