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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삶맛에세이(김삼)

누가 성직자이고 누가 평신도인가?

 


성직자와 평신도 구분은 비 성경적이다
목회자는 '섬김받음이'가 아닌 섬김이


김삼


솔직히 털어 놓고 얘기해 보자.
성직자(clergy)와 평신도(laity)의 구분이 신약 성경에 단 한 번이라도 비쳐진 적이 있던가. 목회자만 성직이라면 장로나 집사는 세속직이란 말인가? 장로나 집사도 엄연히 성직 즉 거룩한 직책들이며 더구나 초기 교회에서는 목사도 감독/장로였다. 사역 은사의 하나인 목자들이 있었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복음주의권에서는 거의 제쳐 놓은 지 오래 된, 케케 묵고 한 물 간 개념이다. 주로, 카톨맄/정교회/성공회나 여태 전통을 끼고 사랑하는 신교 주류 교단에서 즐겨 쓰는 말들이다.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그 대신 '형제', '자매'란 말을 선호한다. 그 점에서 더욱 복음적이다.

미국의 많은 교인들이 '김 목사'보다 '브라더 킴'(김 형제님)이란 말을 좋아한다. 더 정답고 근접도가 높다. 심지어 공식 석상에서 자기 담임목사의 맨 이름(퍼스트네임)을 그냥 부르기도 한다. 언뜻 버릇 없어 보여도 더욱 친근한 화법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 되자고 하기도 전에 어느 새 하나가 되어 있다. 초기교회처럼 껴 안고 입 맞춰도 하등 부담이 안 간다.

미국 교회에서는 목사님(Pastor), 목회자님(Reverend), 사역자님(Minister)이란 용어를 쓸 때는 정도에 따라 상당히 공적인 명칭이다. 물론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도 인정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신약 성경에 흔해 빠진 말이 '형제'요 '자매'다. 왜 흔한 말을 안 쓰고 일부러 어려운 명칭을 써 가며 호칭 때문에 피차 불필요하게 마음 쓸 필요가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네는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소릴 듣기를 그리도 좋아하게 됐나? 그러다 보니 교회나 교계에만 들어오면 은연 중 계급의식이 작용한다. 교회 안에만 들어오면 명칭 하나로 남과 차별화 된다. 그것이 그렇게도 자부심을 높여 주는가.
그래서 그런지 수시로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을 소모해 가면서 갖는 집사, 장로 임직식이 진급식 못지 않다. 하지만 파울은 페트로를 그냥 '케파'라고 불렀다. '케파 사도님', '요한 장로님', '스테판 집사님'이라고 거추장스럽게 직분명으로 겉치레를 하면서 호칭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김삼님'으로 족한 것이다.

스탕달의 소설 '적(赤)과 흑(黑)'에서 적은 성직자, 흑은 세속 법관을 암시한다고 한다. 카톨맄적 사고방식이다. '적'은 붉은 옷과 '어두관'(魚頭冠)으로 치장하기 좋아하는 사제 계급이다. 바티칸 사람들을 보면 실감이 갈 것이다.

성직자란 말은 사실 사제나 목사가 대접 받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 아니던가. 하지만 목사가 이 명칭으로 짐짓 사잇선을 그어놓고 스스로 앞가림 하려 든다면, 행동이 거룩하지 못할 때 이미 성직자란 명칭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무턱 대고 갖다 붙이는 '성직자'란 세 글자에 책임져야 할 소지는 없는가.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다 성도다. 믿는 그 자리에서, 거듭난 즉시로 성도 즉 거룩한 사람이라는 명칭과 개념을 성령님으로부터 부여 받는다. 그렇다면 성도와 성직자의 구분은 무엇인가? 거룩한 무리와 거룩한 직분자의 차이인가? 목사도 성도 가운데 있다. 목사도 성도가 아닌가.

'성직자'란 말은 쓰면 쓸수록 묘한 개념의 혼동만을 안겨 줄 뿐이다. 더구나 요즘 서구에서는 성직자(clergy)란 말을 기독교 계열은 물론 유대교/회교/불교계 인사들에게조차 사용하고 있으니 혼동이 더해 간다.
그리고..최초의 동성애 사제인 성공회 뉴햄프셔 대교구의 진 라빈슨 주교는 과연 성직자인가 아닌가? 제도상으로는 성직자인데 하나님 앞에선 성직자가 아니지 않은가? 일파만파 성추행으로 성당 헌금 갖고 요즘 배상금 내기 바쁜 카톨릭 사제들은 성직자인가, 아닌가? 명목상의 성직자들이지 실질상의 성직자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신교에서는 인정조차 않는 사제들이지만.
그러니..결국 성직자 제도가 하나님 앞에서 무용지물이란 얘기가 아닌가? 이 말은 사역자들을 하나님이 구별하여 불러 주시지 않았더거나 모든 성직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 보겠다. 목회자(minister)는 사실 성도를 섬기는 자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주님은 죄인을 섬기러 땅에 내려오셨고 섬김의 본을 보이셨다. 목사가 어찌 그 이상을 바란단 말인가? 주님보다 더 대접받겠단 말인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던 물대야 속 물표면 위에 비친 땀방울 맺힌 주님의 섬김의 얼굴-그 이상을 넘어가서는, 섬기는 자가 되지 못한다.

딴 소리지만, 카톨맄은 죽은 교도 명사들에게 소위 '성인'(saints)이란 개념을 따로 창출해 쓴다. 주기적으로 추가 추대하여 받든다. 심지어 어떤 특정 성인을 '수호성인'으로 받들고 기도하고 중보해 달라고 요청도 한다.
도대체 어느 도깨비가 성인이란 말인가? 성인은 우리가 성인이다! 예수 믿고 거듭난 우리 모두가 성자(聖者)들이요 성인들, 성도들이다! 그런데도 모모 성인의 날입네, 만성절입네, 축성절입네 "씨나락 까 먹는" 소리들을 해 댄다. 성경대로 하면, 성 프란치스코 못지 않게 '성 김삼'인 것이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개념 구분은 다분히 구약적이다. 코라(고라)의 반역이후 사제 지파인 레비 족들을 다른 지파 형제들과 사이에 거리를 두고 구별 짓던 관습이 카톨맄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으로 둔갑한 것이다.

카톨맄은 그럴 만도 한 것이 중세 신학교와 수도원에서 수련과 연구에 골몰하던 사제들과 훗날 온 유럽을 뒤흔들기까지 콧대 높던 교황권과, 세속 군주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을 철저히 구분하기 위해 그런 제도가 필요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상징이라도 하듯 대부분의 수도원과 구식 성당을 보면 벽이 높고 창문들은 위 쪽에 붙어 있다. 세속으로부터 자체를 차별화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과도 담을 쌓게 됐다. 대조적으로 주님은 늘 자연을 가까이 하셨다. 드높은 담장과 두터운 벽 너머 수도원에 맨 날 처박혀 그리스어, 라틴어 교육을 받고 신학 전문가가 된 그들과 라틴어를 제대로 못 알아 듣는 일반인들이 어떻게 구분돼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경은 자기네 전유물인 양 끼고 있으면서 일반인들을 무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유식한 자기네와 무식한 그들을 구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두텁고 드높은 담벼락 너머 저편을 귀족화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세 성가대가 귀족화 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는 언제부턴가 '성가대' 대신 찬양대란 용어가 상용화 됐다.

그래선지는 몰라도 '성직자'란 명칭에서는 거룩하고 구별된 느낌보다는 귀족적인 냄새가 더 난다. 차별화, 계급화 된 생경한 체취가 더 풍긴다. 목회자나 교인이나 똑같은 인간인데도 별종인 것처럼 느껴짐은 기자의 오산일까?

기독교가 이 구분과 차별화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잘못이다. 신교도 카톨맄처럼 신학교를 운영하니 역시 그럴 만 하다손 치더라도 명칭은 달라야 한다. 신학계를 구분하자면, 신학생, 신학도나 신학자와 신학계로 족하다. 신학교 출신이고 안수 받았다 해서 '성직자'라고, 신학교 출신이 아니라 해서 '평신도'라고 구분 지을 하등의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목회자는 특별한 소명이 있어야 하고 다년간 특별한 수련을 받아야 함은 사실이다.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서 맨 날 사회에서 세속 일을 주로 해야 하는 일반 교우들과 다를 수 있다. 그렇다해서 구태여 성직자란 명칭으로 앞가림 하려 들고 스스로 높일 순 없다. 성경은 장로들을 존경하되 잘 가르치는 장로들(목회자)을 배나 존중하라고 했다. 결국 그 차이인 것이다.
목사는 구약적 개념의 사제(제사장)도 대사제도 아니다. 페트로는 온 성도가 곧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했다. 성도 모두가 곧 천국 귀족이요 왕족이요 사제들인 것이다.

덧붙이지만, 교우들은 '평신도'란 말로 자신을 '성직자'와 구태여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 그런 개념과 용어가 필요하다면 '목회자', '성도' 굳이 구분하려면 '교우'들로 충분하다.
복음주의 교회에서는 명칭만 철폐헀을 뿐더러 장로들이 직접 섬김에 앞장 선다. 바구니 들고 헌금 나르기, 안내하기, 장애교우 돌보기 등 거친 일, 뒷일들을 장로들이 도맡아 한다. 강단 가까이 높은 의자에 앉아 잰 체 하는 모습은 찾아 보기 힘들다. 단 행정 치리만은 사역자와 장로들이 중심이 된다.

하늘 보좌 앞에는 24장로석 외에 목사자리가 따로 없다. 성직자 좌석과 평신도 좌석이 구분돼 있지도 않다. 누가 성직자-거룩한 직분자인가? 교회의 직책들이 다 성직이다! 심지어 관리인(사찰), 사무원들도 성직이다. 누가 성도인가? 거듭난 너와 내가 다 성도다. 서로 섬기는 이들, 그들이 곧 성도요 교회다. 이 평등 원리부터 교회에 적용되지 않으면, 교회개혁은 한참 뒷걸음질일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성경을 본받아, 가급적 '김 형제님', '이 자매님'으로 서로를 호칭하면 어떨까? '김 목사님', '박 권사님', '이 장로님' 대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