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별과 검증/관상영성

관상기도란 무엇인가? (관상영성비평시리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관상기도(contemplation, comtemplative prayer)의 기원은 서기 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야 교부'(일명 사막수사)들이 신비 테크닠으로 '하느님'과 접촉하기 원했던 데서 비롯됐다.

그런 기도 방식이 오늘날 교계에서 광범위하게 재생되고 있다.
과연 크리스천들이 관상기도로 '계몽'될까? 아니면 동양 신비주의로 빠지게 될까?

"관상기도란, 가장 단순한 형태로 볼 때, 당신의 생각을..잠잠하게 하는 기도다. 이것은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더 나은 상태로 넣어 준다. 그리고 당신을 교정하고 이끌고 지시하는 하느님의 음성을 더 잘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과연 이 정의에 따른 관상기도가 영혼의 웰빙에 혜택이 될 성 싶은가?
그렇다면 더 명확한 이해를 제공하는 다음 설명을 감안해 보라.

"관상기도 수행자들은 마음을 잠재우는 하나의 내적 상징에 초점을 맞추도록 훈련을 받는다. 수행자들이 이 명상 방식에 숙달되면 자동최면과 비슷한 깊은 트랜스(trans: 꿈결, 비몽사몽, 기뻐 어쩔 줄 모름, 황홀감, 망연자실, 인사불성, 최면상태 등. 역자 주)로 들어 가게 된다."

관상기도는 약17세기가 지난 현대에 온 세상에서 광대한 컴뱈을 하고 있다. 3세기에 광야/사막 수도원에서 금욕생활과 기도를 하던 은수사(hermits/隱修士)들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 방법을 이제는 수많은 복음주의 교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뉴에이지 전문가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브라이언 플린은 이 테크닠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오늘날 폭넓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지 흥미로운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광야교부들은 아마도 멀리 동양 인사들과 접촉을 했든지 어쩌다 우연히 발견하게 됐을 것이다. 기원이야 어떻든 간에 이 이단적/이교적(heretical) 관행은 우리 교회에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집트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

중세 카톨릭 교회에서 크게 유행한 수도원제도의 첫 형태는 광야 은수사들에 의해 시작됐다. 첫 은수사는 에집트 수사 안토니(St. Anthony). 그는 서기 270년 사회로부터 떠나 광야에 들어갔다고 알려진다. 그후 다수가 그의 생활방식을 따라 은수사가 됐다. 약80년 뒤 첫 수도원이 세워졌다. 수도원은 따로 흩어져 지내던 개인 은수사들을 한데 모으는 역할을 했다.

성경은 해 아래서는 그 무엇도 새로울 것이 없다고 말해 준다. 더욱이 과거로 돌아가 효과적인 "기독교적 경험"을 되찾아 현재에 다시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이런 식의 아이디어는 지금 '떠오름교회'(Emerging Church)의 중심 주제가 돼 있다.

캐나다 서스캐츠원에 있는 브라이어크레스트성서대학이 발행한 한 매거진을 보면:

"'떠오름' 영성권 사람들에게 영적인 의미성을 갖는 듯 보이는 고대의 행습은 흔히..3세기 역사나 또는 중세의 예배 연극에서 발견된다."

오늘날 많은 교계 지도자들이, 현 세대를 예수님께로 이끌려면 그들의 신앙을 도와 줄 자극적인 체험을 제공해야 한다고들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듯, 이런 체험들은 성경 바깥의 것이며 동양에서 와서 수사들에게 영감을 준 것이지 영감된 말씀에서 온 게 아니다. 

성경은 말세의 이런 영적 유혹들을 경고하고 있다. 피해자가 되지 마라! 

< 필자: 라저 오클랜드 ('현대를 이해하라'에서) >

관상영성에 관한 추가 자료들은 티엘티 카테고리의 '분별과 검증'항, 관상영성 난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