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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사복음서

[요 8:44-45] 갈림길과 정체성



요한복음서 8'44-45 (사역)
 
    "그대들은 그대들의 아비 마귀의 것이니, 그대들 역시 아비의 욕심대로 하려 하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소. 그가 진리에 머물지 않는 것은 진리가 그 속에 없기 떄문이라오.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제 것 갖고 말하니, 그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오. 그런데 내가 참(=진리)을 말해 주니까 그대들은 나를 믿지 않는구려." 
 



흔히, 사람들이 정체성 또는 아이덴티티란 것을 논합니다. 내가 과연 누구냐-Who am I?-는 것이죠. 내가 무엇이냐-What am I?- 보다 더 본질적인 물음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공적인 대화를 할 때, 자기 입장과 주견을 강조하느라 자신을 "잊어버리는" 상황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자연히 그 말을 뒷받침할 배경이 궁금해지거나 말과 입장의 중요한 바탕으로 요구되고, 거기 응하여 제시하게 되는 것이 자기정체성입니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신분으로 요약되기도 합니다. 아이덴티티는 I.D.로 줄어, 신분증을 가리킵니다. 또, 정체성은 자신이 소속된 공동집단 또는 거기서 비롯되는 '뿌리의식'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은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를 자주 겪습니다. 한겨레의 피를 나눈 미국의 한국인 2,3..세가 자신이 본디 한국인임을 잊고 미국인으로만 지내다 보면, 언젠가 정체성 위기를 맞을 때가 꼭 찾아옵니다.   
얼굴 모습은 분명 아시안인데, 아시안 고유 언어를 하지 못할 경우, 자타가 정체성을 묻게 되곤 하지요. 이어서 으레 당혹과 좌절감을 맛보며, 더 나아가 자학과 원망이 잇따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와는 아주 다른..아니, 세상 정체성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정체성을 우리에게 묻습니다. 크게 뭉뚱그려 묻는다면, 내가 하나님과 마귀 -어느 쪽에 속해 있냐는 것이지요. 누구에게 더 소속감(a sense of belonging)을 느끼냐..는 것, 아주 중대사안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 생애 최대 사안의 하나이죠.

독자는..어느 쪽입니까?
님은 지금, 하나님과 마귀 - 어느 쪽에 속해 있나요..?
잘 모릅니까? 그렇다면 큰 일이죠!

현대인들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바쁜 루틴/일상 속에서 자주 자신을 잊어 버리고 정체성을 몰각하는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의 근본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독자인 님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님의 뿌리의식은 어디에 두고 있나요?

사람의 근원적이고 가장 본질적인 정체성은 자기 속사람 곧 영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 영이 지금 어디, 누구에게 속해 있냐는 물음이 중요한 거죠.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본래 하나님께 속해 있었습니다. 아담의 본질인 영을 비롯한 전존재가 그 분의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사람을 만드시고 숨을 불어 넣어 생령(a living spirit)이 되게 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우리의 주인이셨죠.

하나님의 것-그것이 본래 우리의 참 정체성이었습니다! 원숭이의 후손됨이 아니었죠.

그러나 범죄한 이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끊겼습니다. 식물이 햇빛을 못 받으면 이내 죽어 가듯 하나님께로부터 끊긴 사람의 영은 죽어 있습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에,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흐릿한 감각만큼은 아직 남아 있지만,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만큼 그 '영상'이 또렷하지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랬고 현재도 그렇습니다.

그러다가..약 2000년전 하나님을 되찾을 길이 열렸지요. 참 정체성 회복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바로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입니다. 그 분이 길/진리/생명이시기에!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과 문, 방편이기에!


문제는..이 길이 정체성을 되찾을 길도 되지만, 정체성이 갈리고 엇갈리는 길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독자는 길이 엇갈린 경험이 간혹 있었지요? 나는 바른 길로 제대로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찾거나 만나야 할 상대방과는 다른, 엉뚱한 길로 접어든 상황입니다. 이런 엇갈림은 당초 헷갈림에서 옵니다. 갈림목에서 헷갈리다 잘못 접어들면, 엇갈리어 결국 서로 갈리게 되고 맙니다!
헷갈림-엇갈림-갈림의 진전이죠.

내 정체성은 이 길 고르기와 직결됩니다. 바른 정체성은 바른 길을 골라 걸어감에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오직 하나의 바른 길이자, 갈림목입니다. 거기 갈림길이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참 길과..거짓 길
   옳은 길과 그른 길
   바른 길과 잘못된 길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영생의 길과 영벌의 길..

- 둘 중 어느 쪽을 골라 걸어가시렵니까?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님의 생애에, 가장 심각하고 가장 중대한 사안입니다! 길 고르기엔 님의 정체성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갈림목은 현대인들의 상황만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겉으로 보기에 정체성이 투철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습니다. 어디를 가든 그들은 떳떳해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이라면, 곧 하나님의 백성(선민/選民)-선택된 사람들로 자타가 공인했으니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지난 수 천 년 간 늘 인정해 오신, '귀하신 몸', 소중한 존재로 자임자부하며 긍지를 가졌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로마의 피지배국으로서 당대 그리스-로마 문명권 속에서 지역사회에 공존해 있는 이방인들로부터 자신들을 철저히 차별화 했습니다. 심지어 적으나마 같은 핏줄을 나눈 사마리아 사람들까지도 이방인으로, 개 같은 사람들로 철저히 냉대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일찌감치 멀리 에둘러 가곤 할 정도였죠.
 
그들은 모두 자기네가 옳은 길, 바른 길인 오직 한 길로만 걷고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렇게 굳게 믿어 왔습니다.
 
그러던 차에..처음으로 앞에 갈림목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라는 존재..
그들은, 자신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의 언행에 당혹감을 금치 못합니다. 꺼내는 말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탓에 헷갈립니다. 예측 불허의 존재였습니다.
이것저것 궁금하여 묻거나 따지면 동문서답이나 하고, 그 '서답'조차 빈틈 없어 뵈니 앞으로 뚫고 나갈 길이 그저 막막~합니다. 그들 중 최고의 현인들조차 예수 앞에선 말문이 꽉 막힐 정도입니다.

결국 그들은 이 어쩌지 못하는 갈림목 앞에서 헷갈려 하며, 우왕자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갈림목은 아무리 우습게 보려 해도 우습게 볼 수 없게 거대한 갈림목이었습니다. "괘씸한~..", "건방진~.." 갈림목이라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끝끝내 거부감을 드러낸 그들 대다수에게 이 갈림목은 거침돌이 되고 맙니다. 다만,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이 갈림목은 바른 길로 접어드는 참 길이 되어주었습니다. 길/진리/생명이신 예수 크리스토 말입니다!


요한복음 8장 후반에서, 주님은 유대인들 특히 파리새(바리새) 종교당원들과 긴 논쟁을 하십니다.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자타 간의 심대한 정체성 차이를 알려 주신 기회였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현재 소속과 정체성을 똑똑히 밝혀 주십니다. 물론 그들 자신이 믿어 온 정체성과는 너무나 다른, 실상 정반대의 아이덴티티였지요. 그들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논쟁을 간추려 보건대, 주님께서는 정체성 가름을 이렇게 하십니다.


   너희는 아래서, 나는 위에서 났다 
   너희는 이 세상에, 나는 하늘에 속해 있다 
   너희는 죄의 종이고, 나는 진리로 사람을 자유롭게 해 주는 아들이다 
   너희는 핏줄로만 아브라함의 자식일 뿐 실상 마귀에게 속해 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아브라함과 함께 한다


이에 대해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아브라함 후손이다 
   너는 거짓 증인이다 
   너는 사마리아 사람이다 
   악령 지핀 놈이다! 
   (넌 돌에 맞아 죽어도 싸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이 갈림목 앞에서 여지 없이 엇갈렸습니다. 자신들의 실정체성이 드러나니, 당황스럽고 황당했습니다. 마치 고대 사제들의 판가름 잣대였던 '우림과 툼밈'처럼 자신들의 모습이 훤히 들여다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영안이 어두워 수치와 무안을 느끼거나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라는 거침돌에 걸려 이리저리 자빠지고 깨졌습니다. 결국 예수를 돌로 쳐 죽이려고 달려 들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어서 주님은 무사히 피해 가셨습니다.

주님을 거부한 이 유대인들의 영적 정체성은 곧, 마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놀랍지 않은가요?

핏줄은 아브라함의 후예, 곧 하나님의 선민이었건만, 그들의 속사람은 마귀에게 속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현대인들 앞에는 예수라는 갈림목이 있고, 이 갈림목에 서면 길 선택에 따라 누구나 자기 정체성이 드러납니다. 그 정체성은, 예수에 대한 태도에 따라 운명이 엇갈림과 직결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기로 결심하고 딴 길을 택하면, 마귀에게 속하여 마귀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됩니다. 그 종국은 영원한 파멸과 영원한 형벌입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처럼 강퍅한 맘을 품으면, 그렇게 됩니다.

진리 쪽을 택하세요!
진리는 예수께 있습니다.
그 분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한다"고 선언하십니다.

딴 길은 없습니다.
바른 길은 오직 한 길-예수 크리스토이고..

나머지 딴 길은 마귀와 함께 하는 지옥행입니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하늘 시민의 정체성을 갖게 되어, 그 분과 함께 하늘 보좌에 앉히게 됩니다!
땅에 살아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삶-
황홀하지 않으세요?
그 삶이 부럽지 않으세요?
그 삶이 지금 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갈림목, 터닝포인트에서 헷갈리지 말고 바른 길만 고르시면 됩니다.
선택을 잘 하세요!
올바른 길로 님의 정체성을 확립하세요.

오늘..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