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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왕자의 난 2 (메시아계보대장정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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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선대를 잇는 왕통은 다윋-슐로모입니다만 왕가 안팎의 도전과 위협이 많았지요. 다윋은 비록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지만 일단 중죄를 짓고 나자 여러 모로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윋 스스로가 초래한 도전과 위협입니다.

다윋은 하나님이 배정하신 아내 말고도 눈에 차고 맘에 맞는 여인들은 거의 다(?) 골라 갖다시피 많은 아내를 두었습니다만 수많은 아내들로부터 태어난 수많은 왕자들이 큰 거침돌이 됐습니다.
다윋의 이 일부다처 근성을 훗날 슐로모가 본받았는지 욕심 사납게도 아버지의 10배도 넘는 엄청난 수의 아내들을 거느립니다. 그 아내들이 다 슐로모의 올무가 되고 결국 그 파장으로 왕국이 남/북-둘로 쪼개져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죠. 

하나님은 다윋이 인간적으로 신임하고 의지하던 왕자들은 죄다 버리셨습니다. 마치 슈무엘(사무엘)이 이샤이(=이새)의 여덟 아들 중 허우대가 좋고 근사한 형들에게서 왕자감을 고르려 했지만 하나님은 일찌감치 모두 버리셔서 맨 막내인 다윋을 고르던 때를 연상시킵니다(슈무엘A=삼상 16:5~13 참조).
그 전에 슈무엘은..보통 사람보다 어깨 위가 더 큰 거인 샤울 왕의 외모를 크게 신임했지만(슈무엘A 10:23,24), 나중 샤울의 불순종에 크게 실망하고도 또 다시 샤울처럼 허우대가 좋거나 인물이 훤한 다윋의 형들을 더 선호하는데..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슈무엘은 훌륭한 대언자/판관이었습니다만 그의 두 아들은 백성들을 영 실망시켰습니다(슘A 8:1~3). 백성들이 왕정제를 원하게 된 한 원인이기도 했죠(8:4~22 참조).

이처럼 사람들은 외모와 외적 조건에 좌우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 중심을 보십니다(슘A 16:7, 행10:34, 얔2:1~9 참조).

이런 전철과 교훈들이 있는데도..정작 다윋은 자신이 막내로서 오직 하나님의 은덕으로 왕으로 선택된 사실을 잊어 버리고 그 역시도 잘 나고 허우대가 좋은 아들들을 주로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우선 맏아들 암논에게 은근히 마음을 두었다가 여지없이 실망했고, 가장 잘 나고 가장 사랑했던 셋째 아들 압샬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반역하자 역시 실망한 데다 반역까지 당하고.. 게다가 하나님이 고르신 왕위 계승자, 슐로모가 왕자들 중 한참 늦동이인 데다 어리고 약한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건 그렇고..
사악한 방법으로 아버지 다윋의 왕위 찬탈을 시도한 압샬롬은 비참하게 죽어 갔습니다만..(슘B 18:9~15 참조).

압샬롬 말고도 슐로모의 왕위 자리를 위협한 왕자가 아도니야.
학깉 왕후의 아들이자 다윋의 넷째 아들인 그는 압샬롬 못지 않은 '다크호스'였지요. 허우대 역시 대단히 건장하고 준수했습니다(왕들A=왕상 1:6). 하지만 그 역시 압샬롬 못지 않은 악인이었습니다.

아도니야의 반역을 말하기 전, 어간의 과정을 좀 살펴 봐야 합니다.


인구조사와 성전 터
 
다윋이 열 한 번째(?) 아들인 슐로모를 왕위 계승자로 선정한 시기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대강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슐로모의 형인 다윋-밭쉐바 부부의 첫 아들의 죽음으로부터 성전 터 선정 전후의 기간에 있었던 일이라고 볼 수 있지요.

압샬롬의 반란군이 진압돼 수도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나라가 평화를 되찾은 얼마 후 다윋은 또 다른 중죄를 짓습니다. 바로 장정 센서스 즉 군 인력 조사 건입니다(슘B 24:1~9 참조).

대체로 이스라엘은 고대로부터 군대에 동원될 수 있는 연령층의 남성, 즉 전투병력을 중심으로 인구를 헤아리곤 했습니다. 광야시대인 모쉐 당시에도 그런 인구조사를 한 사례가 있습니다(민수기 1장~3:43). 그래서 성경 한 권의 이름이 '민수기'(民數記/Numbers)입니다. 그러나 당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뜻에 따라 지도자가 한 일이었습니다.

다윋의 선배 왕인 샤울은 병력 계수를 자주 했습니다(슘A 13:2,15). 특히 신앙이 강하지 못하고 불안할 때 그랬습니다(15:4). 대조적으로 그의 아들 요나탄은 하나님의 권능을 더 의지했지요(14:6b). 왕이 왕자보다 못했다는 뜻입니다.

승전의 원리는 어디까지나 승전의 신(시 24:8)이신 하나님의 권능에 있지, 군대의 숫자에 있지 않음을 하나님은 누차 보여 주십니다. 요나탄의 말을 봅시다.

     "..주/야웨님의 구원은 (군대의)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는다네."(슘A 14:6b)
 
역사적으로 보면 특히 사사-왕국 시대 군사력은 사실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인구조사는 불필요한 일이나 다름없었지요. 단적인 예로, 판관(=사사) 기데온은 수 만 전투병력을 충분히 동원할 수 있었는데도 하나님은 기민하고 준비된 300명으로 압축하시면서(판관들=삿 7:1~8) 오히려 큰 병력을 문제 삼으셨습니다(판 7:2 참조). 하나님이 도우셨는데도 숫자나 군대의 힘으로 이겼다고 자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추려 뽑은 이 300명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미디안 군 13만을 무찔렀습니다(8:10).  

하나님의 승리는 결코 숫자나 군대에 있지 않습니다. 주/야웨님은 모쉐 한 사람을 통해 당대의 대 제국 미쯔라임(아이귑트=에집트)에다 열 가지 엄청난 재앙을 내리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셨고 미쯔라임 전군을 홍해에다 수장시키셨습니다.
광야 시대에도 말벌떼로 적군을 물리치셨고(예슈아=여호수아 24:12) '나찌르'인 장발남 마초맨 삼손 한 명은 나귀 턱뼈로 풸레쉩 적군 1천명을 쳐 죽였습니다(판관들 15:16). 이 어찌 놀랍지 않나요!

슈무엘 때도 우레로 적군을 물치치셨지요(슘A 7:10).
아니, 그 누구보다 다윋 자신이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했던 것은 매 번 하나님이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실로 길 위에 굴러 다니는 돌맹이로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안타까운 일은 남도 아닌 다윋이 이 중요한 사실을 살짝 잊어 먹었다는 것입니다. 일찌감치 건망증이나 치매증상이 왔다는 게 아니라 마귀 싸탄이 다윋의 마음에 직접 불신과 자만심을 불어 넣은 것입니다(연대기A=대상 21:1~28). 승리의 주체이신 하나님보다 숫자로서의 국방력을 의존하는 마음을 슬쩍 주입한 것입니다.

정작 국방장관인 요압은 인구조사를 반대했습니다. "하나님은 국민을 백 배나 더 하실 수도 있는데 도대체 왕께선 갑자기 왜 이러시냐?"는 것이죠(슘B 24:3). 그래도 다윋은 미련하게 강행합니다. 병력 계수 결과 총130만이나 됐습니다(9절). 그제서야 다윋은 자신이 미련했음을 깨우칩니다.
 
물론 하나님을 의존한다고 해서 국방력을 키우는 게 잘못이라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을 각별히 의존한 왕들 중에도 국방력을 튼튼히 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지요. 사실 왕국시대에는 작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대규모 병력 또는 신무기를 갖춘 때도 있었습니다(연대B=역대하 26:14,15). 

하나님은 마귀의 유혹에 깊이 빠진 다윋의 불신과 미련한 죄에 대한 보응으로 7년간의 기근, 적에게 석 달 동안 쫓겨 다니기, 3일 간의 온역 -세 가지 형벌 중에 고르라고 하십니다. 다윋은 적국 대신 하나님의 직접 형벌을 원했기에 사흘간 악성 전염병으로 전국에서 7만명이 죽습니다(24:10~16).

천사는 심지어 수도 예루살렘까지도 멸망시키려 했지만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이때 천사가 있던 곳이 예부쉬 사람 아라우나(=오난)의 타작마당이었습니다. 왕의 선견자(seer)인 갇은 다윋에게 이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는 메시지를 전했고 다윋은 아라우나에게 은 50쉐켈을 주고 이 땅을 사서 거기에다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재앙이 그쳤습니다(18~25절).

바로 이 타작마당이 성전터가 됩니다. 놀랍게도 이 타작마당은 고대의 아브라함이 이짜크를 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이었습니다(연대기B=역대하 3:1).
 
그후 다윋은 슐로모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성전 건립 유언을 통해 대업을 맡기지요.
그 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시로 슐로모를 왕세자로 정했음이 틀림 없습니다.


그 여인 아비샥

그즈음 다윋은 70대 노경을 맞습니다. 피부 온도가 많이 식어 이부자리 아래서도 따스하질 않자 신하들은 왕의 잠자리에 온기를 보태 줄 인물 고운 처녀를 구합니다. 방방곡곡을 다니며 전국 미인 컨테스트를 하다시피 고르고 추린 결과 슈넴에서 아비샥을 구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 처녀는 한 마디로 당대에 이스라엘 전국에서 가장 아리따운 여성이었습니다(왕들A 1:1~4). 

아비샥은, 비록 늙은 다윋이 동침하지 않았다곤 하나 신하들은 당초 왕의 품 안에 둘 요량으로 뽑아 왔기에 실상 다윋의 마지막 아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입니다. 그러나 아비샥이 섬기고 봉양만 했다 뿐 왕과 동침하지 않는다는 후문이 밝혀졌는지 그녀를 몰래 연모하고 탐내는 남성이 있었습니다. 왕자 아도니야였지요(2:17 참조).

다윋은 압샬롬 반역 사건 전이나 후나 아도니야에게 한 번도 섭섭한 말을 던진 일이 없습니다. 부자 간에 아무 츠러블이 없었다는 얘기지요. 아마도 다윋은 여러 모로, 슐로모의 왕세자 선정 전후에 허우대 좋은 아도니야를 왕세자 감으로 한 번 이상 생각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전 터가 마련되고 성전을 지을 차기 왕이 슐로모라는 사실이 공공연해지자 아도니야는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때쯤 왕궁 주변을 나돌면서 아비샥을 보고 그 미모에 찬탄하고 흑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늙은 아버지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더더구나 탐심을 키웁니다.

아비샥을 차지할 길은 왕위를 동시에 차지해 왕/왕후 부부가 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왕의 후궁을 차지한다는 것은 곧 상징적으로 왕위를 굳힌다는 말과 같은 상관 관계가 성립됩니다. 압샬롬도 참모 아히토펠의 계략을 따라 자신의 왕위를 "견고히" 하기 위해 아버지 다윋의 후궁 열 명을 모조리 강간하지 않았습니까(시리즈 지난 호 참조). 이같은 '상관 관계'는 나중 슐로모의 의식 속에서도 드러납니다(2:22 참조).

'아도니야'라는 이름은 "야웨님은 나의 주님"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름을 부르거나 불리는 사람마다 야웨님이 자신의 주님이란 사실을 상기할 수 있었을 터입니다.
아도니야는 야웨 하나님이 이미 대언자와 왕을 통해 슐로모를 왕세자로 최종 결정한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을 터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야웨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즉 자기 이름에조차 어긋나는 헛된 꿈을 꾼다는 말이지요.

그는 끊임없이 아비샥을 아내로 삼아 결혼하고 슐로모 대신 왕이 되는 공상을 합니다. 아름다운 연모의 정이기보다 마귀가 주는 환각이지요. 마침내는, 동생 슐로모를 제치고 형 압샬롬이 시도했던 그런 무력 쿠데타가 아니곤 이 환상적인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엄청난 오판을 하고 맙니다.
자기 욕심으로 왕국의 기반을 삼겠다는 발상이지요.  


반역

아도니야는, 이름 답게 야웨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 분의 뜻을 받들어, 당연히 차기 왕인 동생 슐로모에게 승복하고 받들어 섬겨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이름처럼 하나님을 평화의 아버지로 섬기긴커녕 온 나라에 불화를 불러 왔던 압샬롬처럼 그는 주/야웨님의 뜻을 거부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죽은 형 압샬롬의 쿠데타 당시 눈여겨 봐 둔 것처럼, 아도니야도 전마차와 기병들과 선두 근위대 50명을 차출하여 세웁니다(1:5). 또, 자신과 함께 쿠데타에 참가할 사람으로 다름 아닌 국방장관인 사촌형 요압 장군을 비롯한 주요 군장들, 또 대사제(대제사장) 아비아타르를 설득합니다(7절).

그러나 또 다른 사제인 자돜과 다윋의 12 군장들 중 한 명인 시위대장 베나야를 비롯한 다윋의 용사들, 대언자 나탄, 샤울의 후손 쉬메이, 다윋의 신하 레이 등은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하지 않습니다(8절 참조).  

역사는 어떻게 이다지도 똑 같이 반복될까..알고 보면 싸탄은 이미 맨날 써 먹어 왔던, 뻔할 뻔 자인 상투적 수법을 써도 사람들이 편하게 잘 속아 넘어 가 주는 탓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어리석은 아도니야는 낚시바늘을 문 물고기처럼 싸탄의 사주에 속아 자신의 썩 "괜찮은" 준수함과 완력만 믿고 이제는 늙어 가는 장관 요압과 하나님의 사제를 호려 쿠데타를 단행합니다.

그래서 주 음모자들과 모든 왕자들, 일부 백성들을 데리고 예루샬렘 근교 엔로겔 가까이, 에벤 조헬렡('뱀 바위'라는 뜻!)에서 거나한 잔치를 벌입니다(1:9). 하지만 대언자 나탄, 베나야 등 용사들, 동생 슐로모는 일부러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그곳에서 수소와 살찐 수송아지를 잡고 먹고 마시며 "아도니야 왕 만세!"라고 외쳐 선언하고 말았습니다(25절).
일단은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는 군대를 데리고 예루샬렘으로 쳐들어 와 늙은 부왕을 내쫓고 슐로모 왕세자를 쳐 죽이고 아도니야를 공식 왕위에 앉히는 순서만 남은 셈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왕자들은 뼈도 줏대도 없는지 형 아도니야의 반란에 무턱대고 덩달아 장단을 맞춰주며 아버지를 배역했다는 것이지요(1:9,19,25). 다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건만 실로 물렁이들이니 애당초 왕세자 감은 도저히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왕후를, 남편은 아내를 잘 둬야 한다는 중대한 교훈으로 받게 됩니다.

아도니야는 쿠데타에 일차 성공했던 압샬롬보다도 용의주도하지 못하고 다소 엉성합니다. 단지 요압 장관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거느린다고 해서, 충성스럽고 용맹스런 왕의 용사들이 모두 간단히 승복하고 져 주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어리석습니다. 압샬롬 쿠데타 당시 참모 아히토펠의 전략을 깨 버린 후샤이는 다윋의 친구이므로 당연히 아도니야를 돕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쿠데타 세력은 얼마 안 가 허무하게 맥 없이 분산되고 맙니다(1:49).


슐로모 왕의 즉위

이같은 상황은 늙은 다윋이 슐로모를 미리 즉위시키지 않은 데서 발생한 우환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즈음 젊은 후궁 아비샥에게 봉양과 수종을 받다 보니 흐뭇한 마음에 중요한 국사를 전개시켜 나갈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슐로모는 비록 하나님이 왕세자로 내정하시긴 했으나 아직 어리고 나약하므로 미적미적 미루는 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언자 나탄이 급히 슐로모 왕세자의 어머니인 밭쉐바를 찾아 와 아도니야가 이미 왕이 됐음을 선언했다는 급보를 알리고 왕비 마마와 왕세자 마마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니 왕께 빨리 알리라며 상감마마는 도대체 여태도 정권 이양을 안 하시니 어떻게 된 거냐고 여쭈라고 권합니다(왕들A 1:11~14).

기절초풍하게 놀란 왕후는 부랴부랴 다윋 왕의 침실에 들어 갔는데 마침 왕은 아비샥의 시중을 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오?" 라고 묻는 남편에게 밭쉐바는 "전에 왕께서 제게 맹세를 하시며 그대의 아들 슐로모가 차기 왕이 될 것이라고 선정하지 않으셨습니까..이제 딴 왕자 아도니야가 왕이 됐는데도 왕께서 알지 못하고 계시다뇨"라고 아룁니다(15~20).

그러면서 왕에게 후계자를 정식 공포할 것을 호소하면서 아울러 자신과 아들 슐로모를 보호해 줄 것을 탄원합니다.

   "안 그러시면 나의 주 왕께서 선조들을 뒤따라 잠드실 때(=임종 때), 저와 제 아들 슐로모는 죄인으로 남게 되고 맙니다." (21절)
 
바로 이때 나탄도 들어 와 지원 발언과 동시에 자신의 처지도 설명합니다(22~27절 참조). 아도니야 일당들이 슐로모 뿐 아니라 나탄 자신과 사제 자돜, 군장 베나야 등을 초대하지 않았으니 이게 과연 왕의 뜻이냐고 묻습니다. 사실 나탄은 슐로모가 후계자로 내정된 줄 실제로 알지만 왕이 슐로모가 차기 왕이라고 공표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지적합니다.
그만큼 다윋이 미루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지요.

왕은 깜짝 놀라, 뒤늦게라도 하나님 앞에 맹세코 슐로모가 차기 왕이라고 명언하면서, 대비가 될 밭쉐바를 다시 불러 들여 재차 지난 언약을 확인한 데 이어 자돜과 베나야, 나탄 등을 모두 긴급 대령시켜 왕세자를 노새에 태워 모시고 기혼으로 가서 거기서 자돜과 나탄이 기름을 부어 나팔을 불며 슐로모 왕 만세를 부르고 돌아 오라고 지시합니다(28~35절 참조).

베나야는 왕의 선언에 아멘으로 화답/축복한 다음 함께 슐로모를 왕의 노새에 태워 호위하고 기혼으로 내려 갑니다. 자돜은 성막에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슐로모의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환호하며 "슐로모 왕 만세!"를 외칩니다.
새 왕이 정식 즉위를 하려고 예루샬렘 성으로 되돌아 오는 길에도 온 백성이 만세를 외치고 쇼파르(뿔나팔)와 피리 등으로 연방 팡파르를 울려 대는데 그 환호성과 악기 소리가 얼마나 큰 지 천지가 진동하고 땅이 갈라질 듯 했습니다. 그 정도로 국민들은 젊은 차기 왕을 기다리고 반긴 것이지요.

슐로모가 즉위하고 나자 신복들이 다윋을 찾아 와 축복합니다.
"폐하의 하나님이 슐로모 왕의 이름을 폐하의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하시고 그 왕권을 폐하의 왕권보다 더욱 강대하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윋은 침상에서 몸을 굽혀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님을 찬양합니다! 주/야웨께서 오늘 나의 왕위에 앉을 후계자를 주셔서 내 눈으로 직접 보게 하시다니!"라고 화답했지요(1:47,48).

예루샬렘 주변에서 들리는 굉음을 듣고 놀란 아도니야 일행들은 아비아타르의 아들 요나탄에게서 상보를 듣자 겁을 먹고 뿔뿔이 흩어집니다(49절). 주모자인 가짜 왕 아도니야는 정통 왕이 된 슐로모의 처단이 두려워 즉시 성막으로 들어 가 전통에 따라 번제단의 뿔을 쥡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니 목숨만은 살려 달라는 뜻이지요(50,51. 참조 2:28. 출 27:2, 29:12).

이야기를 전해 들은 새 왕 슐로모는 "그가 착한 사람이 되면 머리칼 하나라도 손 대지 않겠지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을 것이다"라고 경고합니다(52,53). 반역자인 형 아도니야가 왕궁에 나타나 엎드려 절하자 슐로모는 "집으로 돌아 가오"라고 명합니다. 정당하고 깨끗한 처리지요. 

     다윋 왕의 서거

얼마 후 부왕 다윋의 임종 때가 다가 옵니다.
다윋은 앞서 성전 건립 준비와 함께 건축에 관한 제반 유언을 슐로모가 즉위하기 퍽 오래 전 미리 예고했기에(연대A 28, 29장 참조) 그 나머지 교훈을 내립니다(왕들A 2:1~9). 즉 대장부가 되어 하나님의 명령과 모쉐를 통해 주신 모든 계명과 법률을 따르고 지키면 꼭 형통할 것이라며 그렇게만 하면 왕통이 영영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아울러 역모자 요압과 과거 다윋의 피난 시절 저주하고 비웃었던 쉬메이의 처리 문제(슘B 16:5~14 참조), 피난 시절 다윋과 백성들을 후히 위로하고 대접했던 거부 바르질래에 대한 예우 문제(슘B 17:28,29, 19:31~39) 등을 유언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다윋은 헤브론에서 7년반, 예루살렘에서 33년 등 모두 40년반을 다스렸습니다.

숙청과 정화

하지만 반역왕자 아도니야의 욕심은 아직 잠들지 않습니다. 워낙 싸탄의 입김을 강하게 받다 보니 스스로 명을 재촉합니다. 그는 아직도 제 이름 값을 하지 못합니다.
이번에는 왕의 친어머니이자 자신에게도 어머니 뻘인 밭쉐바 왕후에게 찾아 와 특별 요청을 합니다(왕들A 2:13~17). 사실은 슐로모의 왕위가 원래 자기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이 다 자신을 왕으로 받들려고 했는데 주/야웨님 탓에 동생에게 뺏겼다고 그럴 듯한 나름의 주장을 폅니다.

"저를 거절(개역한글역은 '괄시')하지 마소서"라고 은근히 낚시고리를 걸면서 아버지의 마지막 후궁 아비샥을 자신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해 달라고 합니다. 슐로모가 이미 경고했거늘 그는 새카맣게 잊어 버리고 자신이 마귀에게 조종 받아 죽음 길을 재촉하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끝 마디는 더욱 좋지 못합니다. 즉 왕 슐로모가 어머니 밭쉐바의 얼굴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 본 점입니다.

문제는 대비마마 자신에게도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는 "좋다, 내가 그대를 위해 왕에게 소청을 드려 보겠다"고 약속을 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거절하지 말아 달라"는 낚시고리를 아들 슐로모에게도 써 먹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는 "거절한다"(히브리어 원형동사 '슈브')는 낱말이 아도니야-밭쉐바-슐로모에게 전염되면서 모두 4번이나 나옵니다(왕들A 2:16~20). 그 정도로 아도니야의 집념이 강했던 것이지요.

어떤 의미에서 밭쉐바는 다윋의 늘그막 침실을 장식한 젊은 후궁 아비샥을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겼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새파랗게 젊은 데다 예쁘기 짝이 없는 처녀가 남편의 뒷바라지를 한다는 데 질투심이 발동했을 여지도 없지 않지요(왕들A 1:15).
이미 남편/왕도 죽었겠다, 불행히도 지난 번 쿠데타가 실패해 왕위를 "뺏긴" 아도니야에게 어린 막둥이 후궁을 왕자비로 할당해 주는 것도 뭐 어떠냐. 아도니야나 아비샥 - 양 쪽에 모두 좋은 일이 아니냐..괜찮으리라고 자판합니다. 오판이지요.

정작 슐로모 왕의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어머니의 말을 듣자 사안이 사안인지라 "거절하지 않겠다"던 당초의 장담과는 달리, 민감하고도 위엄 있게 반응합니다. 말투를 보건대 대비마마께 역정을 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의 후궁을 바란다면 왕위까지 챙기려는 것이나 뭐가 다르겠냐며 주/야웨님을 걸고 맹세하기를 아도니야는 오늘 당장 죽어야 한다고 베나야를 시켜 쳐 죽입니다(2:19~25 참조). 속전속결입니다.

어찌 보면 반역자 숙청이지만, 실은 아도니야가 제 목숨을 걸고 한 언약을 어기고 다시 욕심을 따라 도전한 탓입니다. 은혜를 베풀어 살려 준 목숨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지요.

슐로모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문제 인사들을 연이어 처단합니다. 비록 유언에 직접 포함되진 않았지만 쿠데타 공범인 대사제 아비아타르도 파면합니다(왕들A 2:26,27).

아비아타르는 사실 좀 기구한 사람입니다. 제사 전문 지족인 레비 족이고 대대로 사제 가문이긴 했지만, 자식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집안에 문제가 많았던 옛 판관/사제이자 슈무엘의 선배/스승이었던 엘리의 후손이기도 했지요.

그는 샤울-다윋 시대 대사제(맑 2:26)로 다윋이 샤울왕의 칼날을 피해 광야생활을 하던 시절 다윋을 도왔다고 해서 84명의 사제가 샤울에게 몰살 당할 때 유일하게 혼자 살아 남았습니다. 당시 그의 아들인 사제 아히멜렠까지도 죽었습니다(슘A 21:7~22:19).
그후 다윋왕에게 피신해 있으면서(슘A 22:20) 환난에 동참했기에 다윋 왕대에도 대사제로 임명 받아 여태 지내왔습니다(슘B 8:17). 또 다윋 왕이 오벧에돔의 집으로부터 야웨 하나님의 법궤를 성막으로 모셔 들일 때 함께 궤를 메기도 했습니다(왕들A 2:26,27). 압샬롬 반역 사건 때까지만 해도 그는 다윋의 편이었습니다(슘B 15:24~26).

그런데 마지막에 아도니야에게 넘어가 그의 쿠데타에 가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슐로모는 그를 불러 말합니다. "그대는 마땅히 죽을 자로되.." 여태 공로를 봐서 목숨만은 살려 준다는 것이지요. 그날부터 아비아타르는 사제직을 뺏겨 고향 아나톹으로 낙향하게 됩니다(왕들A 2:27).

놀랍게도 아비아타르 파직 사건은 약 100년전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즉 그의 선조인 판관/사제 엘리 집안의 큰 죄악으로 사제직 후대가 언젠가 끊겨 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신 대로였습니다(슘A 2:27~36). 무서운 성취지요.

왕은 그 대신 다윋-슐로모 시대에 거쳐 계속 끝까지 충성했던 사제 자돜을 새 대사제로 임명합니다(왕들A 2:35). 자돜은 다윋이 헤브론에서 유다 왕으로 즉위할 당시, 용사로서 자기 집안의 군장 22명을 이끌고 다윋 편이 됐고(연대A 12:28) 오벧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옮길 때 아비아타르와 함께 궤를 메었지요. 또 압샬롬 쿠데타 당시 다윋의 영을 받들어 아군의 첩보-연락관 노릇도 합니다(슘B 15:22~29).  

아비아타르와는 달리, 아도니야 반역 역모에 가담하지 않았기에, 슐로모 왕자에게 직접 기름 부어 왕으로 임명하는 영광도 안았습니다(왕들A 1:39). 충성스런 그가 아비아타르 대신 대사제가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후 자돜의 후손들은 유일한 사제 계열로 대대로 충성을 다하며 왕국에 우상숭배 죄가 팽배했을 때도 성실히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 역시 주/야웨님의 예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슘A 2:35,36. 참조: 왕들A 1:8,26,32, 연대B 31:10, 에제키엘 40:46, 43:19, 44:15). 그래선지 연대기A 6:1~15, 49~53의 사제 족보엔 자돜 계열만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어김 없이 성취됩니다.  
 
한편 함께 역모 죄를 지은 국방장관 요압 역시도 다윋의 유언대로 숙청 당하지요(왕들A 2:5,6, 비교: 28~34). 공적이 많고도 말썽 많아 외삼촌인 다윗에게 저주까지 받았던 그의 삶이 이것으로 마감됐습니다. 그의 장관 자리는 충신인 베나야 장군이 대신 차지하게 됩니다(2:35).

이제 모든 문제의 싹을 잘라 버린 슐로모 왕권은 굳건히 강화돼 갑니다.

사실 다른 왕자들도 다들 슐로모를 배신하고 역모에 가담한 것이나 다름없지만 슐로모는 아도니야 형을 제외하고 더는 집안에 피를 부르진 않습니다.  


    [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