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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평화시대/성전시대 (메시아계보대장정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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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슐로모 성전 자리에 재건한 제룹바벨 성전을 허물고 지은 '헤롣 성전'의 상상 모형


참고: 성경 권명 약자 해설

 

   슘A/B: 슈무엘 A/B (사무엘 상/하)
   왕A/B: 왕들 A/B (열왕기 상/하)
   연A/B: 연대기 A/B (역대 상/하)


평화시대를 열다

전술한 대로 평화라는 뜻의 이름 '슐로모'(솔로몬)는 '예디디야'(야웨께 사랑 받는 사람)처럼 하나님이 직접 지어 주신 이름입니다(연A 22:9). 두 이름 모두 장차 오실 메시아를 상징하는 이름이지요.
하나님은 성자님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마태 3:17). 또한 예수님은 평화의 군주이십니다(이사야 9:6b).

하나님은 의식적/의도적으로 슐로모를 예수 크리스토의 그림자 내지 '프로토타잎'(선형/先型. prototype은 서로 거의 반대일 정도의 두 가지 뜻이 있음. 여기서는 한글 번역어 '원형'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십니다(슘B 7:11~16). 마치 아브라함의 독자 이짜크를 성자님의 선형으로 쓰셨듯 말입니다.

슐로모 시대는 이스라엘 왕국의 황금기였지요. 유례 없는 평화를 누렸고 국토가 가장 확장된 시기였고, 정치/외교 상으로도 수많은 나라들이 줄줄이 조공을 바칠 정도의 강국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네 한반도의 고구려가 강국일 때 여러 나라가 사신과 조공이 줄이었듯 말입니다.

슐로모 자신의 이름이 가리키듯 그의 집정기는 한 마디로 평화시대였습니다. 당시 국내 정황이 어땠는지 다음 성구가 웅변해 주지요.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은 슐로모가 사는 날들 동안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전하게 지냈다 (왕A 4:25. 사역)

놀라운 평화지요! 이전 시대와는 너무도 딴 판 아닌가요! 역사가 전쟁의 무늬로 장식됐던 카나안 정복시대, 판관(사사)시대, 왕국 초기 샤울/다윋 시대와는 완전히 차이가 나지요.
샤울 왕은 큰 체구답게 초기부터 아말렠/펠레쉩 족 등과 전쟁을 치렀습니다. 후임자 다윋은 목동 시절부터 양을 지키느라 짐승들의 피를 흘려야 했고, 골리앋을 쳐 죽인 공을 세운 후부터 죄도 없이 샤울에게 맨날 쫓겨 다녔고, 그후로도 용사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장군으로서, 거의 한평생 전투/전쟁 속에 살아가며 순간 순간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를 많이 흘려 하나님이 그의 성전 건립 소망을 막으실 정도였습니다. 그뿐인가요? 밭쉐바와의 스캔들 이후 죽기 얼마 전까지 왕자의 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물론 다윋의 노력 덕분에 슐로모 초기에 나라가 많이 안정되기도 했습니다만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이런 넘치는 평화의 시대가 있을 수 없었지요.

그런데 이처럼 다반사였던 전쟁이 없어 슐로모가 단 한 번도 출전하지 않고도 이스라엘-유다 통일왕국이 강국으로서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음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슐로모 왕의 이 평화시대를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이루실 평화의 왕국에 대한 하나의 예표로 삼으셨습니다. 마치 슐로모처럼 장차 오실 메시아 예수 크리스토 역시 평화의 군주이시므로.
이것은 하나님이 다윋에게 차기 왕대에 관해 예언하실 때 슐로모를 미래의 예수 크리스토와 늘 병립(juxtapose)시키신 사실로 미뤄서도 알 수 있습니다(슘B 7:12~16, 시 89:4,27~37, 132:11,12, 비교> 히 1:5, 루카 1:32, 33,).

그런데 다윋 후대에 관해 거듭 되풀이 되는 예언들이 영원성을 지닌다는 사실은 슐로모에겐 영 걸맞지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메시아, 왕들의 왕(!), 예수님께 더 어울립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슐로모가 엄청난 우상숭배로 범죄하여 그 나라가 짧아질 것을 내다보지 못하실 리가 없지요. 


슈퍼 현인 슐로모

슐로모는 당대에 가장 슬기로운 사람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슐로모의 지혜는 모든 동방 사람들의 슬기보다 또 미쯔라임의 모든 지혜보다 더 뛰어났다. 그는 그 누구보다 슬기로워서 에즈라 사람 에탄보다 마홀의 아들들 곧 헤만과 칼콜과 다르다보다 뛰어났기에 그의 명성이 모든 나라에 두루 퍼졌다(왕들A 4:30,31).

슐로모는 구약 잠언서를 포함, 3000 격언들을 말했는가 하면, 1005 편의 노래를 지었고, 온 천하의 동식물을 논하던 당대의 천재, 만물박사였습니다(32,33절). 그래서 주변국의 모든 왕들이 수시로 "한 수 배웁시다"며 찾아들 오곤 했지요.  

슐로모가 이처럼 최고의 현인이 된 데는 내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덕택이었지요(왕A 3:3~14 참조). 그가 초기에 아버지 다윋처럼 주 야웨님을 사랑했기에 기브온 산당에서 1000 마리 번제물을 드리고 난 뒤,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그에게 무엇을 줄까고 물으시자 슐로모는 "저는 어리니 수많은 백성을 올바로 판결할 수 있게 옳고 그름(선악)을 가릴 분별력을 주소서" 하고 간구했습니다.

그 소원이 하나님의 마음에 딱(!) 맞았습니다. 장수나 부귀, 적의 목숨 따위를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하니까, 하나님은 너무나 기특하게 생각하셔서 전무후무한 수준과 폭의 지혜를 주실 뿐더러 구하지 않은 것 곧 부귀와 영예까지 당대의 모든 왕들 중 최고 수준으로 주셨지요. 또 나라를 올곧게만 다스리면 장수하리라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 슐로모의 이 지혜를 코린토A서 12:8에 나열된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지혜와 지혜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후자는 성령이 내리시는 초자연적 은사로서 구약시대엔 주로 대언자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신약시대엔 성령님의 뜻을 따라 모두가 아닌 개인의 몫으로 주어지며 성령님이 원하시는 때만 보여 주시는 독특한 은사 계시의 성격을 지닙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슐로모의 이 신적인 지혜는, 두 성매매 여성이 한 아기를 놓고 낸 소송에서의 명 판결로써 여지없이 입증됐지요(왕들A 3:16~28). 또 당대의 탁월한 여성 현인/군주인 쉐바 여왕이 그의 명성을 듣고 방문하여(왕 10:1~10) 자신의 슬기를 몽땅 쥐어 짜 극난한 수수께끼, 난제들을 던집니다.
그러나 슐로모는 단 하나도 막히지 않고 술술술술 그 퀴즈 테스트를 다 풀어 통과해 버립니다. 여왕은 감탄한 나머지 "행복합니다, 님의 백성! 행복합니다, 님의 신하들! 송축합니다, 님의 하나님 주/야훼님을!" 하고 연신 찬사를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귀한 예물들을 서로 주고 받았지요.
 
예수 크리스토님도 슬기로운 분이셨습니다. 어릴 적부터 지혜와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셨지요(뤀 2:52) 불과 열 두 살 때 성전에서 구약성경에 관하여 당대 교사들과 질의응답을 주고 받는데 아무 막힘도 거침도 없이 척척 답하시고 물으셔서 그들을 경탄하게 만드셨습니다(뤀 2:46,47). 멋 있는 프리틴(틴에이저 직전기: 10~12살)이었지요!

공사역에 나섰을 때는, 성령께서 충만한 기름부음과 은사를 물 붓듯 넘치게 부어 구비해 주셔서 사역에 아무 지장도 모자람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파리새들, 종교 지도자들이 주님을 트집 잡아 코너에 몰아 넣으려고 아무리 교묘하고 간사한 질문으로 올무를 걸어 봐도, 상상 못할 수위의 우문/현답이었기에 상대방이 질리고 말문이 탁 막혀 버리곤 했지요. 주님은 간혹 동문서답 격 반문도 하셔서 그들이 되레 쩔쩔 매고 당황하게 만들곤 하십니다. 그래서 더더욱 미움을 받으셨지요.

이로써 우리가 나날이 더 알고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로 주는 지혜는 세상의 어떤 지혜도 능가한다는 사실입니다(시 119편 참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남보다 깊이 묵상하고 바로 깨닫는 것을 '종교열광주의' 내지 '광신주의'로 여기기 일쑤죠. 심지어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세상 지혜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가 인간의 모든 지혜를 능가하지 않나요?

비근한 예로..요즘 미국 교계에서는 성경 그대로, 곧이 곧대로가 아니라 요리조리 적당히 살짝살짝 비틀고 왜곡하여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훨씬 더 인기가 높고 쉽사리 명사 반열에 오릅니다.
근래 미국 교계 명사들 중엔 성경대로 믿고 사는 사람들을 찾아 보려야 아주 드뭅니다. 뭔가 한 가지 이상 비성경적인 문제점을 꼭 드러내고야 맙니다. 그래서 검증과 분별이 더 중시되지요. 성경대로 올곧게 믿으려는 신자가 드물고, 나날이 귀해져 가는 시대입니다.
미 교계 명사가 되려면 성경 진리와의 타협이 반드시 필요한 실정이지요. 교계가 전반적으로 그렇게 돼 가니까 그 가운데서도 "튀고" 두드려지려면 더 그래야 되지 않겠나요? 그래서 맄 워런 같은 명사가 유진 피터슨의 '더 메시지' 처럼 매우 곡해된 성경번역을 선호하는 것도 그다지 이상한 일이 못 됩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성경은 더욱 곡해되고 날조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밤은 깊고 사람의 마음은 어둡기 때문이죠. 싸탄이 한시적으로 지배하는 사회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도록 예수님의 슬기, 성령님의 분별력, 깊고 영적인 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그 한 가지 길은 사도 파울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삼는 것입니다(에페소 1:15~19, 3:14~19, 필리포 1:9~11, 콜로새 1:9~12).


성전시대를 열다

무엇보다 슐로모는 이스라엘 사상 최초로, 또 왕국 시대에 유일하게 이스라엘 성전을 지은 왕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루샬렘을 예루샬렘답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성전이었지요. 성전을 히브리어로 '헤칼'이라고 합니다. 영어 'temple'은 라틴어 '템플룸'에서 왔고요.

예루살렘 다윋성 찌온 언덕 위에 우뚝 선 이 제1 성전은 고대 광야 시대 이후 법궤(언약궤) 및 성막(회막)과 함께 이스라엘의 아이덴티티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역사상 중대한 위치이지만, 우리에겐 예수 크리스토가 현재 대 사제로 계시는 하늘 성전을 암시하고 가리키는 영적 상징물이기도 하지요.

슐로모 왕은 7년간에 걸쳐 성전을 완공합니다.
오랜 훗날, 에사후(에서)의 후손 격인 에돔(이두메아)족 출신으로 로마 제국의 꼭둑각시 왕이었던 헤롣 1세는 제룹바벨 총독이 건립한 포로기 후 성전을 허물어 버리고 땅을 넓혀 약 35에이커 위에다 거창한 성전을 짓습니다. 야웨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전혀 아니라, 그의 왕조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지요. 건축에 다분히 취미와 소질이 많았던 헤롣은 야웨 신 뿐 아닌 이교 신전도 여럿 지었습니다. 이 헤롣은 예수님이 어릴 때 살해하려고 베틀레헴 근교의 수 천 아기들을 죽인 살인광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성전으로 인정하시고 계속 출입하십니다. 주님이 그나마 '헤롣 성전'을 "내 아버지(히브리어 '아비')의 집"(뤀 2:49), "만민의 기도의 집"(맑 11:17)으로 인정하신 것은 로마 황제를 비롯한 제신을 섬긴 헤롣의 건립 정신이 기특해서가 아니라..바로 아브람을 축복한 고대 사제 멜키쩨뎈 때부터 하나님의 언약으로 지정된 자리, 이짜크를 하나님께 바치는 정신으로 순종하고 경배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제단 자리 모리아였고, 야웨님께 사랑받던 슐로모가 마음을 바쳐 성전을 지은 자리로 대대로 지켜져 왔기 때문이지요. 아울러 이곳은 신약시대를 여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앞두고 당분간 첫 교회의 탄생을 끼고 기도한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마저도 불과 몇 십 년 안에(70년경) 무너지고 맙니다. 이미 예언된 바 였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탓이지요. 대신 주님의 몸이 성전이며 곧 우리가 그분을 머리로 삼는 몸된 교회가 됐습니다. 할렐루야! 이젠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이 하늘 성전이시고요(계 21:22).
 
예루살렘 성전 건립은 본래 부왕 다윋 자신이 무척 갈망하던 프로젝트였지요. 그래서 대언자 나탄에게 뜻을 전달하고 하나님께 여쭸지만, 하나님은 전술한 대로 그가 유혈극을 많이 벌인 탓에 사양하시고 그 아들 대에 이루겠다고 예고하셨습니다(슘B 7:1~7,13, 연A 22:8).

이스라엘은 과거 광야 시대로부터 줄곧 법궤와 회막 중심의 신앙 생활을 해 왔습니다. 법궤는 승전을 위해 전쟁터로 모시고 갔다가 적군에게 뺏기기도 했고 심지어 행방이 묘연해 지는 등 우여곡절 끝에 다윋 왕 시대에야 비로소 도로 찾아 회막에 모십니다(슘A 4~6장 7:1,2 참조. 시 132:5,6. 슘B 6:1~15).

슐로모는 다윋 대신 하나님께 성전 건립을 허여(許與) 받은 사람으로서 하늘 대사제 예수 크리스토를 상징합니다. 더욱이 하나님과 성자님 자신이 바로 교회와 하늘 성전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우리 신자들에게 큰 의미성을 부여해 줍니다(엪 1:23, 계 21:22).

하나님은 성전을 짓기 전 슐로모에게 모든 사람들 위에 뛰어난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성전 설계도는 주/야웨님이 직접 성령으로 다윋에게 미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하늘에서 직접 다윋에게 임하여 부분마다 일일이 하나하나 친절하고 상세히,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 보여 주신 것입니다(연A 28: 11,12, 19).   

돌아 보면, 하나님은 고대의 노아 방주로부터 광야시대 회막과 그 모든 부속 설비, 사제들의 제복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한 모든 요소/장소/도구 등을 손수 디자인하셔서 사람들에게 주실 뿐더러 다양한 자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일일이 미리미리 챙겨 공급해 주십니다! 그래서 야웨 이레(예비자/공급자)시지요

예컨대, 선왕 다윋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성전 건립에 필요한 모든 자재들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인구조사 소동 끝에 얻게 된 아라우나(오란)의 타작마당(아브라함이 이짜크를 바치려던 모리아 산)을 성전 대지로 마련했지요.
또 국고에서 황금 10만 키카르(금속덩어리의 히브리 단위, 이하 '덩이'), 은 100만 덩이, 각종 진귀하고 화려한 보석 등을 넉넉히 일차 준비한 데다..2차로 다윋의 사유재산 가운데서 오피르(아라비아 남부의 금광)에서 캔 금 3,000덩이, 순은 7,000덩이를 내 놓았고 다윋에게 감동을 받은 정부 관리들이 자진하여 금 5,000덩이, 금화 10,000냥, 은 10,000덩이, 구리 18,000덩이, 철 100,000덩이, 개인이 보유했던 보석 등 엄청난 자재를 하나님께 기꺼이 바쳤습니다. (연A 22:14~16, 29:2~9 참조).

다윋은 마음이 너무나 흐뭇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천 단위의 동물들로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축복했습니다(29:10~20). 든든하고 좋으신 하나님에, 든든한 아버지이지요.
이것은 과거 미쯔라임 출국 후 광야시대 때,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대로 회막과 법궤 제작 등을 위해 정성껏 하나님께 예물을 바친 것을 연상시킵니다(출 25~28장 참조, 35:4~29). 나중엔 바치는 물건이 너무 많아 회막 제작/성물 장인들이 자재가 과다하다며, 지도자에게 하소연해 더 가져 오지 말라고 만류할 정도였지요(출 36:3~7)!
오늘날도 사람 아닌 하나님께 기꺼이 믿음으로 바치거나 헌신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다윋은 비록 많은 목재를 준비했다고는 하나, 아들 슐로모에게 나중 건립 전에 더 준비하라고 유언합니다. 그래서 최상의 백향목(송백나무)이 가장 많은 지역인 인접국 쪼르(튀로) 왕국의 레바논 백향목과 곁들여 삼림 벌목에 가장 뛰어난 레바논 일꾼들을 초청합니다. 하나님은 슐로모에게 각별한 지혜로 역사하시어 쪼르 왕 히람에게 엄청난 도움을 받게 하십니다(왕들A 5장 참조). 히람(=후람) 왕은 다윋 시대에도 왕궁 건립을 위한 목재/석재 등 최상의 자재와 기술인력을 제공해 다윋과 끈끈한 우정을 맺은 바 있습니다(슘B 5:11).

왕들 6~7장에 나타난 성전 구조에 따르면, 큰 그림은 고대의 성막/회막 구조(출 25~27장 참조)와 거의 동일하되 더 커지고 더 화려해지고 영구성을 갖추게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광야 시대 때는 구비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부속시설과 장식이 많아졌습니다. 아울러 수 천명의 대사제와 사제들, 성전 제사 사역을 돕는 일꾼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조직화 되어 야웨님 경배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보면, 하나님은 당신께서 사랑하시던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그들 한 가운데 머물기 원하셔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함께 하셨고 그들 가운데 항상 늘 계시면서 영광을 나타내시려고 두 케룹 천사들 한 가운데 쉐키나(하나님의 임재/보좌의 영광)로 머무시고 뚜껑 위에 이스라엘에 계시하실 시은좌(일명 속죄소, Mercy Seat)를 곁들인 법궤를 먼저 만들게 하셨습니다(출 25:10~22). 법궤 안에는 모쉐에게 직접 내리신 율법 계명의 돌판,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살구나무/아몬드) 지팡이 등 세 가지가 들어 있었지요(히브리 9:4).
법궤 뚜껑 위 시은좌는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을 상징합니다.

광야 시대 때는 40년간 사제들이 메고 운반하면서 한 곳에 장기간 머물 때 회막에 모셔 두던 이 법궤가 카나안에 진입한 이후 쉴로에 모셔 두었지만 한때 적국에 뺏겨 수모를 겪기도 하다가 다윋 왕대에 와서야 되찾아 다윋성 찌온에 영구히 모셔 두게 됩니다. 성전이 완공된 후에는 레비인들이 이젠 더 법궤나 제사용 기구들을 메고 운반할 일이 없게 되지요(연A 23:26). 그 대신 이젠 성전 한 군데에 사역을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고대 회막 속에는 이 법궤를 모셔 두고 일년에 딱 한 번 대사제가 드나든 지성소와 제사 장소인 성소 등을 포함한 회막 가운데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속죄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제가 출입하는 성소에는 사제들의 정결례를 위한 물두멍, 희생제물인 짐승을 불사르는 번제단, 하나님께 향기로운 향제를 올리는 향단, 불빛을 밝히는 등대(메노라), 진설병을 쌓아 두는 떡상 등이 갖춰져 있었지요. 제각기 깊은 영적 의미성이 담긴 상징물들이기도 하지요(히9:1~5 참조).

그런데 하나님은 여느 잡신과는 달리 장소에 구애받는 신이 아니라 어디에나 계실 수 있는 전능하고 무소부재한 분이셔서 그 언제 '백향목 성전'에 머물겠노라고 인간에게 특별 신전건립을 요청하신 일이 없건만(슘B 7:1~7), 슐로모의 왕국을 복 주시고 영구히 머무시기 위해 이 엄청난 임무를 맡기십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인 이스라엘/유다, 다윋, 슐로모를 사랑하시고 찌온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왕국시대 동안 찌온을 거처 삼아 머무시기로 다윋에게 언약으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성전 진입송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시 133편 참조). 

그러나 다름 아닌 슐로모 왕 자신의 우상숭배 범죄로 인해 왕국이 분열되고 그를 본받은 후대 왕들도 계속 범죄하자 하나님은 이 성전을 적국의 군대의 손에다 내던져 버리다시피 하시며 결국 주전(BC) 586년 네부칻네자르 왕이 이끄는 바빌론 군대에게 처참하게 파괴되고 맙니다. 그후 약50년만에 당시 페르시아-메대 제국의 다리오(페르시아어 '다리아부쉬', 그리스어 '다리우스'), 코레쉬(페르시아어: 쿠루쉬, 그리스어: 퀴루스, 한글: 고레스) 두 대왕의 영(令)으로 역시 예수님의 선조인 유다 총독 제룹바벨이 와서 537년경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러나 훗날 헤롣왕이 제룹바벨 성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헤롣 성전을 세우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성막(회막)/성전의 중요성은 참 메시아 예수 크리스토를 통한 인류 구속의 상징성입니다. 즉 구약 율법시대의 피비린내 나는 모든 동물 제사를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만에 영원히 완결하신 어린 양 예수 크리스토의 피와 몸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모형/그림자로 보여 준 셈이지요(히브리 3:1, 4:14~16, 5:1~9, 8:5, 9:1~25, 10:1~4 참조. 독자의 편의를 위해 히브리서에서만 인용함).

예수님은 죽음으로써 이 제사를 온전히 완성하시고 부활/승천하신 뒤 성령을 땅에 보내시어 신자들로 하여금 그분의 몸이자 참 성전인 교회를 이루게 하시고 현재도 멜키쩨뎈 같은 하늘 대사제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십니다(히 5:10, 6:20, 7:1~3, 15~25 참조).  
우리가 구약인들처럼 짐승 희생을 바치지 않아도 바로 그분의 피 흘린 대가와 공로 때문에, 우리는 구원 받아 영생을 얻고,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여 용서 받고 은총의 감격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히 7:26,27, 9:12,26, 10:1~22 참조!). 할렐루야!  


성전음악 시대를 열다

다윋-슐로모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 한 가지가 음악입니다. 다윋 자신이 뛰어난 음악인이었기에 당대 히브리 음악을 크게 발전시킵니다. 다윋/슐로모는 세속음악인 궁중음악을 발전시키기도 하지만(슘B 19:35, 전도서 2:8, 아모스 6:5) 왕국시대/성전시대는 과거와 달리 특히 찬양의 제사인 음악이 강화/강조됩니다. 어느 다른 신에게 영광을 앗기지도 주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은 감사찬양의 제사를 특별히 즐기십니다(시 22:3, 이사야 42:8, 43:21). 찬미는 성도의 입술의 열매이기도 하지요(히 13:15). 

다윋은 이미 다윋성 찌온에 하나님의 장막을 고정시키고 나서 오벧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옮겨 들일 때, 사제 지족인 레비 족 출신인 수많은 찬양대원들을 동원한 바 있습니다(연A 15:16~24).
또 성전시대 직전에도 이들을 다시 동원하고 조직화 합니다(25장 참조). 이들은 기악/성악을 연주하며 음악사역을 하지요. 사제/레비인 등 사역자 38,000명 중 무려 4,000명이 성전 음악인들이었습니다. (나머지 중 24,000명은 제사 관련 직무 담당, 6,000명은 사무관/판관들, 4,000명은 문지기들). 엄청난 규모지요! 이 모든 성전사역자들은 20세 이상 남성들이었습니다. (23:1~6 참조)

이들 가운데 특히 고위급 전문음악인 288명은 헤만/아삽/에탄(=예투둔) 등 3명의 악장(찬양대장) 휘하에 최하단 가문 별로 제비를 뽑아 각 12명씩 조를 짜서 24개 조로 구성돼, 교대로 당번직을 맡아 했습니다(25장 참조). 워낙 제사 규모가 커지다 보니 엄격한 규율과 체계를 갖춘 조직체로 움직였지요. 물론 성전내무의 다른 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거창한 성전음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요. 찬양사역자들도 일반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각기 성전 주변 또는 더 멀리 특별히 나라에서 분여받은 자신들의 집과 토지가 있어 살림을 하곤 했습니다. 이들 역시도 사제들처럼 십일조로 생활합니다. 

과거 다윋이 샤울로부터 도피해 다니던 시절, 라마 나욭 산당에 있는 판관/대언자 슈무엘의 전문 대언자학교에서 훈련 받은 영적/예술적인 찬양음악인 겸 대언자/선견자들을 대거 기용해 회막을 위해 봉사하게 합니다(슘B 18,19. 참조> 10:5).
성전에서는 더 많은 수가 성전 찬양대실에 기거해 있으면서 매일 제사에 곁들일 찬양음악을 연마하고 수련합니다. 다윋의 선견자 겸 수석 악장/찬양대장 헤만은 다름 아닌 슈무엘의 손자였지요(연A 6:33, 25:5) 그의 17명이나 되는 아들/딸들이 모두 성전 기악인/성악인들이었습니다(헤만의 딸들도 성전에서 사역했는지는 아직도 학설상 논란이 있음.   

이 레비 음악인들은 사역을 위해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대언도 할 겸 악기반주에 맞춰 신령한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연A 25:1~3). 즉 성령으로 찬양하면서 대언을 겸할 때가 많았습니다(예: 왕B 3:15).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 다수가 시편이 됐습니다. 시편은 본디 '테힐림'(찬양시모음)이라는 이름처럼 가락과 반주를 넣어 노래로 읊는 찬양시이지요.
 
신령한 노래는 영적인 노래라는 뜻으로..전혀 세상 음악이 아닙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작곡한 노래가 아니란 뜻이지요. 성령님이 주시는 음악입니다. 

이때의 신령한 노래와 교회시대의 신령한 노래가 서로 다른 점은..당대인들에겐 아직 성령이 임재/내주 하시지 않아 다만 사역직능으로서의 기름부음이었기에 특별히 지정/임명된 레비 족 찬양대원들만 성전에서 훈련과 연주를 할 수 있었고 방언이 아니었던 것과는 달리, 신약시대 성도는 누구나 방언을 함으로써 서로 신령한 노래로 화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코린토A 14:15b, 콜로새 3:16, 에페소 5:19 참조. 방언자가 꼭 방언을 읊지 않고도 가락으로만 부를 때도 있음)  

그러므로 방언은 일부 신자들에게 '국한'된다는 주장은 신령한 노래도 일부 신자들에게만 국한된다는 우스운 얘기가 돼 버립니다. 왜 오늘날 교회에 신령한 노래가 극히 드문가 하면, 방언 및 초자연적인 음악의 '이질감'에 대한 전통적 신자들의 거부감 때문이지요.


  [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