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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General Topic

부활 신령체와 들어올려짐(휴거)

신령체란 신령한 몸, 거룩한 영체를 뜻합니다(코린토A 15:44).

신령한 몸은, 우선 예수님이 부활 이후 여태 계속 지니고 계신 몸이지요(코A 15:46,47). 그리고 주님이 공중 재림하시는 '들어올려짐'(휴거)의 날, 지상에 살아있던 성도들이 한 순간 변화 받아 입는 몸입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은 이 몸이 아니고는 하늘나라에서 살아갈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15:48~50).

이 몸에 관해 좀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과연 신령체가 어떤 것인지를 예수 크리스토님을 통해 알아 보겠습니다.

우선..
예수님은 독생자(the Only begotten Son) 하나님이신 성자님, 영원 전부터 아버지 품 안에 계셔서 로고스로서 우주창조 사역에 관여하시고 하나님의 구약 사역에 동참하시고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어 성육신하신 분입니다.

동정녀의 몸을 빌려 나셨고 요셉-마리아의 법적인 맏아들, 고향 나자렡 마을의 모범 목수로서 약 30년간 평범 속 비범의 삶을 사시다가, 서른 살 때부터 성령의 권능과 기름부음으로 3년간 공사역을 하시며 제자들을 훈련시키셨지요.
 
그러다가 드디어 인류 구속(redemption)의 위업을 위하여 십자가 수난을 당하셨습니다. 큰 바닷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낸 고대의 대언자 요나처럼, 죽으셔서 사흘 밤낮을 '지중'(지구 속, 마태 12:40) 곧 '퓔라케'(=영옥, 페트로A 3:19)에 계시던 주님은 죽음의 사슬을 깨뜨리고 부활하셔서 잠자는 무리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코A 15:20). 할렐루야!
 
부활 후 예수님은 독특한 몸을 지니셨습니다.
사람들이 과거와 같이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신비를 지닌 모습이었습니다(맑 16:12, 뤀 24:16,31, 요복 20:14,15, 21:4b). 또 순식간에 나타나거나 사라지실 수 있었지요. 즉 시간/공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 몸이었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클로파스와 친구에게 문득 다가와 길벗으로 대화를 나누셨고, 엠마오에 도착해 클로파스 집에 들어가 떡을 들어 축사하신 순간 둘의 눈을 열어 주셔서 자신이심을 드러내자마자 돌연 눈 앞에서 "!?" 하고 사라지셨습니다(요24:15b,31b).

또, 그 길로 예루살렘에 되돌아 간 클로파스와 친구로부터 제자들이 기쁨의 소식을 듣고 있는데 문득 방 한 가운데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 무렵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바깥세상이 무서워 안으로 문을 잠그고 있었다가 주님을 보고 너무들 놀랐지요. 즉 주님은 벽이든 문이든 '무사통과' 하실 수 있는 몸이었습니다(요 20:19,26). 전혀 아무 장애도 받지 않으셨지요.

입이 딱 벌어진 채 이 모습을 지켜 본 제자들은 '유령'이 아닌가고 떨면서 좀처럼 믿으려 하지를 않습니다.
이때 주님은 중요한 말씀을 하시지요: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그대들이 보는 대로 나는 있다네!" 그래도 제자들이 너무 기뻐 긴가민가 하니까 구운 생선까지 직접 잡수셔서 입증하십니다(뤀 24:36~42). 그 후에도 주님은 바닷가에서 떡과 생선을 잡수신 적이 있습니다(요 21:9~15).
즉 신령체는 일반 음식도 먹을 순 있다는 뜻이지요. 이것은 육의 양식에 묶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은 과거에도 물 위로 걸어가시는 등 놀라운 이적을 얼마든지 행하실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 차원을 훨씬 넘는 신령체로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주님 몸을 직접 만져보지 않고는 부활 사실을 믿지 않겠다는 '의심하는 토마스'(Doubting Thomas)의 말을 영으로 들으시고 또 다시 문이 잠긴 방안에 나타나 토마스에게 직접 못자국/창 자국을 만져 보게 하십니다(요 20:26~29).

홀로 보존될 상처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주님은 부활 당시 완전한 신령체를 입으셨는데도 수난 때 입은 모든 상처를 그대로 지니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극히 중대한 사안입니다!

주님은 수난 때 한 마디로 온 몸이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등과 온몸 여기저기 (작은 갈코리가 난 납덩이 방울, 굵은 생선가시 따위를 주렁주렁 매단) 가죽채찍에 있는 힘껏 수십 대 맞아 찢기고 여기저기 살점이 뜯긴 상처. 
머리는 가시관이 짓눌려 씌우면서 두피가 굵은 가시에 깊숙이 긁히고 찔린 상흔.
두 손과 두 발은 굵은 사각대못으로 관통 당한 데다 장시간 십자가에 매달려 있으면서 몸무게 탓에 내려 찢긴 상처.
숨이 끊어지시고도 옆구리를 창으로 깊숙이 심장(물이 쏟아져 내린 근원)까지 찔리신 상처.

주님의 이 모든 상처가 깨끗이 치유되고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당연히 우리 마음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내 몸 여기저기 나 있는 상처도 주님처럼 그렇게 남게 될까? 그렇다면 현재 장애인 내 몸의 부분은? 한 눈이 안 보이는 나는? 전쟁터에서 한 쪽 팔을 잃은 나는? 반신불수인 나는? 청각 없는 내 귀는 어떻게 되나? 얼짱 만드느라 성형수술 '칼질' 받다 망가진 내 얼굴은? 늙어서 아래로 처진 내 턱은? 밭고랑 같은 내 주름살은?

만약 우리가 지상에서 상처를 입은 모습, 장애인 모습, 늙은 모습 이대로 하늘나라에 가 살게 된다면 그지 없이 서운할 것입니다. 특히 장애인 형제/자매들은 땅에서 평생 서러움 받다가 하늘나라에서도 이 모습 이대로 영원히 살아야 하나 하고 말입니다. 장애인 신자들의 평생 소원은 깨끗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거, 아니겠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우리가 신령체로 변화 받는 순간, 마치 요르단 강물에 일곱 번 잠긴 뒤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이 고침 받은 나아만 장군보다 더(왕들B=왕하 5:14) 완전하고 빛나고 맑고 늘 젊고 싱싱하고 말끔하고 깨끗하고 순결하고 탄탄하고 강하고 아름답고 영원히 썩지 않는 몸을 받게 됩니다(코A 15:48,49,53, 코B 5:1~4). 이 세상의 어떤 화장품으로도, 이 땅의 어떤 성형수술/정형수술로도 결코 만들지 못할 황홀한 몸을 받아 갖게 됩니다. 머리로는 도저히 결코 상상할 수 없던 가장 아름다운 나의 모습이지요!
그 몸으로 영원히 하늘나라에 살게 됩니다(코B 4:14, 유다 24).

뿐만 아니라 주님의 부활하신 몸이 그랬듯 우리도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성령의 권능으로 지구 이 편에서 저 편으로, 땅에서 하늘 위로 순식간에 오를 수 있는 그런 몸입니다(테살A 4:17).
신령체란 그런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바로 그날! 주님이 공중에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공중재림"이라고도 하지요. 그 옛날 이천년전 올리브 산에서 하늘 위로 오르시던 그 주님의 모습 그대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때, 주님의 우레 같은 호령 소리,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일제히 울릴 때, 우리 몸이 순식간에-번갯불처럼 눈 깜빡할 새 변화하여 신령체를 갖게 됩니다(테살A 4:16~18, 코A 15:51). 그리고 마치 2000년전 올리브산에서 승천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각각 하늘로 솟아 오르게 됩니다(행1:9~11).
이것이 곧 들어올려짐(휴거) 사건입니다.

잠자던 성도들이 먼저

그러나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 우리보다 먼저 그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앞서 "잠자던" 성도들입니다(테살A 4:15,16). 하늘에는 고대로부터 자기 몸을 기다리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참 실존은 영 곧 속사람이지, 혼/정신이나 몸이 아닙니다(롬 7:22, 코B 4:16, 테살A 5:23).

[나/자아는 눈에 보이는 이 몸덩이가 아니라 내 속 깊숙이 자리잡은 나의 본질 곧 나의 영입니다. 그것이 내 자신, 나의 참 자아입니다. 그래서 파울은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나는 나 입니다.." (코린토A 15:10 사역)라고.  
즉 보혈과 성령, 말씀으로 거듭나 바뀐 속사람인 지금의 나, 거듭난 내가 참 나라는 것입니다. 이 참 '나' 곧 내 영은 혼을 지니고 있고, 몸 속에 살아 갑니다. 몸은 나의 집인 동시에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의 전(殿)입니다(코B 5:1).]

그런데 하늘에 있던 앞서 간 영들이 주님과 함께 내려 와 되살아난 자기 몸을 되찾되 변화 받은 신령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과 바다에서 죽어 흙 가루가 됐거나 사라졌던 몸들이 순식간에 뼈와 살이 재생되고 일어나 하늘에 들어 올려져 주인인 영들과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자던(=죽었던) 모든 시신 속에 생명이 들어 가 무덤이 열려 사람들이 불쑥불쑥 솟아나고, 화장터에서 불 타 잿가루가 돼 뿌려졌거나 전장에서 산화됐던 시신들의 뼈와 살이 복구되고, 타이태닉호 와 함께 가라앉았던 참 신자들도 저 해저에서 수포처럼 위로 둥 떠 해면 위로 높이 하늘로 치솟게 됩니다. 모두 신령체로 변하여 제각기 자기 주인인 영과 만나 합해지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롭고 굉장하고 기쁜 광경이겠습니까!

이 장엄한 부활이 먼저 있은 뒤 땅에 생존해 있던 우리도 변화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날(!), 그렇게 됩니다. 할렐루야!

주님 홀로!

그렇다면..우리 주님은 도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왜 예수님도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받지 못하시고 그런 상처투성이 모습을 지니고 계신 것입니까?
오! 생각하면..우린 눈물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의 그 상처 남은 모습이 슬퍼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감사 감격해섭니다.
바로 우리에게 온 몸과 피를 주신 주님의 그 죽던 모습을 간직하심으로써..

첫째, 모든 제자들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매장됐다가 되살아나신 바로 그분이심을 확신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뤀 24:39, 요복 20:24~29, 요서 1:1끝),

둘째,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길이길이 우리를 통하여 기념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요계 5:6~14).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주님의 상처를 바라볼 때 마다 우리 위해 죽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감사 감격하며 바라보고 길이길이 기리게 될 것입니다.

오 할렐루야, 보좌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과 그 어린양께 영원히 찬양!

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생명 주시려고 그 고귀한 생명을 주셨고
우리에게 승리 주시려고 죽음에서 되살아나셨고
우리에게 믿음과 확신 주시려고 그 상처를 보여 주시며
우리로부터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려고 영원히 그 모습을 간직하십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오 예수 크리스토님, 감사합니다!
오 성자님, 고맙습니다!

입으로는 이루 감사할 길 없어
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물로도 이루 표현할 길 없어
나의 온 영과 혼, 몸
나의 생명과 삶으로 주님을 기립니다
주님의 존귀한 이름을 높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엎드려 경배합니다
홀로 영광 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

영원히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소서!

[복음을 뿌리쳐 거듭나기를 거부하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심판의 부활로 되살아 날 날이 옵니다(요복 2:59, 요계 20:12~13). 물론 살아있던 사람들도 받지요.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기쁨과 영광이 아닌 영원한 심판, 불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불쌍한 영혼들에게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