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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후기

      사진은 본문 내용과는 직접 무관함

최근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개인 정황을 일일이 밝힐 필요를 구태여 느끼지 않는데도 이사 얘기를 꺼내는 것은 느낀 바가 많아서다.

이사한 주된 까닭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딸을 위하여. 전 집에선 차로 약 10분거리..알고 보면 거기가 거기다. 그러나 딸의 학교가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

새 집은 이전 집보다 절대 공간이 좁은 데다 평소 늘 애방(愛訪)하던 바닷가 공원도 자연히 자주 들르지 못하게 돼 적지아니 아쉽지만..여러 모로 좋은 점들도 많다.
우선 더 시원하고 더 따뜻해서 좋다. 가장 좋은 점은, 아래 층에 사는 주인댁이 점잖고도 자상한 한국인 장로/권사님 부부인 데다 뒤뜰의 싱그러운 채소를 맘대로 먹을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는 점. 그리고 깨끗하고 건강한 맨 마룻바닥을 그냥 쓸 수 있게 됐다는 점 등 여러 가지다.

대체로 landlord(임대주/집주인)들은 순전히 발소리 때문에 위층에서 마룻바닥이 아닌 카핕을 쓰기를 바라는 탓에 tenant(입주자/세입자)들 특히 한인 세입자들은 싫든 좋든 늘 먼지가 끼기 쉬운 카핕을 써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카핕은 겨울철에 따스하고 부드럽긴 하지만, 온갖 호흡기 질환과 특히 어린이 아토피 피부염의 주요인의 하나다.

더구나 이전 집의 회색 카핕은 가정용이 아니라 가장 값이 싸고 얇은 상업용이었다. 너무나 까칠한 섬유여서, 슬쩍 쓸리기만 해도 피부에 상처가 나고, 잠시 무릎만 꿇거나 손을 짚어도 금방 살갗이 따끔거려 그 상태로 오래 못 견뎠다. 그렇다고 남의 집에다 내 돈으로 새 카핕을 사 깔기도 그렇다. 먼지는 한정 없이 쌓이고 풀풀 날려, 잦은 진공청소가 지겨울 정도였다. 그런 곳에서 약 8년을 살았다.

한국인 임대주들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미국 건물법을 좀체 지키지 않기 때문. 이 글은 글로써 그들에게 보복감을 표명하겠다는 게 아니라 공공연한 '비밀'을 다들 좀 훤히 알고 느끼면서 뉘우치고 지내자는 취지에서 쓴다. 그러나 3류식 언론 고발 보도감을 만들어 줄 생각은 없다.  

이전 집은 전형적인 듀플렉스형 패밀리 하우스였다. 계단이 높고 정확하게 2층 겸 3층인 공간을 차지한 우리는 렌트(방세)를 꼬박꼬박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불했다. 그런데 우리가 거주한 동안 허름한 초기의 대문 페인팅조차 한 번 새로 해 주는 법이 없어 여기저기 칠이 벗겨진 대문만 보면, 과장 않고 가히 빈민촌이나 다름 없는 형상이었다. 생각 같으면 냉큼 페인트를 사다가 직접 칠하고 싶었지만 전문인이 아니어서 부적절한 행동이다. 

우리가 쓰는 옆뜰 쪽으로는 지붕 하수 처리가 되지 않아, 여름이나 겨울이나, 비나 눈이 왔다면 으레 폭포 같은 물줄기가 쏟아지면서 옆뜰 거의 전체가 완전히 물바다 아니면 얼음바다가 되곤 했다. 모처럼 찾아 온 손님들에겐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주인 댁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니 할 탓이다"라는 반응 뿐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게 주인 할 탓이지 왜 내 할 탓인가!

지붕도 싸구려 일꾼들을 데려다 어떻게 손을 봤는지 폭풍이 불 때마다 거인이 지붕 위를 거닐 듯 바윗덩어리 같은 게 쿵쾅 뚝딱 거리는 소리가 나서 잠도 못 잘 뿐더러 기왓장이 그냥 굴러 땅바닥으로 떨어지기가 일쑤였다. 거기 누가, 지나던 행인이 정수리나 목줄기를 맞고 뇌진탕 또는 심장발작이라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 건가? 다 보상할 텐가?     

늘 싸구려 일꾼들만 골라 쓰는 탓에 여기저기 히팅도 전력 공급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 우리 가족은 여러 해 전부터 중앙 냉난방 시설은 전혀 쓰지 않고 선풍기/난로/전기장판/전기담요 등 저렴한 온방기구만 여러 대 사다 썼다.
어른이나 애들이나 여름엔 더운 대로, 겨울엔 추운 대로 그럭저럭 견디며 살아 왔다. 웬만한 환경은 견뎌내는 전천후 기질로 자동훈련된 셈이다.
 
엉터리 일꾼들이 늘 잘못 손 보는 중앙 시스템은 거의 전혀 효과도 없는 데다, 썼다면 한 달에 300달러 이상의 냉/난방비만 나가 결국 우리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주침실(매스터 베드룸)은 입구의 전기 콘센트가 죽어 있는 데다 "현재로선 고치기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초기부터 8년간 밤엔 등 스위치를 따로 찾아 켜야 하는 등 방 출입에도 매번 불편을 겪어야 했다.
상수도 시스템도 어떻게 해 놓았는지, 몇 년 전부터 위층에서 동시에 쓸 경우 아래층에서는 개오줌 분량의 물만 흘러 나오곤 했다.

게다가 주인집 아들이 스트레스 해소 삼아 치는 하고한 날 마구 두들겨 대는 드럼소리는 입주자가 "이해해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주인집 아들에 관해서는 우리가 이해할 만큼 이해했다. 어릴 적부터 자주 체형을 받고 자라 정신불안정 등의 고통을 겪었고, 무엇보다 온 가족이 거듭나지 못한 불쌍한 영혼들이다. 주인댁은 천주교 집안이며..한 명은 신교에서 구교로 역개종했다. 처음 몇 해는 위하여 기도도 많이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딴 건 다 참아도, 드럼소리는..못 참는다.
음량이 100 데시블을 훨씬 넘는 폭타(爆打)의 굉음을 누군들 어떻게 맨날 견디나? 몇 년 동안 강제로 들어야 했던 그 지긋지긋한 드럼소리를 이제 새집에선 안 듣게 된 게 무엇보다 감사한 일이며..우리 식구로선 심리적/정신적으로 큰 해소다. 그 아들이 스트레스 해소로 쳐 댄 게 우리 가족은 고스란히 스트레스요, 정서적/정신적 고문이었던 것이었다.
한 번도 주인댁을 고발한 적은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잔소리를 곁들이면, 대다수 한국교회나 한인교회는 주일마다 집회 때마다 쳐 대는 드럼소리의 자제나 예술적 연주에 관한 배려가 전혀 없다! 미국교회의 드러머들은 그렇게 폭타하지 않는다. 드럼의 예술 주법에 관한 요청이 있다면, 나의 미국인 친구인 전문 드러머에 의한 세미나를 배려해 주고 싶은 생각까지 있다.  

이런 점들에 대하여 주인 댁에 불평을 표하노라면, 그쪽에서는 "댁은 교인이라면서 사랑이 없네요"라고 주장한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런 소리를 하기란 더 쉬운가 보다. 주인댁에서는 현재도 미국 건축법 상으로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 집은 현 주인댁이 영구 거주하면서 임대나 해야지, 그동안 키워 온 구조를 완전히 까 부수고 뒤집지 않는 이상 딴 사람에게 팔 수도 없게 돼 있다. 

주인댁에선 우리가 떠나게 되자 적당히 내부수리를 해서 훨씬 더 높은 렌트로 임대할 생각인가 본데, 과연 누가 맨날 드럼소리를 듣고 견뎌 줄 지가 궁금하다. 온 가족이 청각장애자가 아니고서야.

한인 임대주들은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눈 앞의 이익만 챙기겠다는 짧은 식견과 짧은 시각을 버려야 한다.

성경 교훈대로 진심으로 그동안의 주인댁들을 축복하며 앞날도 잘 되길 바라지만, 자신이 잘 되길 바라는 만큼 세입자의 기본적인 인권과 편안하게 살 권리부터 적극 고려하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만큼 남 생각도 해 주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