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 글 저런 글

간증-황금어장 (온누리)





지난 번 애독자들의 간증 이후 모처럼, 필명 온누리님 편을 여기 올립니다. 퍽 길기 때문에 간증 1, 2, 3 -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편집했습니다. 온누리님의 삶에 주님이 함께 하신 체험 소개를 통하여, 여러 독자들의 믿음의 간증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온 영광을 주님께~. [티엘티 주]



간증자 머릿글

어떤 분들은 주관적 체험을 자신만 간직하라고 충고하던데, 글쎄요...그렇다면 좀 건조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영적인 부분을 함께 나누는 것도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한다면 유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비평적으로 읽기 보다는 말씀에 비춰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열린 마음으로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간증 1    
밝은 빛과 지옥 그리고...


30년 전 불과 4-5개월 사이에 체험한 이야기입니다. 간혹 개인에게나 몇이 있는 자리에서는 간증을 했었지만 공개적으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자랑거리도 아니요 내세울 것도 없는 자의 개인적 체험이기에, 나이가 들수록 말하기가 퍽 조심스럽더군요.

제 신앙이력부터 간략하게 적어 봅니다.
외조부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예수님을 믿었지만, 시 오 리 안에는 교회가 없었고 게다가 가족도 아무도 믿지 않아 교회 출석을 못하고 있다가 중학교를 도회지에서 다니면서부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믿음도 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그렇게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를 다녔습니다. 군대 가서 세례를 받았지만 믿음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조차도 잘 몰랐습니다. 군대란 곳이, 세례 실적 쌓기라도 하듯 아무에게나 세례를 주더군요. 그 틈에 저도 받은 셈이지요. 그러니 교회 출석인들 제대로 했겠습니까.

제대하고 지방에 1년 여 있다가 서울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고, 마침 하숙을 주님을 믿는 가정에서 하게 됨에 따라 그동안 잘 나가지 않던 교회도 다니게 되었습니다만, 간증서적들을 읽으면서 "아! 하나님이 살아계신가 보구나"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저를 주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새벽기도와 빛

1979년 10월 20일 무렵, 그러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흉탄에 쓰러지기 며칠 전이었지요. 새벽기도라고는 고등학교 때 두어 번 나가고, 그 뒤로는 한 번도 안 나가던 제가 새벽기도를 다 나갔습니다.

교회 정문이 모서리에 있었는데, 양쪽 모서리 기둥보다 키가 더 큰 시커먼 두 놈이 서 있더군요. 2미터도 넘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다가가니까 양쪽으로 부리나케 도망을 가는데 정말 바람처럼 사라지더라고요.

발자국 소리도 안 나고...좀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분별력이 전혀 없는 저로서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새벽기도가 끝나고 작은 전구 하나만 켜 놓고 어두컴컴한 가운데서 다들 열심히 개인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기도를 했지요.

     "주님. 저도 성령 주십시오."

남들이 예수 믿으면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무작정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남들이 들을 세라 목소리도 작게 "주님, 저도 성령 주십시오"라고 딱 한 번 기도했는데 그만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빛이 나타났습니다. (어디서 비춰 오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온통 빛 천지였습니다. 저도 없고 다른 아무 것도 없는 그야말로 빛만 보였습니다. 빛이 어찌나 밝은지 표현이 불가능합니다. 햇빛보다 만 배나 밝다고 해야 하나...거기에다 그지 없이 투명했습니다.

빛을 보는 순간 저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엄위롭고 강렬하고 얼마나 두려운지 지금도 필설로는 형언키 어렵습니다. 경외감이 넘쳐 흘렀습니다. (정확히 2초를 넘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심장이 멎어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 순간 그 빛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이상했습니다.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더군요.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 만물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한 열흘 정도는...

그 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을 접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임재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은 빛 가운데 거하시기에 우리가 볼 수도 없고, 보면 죽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빛을 보고서도 죽을 것 같았는데...우리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고집 세고 더디 믿는 제게 그런 체험을 하게 하신 주님의 심정을 세월이 지나서야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대단한 존재인 줄로 착각했습니다. 저 같은 놈한테는 그런 강렬한 체험이 있어야 했기에 그러셨다는 걸 깨달은 것은 햇수가 좀 지났을 때였습니다.


방언과 향기

그 뒤 한 달이 채 안 된-20여일째인-날 새벽기도 시간에 기도하는 중에 입에서 이상한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몇 마디 나오고는 그쳤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후 집에서 기도를 하는데 방언이 터졌습니다.  
저는 당시 방언을 시작하기 위해 별로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무슨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는 방언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던 교회였습니다.

하숙집 집사님이 방언을 시작하게 된 걸 축하해 주더군요. 그래서 더 열심히 방언기도를 했답니다. 물론 개인기도 시간에만... 처음에는 유창한 방언이 아니고 마치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하며 말을 익혀 가듯 서툴게 나오더군요. 한 마디가 두 마디가 되고 세 마디가 되고...그러면서 점차 방언이 익숙하게 나오더라고요. 제법 문장을 이루어 말하듯이 말입니다.
 
(지금은 각종 방언을 아주 유창하게 합니다. 상황에 따라선 소리도 내지 않고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버스 안이나 주변에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렇게 합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도 또 이상한 체험을 했습니다. 목구멍에서 향기가 올라왔습니다. 달콤하기 그지 없고 무척 향기로웠습니다. 세상에서 그런 향기를 맡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목에서 입으로 코로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갔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한 보름간 간헐적으로 향기가 나더니 그치더군요.

(세월이 좀 지나고 소명을 확인했을 때...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곧 복음의 향기-생명의 향기를 온누리에 흩날리라는 주님의 뜻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지옥 속을 들여다 보다


10. 26 사태 이후 어수선한 정국에다 전두환 등이 12. 12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1980년 정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1월 5일경, 밤 12시 30분까지 성경과 신앙서적을 읽다가 잠이 쏟아져 잠시 기도하고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꼭 자다가 오늘 밤 죽을 것만 같더군요. 
     '이상하네...아직 30도 안 된 나이이고 아주 건강한 내가 자다가 죽는다는 마음이 왜 자꾸 들까?'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전혀 두렵지가 않더군요. 이미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셔 들였고 나름 대로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회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아무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자다가 죽을 것만 같아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잠은 억수 같이 쏟아지는데도 말입니다.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자다가 꼭 죽을 것만 같습니다. 죽으면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 나의 주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그러자 죽는다는 마음이 사라지면서 편히 잠이 들더군요. 아~~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옥이 보이더군요. 처음엔 그것이 지옥인 지 몰랐습니다. 맨 앞 쪽에 있는 것들이 머리가 있고 몸통과 팔 다리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직감적으로 사람들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광경은 실로 무시무시했습니다. 온통 시커멓고 붉은 불꽃만 피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다 내 쪽을 바라 보면서 풀쩍풀쩍 뛰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제 자리에 서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뜨거워 견딜 수 없어 한없이 고통스러워하면서, 온 사지를 흔들며 풀쩍풀쩍 뛰고 있더군요. 마치 고고 장에서 많은 사람이 빽빽이 들어차 어두컴컴한 불빛 아래서 광란의 춤을 추듯이 말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불꽃 가운데서 고통하는 자들의 숫자였습니다. 멀리 뒤쪽을 보니까 마치 사람들의 머리가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아 보였습니다. 끝이 안 보였습니다. 지평선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좌우가 안 보였습니다. 너무너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새까맣게 탄 모습으로 고통 가운데 울부짖으며 뛰고 있었습니다. (소리는 안 들렸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옥에 있는 영혼들의 수가 수 억 수십 억도 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지옥에 대한 간증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고 성경을 통해 지옥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지옥이 그런 곳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지옥은 어둠과 붉은 불꽃, 시커멓게 탄 영혼들의 절규하는 모습 - 그 세 가지 이상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모래알 같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 머리 위로 시뻘건 불꽃이 풀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좀 특이한 것은 지옥에 있는 자들과 저 사이에 빈 공간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자들은 그 공간을 전혀 침범치 못하고 마치 일렬 횡대로 선 것 같이 끝없이 좌우로 펼쳐져 보이더군 요. 뒤로도 끝이 없이 사람들이 고통 당하고 있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한결 같은 고통 가운데 있는 것을 생생히 목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 마침 어떤 젊은 여자(30대 초중반)가 지옥으로 떨어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 참혹한 광경을 목도한 저로서는 그 여자가 거기 빠지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 여자의 팔을 붙들고 얼른 내 뒤로 제쳤습니다.

그 때 곧바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아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저 지옥에 갈 것이 아닌가!'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40분이었습니다. 기도하고 잠이 든 시각이 대략 12시 35분 경이었는데... 그 5분 사이에 엄청난 일을 경험한 것이었습니다. 깨어나서도 그것이 생시 같았습니다.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그 충격이 장장 6개월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차를 타고 가다가도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시도 때도 없이 그 광경이 선명히 눈앞에 펼쳐지곤 했습니다.

(표현의 한계로 이 정도로 글을 적지만, 저는 체험 당시 쇼크로 심장마비를 일으킬 뻔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 후 심장병이 생겨 십 수 년을 고생했습니다. 지금은 건강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기까지 주님은 불같은 시련의 용광로에서 저를 연단하시더군요.)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 안 믿으면 불못에 간다'는 사실을...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이 바뀌었습니다.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불쌍해서 미칠 지경이었다면 좀 과장된 표현이고, 마음이 불 붙는 것 같아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지옥 꿈을 꾸게 하신 것은-입신해서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저를 복음 전하는 자로 쓰시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고 고백한 바울처럼 저도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자 또 다시 다짐합니다.)


고향집에 전도하다

그 뒤 한 보름 지나서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고향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예사로 생각하고 있는데 또 그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쓸 데 없는 생각이라 여겨 무시했습니다.

세 번째 그 마음이 들자, 그제는 이상하게 생각됐습니다. 한  열흘 남짓이면 구정(=설날) 때 고향에 갈 터인데, 지금 왜 가고 싶은 마음이 들까... 길이 천 리인데...차비도 꽤 들고...그러나 마음은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3일 휴가계를 내었더니 물어 보지도 않고 다녀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을 전도했습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기에 큰아버지를 전도했습니다. 워낙 완고하신 분이라 목침에 맞을 각오로 마음을 굳게 먹고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경도 선물하고 '예수님 영접 기도문'도 적어 드렸습니다.

서울에 올라 와서 한 열흘 뒤 구정에 다시 고향집을 찾았습니다. 아, 놀랍게도 가족이 다들 교회 나간다고 하더군요! 생긴 지 몇 해 안 되는 아랫 마을 장로교회에 출석한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큰아버지의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적어 드린 예수님 영접 기도문을 읽는데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까 '아 이것이 내가 살 길이구나' 하고 믿어지면서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는 것입니다.

교회 문턱에는 가 본 일도 없는 그 분-지역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좀 부정적인 면으로 유명한 분이었음-이 바로 그 다음 주일, 의관을 정제하고 즉시 교회에 나갔으니, 온 동네와 아랫 마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두 어 번 나가시다가 주변 시선이 좀 뭐해서 그랬던지. 수십 리 밖에 있는 교회에 버스 타고 다니셨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설을 쇠고 삼월 달이 되었을 적에 그만 큰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병을 앓고 계셨는데...전보를 받고 울고 있는 제게 성령님은 감동을 주시더라구요. '너희 큰아버지는 구원 받았느니라, 그러니 슬퍼하지 말아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더군요..

저도 신앙이 어리고 잘 모르던 초신자라, 장례식에 가서 동생들한테 임종 때 상황을 물어 보니까, 임종 두 시간 전까지 엄청난 고통 가운데서 몸부림치시다가 "내가 두 시간 뒤에는 잘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평온을 되찾고 편안히 숨을 쉬다가 정말 두 시간 후 잠을 자듯 고요히 돌아 가셨다고 하더군요.


가두전도를 나서다

저는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복음은 그 어떤 죄인도 구원하는 능력이 있구나.'

그 이후로도 하나님은 예수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갚을 길은 없고, 멸망으로 치닫는 영혼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불 타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도지를 12만장 정도 자비로 찍었습니다. A4 양면에 빼곡이, 아주 구체적으로 복음을 소개했습니다. 예수님 영접기도문도 적었습니다. 인쇄된 전도지를 붙들고 다니며 눈물로 적시기도 하고 땀으로 전도지가 범벅되기도 했습니다.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전도지로 복음을 전하오니 부디 이 전도지를 통하여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게 하소서!' '저 영혼들을 제게 붙이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저를 데려 가소서!'

울부짖으며 정말 허리가 끊어지리만큼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루에 많게는 1500장, 적게는 300장 정도 돌렸습니다. 첨엔 좀 부끄러운 마음도 없잖아 있었으나,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강권했습니다.

전도지를 돌리며 담대히 외쳤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주로 지하철 1, 2호선에서, 그리고 영등포역에서 많이 전도했습니다. 서울역 청량리역 강남터미널에서도 전했습니다. 경부선, 호남선, 경춘선 등등을 통해 그 전도지가 전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주머니에 넣거나 가방에 넣는 모습을 수없이 봤거든요. 제가 직접 돌린 전도지가 아마도 10만장 가까이 될 것입니다.
옆에서 (같은 직장 믿는 직원) 조금 거들어 준 것까지 합하면....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십시오"란 말은 얼추 20만 번 정도 했습니다.

1500장 정도 전도지를 돌릴 때는 지친 나머지 입이 굳어져 말이 안 나왔습니다. "예수..." 하고는 전도지를 돌렸습니다.

물론 전도지를 준다고 다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세 명에 한 명 꼴로 받으니 20만 번 정도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십시오" 라는 말을 한 셈이지요.
놀라운 것은 땅바닥에 버려지는 전도지는 100 장에 한 두 장이었다는 것입니다. 버리지 말고 집에 갖고 가서 가족들도 읽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주님이 그것까지 세밀히 응답하시더군요.

그리고 전도지를 읽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님은 애를 업고 음료수를 사다가 주면서 "고생하신다"고 격려할 때 참 힘이 났습니다. (그런 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때로는 핍박도 많이 받았습니다. 욕도 많이 얻어 먹었습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빗자루로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 죄인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기도하고 성령을 의지하여 복음을 전하면, 지금도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주님의 마음을 품고 복음을 전해 보십시오. 구원의 역사가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 전하기는 내 소관이 아니다"고 치부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이 구령의 열정과 복음전함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전도하는 제게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 같은 응답을 여러 번 주셨습니다. 다음 기회에 간증하겠습니다.


간증 2   다양한 기도 응답들


장마비가 멎다

[ 다음 간증은 위 글 마지막 두 구절에 대한 약속의 이행으로 약 5개월이 지난 2009년 3월 29일 오후, 적어 본 글입니다. 
간증은 모름지기 참고로만 해야 합니다. 성도의 친교 차원에서 받은 바 은혜를 나누는 것인 만큼, 지나친 생각이나 억측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으로 분별하여 좋은 점이 있다면 헤아려 취하시기 바랍니다. ]
 
전도를 열심히 하던 그 해 여름. 여름성경학교가 열리던 장마철이었습니다. 비가 참 많이도 왔습니다. 그 해는 장마철이 늦게 찾아 왔습니다. 당시 주일학교 부장이던 저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 어린이들이 성경학교 출석하는데 비를 맞지 않도록 교회를 오가는 시간에는 비가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린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어린이들이 교회 못 나올 것 같은 걱정이 들어서 였습니다.

3박 4일 동안 하루에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 이렇게 성경학교 일정에 따라 교회당에서나 야외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집에서 오가는 회수가 나흘간 대략 30회는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비 한방울 안 맞았습니다! 비가 억수 같이 오다가도 이상하게 그 시간(집회에 오는 시간 또 집으로 가는 시간)이 되면 비가 뚝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으니까요. 믿고 기도했으니 집에서 거리가 꽤 먼데도 그냥 다녔습니다.
 
성경학교가 끝나고 학습 평가시간에 교사들이 다들 놀라더군요. 제가 그렇게 해 주십사고 기도했노라고 밝혔습니다. 눈치가 '에이! 설마 기도해서 그럴라고...'하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통해 기도에 더욱 힘이 생기더군요.

그 해 8월 하순 경,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데 멀리 지방에 있는 동생이 전화가 왔습니다.

"형님, 큰일났습니다."
"뭐가?"
"아! 지금 엄청난 태풍이 남해안으로 상륙하고 있는데,
시골 어머니 집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몇 해 전에 태풍의 피해를 겪었던 동생인지라, 더욱 걱정이 되었던 것 같았습니다.저는 태연하게 "뭐 그리 걱정하노? 기도하면 되지." 하고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혼자 계신 어머니 집 쪽으로 엄청난 위력의 태풍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태풍이 소멸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고는 태풍을 향해 명령을 내렸습니다. (두 손을 들고서. 약간은 자신이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태풍은 물러 갈지어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다시 일을 했습니다
 
한 30-40분 지나서 동생이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이 좀 흥분된 듯한 목소리로 "형님, 대단하십니다. 형님이 '기도하면 되지' 한 그 시간 후로 티비를 보니까 태풍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대한해협으로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마치 중계방송을 하듯 평소와 다르게 급히 말을 하더군요. "내가 니 전화 받고 나서 기도했다." 그러고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태풍이 제가 기도한 그 시간에 바로 방향을 틀었다고 하더군요.
기상청의 예상진로와는 전혀 다르게 갑자기 거의 100-120도로 진로수정을 한 것이지요. 지난 여름성경학교 때 주님이 일기도 주장하신다는 걸 체험했기에 믿고 기도했는데, 이번에도 응답해 주셨습니다. 시골에 혼자 계신 어머니를 걱정하는 아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고 믿었습니다.
 

주일학교 증가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다음 달 9월 첫 주였습니다. 8월 마지막 주일에 주일하교 출석이 60명을 넘었더군요(연초에는 40명 내외). 주일을 앞두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번 주에 70명 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게 목회 사명이 있는 줄로 알겠습니다."

응답이 없으면 다니던 신학교(야간)도 그만 둘 작정이었습니다. 소명의식도 약했고 주경야독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전 해에는 심장이 안 좋아 응급실에 두 번이나 실려 가기도 했습니다. 심신이 지치고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웠던 때였습니다.
 
첫 주에 보니까 70명이 넘었더군요.
'하나님 응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렇게 기도는 했지만
우연히 그렇게 많이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다시 기도를 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80명 나오게 해 주세요. 그러면 제게 사명이 있는 줄로 알고 어렵더라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아...그 다음 주(그러니까 그 해 9월 둘째 주일) 81명이 나왔더군요. 여름성경학교 때도 이 정도로 안 나왔는데...하면서 기도응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놈이 좀 지나치게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90명은 어렵다고 판단하고, 한 번 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만 한 번만 더 응답해 주십시오. 오는 주일에는 90명이 넘도록 도와 주십시오. 다시는 사명이 있니없니 소리 안 하고 충성하겠습니다.'

그 주일에 92명이 출석을 했더군요. 저의 기도를 들어시는 주님께 감격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는 교사들에게 기도의 내용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주님과 저만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주님은 믿음이 부족하고 연약한 저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들어 주셨습니다. 그 후로는 소명의식과 사명감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성경 읽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주님은 복음전도의 비전을 품도록 해 주셨습니다. 욕심이 아닌 믿음으로 주님의 영광과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을 체험케 하십니다.
담대하게 세상을 살면서 주님의 일을 하라고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근심 걱정 붙들어 매 두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자들입니다. 주님이 확실히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담대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우리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미 이겼고, 이기고 있고, 앞으로도...)
 
앞으로 제게 주신 비전도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을 의지하여 그 분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작은 사역을 하고 있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영광을 오직 성삼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살아 오면서 많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어찌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간증의 목적에 맞게 극히 일부만 올립니다. 넓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증 3

시신을 돌보다

늦여름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텐데...더위도 식힐 겸, 군대 있을 때(졸병 시절), 경험담 하나 올립니다(30 하고도 수 년도 더 되었군요).

비는 부슬부슬 오는데...초병 교대시간이 되어 병원 영안실로 갔습니다. (야전병원(Field Hospital) 환자 입퇴원 후송을 담당하는 보직을 맡았었는데 가끔 영안실 보초를 섰었습니다)

고참이 시신을 인수 인계하면서 좀 고약한 짓을 하더군요. 덮어 놓은 천을 벗기고 시신 상태를 하나하나 확인시켜 주면서 왈, "졸다가 고양이가 파 먹으면, (원색적으로-예전 군대가 좀 그랬습니다) 너는 영창 간다. 정신 똑 바로 차리고 지켜라!"

오밤중에 시신을 지키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겼습니다.

     '어제 낮에 응급처치를 받고 앰블런스에 싣고 서울 창동 후송병원으로 가던 중 죽었는데, 후송병원에 떠 넘기려고 창동까지 갔는데도 죽었다고 안 받아 주더니 이제 이 비 오는 밤에 보초까지 서누나.'

가다가 죽은 그 일병이 좀은 원망스럽기도 하고 젊은 나이에 죽은 것이 불쌍하기도 하고... 아무튼 그랬습니다. 두 시간이 그 때처럼 길게 느껴진 적이 없습니다.
시신 옆에 있는 탁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다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자는 중에 섬찟한 느낌이 들어 눈을 떠 보니, 아~ 고양이가 영안실에 들어 온 것이 아닙니까! 내가 일어서니까 잽싸게 도망을 가더군요.

다시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영창 가는 게 싫었거든요. 얼굴과 손발이 다 무사(?)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탁자에 기대어 잠을 청했지만 (시간이 워낙 안 가서리-시계도 없었지만) 정신이 말동말똥해져서 잠이 안 오는 것이었습니다. 가끔씩 무서움끼가 엄습해 오기도 하고요.

드디어 비에 젖은 군화 소리가 저벅저벅 들려 왔습니다. 신참이 교대하러 오더군요. 그런데 이 놈이 꾸물거리다 대충 30분은 더 늦게 온 것이었습니다. 그 놈은 시계를 차고 있었기에 알 수가 있었지요.

아, 그런데 이 녀석이 영안실 안으로는 죽어도 안 들어오려고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시신 인수 인계를 해야 하는데, 영 막무가내였습니다. 고양이를 봤기에 대충 설명을 하면서 훼손되면 영창 가니까 확인을 하라고 했더니 그냥 보초도 안 서고 도망을 가 버리더군요.
키가 큰 데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눈이 컸던 그 후임병은 겁이 유달리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놈 덕분에 '연짱', 두 시간 더 보초를 섰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 생각하면 웃음을 짓게 됩니다만.

수많은 인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 당시에는 죽음에 대해 성경적인 이해를 못했기에 젊은 죽음이 불쌍하기만 했을 뿐, 죽음 후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질 못 했습니다. 그 뒤로도 주검과 홀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만, 생각의 진전은 없었습니다.

말씀을 알고 나서는 성도의 죽음이 귀한 것인 줄 알게 되었고 저의 기도 가운데 임종을 맞는 경우도 보면서 성도들이 죽을 때는 천사들이 데리러 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황금어장

젊을 때부터 여러 죽음을 지켜 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세월이 지나고 보니).
믿음도 사랑도 아주 희미하던 때라, 입원한 환자들(대략 300명)을 따듯하게 대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니다. 34개월 복무하는 동안 병원을 거쳐 간 환자가 대략 만 명은 되었던 것 같은데 복음을 전하기는 커녕 의무감으로 대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병원은 황금어장이었습니다. 아침 저녁 병실을 돌면서 점호를 하고 소위 '끝발' 좋던 등록과에 근무하면서 폼만 잡았지, 사랑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에 주님은 환자를 돌보는 병원사역을 하게 하셨습니다. 중풍, 뇌질환 등 대개가 중증환자들입니다. 눈만 껌벅이는 환우들도 여럿 있습니다.

주님께 황금어장을 주십사고 기도를 했더니, 병원 사역을 허락하셨습니다. 일반 목회(비록 집에서 예배드리지만)와 겸해서 하기에 별 어려움은 없습니다만, 어떤 분의 조언 대로 기도가 많이 필요한 사역인 것 같습니다. 전도해서 나오는 초신자가 대부분이라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작년 여름 처음 시작할 때는 대 여섯 명 나오다가 요즘은 삼 사십 명 출석합니다. 주문한 빵을 주일 오후 예배 후에 나누면서 친교도 갖습니다. 병실을 돌면서 전도하고 환우들을 위해 기도도 해 줍니다.

자비량으로 사역을 하기에 조금은 힘이 듭니다. 어떨 때는 왜 하필 주님이 내게 이런 사역을 맡기시는가 하고 약간의 투정을 부릴 때도 있지만, 주님이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심에 너무나 황송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심신이 지쳐 있는 환우들이라 그런지 복음전도의 열매가 일반인들에 비해 많이 나타나는 편입니다. 황금어장! 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응답이었지만,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사역을 감당코자 하고 있답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수고를 주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일할지라도 나중에 주님은 하늘의 상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땅에서 유명하다고 해서 하늘에서도 다 유명한 것은 아닙니다. 땅에서 자기 상을 다 받고 자기가 영광을 다 누리면 하늘에서는 상이 없습니다.

이 시대를 한 번 돌아 보십시오. 잔치의 상석에 앉으려고 하는 지도자들이 없는지...주님만 높여 드리고 나는 낮아지고 주님만 나타나게 하시고
나는 십자가 뒤에 감추는 그런 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주님은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종들도 많은 줄 압니다. 제 눈에는 대부분 그런 분들만 보입니다. 그 중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주님의 나라를 허무는 자들은 단호히 비판하고 책망해야겠지만, 사람의 연약과 분별의 부족으로 야기되는 작은 허물들은 덮어 주고 서로 사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간증 1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지끔껏 살아 오면서 수십 만 명에게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십시오" 하며 전도를 했습니다. 저의 복음전도를 통해 구원 받은 자가 있음을 주님은 알게 해 주셨습니다. 얼마인지는 지금은 모르나 하늘나라 가면 알게 해 주실 것을 믿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려고 말씀과 기도에 착념하며 애쓰고자 합니다.

위하여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 주님이 맡기신 직임을 성령의 나타나심(은사)으로써 더욱 잘 감당하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이런 글 저런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은 낡고 우리는 새로워라  (8) 2010.01.01
야망의 여신상?  (0) 2009.09.29
나는 왜 '순복음'을 싫어하는가?  (21) 2009.07.30
이사 후기  (2) 2009.07.19
TLT 웹사이트 구축과 관련하여 (램프)  (18) 2009.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