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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관상영성

창조주 아닌 거짓 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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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alibaba.com


http://www.thelilygarden.com/pages_lilies/connisseur.html

위 사이트에 가 보시면, 나리꽃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에 놀라실 것입니다. 100여 종이나 됩니다! 하나님의 솜씨에도 경탄하지만, 얼마나 많은 다양한 교배종을 사람들이 개발해 냈는지에도 감탄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개발해 내는 것은 창조가 아닙니다. 그런 것을 '창조'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그냥 모조품이고 모방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내신 것을 이리저리 바꾸고 모방한, 일종의 변종들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창조품, 창작품이라는 말을 쓰기를 좋아합니다만 사실 기껏 '창의성'일 뿐이지요.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창조주 자신이 아닙니다. 인간의 창의성마저도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일 뿐입니다.

싸탄의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싸탄이 제아무리 다양한 재주를 피워도 그는 피조물입니다. 본래 창조주 하나님께 선한 존재로 지음받았으나 사악하게 변해 버린 변종입니다.

주/야웨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므로 악을 짓지 않으십니다.

본래 싸탄은 '헬렐'(계명성, 빛나르미. 라틴어 '루키페르'. 영어: 루시퍼)이라는 아름다운 대천사로 지음 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높아져 하나님을 배신했고 그를 동조하는 타락한 천사들과 함께 셋째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우리는 싸탄이 하는 일을 '창조'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신을 섬깁니다. 심지어 자신이라는 자신(自神)을 섬깁니다. 그러나 그런 '신'들은 헛 신일 뿐 창조주가 아닙니다. 창조주는 오직 한 분 야웨 하나님, 성부/성자/성령님-성삼위일체이실 뿐.

싸탄과 그 추종자들은 예수 크리스토를 철저히 적대하지만 성자님 자신이 바로 창조주이십니다. 성자님은 바로, 성부님이 창조 때 사용하신 로고스/말씀이십니다! 바꿔 말하면 타락 전 헬렐이 성자님에 의해 창조됐다는 말입니다.

우주의 어떤 '신'들도 창조주 즉 참 신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다양한 신을 스스로 만들어 섬기며 그런 점에서는 인간은 '신 제조창'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신[=신발]과 신(神)이 발음이 같습니다만..사람들은 기계로 신발을 찍어 내듯 '신'들을 만들어 냅니다.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섬기는 신은 창조주일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가 어떻게 스스로 지음을 받습니까? 그렇지 않은가요?

인간이 손으로 황금색을 칠하고 만들어 제작해 낸 부따(부처)가 어떻게 신이 될 수 있습니까? 금불상 앞에서 합장을 하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고 소위 '108 번뇌', '업'의 소멸 수련을 하고 온갖 불경을 봉송하고 103배를 올리는 '정성수련'을 한들 부따가 창조주로 변해 줍니까? 다 어리석은 짓이지요.

샤카무니 즉 가우타마 시따르타 부따 자신이, 이처럼 자신을 신상으로 만들어 받들어 달라고 제자들에게 신신당부한 적이 없답니다. 다 후대인들이 지어낸 등신 같은 소치일 뿐. 혹시 샤카무니가 현대에 내려와 볼 수 있다면, 그래서 불도들이 하는 짓거리들을 보면 한심하다고 고개를 내저을 터입니다.

혹 독자들 가운데 불교를 동정하는 분들은 불쾌해 하실지 모르나 득도를 했다는 '큰스님' 성철의 최후를 기억하십니까?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그는 싸탄을 성불한 "최고의 불타"로 모시고 싸탄을 찬양하면서 죽어가서 주위에 충격을 주었다지요. 제 말이 아닌 성경에 따르면 싸탄을 찬양한 성철스님의 끝은 지옥일 뿐입니다. '극락'이 아닙니다.

창조주는 오직 참 신이신 성부/성자/성령 성삼위일체이신 주/야웨 하나님 뿐입니다.
그 외에 어떤 '신'도 창조주일 수가 없습니다. 주/야웨님 외에는 모두가 피조물이요 따라서 나머지 신들은 인간이 신화 속에서 만들어낸 엉터리 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실로 "희한빠끔"한 현상들을 바로 기독교계 안에서 봅니다.
즉 기독교의 하나님과 악령들을 혼동하는 현상이지요.
바로 관상영성이 그 주범이요 원흉입니다만..

요즘 기독교 웹에 회자되곤 하는 엉터리 부흥강사 타드 벤틀리는 자타가 공언하는 관상가(a contemplative)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관상가는 참 크리스천일 수가 없습니다. 성경적인 신자는커녕 뉴에이저에 더 가깝습니다. 기껏해야 일종의 구루나 스와미일 뿐이지요. 관상가는 스스로 자기 속에 있는 '하느님'/'신'을 찾는다니, 도를 닦는 도사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벤틀리의 모습은 관상가답게 그럴 듯 합니다. 몸 여기저기 얼룩덜룩한 징그러운 문신을 새겼고 두 손에 3개씩 모두 6개의 가락지를 끼고 있습니다. 괴이한 모습이지요. 그러나 자임하는 관상가라니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자신도 역시 문제명사인 보수계의 달변가 러쉬 림보는 한때 오바마 후보를 '오사마'(빈 라덴)와 자주 혼동하게 된다고 너스레를 떨어 우리를 웃겼지만, 타드 벤틀리란 이름은 정말 '타투 벤틀리'와 혼동하게 만듭니다.

이미 딴 사이트에서 소개했지만 다음 링크를 보시면, 벤틀리의 문신은 가히 싸탄적입니다. http://www.scribd.com/word/full/2909690?access_key=key-1kemdjn0fcv3x06fjfh2  [확대기능 조절로 최대 크기로도 볼 수 있음]

혹시 이런 타투를 '성령님의 것', '하나님의 것'이라고 주장하면 큰일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주장입니다. 타투는 하나님의 것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교에 뿌리를 둔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혐오거리(an abomination)이지요.

벤틀리의 문신은 목둘레에 다섯(여섯?) 꽃잎형 상징 로고, 한가운데 '루앟'(라틴어 발음으로 새겨짐. 히브리어로 바람이란 뜻)로 보이는 이상한 글자들, 장미꽃 한 가운데를 비스듬히 꿰뚫은 모습의 깃털 펜, 장미꽃 한 가운데 두골처럼 뵈는 정체불명의 형상, 장미꽃 아래 리본 글씨 "죽음은 곧 얻음"(TO DIE IS GAIN)이란 문구, 곁으로 슬쩍 엿뵈는 펜터그램(오각별) 등등 모두가 이상한 것들입니다. '생명/삶'이란 뜻의 필기체 글씨 'life'는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가 될 수 있지요. 

벤틀리의 손등 뼈마디 위 에도 일일이 문신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문신들이 어떤 의미와 기능이 있는지는 본인과 극소수 전문가들만 알겠지요.
거듭나 목회자가 된 남아프리카의 한 전직 주술사에 따르면, 벤틀리가 끼고 있는 6개의 반지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지요. 어느 손가락에 어떻게 끼냐에 따라 방향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 3+3=6, 33(11의 배수)..등은 헤르메틱스/신지학/연금술/프리메이슨리/일루미나티 등에서 매우 중요한 숫자임.   ] 

벤틀리가 순다르 싱처럼 자타가 공언하는 관상가라면, 관상가의 '하느님'은 우리가 믿는 성경의 참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관상가인 순다르 싱, 관상가인 리처드 포스터, 관상가인 토머스 머튼 등은 모두 종교다원주의자/혼합영성주의자 또는 보편구원론자들입니다. 즉 예수 크리스토 밖에도 구원이 있으며 따라서 모든 종교는 근본적으로 다 똑 같으며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자동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주의의죠.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예수 크리스토 그분이 바로 주/야웨님이시자 성자님, 우리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이사야서 9:6 참조).

예수님께서 자신을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이라고 삼중선언을 하신 것은 아버지께로 갈 길, 우리의 궁극적인 최고 목표가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영원히 열릴 수 없음을 극명히 천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말고는 어떤 길도 하나님께로 이끌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저기 언론 어록에서 발견하는 대로 빌리 그래엄, 라벝 슐러 같은 교계 명사들조차 이 진리를 믿지 않습니다. 그래엄/슐러 등의 구원관/지옥관은 흐리멍덩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래엄은 세속언론에서조차 '포용주의'(INCLUSIVE) 인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엄의 비성경적인 문제어록들은 저의 글들에서도 쉽게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청년 프리메이슨들인 '드몰레이'단을 적극 장려/추천한 사람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 클린턴은 드몰레이 출신입니다.) 그래엄의 절친한 친구이며 라벝 슐러의 스승인 노먼 빈슨 필 목사는 프리메이슨(스카티쉬  라잍 33단)이었습니다. 그러고도 그래엄은 평생 지구인 2억명 이상을 전도했다는 '복음전도자'로 손꼽히니 그를 명사로 받들고 따르는 교인들의 우둔함이란..그저 말로 이루 표현할 길이 없지요.

교계의 실상이 이러니, 벤틀리의 저런 괴이함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지요.
웹 토론에서 보니까 이런 벤틀리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런 동정은 인지상정일 뿐 성경이 말하는 참 사랑(아가페)은 아니지요.

오직 홀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순결하시고 아름다우시고 완전하시고 무흠무결하시고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불변하시며 영원불멸이십니다.

그러나 인간들의 신화에 나타나는 모든 세상 잡신들은 인간 자신처럼 유한하고 추하고 불결하며 온갖 탐욕과 죄악의 덩어리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잡신들을 '신'으로 섬기면 이내 잡령들 곧 악령들이 주변과 사람들 속에 들끓게 됩니다.
 
현금의 기독교계의 관상 영성은 스스로 신이 될 수 있다는 뉴에이지 영성, 뱀심[蛇力]으로 득도한다는 쿤달리니 영성, 초월명상과 대.동.소.이.합니다.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온 세계는 지금 비슷하고 궁극적으로 같은 영성을 추구하고 있음을 우리가 느끼는 바입니다.

단적으로 관상가인 리처드 포스터가 어울리고 관여하고 있는 인사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http://www.spiritualityandpractice.com/teachers/index.php?pg=2 ). 그러고도 포스터 같은 인사가 '성령님'의 힘으로 '사역'한다고 자처해 대니 참으로 저주스런 노릇입니다! 포스터는 퀘이커교도이니 기본적으로 종교다원주의자, 혼합영성주의자, 보편구원론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포스터와 친교해온 이동원/강준민 목사 같은 이들도 교계 명사로 대접받으니 그저 할 말을 잃고 맙니다. 이 목사는 미국 샬렘인스티튜트에서 힌두교 비슷한 명상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린 바도 있지요. 뭐..참 평화롭고 좋았다나요.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가 진정 위하고 사랑한다면 이런 썩을 '명사'들이 교계에서 판을 치는 현상에 분노가 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성자님 당신이 곧 말씀/진리이십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하나님께는 어둠은커녕 둘레를 도는 그림자조차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벤틀리를 비롯한 관상가들이 섬기는 '하느님'은 어둠의 신일 뿐입니다. 아닌게아니라 역사 속의 중세 관상가들은 실로 무점(nothingness)과 공허, 어둠, 어둠 속의 묵상을 즐깁니다. 내부의 어둠과 무(nihil) 속에서 스스로 신을 찾아보겠다는 것이지요. 결국 그 신은 자신(自神, self-god)입니다.

그런 관상가들에게 역사하는 신은 진리의 하나님일 수가 없습니다. 잡령들, 악령들일 뿐입니다. 그래서 관상가들은 성령님 밖의 온갖 초자연을 성령님의 것으로 착각하는 신비가(mystic)들이기도 합니다. 포스터는 한국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신비주의자가 아니다"고 했다는데 지나가는 개도 포복절도할 노릇입니다. 

벤틀리가 자타가 공언한 관상가라면, 포스터의 노선과 그리 멀지 않습니다. 다만 겉으로만 하나님의 사역자를 흉내 낼 뿐입니다.

그의 초자연을 성령님의 초자연으로 믿어주는 사람들은 성경이 아니라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 진리로 따르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이 점, 오해 없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조화(造花)도 겉으로는 진짜 꽃처럼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향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꽃의 자연 향기 대신 인공 향수를 뿌리는 수도 있지요.
실상 악령들에 불과한 거짓 신과 그 사역자들에게 속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