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권서 약자
슘B: 슈무엘B (삼하)
왕A: 왕들A (왕상)
전: 전도서
노: 노래들의노래(아가)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듯, 슐로모에게도 결정적인 일대 약점이 있었습니다.
여인들을 너무 좋아했다는 것이죠. 무려 1000여 비빈들을 두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지요. 최고 최다의 슬기를 지녔다는 현명한 왕이, 혹 단 한 명의 아내로는 너무 모자랐다면 왜 '몇'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렇게..? 그래서 슐로모가 대부분 썼다는 구약 잠언들, 그리고 전도서와 '노래들의노래'(=아가) 등을 읽노라면 "과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마도 슐로모는 거창하고 화려한 강국의 국력에 걸맞게 왕후비빈들과 왕자공주들도 되도록 많이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혹시 수많은 온갖 동/식물의 이름을 모조리 섭렵한 만물박사답게 처첩들 역시 천하의 꽃들처럼 두루 거느려야 만족했는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아버지 다윋 때와 같은 '왕자의 난'을 막기 위해 일부러 자식을 더 많이 낳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고. 천 여 명의 아내들로부터 천 여 명의 자식을 낳았다는 말은 없습니다만.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다윋도 여러 처첩들을 거느렸기에 슐로모가 아버지를 본받았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 슐로모는 아버지에게서 주 야웨님을 사랑하는 좋은 본도 받았지만 좋지 못한 본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부모와 웃 사람이 본을 보이는 대로 따라 가기 마련입니다.
슐로모가 생애 훗날 쓴 것으로 보이는 전도서에 따르면, 그는 이 많은 처첩들을 거느린 것에 대해 여실히 회한을 품고 있습니다.
슐로모가 하나님의 주신 풍요와 자산을 이용해 얼마나 화려 뻑적지근하게 사치한 삶을 즐겼는지 한 번 살펴 보기로 하지요.
그는 전도서에서 고백한 것처럼, 문자 그대로 세계 최고의 현왕, 세계 최고의 부자/재벌로서 "실험적으로" 자신을 즐겁게 하고 낙을 누리면서, 이웃 나라 쪼르(튀로=페니키아, 한글역 '두로')에서 양산되는 당대 최상급 목재인 레바논산 백향목과 쪼르의 기막힌 해양운수/건축술로 당대 최고 수준의 화려한 궁을 짓고 지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미쯔라임 출국(출애굽)후 제480년, 그가 왕위에 오른 지 4년째 제2월(지브 월). 일차 대사업으로 7년간 주/야웨님의 성전을 짓는 한편 그 약 2배의 기간인 13년 동안 자신의 왕궁을 짓습니다. 아마도 편의상 두 프로젝트를 동시 진행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 규모와 구조 등은 왕들A 7:1~12에 상세히 묘사됐지요.
쪼르 왕 히람이 부왕 다윋의 친구였기에 모든 것이 순조로웠습니다. 쪼르는 레바논 백향목과 고급 석재들을 활용해, 건축술에 있어 카나안 주변에서 당대 으뜸이었지요.
왕궁 외에도 주로 외교사절/내빈들을 위한 영빈관으로 추정되는 우아한 '레바논나무궁'을 지었습니다(왕A 7:2). 이 궁엔 큰 황금방패 200개, 작은 금방패 300개를 전시용(?)으로 만들어 비치해 두었습니다(10:17). 또 군기고를 겸한 다윋성 안의 '다윋 망대' 위엔 찬란하게 햇빛을 반사하는 방패 1000개를 걸어두곤 했지요(노 4:4).
슐로모는 그밖에도 하조르/게베르/메기또 등 주요 도시와 수많은 중소도시에 궁 또는 성/요새지들을 지었습니다. 일부는 지금까지도 폐허가 남아 있습니다.
슐로모의 유명한 상아 보좌는 순금으로 입혔고, 양쪽 팔걸이 곁에 사자 조각상이 한 마리씩 있고 보좌로 향해 올라가는 여섯 계단 양쪽에 한 마리씩 모두 열 두 마리의 황금사자상이 서 있었지요(10:20). 이런 웅장한 정경들은 쉐바 여왕 등 당대 명사들의 눈과 정신을 어지럽게 할 정도였습니다(왕A 10:5).
슐로모 왕궁, 레바논나무궁의 그릇과 술잔 등은 모두 금이었고 왕궁에서 은그릇을 구경하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수도 예루샬렘엔 은이 돌처럼, 백향목이 들의 뽕나무처럼 많았습니다(10:21,27).
슐로모 왕가의 하루 식량은 고운가루 30코르(1코르=10에파=약220리터), 거친가루 60코르, 살진 소 10마리, 초장의 소가 20마리, 양 100마리, 그밖에 수사슴/노루/암사슴/식용조류 등이었습니다.
당대 국군의 전마차(병거)는 총1400대, 기마병 12,000명으로 전마차 전용 성과 왕궁에다 비치해 두었습니다. 마굿간만 40,000군데였지요. 말과 전마차는 당대 최상의 양산지이자 슐로모의 처가댁인 미쯔라임(아이귑트)에서 수입해다가 일부는 이웃 나라인 헽 족과 아람의 왕들에게 되팔기도 했습니다(10:26~29).
슐로모 왕은 또 홍해 변 아카바 만 첨단에 위치한 에돔 땅의 엘롵 인근 항구 에찌온게베르에 상선 함대를 구축, 해양강국인 쪼르의 상선들과 함께 사이좋게 나란히 아라비아 반도의 남단 항구 오피르(오빌)로 가서 당대 최상 품질인 오피르 금을 수입해 왔습니다(왕A 9:26~28).
'오피르'는 고대로부터 순금의 대명사였지요. 이 오피르에서는 금뿐 아니라 향기가 짙은 인도산 고급목재인 백단향(白檀香/sandalwood/Santalum album), 보석도 수입했습니다. 백단향으로는 성전과 왕궁의 난간, 현악기(수금/비파)도 제작했지요.
또 쪼르의 본거지인 지중해 변에도 멀리 '타르쉬쉬'(다시스) 항을 오가는 상선 함대도 두고, 3년에 한 번씩 금은/상아/원숭이/공작새 등을 수입해 왔습니다(10:22). [오피르/타르쉬쉬 항이 과연 어디였는지는 현재도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성전에도 수 천 레비 음악인이 있었지만, 왕궁에는 세속 궁정음악을 연주하는 일반 음악인들도 수천 명 있었지요. 다윋과 슐로모는 자신들을 위한 세속음악도 즐겼습니다(슘B 19:35, 전 2:8). 그래서 성전음악과 궁정음악이 포로기 이후까지 대대로 히브리 고대음악의 양대 전통이 됩니다(에즈라 2:41,65 비교. 네헤미야 7:44,67 비교. 성전음악인들은 남성 중심, 궁정음악인들은 남/녀 혼성팀).
슐로모는 또 자신을 위해 레바논 백향목으로 전용 가마를 제작했습니다. 사방 기둥을 은으로 만들고, 바닥은 금을 댔고 좌석은 화려한 자주빛 깔개를 덮었습니다. 왕의 외출 시엔 가마 주위에 무장 경호원들 60명이 호위하곤 했지요(노 3:7~10).
슐로모는 한편 전세계의 온갖 수목과 관상목, 기화요초를 수입해다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었습니다(전 2:5,6, 노 4:13). 또 없는 게 없을 만큼 진귀한 보석과 보물들로 주변을 치장하고 살았습니다(전 2:6,8). 거기에다 꽃밭처럼 아름답고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고 살았습니다(전 2:1~10).
그러나..사치의 극을 달린 이런 삶의 총 결론은 "아, 모든 게 헛되고 헛되고 헛되구나!"란 3중의 장탄식이었습니다(1:2).
흔히 세상 졸부들이 아무리 재물을 쌓고 사치를 즐겨도 만족을 모르듯 슐로모 역시 그랬습니다. 여성에게서 만족을 얻어 보려고 외교 차원에서 미쯔라임 파라오 왕가에서 데려온 공주인 첫 아내와 정략 결혼을 한 뒤(왕A 3:1), 계속 이국 출신 비빈 수를 늘이고 또 늘여 봤지만 만족을 얻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다윋과는 달리 주로 왕비/후궁 대다수를 주변국에서 얻은 슐로모는 뭔가 "다른 색"을 추구하려 애썼던 게 분명합니다(왕A 11:1). 그래서 슐로모는 "내 마음으로 찾으려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은 이것-천 명의 남성들에게선 하나를 얻었지만, 천 명의 여인들중에선 하나도 얻지 못했다"고 실토합니다(전 7:28).
천 명의 남성들에게서 얻은 '하나'는 누굴까요..?
예수 크리스토였다면 정답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슐로모는 예수님을 모시고 한 아내와 자녀를 데리고 만족하게 사는 평민 가장들보다 행복하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그가 '노래들의노래'에서 노래한 슐람밑(또는 '슐람미 여인', 쉘로밑)은 그 '하나'일 수 있었을까요(노 6:13)?
[ '슐람밑'(완전/평화란 뜻)은 슐로모와 동명의 여성형 이름으로, 슐로모가 추구한 이상적(노 4:7, 5:2, 6:9) 여인상을 암시. 슐람미 여인은 부왕 다윋의 사실상 마지막 후궁 격으로 뽑혀 온, 이스라엘 최고의 미녀인 슈넴 소녀 아비샥이고, '노래들의노래'는 슐로모가 그녀를 연모해 쓴 시가라는 설이 있어 왔음.
슐람밑은 슈남밑(슈넴 여인)과 발음도 비슷함. 슐로모의 형 아도니야도 그녀를 연모해 반역을 일으켰다가 숙청됨. 그러나 슐로모가 아버지의 후궁이었던 아비샥과 결혼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아비샥은 평생 처녀로 살았을 가능성이 높음.
'노래들의노래'는 모든 성경 권서들 중 유일하게 풍유법(allegorical interpretation)으로 해석돼야 하기에 논란의 여지가 많음. 남녀 연애에 관한 성적/노골적 표현들이 많음. 대다수 성서학자들이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비유했다는 설을 제기해 왔으나 실제로 예수님 자신과 사도들이 '노래들의노래'를 인용한 적이 전혀 없음. 결국 슐로모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순수 연애시일 가능성이 높음.
슐로모가 '노래들의노래'를 쓸 당시 왕후 60명, 비빈80명, 나머지는 궁녀였기에 비교적 즉위 후 초기였을 가능성이 높음.]
본처부터 미쯔라임에서 얻은 것을 비롯, 모압/암몬/에돔/시돈/헽 족 등 거의 다 이국 여성인 슐로모의 아내들은 왕가 출신의 후비 700명과 첩 300명 등이었지요. 이들은 서로 제각기 왕의 환심을 사려고 각양 각색의 출신 민족 배경과 패션으로 '중무장'하고 저마다 우상을 하나씩 갖고 와서 섬기며 왕에게도 권했기에, 왕은 그 잡신들을 골고루 섭렵하다시피 경배에 동참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슐로모의 수많은 아내는 모두 그의 올무가 됩니다(왕A 11:1~8).
이 왕비들은 왕의 마음을 주 야웨님으로부터 우상들에게로 돌이켰으며, 왕이 늙고 나자 더욱 찰싹 달라붙어 시돈 족의 여신 '아쉬타롵', 암몬 족의 남신 '밀콤'(말캄)과 몰롴(=몰렠), 모압 족의 주신 '케모쉬'(=바알페오르/바알쩨붑, 그리스의 마르스/사투르나와 같은 계열의 잡신) 등을 섬기도록 꾀었습니다.
슐로모는 이 잡신 신상들 앞에서 아내들과 함께 경배할 뿐 아니라 예루샬렘 앞에 케모쉬/몰렠 산당을 지어 주었더니 그들이 거기서 각각 자기 신들에게 제물과 향제를 바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슐로모의 마음은 주/야웨님으로부터 떠났기에 하나님은 진노하십니다(11:9). 사실 하나님은 그전부터 슐로모에게 두 번 나타나시고 또 엄중히 경고하신 바 있지요(3:4~14, 9:2~9). 또 왕 자신이 예루살렘 성전 건립 후 본인이 직접 한 기도 끝에 자기 백성들에게 "땅의 모든 민족들이 주 야웨님만 하나님으로 알고 그분 밖엔 아무도 없음을 알게 되기를..!" 하고 선언해 놓고는(8:60) 본인이 앞장서 어겼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입니다.
이를 보다 못하신 하나님은 세 번째 말씀 속에서 경고가 아닌 심판을 선언하십니다(11:11~13). 즉 나라를 빼앗아 신하(예로보암)에게 주고 아들 레호보암에겐 그 옛날 다윋의 초기 왕국이었던 유다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슐로모가 죽고 난 뒤 왕국이 남/북 즉 유다와 이스라엘-둘로 쪼개지지요.
다윋이 샤울 다음으로 즉위해 한때나마 나뉘었던 남/북 왕국을 통일했지만 불과 2대를 채 못 지나 나라가 다시 쪼개졌음은 참으로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금할 수 없게 합니다.
여인에게마다 간과 쓸개를 다 빼 준 듯한 슐로모의 이런 다원종교적 태도는 오늘날 많은 명사들에게서 보는 정치적 종교성의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언필칭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다양한 커뮤니티를 상대로 한 정치적 제스처와 여론점수, 인기도를 의식해 모든 종교에 대해 폭넓은 관용적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정치종교인'이지요. 그런 사람은 종교인일지언정 참 크리스천은 아닙니다. 참 크리스천은 예수님만 구주로 알고 믿는 주일학교 어린이 같은 순수한 사람들입니다.
정치종교인들은 모든 종교에 웃음과 추파를 던져 가며 맘 좋은 관용적인 사람으로 비치지만, 알고 보면 그런 다원성은 자기 욕심을 반영합니다. 모든 종교와 추종자들을 다 자기 것으로 삼고 갖겠다는 게걸스런 욕심이지요. 그런 사람은 슐로모를 "악한 임금"으로 탓할 건덕지조차 없습니다! 슐로모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뭐냐는 것이지요.
결국 남의 기분 좋게 해 주면서 자기 영혼을 팔아 치우는 사람들입니다. 아울러 다른 신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요. 세상에서는 모범적/모델적 인사인 양 인기를 얻고 환영 받고 영달을 누리고 잘 살 지 모르나 불행히도 마지막엔 지옥으로 가거나 그럴 위험성이 다분한 위태한 종말로 치닫습니다. 제 말이 아닌 성경의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치관은 지상지상주의(地上至上主義)로 끝나는 셈이지요. 이런 문어발 식 종교성을 지닌 인사들은 당장 회개하지 않는 이상 천상의 지복은 주어지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너 좋고 나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마치 강변에서 모마다 닳고 닳아 매끈하고 둥글납작해진 조약돌처럼 "만사, 미소로 오케이"식 신앙관을 갖는다면, 그 결과는 자명합니다. 슐로모와 같은 결론을 얻을 수 밖에는 없지요.
만약 그런 인사들이 회개도 않고 정치종교 생활을 하다가 갔는데 하늘에서 점검 없이 그냥 받아 준다면 하나님도 관대하신 관용의 '다원종교신'일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성경은 주/야웨님을 결코 그렇게 맘 좋고도 어리숙한 신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우리 하나님을 그런 무한관대한 신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의 모든 에큐메니즘, 다원영성, 혼합영성, 관상영성, '떠오름'영성, 뉴에이지영성 등이 대표적인 예지요.
현대 교계의 일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 필자는 외래어를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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