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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General Topic

TLT 서로나눔 성경공부 4 [하나님 말씀에 대한 개인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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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에 대한 개인의 태도에 관해 좀 더..

하나님 말씀이 위대한 창조력을 지닌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은 로고스이며..로고스는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PTL! 태초에 하나님은 말씀-로고스-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요복 1:1~3). 온누리 중 이 말씀 없이 지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창조 사역엔 성령님도 함께 하셨습니다(창 1:2b). 따라서 성삼위 하나님이 일체로서 창조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우리..우리를 거듭 되뇌시는 것입니다(창 1:26, 3:22) 이 '우리'는 기타 경우에도 나타납니다(창 11:7, 이 6:8).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입 밖으로 표출할 때,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권능으로 선언할 때, 창조적 역사가 이뤄집니다. 이 경우 우리는 '창의적', '독창적'이란 말을 쓰진 않습니다.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권위있는 객관적 창조력이며 그래서 더 든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입으로 선언될 때 뭔가가 이뤄지는 것은 또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 때문이기도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슨 도덕 어록이나 법전처럼 생각합니다. 또 옛날 이야기책이나 역사책으로도 간주합니다. 요즘 미국 도처의 공립학교 학군에서는 성경을 하나의 문학 교과서 내지 참고서 정도로 읽히는 기획을 세웁니다. 그렇게라도 성경이 더 읽히면 좋긴 좋겠습니다. 그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한 번, 한 명이라도 진리에 노출될 기회가 됩니다. 어쨌든 그런 태도는..엄청나고 무한한 보고가 숨겨진 '보물지도'를 외면하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겐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여느 책과 다른 이유는 거기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약속! 그래서 신구약-옛 약속과 새 약속이 아닙니까? 이 언약들은 인간 쪽에선 도저히 다 못 지켜도 언제나 안 지키는 편이어도, 하나님만은 늘 지키시는, 그런 약속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실(faithful)하십니다. 하나님의 '에메드' 곧 미쁘심/신실성/진실하심/성실하심은 모두 진리와 동의어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이 다 변해도, 다 무너져도, 온누리가 다 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늘 절대 성취지향적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이루고야 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바를, 내가 보낸 그 목표를 이루지 않고서는."(이사야 55:11 사역)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언약의 말씀을 1. 믿음과 2. 예수 이름, 3. 성령의 권능으로 입 밖으로 선언할 때, 반드시 이루어지는 까닭이 그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성취 지향성은 다음 말씀 속에도 극명합니다.

"나는 끝을 처음부터, 옛적 일로부터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들을 알린다. 나는 말한다: '내 뜻을 지탱하며 내 모든 바람을 이루리!"(이 60:22 사역)

그러므로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담아 밖으로 낼 때도, 성취지향성이 작동되고 발휘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소중하게 다루고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우리의 근접 자세는 말씀의 이 특성들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믿음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우리가 믿되 100% 믿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적당히 절반쯤, 또는 그보다 약간 더/덜 믿어 드립니다. 긴가민가, 믿을 동 말 동 불신의 여지를 어느 정도 남겨 둡니다. 왜 그럴까요? 전적으로 믿었다가는 손해 볼 수 있다는 계산이 작동하며..그래서 여차하면 미리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 안에 전적으로 거하는(indwell) 것이 숨막힐 듯 여겨지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목숨도 걸 수 있음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딱 하나 뿐인 아들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다윋은 거인 골리앝을 대적할 때 하나님의 이름과 승리의 언약에 자기 목숨을 건 셈입니다. 하나님이 골라뽑으신 백성=선민을 살려 주실 줄을 반드시 믿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열(10) 재앙의 이적을 다 행하기까지 부단히 파라오의 칼날 앞에 자기 목숨을 내겁니다. 택한 백성을 출애굽 시키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옛 대언자들도 그랬습니다. 엘리야가 악한 왕 아합과 사특한 왕후 이제벨 앞에서 그토록 담대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목숨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러다 믿음으로 죽어 간 사람들도 숱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수준입니다(히브리 11장 참조).

하나님은 그 분을 존중하는 사람을 존중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존중함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반면 그분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경멸하면 그분도 역시 우리를 그렇게 여기실 것입니다(슈무엘A=삼상 2:30 참조).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들을 늘 존중하고 믿어 드리고 생명과도 같이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이런 태도로 대한다면 응당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오 할렐루야~! 말씀을 삶 속에서 체험하며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익사이팅한 모험적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하나님은 권능의 신, 성취의 신이십니다!
Expect a miracle every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