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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연구/칼뱅-아르미니우스 주의

기본 논리 차원에서 본 칼뱅주의

 


김삼

[그림: 장 칼뱅의 모습. 불어로는 '코뱅'(Cauvin), '쇼뱅'(Chauvin). 당대 라틴어로는 '요하네스 칼비누스'로 불렸다. 영어 식으로 "존 캘빈"으로 흔히 불린다. 오른쪽 초상화는 역사상 실물에 가장 가까운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칼뱅주의..솔직히 좀 지겹다. 독자 쪽은 몰라도 필자는 그렇다. "아니, 감히 지겹다니?!" 하고 반신반의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지겨우니 지겹다고 하지 딴 말로 빗겨 가겠는가? 하나님도 나의 지겨움을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자녀가 지겨워하는 걸 들입다 안긴다고 늘 받아 주기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

그렇다고 기독교 교리나 성경말씀까지 지겹다는 얘기는 아니니 안심하라. 필자는 소위 "보수정통" 신학교에 머문 11년간 칼뱅주의 신학만 신물 나게 배웠다. "모탯적"부터 장로교인, 현재도 장로교단에 소속돼 있다. 그러니 필자더러 "칼뱅주의의 '칼' 자도 모른다"는 얘길랑 하지 말아 달라. 물론 그렇다고 칼뱅주의에 '도통'한 건 아니며 그러길 원치도 않는다.

궁금한 것은 칼뱅주의나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도통' 내지 득달하여 불경 외듯 칼뱅/아르미니우스 서적을 완전 암기한 신학도가 과연 몇 분이려나 하는 점이다. 독자의 교회 교우들에게 칼뱅의 방대한 성경주석 전집이나 엄청난 분량의 '기독교강요'는 둘째 치고 칼뱅주의의 핵심 5대 교리(TULIP)를 다 외우고 있는지 물어 본다면 과연 몇 명이나 답하겠는가?
[영어에 익숙해도 책이 없어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칼뱅의 '기독교강요' 영문판을 무료로 참조할 수 있다. 참 편리해진 세상이다. http://www.ccel.org/ccel/calvin/institutes.htm]

교인은 그렇다 치고 독자 자신은 TULIP을 줄줄이, 상세히, 막히지 않고 설명할 수 있는가? 독자와 독자의 교회가 능히 그렇다고 치자. 독자 수준의 교회가 몇 %나 되겠는가? 그러고도 감히 '칼뱅주의 교회', 칼뱅주의 교단으로 명실공히 자임할 수 있겠나?
그런 점에서 우리 '-주의자'들 대다수는 알고 보면 가우타마나 보디사트바에 충실한 불도들만큼도 칼뱅이나 아르미니우스에 충실치 못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칼뱅의 교리적 적수였던 아르미니우스도 칼뱅의 성경주석들을 읽고 찬탄했지만 '기독교강요'의 편파성엔 혀를 내둘렀다.[필립 샤프(Philip Schaff)의 '기독교회사' 제8권 참조] 적을 알기 위해선지는 모르나 아무튼 적수인데도 읽었다는 얘기다.

필자의 말뜻은 칼뱅주의자, 칼뱅주의 교회들을 폄훼하겠다는 게 아니다. 제 아무리 칼뱅/아르미니우스 사상의 '권위자'라고 해 봐야 너나 나나 오십 보 백보, 도토리 키 재기란 얘기다. 그리고 칼뱅주의/아르미니우스에 능통하다고 성경말씀에까지 능통하냐..그도 아닌 것이다.
칼뱅/아르미니우스에 버금가리만큼, 그들의 뺨을 칠(?)만큼 칼뱅/아르미니우스주의로 무장한 신학자보다는 평생 칼뱅주의가 뭔지, 아르미니우스주의가 뭔지 제대로 모르는 "어벙한" 풀뿌리 민초 신자 한 명의 성경말씀 실력이 더 나을 수 없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설혹 칼뱅의 성경주석과 '기독교강요' 전권을 완벽 섭렵 내지 암송하여 기네스 북 신기록에 오른다 해도 성경 66권 필사본을 만든 사람만 못 하다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성경 말씀보다 칼뱅주의나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도통"함은 위험할 수 있다. 강단에서 하나님 말씀이 아닌 칼뱅/아르미니우스 사상을 읊는 설교자는 하나님의 입에서 뱉어 냄을 당할 수 없지 않다곤 말 못할 것이다. 칼뱅의 성경주석이나 '기독교강요'가 하나님 말씀 자체는 아니므로 오류가 적지 않음을 칼뱅이 여기 살아 있어도 자인할 것이다.
문제는 "칼뱅님. 님에게 혹 오류가 있어도 우리가 다 덮어 드릴 테니 잠자코 눈만 감고 계십시오!"라는 식의 칼뱅주의 후학과 제자들인 것이다.

자, 그러니 하나님 말씀이 더 높으냐, 칼뱅 사상이 더 높냐 란 유치한(?) 수준의 기본적 명제 앞에서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져 속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란 속언도 있다.

성경의 대 명제: 사람들은 다 거짓되나 하나님은 참되시다

성경엔 어떤 말씀도 적당히 거짓말로 '땜질' 하는 곳은 눈 씻고 봐도 없다. 하나님은 참되시기 때문이다. 예수 크리스토는 진리시기 때문이다.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우리 쉬운 논리로 근접해 보자.

사람들은 다 거짓되나 하나님은 참되시다.
칼뱅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 불과하다. 김삼도 인간이다.
칼뱅/김삼은 참되지 않을 수 있다. 즉 [최소한] 부분적으로 거짓되다.
독자 자신도 그렇다.

칼뱅을 김삼과 대비한 것은 단지 다같은 인간이라는 전제에서이지 필자가 칼뱅과 견주길 바라서가 아니다. 필자는 [엄마 뱃속을 떠난지 오랜 지금] 칼뱅 수준의 천재가 될 수도 없을 뿐더러 되고픈 맘이 털끝만치도 없다. 단 하나님이 위에서 베풀어 주신 재능을 지녔다는 점에서 '천재'라면 김삼도 천재다. 필자는 다만 오직 크리스토를 본받아 그분의 장성함에 이르고 싶을 뿐. 단지 우리 자신과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자는 얘기다. 예수 크리스토만 바라 보자는 말이다.
부정할 수 없고도 부정해선 안 되는 투명한 논리를 좀 더 진전시켜 보자.

하나님은 참되시다. 그 분의 말씀도 참되다.
칼뱅의 저작물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이상 오점/오류가 있을 수 있다.
성경 말씀에 비춰 볼 때 칼뱅주의엔 오류가 있다.
하나님 말씀보다 더 높아질 수 있는 신학이론은 단 하나도 없다.
칼뱅의 오점/오류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거짓이 없는 양, 은연 중 100%
다 옳은 양 주장함은 잘못이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칼뱅절대순수론', '칼뱅절대주의'란 있을 수 없다. 그건 한낱
우상숭배에 불과하다.

[성경은 엄연히 "살인하지 말라"고 했는데 칼뱅은 동기나 과정이야 어떻든 미구엘 세르베토를 화형으로 귀결시켰다. 카톨맄이 개혁가 얀 후스를 화형시킨 후였다. 사료와 문서에 따르면, 칼뱅은 명백히 세르베토를 계획 살인했다. 그러고도 끝끝내 회개는커녕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런 사실을 은폐하려 들어선 안된다. 말씀의 진리와 직결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진리에 어긋난 것을 갖고 무조건 덮으려는 것은 사랑도 긍휼도 아닌 불의요 맹종이다. 은폐자, 공범이 되고 싶은가?
칼뱅은 훌륭한 성경 주석가요 신학자였으되 우리와 성정이 같고 대동소이한 평범한 인간이요, 신이 아니었다. 그러니 칼뱅을 우상 숭배하듯, 100% 완벽한 인간처럼 신처럼 오매불망 섬기고 추종할 성격인가? -이것이 이 글의 주된 요점이다.

필자는 시방 칼뱅무용론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칼뱅의 사상 중엔 성경을 뒷받침하는 좋은 주장들이 많다. [그런데 김삼에게도 그런 점은 없지 않다]. 그러므로 칼뱅이 [부분적으로] 뒷받침해 준 예수 크리스토의 진리 말씀 자체에 눈길을 돌리자는 얘기다.

칼뱅 사상보다는 성경에 치중해야 옳다.
칼뱅의 '기독교강요'보다 성경에 더 능통해야 한다.
일반 교인들에겐 칼뱅 교리보다 성경을 열 배나 더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칼뱅교리를 아예 안 가르치고 성경말씀만 가르쳐도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법은 없다.
칼뱅 교리 상당수는 거짓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르미니우스주의도 상당량 거짓되다.

착오 없기 바란다. 필자는 지금 신학자마다 철퇴를 가해 모조리 '작살'내려는 음모로 나선 게 아니다. 모든 신학의 유용성을 '무용성'으로 돌려 젖혀 버리는 사이비/이단들의 전철을 밟으려는 게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 말씀의 진실무망함(참되고, 망령됨이 없음)과 유일하고 참되신 예수 크리스토의 진리성의 효력을 극대화 하고픈 의도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