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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현대영성비평

B 목사와 K 교회 관련 비평문들

미국의 밥 조운즈 등과 결탁, 신사도운동에 광분해온 한국 B 목사의 서울 K교회 측이 티스토리닷컴에 신청하여 진입을 막아 놓았던 김삼의 글들 중 일부(5편)를 수정하여 여기 한꺼번에 게재합니다. 이 글들이 다시 게재된 데는 일부 티엘티 벗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티엘티 편집자 주) 


최고 선지자? 신사도'예언'의 현주소

신사도운동가들 특히 '캔저스예언자그룹' 사람들이 소위 '예언'이란 것을 엄청 남발해 왔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예언자학교'라는 사뭇 구약적인 개념의 훈련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요 며칠 전 뉴스에 따르면, 주권운동(dominionism) 배후를 지니고 신사도개혁운동(NAR)권을 대표해 온 C. 피터 왜그너가 플로리다 부흥의 타드 벤틀리를 '신사도'로 공인했다고 한다. 이것은 신사도운동권이 기존의 캔저스그룹 및 (신디 제이콥스 류의) '중보기도'운동권 외에도 플로리다 부흥권 사람들까지 공식 추가/포괄하게 됐음을 시사한다.     

이 글에서는 그들의 '예언'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하련다.

이들 '신사도'운동가들, 대언자들에게서 '예언' 내지 '대언'에서 우리는 치명적인 결점 몇 가지를 발견한다. 우선 한 가지는..비진리를 진리처럼 몰고 간다는 것. 성경과 기독교를 이용하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또 한 가지는..서로 신격화하고 상대방을 교계 '명사'로 띄워 주기. 그러기 위해 성경 말씀 뒤틀기/왜곡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진리에 대한 매우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배후와 비성경적 특성을 볼 때, 신사도운동 지지자들의 입장은 어쨌든 간에 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혐오스런 행위다.

주님께서 사도 파울에게 계시로 주신 교회시대 대언 은사를 보면, 중요한 특징 하나가 있다. 신약시대 예언은 이스라엘에 국한됐던 구약시대 예언과 달리 전(全)교회적, 포괄적이고, 세우기(建德, build-up) 중심이어서 권위적(勸慰的)이며, 따라서 구약식 미래 예언이 상대적으로 현저히 줄어 들었다는 점이다. 신약성경에 묵시록이라곤 오직 요한계시록 뿐이다.
줄어든 이유는 당연하다! 메시아 예언을 중심한 모든 구약 예언은 예수 크리스토의 수난/부활/승천과 성령강림으로써 완결됐기 때문.

따라서 교회시대엔 개인을 '대언자'라고 무게를 잡아 호칭하기보다 '대언은사자'라는 명칭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파울은 흔히 '5중 사역'(fivefold ministry, 에페소 4:11)이라고 불리는 것을 강조하긴 했으나, 그것은 코린토A서 12-14장의 맥락과 조화 안에서 논해질 수 있는 것이지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은사를 향한 부르심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뜻이지, 소위 '사도학교'와 '선지자학교'를 세운다고 누구나 사도가 될 수 있고 선지자가 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미래 예언이 퍼부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나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은 하나님과 성경의 뜻도 어긴 채 마구잡이식 사도/선지자들을 양산해 내는가 하면 마구잡이 미래 예언을 남발하고 있다. 

'선지자학교'라는 구약적 시스템(왕들B=왕하 2장, 6:1-7 참조)도 현대교회엔 걸맞지 않다. 은사는 성령님의 뜻이 개인에 따라 다르므로, 인위적 시스템을 통해 강제훈련 내지 주입될 수 없다. 다만 9은사가 뭔지 개인이 어떻게 성령님을 통해 발견하고 활용할지만 가르치면 된다.

[실상 오늘날의 '신사도'/'캔저스그룹'(예: 밥 조운즈, 폴 케인, 맄 조이너)식 대언자들을 무차별 양산해 내는 '예언자학교'란 개념 자체가 퍽 위험한 발상이다. 그 많은 예언자들을 복제해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결국 자기네 어젠다에 동조하는 엘리트그룹을 늘려 주권운동에 써먹겠다는 게 아닌가.
조운즈/케인/조이너가 모두 유럽의 '기사단' 등 정체모호한 비밀집단에 깊이 연루된 것만 미뤄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하늘처럼 받들어 모셔 온 서울 K 교회 등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주권운동이라는 미명 아래 싸탄의 메이트릭스에 뿌리박은 관련자들의 거대한 배후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파울의 계시에 의하면, 마땅히 신약대로 대언 은사를 비롯한 여타 은사들의 함양과 고취, 그리고 그에 대한 검증으로 끝나야 한다. 모든 대언은사자들은 다른 대언은사자들의 검증을 받아야 마땅하다.

대언 검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한 가지는 어떤 대언의 '권위'도 성경 말씀을 넘어 갈 수는 없다는 것. 이 말은 개인의 '예언'을 성경말씀처럼, 성경 권위와 대등한 양 절대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소위 개인적 '예언', '계시'를 주장/유포하는 사람들 중 자신의 말에 은근히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그다지 드물지 않다. 단적으로, '천국은 확실히 있다'의 저자, 주남 토머스가 그런 예.
이것은 이미 파울의 대언은사에 관한 교훈 밖으로 넘어간 경우다.  

신사도운동권, 대언자학교운동에서 우리가 보는 '예언'이라는 것은 이같은 성경적 원칙과 거리가 멀며, 오히려 구약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 더 든다. 그렇다면 이것은 통째로 진리가 아닌 것이다! 밥 조운즈를 비롯한 신사도운동권의 예언을 들어보면, 사도 파울이 강조한 대언은사자들의 건덕 중심 방향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미래'에 관한 것들이며, 그래서 오히려 교계 '점술가들'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과연 신사도들과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거 케이시, 진 딕슨과의 차이가 뭔지 궁금해진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명사들 중의 명사 빌리 그래엄은 점술가 딕슨을 '하나님의 여종'이라고 부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신사도운동은 일찍이 1940년대에도 초자연적인 은사를 추구하는 성향으로 보면 과히 멀지 않은 계열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일부 오순절 교단으로부터조차 경고 받은 문제인사들 중의 문제 인사 윌리엄 브래넘 류의 '제2물결' 운동과 흐름을 같이 한다.

이같은 '예언'들이 낳는 막대한 추정과 과오, 과대포장 등은 최근 필자가 분석해 본 대로 (플로리다에서 몰락한 캐나다 부흥강사) 타드 벤틀리의 일급 동역자라는 제레미/미란다 넬슨 부부가 K 교회의 B 목사와 그 동역자 일동에게 뿌린 '예언'에서도 성경모독/신성모독 등 치명적인 열매로 나타난다.
이들은 여러 모로, 신/구약 예언, 구약시대와 교회시대의 예언의 차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성경적/신학적 무지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니면 고의적으로 간과하고 있든지.

넬슨의 '예언'은 단지 그럴 듯한 짜깁기성 모방일 뿐, 성경적 정격성이 철저히 결여됐음을 반증해 준다. 넬슨의 '예언'은 K 교회 뿐 아니라 벤틀리, 그와 비슷한 노선의 캔저스 대언그룹까지 모두에게 성경적인 검증이 부재하며 사실상 그들에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여지 없이 밝혀 주고도 남음이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검증'/'분별'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위 들머리에 비친 것 같은 목적과 어젠다를 위해선 성경적인 검증 즉 사도 파울이 그토록 강조한 대언은사에 대한 검증도 사실상 불필요로 한다는 논리적 귀결이 나기 때문이다. 파울은 대언은사자의 영이 대언은사자의 영들에게 규제를 받고 검증을 받아야 함을 명언했다(코A 14:29). 그러나 신사도/대언자들의 검증이란 것은 어젠다에 따라 서로 입을 맞추고 서로 추켜 세우는 데 그친다.    

특히나 이들은 세력 규합을 위해 '예언'을 통하여 서로의 신격화, 명사 만들어 주기 내지 "붕붕 띄워 주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을 독자 누구나 느끼게 된다. 이를 위해 성경을 원의와 적용 범위, 컨텍스트 등을 무시한 채 아무렇게나 원용하므로, 교인들은 진리/비진리 분간에 큰 혼동을 겪는다. 실로, '엿장수 맘 대로' 하던 시절인 판관시대를 연상시킨다(판관들=사사기 17:6, 18:1, 21:25 참조). 

이에 따라, K 교회나 플로리다 부흥권 일각에서 벤틀리와 그와 노선을 함께 해 온 (근본주의자 밥 조운즈가 아닌, '캔저스대언그룹'의) 밥 조운즈가 얼마나 우상화 돼 있음을 우리는 절감한다. 상대적으로 이들은 자신들을 열렬히 추앙하고 절대 지지해 주는 한국의 B 목사의 신격화/우상화에 분분하고 있다.

주님 말씀대로, 우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이 참 대언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또 처음엔 그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옛 이방인 대언자 발람을 기억하는가?   

그에겐 실로 일종의 탁월한 대언 영감이 있었다(민수기 22:8-13). 심지어 그의 대언에는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표현들의 일부도 없지 않다(민 23,24장 참조). 그러나 그는 결국 바랔의 물질 공세에 승복해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미쯔라임 출국 시대 이후 최악의 종교적/육체적 간음 사건을 유발시킨다(25장 참조). 오죽하면 짐승에 불과한 자기 나귀에게조차 책망을 듣고 천사에게도 책망을 들었겠나(22:21-35)? 그러나 끝끝내 불순종하더니 끝내는 비참한 운명에 처해진다(예슈아=수 13:22).

발람은 역사에 길이길이 사악한 대언자의 표본으로 남아 있다(네헤미야 13:2, 미카 6:5, 페트로B 2:15-16, 유다 1:11, 요계 2:14). 그가 현재 지옥에 가 있음은 말할 나위 없겠다. 언뜻 탁월해 보이는 대언자도 잘못 까불리면 종국이 이렇게 된다. 그래서 대언자들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발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유다-이스라엘 남/북 연합군 출병 전 대언 사건도 기억하는가(왕들A 22:1-40, 연대기B=역대하 18장 참조)? 본래 슈무엘(사무엘)이 창건했고(슈무엘A=삼상 10:5) 북 이스라엘 대언자 엘리야-엘리샤 등이 이어 나갔던 대언자학교 출신인 제데키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국내의 내노라는 수많은 대언자들이 서로가 자신이 받은 영감을 갖고 사악한 왕 아합이 이끄는 연합군이 승리할 것이란 긍정적 예언을 신나게 발표했다.

그러나 의로운 대언자 미카야는 바로 이 수많은 대언가들 속에 미혹의 영이 들어가 작동했음을 밝히면서 주/야웨님이 알려 주신 아합의 결말을 목숨 내놓고 올곧게 예언한다. 미카야는 동료 대언자 제데키야에게 뺨까지 맞고 아합의 명령에 의해 아픔의 쓴 떡을 먹으며 지내야 했지만 결국 그의 예언이 성취됐다.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볼 것은 미카야를 제외한 모든 대언가들이 북왕국의 선지학교 출신이라는 점.  

그래서 중요한 것이 검증, 검증 또 검증인 것이다.

본격적인 신약시대인 교회시대 초기에도 우리는 종종 대언자들을 발견하곤 한다. 
아카보(행11:28, 21:10,11)는 그 대표적인 예. 그는 분명히 예루샬렘에 임할 극심한 가뭄과 예루샬렘에서의 파울 체포 사건을 예언했고 성취됐다. 그러나 아카보의 예언은 파울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긴커녕 오히려 파울의 반대 반응을 낳는다.
그뿐인가. 파울이 안티옼을 방문했을 당시 집사 필맆의 네 처녀 딸들이 모두 예언을 했다(행 21:8,9). 하지만 사도 파울은 그 예언 내용을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사도 파울은 이 예언자들을 추켜 주거나 신격화하거나 명사로 쳐주긴커녕 적당히 간과해 버린 듯 싶다. [교회 지도자들과 명사들에 대한 파울의 태도는 대범했다.]  

왜 그럴까. 그 중요한 이유는 성경을 우선으로 삼아, 모든 예언을 바른 대언자의 영이신 성령님과 및 성경을 통해 대조/검증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파울의 계시인 코린토A 14장에서 명백해진다. 

'최고의 선지자'? 대언개념의 남용

이제 문제인사들인 신사도들의 구체적인 예언 실례를 다뤄 보련다.

신사도들의 '대언'의 실례로서 K 교회(B 목사) 또는 그 사이트 공식 회원으로부터 떠난 일부 성도들로부터 연락과 제보를 받아 인용하되, 원문을 입수할 수 없어 해당교회측 자체 번역문만 옮긴다. 성경 진리를 위협하는 교계의 중대한 범과로써 지적하기 위해 비평/검증/경고 차원에서 인용하는 바이다.

K 교회는 "세상 신문에 거론되지 않는 영적 특종을 소개하는 난"(혹시 세상 언론에 문제점이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서는 아닌가?)에서 밥 조운즈 부부를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이 시대 최고의 선지자, 이 시대 최고 레벨의 선지자로 지극히 경하한다. 살아있는 전설? 시대 최고의 선지자? 조운즈의 많은 예언들이 엉터리라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무엇으로 그런 표현이 보장되는가? [-이 점에 대해선 댓글로 추후 보충하련다]

지난해 6월경 B 목사 일행이 미국 뉴저지/애틀랜타 등을 방문했을 당시, 밥과 바니 조운즈 부부와 첫 만남과 대담을 나눴다. 또다른 신사도/대언가인 숀 볼츠의 소개 이메일을 통해서였다. 이 대담에서 조운즈는 B 목사, 동행한 그 여동생 B 전도사, S 목사, O 목사 등을 위한 '예언'인가를 해 주었다.

이 내용에서..조운즈 예언에 담긴 자화자찬과 허장성세를 보라.

"제가 우크라이나에 가도록 허락을 받게 되면 당신들도 역사상 가장 큰 물결이 몰려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전세계를 덮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게 될 주님의 때가 언제인지를 25년이 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로 주님께서 저를 통해 만지실 다른 나라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 전체와 르완다, 그리고 한국입니다. 때가 있고 저는 그 때를 기다려야합니다. 어떤 곳은 제가 벌써 35년 이상을 기다려온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아주 가까와졌습니다."

위에서 조운즈는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가도록 허락 받으면, 역사상 가장 큰 물결이 몰려 온다고 선언한다. 사상 최대의 이 물결은 도대체 무슨 물결인가? 왜 조운즈가 그 물결을 이끌고 오는 것인가?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를 덮을 것이라고? 조운즈와 우크라이나가 도대체 뭐기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의아스럽고도 시건방진 소리다. 그런데도 조운즈를 모든 선지자의 아버지로 모시는 사대주의자들은 이 예언을 성경과 거의 다름없이 받아들이고 만다.

조운즈의 이런 허장성세는 계속된다.
주님이 조운즈를 통해 "만지실 다른 나라들"도 있다는 것이다. 주님이 조운즈를 통해 만져? 왜 하필 조운즈를 통해 만지셔야 했는가? 만지시면 어떻다는 것인가? 러시아 전체와 르완다, 한국을 조운즈를 통해 만지신다는 말인가? 조운즈를 통해 만져지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가?

때를 기다리다니 어떤 때 말인가? 때를 기다린다는 따위의 소리는 누구든 할 수 있는 소리다. 함부로 말해 놓고는 그 때가 오는지 이뤄지는지도 모르게 책임 안 지고 그냥 넘기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신사도들의 사후(事後) 오리발 내밀기 식 무책임성 예언들이 남발돼 왔기에 하는 소리다. 조운즈를 '최고대언자'로 받들어 모셔 온 사람들은 조운즈의 불발 예언에 대해서도 성경적으로 적절히 해명하고 변호할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렇다면 최고의 쪽집게 예언이라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성령님의 그릇과 도구가 아니다!   

"조만간에 북한과 중국을 향한 문이 열리게 될 것이고 그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란 따위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내던질 수 있는 말이다. 다만 조운즈 같은 명성만 결여됐을 망정.

조운즈는 이어, 중국이나 한국에 대한 '마지막 장'이 아직 쓰여졌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의 내용이야 어떻든 감히 그로서 언급이 가당키나 한 말일까? 자신이 다니엘 또는 사도 요한 아닌 다음에 말이다. 조운즈가 누군가? 여러 불발 예언과 성 추문으로도 얼룩진 문제성 예언가요, 맄 조이너에게 비밀단체 가입을 '예언'으로 권했던 사람이다.  "제가 믿기는 교회가 자신들이 가는 방향을 정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들이 주저앉게 되면 그들이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을 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일어나게 된다면 바로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이같은 말은 대언자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

조운즈는 또, 한국이 "중보와 계시 영역에서 부르심"이 있다며 지금이 그 부름에 반응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어떤 중보와 계시 말인가? 주권운동권이 밝히는 도시 '정복'과 소위 '성시화' 차원에서 하는 신디 제이콥스류의 신사도적 중보?

조운즈는 특히 "계시에 의한 중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사도/대언가들의 '계시'가 쐐기로 박혀 들어 갈 자리를 만들어 놓는 듯한 인상이다. 이 중보는 '단순기도'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 그럴 듯 하지만 성경엔 없는 문구다. 사도는 그 대신 성령이 시키셔서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아뢰는 방언기도를 하라고 권한다. 

거듭난 신자는 누구나 주님과 함께 한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대들과 함께.." 라고 주님은 못 박는다. 그렇다고 혼자 주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에 주님이 안 계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공동체로만 아니라 각 자 있는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관상가 벤틀리처럼 신사도운동권 일각에서 횡행하는 관상기도와 다양한 '천사'들의 영이 발현한다는 그런 만남이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인지도 묻고 싶다.   

조운즈는 이어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가 많이 행해져 과거 황폐됐던 것들이 회복되는 일들이 있어 왔다"고 주장한다. 공중바람처럼 막연하다. 무엇이 황폐됐고 무엇이 회복됐다는 말인가.

조운즈는 또 기도해 왔던 것을 응답 받는 '에스테르(에스더) 시대'에 가까워지고 있다면서 2년 내로 응답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향후 2년간이 전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인다.

'에스테르 기름부음'

에스테르 시대? 아마도 에스테르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놓고 모르데카이가 행한 금식기도를 뜻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구약적 금식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기도의 응답은 누구나 받는 것이다. 신사도운동자들의 기도만 응답된다는 법은 없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조운즈가 이제 언급하려는 다음 이것을 뜻했는지 안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전술한 대로 조운즈는 조이너에게 비밀집단 가입을 '예언'으로 적극 권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말기예언비전'(ETPV)의 샌디 워너는 중보운동을 위한 소위 '에스테르 기름부음'을 강조해온 사람이다( http://www.etpv.org/1999/behind.html ). 아울러 다이앤 브리스톨과 함께 고대 아둘람 동굴에 머문 다윋 군대와 같은 '동굴머뭄이들'의 기름부음도 강조한다. 아둘람 굴 언급은 B 목사를 위한 신사도 대언에서도 발견한다.

워너는 자신에게 강한 기름부음이 임하면서 안수한 대상에게 (안수는 안수자 자의로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반드시 대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중보기도를 위한 '에스테르 기름부음'이 부어졌고 비밀리에 준비됐기에 에스테르서를 읽으라는 대언을 했다고 1999년 3월 초순 올린 포스트에서 밝힌다. 그런데 올린 그날(3월2일)이 푸림제 날이었다.
푸림은 본래, 에스테르 왕후와 유대인들에게 도전한 페르시아-메데 총리 하만의 가문을 비롯한 7만5천명을 도처에서 집단 학살한 뒤 맘껏 축제를 즐겼다는 에스테르서 기록에 따라 유대인들이 지금껏 지켜 오는 기념명절로 현대의 전통 내용은 자못 세속적이다.

[푸림 축제의 핵심은 한마디로 반쉠족주의에 대한 유대인들의 보복이다. 즉 시온주의와 일치한다. 흥미로운 것은 에스테르 서에 단 한 번도 주/야웨/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 노래들의노래(아가)도 거의 그렇다. 그래선지 모르나 가장 늦게 정경화 된 이 두 권서는 성경의 다른 권서에 전혀 인용된 바 없다.]      

아무튼 워너가 언급한 날짜와 동일한 99년 3월2일. 캐티 월터즈의 포스트에 따르면, 월터즈가 전날밤(3월1일) 밥 조운즈와 나눈 통화에서 조운즈가 식탁에 나타난 '주님'의 비전 속에서 주님이 "나와 함께 기도해야 한다"면서 그해 7월1-22일 사이에 이스라엘 파괴를 노리는 '바실리스크' 영을 대적하는 중보기도그룹을 필요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운즈의 이른 바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라는 특수표현과 아울러, '에스테르 시대' 용어의 출처를 느끼게 된다. 또 겸손하고 숨은, 아둘람 용사들이라는 표현이 신사도그룹에 자주 회자되는 것을 본다. 

이에 따라 우리는 신사도운동가들이 전반적으로 히브리적/유대적/구약적인 것을 유난히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은 신사도운동가들이 여러 비밀집단에 연계돼 있다는 것과 비밀집단이 과거부터 찌온주의(Zionism)와 무관하지 않음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조운즈는 향후 2년간이 전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왜 아주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런 광역적인 '예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이런 것이라면 왜 밥 조운즈의 예언 같은 예언이 필요한지, 왜 그의 '예언'만이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또 올해(2007년)는 시편 107편 2절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 지어다"라는 '말씀이 강하게 주어지는 해'라고 선언한다. 흔히 듣는 이 성구의 말씀 자체가 귀할 뿐이지, 별 깊은 의미는 없는 표어이다. 과연 말씀이 강하게 주어졌는지 어쩐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 모르지만, 이들에겐 매년이 진리가 강하게 무시되는 해인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개인을 위한 예언 남발

대담의 이 부분에서 B 목사의 통역자/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듯한 S 목사는 조운즈에게 "모든 선지자들의 아버지 되시는 당신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등석 항공권을 제공해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제안을 한다. 
이같은 아부성 제안은 우상숭배에 가까운 찬사이고 대우이며, 지금껏 미국 영성이라면 엄마 젖을 빨듯 열심히 흡입해 온 한국 교계 특유의 사대주의 정신을 극적으로 반영한다.
이 제안에 대해 조운즈는 하나님이 한국으로 저를 초청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웃으며 지금은 미국 교회를 깨워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또 "한국만큼 위험한 곳이 미국"이라고 말하여 한국의 '위험'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이 은연 중 스며난다. 조운즈는 한국의 보수적 영성을 두려워하는 걸까?

조운즈는 또 이렇게 말을 잇는다.

"..저는 한국은 (주님께) 현재 필요한 적절한 반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은 살아 남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현재 일어나는 것으로 보면 미국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은 변화의 시기 가운데 놓여져 있는 것이지요."

한 나라가 살아남는다, 살아남지 않는다는 말은 일개인으로서는 매우 거만하고 위험한 말이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K 교회 측이 이처럼 대가 중의 대가, 고수 중의 고수로 알아주는 선견자/선지자/예언자/대언가인 조운즈가 B/S 씨가 목사인지, B 목사와 B 전도사와 남매 간인지 부부인지 같은 한국인인지, 같은 교회사람인지 첫 눈에 알아보진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일반인도 눈치껏 때려 잡아 알 만한 센스가 조운즈에겐 결여된 듯 보인다. 너무 영적이고 고상해선가? 족집게(?) 같은 '대언자의 아버지'라면서 오누이와 부부도 쉽게 구분 못하는가?

그런 '아버지'의 첫 말씀은 B 목사에 대한 인상이다. "눈이 아주 맑기에"(?) 명확한 말씀을 갖고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고 짚어 말한다. 가르침과 목사로서의 사역이 아주 정확하다고 말한다. 역시 누구나 눈치껏 할 수도 있는 말이다. 다만 구루 같은 말씨가 특이하다.

조운즈는 또 B 목사의 가장 높은 부름이 중보이고, 사람들을 가르쳐 중보자로 세우는 것이라며 가르침의 은사가 아주 강력하다고 추켜준다. 이 세대는 "계시적인 가르침이 전해져야 하는 때"라고 말한다.

성경대로의 가르침은 어떤가? 그런 가르침은 빈약한가? 안 그래도 요즘은 계시적/신비적인 가르침이 너무 많아 문제다. 말세의 말세인 이 시대는 거짓 예언과 예언자들, 거짓 이적들이 난무하는 시대란 것은 조운즈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켕겨서 적당히 무시하는 건 아닌가?

과연 B의 가장 높은 '부르심'이 중보인지는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혹시 B 목사의 가장 큰 '소명'은 신사도들 받들기와 명사 되기, K 교회 유일무이화, B 신격화는 아닌지?

조운즈는 그러면서 계시가 B 목사의 "영으로부터" 나온다며 이 계시적인 가르침이 사람들을 일깨워 새로운 열정을 갖게 하니 여러 나라에서 그 계시적 가르침을 풀어 놔야 한다고 부추긴다. '풀어놓기'(to release)란 말은 신사도들이 애용하는 낱말의 하나다.

성경계시가 아니고? 계시가 B 목사의 '영'으로부터 나온다. 음..계시는 본래 성령님으로부터 내려지는 게 아닌가? 헷갈린다. 긴가만가한 표현이다. 

조운즈는 또 성령님이 B 목사 안에 '잉태'시키시는 것은 "영으로부터 나오는 동의"라고 추상적인 묘사를 하면서 B 목사가 가는 곳마다 적절한 말씀을 전하게 되면 그 말씀이 그곳에다 강을 끌어 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강을 끌어 온다?

  Bob Jones: (Bonnie 사모님에게) B 목사님을 위한 말씀 받은 것 있나요?
  Bonnie Jones: B 전도사님에 대한 말씀을 받은 것은 있어요.
  Bob Jones: 받은 말씀을 나눠요. 나도 B 전도사님에 대해 받은 말씀이 있어요.

여기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정말 성령님을 통한 대언이라기보다 왠지 점술가들의 대화 같다는 것.

조운즈의 아내인 바니는 B 전도사에게 긍휼의 은사, 치유의 은사가 있다며 그런 말씀을 전하면 치유가 일어나되 사람에게 손을 댈 필요도 없고 B 전도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치유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장담한다. 물론 신유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과연 B 전도사가 그런지 안 그런지는 두고 볼 일이고..예수님조차도 자주 손수 안수를 하지 않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어머니?

이때 밥이 끼어들어 "전도사님도 한국에서 사역하시나요?"라는, 다소 뚱딴지 같은 물음에 이어 B 전도사 속에 '이스라엘의 어머니'와 같은 것이 있는 것을 "본다"며 가는 곳마다 그곳에서 어머니들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한다. 또 하와이를 가 봤냐면서 여러 섬들을 수차례에 걸쳐 가게 되고 거기서 은사들을 풀어 놓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내재되어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어머니'? 신사도운동자들의 특징이 이것이다. 엄청난 말을 마구잡이로 아무 데나 쐐기 박듯 갖다 박는 것이다. 아마도 이들의 '대언'을 듣는 사람은 기막힌 선지자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조운즈 같은 신사도인사들 주된 특징은 오순절계 사람들까지도 혀를 차고 마는 그 비진리성에 있다. 비진리성 대언과 이적은 다음 두 범주의 하나에 속한다.

1. 싸탄의 모방 내지 거짓 대언과 이적
2. 일시 주님의 이름으로 했다곤 하나 심판과 버림의 대상

예언의 대가, 조운즈의 못 말리는 헷갈림은 계속된다.

"..(B 목사, B 전도사) 두 분이 한 교회에 계신가요?

기막힌 대언자라는 조운즈는 시방 B 목사와 B 전도사를 부부냐고 묻는가 하면 같은 나라인가라고도 묻고 남매임이 이미 밝혀진 뒤에도 이젠 한 교회에 있냐고도 묻는다.

포승 속 추수꾼들

이제 조운즈 부부의 희한한 주장을 보자.

"두 분 모두에게 묶여져 왔던 것(holdback) 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대적으로 인해서 생겨난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두 분을 묶어 두셔서 두 분이 모든 에너지를 모으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묶여져 있던 것을 풀어 놓으실 때 강력한 것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Bonnie: "Lasso(올가미)가 무엇인지 아세요? 카우보이들이 쓰는 밧줄인데, 돼지 같은 것들에 씌우는 것이죠. 제게 그 올가미가 보입니다. 성령님께서 두 분을 올가미로 붙들어 두신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조운즈 부부는..성령님께서 B 목사와 B 전도사 두 사람에게 돼지 따위에게 씌우는 올가미 내지 홀드뱈을 걸어 온 에너지를 모으게 하셨다면서 이 올가미가 풀릴 때 큰 일이 일어난다고 예언한다. 상상이 가는가?
우리는 성경에서 올무/올가미/함정 따위는 모두 싸탄의 도구로 은유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조운즈는 "대적으로 인해 생겨난 일이 아니다"고 올가미 변호까지 한다. 

신사도운동 대언가들의 특징이 구약 대언자들을 흉내 내어 특별한 사물을 보는 듯 말한다는 것이다. 성령님은 올가미 따위로 사람을 포박해 두실 리가 만무하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엔 자유가 있다!  
조운즈의 대언은 기독교의 것을 이용할 뿐 점술가와 매우 비슷한 바가 있다. 어떤 것은 터무니 없이 엉터리이고, 일부만 대강 맞을(?) 뿐이다.

바니의 포박설은 계속된다. 이번엔 그물을 통한 포박이다.

"그런데 그물도 보입니다. 이 그물이 네 분 모두를 함께 일하는 연합의 자리로 불러왔습니다. 그 그물 안에서 네 분(=B 목사, B 전도사, O 목사, S 목사)이 추수를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함께 묶으신 것이지요. 대추수를 위한 그물을 함께 치기 위해서요."

둘은 올가미에 묶이고, 넷은 그물 안에 갇히고 묶인 채로 수확물을 거둬 들여? 참 우스꽝스런 광경이 아닐 수 없다. What an awkward and weird action! 그 추수 일이란 것, 참 하기가 어지간히 힘들겠다! 

바니가 그물 얘기와 추수 얘기를 하자 밥은 냉큼 (동석한 한국인) 네 사람이 모두 '추수꾼들'이고 B 목사와 B 전도사 모두 '대추수'를 위해 준비돼 왔다고 아내에게 가락과 장단을 맞춘다. 음, 포박을 통한 추수 준비라.. 추수를 시작하기 앞서 비틀거리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자유로우시고 인간을 자유롭게 해 오신 성령님이 왜 홀드뱈과 올가미, 그물 따위의 오라/포승을 통해 추수를 하려 하시겠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 예언자의 황당성 질문들

다음으로, 역시 일행의 한 명인 O 목사에 대해 "새 기대감"이 있는 것을 "본다"는 조운즈는 하나님이 요한복음 14장 14절 말씀을 방금 주셨다며 O 목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시라고 믿어진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14:14은 비단 O 목사뿐 아닌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다. 조운즈가 아닌 성령님께서 쓰신 성경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자 바니는 전날 아침인가 그저껜가 '이곳'으로 오는 길에 "Sea Food: all you can eat(해산물 뷔페)라고 쓰인 큰 식당 간판을 봤는데 실제로는 'see(보다) food' 라고 쓰여져 있었다고 귀띔한다. 그 식당의 아시아 음식들을 보며 "이번 집회—주제가 seer (선견자)였음—에 아시아인들에게 주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단다.

여기서 우리는, 범인(凡人)도 아닌 대 예언가가 특정 식당이 있는 도로를 자기가 걷던 것이 어제 아침인지 그저께인지도 잘 분간을 못하고 헷갈린 모습에서 대 예언가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가고 헷갈린다. 그리고 예언가임을 의식해선지 삶의 주변의 모든(?) 것을 주로 예언과 이리저리 연결시키고 갖다 붙이며 써 먹어야(?) 하는 실상이 안쓰럽다.    

그러면서 바니는 다시 예의 황당성 물음을 던진다. "모두 한국에서 오셨나요? 제가 아시아 지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둘의 황당성 물음은 끊이지 않는다. S 목사를 위한 조운즈의 예언 첫머리는 이렇다. 

"목사님 아니시죠? 목사라구요? 제게는 목사보다 복음전도자로 보입니다."

거듭되는 이런 황당성 질문은 거의, 조운즈가 자신의 투시력이 평범하지 않고 남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고의적인 제스처로 보인다. 왜 그런지는 다음 문장을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제가 보기에는 현재 부르심이 목사이지만 다음 단계에서 주님이 주시는 위임은.."

방금 우리는 조운즈가 S 목사를 "목사님 아니시죠? 목사라구요? 제게는 목사보다 복음전도자로 보입니다." 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불과 몇 초 후 조운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목사가 아니라면서 현재 부름이 목사인 그런 부름과 예언도 있는가?! 이건 개 몸통에다 소꼬리를 단 격이다.

조운즈는 계속해서 S 목사에게 예술의 은사가 있고 복음전도자의 사명이 있으며 말씀을 준비하지 않아도 갑자기 내려꽂히듯 순식간에 임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S 목사가 과연 그런지 어쩐지는 두고 볼 일이겠다.

이제 바니가 다시 끼어드는데..S 목사가 대언자 나탄 같고, 아무도 멈출 수 없는 그런 차세대인 "슈퍼맨, 슈퍼우먼"을 길러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과연 그 슈퍼맨과 슈퍼우먼 세대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세대일까? 아니면 이들처럼 진리를 마구 유린하는 세대일까? 후자이기가 더 쉬울 터이다. 이들의 '예언'이 보여주는 비성경성을 보면 오히려 암담한 세대일 것이다. 안 그래도 미국의 젊은 떠오름교회(emerging/emergent chuch)와 떠오름세대가 그런 뉴에이지적 혼합영성을 보여 주고 있다. 아마도 타드 벤틀리류의 영성과 과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합석한 일동이 기념활영을 하기 전 조운즈는 다시 황당성 질문을 던진다.

"네 분 모두 한 교회를 섬기시나요?"

대선지자라는 조운즈 부부의 예언에서 느껴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들이 많고 그대로 성취되지 않더라도 별 책임을 지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O 목사는 조운즈가 말한 B 목사의 계시적 가르침에 대한 예언은 너무나 정확하다고 찬탄하며 B 목사의 계시적인 말씀을 쓴 책이 현재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밝힌다.

그런데 필자는 "계시에 대한 정확한 가르침"을 책으로 쓰는 B 목사와 그 일행이 밥 조운즈 같은 인물을 모든 선지자의 아버지로 받드는 점, 비진리 투성이인 벤틀리를 대부흥사로 알고 플로리다로 찾아가고 벤틀리의 파견대사 격이고 동역자인 넬슨의 황당무계한 신성모독 발언을 잠자코 수용한 점, 온갖 말세적 비진리의 표본 같은 신사도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현상, 이들의 명사 떠받들기 및 빚어주기와 서로서로신격화에 급급하는 모습 등을 볼 때, '정확한 가르침'이란 수사가 무색해 진다.   

B 목사 측근들은 나름의 '정확한 계시의 가르침'을 자화자찬하며 머물게 아니라, 시방 무엇보다 성경 진리에 대한 정확한 배움이 필요할 때라 보여진다! 필자가 듣는 K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은 "신사도복음의 안개 속을 헤메며 누비지 말고 성경진리로 되돌아 가라"는 것이다. 

조운즈의 숫자게임

조운즈 부부와의 이 만남의 끝 무렵 B 목사는 조운즈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한다. 내용인 즉, 조운즈가 죽은 사람들의 3%만 천국에 간다는 말을 했는데 단지 그 당시의 퍼센티지인지 아니면 평균적인 것이고 지금도 그러냐는 것. 

이에 대해 조운즈는 32년전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갔을(?) 당시, 세계 전체인구의 3% 아닌 2%가 천국에 가고 있었다고 수정해 주면서 "지금은 뒤로 더 물러났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조운즈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되돌아왔다며, 이때 주님이 조운즈가 "(땅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10억의 사람들을 돌리시는 일을 시작하시겠다고 하셨단다.
이 말이 울려 주는 변죽은 10억 인구의 구원이 조운즈의 예언 내지 언행에 달린 듯한 느낌이다. 

그러면서 조운즈는 전세계 인구의 6분의 1(10억 내지 10억 이상)이 갑자기 교회로 들어 올 것에 준비되고 있다며 2020년까지 일어날 그 큰 역사가 2007년 6월 6일에 이미 시작됐다고 선언한다.
[여기서..조운즈는 6이란 수를 되뇌고 있음을 눈여겨 보게 된다. 6분의1, 6월 6일 등을 이으면 666이 된다. 6은 헤르메틱스/신지학/카발라/오컬트/프리메이슨리 등에서 퍽 숭배/애용되는 숫자이다. 2007이 2+7=9가 되지만 9라는 수 역시 그렇다. 66을 6으로 나누면 11이 된다. 2020 역시 11과 무관하지 않다. 11 역시 메이슨리에서 매우 중시되는 수다. 각종 비밀집단과 연루된 신사도운동자들에게서 이런 숫자의식 현상을 우리는 자주 발견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길 32년간 기다려 왔다는 조운즈는 선언한다. [ 3+2=5, 3x2=6, 5+6=11, 이런 숫자가 오컬트에서는 매우 중시된다.]

"지금부터 2012년까지는 추수꾼들이 (교회로) 들어오는 시기입니다. 2012년부터 2020까지는 한꺼번에 10억이나 되는 청소년들이 (교회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운즈는 2007년 6월6일부터 2020년까지 세계인구의 10억, 2012년부터 2020년까지는 세계 청소년 10억, 그래서 도합 20억이 2020년까지 갑자기 주님께로 돌아오고 교회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 여기서도 20/20/20 즉 2+2+2=6이라고 합산된다. 청소년의 연도를 합하면 (2+1+2)+(2+2)=9가 나온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필자의 추정일 수도 있음을 전제한다. ]

과연 2020년까지 그런 엄청난 숫자가 한꺼번에 주님께 돌아올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 신사도운동자들이 주장하고 추진하는 그런 비진리성 복음전파라면, 매우 회의적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전도와 개종이 과연 성경대로의 순수한 것이겠는가?

윗 글의 원문과 관련 삽화: 
http://www.usaamen.net/bbs/zboard.php?id=ssq16&page=1&sn1=&divpage=1&sn=on&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7



입신 체험담은 모두 진리인가?

신사도운동과 함께 소위 '입신'(入神)에 관한 담론이 부쩍 늘고 있다.
여기저기 입신 얘기들이 난무한다. 하기야 주남(Choo) 토머스의 빈번한 천국 왕래담 베스트셀러로부터 새로 '신 사도'직에 오른 토드 벤틀리의 '영계' 출입담, 그가 영계에서 만나 크게 감화 받았다는 순다르 싱의 지옥/천국론, 더 나아가 싱이 영계에서 만났다는 엠마누엘 스베덴보리의 저작물까지 모두 나름의 입신이란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밥 조운즈나 맄 조이너, 기타 신사도운동권의 예언자들의 '예언'이란 것들도 모두 그렇다.

그래서 요지경 같은 입신의 세계를 심층 탐사해 보게 된다.
이 칼럼을 다음 순서로 진행하련다.

    입신의 개념과 성격
    참과 거짓
    한국 이단사의 뿌리는 '입신' 체험
    입신과 여성
    금과 보석-현대판 골드러쉬
    대다수 입신 기적의 또렷한 비성경성
    입신 체험담 분석 예


입신의 개념과 성격

요사이 크게 쟁점화 돼 온 한국 신사도운동의 기수, K 교회의 B 목사가 안수를 하면 많은 교인들이 입신을 한단다. 물론 과거에도 그런 목사나 부흥강사들은 많았다. 

과연 그 모두가 성경적인 바른 입신일까? 신사도운동권에서 주장하는 예언 등 초자연적 요소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입신이 100% 순수하고 참되다는 가정 하에서 마구 받아 들여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실상 그렇지 못하다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현재 베스트셀러가 돼 있는 토머스의 '천국은 확실히 있다'(제목은 맞는 말이다)는 비성경적인 요소가 숱하게 드러나는 문제투성이 책이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은 성경과 일치한 부분이나 그럴 듯한 얘기들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어릴 적부터 입신 얘기를 많이 들어 왔다. 1950년대 중반에 한국교계를 휩쓸다시피 했던 박태선(훗날 전도관/신앙촌/천부교 교주) 집회에서도 입신은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책이나 소책자에 있던 잘 생긴 박태선의 얼굴을 보고 기억한다. 당시 미국 부흥강사들의 번역된 서적에서도 입신 얘기는 발견되곤 한다.
필자가 좀 더 자란 뒤 어머니는 소녀 '순이'가 입신해 하늘과 지옥을 봤다는 내용의 엷은 책을 읽곤 했다. 나도 몇 번 읽은 기억이 흐릿하게 난다. 무척 순진해 뵈는 소녀의 사진을 보며 당시는 그러려니 했는데, 훗날 추사(追思)해 보니 상당히 비성경적인 내용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입신의 개념과 실재를 우리가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성경에 따르면, 사도들인 페트로, 파울과 요한도 입신 내지 입신에 가장 가까운 현상들을 체험했다. 고대의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제키엘(에스겔) 같은 대언자들도 입신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것은 모두 성경 계시를 보여 주시려고 전적으로 성령님이 이끄신 것이었다는 데서 우리는 100% 확신할 수가 있다.

여기서 과연 입신이 뭐냐란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입신은 한 마디로 영계를 드나드는 신비 현상이다. 그게 어떤 상황인지는 사도 파울조차 막연하게 표현한다(코린토A 12:1-4). 즉 필설로는 이루 형용하기 어려운 신비적이고 황홀한 상태다.

파울의 진술로 보아, 그것은 성경계시를 위한 일종의 전초 단계 내지 도구임이 명백하며 오직 성령님의 뜻에 의했을 뿐 결코 인위적인 체험이 아니다. 더구나 간증하거나 자랑 삼거나 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체험을 자랑하는 당대 인사들에 대해 자신이 부족하지 않다는 의도로 성도들에게 이른 바 '맛뵈기'로 보여 준 것일 뿐(코A 11장 후반과 12장 앞부분 참조).  

입신을 가리키는 낱말로 trance, trans, translation 등이 있다. 여기서 트란스란 '벗어나서', '저 너머(beyond, out there) 세계' 등을 가리키는 라틴어다. 뉴에이지성 초자연적 무아지경, 황홀경을 뜻하는 '트랜스'란 이름을 딴 음악과 음악그룹도 있다.

앞서 잠깐 비쳤지만, 입신은 쉽게 말하면 신령한 세계 즉 영계에서의 환상/비전/신탁 등 계시나 또는 계시로 믿는 것들을 향한 전초단계 내지 방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입신은 예언과도 직결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모든 낱말과 개념들이 심령술/뉴에이지에서도 고스란히 쓰인다. 일종의 마녀였다가 신자가 된 조해너 마이클슨 여사의 전(前) 뉴에이저(New Ager) 경력에도 트랜스 현상은 엿보인다.

그런가 하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끄는 하워드 피트먼의 이런저런 책에서 입신은 기본이다. 오순절계 명사 케닡 헤이긴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방편의 하나로 입신을 꼽고 있다. 그러나 헤이긴은 인위적 입신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요 교계 신비주의 명사들의 입신 회수는 상상을 초월하게 잦아지고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부쩍 더 활개치는 신사도운동자들의 입신은 밥 먹듯 떡 먹듯 하고 있다. 전술했듯 요즘 입신이 부쩍 다시 유행하는 건 주로 신.사.도.개.혁.운.동. (NAR) 탓이다.

여기에 우리의 혼동과 난감함이 있는 것이다.

참과 거짓

뉴에이지에서 자주 논해지는 트랜스는 온갖 인위적 또는 자연적인 수단이 동원된다. 수면제/환각제 사용으로부터 최면술, 영매와 강신술, 유체이탈현상(OBE/OOBE), 근사체험(NDE), '별세투사'(astral projection), 심지어 컴퓨터 전자기술 등 온갖 수단들이 쓰인다.

그런데 그런 트랜스의 결과가 때로는 기독교계에서 말하는 영계 체험과 비슷할 경우가 있다. 이에 따라 뉴에이지의 영계 체험과 기독교의 입신의 경계선이 흐릿해지는 수도 드물지 않다.
많은 경우 아직도 뉴에이저들의 '낙원' 내지 '천국' 기행을 마치 기독교계의 체험과 똑 같이 받아 주는 예가 흔하다. 예를 들면, 몰몬교도/종교다원자/보편구원론자 베티 이디의 베스트셀러-'빛에 싸여'(Embraced by the Light)가 그렇다.
빌리 그래엄이 점술가 진 딕슨의 온갖 뉴에이지적 초자연 체험에 정격성을 부여해 주고 아무 검증 없이 '하나님의 참된 여종'으로 인정해 준 사례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래서..분명히 성령님이 이끄시는 입신과 악령이 카피하는 입신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느끼게 되며 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필수적인 검증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타의 입신 경험을 성경과 성령님의 슬기로 헤아리고 가려야 한다. 더구나 요즘처럼 입신자가 부쩍 늘고 있는 시기에 우리는 입신의 성경적 개념을 확고히 해 놓지 않으면 자칫 미혹 받기가 쉽다.

혹여 참된 입신으로 100% 확신(?)되는 체험에 있어서도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원칙을 따라야 한다. 바로 대 사도 파울의 겸허한 태도다. 파울은 자신이 겪은 입신이 몇 회 였는지조차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 아마도 한 두 번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계시로 진술한 내용 외에는 자랑하지 않고 감추기를 원한다. 한 마디로 파울의 천국체험 기록은 심플하다. 왜 심플한지 필자는 알 것 같다.  

입신자는 설령 자신의 체험 신빙성이 성경적으로 100% 검증된 것이라고 할지언정 그것을 내세우거나 자랑할 일이 아니다. 성경 같은 수위의 기록계시가 아닌 이상 계시화 하고 드러낼 것이 아니라 감추고 덮을 일이다. 더구나 멋 모르고 자랑하다가 추후에 비성경성이 드러날 경우 창피하며 본인의 명예와 및 신용과도 직결된다.

그런데 오늘날 입신 체험이란 성경적인 검증도 채 하지 않은 채 모조리 간증 이상 성경과 맞먹는 수준의 기록계시처럼 드러내어 마치 자기네만 참된 무리이고 교회인것처럼 공공연한 선전홍보 수단으로 써 먹는 교회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내용상 퍼시 콜레이나 토머스처럼 비성경성이 두드러질 때 문제가 커진다. 콜레이의 경우, 영 분별력과 검증력이 탁월한 교회에서도 무수히 속아 넘어 갔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만큼 츠리키(tricky) 했다는 얘기다. 

더욱이 요즘은 한국 일부 지도자/사역자들이 입신을 통해 자신의 명성을 드러내고 교인들을 "긁어" 모으고자 인위적/고의적이고 날조된 입신 행위를 일삼기도 한단다.
사실 입신조작은 마음만 먹으면 쉬울 수도 있다. 각본대로 잘 외워 그럴 듯이 연출만 하면 된다. 마치 영상이나 가상실제가 정말 실제로 착각되는 경우와 흡사하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신자들까지도 자칫 깜박 넘어 가게 조작한다는 말이 나돈다. 그런 가증스런 착상과 발상을 실천하는 자들에겐 하늘로부터 저주가 있을 것이다.

입신엔 돈도 개재된단다. 한 웹사이트는 "양심에 화인 맞은" 몇몇 목회자들이 거짓 입신을 증거한 집사/전도사들을 통해 교회 안에 정착시킨 교인 1인당 평균 20만원-40만원씩을 쳐서 해당 집사/전도사들에게 수당으로 준다고 고발하고 있다. 초등학생일 경우 1인당 5만원, 중고등학생일 경우 7만원씩 쳐서 준단다. 물론 어느 정도 근거 있는 말인지, 사악한 매도인지는 몰라도 그런 말이 나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참으로 가증하고 저주스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이단사의 뿌리는 '입신' 체험

한국교회 초기 이단사의 뒤안길에서도 입신 담론이 심심찮게 발견된다.
한국계 이단들의 원조 격인 문제종교 인사들 대다수가 입신과 밀접하게 연루돼 있다. 지금도 '통일교' 인사들의 괴이한 저승 입신 체험은 자주 회자된다. 심지어는 저승에 가 있는 모든 악인들까지도 문선명을 찬양하고 있다는 황당한 내용이다. 사실은 문제 종파가 거의 입신이라는 초자연 체험의 빈도에서 출발한다. 그래야만 기본적으로 추종자들을 끌어 들이고 영입할 '영권'이라는 권위적 바탕이 서기 때문이다.

1.
한국 교계 초기의 문제인사, 김성도(金聖道) 여인(훗날 권사).
평양 출신인 그는 17세 때 평북 철산에 있는 27세 연상의 부자 정모 씨와 결혼하지만 (당대엔 조혼이 관행이었다) 손위 둘째 부인의 모진 구박 탓에 병까지 얻어 고생한다. 그러다 어느 전도사를 만나 교회까지 갔지만 자식이 병들어 죽은 뒤 비로소 예수님을 믿게 된다.

엄격한 유교 가정의 늙은 남편에게 박해 아래 예수를 믿던 중 결국 3백석꾼의 재력으로 창고 안에다 멍석을 깔고 행려병자들을 이끌여 들여 먹이고 재우고 돌보면서 무릎에 굳은살이 배기도록 기도를 한다. 심지어 환자나 걸인들을 손수 씻겨 주고 입으로 고름을 빨아 내어 병을 고쳐 주곤 했다.

아마도 여기까지는 그녀가 이른 바 '성자'에 가까운,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고들 평가할 것이다.

그러던 1922년은 김성도의 삶에 중요한 전기가 된다.
어느 날 '세계 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중 입신을 한 것. 그녀의 손자가 자기 아버지에게서 들은 말이 전달된 데 따르면, 입신 도중 '예수님과의 대화'를 나눴단다.
안 그래도 당시 교회 목사가 성추문으로 고발된 사건으로 고심하던 차, 이 '대화'를 통해 "죄악의 뿌리는 음란이다"는 '예수님'의 대답과 함께 "재림 주님이 육신을 쓴 인간으로 한반도에 온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시 대화 내용을 적은 필기본이 길이2mx폭30cm 짜리 종이로 12쪽 분량이었단다).     

한국교회 초기의 이 입신 체험에서 우리는 심상챦은 중대한 문제점들을 금세 발견한다. 비성경성이 두드러지면서 그녀의 신비체험의 정격성이 즉각 의심된다. 김성도의 이 체험은 왠지 통일교 원리의 원죄강론 및 소위 '피갈음'교리, 문선명 '재림주 설'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 실은 그 원조요 뿌리라는 느낌을 갖는다.   

아닌 게 아니라 김 여인의 이 설화는 통일교 역사편찬위의 '사보'(史報)에 중요한 전거로 수록됐다. 김성도가 받은 12가지 '계시' 중 중요 부분을 간추리면,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구름을 타지 않고 육신을 쓰고 한국에 올 재림 주님, 선악지식나무의 열매는 (진짜) 과일이 아니며 타락은 (잘못된) "사랑 행위"였다는 것, 남녀의 결혼은 참 결혼이 아닌 '거짓결혼'이므로 하지 말아야 하고, 주님은 '새 혈통'을 세우려 오신다는 것 등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의 통일교와 박태선의 천부교의 뿌리를 보게 된다. 거의 1세기를 지배해온 이단 사상이 김성도의 입신에서 비롯된 셈이다! 김성도는 훗날 돌보던 환자들로부터 '새 주(主)'라는 말을 듣고 처음엔 만류하다 마지 못해 받아 들이며 남편 정씨가 임종시 아들들을 모아 놓고 "네 어머니가 바로 주님이시니라"고 유언을 남기자 '새 주'로 자리매김을 한다. 

그리고 훗날. '원산신학산'(元山神學山)이라는 학교를 운영하던 신비주의자 백남주 목사는 추종 여신도 김정일과의 동거 생활로 추문이 일자, 철산의 김성도 여인을 찾아가 1935년 봄, 그곳에서 '성주교회'를 세우는데 일명 '새주교회'로도 불렸다. 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김성도 여인은 12 제자를 뒀고 기도 끝에 "새 주님의 이름"을 달아 가며 기도했다.    

2.
초기 이단과 연계된 입신 체험은 비단 김성도 뿐 아니다.
여신도 유명화(劉明花), 이유신(李維信)도 있다. 1932년 1월28일, 함경남도 원산의 한준명 목사가 평양에서 30일간 벌인 '입신강신극'(入神降神劇)에 연출/동원된 이들은 입신을 통해 소위 '접신녀', '강신녀'들로 이름을 떨쳤다.
장로 박승환의 아내였던 유명화는 자신에게 "예수가 임재했다"며 외양을 예수 비스름하게 꾸미고 곳곳에서 '강신극'을 연출했다. 비신자 가정 출신으로 열심히 믿다 보니 신비주의로 쏠리게 된 것.

감리교 신비운동의 선두주자 이용도(李龍道) 목사는 간혹 일각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받지만, 그의 결정적인 흠결 한 가지가 바로 유명화의 '예언'이란 것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유명화는 (신비주의자 이호빈 목사와, 전술한 백남주 목사의 소개로) 이용도를 만난 자리에서 "예수 가라사대.."로 시작, "용도야, 너는 내 교회를 세워라. 이 놈! 네가 교회를 분립치 않으면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엇이냐?"고 호통 비슷한 걸 쳤다.
이용도는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복했고 급기야 유명화를 '주여..!'라고 부르기까지에 이른다(훗날 이용도는 이호빈에게 유명화가 주님 자신이어서 그랬던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것은 모두 입신이 낳은, 근실(近實) 체험에 대한 무지와 무검증의 소산이다. 입신이란 것이 성경적으로 얼마나 철저히 검증/규명돼야 하는가를 반증해 준다.

'접신녀' 이유신은 처녀 때 악령이 지펴 고생하다 부흥회에서 신유 체험 끝에 예수를 믿었지만 열광적 신앙과 신비주의 경향이 두드러졌다. 유명화를 중심한 소위 '원산파' 신비주의 그룹과 새주교회의 사상은 훗날 김백문에 의해 종합되어 문선명에게 전수된다.  
아무튼 이들에게서 현금의 JMS파 교주 정명석까지 이르는 다양한 '피갈음' 계 '재림주' 이단들이 파생/발흥한다.

입신과 여성

구약 대언자들과 교회 초기교회 사도시대 입신 체험자들이 모두 남성이었던 것과는 달리 현대엔 입신 체험이 유난히 여성들에게 많다는 사실도 우리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것이 본래 하나님의 계획된 뜻이었나? K 교회 입신 케이스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관측컨대, 여성들은 남성들보다는 다분히 더 감성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해 황홀한 신비주의 체험에 이끌리는 경향이 더 강하고 그 내용도 모두 진리로 받아 들이고 믿는 성향이 다분하다. 즉 여성은 남성보다 이런 분야에 극히 민감한 만큼 더 vulnerable 하다는 현실이다. 이것은 특히 최근 K 교회에 난무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입신 간증에서 느낄 수 있는 면모이다.  

‎이는 또, 남성이 거의 절대지배권을 갖던 중세 카톨맄 시대와 그 후대에도 베아트리스 반 나자렡, 잔 다르크, 노르위치의 율리안, 아빌라의 테레사, 마르그리트 포레트, 빙엔의 힐데가르트, '쉽튼 수녀'(어설라 사우테일), 시에나의 카타리네, 브라반트의 하데비치, 마저리 켐프, 애나 킹스퍼드, 마케이트의 크리스티나, 마담 귀용, 안나 카타리나 에머맄, 테레세 드 리시외 등 수많은 신비가/관상가 여성들의 무수한 입신 체험들이 일각에서 중시되는 데서도 느끼는 점이다. 

그러나..우리는 구약 여성들과 마리아/엘리자벹 등 성경 계시와 직결된 신약 초기 여성들 외에는 여성들의 신비체험이 거의 기재되지 않은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라투스의 아내가 예수님에 관한 꿈을 꾼 정도가 고작이다(마태 27:19). 그마저도 계시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하다 못해 거짓 대언자 발람의 말들도 계시로 기록된 일은 있지만(민수기 22-24장 참조).

사도 파울과 동역자 루카는 초기 예루샬렘 교회 전도자/집사 필맆의 네 처녀 딸이 모두 대언자인 사실을 언급했으나 그들의 예언을 조금도 인용하지 않는다(행전 21:9).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여성에 관한 파울의 교훈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필자는 결코 성 차별주의자는 아니나,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 1980년대에 미주한인교계를 누비며 활약하던 유명 부흥강사, 모 목사. 소속 노회에서 '여성 예언자' 이슈로 크게 문제시 된 인사다. 그의 N 교회 뉴욕집회에 참석해 본 일이 있다.
한 여성이 교회 바닥에 누워 새벽까지 입신 중인데 주위에 퍽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녀가 '천국'에서 들려 주는 말 내용인즉, 뭔가 좀 근지럽고 이상했다. 그런데 곁을 지나던 문제의 강사 자신이 그윽히 미소를 짓고는 "할렐루야.." 하고 한 마디 인사말 비슷한 것을 던지며 지나가는데, 이때 여인은 그를 향해 제3자가 하는 듯한 아부성 찬사를 던지고 있었다.

필자는 그때 직관으로 이 강사의 문제가 뭔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을 몇 년 후 필자가 다니던 미국인교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금과 보석-현대판 골드러쉬

영 분별 은사자들에 따르면, 영계에 떠도는 존재들 중 '예제벨 영'(Jezebel spirit)이라는 게 있다는 설이 보편지배적이다. 구약시대 아합 왕과 그 아내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 영이다. 엘리야의 기름부음과 대치되는 이 영은 교회에서 거의 반드시 여성들 특히 여성 '예언자'들을 통해 부정적인 사역을 한다. 처음엔 긍정적으로 보이나 전체 교회의 파국을 조장, 야기한다. 실제로 그 미국인교회에서 과거 그런 위기가 있었다.    

여성 영들은 예제벨 영만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근래 '여성 천사' 얘기가 부쩍 늘고 있다. 플로리다 부흥의 기수 타드 벤틀리는 '여성천사' 엠마의 기름부음을 받았다고 강조해 왔다. 엠마 얘기는 벤틀리의 것만은 아니며 밥 조운즈, 맄 조이너 등 신사도운동권 캔저스시티 '예언자'들에 공통된다. 최근 확보된 자료에 따르면, 제프 잰슨도 엠마 영의 방문을 받았단다.

'여성천사' 얘기는 입신과 현실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마이크/캐리 브라우닝 부부도 '여성 천사'와 연루돼 있다. 캐리는 벤틀리 홍보에 앞장서온 '여예언자' 패트리셔 킹의 '극단적 예언 TV'에 나와 부부가 감독자로 일하던 게이트웨이 교회의 부부신자 테리/제리 부부로부터 들은 간증을 전했다. 내용인 즉 하늘에서 여성 천사가 자기 집앞 잔디밭에 보석을 뿌려줬다는 것.

처음엔 여섯째 보석이 떨어지기까지 원인을 몰랐다가 일곱째 보석이 떨어진 순간 금발의 여성 천사가 떨어뜨린 장면을 목격했고 그 순간 여성천사가 방긋 미소를 짓더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방금 하나가 또 떨어졌다고 잔디밭 위를 가로질러 달려가 주웠는데 언뜻 보기에 그것은 큼직하고 값싼 자주 라인스톤(rhinestone) 같았다. 자연석이 아닌 다듬은 형태였다.

보석을 줍는 순간 테리의 머리 위엔 금가루가 뿌려져 번쩍였다. 테리의 간증에 따르면, 실은 이미 엄청난 양의 금가루를 씻어 하수구로 내려 보냈고 심지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서 식사할 때도 음식에 금가루가 내린다고 밝혔다. How glorious(?)!

비슷한 온갖 '기적간증'에 따르면, 금가루 기적은 손에서 실제로 뚝뚝 듣는 기름, 또는 하늘에서 하늘하늘 날아 내리는 비둘기 깃털 같은 '성령님의 깃털'(성령님의 깃털이라..?)과 병행되기도 한다. 또 과다체중 여성의 살이 즉각 빠지는가 하면, 기적적으로 머리털이 자라고 지갑 속과 은행계좌에 없던 현금이 갑자기 생기며, 모임 때 갑자기 '만나'가 뿌려지는 역사가 마구 일어나고 있단다. 우리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런 기적들은 카톨맄의 소위 '성모 발현'과 함께 온 세상에서 갈수록 두루 늘어 갈 것이다. 특유의 기적을 믿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기적은 늘어간다.  

테리/제리의 간증에 감화 받은 제프 잰슨은 꿈 속에서 똑 같은 여성천사를 만났다. 이름도 들었다. '엠마'였다. 엠마의 임재는 수년전 밥 조운즈와 오리건 주 레드먼드의 랜디 디메인 목사도 예언한 바 있다. 여성천사에 대해 갖는 신자들의 반감에 대해 패트리셔 킹은 제카리아(스가랴서) 5:9를 대며 반론을 편다.

킹은 악령들도 타락 전에는 아름답고 선한 천사였고 잠언에 나타나는 지혜는 사실상 여성천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혜를 '소피아 여신'으로 보는 뉴에이저들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재정난 돌파, 금과도 연관된 아름다운 '여성천사' 엠마..이 엠마가 근래 전세계를 휘잡아 온 금가루/금니 등 '골드러시' 기적의 장본인이란 결론이 서게 된다.

[ 사족같지만, 흥미롭게도 타드 벤틀리는 최근 이 엠마가 실제로는 '남성천사'라고 바꿔 말해, 천상세계에서도 성전환이 이뤄지냐는 중대한 의혹을 제기해 줬다. 혹시 여성으로 보이는 남성 즉 '동성애 천사'는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천상계에도 혹 LGBTS 그룹이 있다고 주장할 사람이 앞으로 나타날는지 누가 알겠는가..하기야 이 희한한 기적계에서 뭔들 못하겠는가! 바야흐로 초자연적인 (헉슬리의 책 같은) '굉장한 신세계'가 우리 가까이 전개되고 있다. ]

아닌 게 아니라 캐리 브라우닝의 웹사이트에는 2007년 5월 어머니날 주말에 수많은 '신유'와 함께 금가루 현현, 금니(치관 또는 충전재), 즉각적인 체중감소, 남성의 모발증가와 함께 몇몇 사람이 직접 천사들을 봤다는 간증이 떠 있었다.

이것을 5월7일에 간증한 집회강사 한 명이 데이빋 허작(David Herzog, '글로리존'/영광지대 대표)이었고 이것을 방영한 사람이 요즘 한창 뜨는 싣 롵(Sid Roth)이다. 허작은 롵의 인터뷰 질문에 대해 하늘의 모든 것이 땅에도 올 수 있고 영광이 현실화 되고 있어 기적을 체험해 왔다며, 특히 자신도, 보라빛을 선호하는 어린 딸(7세)의 눈물의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에서 큼직한 보라빛 보석을 받았다고 답했다.   

허작은 이 '황금소나기'(골든샤워)의 점수를 죽은 뤁 헤플린(Ruth Ward Heflin)에게 돌리면서 극찬했다. "그분은 하나님의 여성이요 여예언자이십니다. 그토록 강한 영광 가운데 역사하시면서 그분의 삶과 주변에서 정말로 다른 종류의 이런 영광의 계시를 우리가 맛봤습니다. 여기서는 사람들을 일일이 만질 필요 없이 영광이 그냥 내려 옵니다."
흠..고인에게 찬사를 돌린다..? 아무튼 여성 영, 여성천사, 여성예언자..이들 유다른 여성 코드에 유의하기 바란다.

그런데 위에서 허작이 한 가지 빠트린 게 있다. 그것은 바로 뤁 헤플린이 데려온 금빛 찬란한(?) 브라질 여성, 실바니아 마카도(Silvania Machado)이다! (말하자면 지구촌에 금가루/금니 기적 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 헤플린이다). 이름조차 은빛이 나는(?) 남국 여성 실바니아 마카도는 얼굴과 머리빛 자체가 금빛을 닮았다. 마카도의 얼굴에도 금가루가 나타나고 손끝 등 몸에서 초자연적인 기름이 흐른다.

그러나 정작 이런 기적의 센터 인물인 헤플린은 여러 달 유방암/뼈암으로 고생하다가 지난 2000년 9월15일 비교적 이른 나이인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말년은 흥미롭다. "주님이 화학요법을 거절하라셨다"며 치료를 거부, 암이 뼈까지 번진 것.

그녀의 캠프 집회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금가루가 참석자들의 얼굴과 손에 뿌려지고 금니 이적과 함께 다이어몬드, 루비, '깃털'도 나타났지만 결국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모든 이적이 무용지물이었다. 앞서 역시 64세로 급성 심장질환으로 숨진 그의 오라비 월레스 해리슨 헤플린 주니어 목사의 죽음(1996년 12월27일) 앞에서도 헤플린은 무력했다 .

이 헤플린의 영감의 갑절(?)이 누구에게 전수됐을까? 바로 베니 힌이다! 힌은 헤플린이 죽기 전, 자신에게 전달해 준 모든 예언들이 자신에게 낱낱이 이뤄졌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헤플린이 한 가장 중요한 예언-"몇 달 안에 주님이 직접 몸으로 힌의 집회 단상에 나타난다"고 한 말-은 이뤄지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헤플린의 삶을 보면, 뚜렷한 거듭난 체험이 보이지 않는다. 또 소녀시절 사진속에서 '밝은 빛'에 휩싸이는 등 이상한 체험들을 자서전에서 논했지만 책에 실린 40쪽 분량의 100장 사진들 중 어느 것도 그런 사진이 없다. 또 중국인에 관한 환상을 본 뒤 몸이 중국인처럼 변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도 없다. 다만 홍콩에 도착한 뒤 중국어를 배우느라 고생했다는 말은 있다.
자기 아버지처럼 헤플린 역시 입신을 했다. 그런데 그녀가 묘사한 OOB 현상은 별세투사와 매우 흡사하다.

헤플린은 여행을 즐겼고 이스라엘을 열정적으로 사랑한 일종의 시온주의자였다. 사귄 명사 친구들을 통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헤플린은 베니 힌 뿐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 조지 부시(아버지)와 사진을 찍기도 했고 중국 방문 당시 우주인 짐 어윈의 신세를 지기도 했다.
또 재정추문으로 악명 높은 텔레밴젤리스트 라벝 틸튼과 도움을 주고 받기도 했다. 틸튼은 그녀의 감람산 기도채플 건립을 도왔다. 헤플린은 자신이 방문하는 유럽/중동/아프리카 등지의 다양한 나라들을 '하나님의 왕국'으로서 소유하게 된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시온주의와 관련된 주권운동과 직접 연루된다.

헤플린은 여러 모로 오늘날의 신사도운동권 '기적' 수행자들의 대선배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 입신 기적의 또렷한 비성경성

현대의 입신 대다수가 성경적이기보다 비성경적이기가 십상이라는 증거는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최근 웹에 올려진 '다미파' 청년의 증언이다(참조 사이트 http://blog.daum.net/dlsdnjs2004/15048833 이 사이트는 임의로 '1988년' 휴거설로 고쳤는데 1992년이 맞다).

다미파 '휴거'예언 소동 당시 어린 청소년이었던 이 30대 청년은 휴거 불발 후 지독하고 기막힌 후유증으로 극도의 환멸 속에 살아오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 뒤 이 글을 썼다.
이 청년이 간증 테이프에서 들은 세 입신 소녀 휴거(1992년) 예언자들 한 명이 바로 현재 신사도운동의 기수 K 교회의 모 여전도사로 알려졌다. 당시 "천국 생명수 강가에 1992년 10월28일 휴거"라고 씌어 있었고 거기서 만난 '주님'도 "1992년 재림하신다"며 깨어 기름을 준비하라"고 말씀했다고 진술한 이 여전도사는 현재 그 교회 중진으로 활약하고 있다.

입신과 예언이 얼마나 엉터리이기 쉬운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청년의 말에 따르면, 당시 다미파/다베라파/다니엘파/마라나타파/성화파 주변에서는 오늘날 신사도운동과 방불할 뿐더러 오히려 능가하는 놀라운 이적들이 속출했다. 입신은 밥 먹기처럼 유행했고 심지어 '공간이동'도 이뤄졌단다. 그런데 요즘 신사도운동의 기적이 당시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며, 이 말은 퍽 일리가 있다.

더욱이 당시 사진 속에 성령의 불과 천사의 모습이 찍혔다는 것은 오늘날 신사도운동권에서 발견되는 현상과 동일하다. 한 한인 순례자는 벤틀리의 뒷 모습을 셀폰 카메라로 찍었는데 놀랍게도 벤틀리의 몸만 환한 빛덩어리로 잡혔다.
사람의 눈으로서는 불가사이한 노릇이다. 분명히 초자연 기적이다. 그런데 성령의 기적이라기보다는 악령들의 기적으로 보인다. 왜냐고? 악령들도 그럴 듯이 흉내를 잘 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의 모습도 카피한다.   

결론은 입신과 예언을 계시로 믿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아름답고 황홀한 신비 체험에 정격성 내지 진정성을 부여하고 싶다면 그냥 혼자서만 간직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승균 기자의 '신학생 일기'의 권고는 퍽 일리가 있다.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18

입신 체험담 분석 예  

끝으로, 제보를 통해 입수된 한국 신사도운동권, K 교회의 입신 케이스를 분석해 보련다.

약5년전부터 수 백 건의 입신이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전개돼 온 K 교회는 심지어 모름지기 전체 교계로부터 일정 수위의 객관적/성경적인 검증을 받지 않은 입신 간증들을 모아 책으로 엮어 내기까지 했다.
여기엔 1부 나름의 입신관과 함께 2부 자체간증 40꼭지, 제3부로는 '지구촌 베스트 입신 간증' 7꼭지를 곁들였는데 이 부분에서 션 볼츠, 하이디 베이커 등 주요 신사도운동자들과 함께 첫 간증으로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의 입신 간증"이란 것을 실었다.
[순다르 싱의 입신 간증이 얼마나 비성경적이고 황당하냐는 것은 이미 필자의 글에서 여실히 폭로된 바 있다. 이 한 가지만 봐도 K 교회가 얼마나 검증무풍지대인가를 웅변해 준다. ]
    
교회 선전 홍보 겸 그런 신비로운 얘기들을 즐기는 "귀가 가려운" 독자/교인들의 입맛을 맞춰 주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놀라운 것은 그런 체험들이 모두 철저히 성경적인 메시지로 검증된 양 그럴 듯 자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입신 체험담 내용을 보면, 상당량은 담임목사 등 특정 개인을 높이고 추켜 세우는 듯한 맞춤식 내용이다. 언뜻 억지춘향 격이어서 읽기/듣기가 간지러울 정도다. 이것은 신사도운동권/캔저스시티대언그룹/관련 '중보'운동권 등에 공통된 성향이다.

그런데도 이 교회는 그것을 주님을 높이는 것으로 짐짓 몰고 간다. 또 성경인물과 심지어 주님까지도 담임목사와 혼동시키는 듯한 적스타포지션(병렬법) 내지 오벌래핑 기법이 일품(?)이다.
다음 간증문을 보자.

     "초원에는 울타리가 없었습니다. 울타리가 없어도 각 자 흩어지지 않고, 풀을 뜯고 있었고 목자가 보였는데, 소년 다윗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저 목자는 누구입니까?’ 묻자, ‘다윗의 영을 지닌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요? 다윗이 어떤 영을 가졌는데요?’ ‘다윗의 중심은 나에게 있었다. 그의 초점은 나에게 있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 다윗의 영을 지닌 저 목자는 누구입니까?’ 라고 주님께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B(원문은 한글 본명) 목사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박 목사님께 들었는데, 빌 해몬 박사님께서 (B)목사님에 대해서 다윗의 영을 가진 자라고 예언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이제야 기억이 났습니다.” (괄호 속은 필자의 것)

여기서 소년 목동 다윗과 B 목사가 미묘하게 적스타포즈(juxtaposed)됐다. 이런 병렬법은 언뜻 대상의 혼동과 신격화를 낳는 주된 요소다.

말을 하는 입신자 장본인과 주님은 대상을 놓고 바라보며 문답하는 제3의 화자가 돼 있다. 객관적/예화적/삽화적/은유적 기법의 집합이다. 이러한 테크닠(?)이 K 교회 입신간증 도처에 나타나며 거의 지배적인 형태다. 한편으로 놀랍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논리적으로 고도의 효과를 낳기 때문.

이 간증에서 다음 주된 요소들이 나열된다.

     1. 울타리 없는 초원
     2. 풀을 뜯는 '각자'(양?)
     3. 소년 다윋의 옷차림(분장?)을 한 목동 ('다윋의 영'을 지닌 사람)
     4. 다윋의 영 (중심과 초점이 주님께 있음)
     5. B 목사    
     6. 제3의 화자들: 입신자와 주님 

먼저..울타리 없는 목장이 전제되고 각자 흩어짐 없이 풀을 뜯고 있다고 하여, 자유롭고도 일사불란하게, 자발적으로 일치 행동을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던진다. 양떼보다는 '각자'라고 하여 처음부터 교회를 지칭하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은유적인 동시에 의도성이 느껴진다.

아마도 K 교회나 관련 그룹이 그렇다는 말일 것이다. 과연 입신자의 말 그대로 K 교회가 내부적으로 늘 그렇게 이상적인지는 모르겠다. 양들이 전혀 이탈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울타리가 없음은 딴 교회에서도 맘대로 출입하는 수평이동을 전제로 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끝내 각자 흩어지지 않길 바라는 열망에선가?

위에서 둘째 문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각자'(양)보다 '목자'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사실을 독자는 느끼리라. 즉 위 전체 문단이 이 목자에 중심과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참 묘하다. 한편으로 이 '주님'의 말씀 내용은 다윋의 중심과 초점이 '나'(주님)에게 있었다고 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다윋이 아닌 또 다른 목자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 이 짧은 문단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적스타포지션이다.   

이 '목자'는 다윋 자신도 아니고 소년 다윋의 옷차림을 한, '다윋의 영'을 지닌 사람이다. 여기서 한 가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내용상 다윋이 연계 내지 직결돼 있으면서도 이 중요 국면에서 정작 다윋 자신은 배제돼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왜 '주님'은 분명히 현재 천국에 있을 다윋을 이 장면에 직접 부르시지 않으셨는가? 까닭이야 필자가 알 수 없지만..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목자'를 위해 다윋의 개념이 동원되고 차용됐다는 사실이다. 즉 다윋의 존재는 이 목자를 부각시키려고 빌린 데 그쳤다.

다음으로는 두 화자 사이에 진행된 대화의 흐름이 매우 논리적이고 순차적이라는데 놀란다.

      ‘주님! 저 목자는 누구입니까?’
      ‘다윗의 영을 지닌 자..’
      ‘다윗이요? 다윗이 어떤 영을 가졌는데요?’ 
      ‘다윗의 중심은 나에게 있었다. 그의 초점은 나에게 있었다.’
      ‘주님! 다윗의 영을 지닌 저 목자는 누구입니까?’
      'B 목사(님)..' 

먼저 입신자가 '주님'이라는 상대 화자에게 대뜸 던진 물음은 주님도 양떼도 아닌 목자에게 눈길을 던지게 한다. 우선 양들(각자)이 풀을 뜯고 있으면 "주님, 저 양들이 누굽니까?" 라고도 물을 법 한데 그게 아니다.          

그리곤 대화가 겨냥하는 대상이 점진법을 통해 직설적이 아니라 암시적/비유적/단계적으로 밝혀진다. 즉 [목자=B 목사]라는 결론이 징검다리 건너듯 단계를 밟아 내려진다. 물론 주님이 천국 등에 대한 예화로서 다양한 비유를 사용하신 것을 복음서 도처에서 발견하지만, 한 지상 제도교회의 목회자를 지칭/설명하시는 데까지 이런 고도의 점진법을 사용하신다는 것은 좀 뜻밖이다.

그 다음 지적하고픈 것은 '다윋의 영을 지닌 자'라는 용어다. 근래 우리가 신사도운동권을 대상으로 해 온 비평적 담론에서 천사를 포함한 온갖 이름의 영들이 출몰했다. 예컨대 '윌리엄 브래넘의 영', '순다르 싱의 영', '스베덴보리의 영' 등이다.
이 말은 해석에 따라 고인의 영, 제3자의 영을 지녔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고인의 영이 결코 그럴 수도 없거니와 네크러맨시(죽은 자와의 친교)와 직결된다. 아마도 다윋 같은 영감,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이라면 좀 더 말이 될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밥 조운즈나 타드 벤틀리 등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의 고인의 영을 자주 논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뜻이 아니더라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다음으로는..성경 상으로 다윋은 중심과 초점이 주님께 있다고 표현되기 보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왜 성령의 영감으로 쓰여진 직접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 훨씬 간접적인 이런 설명체를 쓰시는지 알 수 없다.
진짜 주님이시라면 오히려 "하나님이 가라사대", "기록되었기를..", "기록됐으되..", "성경에 이르기를.." 하고 직접 본문을 인용하셨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따라서 여기서는 정작 주님/예수님보다는 글쓴이/입신자의 마음에 있던 개념이 주님이나 성경보다 더 부각됐다고 해석된다.
그래서 더더구나 주님 아닌 '주님'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으로부터 우리는 이 간증문 전체로든, 거기 포함된 화자들의 얘기로든 '목자'(B 목사) 부각이라는 목표에 모든 요소들이 들러리 노릇을 한 느낌을 얻는다. 즉 울타리 없는 목장과 각자(양), 다윋과 입신자 자신은 물론 '주님'까지도 모두 이 '목자'의 주변요소일 뿐이다.    

이런 요소들을 통해 이 간증의 짧은 문단이 고도의 '목자' 홍보/선전 효과를 충실히 내고 있다. 가히 폭발적인 강력한 프로퍼갠더의 힘이 발산되고 있다.   

그 다음으로 발견되는 요소는 신사도운동이 적극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 여기 병렬된 요소엔 신사도운동자 빌 해먼의 '예언'에 두고 있다고 하여 성경보다는 은근히 신사도운동자들의 '권위'를 높인다. 또 해먼의 얘기를 상기시켜 준 '박 목사'란 사람도 이 입신이란 것 때문에 덩달아 자동으로 간접 인정받는다.

의아스런 점은..해먼에 대한 글쓴이/입신자 자신의 기억이 뒤늦게 나중에서야 떠올랐다는 것. 이것은 천국에서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알 수 있게 된다는 다른 입신간증자의 말과는 상반된다. 위 입신자는 그 점에서 상당히 '지각생'스럽다. 
이것은 해먼의 예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주님' 자신의 판단으로 부각시기키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는지는 모르나, 결과적으로 천국의 주님이 신사도운동을 참된 경건운동으로 적극 지지 옹호하시는 분이라는 인상이 들게 만들었다.   

끝으로 이 간증 속의 '주님'은 자신이 이들로부터 영광을 받지 않고 오히려 희생적으로 '목자'를 부각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성경과 주님, 다윋의 개념은 단지 거의 이용 당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B 목사 자신, 이메일로 전달된 이 간증의 윗부분을 읽고 "참으로 감사하고 감격했다"고, "크게 감격했다"고 고백하면서 짐짓 자기겸손(?)까지 드러내고 있다.

 

추천사인가, 찬양사인가?

모잠빜 출신인 수프레자 싵홀은 근래 B 목사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인물의 한 사람이다.
문제의 신사도운동권 여성명사, 하이디 베이커의 '아이리스(IRIS) 미니스트리'의 국제사역(목회부) 디렉터인 그는 B 목사의 근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위한 추천사에서 아낌 없고 서슴 없는 논찬을 과감하게 연속타로 날려댄다.
[이 책엔 밥 조운즈의 추천사도 있지만 언급을 생략한다.]  

그런데..그 어조가 마치 하나님의 불 같은 눈동자를 갖고 B 목사의 일거일동,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다 알고 생각과 마음 전체를 다 헤아리기라도 하는 양 우리를 착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신종'(a new breed)을 자처하고 추구해 온 '신사도' 운동가들의 되바라지고 시건방진 특징이기도 하다. 비밀집단의 상징인 '전시안'(all-seeing eye)의 기능이 실제로 작동된다는 뜻일까?

싵홀은 B 목사를 "예수님의 임재의 살아있는 실체"라면서 "대한민국 부흥의 첨단을 대표하는 간증을 지니고 있다"고 파격적인 띄우기를 한다. 이런 고가도로성 과장언어의 남용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로서로신격화'의 일환이 아니겠는가.

그는 몇년전부터 스스로 봐 왔다고 주장하는 '환상' 속에서 많은 나라에 '불꽃'이 일어났고 대한민국도 그중 하나였다며, 생각났다는 듯 다짜고짜 루카복음 12:49을 들이댄다. 그러나 이 성구의 바로 뒤 문맥을 살펴 보라. 이 불이 그런 의미에서의 '불'인지.

정통적이고 전통적인 해석은 적어도 싵홀이 빌리려는 그런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불 개념에는 흔히들 자주 기용하는 성령의 은총의 불 외에도 정결케 하는 제단 불, 연단시키는 불, 타작마당을 정케 하는 심판의 불 등도 있다.  
 
한 술 더 떠 그는 이 불이 대한민국 "전 국민을 움직이고" 북으로 이동한다는데..과연 그런 일이 있게 될까? 대한민국 온 국민 가운데 한 명이라도 그 불에 움직여지지 않는 날 과연 싵홀은 자기 말에 책임 질 수 있으려나. 
 
싵홀은 또 예수님이 이 불길을 통해 그분의 신부들을 "불러 들이고 계신다"면서 "주님의 신부들은 변 목사님의 삶에 자리잡고 있는 은혜와 겸손을 저항할 수 없을 것"이라고 묘한 말을 한다.

교회가 천상에서 주님의 신부로 신랑을 뵙는다가 아니라 주님이 각 '신부'를 불러 들이고 계셔? 지금 주님이 페르시아/메디아의 아하슈베로쉬 왕처럼 신부들을 불러 들여 그 가운데서 에스테르를 찾고 계시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주님의 '신부들'이 하필이면 왜 서울K 교회의 B 목사의 삶에 자리잡은 은혜와 겸손을 '저항할 수 없다'는 말인가? B 목사의 은혜와 겸손이 온 세계 '신부들'을 꼼짝 못하게 완전 정복이라도 한다는 뜻인가..아니면, 혹 B 목사가 주님 대신 신부 소집책으로 나선 대리신랑이란 뜻인가? 참 의아한 말들이다.

'신 사도'들은 그냥 성경에서 이런저런 용어들을 적당히 골라 잡아 대강 갖다 붙이기만 하면 다 땜빵이 되고 은혜롭고 맛있는 잡탕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어떤 부적합한 말이든 상관없이 목표와 어젠다만 맞아 들면 제때 기용하는 모양이다. 

문제는 그런 말들을 단지 상대방을 명사로 만들어 주고 추켜 세워, 교인들로 하여금 신격화하게 만들어 준다는 데 있다.  

 싵홀은 또 자신이 추천하는 B 목사의 이 책을 통해 전 세계에 있는 주리고 갈망하는 영혼들이 주님의 은혜를 더욱 맛보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극히 아부적인 이런 표현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역할을 해 온 성경에 더 걸맞는 표현이 아닐까?

이 추천사대로라면, 싵홀은 B 목사의 겸손인가에 완전히 '뿅' 가 버린 사람이다.

"강한 전염성이 있는 끊임 없는 겸손이라는 영적 은사를 지니고 계신 분.."이라고 멋지게 표현한다. 그런데 '영적 은사'란 말을 그냥 쓰노라면 성령의 은사들과 혼동된다. 겸손은 크리스천의 미덕 내지 덕목이지 성령의 9은사엔 포함되지 않는다.  

그는 계속 겸손의 화신(?)인 B 목사에게로 우러름의 눈길을 요청한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별 책임성 없는 반 단정 반 추정 격찬을 한다. 지상에서 가장 온유했던 사람, 모쉐의 예를 빌린 셈이다. 필자의 솔직한 느낌은 역시 지상최고 수준의 아첨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말은 겸손이 고수급인 사람들을 가리고 골라 정확한 통계를 내 보기 전엔 함부로 할 성격이 아니다. 아니면 머리털도 세시는 하나님이 모쉐처럼 직접 인정하시기 전에는. 

싵홀은 B 목사가 어떤 상황에도 불구, 끊임 없이 겸손을 입증해 낸다며 그 겸손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통해 "불로 연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종 된 자, 왕이신 주님의 제자로서의 겸손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길 갈망하는 자란다.

자..그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우리들을 초청하시는 주님은 우리를 편히 쉬게 해 준다고 약속하시면서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쉽고 가벼운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우라고 하신다.
그런데 지구촌 최고수급 겸손의 모본인 B 목사처럼 모든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입증해야 하고, 불로 단련 받아, 만인들에게 보여주고 나눠주길 갈망하는 그런 유의 겸손이라면, 얼마나 과중하고 고단하고 피곤한 겸손인가! 그런 겸손은 거저 줘도 사양하련다. 그건 쇼옾이지 이미 겸손이 아니다. 싵홀이 겸손의 의미를 말아 잡쉈다.
난, 그저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만으로도 족하다. 
    
싵홀은 또 B 목사가 사람들이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예수님과의 특별한 친밀감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논찬 대상의 특별성과 우위성에 대한 독자들의 인정과 인식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 친밀감의 복은 과연 어떤 걸까? 찬송가는 "우리 서로 나눈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 이하일 필요도 없거니와 그것 이상일 수가 따로 있겠는가?

싵홀이 보기에 B 목사는 그의 연인이요 주인이신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 속에 들어 오도록 많은 사람들을 자극한단다.
허..! 거듭난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주님의 사랑을 받아 왔고 사랑을 나눠 왔다. B 목사는 주님과 어떤 깊은 특별한 '연인' 사이이기에 남들을 그 관계 속으로 들어 오도록 자극한다는 말인가. 실로 낯 간지러운 표현이다.  

싵홀은 또 B 목사의 삶이 계시로 특징져지며, 은혜로 주어진 연속적인 계시들에 의해 인도 받고 증진되는 삶이며 성령님으로부터 받는 계시가 계속 증대돼 왔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독실하고 양심적으로 배우는" 자란다. 

하나 묻겠다. 하나님 말씀을 양심적으로 배우는 사람이 왜 성경을 모독하고 신성을 모독하는가-왜 성경에 무식한 넬슨 부부의 엉터리 '예언'을 교인들 앞에서 여과 없이 받아 들이나?-란 뜻이다. 성령님의 연속적인 계시를 너무 많이 받아 교만해선가?

또, B 목사의 성령의 은사의 목록은 길다고 싵홀은 짐짓 찬하한다. 
길다면 얼마나 긴 건가? 혹시 앞에서와 같은 덕목도 구분 없이 포함된 건 아닌가. 그 은사목록에 올바른 영 분별은 있는 건가?
은사목록이 장 볼 거리(shopping list)처럼 길어 봐야 검증이 안 되면 말짱 헛 일 아닌가!

B 목사에게 검증이란 게 있다면 필자와 왜 그리도 다른지 묻고 싶다. B 목사는 좀 다른 성경을 갖고 있는가? 예컨대, K 교회판 성경은 요한서신A(요일) 4:1이 "영들을 다 믿지 말고 도리어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나 검증하시오..다만 '신사도'들과 캔저스'대언가'들, 벤틀리와 주변은 그냥 통과시켜 주시오"라고 돼 있는가?

"..예수님은 그에게 많은 다른 교회들과 목사님들을 맡기셔서 그를 통해 그가 소유하고 있는 위대한 믿음과 권능의 수준으로 이들을 인도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언뜻 보면, 후반부의 '그'가 누군지 혼동되는데 그 다음 문장을 보면 확실해진다.

"B 목사님은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주님의 영광을 나르는 자입니다.
B 목사님은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시기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도록 우리를 주님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시켜 강한 에너지를 얻게 하는 전기와 같은 자입니다."

싵홀에 따르면..예수님은 B 목사의 위대한 믿음과 권능의 수준을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표준으로 삼아 그렇게 이끌기를 기뻐하신다고 장담하고 있다.
또 B 목사는 보통 수준을 초월하는 최상급(?) 수준의 영광 나르미(빛나르미..? glory-bearer?)다. 또 성령님 아닌 B 목사가 곧 핵발전소(?) 비스름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Wow..what blatant and damnable abominations. So far so bad!)

이상에서 보듯,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은 그럴싸한 용어나 표현들을 성경의 문맥이야 어떻든 상대방 명사 만들어 주기를 위해 일단 갖다 쓰고 본다. 성경 진리야 어떻게 되건 간에 나 몰라라 식으로 목적과 어젠다를 위해선 물/불을 가리지 않겠다는 것.
대상 이미지 구축을 위해선 진리의 희생도 불사하겠다는 의연하고(?) 확고한 의지와 집념이 엿보인다 - 기억해 두라, 신사도운동의 주된 특징의 하나가 이것이란 점을.

혹시 B 목사의 책-'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도 그런 맥락은 아닐지.

고작 책 한 권의 추천사로서 이렇게 산더미 같은 신격화적 과찬과 아부를 퍼붓는 경우를 필자는 처음 본다. 신사도운동권의 '서로서로명사만들어주기운동'의 현 주소..과연 실감 난다. 대단하다! 그 헌신적 노력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넬슨의 엄청난 B 목사 신격화

플로리다 부흥의 기수 타드 벤틀리를 100%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자로 믿어 주고 받아 들이는 서울K 교회의 B 목사는 한국 신사도개혁(NAR)운동의 젊은 기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 사도로 임명받았던 K목사(데이빋)를 상징적인 '한국의 왜그너'(?)란다면, B는 가히 '한국의 벤틀리'라고 할 만한 인물이지요.

지난 번 한 댓글에서 약속한 대로..B 목사의 엄청난 혼동과 착각, 신격화에 대한 자아도취, 무검증 행습에 관해 다시 언급합니다. 최근 제레미/넬슨 부부가 한국의 대표적인 신사도운동 교회인 K 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B 목사를 위한 '대언'을 했다고 하지요. 한 네티즌 성도가 제보한 내용을 갖고 분석해 봅니다.

우선, 제레미/미란다 넬슨 부부는 벤틀리의 '기름부음'/'임파테이션'을 아시아로 전파할 위임을 받은 사람이랍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HYLhqksz4pU&feature=related 참조.

제레미 넬슨은 말합니다: "지금, '지혜와 계시의 천사들'이 B 목사님 주변에 둘러 서 있는 것을 봅니다. 이 천사들이 도시의 청사진을 목사님께로 가져다 주는 것을 봅니다."

'지혜와 계시의 천사들'이란 용어는 듣다보다 처음입니다.
성경엔 지혜의 영, 계시의 영은 있지요. 바로 성령님이신 보좌 앞 일곱 영이십니다.
그런 영들이 B 목사 "주변에 둘러 서 있다"면 B 목사가 신적인 존재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B 목사가 보좌 위에 앉아있다는 말인가요?

사실 본래 타락한 천사들이었던 악령들도 나름의 사악한 지혜가 있고, 싸탄의 '계시'를 받아 전달합니다.

이 도시의 청사진을 B 목사가 맡아 관할한다?
서울의 신사도운동의 주역을 B 목사가 맡았다는 암시인가요. 도시의 청사진이라..'이 도시의 청사진'이라면 서울 시청이 관할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도시의 청사진'이라니까..미 건국 당시 워싱턴DC의 청사진을 만든 프리메이슨들이 생각나는 군요. DC의 중심 시가지는, 역5각별 형 도로, 오벨리스크인 워싱턴기념탑, 스카티쉬 33단 신전 등등 메이스닉 상징학과 사상에 기초해 건립된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들은 초기 설계자, 피에르 샤를 랭팽이 메이슨이 아니라고들 주장하지요. 랭팽의 메이슨 여부-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도시의 청사진' 개념 운동은 주권운동, 신사도운동, (신디 제이콥스의) 중보기도운동, 성시화운동권 사람들이 다같이 강조해온 것 아닌가요..맞지요? 부정할 수 없을 터입니다. 신정(theocracy)을 위해 도시와 마을, 거리 등을 정복하자는 게 그들의 꿈이니까요.

넬슨은 이 '천사들'이 악령들일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고 있음을 유의해 봐야 합니다.

넬슨은 또 다음과 같은 엄청난 선언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B 목사님께 이러한 '다윗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보는 것은, 그 도시를 여는 열쇠들이 목사님의 배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열쇠들은 바로 하늘의 영역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다윋의 열쇠는 메시아이신 예수 크리스토님께만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또 다윋의 집의 열쇠를 그(메시아=예수 크리스토)의 어깨 위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겠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으리!" (이사야 22:22) 

     "필라델피아 교회의 사신에게 편지하여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예수 크리스토!)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분(예수 크리스토!)이 말씀하신다." (요한계시록 3:7) 

넬슨은 B 목사에게 '하나님'이 '다윋의 열쇠'를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하나님, 어느 다윋의 열쇠 말인가요?! 성경과는 정반대되는 주장이지요. 이 말을, B 목사를 한국의 제2의 메시아로 세웠다는 말로 봐도 됩니까? B 목사는 이에 대해 반론을 펼치긴커녕 이것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제가 혹 B 목사의 위치에 있었다면 이렇게 대꾸했을 겁니다.

"여보시오, 넬슨. 거,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시오! 당신은 나를 예수님 대신 새 메시아로 만들어 줄 심산이오?"

그러나 B 목사는 미국 벤틀리의 대표로 온 넬슨의 이 '대언'에 매우 황홀하고 감사/감격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고스란히 진리로 받아 들였을 성 싶습니다.

넬슨의 이 발언은 흡사 벤틀리/넬슨이 하나님의 대리자 또는 하나님 자신들인 듯 행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사람들은 완전히 신성모독자들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만 주어진 다윋의 열쇠를 하나님을 대리하여 아무 인간한테나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히 혼동과 착각의 도가니에 빠진 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넬슨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B 목사님은 장군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군대를 이끄는 장군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B 목사님을 또 다른 하나님의 장군들과 연결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군대들을 일으키시도록 하실 것입니다.

넬슨은 하나님/주님의 명칭을 팔아가며 남용해 가며 B 목사를 한국의 '장군'으로 임명하다시피 합니다. '하나님의 군대'를 이끄는 장군으로 말입니다.

자, 우리 이 말의 저의를 좀 분석해 보도록 하지요.

구약에 자주 나타나는 '하나님의 군대'란 하늘의 천군천사들 또는 미쯔라임출국(출애굽)과 광야시대를 거쳐 카나안에 진입한 이스라엘 백성을 주로 가리키던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군대는 신약시대에 와서 성령님이 임하여 세우신 교회 즉 거듭난 각 신자들의 공동체, 집합체를 가리켜 하신 말로 볼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기신 승리의 힘, 하나님의 전신무장(온몸갑옷)으로 마귀와 그 군대인 악령들을 맞서 대적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거듭거듭 신자를 가리켜 군사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군대'라면 특별히 K 교회를 가리키나요? 아니면 B 목사처럼 신사도운동에 가담하는 사람들만 한해서 '하나님의 군대'란 뜻인가요? B 목사는 그 총사령관이고? 이것 참 막말로 '같잖은' 표현들입니다. 솔직히 참 우습습니다.

우리에게 총사령관/장군은 예수 크리스토 한 분으로 족합니다. 

요즘 중보기도운동의 신디 제이콥스 등은 '장군'이란 말을 남용하지요. 이 '장군' 개념은 중세 '예수회'(Jesuits) 창설자 이냐시오(이그나티우스)도 도입했던 것입니다.
또 신사도운동의 기수의 한 명인 라버츠 리어든(8세에 천국 방문을 했다는 오순절계 '부흥' 강사. 동성애 추문 사건 후 3개월만에 사역 재개)의 책/비디오 시리즈 '하나님의 장군들'에 쓰였던 명칭이기도 하고.

따라서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온몸갑옷으로 전신무장을 한 우리들입니다! 우리나 서울 신자들이 '변 장군님' 수하에 속한 것이 아니라 누구든 예수 크리스토께 속한 영적 군사들이라는 뜻입니다.

K 교회교인들은 이 점을 결코 혼동하고 착각해선 안됩니다.

또 하늘의 영역을 여는 열쇠, 즉 묶고 푸는 권세는 교회의 머리, 바위(the Rock)이신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2000년전 성령님을 통해 교회 전체에 주어졌습니다. 신자 모두에게 영적 기도 시에 예수 이름으로 사용할 묶고 풀기의 권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B 목사에게만 특권처럼 주어진다니 아주 비성경적이고 무식한 발언입니다!

넬슨 부부는 또 B 목사에게 "..매스터 건축가(Master Builder)의 기름부음을 받아 가지셨습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Master Builder"라.. 건축 개념을 중시하는 프리메이슨 냄새가 물씬 난다면 과언인가요. 메이슨들은 신의 개념도 '우주의 대건축가'(GAOTU)로 풀지요.  

성경에서 하나님이 '매스터 빌더'의 기름부음을 인간에게 주셨다면 아마도 고대 성막과 부속물 건립/제작을 맡아 한 장인(匠人) 베잘렐과 오홀리압, (프리메이슨들도 받드는) 성전건립자 슐로모, 포로기 이후 예루샬렘 성벽과 성전을 건립한 네헤미야/제루빠벨 등일 것입니다.

슐로모 성전과 왕궁 건립엔 쪼르(튀로/푀니키아) 사람 후람(=히람)도 한 몫 했지만 그가 '기름부음'이 있어서가 아니었지요. 또 훗날 헤롣도 소위 헤롣 성전을 지었지만 건축가적 취향이 있어서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최고의 건립자라면 바로 모든 성전을 완성하시고 하늘 대사제이자 하늘 성전 자체인 예수 크리스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어떤 사람도 '매스터 빌더'라는 말을 감히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프리메이슨들은 이런 용어를 즐겨 사용하지요. 매스터 또는 매스터 빌더로 자임하니까요.

아마도 소위 '7개 영역' 내지 '일곱 권역'에서의 '성시'/'신정' 건설 내지 주권 운동을 펼쳐온 신사도운동 사람들도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넬슨은 또 "하늘의 것들을 보시고 또한 그 하늘의 것을 이 땅으로 끌어 내리실 수 있는 권세"를 변승우 목사가 지녔다고 하네요.
이런 표현은 역시 예수님께나 걸맞을 법한 말들입니다. 가히 신성모독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사항이 있습니다.
다음 성구를 보십시오.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 내려 땅에 던졌다.."(요계 12:4a)
마귀도 이런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B 목사가 마귀란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무리들은 마귀에게 속하여 그런 일에 가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싸탄 수하의 짐승이) 큰 이적을 행하니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계 13:13)

마귀와 그에게 속한 자들도 하늘의 것을 땅에 끌어내려 보여 주는 이적을 행한다는 뜻입니다.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요.

넬슨 부부는 또 B 목사에게 도시에 대한 권세가 있다고 말합니다. 위에서 한 말과 비슷하지요.
"또 초자연적 영역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그 다음 단계로 발전하고 계신다"는 표현을 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로켓트가 우주공간으로 쏘아올려지는..속도로 다음 차원으로 올라 가시게 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여기서 "도시에 대한 권세"이라는 말은 주권운동 냄새가 물씬 납니다.
초자연 영역의 다음 단계라? 아마도 초자연의 힘을 통해 신사도운동/주권운동의 '7 권역'의 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갈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들을 일으키시는 이유는, B 목사님께서 하나님의 친구가 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친구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도 누구나 하나님의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고대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란 칭호로 불렸지만 사실 신약 시대엔 거듭난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친구들입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복 15:14)

넬슨의 신성모독적 발언은 한층 진일보 합니다. 점입가경이지요.

즉 B 목사가 "'다윋의 기름부음'을 가진 분이라고 말하면서 주님께서 B 목사를 "추수의 아버지(Father of Harvest)"라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B 목사 목사 뒤에 서 있다는 지혜와 계시의 천사들이 추수할 낫을 손에 들고 있다가 B 목사의 복부에다 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B 목사에게 추수를 할 강력한 권세를 불러 오고 있다는 뜻이랍니다.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넬슨 부부가 참 둘러대기도 잘 둘러대거니와 이것을 '대언'으로 넙죽넙죽 받아 자시는 B 목사 또한 대단한 사람이고 이것을 다 들어주고 믿어주는 B 목사의 추종자들 역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타드 벤틀리가 예수님을 믿은 뒤인 근년에 했다는 문신들을 보면 굵은 한자 글씨로 새겨진 '다윋왕'이라든지 '다윋의 별'이라든지 다윋을 이리저리 팔고 있습니다.

아마도 프리메이슨들이 존중하는 슐로모의 아버지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벤틀리의 문신에는 오각별(펜터그램)과 함께 '다윋의 별'이라는 육각별도 있는데 이 육각별은 성경적인 근거는커녕 오히려 고대 히브리 마법 '카발라'의 전통에서 왔지요.  

그런데 '다윋의 기름부음'이라면 왕으로서의 기름부음인데 그것은 오로지 다윋 왕손이자 참 메시아이신 예수님께만 적용된 기름부음일 뿐입니다.
그밖엔 누구에게도 적용되는 기름부음이 아닙니다.
 
더욱이 B 목사가 '추수의 아버지'라..?
추수의 아버지(Father of Harvest)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예레미야 5:24)! 그리고 예수 크리스토 이십니다(마태 3:12, 7:19, 뤀 3:17, 요계 14:15). 
그렇다면 넬슨 부부의 이런 발언은 B 목사를 '한국의 성부 하나님', '한국의 예수 크리스토'의 위치에 올려 놓는 암시라고 봐도 될까요?
참으로 성경에 무지하고 정신없는 사람들이 마구 지껄여대고 마구 들어 주는 정신 없는 말들입니다. 이런 성경에 무지한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고 기름부음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고 멍~해지는 느낌입니다. 

아울러 사람을 신격화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명사화 운동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B 목사. 당신은 과연..
다윋의 열쇠를 받은 자(메시아)인가요?
'추수의 아버지'(성부)로 자임하나요?
당신이 타작마당을 정하게 할 그분(예수 크리스토)이란 말인가요?
당신의 성경 실력은 이 정도 밖에 안 되나요?
당신은 넬슨의 이런 황당한 신성모독 발언을 '하나님의 계시', 성령님의 기름부음 받은 대언으로 받습니까? 당신은 넬슨을 파송한 벤틀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종으로 절대 신임합니까?

평소 영분별을 강조하며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고 사자후 하던 님의 설교엔 전혀 배치되는 군요.
어이없고 철저히 아이러니한 '분별'입니다

.
넬슨의 이런 B 신격화가 그리도 좋습니까?

그리고 성경의 기본지식과 상식조차 결핍된 당신들의 무지몽매에 대해 절로 혀가 차입니다. 통탄과 한숨이 절로 터집니다.  

B 목사..당신은 볼 장 다 봤고 잘못하면(잘하면?) 끝장(마 7:23 참조) 까지도 가는 중입니다.
지금 정신 차리고 회개하지 않으면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됩니다. 
K 교회 교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교인들이 이런 어이 없고 엄청난 초자연 '생쇼'에 휘말려 들었군요.

아소, 님들하, 가엽고도 가엽습니다!

 

'개들'? 개만 못한 인간들?


지난 6월말 지금 소위 '신사도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K 교회(B 목사)가 2만6천명이 넘는다는 관련 카페 회원들에게 동시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주어로 봐서는 글쓴이가 B 목사 자신이다. 그 시작은 이렇게 된다.

"개들이 짖는 것에 일일이 다 해명할 수는 없지만...요즘 따라 개들이 많이 짖어대네요. 개들이 짖는 것에 다 일일히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걔들'도 아닌 '개들'이라.. 혹시 '걔들'이었다면 비록 하댓말이지만 그래도 인간이니 그만하면 그다운 표현치곤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개들'-말하자면 동물급-이라고 한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도 종(種)을 달리 하는 구분법이다.

물론 주님께서도 비슷한 표현을 쓰신 일이 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도 아닌, 같은 주님을 믿는 성도끼리 그런 표현이 어울릴까?
가령 K 교회 안에서 문제가 발생해서 성도들끼리 그런 표현을 쓴다든지 심지어 B 목사를 향해 그런 표현을 쓴다면 이건 극언의 남발이요 '막가기' 내지 '막까기' 상황..정말 "개판 일보 전"일 것이다.

그러므로 B 목사는, 쓰는 용어 자체부터 앞뒤를 가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걸맞다고 집어내어 과감하게 기용하는..과격하고 극단적/자기착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경 26,000명 앞에서 자신이 개가 아닌 인간임을 공표하는 매우 파격적인 선언을 한 것.
이같은 상황이라면, 이 '개들'이 좀 더 짖다간 급기야 'X개'(?) 또는 '개XX'(?)으로 불릴 날도 머지 않을 지 모른다. 이미 그럴지도 모르고(비공개적 또는 반(半)공개적 또는 공공연히 말이다) 말이다.  

아무튼 B 목사는 뭇 개가 아닌 인간이기에 확실히 명사 자격이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큰믿음교회에 한결 같이 머물며 B 목사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지켜온 사람들은 개 신세(?)를 모면한 사람들이기에 그와 함께 명성을 나눌 만 할 것이다.

자, 그럼..'짖는다'는 주체는 아마도 그 교회를 향한 검증과 비판의 목청을 뜻할 터. 과연 B 목사가 빗대어 지칭하는 그 '개들'은 누굴 뜻할까? B 목사 자신의 말로 금방 드러난다.

"..교회 관계자로부터 두 목사가 저를 신성모독으로 이단으로 몰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즉 B 목사가 가리키는 '개들'은 바로 두 목사를 암시함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신성모독, '이단'으로 몰고 있다고 보고된 그 두 목사가 졸지에 '개들'이 된 것. 아마도 그렇게 몰고 가거나 계속 검증 또는 비평을 하는 이상은 두 목사가 '개 팔자(?)'를 면키 어려울 듯 하다.

여기서 말하는 필자 나름의 관점의 검증/비평은 무차별 비판공격이 아니라 성경진리에 비교/대조하여 문제점을 밝히고 진리를 드러낸 것이다. 모종의 어젠다나 어떤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같은 목사인데도 B 목사는 인간, 두 목사는 '개들'이라는..기원부터 다른 종차(種差) 차원이라고 하겠다. 본래 창조 때 하나님은 같은 여섯 째 날 동물들과 인간을 빚어 만드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담아 내신 뒤 숨을 불어 넣으셨다. 더욱이 여성은 남성의 갈비뼈에다 원 재질을 채워넣어 지으셨다.

그러나 동물 창조는 그런 과정을 밟지 않으셨다. 그래서 동물은 영이 없다. 동물이 숨지면 몸과 혼이 함께 아래로 내려간다고 한다. 천국에 애완견을 비롯한 온갖 동물이 있다는 '신사도' 계열 천국방문객들의 주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또 'G_d'의 철자를 거꾸로 풀면 'd_G'이 된다는 발상 아래, 애견들과 함께 동시 미사를 드린다는 성당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약간 막막하다.

그러므로 '개들'인 두 목사는 영도 없고 (있더라도 인간의 영은 아니며) 하나님의 형상도 받지 못한 존재들로 전락해 버린 셈이다. 혹 인간을 "개 같다"고 표현한다면 말이 좀 된다. 인간이지만 영도 없고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예 '개들'이라고 한다면, 이건.. 종(種)과 기원을 달리 한 판국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진화론의 '썰'만 아니면 개가 인간이, 인간이 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만년, 수억년이 지나도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개와 인간 사이의 중간과정을 보이는 종자들이 우리 주변에 있어야만 한다. 또 설령 있다 하더라도 영이 있냐 없냐가 큰 문제다.

아무튼 B 목사는 말씀으로 두 목사를 '개들'로 일순 둔갑시킬 수도 있는 창조주 버금 가는(?) 창조력도 갖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사료되지 않는가?! 대단한 파워인 것이다. 실제로 변승우 목사는 수많은 대예언가들로부터 그 이상 가는 근엄한 신격화를 받고 있음도 사실이다. 천국문을 여닫을 수 있는 '다윋의 열쇠'도 받았거니와 (추수의 할아버지의 아들?)인 '추수의 아버지'이기에 낫을 휘두르면 대상이 끝장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26,000명 앞에서 엄숙한 공언을 하는 B 목사의 의식세계를 엿볼 필요가 있다.

"개들이 짖는 것에 다 일일히 대응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견공들의 포효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다는 B 목사는 사실 개들의 짖음에 곧 잘 대응하고 있지 않냐는 의혹이 인다. 그동안 본 티엘티에 들어 온 제보만 따라도, B 목사가 강단 위에서 주위의 검증/비평시도에 대해 거친 표현을 쓰며, 또 최근엔 이쪽에 대해 퍽/유난히(?) 신경 쓰는 눈치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소 대응하지 않는(?) 까닭과 이번만은 해명해야 하는 과정을 좀 보자.

"그들은 할 일도 없고 시간이 많은 모양인데 저는 주의 일에 바쁩니다."

'그들'이란 물론 '개들'인 두 목사다. 그는 두 목사를 "할 일도 없고 시간이 많은 모양"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니까 B 목사나 K 교회에 대한 여하한 검증/비평 노력도 할 일 없는 할 일로 간주한다는 말이다. 시간이 남아 도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 검증/비평이라는 얘기도 된다. 어슬렁대는 개는 이렇다 할 할 일도 없고 사람보다는 늘 시간이 많기에 당연하지 않냐는 배경을 깔고 있다고 봐도 되려나.

그러나 역지사지로 보면, 개들은 짖어대잖나. 개가 주로 할 일은 짖어대는 것이다. 하릴 없이 달만 쳐다보고 짖는 개는 문제가 있지만. 지키미 개의 충성스런 점이 그것이다. 개는 주인의 집과 가족, 가산을 보호하려는 의식을 갖고 혹시 어둠을 타고 다가오는 존재가 흉한(兇漢)들일까 봐, 담장 너머-울타리 안에서 열심히 짖어 주는 존재다.

더구나 개들은 주인의 가족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자기 목숨을 내 놓고 달려 들어 물어 뜯으며 경계본능과 보호본능을 발휘한다. 개들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경우가 과히 드물지 않다고 한다. 하나님은 개들의 본성을 그렇게 지으신 것이다.

개들이 인간의 불능을 대신하는 경우도 흔하다. 맹인견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안전한 길로 이끌어 준다. 또 양떼를 지키는 목견(세퍼드!), 중대 메시지를 나르는 메신저 개, 사람 대신 테러폭탄, 독극물 따위를 예방해 주는 경찰견, 알프스 산맥에서 길 잃은 사람을 이끄는 개, 북극에서 썰매를 끄는 개 등등..

이런 충견들 탓에 흔히 세상에서 되지 못한 사람들을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표현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 생명은 물론 살점까지 인간에게 내어주어 '보신'시켜 주는 개도 드물지 않다. 사람만 명사가 있는가. '파트라세', '래씨', '달메이션 101'처럼, 개들 사회뿐 아니라 인간사회에서까지 명사화되는 명견들도 있는 데야 오죽하랴.

지키미 충견들은 위협과 위험이 다가올 때 으레 짖어댄다. 마찬가지로, 캄캄하고 혼탁한 오늘날의 영계에 진리를 바로 알려주고 오류와 비진리를 경고해 주고 지적해 주는 충견 노릇의 검증/비평가들은 꼭 필요하다. 혹 '걔들'이 '개들'일망정 불필요한 존재는 전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영어의 'watchdog'이라는 낱말은 경비견이란 뜻도 되지만, 감시인/파수꾼이라는 뜻도 있다.

어둠을 타고 몰래 침투하는 혼탁한 영성과 비진리의 유포자들, 지적해 주고 경고해도 회개할 줄 모르는 그들은 사람이로되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다. 양탈을 쓴 늑대이지 인간의 친구인 개는 아닌 것이다. 개만도 못한 마비된 기능의 영적 맹인들에게 길라잡이 노릇해 줄 개들은 늘 꼭 필요하다.

도둑을 보면 짖어댈 줄 아는 개가 충견이지 짖어댈 줄 모르고 타협해 버리면 그건 그야 말로 "개 같은 개"인 것이다. 주인 집에 그런 충견이 필요함과 마찬가지로, 비진리를 보면 목청을 다해 알려 주고 경고해 주는 검증/비평가들이 하나님 집안에는 종들로서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개들이라고 해서 다 시간이 남아 돌고 하릴 없고 빈둥대다가 이따금 생각나면 짖어대는 건 아니다.   

자, B 목사의 위 발언 뒷 부분을 보자.

"..저는 주의 일에 바쁩니다."

그러니까 개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사람다운(?) 사람인 그는 '주의 일'에 바쁘단다. 그러니까 (견공들의 일과는 다른) 주님의 일에 바쁘니 평소 일일이 대응하지 못하지만..이란 뜻이 된다. '주님의 일'이라..진리를 무시하는 비진리의 신사도 인사들과 교류하는 일도 주님의 일인가? 명사들을 초청해 성구를 이리저리 빗대어 성경진리를 초월하고 짓밟는 신성모독적 예언을 교인들에게 들려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오는 신격화 작업이 주님의 일일 수 있는가?

그리고 오히려 그런 비진리성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고하는 '개들'의 일은 개들의 일일 뿐 결코/도저히 주님의 일일 수가 없는가? 혹 "개만도 못한 인간"의 착각은 아니길 바란다.

이제 "주님의 일"로 바쁜 B 목사가 이것 하나는 해명을 해야겠다는 까닭을 들어 보자.

"..견고하지 못하고 귀가 얇은 성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회원들과 성도들도 이젠 견고해지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B 목사가 지칭하는 이 회원들과 성도들은 주변의 검증/비평 소리를 귀담아 듣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보기에 따라 이 성도들은 사실 성경교훈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영마다 검증하기를 촉구하기 때문.

B 목사가 K 교회 안에서 '신사도운동'인가와 결탁한 가운데, 성경모독/신성모독/명사화/신격화 작업 등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그들에겐 일말의 의혹이라도 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을 터. 그렇지 않다면 더 문제(불감증)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오히려 K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진정 우려하는 사람들일 수가 있다.  

충복/충신들은 달리 충복/충신이 아니다.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해 주고 쓴소리를 해 주는 사람이 충복이고 충신이다. 그런 사람은 외부인들의 비평에도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법. 귀를 꽉 막는 것은 닫힌 마음일 뿐이다.

그런데 B 목사는 그들을 "견고하지 못하고 귀가 얇은 성도"라고 폄훼/매도한다. 즉 검증이고 나발이고 자기와 자기의 말에만 충실해 달라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말을 듣는 그런 성도의 심경은 어떨까? "과연 목사님 자신은 견고하고 귀가 두터울까"가 될 수도 있다. 좋은 질문이겠다.

과연 B 목사는 견고하고 귀가 두터운 목회자일까. We doubt it. B 목사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 늘 충실할 만큼 견고하고 건실하지 못하다는 게 객관적인 관측이다. 까닭은 견고하고 건실한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로 귀 기울일 뿐, 외부의 말에 별반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교인들이 외부의 검증/비평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서 "견고하지 못하고 귀가 얇다"고 직언하는 B 목사는..얼마나 많은 외부인사들을 교회 안에 불러 들여 그들의 침 튀기는 찬사와 호평, 화려하기 그지없는 극찬과 신격화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가!
그런 발언 없이는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까 불안해설까? 그가 추구하는 세계에 으뜸 가는 교회 성장에 박차를 가할 힘을 받기 위해설까? 하나님의 인정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거듭되는 외부 예언자들의 '예언'들을 줄이어 over and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들어야 하는 걸까?

혹시 예언중독증에 걸린 건 아닐까. 하나님 말씀으로는 어딘가 부족하고 아쉽다는 말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야말로 "견고하지 못하고 귀가 얇은" 성도는 실상 B 목사와 그 측근세력이 아닐까 싶다. 하물며 문제 많은 신사도들과 캔저스그룹(KCF) 예언자들이겠는가.

오히려 견고한 목회자 같으면, 탄탄한 말씀의 바탕 위에 흔들림 없이 든든히 서 있든지, 아니면 자신의 뭐가 잘못됐는지, 검증을 요구하는 주변의 목청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어 돌아 봐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꾸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성경적이다.

우리는 어둠의 침입자들을 향해 짖어대는 충견일지언정 비진리 앞에 비무장 내지 무장해제 상태로 모든 침투를 있는 대로 다 받아 주고 타협하는, "개만도 못한 인간"이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