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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물음과 답(Q.A)

기도는 대화? 쉬지 말고 기도?


Q(물음) >

사람들이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를 나눈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노트에 받아 적느라고 바쁘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좀 이상하다는 것을 티엘티에 오게 되면서 알게 되었지만요...) 기도로 아뢰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 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응답하면서 대화하는 기도가 가능한 것인가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인가요? 이것을 호흡기도(관상기도)의 근거로 사용한 글을 보았는데.. 어떻게 반론을 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A(답) >

우리는 누구나 평시에 "기도를 한다"고 말합니다.

잘 아시지만, 심지어 불교에서도 쓰는 표현이지요. 이교에도 나름의 '기도'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대로..어떤 대상에게 기도하냐가 중요합니다.
기도라고 해서 다 제대로 된 기도가 아니지요.
성경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는 기도가 "제대로 기도"입니다.
기도라고 해서 다 성경적이고 기독교적인 기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예컨대 오늘날..
- (예수 크리스토라는 중재자, 그 분의 이름이 빠진) 유대교식의 기도나
- 천주교식으로 마리아/성자/천사에게 빌거나 그들의 '중재'를 부탁하는 기도..
- 천주교 일각에서 하는 향심기도(centering prayer=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 호흡기도(breathing prayer)..

또 설령 신교의 기도라고 해도..
- 소위 '주기도'(실제로는 주님이 하나의 본을 보이신 12 제자들을 위한, 그들의 기도)의 의례적/의식적(liturgical) 사용 등 의식적으로 치우친 기도..
- 유일한 중보자/하늘 대사제이신 예수님의 도움을 생략/삭제하는 기도 즉 예수님의 이름을 매 번 빼 버리는 기도..
- (파리새와 세무관의 기도 비유에서처럼) 파리새의 교만하고 외식적/가식적인 기도..
- 죄를 짓고도 회개할 줄 모르고 소원만 비는 기도..
- 이방인들처럼 중언부언하는 기도..
- 이미 하나님이 용서하셨는데도 이 사실을 믿지 않고 나름 '회개'를 반복하는 기도..
- 히브리서 11:6대로의 믿음-(1.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2. 그 분이 보상자=미스타포도테스이심을)-이 빠진, 불신적 기도..
- 성경 말씀과 신실한 약속을 붙들지 않는, '비나이다, 비나이다' 식 막연한 구복기도(기복주의!).
- 기도의 '폼'은 있으나 진실이 빠져 버린 경우의 '대표기도'..

따위는 성경대로/제대로의 기도일 수가 없습니다.
제 아무리 그들이 '기도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듣지 않으십니다.

또 성경 말씀에서 주님과 사도들이 본을 보인 형식과 내용대로의 기도가 아닌 기도는 위험합니다.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대화를 나눈다"..우리가 퍽 조심해야 할 표현들입니다.

'대화'가 무엇을 뜻하냐에 따라 진지하거나 심각해집니다. 기도로써 하나님 아버지와 '대화'를 한다는 말은 기도를 이해하기 쉽게 하는 표현이지, 실제로 인간 아버지와 대화하듯 하나님과 1대1로 (동시적/同時的으로) 주고 받는 양방향 대화나 송수신을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엔 (특히 구약 때) 계시 수납(受納) 시 이외엔 그런 기도가 극히 드.뭅.니.다. (예: 모쉐나 발람의 계시 수납 때)

대체로, 하나님과 대화한다는 말은 기도의 방식 보다는 하나의 표현입니다. 기도의 (동시적) 쌍방향 대화라는 건, 현대엔 거의 없습니다. 아니 성경에도 드뭅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내 영이 영적 비밀을 아뢰는 영언(방언)도 동시적 쌍방향 대화는 아닙니다. 이 점에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기도에서 '대화'라는 의미는 언제나..나/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아뢰고 추후에 하나님께 응답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컨대 예수님의 요한복음 17장 기도도 그렇습니다. 요한복음 17장 기도는 동시적 쌍방향 대화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겠지만, 거기 17장에 동시적 '대화'로서의 응답이 직접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단적으로..구약의 모쉐는 하나님과 실제로 직접 대화를 나눈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그의 얼굴이 천상의 빛을 받아 빛나서 사람들이 두려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엔 동시에 "모쉐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시편 90편이지요. 이것은 모쉐의 기도일 뿐 하나님과의 쌍방향 대화가 아닙니다!

오늘날 성령님과 나누는 실제적인 '대화'엔, 계시를 받으면서 하나님과 실제로 대화를 나누는 예도 있고..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거기 응답하는 예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와 기도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음성 즉 성령님의 음성은 때에 따라 약간 다른 양상으로 들립니다. 실제로 음성이 들리는 예도 있고, 마음 속으로 들리는 예도 있습니다.
실제로 들리는 예는 매우 드문데..마음 속으로 들리는 예는 그보다는 잦습니다. 또 페트로/파울처럼 환상을 보는 경우도 드물지만 없진 않습니다. (환상은 성경과 일치해야 하며, 겉으로는 일치하는 듯 보여도 혹시 '친숙령'인지를 성경과 영분별 은사로써 제대로 분별/검증해야 합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기도'를 하면서 죽은 마리아/성인이나 천사들과 '대화'를 한다는 주장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 실제로는 친숙령 곧 악령들입니다!)

그러기에 요즘,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노트에 받아 적을 정도다..뭔가 이상합니다. 그렇게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 성경 말씀 외에 (성경과 같은 차원의) 기록계시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 성령의 9은사의 일부로서의 계시들(코린토A=고전 12, 14장 참조)도 1. 내용상 성경 말씀과 일치하고, 2. (코린토A )타 은사자들의 검증을 받은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기도가 '대화'라는 말, 기도로 대화한다는 말, 매우 조심해서 이해하고, 조심해야 써야 할 말입니다. 성경대로의 계시 수납 과정이 아니라, 현대에 동시적 쌍방향 대화로서의 '기도'는 거의 다 친숙령일 경우가 농후합니다.

"기도는 호흡"이라는 말 역시 자주 듣습니다. 역시 극히 조심해야 할 표현들이지요. 오컬트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비유적이거나 관상적인 표현이지 실제로 성경엔 없는 표현입니다. 회개와 간구로 토로하고 응답으로 받아들이니 "호흡이다"라고 말하지만, 역시 비유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기도와 우리의 호흡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런데도 요즘 '호흡기도'라는 게 유행하고 나돕니다.
관상기도의 한 형태로서, 일부로서 수행들을 합니다. 맄 워런은 대표적인 호흡기도자이지요.
이건 절대로 비성경적입니다.

누가 뭐래도 성경엔 그런 기도가 전혀 없습니다!

이 점 유의하시길.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성경말씀으로 확인하는 것이 성령님의 최우선적인 뜻입니다.
누가 뭐라고 떠들어도, 솔깃하게 듣지 마세요.
성경은 최종의 권위이며, 성령님 자신이 성경의 저자이시므로!
성경을 무시하거나 '초월'하는 주장들은 한결 같이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표현은 24/7 기도하라는 표현은 아닙니다. 거의 그것에 가깝게라면 몰라도.
이 말씀은 그만큼 깨어 있고 게으르지 말라는 표현이라고 봅니다.

영언기도도 대체로 잠 잘 때는 드뭅니다.
예수님도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했지만, 피곤하실 때는 뱃고물에서 주무시기도 했지요.
이 점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