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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General Topic

TLT 서로나눔 성경공부 3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개인의 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개인의 태도

[계속 들풀님의 간증을 즐기시길 바랍니다(바로 아랫 글). 참 놀라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다시 한 번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예수 크리스토는 어제나 오늘, 내일..길이길이 한결 같으십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서 성경말씀 음독(소리내어 읽기)의 파워를 음미하고 있습니다. 들풀님의 간증이 파워풀한 까닭도 어린양의 피와 우리의 간증으로 승리하기 때문이며 간증의 대부분이 말씀에 대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

전편에서..성경의 음독(소리내어 읽기)파워, 필독 파워를 구태여 따로 논한 것은..성경은 눈으로 보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믿음과 입으로 선언/고백하고 실천하는것이 읽기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읽는 직후 아니 읽는 순간부터 말씀과 내 삶 사이에 불꽃 튀는 연계 작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것 없이 그냥 눈으로 읽고만 그치는 데 기성교인들의 불행(?)이 있습니다. 또 머리로만 또록또록 뱅뱅~ 굴리는 데서 딱딱한 신학이 나오는 것입니다. 뜨거운 가슴과 실천의 의지가 없이.

성경을 보면,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는 즉시, 믿음이 오는 즉시 즉각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입니다.

가령 예수님을 발견한 순간 그 옷 가장자리에 [믿.음.으.로.] 손을 댄 여인은 12년간이나 앓던 혈루증이 뿌리째 사~악 말라버렸습니다(할렐루야~!) 남이야 보건 말건 내 믿음이죠^^. 이 여성환자는 전 재산을 의사들에게 다 뿌리던 절망 끝에..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 소망이자 마지막 소망, 유일한 참 희망입니다. 오, 하나님께 영광!

이 여인이 들은 것은 바로 예수님에 관한 말.씀. 곧 복.음.이죠! 굳뉴스(어느 부흥강사 말마따나 '꾸욷니우스')! 안 그렇습니까?
주님 말씀하시죠:
     "딸, 안심하오. 그대 믿음이 그대를 구했소."
할렐루야. 우리 믿음이 우리를 구합니다! 김삼의 말이 아닌 주님 말씀입니다.

딸이 악령에 지펴 고민하던 그리스계 쉬로페니케 여인은 딸을 해방시켜 달라고 주님께 애원하는데 주님은 마치 칼 같이 매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의 배를 채워야 할 빵을 갖다가 개들(=당대 이방인들)에게 던져 줌이 마땅치 않소" 라고.

허걱! 이 얼마나 "뻥 찧는" 말씀..?!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게 믿음의 테스트라는 겁니다. 여인은 내심 충격이 컸겠지만 한 방에 쉽게 포기하는 타잎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예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야 없지..그래서 두 번째 도전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주님. 그러나..상 아래 개들조차 아이들이 먹던 부스럭지를 먹지 않습니까?"

원 세상에..이런 믿음을 봅니까?! 웬만한 사람 같으면 "WHAT???? 에라~ 치사해서라도 예수 안 믿고 말지~"
이럴 텐데 말입니다. 아마 이 여인이 그런 스타일이었다면 얼굴이 벌개서 속으로 유대인들을 모두 저주하며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나 귀신 들린 딸과 함께 한 많은 여생을 보냈을 확률이 크겠죠. 그런데..그런 자존심이 밥 먹여 줍니까? 병 고쳐 줍니까? 약을 갖다 준답디까? 이 여인은 그 자존심 테스트를 거뜬히 견디고 이기고 통과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 말씀하시죠:

     "여인. 그런 말을 하다니 그대 믿음이 크오~! 그대 딸에게서 악령이 이미 떠났소."

그 순간 집에 머물러 있던 쉬로페니케 여인의 딸을 지핀 고약한 악령들이 싸악~ 물러 갔습니다.
이 여인의 이런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들은 바 말씀에서 왔죠. 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듣고 듣지 않으면 어떻게 믿음이 옵니까?
바로 그겁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씀을 읽을 때 내 영은 쫑긋~ 두 귀를 세우고 듣.습.니.다. 마치 '또리'(제가 섬기는 가정교회 교우의 영특한 강아지)처럼. 내 몸에 달린 입을 통하여 속사람인 영에 말씀이 전해지는 순간이죠!

다시 말합니다. 내 몸/혼이 말씀을 전하니 영이 듣습니다. 이 작용이 음독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물론 눈으로도 작용하죠. 그러나 입과 혀의 권세는 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나는 입술의 열매를 맺히게 한다. '평화! 평화!-멀리 있는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야웨는 말한다: 내가 그를 고쳐 주마!" (이사야 57:19 사역)
믿음으로 음독하는 성경은 혀와 입술에서 나오므로 열매를 맺기가 쉽지요. 입술은 열매를 맺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입의 열매로 배부르고 그 입술의 수확물로 만족한다." (잠언 18:20 사역)
우리가 부정적인 말 대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입을 채우고 소리 낼 때 우리는 그 열매를 먹고 배부르고 만족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듯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 발언하는 입에서는 창조력이 발산됩니다.

반대로..하나님 말씀 대신 불신과 부정의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요? 결과가 자명합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야코보 3:5,6 개역개정)

세 치 혓바닥 하나가 우리의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바퀴를 불살라 버립니다! 충격 아닙니까?! 그 반면..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담을수록, 입술과 혀로 고백할수록 선한 열매, 좋은 수확물을 거둬 들일 수가 있습니다. 풍요로운 삶의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번영신학, 형통론을 자꾸 "나쁘다"며 까기만 하고 비판만 하는데..그렇다면 도대체 대안이 뭡니까? 성경에 명시된 번영/형통을 아예 무시하고 없는 것으로 치자는 건가요? 문제는 그것 자체가 아니죠! 단지 받은 번영과 형통을 혼자만 누리거나 잘못 사용하는 데 있죠. 사치와 일락에만 퍼부으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것 자체를 우상화하기도 십상이고.

말이야 바로 하랬다고..잘못은 사람에게 있지, 하나님 말씀에 있는 게 아니죠. 김삼이 아는 한, 성경은 신자들의 번영과 형통을 분명히 약속해 놓았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번영과 형통, 건강은 믿는 자들의 복음/구원 패키지 안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찬찬히 읽어 보십시오. 그런가 안 그런가..

우리가 구약인들만큼도 형통하지 못한다면 그건 복음이 아니죠. 남들만 잘 되고 내가 안 되는 게 어떻게 복음=복된소식입니까? 구약인들이 잘되던 것..우리는 바라면 안된다는 말인가요? 싹수가 노~라니 생각도 말라는 겁니까? 애초에 내겐 해당사항이 아니라는 겁니까?

허! 그렇다면 하나님은 한낱 인종차별주의 신이랄밖에.. '안티'들을 욕하기 전, 나 자신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안티'가 아닌가 곰곰이 따져 볼 필요가 있죠.

분명히 사도 파울은 아브라함의 모든 복덩어리가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이방인 신자들에게까지 굴러 들어온다고 명시했습니다. 할렐루야~! 물론 이것은 물적인 복만은 아닙니다. 참된 번영, 참된 형통은 바로 다음입니다.
     "사랑하는 님. 그대의 영혼이 잘 되듯 그대가 모든 일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바랍니다."(요서C 4)

할렐루야, 아멘~! 위 말씀을 하루에 딱 세 번씩만 매일 고백해 보십시오. 그대로 되나, 안 되나. (음..사실 저도 제 현황 파악을 한다면 입술을 좀 조심해야 할 판입니다만..아무튼 하나님 말씀이니 전하고 볼 일입니다. 저는 위의 말씀이 약속한 복을 충분히 누리고 있지 못한 형편인데 분명 고백과 실천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야베즈의 기도대로 했더니 엄청난 응답과 복을 받았습니다. 한 번 나중에 간증하죠. 저는 브루스 윌킨슨의 책을 따라 한 게 아니라 성경말씀을 따랐을 뿐입니다.)

조용기의 '3박자론'과 비슷하다고요? 헛! 조용기는 위의 말씀을 꽤 앞서 활용(이용?)한 사람이죠. 그런 의미에서 선구자이죠. 조용기가 이용했다고 해서 성경말씀이 하나님 약속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참된 것이지요. (뭐가 복잡하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고 그 약속은 신실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주변의 비판을 개의치 않습니다. 문제는 그 말씀이 내게도 복음이냐..내게도 유익이냐? 이겁니다. '이기적'이라고요? 일단 내가 받아놓고서야 남에게 나눠줄 수도 있지 않나요? 복음이 남에게만 좋으면 뭘합니까? 남만 좋은 소식이 무슨 복된 소식-'꾸욷니우스'냐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와 입장을 점검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과 주 예수 이름으로 입술과 혓바닥으로 고백하고 선언하고 실천하는 대로 열매와 복록(복과 녹)을 누리게 됩니다!