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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현대영성비평

수상쩍은 '공통 예언'들


최근 네이버블로그에 올려진 H 선교사의 "늦은비의 권능이 부어지는 엘리야의 시대가 열린다"라는 글을 제보 받고 함께 성경적으로 검증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모든 영에 대한 검증이 성경의 명령입니다.
 

공통적 메시지? 
   

     "미국의 수많은 예언 사역자들이 근래 주님으로부터 받는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늦은비의 권능이 부어지는 엘리야의 시대가 열린다"는 H 선교사의, 이 무조건적 '예언' 지지 발언. 그 역시 신사도개혁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 NAR)권(圈)의 간판인물 중 한 명이 되려는 모양이다. 
아울러 검증 '무풍지대'의 당혹스런 현장을 다시 한 번 노출시키고 있다. Whatever he insists on, H 선교사에겐 성경이 모든 신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명령하는(신약 요서A=요일 4:1) 검증 노력이 전혀 엿뵈지 않는다.
왜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는가? 

첫째로, 소위 '제3물결'의 뿌리로 알려진 해묵은 20세기초의 '늦은비운동'은..UFO 등 온갖 해괴한 오컬트의 영향을 받았던 '부흥강사' 프랭클린 홀과..어릴 때부터 나무 위에 나타난 '천사' 영의 인도를 받아 '신유사'가 됐다고 하고, 무덤은 피라밑 모양인 데다 독수리상이 얹혀진..해괴한 편력의 윌리엄 브래넘 등 영적으로 자기혼란을 빚던 문제명사들이 일으킨 운동이다.
늦은비운동에 끼친 홀과 브래넘의 영향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http://blog.naver.com/yoochinw/130034198745  

둘째로, 이 현대 늦은비운동은 오늘날 NAR 현장 여기저기서 소위 '금니/금가루' 이적, 하늘로부터의 '보석 선물' 낙하 이적, 상투적 '입신' 계시, 객관적으로 입증되지 못한 '신유/부활' 기적, 근육미 돋뵈는(?) 얼짱/몸짱 '천사'/영들의 출현(하늘 헬스클럽 출신들?) 등 온갖 비성경적인 의문성 이적들이 난무하도록 한 주요인인 데다가..

성취가 보장되지 않는 NAR 관련 명사들의 대책 없는 엉터리 예언들이 남발돼 왔기 때문이다. 그런 명사들의 상호격찬 내지 신격화 관행은 이미 교계에 정평이 나 있는 상태다. 아마도 대표적 사례가..카나다 출신의 '타투 맨' 부흥강사, 타드 벤틀리의 지난해 '위임안수식' 때 NAR 명사들이 대거 집합, 실력 발휘를 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플로리다 레이크에서 3개월간 밤낮 계속된 장기연속 집회에서 온갖 희한빠끔한 '이적'들이 나타났다는 벤틀리를 공식 위임하는 그 행사에서 NAR의 대부 피터 왜그너로부터 지시를 받는 '신사도/대언자/부흥사'인 한국계 미국인, 체 안은 윌리엄 브래넘의 곱절의 영감이 벤틀리 위에 머물러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브래넘이 누구이던가?!
또.. 여성 '사도/대언자' 스테이시 캠블은 약 몇 분간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이건 아니다" 표시?) 괴상한 초자연적 진동놀림 속에 예언이란 걸 해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공포감과 이질감을 여지없이 초래했다. 
  
이처럼 기라성 같은 남녀 '사도/대언자' 명사들이 대거 동원돼 각각 대갈일성 내지 사자후한 빗발 같은 계시/예언적 축복과 안수에도 불구, 벤틀리는 불과 얼마 후 염문으로 사임했다. 즉 사도/대언자들의 예언이 불발돼 모두들 망신했다는 얘기.
이것이 ' 늦은비운동' 후예들인 NAR 명사들의 카오스(chaos) 현장이요 거룩한(?) 진풍경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뿌리는 뻔한 것. 문제가 문제의 꼬리를 문, 문제성 뿌리다.

[ 사실 벤틀리는 평소 '영계'에서 브래넘의 영과 인도의 '성자' 순다르(=선다) 싱의 영을 "만나 감화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다. 싱 역시 영계에서 근세의 문제명사 스베덴보리(영어: 스위든볽)의 영을 만났다고 했다. 이 영들은 거룩한 하늘의 영이기보다 둘째 하늘의 '외계인'(alien) 영들에 더 가깝지 않을까. ]

그런데도 H 선교사는 이 '늦은 비의 권능'이 부어지는 '엘리야의 시대'가 열린다고 장엄한(?) 선언을 한다. 
어떤 늦은 비 말인가?
어떤 권능?
어떤 엘리야..? 

H 선교사의 발언에 대한 우리의 솔직한 의문은 이것이다:
최근 특히 21세기 들어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온 지면 특히 교계에 '관상 영성', '떠오름'(Emerging, Emergent) 영성, 미로(迷路: 미혹하는 길!) 명상(labyrinth-ing)과 에니어그램 등 뉴에이지 영성, 예수 크리스토님의 재림 전 하나님의 나라를 땅에 미리 이뤄야 한다는 소위 '주권주의'(domionism), 고대신화/헤르메틱스/연금술/카발라(유대마법) 등에 기초한 프리메이슨 영성, 온갖 오컬트 영성 등 문제 영성이 온통 넘쳐 가는 판국에..어떻게 그런 거창한 영적인 시대가 열린다는 생각이 감히 열릴 수 있냐는 것.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지구촌에 다원종교성, 뉴에이지성이 강해져 가는 포스트모던/초종교/뉴에이지 시대다. 이것은 세계 종교통합시대 내지 단일종교시대를 내다 본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성취돼 가고 있다는 증거다. 혹시 H 선교사는 뉴에이지운동의 한 기수라도 되는가? 아니라면 이 혼탁한 시대에 성령께 또 다시 오순절 역사를 일으킬 거룩한 뜻과 마음이 열리셨다는 말인가? 성경 어느 부분이 그런 발상을 뒷받침하는가?

지금 '엘리야'가 나타난다면..도대체 그는 누구의 길을 예비하는 새 침례(세례) 요한인가? 메시아/크리스토는 이미 오셨었고 성령께서도 이미 지상에 강림해 계시다. 그런데 누구 허락도 안 받고 감히 새로운 엘리야/요한이 나타나 누구의 길을 예비한다는 주장인가? 혹 계시록에 나타난 (소위 '제2 메시아'라는) '짐승'의 길을 예비한다는 암시..?

성경에서 빌린 '엘리야'란 이름은 오늘날 신사도운동권 전역에서 매우 자주 발견되는 수상쩍은 코드다. 성경의 엘리야는 엘리샤에게 겉옷과 함께 곱절의 영감을 전수한 뒤 승천했고..결과적으로 엘리샤가 수많은 초자연적 이적과 함께 (당초 슈무엘이 창건한) 대언자학교를 이스라엘에 확립했다. 엘리야는 신약시대를 앞두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침례(세례) 요한을 상징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엘리야 시대'가 열린다면 누구를 위해 무슨 종을 울리려는 건가?

H 선교사는 미국의 수많은 예언사역자들이 근래 주님(?)으로부터 받는 '공통 메시지'가 있다는 기존 역설 및 주장을 힘있게 받아 들인다. 그런데 알고 보면, 다수의 불발 엉터리 예언, '기사단' 가입, 성추문 등으로 영성계의 '문제명사'로 대두돼 온 폴 케인, 밥 조운즈, 맄 조이너 등 캔저스시티그룹(KCF) 대언자들도 "공통" 메시지를 설파해 왔다. 그들 역시 엘리야와 에스테르(에스더) 등의 이름을 내세워 왔을 뿐더러 독수리와 아터 왕의 마검 등도 공통되게 강조해 왔다.

     늦은비, 독수리, '원탁'기사/보검/마검, 전략회의, (남/북) 전쟁, 엘리야, 에스테르..등등

주권운동/신사도운동권/KCF/중보기도운동권 등의 공통 코드다. 이들의 배경엔 성요한 기사단(일명 말타기사단), 성전기사단(KT), 프리메이슨 등 비밀집단도 연루돼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요 현실이다.

H 선교사의 시대착오적 선언과 검증 부재

북가주 소재 S선교회 대표인 H 선교사는 이름으로 보아..문제명사 펄시 콜레의 책을 비롯한 기독교 서적 번역자, 영화감독이자 1990년대 상반기 한때 이장림의 다미선교회와 유사한 시한부 종말론에 연루됐던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그랬던 그가 또 다시 "시대의 열림"을 강조하면서 신사도운동권에 편승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듯 하여 좀 안쓰런 마음이다. 

H 선교사는 요엘서에 기록된 '늦은비'의 권능(신약성경, 행전 2:16-21 참조)이 "이제 곧" 택함 받은 사역자들에게 부어진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착오적, 아전인수 격 주장이다.
왜냐..? 분명히 2천년전 오순절 성령강림 당일, 페트로는 요엘의 예언이 성취됐다고 명언했기 때문. 물론 '말세'라고 했기에 이때로부터 지말(至末)까지 오가는 세대에 영구적으로 계속 성취돼 온 예언이다.
언제라도 이 권능을 받기 원하는 신자들은 누구나 받을 수 있다! 단지 (H 선교사가 염두에 둔 바로 그) '이제 곧'의 때에 '택함 받은' 특정 사역자들에 국한된 게 아니다.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신다고 했다. 이것은 세상 사람 아무나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믿음으로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부어진다는 말이다. 즉 신사도운동권에 속한 특정명사들과 그 추종자들에게 부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요엘서의 '말세'에 나타난 늦은비 권능은 이미 2천년전 교회시대의 찬란한 열림을 대표하는 예루샬렘에서 부어졌거늘 어찌 이제 또 다시 특정인사에게 부어진다는 논리인가? 만약 정말 그렇다면..하나님은 언제부터 차별주의자로 변모하셨나? 요엘에 따르면, 말세를 위한 권능은 남종/여종들은 물론 "모든 육체" 즉 믿는 모든 거듭난 사람들에게 부어진다. 특정 엘리트 인사들만이 아니다. 

오순절 당일날 페트로를 포함한 120 제자들의 방언 소리를 듣고 몰려온 국내외 출신인 모든 유대인들도 이 권능을 받았고(행 2:1-13,41 참조), 그후에도 받았고(앞 47b, 6:1), 유대인들이 과거 개 취급하던 사마리아인들(8:5-24)과 예수 믿는 신자들을 박해하던 샤울(파울, 9:17)도이방인 코르넬리우스 일가(10:1,44-46), 역시 이방인인 에페소 교우들도(19:1-7), 믿는 대로 다 받았다.  

그렇다면..어떻게 현대에 와서 신사도운동권 사람들만 특별히 받는 요엘 예언적 권능, '엘리야'적 권능이 따로 있겠는가?! 그래서 거듭 말하지만, H 선교사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H 선교사는 이렇게 많은 예언들이 동일 내용으로 내려지는 현상을 "처음" 접한다며 초자연적인 엄청난 대역사가 곧 일어날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어둠 세력이 거세게 엄습할수록 하나님은 더 강력한 권능을 부어 주어 맞서게 하시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H 선교사는 오랜 미국생활 경험 이후로도 처음 접한다는 공통적 예언들을 극히 중시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래서 그가 그 아래 인용한 대언자/사도들은 제쳐놓고라도, 우선 H 선교사 자신의 검증부재 현실이 쉽게 발견된다.

예언에 관하여 성경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검증, 검증, 검증이다! 심지어 성취되는 예언들도 검증이 필요하다고 성경은 경고한다. 그러나 H 선교사는 단지 '공통' 된다는 것, (성경 아닌) 자신의 생각과 부합한다고 해서 이 '예언'들을 예언으로 받아 들이는 성향이다. 아무 부담 없이 말이다.    

H 선교사의 소개 글에서 우리는, 예언들 특히 현대 예언에 관해 성경이 경고한 바를 조금치도 참조하거나 재고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특정인사의 '예언'이란 것을 하나님이 주신 거짓 없는 계시로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거나 거의 다름 없다.

그는 또 "초자연적인 엄청난 대 역사"가 일어나리라고 기대한다. 어떤 엄청난 대 역사 말인가? 성경 어디에 현대에 그런 대 사건이 있으리란 약속이 있었더란 말인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주님께서는 종말적 징조로서 올 온갖 사회적/자연적 재난과 이변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러나 계시록을 볼 때, 그에 대조되거나 버금 갈 만한 엄청난 초자연적 대 역사라면, 제2 '메시아', 최악의 적크리스토인 '짐승'을 통해 일으키는 마귀의 역사 밖엔 없다.   

H 선교사는 어둠과 악의 세력이 엄습할수록 더 강력한 권능을 부어 주어 맞서게 하신다는데..번번히 하는 얘기지만 그런 말을 뒷받침할 초자연적인 역사는 새롭게 베풀어지는 게 아니라 2천년전 오순절에 있었고 후대엔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도 그는 엄습해 올수록 더 강력한 권능이라고 하여 마치 마귀 세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거기 비례해 더 강력한 권능을 매 번 새롭게 주시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현대 신사도운동권에다 어떤 특혜적/예외적인 영적 권위, 선택의식을 부여하고 있다. 

그럼 이제 H 선교사가 소개한 명사들의 '예언'을 검토해 보자.

욜란다 밸러드

독자들은 욜란다 밸러드가 누군지 궁금할 것이다. 사역체 '아버지 발앞' 대표인 밸러드는 '사도/대언자 네트워크' 명사들의 한 명..현대 사도/대언자로 자임하는 여성이다. 현재 회원 400여명인 이 네트워크는 누구든 가입할 수 있게 열려 있는 듯 하고 24시간 '예언' 코너도 개설해 놓고 있다. 안내문을 보면 독수리를 강조/중시하고 있어, 대언자/사도가 흔히 '독수리'로 비유되는 늦은비/신사도운동권임을 직감할 수 있다.
[ 대언자/사도=독수리 등식은 성경적 근거가 없다. 더욱이 성경에서 독수리는 부정적으로 비쳐진 예도 있다. 독수리는 수많은 오컬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밸러드는 대언자/사도그룹이 정기적으로 자신의 '예언'을 올리는 공동웹사이트 '독수리가 모여드는 곳'(WEG), 다양한 신사도운동권 명사들의 글을 모아 놓은 '슬기의 진주들'의 필자이기도 하다. NAR권 핵심명사의 한 명인 첰 피어스도 한몫 하는 WEG는 역시 대머리 독수리 로고를 중시하는 콜로래도 크레믈링 소재 페잍 태버너클(빌/마셔 번드 목사)의 부속 사이트이다.
이 단체가 5월초 실시하는 사흘간의 '성령심포지엄'의 목표를 보면 1. 언약관계 재정립과 신적 커넥션 확장 2. 때와 시기에 관한 집합된 목청 내기 등이고 스케줄 속엔 전형적인 신사도권 용어인 '임파테이션'이 들어 있다. 

욜란다 밸러드는 지금이 "늦은비가 부어지는 때"라고 엄숙히 선언한다. 그러나 2000년전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사이에 변함 없이 지속돼 왔다. 지금이 새삼스런 '늦은비'의 때가 아닌 것이다.

밸러드가 "적의 총공세"에 맞서는 '나의 신부들'이라고 말한 것으로 H 선교사는 옮겼는데, 원문은 단수 '나의 신부'(My Bride)로 돼 있기에 교회를 뜻한다. 밸러드가 시종일관 단수 표기를 했는데도 H 선교사는 어떤 의도로 복수 '신부들'로 옮겼는지? 성경엔 "나의 신부들"이라고 해서 마치 크리스토께서 성도 각 자와 결혼하시는 듯 묘사된 부분이 없다. 물론 '신부들'이란 복수 용어도 신사도운동권/중보기도운동권 사람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어떤 적? 어떤 전쟁?

욜란다는 적의 총공세가 어떤 적의 공세인지 밝히지 않고 추상적으로 말한다. 성경적으로 우리의 적은 싸탄 마귀의 그 졸개들일 뿐이지 그 어떤 다른 대상도 아니다.
이 말을 강조하려는 이유는 주권운동/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이 유달리 "임박한 전쟁"을 강조하는 데다 특히 KCF 등이 미국 남/북전쟁 당시처럼 회색군대와 청색군대 사이의 전투개념을 자주 활용하기 때문.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임박한 전쟁은 종말론적인 '아마겓돈' 전쟁이 아니라면 비성경적이다.

까닭은, 성도와 교회는 이미 둘째 하늘의 마귀 왕국과 오래 전부터 영적 싸움을 치뤄 왔고 현재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의 임박한 전쟁이란 영적 전쟁이라기보다 오히려 미래적/지상적/세속적인 "사상적 테러전"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21세기의 사상적 테러전이라면..맄 워런 등이 강조해온 대로 근본주의와 중도파/진보파 사이의 전쟁일 것이다. 즉 짐짓 영적 전쟁을 빙자해서, 기실 인간 파벌 사이에 유혈극을 벌이려는 의도이다.

미국사회에서 엿뵈듯 기왕에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사이의 싸움은 대단히 치열한 것이며 요즘은 진보파/중도파가 힘을 키우면서 보수/근본주의적인 것을 모조리 차단해 가려는 성향이 현실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표면상의 보수주의자들 가운데도 프리메이슨들, 카톨맄 등이 있고 그런 점에서 실은 진보-보수가 뒷전으로 손을 잡은 형국이다.

그러므로 향후 신사도운동/주권운동 등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다 '근본주의자'로 내몰릴 터이다. [ 이것은 (기독교 근본주의를 비롯한) 모든 근본주의자들을 "21세기의 적"이라고 했던 맄 워런의 말로 간접 입증된다. 워런의 이 말에 대해 같은 교단(남침례회)의 앨 몰러 박사가 핀잔을 준 바 있다. ]
즉 자신들도 모르게 회군이나 청군 둘 중 어느 한 편으로 치우쳐 공격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은 그들의 전의(戰意)가 참된 의미의 영적 전쟁을 위한 것이 아닌 다음에야 매우 호전적이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바로 그들의 '예언'이란 것에서 그런 분위기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마귀와 그 군대를 대항하여 싸워 온 예수 크리스토의 강한 군대로서 영적 싸움에 매진해 왔으므로 꾸준히 해 나갈 뿐이지. 특별히 더 호전적일 이유도 없는 것이다.  
   

     "모든 상황이 전투에서 패배할 것처럼 보여질 때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막강한 군대를 일으키고 있다." 

위 말은 예언(?)이건 아니건 간에 strictly 비성경적이다. 싸탄을 대상으로 한 영적 전쟁에서는 "모든 상황이..패배할 것처럼 보여질 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싸움은 이미 예수 크리스토께서 이겨 놓으신 전쟁이기에 하나님의 완전무장(온몸갑옷)과 성령의 권능, 말씀과 보혈, 찬양과 기도로 제대로만 하면 언제나 말씀-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승리가 보장되며..단지 신자 자신의 전투의지와 태세가 문제될 뿐이다.
그러므로 위엣말은 '예언'이라기엔 단지 말의 효과를 위해 대강 짐짓 과장한 말처럼 느껴진다.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반드시 이루신다는 나의 신실함을 믿음으로 붙들고 동행하는 자들을 일으키고 있다."

위 문장은 말하는 주체가 스스로에게 존대어를 쓰고 있어 혼동스럽다. 제3자를 인용한 듯한 느낌인데, 원문은 화자가 당사자로 돼 있다.
그래서 원문에 좀 더 가깝게 옮겨 본다:

     "내가 너희를 일으킨 것은 너희가 믿고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걷지 말고 내가 선한 일을 시작했으니 그것을 성실히 이룰 것임을 알고 믿음으로 걸어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막강한 군대'의 새로운 양성을 합리화 하려고 성경을 적당히 이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막강한 군대는 새롭게 일으킬 대상이기보다 영적 전쟁에 참여하는 교회의 거듭난 성도들이다.
 
그 다음..
약속이 곧 다 이뤄진다는 식의 예언은 흔하다. KCF에도 흔한, 막연한 희망사항이다. 그것이 언제 어떻게 이뤄지냐가 문제다. 지금은 마지막 때라는 말도 누구나 해 온 말이고 상투적이다.
'위대한 사역'들이 약속돼 있다는데 어떤 위대한 사역들을 말하는가? 누가 '위대한' 사역을 하기를 원하는가? 누가 자기 사역이 '위대'해지길 바라는가? KCF? 신사도운동권 사람? 우리는 '위대한 사역'은 커녕 낮출 대로 낮추고 겸허해지기만 해도 모자랄 판이다.

"나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대가를 지불하라"? 우리는 '지불'할 것 없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지불하신 주님 뒤를, 제 몫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   

     "지금은 나의 권능을 너희를 통해 부어 줄 때이며 시간이다."

'지금'이라는 말을 안 쓰면 예언에 힘이 안 들어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권능은 '지금'의 때와 시간이 아니라..이천년전부터 교회에 주어졌다. 치유권능, 자유와 해방..안 써 먹어 그렇지 우리가 믿음으로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신유와 죽은 자의 '부활'은 신사도운동권 인사 벤틀리의 실패처럼 객관적으로 바로 입증되지 못하면 오히려 사기꾼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가린다는 것이다.

"자기는 물러서고 내게 사로잡힐 태세가 되어야 한다."
?..예언이라기엔 좀 막연하고 모호하다. 적당히 둘러 붙인 말인지 암시인지 모를 일이다.  

수전 커밍즈

H 선교사가 두 번 째 "공통 메시지"로 올린 인용문은 역시 신사도운동권 인사인 수전 커밍즈가 봤다는 1월 초순의 비전/환상이다. 원문은 그녀의 '순교자친교' 사이트에 있다.
http://www.fellowshipofthemartyrs.com/home/index.php/articles/endtimes/499-vision-of-the-rain-of-fire-susan-cummings.html

그런데 커밍즈의 이 비전은 욜란다 밸러드에 비해서도 더욱 비성경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왜 그런지 설명해 본다.

우선..하늘에서 내리는 불비(fiery rain. 이 비전에서 방울 비 또는 폭포? 같은 줄기 비로 묘사된다)를 '살아계신 영(성령)', '아버지(하나님)의 살아있는 불의 본질'이라는 등식으로 단언한 것이 매우 부자연스럽다. 이 불비는 화산 용암 같은 진짜 불이란다. 이를 테면 이른 바 액화된 불(liquid fire)인 셈인데..과연 이것이 살아계신 성령님, 하나님의 본질이란 말인가? 불가해하다.

커밍즈가 이 불비 환상을 애써 거룩하게 꾸민 묘사들은 흥미롭다. 왜냐 하면 성경에서 불비라면 소돔 고모라에 뿌려진 유황불비(창 19:24) 외에 비슷한 표현들(시 11:6, 욥 18:15, 에제키엘 38:22)이 한결같이 모두 심판과 연계돼 있기 때문! 이것은 계시록에 묘사된 7환난 심판의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한다(요계 8:7, 20:9).
 
그런데 유독 커밍즈만 이것을 아버지 하나님의 본질과 억지 연계시키고 있으니, 성경적으로 전혀 뒷받침되지 못한다고 보겠다. 말세에 싸탄의 종자도 하늘에서 불을 내릴 수 있음을 커밍즈는 인식하는지 모르겠다(요계 13:13).  

커밍즈의 문장을 보면, 모순된 논리를 펴고 있다. 이 비가 "온 땅 위에 동시에" 내렸는데 불구하고 모든 곳, 모든 사람 위에 내리진 않고, 갑자기 내렸는데도 느리며, 많은 사람이 보았고 사람들이 실제로 경험하고 볼 수 있는 사실적 사건 같은데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순 없는 신적인 사건이었다고 한다. 비전이라기엔 하룻밤 꿈 속 정경 같다.  

여기서 커밍즈는 퍽 중요해 뵈는 한 마디를 한다.

    

    "..but I understood that men would know that God had entered into the corporate natural affairs of men divinely again." (..그러나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집합적/자연적인 인간사 속에 신적으로 재진입하셨음을 사람들이 알 것이란 사실입니다.)

독자는 이해가 가는가? 이것은 매우 뉴에이지적인 말이다! 하나님은 영으로서 거듭난 영들로 구성된 교회 속에 초자연적/집합적으로 오신 이래 인간의 영 속에 개별적으로 찾아 오시지, 결코 자연적 인간사 속에 집합적으로 들어오시지 않는다! 

다음으로..커밍즈는 자신이 본 아버지의 불비는 아버지 자신의 '진짜 살아있는 본질'(Real Living Essence)이라고 재차 강조하는데 이 역시 매우 뉴에이지적인 용어다.
[ 커밍즈는 대문자를 곁들인 '에센스'(Essence)란 용어를 남발한다. ] 이 불비는 미리 받기로 아버지께서 예비시키신 사람들에게만 내리고 (신사도운동권에 흔한 'release'란 용어를 썼음) 있었단다. 기대 밖, 생각 밖엣 사람들 위에 우리 생각과 논리로 규정하는 자격과 상관없이 불비가 부어지는 광경을 바라보니 흥미로웠다고 전한다.

커밍즈는 행전 2:2,3에 나타난 대로 성령님이 하늘로부터 임하실 때 불꽃의 혀 모양으로 각자 위에 임한 사건을 어느 정도 원용한 듯 하다. 그러나 불비가 그 수혜자 개인의 의식/무의식 가운데 내린다는 것은 어느 모로든 성경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그리고 이 '살아있는' 불비가 사람들을 꿰뚫고 주입돼 그들의 온 존재와 몸 속으로부터 광선이 발산된다(radiate)는 표현은 마치 공상물 현대영화 한 편을 보는 듯 매우 뉴에이지적/메이슨적이다. 비가 그들에게 떨어져 바로 아버지의 본질이 된다는 것도 신성모독적인 표현이다.  

성경은 어디까지나, 오순절날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제자들에게 방언과 권능을 주시고 비가시적인 전체교회에 속한 오가는 세대의 개인들에게 역시 같은 권능을 주신다고 밖엔 설명하지 않으신다. 성경 어디에도 '아버지의 본질'이 불비로서 개인의 의식/무의식 중 내려져 대상자까지 아버지의 본질로 만들어 버린다는 복잡한 표현과 레토맄이 전혀 없다.

커밍즈는 또 이 불비를 맞은 사람들의 눈이 '새 생명'으로 불타고, 불비가 파고 들어 살갗 아래로 빛나며 흐르자 살갗이 변해 우리와는 다른 살결과 영적인 구성요소를 갖춘 신적인 체질로 바뀌었다는데..성경이 말하는 영체('신령한 몸': 코린토A 15:44-49, 51,53)보다는 마치 뉴에이지적인 '메타몰포시스'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더욱이 커밍즈가 '광선 발산'(radiate, radiation)을 자꾸 강조해대니, 뉴에이지/메이슨적 냄새가 물씬물씬 나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커밍즈는 성경의 성령강림, 영체 개념과 이교적인 뉴에이지 인성 등을 '짬뽕'한 듯한 인상이 여실하다.

커밍즈는 또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but each person was still their own unique vessel, but they were also now divinely infused and were more divinely aware of God and understood their earthly purpose now."

여기서 하나님을 더욱 "신적으로 깨닫게(각성) 되어 지상 목적을 이해하게 됐다"는 식의 말은 역시 매우 뉴에이지적이다. 

커밍즈는 또, 이 불비를 맞도록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사람들은 대부분 전쟁에 휘말려 싸우다 매우 지친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한다. 이 역시 전혀 성경적이 아닌 표현들이다. 그러면서 커밍즈는 그중 대표적인 한 남성을 집어 묘사한다. 불비를 맞은 이 남자는 신체적/정서적/영적으로 상처 입은 사람인데 교회로부터 박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생애 대부분 동안 오해를 받고 자신도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그분을 놓쳤다고, 자기 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그를 "고르신 그릇이 되도록" 정화시킨다는 것이다. 순서가 도치되고 뒤엉긴 비성경적 표현이다.  

이렇게 불비가 주입된 사람들이 즉시 온 세상에 보내어져 '아버지'의 일을 한다는데, 주변 사람들이 자기네가 (그런 불비를) 못 받은 것을 알게 되자 통곡도 하고 거대한 영적 탐구운동이 일어나고 교회 안에서는 큰 혼동이 빚어지고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났단다. 이것은 휴거 때 버림 받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감정과 천년왕국 시대 광경 등을 적당히 희석한 듯한 대목이다.

커밍즈는 흔한 본질(Essence), 광선 발산이란 말들 외에, '신적인 빛'(Divine Light)이란 대문자 고유명사 용어를 쓰고 있다. 이 역시 뉴에이지적/메이슨적이다.

놀랍게도 커밍즈는 그녀의 비전 자체에선 '예수님'이란 이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단지 말미에 따로 성구만 갖다 붙였을 뿐이다). 하나님과 '크리스토' 뿐이다.

H 선교사는 '전세계적인 대격변'이 일어났다는데 '7환난'이나 천년왕국, 심판 외에 어떤 '대 격변'이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모리스 스클러

그 다음..모리스 스클러의 '예언'은 '엘리야'의 도래에 관한 것인데, 우리는 도대체 왜 엘리야가 현대에 필요한 건지 까닭을 추정하기가 쉽지 않다.
예언사역자로 자임하는 모리스 스클러는 유대-러시아계의 미국인. 명 클래싴 바이올리니스트에다 명예 목회학박사이기도 하다. 참조: http://www.mauricesklar.com
. 오럴 로버츠 대학교(ORU)에서 10여년째 음악교수 생활도 한다. 그는 문제명사 베니 힌과도 가까워 올해만 힌 집회에서 5회나 연주할 예정이다. 

그의 CD 음반곡목들을 보면 아무 검증의식이 없다('아베마리아'도 연주 녹음함( http://www.mauricesklar.com/html/shopping.html ).
그의 음악 내용이나 활동 내역을 보면 거의 틀림없는 유대-크리스천 찌온주의자로 보인다. 그는 바흐나 핸델과 함께 모차르트(유명 프리메이슨!)도 "자신의 음악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진지한 갈망을 지녔었다"고 평가했다. 사실일까? 그는 클래싴 음악과 히브리 음악을 통해 "창조주의 탁월한 가치를 시위한다"고 자평도 했다. 하나님이 클래싴 음악을 즐기신다는 말인가? 그의 연설과 연주를 통해 신유 이적(?)도 나타난다고 한다. 

그가 올가을 참석해서 축하연주도 한다는 이스라엘 건국 60주년 기념행사 집회의 포스터를 보면 자못 의아스럽다. http://www.jhopfan.org/convocations/flyers/flyer_2009_English.jpg
슬로건이 '왕의 길을 예비하라'이기 때문. 누가 왕이란 말인가? 예수께선 이미 2000년전에 오셨는데 왜 길을 예비하라는 것인가? 혹 '성탄절' 행사인가? 여기서 우리는 엘리야를 어떤 집합적인 어젠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Besides, 이 행사엔 신사도운동권의 하이디 베이커를 비롯, 모리스 세룰로 목사,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사랑을 외치면서 어떻게 내 백성(이스라엘을 지칭)을 미워하냐?"고 물으셨다던 에짚트의 열렬한 친이스라엘파 에밀 부트로스 목사 등도 참가한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방사선형 임시 '씨/날줄' 같은 것을 그려 놓은 또 다른 슬로건은 '땅끝으로부터 왕의 보좌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 왕의 보좌? 천년왕국도 안 왔는데 언제 지상 예루샬렘이 예수님의 보좌가 됐는가? 수상쩍은 느낌을 갖게 된다. 결국 예루샬렘에 '제2메시아'를 모실 '제3성전'을 세우려는 계획은 이스라엘/신교 찌온주의자들, 메이슨들 등의 공통점이다. 아니라면 에일라트 길 한 복판의 피라밑과 두 기둥은 뭐란 말인가?   

더욱 수상쩍은 것은 스클러의 예언/간증/설교를 보면, 지난해 8월말 갓 대학에 입학하는 딸 러베카를 데려다 주면서 도중에 '영감'이 내려 정차하여 '예언'하던 도중, 갑자기 차 안이 '영광 구름'으로 가득 차고 낚시배가 나타나 (늦은비운동의 선구자) 윌리엄 브래넘의 영이 나타나 같이 낚시를 했다는 것이다. 음..타드 벤틀리가 연상되지 않는가? 결국 스클러는 순수한 늦은비/신사도운동권 사람임을 직감케 되는 대목이다.
(스클러의 브래넘 만남 '간증'을 추후 따로 다뤄 볼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엘리야는 대언자의 대표로 주님의 길, 주님의 시대를 예비하는 사람으로 묘사됐고 침례(세례)요한의 예표이기도 했다. 즉 말라키 4:5에 예언된 사람이 곧 침례 요한이었다. 그뿐이다.
그런데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은 한결같이 또다른 엘리야의 시대가 왔다며 '수 백 명'에게 내려지는 '엘리야 대언사역'을 강조한다. 여기서 스클러는 자신과 같은 엘리트 대언자가 곧 엘리야 사역을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준다. 즉 [엘리야=엘리트] 같은 등식이 막연하게나마 성립된다.

그러나 H 선교사는 스클러의 다른 글에선 엘리야가 천 명, 만 명에 이를 수 있음이 시사되고 있다고 논리와 예언의 명백한 모순을 친절하게 무마시켜 준다. 그러면서 주님이 천국에서 망토를 내려 보내주시고 '마지막 대 추수'를 거두신다는데 ("추수를 거둔다"는 문법/수사학상의 오류도 그렇거니와) 날로 죄악과 혼탁한 영성이 관영해 가는 세상에다 주님이 왜 또다시 엘리야의 하늘 망토를 내려주시는지 아연해진다.

우리 한 번 끝으로 생각해 보자.
엘리야는 구/신약을 통틀어 가장 언급된 사람들 중 한 명이지만 여인이 낳은 사람들 중 침례 요한보다 크지 못하며 침례 요한도 새언약인들인 우리보다 크지 못하다.
엘리야는 어디까지나 구약인이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모든 영감과 엘리야에게 전수된 갑절의 영감이나 망토 등이 모두 구약적이며, 이 모든 영감과 권능이 신약시대를 예고하는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완성/완결됐다(마침표)!

그런데 우리에게 왜 엘리야 시대가 다시 필요하다는 것인가?! 계시록에도 없는 말이다. 다만 두 감람나무와 두 등대로 상징되는 두 증인이 나타날 뿐이다(요계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